사람들과 열국이 웃음거리가 됨
1. (ㄱ)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고통받는 아들이 당한 모든 모독과 희롱을 보고 웃으셨읍니까? 혹은 무엇을 보고 웃으셨읍니까? (ㄴ) 예수의 부활에 관한 소식이 퍼지지 못하게 하려고 시도할 때 누가 웃을 일이었읍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셨읍니까? 하나님께서 “하늘 왕국”을 전파하고 메시야 정부에서 통치하실 왕으로서 기름부으신 아들이 비웃음과 희롱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어떻게 하셨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웃으셨읍니까? 하나님께서 웃으실 수 있었읍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의 이름에 미친 모독과 자기의 왕국의 대표자인 지금 그 비참한 고통을 받고 있는 아들 예수 메시야 위에 임한 모독을 보시고 웃으신 것이 아니라 한낱 보잘것 없는 인간이 우주의 지존자이신 전능자의 뜻과 목적을 패배시키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시고 웃으셨읍니다. 세째 날에 그의 천사가 영광스럽게 내려와서 봉함한 딱지를 떼고 예수의 무덤의 문을 굴려 열었을 때, 경비하던 군병들이 놀래서 거의 죽게 되었읍니다. 이제 누가 웃을 차례입니까? 경비병들에게서 그 보고를 받은 제사장들과 그들의 교우들은 웃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군병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고 말하였읍니다. (마태 28:2-4, 11-15)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진상은 500명 이상이나 되는 참 증인들의 증언에 의하여 일반에게 알려졌읍니다. 그러면 이제 웃을 분이 있다면 그는 누구겠읍니까?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웃으셨읍니다.
2, 3. (ㄱ) 언제 그리고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진상을 일반 대중에게 알게 하셨읍니까? (ㄴ) ‘베드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에 대한 계략을 실패하게 하신 것을 어떻게 증언하였읍니까?
2 종교와 정치가 합동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메시야 왕국을 방해하려고 한지 51일 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진상을 일반 대중이 알도록 하시기 시작하셨읍니다. 때는 기원 33년 ‘유대’력으로 ‘시완’월 6일 오순절 날이었읍니다.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 120명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 주셨읍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신 후 물질화하여 이들이 볼 수 있게 나타나셨음으로 이들은 예수를 본 일이 있었읍니다. 3,000명 이상의 오순절 축하객들이 모여서 이들 120명의 증인들이 성령의 기적의 힘을 통하여 여러 가지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지도적인 증인인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기름부음받은 아들 메시야에 대한 종교가들과 정치가들의 계략을 어떻게 실패케 하셨는가를 무리에게 명백하게 말하였읍니다. ‘베드로’의 연설은 이와 같았읍니다.
3 “‘나사렛’ 예수, 곧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그를 통하여 행하신 강력한 일과 전조와 징조로써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공개적으로 보여 주신 한 사람인, 이 사람을 여러분은 하나님의 결정된 의향과 예지대로 넘겨진 자처럼, 무법한 자들의 손으로 기둥에 달아 죽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풀어 그를 부활시키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를 계속 그것에 매어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셨으며 우리 모두는 이 사실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오른편으로 높임을 받아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으므로 그는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읍니다. 실제로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으나 그는 친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의 등상으로 놓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으라”고 말하셨다.’ [시 110:1]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집은 여러분이 찔러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사도 1:12부터 2:36, 신세.
4. (ㄱ) 종교 지도자들이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있었던 일을 보고 웃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와 부활에 관하여 전파하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건을 어떻게 다루었읍니까?
4 ‘베드로’와 그의 동료 증인들의 연설을 들은 약 3,000명이, 부활되어 하늘로 높이 올리우신 메시야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믿고 침례를 받아 그의 추종자들이 된 것은 그 때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읍니다. (사도 2:37-47) 특히 사도 ‘시몬 베드로’와 ‘세베데’의 아들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와서 메시야에 관하여 전파하는 것은 이들 종교 지도자들에게 웃을 일이 아니었읍니다. 특히 ‘사두개’파 종교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된 메시야 그리스도를 영원히 없애려는 종교가들과 정치가들의 노력을 실패로 돌아가게 한 부활에 관한 전파를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두고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재판을 받게 하였읍니다. ‘유대’ 법정은 두 사도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들을 위협한 다음에 놓아 주었읍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야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의 박해자들을 보고 웃으신다는 증거가 있게 되었읍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5, 6. (ㄱ) 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 대한 그들의 학대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친 결과를 보고 왜 웃을 수 없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은 왜 통치자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었읍니까?
