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열국을 보고 웃으시는가?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
1. 지금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때이며, 그것과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여러분은 웃기를 좋아하십니까? 웃을 수 있는 능력은 동물이나 새나 물고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은 창조주께서 하실 수 있는 일 중의 한 가지를 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는데 그것이 웃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웃으실 때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보고 웃으십니까? 혹은 여러분이 그분과 함께 웃으십니까?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여러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하도 우스워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웃으신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읍니까? 우리의 창조주께서 우리를 보고 웃으시게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오늘날 그분과 함께 웃음으로써 이 세상 상태의 염려를 잊을 수 있겠읍니까?
2, 3. 열국들은 이 세계 상태와 장래의 전망을 왜 웃을 문제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2 이 세상 나라들 가운데 현재 세계 상태와 장래의 전망을 웃어 넘길 문제로 보고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읍니다. 사업의 번영이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고 기초가 흔들림으로써 불확정적일 때, 여러분은 웃거나 웃을 수 있겠읍니까? 정부 세출이 증가하고 국가 부채가 점점 과중해질 때는 어떠합니까? 열국이 하나의 친밀한 대가족으로서 융합하지 못하고 나라마다 서로 의심하고, 서로 적수로서 경쟁하고, 서로 군비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고, 서로 압박하고, 서로 체면을 손상시키고, 서로 간첩활동을 하고, 서로 이용하려고 하는 일이 점증하고 있을 때에 어떻게 웃을 수 있겠읍니까?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편만해져서 더는 정부가 국민들을 지배하기 힘들어 보일 때 어떻게 웃을 수 있겠읍니까?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도의심이 신뢰를 받지 못하고 공무원들과 하속들의 성실성이 의심을 받고 있을 때 어떻게 웃을 수 있겠읍니까? 정당한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폭력 행위에 호소하는 일이 점점 잦으며 범죄율이 점증하고 있을 때 어떻게 웃을 수 있겠읍니까?
3 빈곤을 없애기 위한 정부의 투쟁이 점점 어려워 가고 있는데, 그것이 참으로 웃을 문제입니까? 전쟁 무기는 점점 가공해 가고, 핵전쟁은 다만 같은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문명의 파괴와 인류의 전멸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멈칫하고 있는데, 이것이 웃을 문제입니까? 종교가 개입하여 더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전혀 막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것이 웃을 문제입니까? 객관적으로 볼 때 이러한 모든 일들은 결코 웃을 문제들이 아닙니다.
4. 누가 열국을 이러한 상태로 이끌어 들였으며, 왜 그 모든 상태는 불필요한 것들이었읍니까?
4 유물론자들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 상태를 이렇게 만든 것은 열국 자체들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록된 인간 역사는 그렇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상태는 불필요한 것들이었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치료할 방법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이 제공되었었지만 열국은 그 치료를 거절하여 유일한 치료의 길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5. 이러한 환경 아래서 열국이 취해 온 길은 왜 현명한 길이 아닙니까?
5 열국이 취한 길을 보면 그들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열국은 자기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들의 힘만을 의뢰합니다. 그들은 해결책을 하늘에 의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현인들, 정치인들, 외교관들의 지혜에 의뢰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혜는 금년 1969년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였읍니까? 자멸의 구덩이로 인도하였읍니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강력한 수단을 통해서 자멸의 구덩이로 가까이 가고 있읍니다. 그들은 후퇴할 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존심이 강하고,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너무나 자신의 국가의 체면과 주권을 염려하고, 너무나 궤변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물질에만 도움을 구하고 그 이상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창조주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대신 피조물에게 기대를 걸고 있읍니다. 오늘날 열국이 창조주를 믿는다는 표시가 어디 있읍니까? 창조주, 즉 오늘날까지 모든 우주를 질서있게 보존해 오셨고 땅에 사는 우리를 유익하게 해 오신 분은 무시되고 있읍니다. 우주의 일부분인 이 지구는 전 우주에 비교할 때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지구의 문제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창조주께서 해결하실 수 없을 만큼 클 수는 없읍니다.
6. 장차 열국이 별안간 창조주를 믿게 될 것입니까? 그러나 창조주에 관하여 무엇을 믿는 것이 이치적입니까?
