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기억의 책』
1. 각자는 무엇을 근거로 결국 심판을 받게될 것인가? 이것은 어떠한 질문을 초래하는가?
여호와는 완전한 본이 되신다. 사탄은 악과 죄의 창시자의 본이라는 날인(捺印)이 찍혀있다. 벌서 시작된 심판기에 있어 각자의 생활의 본은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반드시 심판받게 되어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를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축복을 상속받기에 합방하던지 혹은 『둘째 사망을 의미하는 불과 유황의 불붙는 못』에 던지우게될 사람들 중에 들게 될 것이다. (계시록 21:7, 8, 신세) 어떠한 종류의 본을 당신은 만들고 있는가? 인간의 생활의 본을 변화할수 없는가? 만일 가능하다면 당신은 여호와께 인정받을 생활의 본을 만드는데 있어 어떻게 도움을 받을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충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2. 오늘날이 심판기라는 것을 말라기 예언은 어떻게 알려주고 있는가?
2 말라기 예언의 3장에는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실때 심판이 시작된다고 알리고있다. 또한 주를 진심으로 찾으며 『의로운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고저 원하는 자들을 모다 정결케하며 완전한 본으로 회복시킬 것을 예언하셨다. 또한 그와 동시에 말라기 당시에 레위 자손들로 구성된 제사장들의 대부분이 부패된 본을 좇음과 같은 것을 행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속히 증거하리라』고 하셨다. (말라기 3:1, 3, 5) 다른 성경구절과 연결하여 이 파수대를 통하여 여러번 발표한 바와 같이 주후 1918년 봄에 주께서 성전에 임하신 성취를 보게 되었다. 1914년 후기에 왕국이 탄생되어 3년반 후에 성전에 임하시게 되었다. (참조 영문 파수대 1953년 5월 1일호 281면 여호와께 가르침을 받음) 그런고로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정직한 마음으로 긴급히 살펴볼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3. 생활의 본의 질문에 대하여 말라기 예언의 어떠한 부분이 빛을 던져 주는가?
3 말라기 예언의 대부분은 그 처음에 나오는 말과 같이 『경고』인 것이나 또한 예리한 위안의 말이 있다. 매우 간단한 부분이나마 빛나는 희망과 약속을 선명하게 나타낸 곳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큰 위안과 용기를 준다. 이 두가지 본이 나타날 때를 명백히 알리고 있는바 그중의 한가지에 우리의 주의를 돌려보고저 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억(記憶)의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라기 3:16-18.
4. 여호와의 『기억의 책』이 인용됨에 우리는 어떠한 의문이 생기는가?
4 이 구절 가운데 여호와의 『기억의 책』이 인용되었는데 우리는 이책에 대하여 여러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어떠한 책일까? 그것은 다만 비유의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기억하시기 위한 비망록(備忘錄)인가? 그 책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속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은 계시록 3:5와 기타 장소에 기록된 『생명록』과 같은 책인가?
5, 6. (ㄱ) 성경에 기록된 표현을 연구할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것은 무엇인가? (ㄴ) 우리는 말라기 3:16에 있는 말과 비슷한 것을 어데서 볼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어떠한 도움을 얻게 되는가?
5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다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발견된것 만으로서 대답 할수있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령계(靈界)의 것을 말하실 때는 항상 제한된 인간의 마음으로 파악할수 있도록 예를들어 설명하시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나친 호기심으로 기록된 문자(文字)와 사용된 예증(例證)을 표현하려고 하는 중대한 생각이나 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될것이다. 예컨대 예수께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라고 문자 고대로 하신 실제적 말에 대하여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토론하고있는가? (마태 10:30) 먼저 말한바와 같이 여호와의 기억에 있어 실패되신다던가 기억해내시기 위하여 어떠한 비망록 같은 것이 필요하실리 만무하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예를 에스더 6:1-3에서 발견함으로 얼마정도 짐작할수 있다. 거기 기록된 것은 이러하다. 어느날 밤에 왕은 잠이 들지 않으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자기 앞에서 읽히었는데 그때 왕은 묻기를 모르드개가 전에 왕을 위하여 충성스러운 일을 행한데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였다. 그러므로 이 기록된 역대는 『기억의 책』의 역할을 하게되며 이로 말미암아 모르드개는 왕 앞에 은혜를 입어 충성된 종으로 적절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6 말라기 3:16-18에 있는 기록도 이와 매우 비슷하며 여호와께 진실되고 충성을 다한 종들이 심판날에 있어서 그의 은혜와 상에 관하여 확실한 보장을 얻을수 있다는 것을 표시하고 있다. (시편 62:12; 계시록 22:12) 그 심판 때에 그러한 종들 중 하나도 놓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 심판 때는 바로 지금이며 『나의 특별한 소유(혹은 보물=난외주)를 삼는 날에』 그에게 속한 자를 결정하고 계신다.—말라기 3:17, 흠정역.
