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참된 종교의 회복
1. 아모스 9:11-15가 사도들 당시에 성취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아모스 9:11-15에 기록된 예언은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사도들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성취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특별한 집회때 야고보로 말미암아 이 예언이 인용된 것을 보아 알수있다. 당시 참다운 종교를 받아드린 이방인의 할례(割禮)에 대하여 많은 변론이 있었다. 먼저 베드로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하시려고 …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통하여 이방인 가운데서 행하신 많은 이적과 기사를 진술하였다. 그 말이 끝인후 야고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인방인들로 여호와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사도 15:7-18, 신세.
2, 3. 여호와께서 왕의 궁전을 세우기 위한 목적이 실패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라
2 당시 석조(石造)의 궁전(宮殿)을 세을 건축의 대계획도 없었다. 그러나 실지 발생된 것은 약속된 유다의 왕의 계보(系譜)의 회복이 실현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왕을 영접한 사람은 소수였으며 국민은 전체로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버림받았던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였다. (마태 23:38, 39, 신세) 국민 전체로서 그들은 이일을 행하지 않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목적은 실패하지 않었다. 그는 이방인에 향하여 왕의 궁전을 위하여 요구된 수효를 부르셨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육적 이스라엘 집과는 영구한 간격이 생기게 되었으나 그 간격은 위대하신 간격의 수축자요 참된 종교의 회복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령적 왕의 집을 세우는 자들에게 수축(修築)되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온의 『기초석』 이였다. 그는 왕국의 후사(後嗣)되시며 성소의 『모통이 돌』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한즉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되는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 2:18-21) 또 기록된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였다. (요한 14:6) 그러므로 유대인의 성전은 여호와의 참다운 숭배를 위한 성소로서는 버리게 되었다. 그후로 참된 숭배는 다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드릴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참다운 종교가 되었다.
4. 예수께서는 어떻게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우신 분이며 파괴된 기초를 쌓으신 분이 되는가?
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래 황패된 곳들을』 제자들에게 다시 세우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브라함과 기타 충성된 자들과 같은 믿음을 가질수 있었다. 이 사업에 대한 준비로서 침례 요한은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께 돌아오게 하였으며 여호와를 위한 백성을 준비하셨으며 그의 앞길을 수축하였다. 이것이 바로 엘리야의 사업이며 여호와서 온 땅을 저주로 멸망시키지 않도록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한 것이였다. 하나의 백성으로서 회개할것을 거절하였으므로 그들은 회개할수 없이 저주를 받아 버렸다. 다만 적은 수효만이 충성을 지켰으나 그것만으로서는 친적 왕의 집을 세우기에 충분한 수효가 되지 못하였다. 그 집을 구성시킬 수효는 144,000명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과 여호와의 인자로 말미암아 그 부르심은 이방 사람들에게 까지 미치게 되어 왕의 궁전을 세우게 되었다. 참된 종교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꾀도 수포로 돌아가고 그의 대리자를 통하여 회복된 참다운 종교를 파괴시키려는 그의 노력도 실패되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우신 분이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신 분』 이였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충성을 지키며 성실하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여호와의 이름에 영광을 돌려 높이며 그로 말미암아 그의 뒤를 따르는 자들에게 완전한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회복된 참된 종교
5, 6. 『곡식』 과 『가라지』를 갈라내는 사업은 언제 행할수 있있으며 이 사업은 세상 끝인 오늘날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5 70년전까지도 여호와를 진실로 숭배하는 자들이 이세상의 여러 거짓 종교 조직내에 산재(散在)하였었다. 이는 그때까지 이 모든 무리를 한데 모일 하나의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곡식』과 『가라지』가 한데 자라고 있었으며 누구에게도 『곡식』을 거두라는 권한이 부여되지 않었었다. 그러하여 추수하는 주인이 그 일을 행하라는 명령이 있을때까지 행할수 없었다. 예수 초림때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엘리야』의 사업이 수행됨과같이 재림때 있어서도 『엘리야』의 사업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여 회개시키는 일이였다. 그러한 사업은 특히 1878년부터 1918년까지 진행되었다. 그 후에도 같은 일이 계속되어 증가되어 왔으나 그일은 『예리샤』 의 일로서 알려져 있으며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로 치신』 아마겟돈까지 계속될 것이다.