6 유물론적 과학은 이 두뇌 시대에 있어서 열국의 신이 되어 왔기 때문에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현재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머지 않은 장래에 최악의 경우가 와서 그들 자신이나 현대 과학이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열국이 별안간 그분을 믿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다만 지구와 지상 인간의 창조주께서 사람의 불행을 고치실 방법을 가지고 계시고, 유일한 적당한 치료를 하실 수 있음을 믿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적어도 19세기 동안 열국에게는 참 하나님 즉 유일한 치료 방법을 가지고 계신 창조주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읍니다.
7. 이 경우에 있어서 평행선으로 각자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왜 공존이 있을 수 없읍니까?
7 그러나 열국이 계속 완고하게 하나님의 마련을 무시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으로부터 무슨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읍니까? 열국이 창조주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분과 인류를 구원하실 그분의 방법을 대항해서 싸우는 결과 밖에 기대할 수 없읍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국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하는 현인이 19세기 전에 세워 놓으신 법칙입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태 12:30)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계획을 더 좋아해서 그것을 택하고 하나님의 마련을 거절한다면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 평화롭게 일할 수 있겠읍니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읍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는 공존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읍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평행선으로 각자의 뜻을 행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외없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이기적인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과 다른, 사실상 하나님을 대항해서 싸우는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읍니까? 그는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두고 하나님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최선의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기가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역사와 경험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8. 세속적인 인간 역사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역사인 성서와 어떻게 다릅니까?
8 이 세상 인간 역사는 영감받지 않은 이 세상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되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류가 청종하도록 경고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자기의 영감을 주어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즉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역사, 하나님의 봉사에 충실한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역사가 있으며, 그것이 성서 즉 성경에 있읍니다. 성서는 천구백년 전까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신 방법에 관한 사람에 관한 역사입니다. 성서는 또한 그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와 앞으로 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실 일에 관하여 예언합니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 수천년에 걸쳐 무슨 일을 해 오셨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기록된 책인 성서가 전문적으로 다룬 점입니다. 이 세상 혹은 세속적인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높입니다.
9. 성서의 중요성은 어떠한 주목할 만한 사실에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을 피할 수 있읍니까?
9 성서는 하나님께서 개인과 관계를 가지셨고 여러 가족들과 따로 따로 관계를 가지셨고 나라 전체와 관계를 가지셨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역사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역사로 과거 1,900년 동안 무덤에서 썩고 있는 역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서는 그 시초부터 항상 앞을 바라보는 책입니다. 왜냐 하면 성서는 뚜렷한 하나님의 예언서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성서의 직접적인 예언 외에도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장차 일어날 일들이 실례로서 기록되었읍니다.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도 포함됩니다. 이 주목할 만한 사실 때문에 성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책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결코 등한히 생각하거나 멸시해서는 안될 유일한 책입니다. 우리는 이 기사에서 그렇게 할 것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열국은 그렇게 함으로써 혼란에 빠지게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영감에 의한 예언서인 성서를 멸시하지 않고, 그것을 청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없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열국을 보고 웃으시는 것 같이 우리를 보고 웃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과거에 웃으신 때가 있었다
10. 십구세기 전에 하나님께서 열국을 보고 크게 웃으실 때, 어느 도시가 세계적인 ‘뉴스’의 중심지였으며,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 때가 변화의 때라고 생각하였읍니까?
10 19세기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열국을 보고 크게 웃으신 일이 있었읍니다. 그 이유는 그 때까지의 인간 역사 가운데서 사람이 하나님을 대항해서 가장 큰 싸움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있었던 이 일이 바로 우리 시대에 대한 예언적 의미도 있기 때문에 이제 성서 기록으로 가서 20세기 역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대조해 보도록 합시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통용기원 제1세기에도 이태리 ‘로마’ 시는 그 당시 ‘뉴스’의 중심지였읍니다. 그 당시에는 ‘로마’ 시 한복판에 세계의 ‘로마 가톨릭’계를 지배하는 ‘바티칸’ 시가 없었읍니다. ‘로마’ 제국의 이교 황제는 그 때까지 종교계에서 ‘폰티펙스 맥시머스’의 자리에 있었고, 바로 이 때에 그 자리에 있었던 황제는 기원 14년 8월 19일에 사망한 ‘아구스도 가이사’의 후계자인 ‘디베료 가이사’였읍니다. 그 때 변화가 일어났읍니다. 적어도 ‘로마’ 제국 동부, 즉 그 당시 지중해를 둘러 있는 조그마한 지역에 사는 조그마한 집단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였읍니다. 사실상 변화는 일어났었고, 그것은 우리 시대에까지 미칠 변화였읍니다.