5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대한 학대가 있은 후에 일어난 일로써 알 수 있읍니다. 그러한 공식적인 소행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을 볼 때 종교 당국자들은 그들이 행한 광신적인 처리의 결과에 대하여 웃을 만한 이유가 있었읍니까? 그들이 어떻게 웃을 수 있었겠읍니까? 그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사도들[즉 ‘베드로’와 ‘요한’]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6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헤롯 안티파스’나 ‘본디오 빌라도’나 ‘예루살렘’의 종교 통치자들이나 아무도 기뻐 웃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읍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 3:1부터 4:31.
7. 제자들이 기도할 때에 시편 2편으로부터 두 귀절을 적용시킨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 때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의 반대자들을 보고 웃으셨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7 기원 1세기에 있었던 이들 그리스도인 제자들의 담대함으로 인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메시야와 그의 메시야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의 반대자들을 비웃을 수 있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웃으셨읍니다. 왜냐 하면 제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인용한 시편 2편은 하나님께서 웃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들의 기도 가운데서 고대 ‘예루살렘’의 ‘다윗’ 왕에 의하여 영감으로 기록된 이 시편 처음 두 귀절의 성취에 관하여 설명한 바와 같이, 같은 시편에 있는 계속되는 귀절도 그 때에 성취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 시편 2편 2절부터 6절에 웃음에 관한 언급이 있읍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8. (ㄱ) 여호와께서는 왜 반대자들을 보고 웃으실 만한 이유를 가지고 계셨읍니까? (ㄴ) ‘헤롯’과 ‘빌라도’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그의 불쾌하심을 나타내셨읍니까?
8 지상의 정치가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모든 우수꽝스러운 행동도 실상을 바꾸어 놓을 수 없었읍니다. 메시야의 추종자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도 전능하신 여호와의 거룩한 마련을 바꾸어 놓을 수 없었읍니다. 이러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부활된 메시야를 그의 하늘 우편에, 하늘 ‘시온’ 산 위 즉 정부의 가장 높은 곳에 앉히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땅에 있는 그의 반대자들을 비웃을 수 있으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그의 격노를 발하실 만한 이유가 있으셨읍니다. 침례자 ‘요한’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던 ‘헤롯 안티파스’는 몇 해 후에, ‘로마’에 의하여 ‘고울’도로 유배되어 갔고, 그의 조카 ‘헤롯 아그립바’는 별안간 재앙을 만나 벌레에 먹혀 죽었읍니다. (사도 12:1-23) 세속 역사에 의하면, ‘본디오 빌라도’도 후에 ‘로마’ 제국 정부로부터 비참한 최후를 당하였읍니다. 기원 70년에 ‘유대’ 나라는 후에 ‘로마’ 황제가 된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도와 그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도를 황폐케 함으로써 슬픔을 당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 메시야는 계속 천적 ‘시온’ 산에서 땅 위에 있는 그의 추종자들을 다스리셨고, ‘로마’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계속 전파하도록 힘을 주셨읍니다.
9. 기원 제1세기의 성취를 전영하도록 시편 2편에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읍니까?
9 기원 제1세기에 현저하게 성취된 시편 2편에는 바로 그러한 성취를 전영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읍니다. 시편 2편은 기원전 제11세기에 쓴 것으로서 그 당시의 국제적 사정을 근거로 하고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조상인 ‘베들레헴’의 ‘다윗’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릴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예루살렘’ 시를 지배하던 적의 요새인 ‘시온’ 산을 점령하였읍니다. ‘다윗’ 왕은 거기에 자기의 보좌를 설치하고 남부 도시인 ‘헤브론’으로부터 그리로 옮겼읍니다. 이웃 나라인 ‘불레셋’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불레셋’ 여러 도시의 왕들이 군대를 소집하고 ‘다윗’ 왕을 폐위시켜 이 새로운 ‘이스라엘’ 왕에게 결박되는 일을 피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방 ‘불레셋’ 사람들의 방해를 관용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두 번의 기적을 주어 그들에게 승리를 거두게 하셨고 ‘다윗’ 왕에게 복종하도록 정복케 하셨읍니다.—사무엘 하 5:1-25.
10. (ㄱ) 시편 2편은 여호와께서 왕 ‘다윗’을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알려 주었읍니까? (ㄴ) 이 일은 왜 역사적으로 중요합니까?