선한 생활의 본과 악한 생활의 본
7, 8. 여호와께서 완전한 본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가? 이에 관하여 아담과 해와는 어떻게 말할수 있는가?
7 지금부터 생활의 본에 관하여 성경에 나타난 것을 살펴 올라가 보기로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먼저 제시한 의문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해답을 얻게될 것이다.
8 여호와께서 완전한 본이 된다는 것은 타당하며 그것은 모세의 노래로도 알수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의 활동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신명기 32:4, 신세) 『그의 활동이 완전하고』라는 말 가운데도 우리 인간의 처음 조상인 아담과 해와의 창조도 포함되었으며 그것은 곧 그들이 완전한 생활의 본을 가지고 출발하였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 의사(意思)를 사용하여 그들의 완전한 본을 저질렀으며 기뻐 헌신하는 마음으로 절대적으로 복종하여 그들의 창조주께 영광을 드리지 아니하고 그들은 이기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하나님의 계명에 거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함으로서 그들의 눈이 열리며 절대적 자유를 얻으리라고 생각하고 그일을 감행한 것이였다.
9. 가인과 아벨 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었으며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는가?
9 다음에는 아담과 해와의 자손인 가인과 아벨에 대하여 잠간 생각해보자 그 두사람의 생활의 본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둘다 같은 부모에게 출생되어 같은 부모의 지도 밑에 자라났다. 가인은 요한이 말한바와같이 『악한자(사탄)에게 속하여』 악한 행위의 본을 따를 것을 택하였다. 가인은 질투와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마땅히 비극으로 마치게 되었으며 곧 살인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벨은 믿음을 택하였으며 그 믿음을 의로운 행동으로 나타내었으므로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기록 가운데 첫째로 적히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우리의 생활의 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부모에게나 기타 어떠한 사람에게도 전가(轉嫁)시킬수 없으며 구실을 부칠수도 없는 것이다.—요한 1서 3:12; 히브리 11:4; 출애굽 32:32.
10. 성경은 인간의 생활의 본의 변화를 가져올수 있다고 하였는가?
10 창세기 끝에 가서 이 문제에 대하여 한가지 관점이 표시되었는데 그것은 마음에 변화를 가져올수 있으며 그 결과 생활의 본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요셉의 형제들에 관한 일이다. 그들은 처음에 질투와 악의(惡意)를 가지고 있었으며 무정하며 배신적이였으나 후에 매우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에도 벤야민을 위하여 변호해 주리만큼 되었던 것이다. 유다는 우리의 마음을 깊이 진동시킬만한 탄원의 말을 하였다. 우리는 마음의 변화에 있어 이 이상 더 확실한 증거를 얻어볼수 없을 것이다. (창세기 44:16-34)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써보냈다. 『너희는 …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 4:22-24) 그러므로 생활의 본의 변화를 가져올수 있으며 이 낡은 조직제도의 부패 속에서 피하여 신세계 사회에 참예하고저 하는 사람은 누구던지 이 생활의 본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1. 모세가 여호와의 책을 말한것이 왜 타당한가?