11. 그 당시 어디에서 누가 새로운 정부를 선포하기 시작하였읍니까?
11 중동지방에 있는 사막 가운데서 새로운 정부를 선포하는 소리가 들려왔읍니다. 그것은 사막에 사는 사람의 목소리였읍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정다운 뜻이 있는 이름이었읍니다. 그 이름은 “‘야’는 은혜로우시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1:59-80) ‘요한’이라는 이 사막의 사람이 이 새로운 정부를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디베료 가이사’ 황제 통치 제15년 즉 기원 29년 봄이었읍니다. (누가 3:1, 2)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요한’ 자신이 ‘로마’ ‘유대’도의 종교적 수도인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자기 아버지와 같이 제사장으로 봉사한 일이 있다는 기록은 없읍니다. ‘요한’의 하나님이신 은혜로우신 ‘야’ 즉 여호와께서는 ‘요한’에게 지상의 물질적 성전에서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맡기실 것이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이 ‘요한’을 일으키셔서 이 새로운 정부의 통치자의 전령과 선구자 노릇을 하게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대중 앞에 나타나서 “하늘 왕국” 즉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때였읍니다. (마태 3:1, 2) 이 정부는 “하늘 왕국”일 것이므로 이 약속된 왕국은 의로운 정부일 것이며, 오늘날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매우 필요한 것이었읍니다.
12. “하늘” 정부에 관하여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질문하며, 그러나 침례자 ‘요한’의 “하늘 왕국”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었읍니까?
12 “그렇지만 하늘이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가?” 하고 오늘날 완고한 유물론자들은 질문할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성서를 읽어 본다면 그들은 곧 “하늘”이 어떻게 과거에 세계를 흔드는 방법으로 그 자체를 나타냈으며, 또 머지 않은 장래에 그렇게 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17‘톤’짜리 ‘로켓트’를 외계로 쏘아 올렸다고 해서 그가 ‘요한’이 말한 “하늘”보다 높은 능력이나 지상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사람은 하나님을 고려함이 없이 하늘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감에 의한 “하늘”이라는 표현의 사용으로써 ‘요한’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가 선포한 하늘 왕국 즉 “천국”은 “하나님의 왕국”이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왕국은 선하고 의롭고 완전한 정부여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정부가 오는 것을 위하여 준비해야 하였읍니다. 이 사실과 일치하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보내셔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범한 죄를 회개하는 것의 상징으로서 회개한 사람들의 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주게 하셨읍니다.—마태 3:4-6; 마가 1:4-15.
13.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하늘”의 통치가 관리하는 자가 있는 실제적인 것임을 어떻게 인정하게 되었읍니까?
13 ‘요한’이 전령으로서 선포한 “천국” 즉 하늘 왕국은 결코 상상적인 정부가 아니었읍니다. 그 정부는 오늘날 ‘런던’이나 ‘파리’, ‘모스크바’, 북경, ‘와싱턴’, ‘로마’, 기타 이 땅 모든 곳에 있는 정부와 똑같이 관리하는 자가 있는 실제적이고 “실행주의”적 정부입니다. 오늘날 강경한 정치적 통치자들은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그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윈전 제7세기와 6세기에 ‘유브라데’ 강변에 있던 ‘바벨론’ 황제 ‘느부갓네살’과 마찬가지로 초인이 아닙니다. 이 능한 ‘바벨론’ 제국의 통치자는 예언자 ‘다니엘’이 그에게 말한 바와 같이 그가 “하늘이 다스리시는 줄을” 깨닫게 되기 위하여 7년간 들짐승의 수준으로 떨어졌었읍니다. 여기 “하늘”이라는 말은 지극히 높으신 분을 의미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느부갓네살’이 미쳐서 짐승과 같이 되기 직전에 그는 하늘로부터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7년 동안 짐승과 같은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기적으로 회복된 후에 이 사실을 인정하였읍니다.—다니엘 4:25-37, 난외주 참조.
14, 15. ‘요한’이 투옥된 이유는 “하늘 왕국”을 전파하기 때문이었읍니까? 그 후에 누가 이 전파하는 일을 계승하였읍니까?