10 그 때 여호와께서는 개선한 ‘다윗’에게 영감을 주어 시편 2편을 기록하게 하셨고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다윗’ 왕이 ‘시온’ 산을 수도로 삼고 약속의 땅 전체를 통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헛되이 상상하는 모든 왕들과 열국을 보고 여호와께서 웃으실 것이라고 말하게 하셨읍니다. 국제적 모든 소요와 항거 및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의 기름부음받은 ‘다윗’ 왕이 거룩한 산 ‘시온’에서 그의 40년간의 통치를 하게 하셨읍니다. 이 모든 일에는 역사적 중요성이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기름부음받은 ‘다윗’은 기름부음받은 분인 예수의 이름난 조상일 뿐 아니라 또한 예수를 전영한 예언적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라는 이름이 “사랑받는 자”라는 뜻인 것처럼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분입니다.—마태 3:17; 17:5, 신세.
이 이십 세기에 하나님께서 웃으실 일
11. 시편 2편의 고대 성취들을 생각할 때 이제 그것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11 ‘다윗’ 왕은 ‘시온’ 산에서 3,000년 전에 통치하였고,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그의 적들을 보고 웃을 수 있었읍니다. ‘다윗’의 가장 큰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간으로서 19세기 전에 이 땅에 오셨읍니다. 우리는 지금 기원 1969년 봄에 살고 있읍니다. 이 20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환경들은 또다시 시편 2편을 성취시키도록 역사를 반복시키고 있읍니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이 사물의 제도의 정치적 열국을 보고 웃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ㄱ) 예수께서는 언제 이방인의 때에 관하여 언급하셨으며, 그 때는 언제 끝났읍니까? (ㄴ) 세속 역사가들은 그 해에 열국의 무슨 시대가 끝났다고 말합니까?
12 여러분은 “이방인의 때” 혹은 “열국의 지정된 때”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읍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도시와 관련해서 그러한 말을 하셨으며, 그 당시 ‘예루살렘’ 성벽은 ‘시온’ 산을 둘러 싸고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21:24) 이 “이방인의 때”라는 기간은 이 땅에서 영원히 계속 될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 기간은 언젠가 반드시 성취 혹은 차야 하였읍니다. 언제 그 때가 찰 것입니까?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아랍’과의 6일 전쟁에서 옛날 성벽이 있던 곳을 포함한 동부 ‘예루살렘’을 소유하게 된 때였읍니까? 아닙니다! 왜냐 하면 이러한 이방인의 때는 이미 이전에 즉 기원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끝났기 때문입니다. 기원 1914년이 오기 수십년 전에 주의 깊은 성서 연구생들은 성서의 시간표와 성서 예언을 통하여 그 해를 산출해 냈읍니다. 그 중대한 해부터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 사건들과 상태를 볼 때, 1914년에 이방 열국에 무엇인가가, 즉 한 시대가 종결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세속 역사가들은 그 해에 열국의 평화와 안전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1914년에 무엇이 끝났읍니까?
13. (ㄱ)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기원 1914년에 무엇이 실제로 끝났읍니까? (ㄴ) 기원 33년에 사실상 “예루살렘”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더 밟힘을 당하였읍니까?
13 그 때 끝난 것은 이방(비유대들인) 열국이 ‘예루살렘’을 밟는 지정된 때였읍니다. (누가 21:24) 그러나 밟힘을 당한 것은 예수 당시에 있었던 문자적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왕의 정부의 위치로서 대표된 ‘예루살렘’이었읍니다. 다시 말하면 더는 이방인들에게 밟힘을 받지 않을 “예루살렘”은 ‘다윗’ 왕계에서 나온 기름부음받은 왕에 의하여 운영되는 하나님의 왕국이었읍니다. 기원전 607년에 ‘다윗’의 후손인 ‘시드기야’ 왕이 폐위 당하고 그의 영토였던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황폐되었을 때 이방인들은 이런 의미로서 “예루살렘”을 밟기 시작하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다윗’의 왕손이었으며, 기원 33년에 “‘가이사’의 충신” ‘본디오 빌라도’가 종교 지도자들의 요구에 굴복해서 예수를 ‘로마’ 군병들에게 넘겨 주어 형주에서 죽이게 하였읍니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은 이방 열국에 의하여 더 밟힘을 당하였읍니다.—요한 19:12.