11 성경의 둘째 권인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책』이라는 말을 처음 보게된다. (출애굽 32:32, 33) 모세는 그것을 확실한 사실로 말하였으며 여호와께서도 그것을 반대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확증하신다. 모세가 그 말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데 대한 확실한 말은 없으나 두가지 이유가 있으며 놀랄 필요가 없게되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아벨로부터 믿음 가운데 죽은 사람들은 모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각각 그의 기억 가운데 남겨 두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을 인간의 말로 한다면 어떠한 책 속에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여 영원히 보존하여 두신다는 것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둘째로는 그것이 홍수전에 기록하는 방법이 있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되며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의 기억에 대하여 믿고 있는 표현을 그때까지 저술되어 보존된 책에다 빗대어 말하였다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결정적으로 기억해 두시는 동시에 일부러 잊어버릴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암시한바 있는데 이에 대한 확증으로서 그의 자신의 말씀을 인용해보자.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도말하리라.』—출애굽기 32:33.
12. 『어린양의 생명의 책』을 말하는것이 어떻게 합당한가?
12 그러므로 여호와께 인정받으며 여호와 앞에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책에 관하여 출애굽기로 부터 계시록 까지 이르는 동안에 수개소 발견할수 있다. 다만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을 때 부터 우리는 『어린양의 생명책』을 합당하게 읽을수 있다.—요한복음 5:22; 계시록 21:27.
13. 다윗에 관한 기록 중에서 그와 하나님 사이에 뚜렷이 나타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3 『다음은 다윗에 관한 것이다. 비평가들은 다윗을 비웃으며 그는 생활의 본으로서는 너무나 결점이 많다고 지적하는 일이 있다. 물론 다윗에게도 결점은 있었으며 때로는 중대한 범죄를 행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것을 비난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참다운 숭배를 드렸으며 하나님의 봉사에 헌신하였다. 다윗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이루게 하리라.』 (사도 13:22) 다윗의 잘못에 대하여 성경은 조금도 감추지 않고 고대로 솔직히 기록하였는데 거기 또한 매우 중대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바 그것은 그의 종에 대한 하나님의 커다란 긍휼이다. 비평가들이 많은 긍휼을 느끼게 될때에는 이미 때가 늦을 것이다. 그러한 일이 있기 전에 다윗의 비평가들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명심함이 어떨까 한다. 사실상 긍휼이 우리에게 대한 심판을 얼마나 완화시켜 주시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것이며 또한 성경에 뚜렷히 나타나 있으므로 특별한 주의들 기우려야 할 것이다.
긍휼로서 심판이 완화됨
14. 말라기 3:17, 18은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에 관하여 무엇을 알려 주는가?
14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말라기 3:17) 얼마나 훌륭한 조건인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만 아들이라는 이유로서 아끼지 않으신다. 언제나 섬기는 것으로 아들이라는 증거가 나타나야 할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언은 계속하여 더 명백히 하여주며 여호와께서는 심판기인 오늘날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많은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일찌라도) 악하게 심판되어 그의 책에서 도말될 자들을 얼마나 뚜렷이 분별하시는 가를 명시하여 주신다. 단순하고도 엄한 시험인 것을 살펴보라. 『그때에 너희가 …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라기 3:18.
15. 시편 103편은 어떻게 여호와의 긍휼과 그의 기억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15 그러면 그의 봉사에 충실한 아들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아끼시는가? 우리는 시편 103편을 열어 하나님의 긍휼과 그의 기억과의 긴밀한 관계를 살펴보자. 처음 2절에는 우리 자신이 기억할것을 말하여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하였다. 다음에 8절로 부터 여호와의 뜨거운 긍휼과 인자하심을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는 사실로 입증하였다. (시편 103:12; 이사야 12:1을 보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진실로 용서하여 주시며 진실로 잊어버리신다는 의미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아들을 아낀다고 말라기는 말하였는데 그와 아주 비슷한 것을 시편은 말하고 있으며 여호와께서 항상 다음과 같은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인간의 생명은 짧고 곧 죽어 버리나 그와 큰 대조가 되는것은 여호와의 긍휼과 자비다. 그것은 『영원부터 영원까지』며 말라기가 말하고 있는 조건을 지키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 즉 그러한 자라 함은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편 103:13, 14, 17, 18.