6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어떤 종들이 때가 되기전에 분리하는 사업을 원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이 세상 끝은 1914년부터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큰 분리사업(分離事業) 즉 『곡식』과 『가라지』를 갈라내는것 바꾸어 말하자면 『왕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을』 갈라내는 사업은 시작될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와 결부하여 이처럼 예언하셨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 13:28-30, 39; 24:31
7. 참된 종교의 회복과 함께 어떠한 놀라운 진리가 나타났는가?
7 하나님의 백성의 『엘리야』 사업 기간에 성경 진리가 많이 해명되었으나 그때까지 여호와라는 이름을 그 단체에서 자유롭게 사용하지 않었으며 종들의 야외봉사에서도 사용되지 않었다. 약 30년전에 모여든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결부된 중대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 대하여 더 연구하게 되었다. 1926년 1월 1일호 영문 『파수대』에는 『누가 여호와께 영광을 드릴 것인가?』라는 제목을 계재하였다. 그때부터 이 이름은 더욱더 중요하게 되어 그의 자녀들에게 깊은 뜻을 갖게 되었다. 1931년에 오-하이오우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 이름은 수만명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로 말미암아 영접되어 그때부터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이후로 이 백성들은 거륵한 이름에 대한 믿음과 충성과 핍박과 충절(忠節)과 사랑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가진 시련 밑에서도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높여 오늘날 수십만의 선의자들이 그 이름에 의지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이 이름은 적들에게 큰 공포를 주게되었다. 이 이름을 높임으로서 가진 비난과 고통이 따라 왔으나 또한 기쁨과 화평도 풍부하게 되었다. 여호와를 높이는 자들 그는 높인다.
8. 거짓 종교가들은 여호와의 이름과 참된 종교에 대하여 어떠한 대로를 취하였는가?
8 1914년을 앞선 40년과 그후 40년간에 거짓 종교가들로 하여금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가진 노력을 다하여 왔으나 그들은 거만하게 당신들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오지마시요! 우리는 당신네가 우리에게 전도하는 것을 원치도 않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듣고도 싶지않읍니다』 하였다. 코가 세고 목이 굳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하였으며 그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멸시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더 나아가 그 이름을 성경에서 없애버리기 까지 하였다. 그들 자신이 볼것을 원하지 않음은 물론 남이 보는것까지 방해하고 있다. 사실상 그들은 그 이름을 영원히 도말할 것을 노리고 있다. 그들이 택한 이러한 태도는 고약하고도 경건치 못하며 그들이 누구의 종인가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로 그들은 진실한 종교인이 아니며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이사야 30:11
9. 사람들은 여호와의 편인가 사탄의 편인가를 결정하여야 하는가? 그 이유는?
9 여호와의 이름을 말살시키려는 자들을 벌할 날은 가까웠으며 무서운 열망이 임박하였다. 참된 종교의 복음을 듣고 우상을 물리치고 여호와를 영접하는 자들은 모다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다. 거짓 선지자들은 말하기를 그런 일은 발생되지 않을 것이며 아마겟돈도 부러울것 없다고 한다. 그들은 『평화다 평화다』 하고 부르짖으나 평화는 없다. 그렇다. 그들은 겉으로 매끈한 말을 하고있으나 그들의 거짓말과 기만도 진리를 변경시킬 수 없다.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 혹은 사탄을 섬길가를 결정하여야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있으며 그의 조직 내에서 경배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와 사도들이 가르친 진리는 회복되었으며 그리스도 전에 살던 여호와외 충성된 종들을 통하여 맺어진 약속을 오늘날 충성된 자들도 믿고있다.
왕의 궁전이 재건되며 축복은 내리다
10. 여호와와 자칭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어떻게 수축할수 없는 파괴가 생기게 되었는가?