14. (ㄱ)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은 기원 33년 부활되신 예수께서 하늘로 높임을 받으셨을 때 왜 집권하지 않았읍니까? (ㄴ) 기원 1914년에 하늘과 땅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14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하늘 자기 우편으로 그를 높이셨읍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왕국이 ‘다윗’ 왕의 후손이며 계승자인 이분의 손에 주어져서 세워졌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사도 1:6, 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이 밟히는 이방인의 때가 차서 종결됨으로 하나님의 확정하신 때가 올 때까지 하늘에서 기다리시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히브리 10:12, 13)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때는 기원 1914년이었읍니다. 고대 ‘예루살렘’과 ‘유다’가 이방 ‘바벨론’에 의하여 처음에 황폐된지 2,520년이 되는 그 해에 ‘예루살렘’ 혹은 ‘다윗’ 왕의 후손인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가 땅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왕국의 권리를 밟는 이방인의 때가 끝났읍니다. 그리고 이 때에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이 땅에서가 아니고 하늘에서입니다. 이제 이방 열국이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것을 밟는 대신, 이방 열국이 밟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기름부음받은 왕의 발등상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 110:1, 2) 그러므로 기원 1914년은 하늘과 땅에 변화가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해였읍니다.
15. (ㄱ) 이방 열국은 왜 이 모든 사실에 대하여 무식할 이유가 없읍니까? (ㄴ) 만일 열국이 특히 그리스도교국이 왕국 증거를 받아들이고 순응하였더라면 이 땅의 상태는 어떻게 달라졌을 것입니까?
15 ‘이스라엘’ 공화국을 포함한 이방 열국은 이 사실에 무식할 이유가 없읍니다. 20세기의 역사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로 기원 1914년 이래 하늘에 설립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관한 소식이 모든 나라에 통고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 24:14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결코 헛되게 되지 않았읍니다. 만일 이방 열국이 특히 그리스도교국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한 바와 같이 이 증거를 받아들이고 실질적으로 그것에 순응하고 그들의 주권을 하나님의 천적 메시야 왕국에 양보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읍니까? 이 땅의 상태와 세계적 경향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보좌에 앉으신 메시야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들에게 성취되었을 것입니다. 역사는 그들이 1914년 이래 왕국을 증거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수치스러운 박해자들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았을 것입니다.
16. 세계 상태와 경향을 볼 때, 열국은 기원 1914년 이래, 어떠한 길을 걷고 있읍니까?
16 오늘날 지상의 슬프고 두려운 상태와 경향은 문제를 명백히 해 줍니다. 1914년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 그리고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의하여 땅끝까지 행해진 왕국의 세계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국과 ‘유대’국을 포함한 이방 열국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 자기들의 길을 택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명합니다. 그들은 완고하게 그들의 주권을 하나님의 지상의 정당한 통치자인 메시야 즉 그리스도에게 양도하기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들은 아직도 세계 지배를 위한 권력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며, 심지어 2차에 걸친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현재는 제3차 전쟁으로 전 인류를 위협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그들의 국제연맹과 그것의 후신인 국제연합에 기대를 걸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 없는 마음으로는 볼 수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천적 메시야 왕국의 유일한 실용적 대용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7. (ㄱ)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 우리 앞에 어떠한 큰 문제가 놓여져 있읍니까? (ㄴ) 그들이 마음대로 하게 두어도 열국은 하나님의 하시는 무엇을 막을 수 없읍니까?
17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이 도래한 이래 큰 우주적인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 혹은 이방 열국에 의한 온 땅의 지배, 어느 쪽인가 입니다. 이방 열국이 승리할 것입니까? 그들이 승리할 수 있읍니까?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마음대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세계적 선포자들을 억압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왕국을 반대하게 두십시오. 아무리 해도 그들은 지금 천적 ‘시온’ 산에 즉위해 계신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왕 그리스도를 퇴위시킬 수는 없읍니다. 그들은 천적 메시야 왕국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발등상으로 만들고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비웃으십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들은 그들 자신의 길을 택하고 하나님의 길을 대항해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소란합니다. 열국 진영들은 자기들의 계략을 추진시키며 선전함으로서 공상에 잠겨 있으며, 속이 텅 빈 것임이 드러날 허사를 경영하고 있읍니다. 성서 역사와 성서 예언이 그것을 알려 줍니다.—시 2:1-6; 사도 4:25, 26.
18. (ㄱ) 시편 2:10-12의 충고와 같이 열국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었읍니까? (ㄴ) 그들은 무슨 지혜를 따랐으며,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 것이 전영되었읍니까?