16. 어떠한 문제가 더 발생되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볼것인가?
16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그것은 어떠한 악습이 있어 자기가 느끼고 있는 이상으로 이전 생활의 본이 우리 마음 가운데 깊이 뿌리 박혀 여러번 실족(失足)하여 넘어갈 때가 생기는 문제다. 그때 우리는 낙심한 나머지 그 이상 더 귀중한 왕국봉사에 참예하기에 합당치 못하며 진리의 순결한 복음을 전하기에 합당하지 못한자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불행한 생태에 처해 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때 당신은 실망해서는 안된다. 결코 용서받을수 없는 범죄를 하였다고 결론을 내리지 말라. 만일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탄이가 원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일에 대하여 몹시 괴로워한다는 사실은 당신이 아직 절망상태에 있지 않다는 증거다. 겸손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일을 그치지 말라. 그리하여 그의 사죄함과 도움을 구하라 같은 연약한 일로 말미암아 여러번 중복될 때에도 마치 어려울때 아이가 아버지에게 가듯이 당신도 여호와께 나아가 간구하라. 그러면 자비로우신 여호와께서는 불쌍한 마음으로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만일 그때 당신이 진실한 마음으로 간구한다면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양심이 깨끗하여 진것을 알게할 것이다. 문제는 즉 여호와께서 우리가 전적으로 거룩하게된 길을 꾸준히 걷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요구가 무엇인가를 알게하기 위하여 어떻게 도와 주시는가 하는 문제다.
몸을바치는것과 헌신(献身)
17.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시킬때 몸을 바치는것과 헌신은 어떠한 뜻이 있으며 어떠한 구별이 있는가?
17 『몸을바치는것』과 『봉헌』이란 두개의 말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가끔 동의어(同意語)로 사용된다. 그러나 성경상으로 볼때 구별을 지을수 있다. 그 구별은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것을 도와줄 것이다. 몸을 바치는것이란 말은 마음과 관계가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말한다면 열렬한 사랑과 강한 애착과 열의있는 충성을 여호와께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반면에 헌신이란 말은 더 예리(銳利)한 말이며 의지력을 가지고 사물을 결심 결정하여 행하는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미 규정한바와 같이 우리 자신을 여호와께 헌신한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거룩한 생활 가운데 두며 세속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며 또한 더럽힐수 없으며 순결하고 더럽히지 않는 종교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참조 1952년 5월 15일 파수대 영문)
18, 19. (ㄱ) 예수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그 구별은 어떠한가? (ㄴ) 그리스도인의 남편과 아내를 생각해 볼때 그 구별은 어떠한가?
18 우리는 예수의 완전한 본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때 그의 완전한 마음을 천적 아버지께 헌신하였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 헌신은 어렸을때 부터 였다. 그러나 집에서 살때에 그는 결심 또는 결정을 하여야할 특별한 문제에 부딪히지 않었던 것이다. 그는 완전하였으므로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며』 그의 생활의 본을 만들어 간것은 쉬웠으며 또한 당연하였다고 볼수 있다. (누가 2:52) 그러나 30세가 가까워 가매 그는 그의 아버지께서 전혀 다른 생활의 본을 그에게 원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시편 40:6-8을 인용하여 히브리 10:5-7에 이것을 분명히 말하였다. 이 성경 구절로 볼때 예수께서는 자기 뜻이 완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형편과 그와 관련된 것들을 충분히 인식한 후에 자기 뜻을 버릴것을 결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대신에 그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것을 수행(遂行)할 것을 결심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기로한 결심 혹은 결정한다는 것이 헌신인 것이다. 그는 다만 부득이 의무상 억제감에 못이겨 행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을 행하기를 즐기오니』 하였다. (시편 40:8) 바꾸어 말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헌신하였다는 것이다. 예수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아버지께서 그를 위하여 매우 단것과 매우 쓴것이 들어있는 잔을 준비하고 계신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기뻐 마시지 아니 하겠느냐』 하셨다.—요한복음 18:11.