10 그리스도 교국에 있는 사람들은 천적 영광에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충성스럽지 못하며 패역한 백성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며 여호와라는 이름 부르기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그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멸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인정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자로 판결받고 있다. 벌써 30년 이상이나 그들은 여호와의 은혜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가져온 파괴는 수리할수 없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수백만인 중에서 극 소수만이 충성을 지켜 거륵한 봉사에 참예할 특권을 받게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돌렸으며 완전한 수효가 찰때까지 수천 수만이라는 사람이 초대를 받아 들어오게 되었다. 사탄은 공포와 핍박과 불충성스러운 자들을 통하여 『남은 자들』을 파괴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완전히 실패되고 말았다. 1917년부터 1919년까지 조그마한 간격이 생겼으나 1922년에 완전히 회복되었다.
11. 사탄과 거짓 종교는 왜 참된 종교를 다시 파괴시킬수 없는가?
11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신세계의 왕으로 영광중에 돌아오셨다. 지금은 세상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위대한 건물을 세울 때이다. 왜냐하면 하늘에 왕의 집이 세우게 되었으며 천년 통치를 위한 기초가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신세계의 모든 일을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종들이 운행할터인즉 거짓 종교가 그자리를 다시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기록된바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라 하였다. (시편 102:13-18) 1918년에 천적 시온이 건설된 이후로 그 왕의 집의 남은자만이 약간 지상에 있게 되었다. 위대하신 건축자 그리스도 예수께서 큰 권능으로 그와 연합하여 죽은 자들을 무덤으로부터 이르키사 천적 후사로 하늘에 올리워 여호와의 영원한 집을 이루어가고 있다.—요한 6:53, 54.
12, 13. (ㄱ)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데서 오는가? (ㄴ) 여호와께서 두 반렬을 동시에 부르시지 않는다는 것이 왜 합리적인가?
12 왕의 집은 모든 백성을 위한 성소(聖所)이다. 기타 모든 건물은 거짓 종교를 대표하고 있다. 거짓 종교는 문자 그대로의 건물과 전설 의식(儀式) 숭배의 형식이나 내려오는 습관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여호와의 이름과 여호와의 백성을 미워하고 있다. 그러한 자들은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할 터이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왕의 집이 건설되고 있는 오늘날 왕의 집에 『택함을 받은』 남은 자들 외에 다른 반렬(班列) 사람들을 열방중에서 모으시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수 있다. 다른 반렬에 속한 자들은 여호와의 옳은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양들인 것이다. 그는 동시에 두 반렬을 모아 놓고 각각 자기 원대로 반렬을 택하게 하시지 않는다. 여호와는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의 반렬에 대한 초대가 마치는 대로 다른 반렬에 대한 초대가 시작된다.
13 이러한 것이 조금도 이상치 않다는 것은 이와 비슷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여호와로 말미암아 행하여졌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늘의 왕국은 가깝다』고 전도하기 시작하셨을 때 침례 요한은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 나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였다.—요한 3:29, 30
14. 계시록 7:4-14는 이것을 어떻게 지지하여 주는가?
14 이 말일에 있어서도 그와 같다. 그리스도와 연합할 일반적 초대는 끝나고 다른 반렬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매우 큰 무리다. 기록된바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하였다. (계시록 7:4-14) 『이 일후에 내가 보니』 라는 말을 잘 생각해 보라. 이것은 『택한』자를 모으신 후에 다른 반렬이 나타난 것을 의미한 것이 분명하다.
15. 『보좌 앞에 서있는』 자들은 누구며 이 반렬은 언제 공적으로 처음 알려졌는가?