18 1914년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 열국은 이미 반-메시야의 길을 따른 열매를 먹고 있읍니다. 현명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연구하고 땅의 왕자들과 판사들에게 충고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기꺼이 복종하겠다는 표시로 그에게 “입맞추”고 메시야 정부 아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읍니다. (시 2:10-12) 그러나 그들은 현대 과학과 기술로 영광을 받는 인간의 지혜를 따르기로 결정하였읍니다. 그들의 세상적 지혜는 그 열매와 그 결과로 정당함이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재난이 그들 앞에 놓여져 있읍니다. ‘다윗’ 왕 시대에 ‘불레셋’ 사람들에게 재난이 닥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 시대에 종교와 정치적 박해자들에게 재난이 닥친 것처럼 그들에게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의 예언과 같이 하나님의 지혜 편에서는 진정한 웃음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19. 그 때 “참 지혜”는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19 “[참]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느니라]”—잠언 1:20-32.
20.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래 열국은 무슨 행진에 관한 경고를 받아 왔으며 그들은 어느 전쟁을 택했읍니까?
20 여러 해 동안, 그렇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18년 이래 이방 열국은 그들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날에 전쟁”을 위하여 ‘아마겟돈’으로 행진하고 있다는 경고를 받아 왔읍니다. (계시 16:14, 16)a 국제 연맹도 국제 연합도 행진을 멈추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박차를 가하였읍니다. 그들은 국가주의를 지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아니라 이방 열국에 의한 땅의 지배를 옹호해 왔기 때문입니다. 열국은 전쟁을 선택하였읍니다. 그들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우주 주권자이시며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전쟁입니다.
21. (ㄱ) 성서적으로 볼 때, 왜 오늘날의 상태는 웃을만한 일입니까? (ㄴ)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여호와께서 비웃으신 것이 마땅한 일이었음이 증명될 것입니까?
21 오늘날 진정한 상태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웃게 됩니다. 열국을 보고 웃는 것입니다. 그들은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때 단지 통의 물 한방울과 같고 저울판 위에 있는 먼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15) 그들은 단순히 멸망을 자초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아마겟돈’에서 이 우주적 논쟁의 최절정에 그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시 19:11-21) 세계 지배를 위한 전면적인 최후적 전쟁을 일으켰을 때 열국을 보고 도전적으로 웃으시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메시야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그들과 싸우게 하시고 땅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지배권에 도전한 이방들을 멸망케 하실 것입니다. 그의 메시야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주 주권을 영원히 입증할 것입니다. 열국을 보고 하나님께서 도전적으로 웃으신 것은 마땅한 일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국제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세계적으로 전파해 온 “기쁜 소식”이었던 메시야 왕국은 그 때 이 땅과 모든 인류의 영원한 이익을 전면적으로 관할하게 될 것입니다. 메시야 왕국은 현명하고 순종적인 인류에게 영원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웃을 것인가?
22. 우리가 현재나 장래에 웃음을 당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가 웃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22 그러면 이제 우리 각자는 어떠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야(그리스도)와 함께 열국의 고통이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를 보고 웃으실 것입니까? 그 분은 ‘아마겟돈’에서 승리하신 후에 우리를 보고 개선의 웃음을 웃으실 것입니까? 이러할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 각자가 결정하는 데 달려 있읍니다. 우리를 보고 웃으신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여러 가지 불필요한 불안과 고통과 고난을 당한 후에 멸망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전한 마음과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누가 그러한 환경 아래서 웃음을 당하기를 원하겠읍니까? 우리는 그러한 일을 당할 필요가 없읍니다. 이 세상 열국은 어리석게 행동하게 두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지 맙시다. 우리는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 천적 지혜, 이 참 지혜를 청종할 수 있읍니다.
23. 참 지혜는 자기를 청종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약속하며, 그것은 왜 우리가 원하는 상태입니까?
23 고난의 날에 참 지혜를 무시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 지혜가 어떻게 웃을 것인가를 말한 다음에 그 지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 1:33)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우리가 원하는 상태가 아닙니까? 이러한 상태 아래서 우리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어떠한 재난이나 고난을 당할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읍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를 보고 승인의 미소로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그분은 우리를 확실히 보호하실 것입니다. 이 보호를 통하여 우리는 열국을 보고 웃으시는 멸망을 살아 남아 더 큰 ‘다윗’인 하나님의 사랑하는 메시야의 왕국 아래 있을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을 가득 채우시는 순결하고 건전한 쾌락으로 인하여 마음껏 서로 웃을 것입니다.
[각주]
a 1926년 5월 ‘왙취 타워 협회’ 발행 Deliverance(「구원」) 제12장 “The Final Battle”(마지막 전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