14 ‘요한’은 오늘날 정치적 통치자들만큼이나 이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이었읍니다. 그는 비현실적인 꿈으로써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읍니다. 그가 선포하고 침례를 베풀기 시작한지 약 1년 후에 그는 ‘갈릴리’ 지역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에게 투옥당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하늘 왕국”을 선포하기 때문이 아니었읍니다. 그 이유는 ‘요한’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이 통치자에게 올바른 도덕을 강조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마태 14:1-5) 그 당시 완고한 정치적 통치자들은 그 왕국이 만일 “하늘 왕국” 혹은 “하나님의 왕국”이라면 자기들의 보이는 지상 왕국에 방해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이 투옥으로 말미암아 ‘요한’의 공개적인 하나님의 왕국 선포는 중단되었읍니다. 그러나 그가 투옥된 후에는, 그가 투옥되기 약 6개월 전에 ‘요단’ 강 물에서 그가 침례를 베푼 한 사람에 의하여 그의 왕국 전파가 행하여졌읍니다. 그 사람은 ‘갈릴리·나사렛’에서 온 한 목수였는데 그의 이름은 예수로서 ‘요셉’의 양자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에 관하여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15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 . .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 .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태 4:12-17; 마가 1:14, 15.
웃음거리가 됨
16, 17. (ㄱ) 지역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를 잡았을 때 그는 사실상 누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침례자 ‘요한’은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어떻게 증거하였읍니까?
16 이로부터 약 3년 후에 지역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와 그의 군병들은 예수를 희롱하였읍니다. 예수는 그 때 ‘디베료 가이사’ 대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고발을 당하였읍니다. (누가 23:8-12) 이것은 열국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기 시작한 증거에 불과하였읍니다. 열국이 즐거이 하나님의 아들을 놀려대며 희롱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사실상 자신들을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그들이 바로 예수를 조롱함으로써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침례자 ‘요한’이 ‘나사렛’ 예수에게 침례를 베풀 때 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늘로부터의 증거를 목격하였읍니다. ‘요한’은 후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증언하였읍니다.
17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요한 1:32-34, 신세 참조.
18. (ㄱ) 예수께서는 왜 정치적 운동을 할 필요가 없으셨읍니까? (ㄴ) 그들의 적들은 제국세에 관해서 어떻게 예수를 정치에 관련시키려고 하였읍니까?
18 그 사실을 증언하려고 침례자 ‘요한’은 예수를 가르키며 청중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요한 1:29)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장차 “하늘 왕국”의 왕이 되실 분으로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읍니다. 그는 위안과 인도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그 “하늘 왕국”을 선포할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일을 수행하셨읍니다. (누가 4:16-21; 8:1; 사도 10:38) 그는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인기를 얻으려고 정치 운동을 하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는 이미 그의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하나님의 천적 메시야 왕국의 왕으로서 선출되어, 선택되었고,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만드신 많은 종교적 적들은 예수를 이 세상 정치에 관련시키려고 애썼읍니다. 적어도 한번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이 ‘가이사’ 제국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냐고 질문함으로써 그렇게 하였읍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가이사’ 제국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이사’를 증오하고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심으로써 그들의 혁명에 관한 화제를 재치있게 잠잠하게 만드셨읍니다. (마태 22:15-22)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하신 대로 자신도 하셨읍니다. 그는 ‘가이사’에게 인두세(人頭税)를 바치셨읍니다. 그것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혁명가가 아니었읍니다.
19. (ㄱ) 예수께서 3년 동안이나 가르치고 전파하신 후에도, ‘유대’인들은 “하늘 왕국”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나타냈읍니까? (ㄴ) 예수께서 자기의 활동적 추종자들을 야외로 내보내신 방법을 볼 때 예수가 혁명가가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19 예수 자신의 동족은 그가 전파한 “하늘 왕국”을 지지하였읍니까? 비교적 소수의 남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수천 수만명의 ‘유대’인들과 할례받은 개종자들이 그의 전파를 들었지만 비교적 소수만이 그가 오랫 동안 약속된 메시야 즉 기름부음받은 자 혹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었읍니다. 예수께서 3년이나 전파하고 가르치셨는데도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이렇게 물었읍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 스스로 결론을 내려서 그들의 믿음에 따라 결정하게 하시고 그들을 떠나셨읍니다. 그 때 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고 하였읍니다. (요한 10:22-31) 예수께서는 자기를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열두 사도를 택하셨읍니다. 그리고 이들을 훈련시키신 다음에 이들도 “천국이 가까왔다”고 전파하도록 내어 보내셨읍니다. (마태 10:1-7) 후에 예수께서는 같은 소식을 전파하도록 다른 70명의 추종자들을 내어 보내셨읍니다. (누가 9:1-6; 10:1-11) 모두 합해서 여든두 명의 하나님의 왕국 전파자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칼과 창 또는 활과 화살로 무장한 ‘게릴라’ 부대가 아니었읍니다. 얼마나 이상합니까! 하나의 독립정부가 전파만으로써 ‘이스라엘’ 나라 위에 집권할 수 있읍니까? 그것만도 우리를 웃게 합니다.