15 왕의 궁전이 건축되어 가며 참다운 종교가 회복되어 큰 무리가 숭배할수 있도록 되므로 이 모든 일은 이루어졌다. 보좌 앞에 서있는 자들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불시(不時)의 일이 아니다. 지상에 있는 어떠한 인간에게든지 올수있는 실제적으로 큰 영광이며 특권인 것이다. 1935년까지 여호와의 백성들은 『큰 무리』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 반렬을 세계적으로 초대하신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공개(公開)되어 문은 널리 열려졌다. 이러한 중대한 계시를 특별히 공개하게된 일은 북미 와싱톤 주에서 열린 여호와의 백성의 대회에서 이러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한가지 준비하신 것이 있었다. 1935년 5월 1일 『파수대』 (영문)는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남은 자들과 요나답 (다른 양)의 많은 사람들이 마침 이 대회에 참석할것을 원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요나답은 대회에 참석할 특권이 없었으나 와싱톤 대회는 그들에게 참다운 위안과 은혜가 되었을 것이다.』 (130면) 수만이라는 사람들이 와신톤에 나가게 되었을 때에 나라 가운데서 지적(地的) 소망을 둔 사람들을 모으신다는 이러한 커다란 진리를 여호와께서 보이시리라는 것을 짐작한 사람은 거이 없었다. 이 대회에서 발표된 중요한 복음은 『큰 무리』에 관한 것이며 계시록 7:9, 13이 상세히 설명되었던 것이다. 1935년 8월 1일과 15일호 (영문)는 이 반렬에 속한 자들이 누구인가를 명시하였다. 기름받은 자와 연합하여 나아오는 이 많은 선의자들은 미분명한 백성들이 아니며 하나의 목적밑에 초대를 받아 눈에 보이는 조직내에서 뚜렸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비로서 명백히 알게 되었다.
16. 이 두 반렬이 함께 조화로운 가운데서 숭배하며 섬길수 있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16 이것이 발표된 이후로 신권조직 내에 있는 각자는 자기가 천적 왕의 집에 불리움을 받은 『남은자』의 한 사람인가 혹은 보좌 앞에 서있는 땅에 소망을 가진 자로서 불리움을 받은 사람인 가를 알게 되었다. 참다운 종교는 두 반렬을 올바른 자리에 두어 두 반렬이 다 같이 신세계의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1935년부터 지상에 남아있는 하늘 반렬은 그 수효가 점점 줄어 지금은 몇만명에 지나지 않으나 땅에 소망을 둔 반렬은 점점 증가되어 지금은 수십만이라는 『큰 무리』가 되어 지상에서 받을 생명을 고대하고 있다. 이처럼 증가되고 있는 수십만이란 사람들은 비둘기가 복음자리로 돌아오듯이 시온으로 모이고있다.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것이라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복음자리로 날아 오는 것 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이사야 60:4, 8.
17. 수십만명이 주의 조직으로 오는 이유를 말하라
17 선지자는 그들을 데리고 오게될 배에 관하여 말하였다.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9) 여호와는 목표가 되시며 돌아오는 자들은 모다 여호와의 봉사에 몸을 바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가진 아름다운것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먼 곳으로부터 싣고 올 큰 배에 관한 예언이 있다. 얼마나 먼 곳으로부터 인가? 『땅 끝』에서 부터이다. 잘못된 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모독을 가져오는 자칭 그리스도인으로부터 그들은 참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고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돌아 올때는 지금이며 또한 그들은 과연 돌아오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불리움을 받는 것은 천적 도성(都城)의 화목에 관한 복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땅을 계승할 자로 불리움을 받고있다. 참된 종교의 회복과 왕의 궁전의 재건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가능하게 되었다.
그처럼 축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18. 지금 지적 반렬을 모은다는 사실은 그 사업의 중요성을 덜고 있는가?
18 참된 종교는 완전히 또한 영원히 회복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이며 참된 종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도 그 이름인 것이다. 그의 사업은 그의 이름에 집중되어 있다. 여호와의 목적은 그의 이름을 온 땅에 알리는 것이며 오늘날 이러한 백성을 만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사업을 위한 것이다. 여호와의 목적은 아마겟돈 후에 지상에 사람들을 두시는 것이며 그 백성들이 세계 각지에 정주하는 것이다. 이 백성들은 지금 모이고 있으며 그들은 아마겟돈 후에 오는 사회의 중심이 될것이다. 그들은 왕국의 지적 백성들의 선구자(先驅者)로서 천년간 의로운 길을 걸을 것이다. 그처럼 축북받은 큰 무리에 속한 자들은 이것을 명심할 것이다. 즉 다른 양들을 이처럼 모으는 것은 아마겟돈 전에 계획된 행사의 마지막 일이나 이 일은 마지막때에 갑작이 생각해 낸것이 아니다. 마지막 행사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는 수가 많으며 대개 놀라운 끝맺이를 하는 법이다. 그러한 축복에 참예하게된 자는 거짓 종교를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조직 내에서 축복받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참다운 종교에 든든히 뿌리를 박아야 할 것이다.