19 에베소 5:21-33에 기록된 남편과 아내에 대한 설명을 보자 그리스도인의 남편은 아내에게 몸을 바쳐 아내를 마음 속으로 사랑한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아내도 자기를 남편에게 바치고 있으나 아내에게는 또하나의 것이 요구되어 있다. 아내된 자는 자기가 결혼할때 『회중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범사에』 있어 남편을 머리로서 복종할 것을 결심하여야 한다. (에베소 5:24, 신세) 그러므로 부부생활에 관하여서는 그리스도인의 아내는 몸을 바칠뿐 아니라 헌신까지도 포함된 것이다. 아내된 자는 남편을 마음 속으로 사랑할뿐 아니라 그를 머리로서 깊이 존경하여야 한다. 물론 매일 결혼때의 서약을 이행하여 남편에게 시종한다는 것은 때로 어려운 일이나 그리스도인의 아내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며 그를 으뜸으로서 기뻐 존경할 것이다.
20. 말라기의 예언은 우리가 여호와께 바칠 중대한 의무를 어떻게 강조하고 있는가?
20 충심으로 몸을 바쳐 헌신의 생활을 하는데 관하여 배워온 이 모든 교훈은 여호와께 인정받을수 있는 중요한 요구 조건을 잘 요약(要約)해 주지 않었는가? 그의 옳은 도를 지키는 것은 그의 『기억의 책』에 기록되는 보증을 받게되는 것이다. 언제나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그의 이름을 생각하라 어떻게 하면 그의 이름을 더 높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한 중대한 소식을 말하며 서로 힘을 주며 도와 줄수 있는가를 생각하라.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드리』도록 힘쓰라. 우리가 바칠수있는 귀한 소유물인 시간과 노력과 능력을 아끼지 않고 바치라.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16.
시온에 반영된 생활의 본
21.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하나의 일치조화된 조직체로 결합시키셨는가?
21 어떠한 소년이 깨어진 거울 한조각을 손에 들고 겨눌 때 그 광선이 당신 눈에 들어온 것을 경험한 일이 없는가? 마치 태양의 한조각이 소년의 손에 있는것 같다. 그렇다. 지금 설명한 것으로 자기 입장을 좀 연상해 볼수 있다. 자기는 지금 인간에서 떨어져 나온 한조각의 유리 조각과 같이 진리를 조금 반영시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개인적 면으로 볼때 그 비유의 말은 타당하다고 볼수 있다. 또한 깨어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또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이것이 심판기에 있는 여호와의 백성의 정확한 관점(觀點)이다. 그렇다. 여호와께서는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가 보라 여호와께서는 이 모든 조각을 모아 깨끗하고 수정과 같이 투명하고도 매끈하게 연결시켰다. 그리하여 이 연결된 조각들은 충실히 『여호와의 영광을 거울과 같이 반영』 할수 있게 되었다. (고린도 후 3:18, 신세) 이 일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것은 여호와께서 헌신한 백성들을 그의 조직인 시온에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다. 시온에 있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령이 임하였으며 그의 말씀(왕국 복음)을 그들 입에 두었으므로 그들은 하나의 결합된 백성으로 힘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조화된 본으로 굳게 연결되었다. 또한 그들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말씀에 응답하였다. 그와 동시에 여호와의 『기억의 책』이 그의 조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게된바 이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錄名)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이사야 60:1; 4:3.
22. 오늘날 우리가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할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
22 우리의 연구는 얼마나 행복된 끝을 맺게 되었는가! 이 세상에 가장 찬란한 행복의 추억도 대개는 슬픔이 따라오는 법이다. 또한 젊었을때 즐긴 행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한번 여호와의 조직에 인도되어 신세계 사회의 한사람이 된 특권을 얻고 보면 우리의 관점은 일변(一變)해 버린다. 현재에 있어서도 시온에서 신세계 활동은 우리에게 끊임 없는 만족을 가져오며 그 영광스러운 예언의 성취(成就)를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우리의 생활은 행복과 기쁨에 충만하게 되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을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찌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니라.』—이사야 65: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