20. ‘나사로’가 부활된 후 그리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개선의 입성을 하신 후, 종교 지도자들이 웃었읍니까?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20 그러나 한 때는 그것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지 않았읍니다. 이 때는 그러한 전파를 한지 3년 후 일이었읍니다. 때는 통용기원 33년 이른 봄이었읍니다. 그 때까지는 ‘유대’인들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 정부는 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 전파대에 대하여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그로 말미암아 떨게 되었읍니다. 그 해 유월절이 되기 얼마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주목할 만한 기적 중의 하나를 행하셨읍니다. 그것은 죽어서 장사된지 나흘이나 된 한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일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민중들 사이에 큰 격동이 일어났으며, 종교 지도자들은 이렇게 수군댔읍니다.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요한 11:1-48) 그러나 이제 ‘니산’월 9일 즉 유월절이 되기 5일 전에 예수께서는 마치 대관식 때와 같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고, 환희에 취한 군중들은 외쳤읍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이스라엘’ 왕이여!” (신세)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야 왕으로서 열렬히 지지하는 대중을 보고 놀랜 ‘바리새’교인들은 더욱 불안해져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볼찌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요한 12:10-19.
21, 22. (ㄱ)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하려고 그를 ‘로마’ 정부에 어떻게 넘겼읍니까? (ㄴ) ‘헤롯 안티파스’는 자기에게 예수가 넘기워지자 예수를 어떻게 다루었읍니까?
21 그러므로 종교 지도자들은 ‘니산’월 14일 유월절 날에 예수 메시야를 죽임으로써 그들의 입장을 세우려 하였읍니다. 그가 사형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고발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팔레스티나’ 지역을 지배하는 ‘로마’ 제국 정부의 정치적 대표자들에게로 넘겼읍니다. 처음에는 그를 종교적 이유로 비난하였다가 ‘유대’도 ‘로마’ 총독 앞으로 그를 데리고 왔읍니다. 무슨 죄를 씌워서 그렇게 하였읍니까? 정치적 선동죄였읍니다. 고발 당한 예수를 신문하면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한 18:12-35) 재판을 하는 중에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 지방은 침례자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 구역이었읍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발을 빼려고 예수를 그 때 ‘예루살렘’에 와 있던 ‘헤롯’에게로 보냈읍니다.
22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된 침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대단히 보기를 원하였읍니다. 그는 예수가 자기에게 한 두 가지 기적을 보여 주기를 바랐읍니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셨고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읍나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마음대로 고발하게 두셨읍니다. 그러므로 ‘헤롯’은 그것을 우습게 생각하였읍니다.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누가 23:1-12.
23. 그 후에 예수는 어떻게 로마 군병들에게 조롱을 당하셨읍니까?
23 ‘본디오 빌라도’가 종교적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를 자기 ‘로마’ 군병에게 넘겨 주어 형주에서 죽이게 한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더 많은 조소와 희롱을 당하게 되셨읍니다. 마태 27:27-31의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대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그에게 침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형주]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신세 참조.
24. 종교 지도자들은 형주에 달려 계신 예수를 어떻게 희롱하였읍니까?
24 예수께서 형주에 달려 계신 동안 지나가는 자들은 예수를 모욕하고 머리를 흔들며 조롱하였읍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형주]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마태 27:39-43, 신세 참조.
25. 무덤에 장사된 예수에 대하여 어떠한 세심한 예방책을 취함으로써 종교 지도자들은 이제 기뻐 웃을 수 있게 되었읍니까?
25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메시야는 웃음거리로서 죽으셨읍니다. 그가 죽어서 근처 무덤에 장사된 다음 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멸시와,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서 없어지는 일을 막으려는 의도를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로마’ 총독은 또다시 그들의 손이 되어 무덤을 봉하고 경비를 서게 하였읍니다. (마태 27:62-66) 이제 종교 지도자들은 얼마나 기뻐 웃을 수 있었겠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