19. 실제적 사실을 보아 여호와께서 거대한 성업을 이지적 반렬에 시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있는가?
19 이 사람들을 초대한 이유가 또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들로 하여금 아마겟돈 전에 큰 일을 수행시키기 위함이다. 그 사업은 물론 여호와께서 기름받은 충성스러운 자들을 통하여 행하시나 기름받은 자로서만은 수행할수 없다. 사실상 세계적인 이 성업은 대부분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수행되고 있다. 기름받은 남은 자의 수효는 2만명으로 줄었는데 큰 무리의 수효는 약 50만으로 늘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기름받은 자와 함께 큰 무리를 위하여 목적하신 성업을 그들로 수행할것을 원하심으로 이 큰 무리를 초대하신 것은 그들로 봉사시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여호와께서는 이 힘찬 성업을 행할 것을 수천년 전에 말씀하셨으며 오늘날 이 일을 행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모으시고계시다.
20. 여호와께서 지상에서 축복을 받을 자들에게 지금 은혜를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말하라
20 여호와께서 『큰 무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희들이 의를 사모하며 거짓 종교의 가증한 것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저희들은 경건치 못한 자와 비웃는 자와 좋은 것을 멸시하는 자들의 동류(同類)가 아니다. 그들은 이 세상악을 한탄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옛날 롯처럼 그들은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여호와께서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어떻게 건지심을 아시니라.』 (베드로후 2:7-9, 신세) 여호와께서 저희들을 구원할 것인즉 저희들은 참된 종교에 꼭 붙어 결코 떨어져서는 않될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나니라.』—베드로전 3:10-12, 신세.
21. 『왕의 형세를』에게 친절을 표시한 자들에게 대한 상은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21 여호와께서 이 축복받은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희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의 형제들에게 선의(善意)를 표시하기 때문이다. 기록된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느니라 … 그때에 임금(예수)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하라.』 (마태 25:34-36, 신세) 여호와께서 끝날에 이 축복받을 자들을 부르심은 그들이 행해야할 특별한 사업이 있는 것과 천년 통치에 앞서 행할 준비적 봉사가 있기 때문이다.
22, 23. 과부 사르밧이 이 반렬을 어떻게 전영하였는가를 설명하라
22 시돈 지방에 살던 가난한 과부 사르밧의 기록은 우리에게 빛나는 본을 보여주고있다. 그때 엘리야는 광야에서 살고 있었는데 시돈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그 곳은 바로 악한 이세벨의 고향이요. 마교(魔敎)가 성한 곳이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보내신 곳은 그 곳이였다. 그 과부와 아들은 마지막 식사꺼리 밖에 없었다. 그때 엘리야는 과부에게 물을 청하였다. 그 과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엘리야의 명을 따르게 되었다. 그 과부는 이 낯설은 엘리야에게 자기가 얼마나 곤궁하다는 것과 그것이 마지막 식사꺼리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요청하여 자기를 위하여 빵을 구어 자기에게 먼저 가져올것을 말하였다.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왕상 17:8-16) 그 과부는 엘리야의 말을 믿고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께 모독을 주는 이방인의 성읍에서 그 여인은 얼마나 복된 보배였던가!
23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이 과부에게 보내셨다.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왕상 17:9) 그 여자는 마지막 식사꺼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마른 엘리야에게 물을 주었으며 배고픈 그에게 음식을 주었었다. 그때 그 여자는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던가! 그 여자의 기름과 밀가루는 늘어갔으며 사용하여도 줄지 않었다. 그뿐 아니라 죽은 그의 아들도 살아나게 되었다. 단 하나의 식사로 인하여 그 여자는 이 모든 축복을 얻을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까지 알게 되었다. 오늘날 주의 다른 양의 경우도 그와 같다. 수효는 적으나 주 예수이 형제들에게 다른 양은 친절을 보이고 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 또 누구던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 10:41, 42) 여호와의 백성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이 내리고 있는가? 참된 종교는 그러한 사랑의 근원이 된다.
거처(居處)의 확장(擴張)
24, 25. 신세계 사회는 지금 어떻게 확장되며 그 열매는 어떻게 늘어가고 있는가?
24 신세계 사회의 경계를 확장시켜야 한다. 모든 것이 튼튼하게 여호와의 의에 일치되어야한다. 그 성원(成員)이 날로 늘어감으로 발생되는 짐과 압력을 받들만한 힘을 그 조직은 구비해야 할것이다. 거짓 종교에서 가주 나온 사람들은 잘못된 견해와 부패성을 가진채 들어오는 수도 있다. 신세계 사회는 이러한 것에 대항하리 만한 방비가 충분히 되어있어야 한다. 이 조직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거짓 종교와 잘못된 생각과 악한 행실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올수 없다. 그처럼 더럽고 냄새 나는 옷을 활짝 벗어버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들의 신분을 밝히는 깨끗한 옷이 부여되는 것이다. 사로잡혓던 사람들이 이처럼 돌아오는 것을 우리는 한 사람도 방해하여서는 안된다. 그들을 받아드릴수 있는 자리를 넓히며 그들을 활동하도록 만드는데 반대하여서도 안된다. 먼 지방으로부터 돌아오는 이러한 자녀들을 받아드리라 장차 더 많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오랜 기간 적어도 일천년 동안 하나님의 봉사에 참예할 것이다. 그러므로 회복된 남은자들은 『안전한 처소』로 돌아오는 자들을 영접하고 있다.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전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威嚴)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이사야 33:20, 21) 그것은 영원한 장막이며 적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성읍은 재건되며 사막에는 꽃이 필것이다. 성읍들은 의로운 사람의 회중이 되어 여호와께 찬미를 드리기 위하여 건설될 것이다. 사막은 메마른 곳임으로 물을 주기 위하여 진리의 전도가 필요한 곳이다. 그곳은 많은 물이 필요하다. 보라 그처럼 메마른 땅도 물을 얻음으로서 놀라운 증가(增加)를 보게 되지 않었는가! 지난 수십년 전에 참다운 종교가 없었던 나라들을 살펴보라. 과거 십여년 동안 선교인들과 기타 사람들이 그러한 곳에서 활동한 결과 오늘날 그러한 나라에서는 번영하는 성읍들 (회중들)이 백합화같이 피어있는 사막과 의로운 열매를 내는 포도 심은 나무가 올바로 자라는 것을 볼수 있다.
25 참다운 종교는 회복되어 그 사업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나그네도 그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을 것이라.』 (시편 1:2, 3, 미표)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잠언 11:30) 『그들은 오래 황폐되었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이사야 61:4) 기름받은 남은자들과 『큰무리』로 말미암아 오늘날 얼마나 훌륭한 사업이 수행되고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다만 재건 계획의 시초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세계의 건축사업은 일천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26. 오늘날 무너진데를 수보하며 길을 수축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또한 어떻게 수축 하였는가?
26 주 예수께서는 충성스러운 기름받은 자들을 시켜 크게 황폐된 것을 고치셨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고난과 싸워가며 참된 종교는 회복되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이 높임을 받게 되었다. 대로(大路)는 넓게 수축되어 큰바빌론에서 나온 사람들이 걷기에 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너를 일컬어 무너진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하는 자라 하리라.』 여호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될때 참다운 종교가 나오게 된다. 참다운 종교는 그 두 분을 높이며 믿음 가운데서 마음 속으로부터 나오는 기쁨으로 완전한 순종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한다. 그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소망을 가질것이며 그 생명의 소망은 여호와와 그의 아들에게 튼튼히 연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종교에 참예하여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일을 행하도록 도와주라. 그리하여 영원한 축복을 얻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