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월 1일 월요일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한 15:5.
예수와 친한 친구가 되어야만 그분의 대속 희생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5:13) 예수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충실한 사람들은 앞으로 그분에 관해 배우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의로운 종들은 부활될 것이지만,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 17:3; 사도 24:15; 히브리 11:8-12, 24-26, 31) 우리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예수와 함께 일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땅에 계실 때 가르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도 회중의 머리로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 인도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에 관해 배우도록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그 노력을 눈여겨보시고 소중히 여기십니다. 사실, 이 일을 완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호와와 예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요한 15:4. 「파20.04」 22면 7-8항
8월 2일 화요일
이 두 왕은 ··· 한 식탁에 앉아 서로 거짓말을 할 것이오.—다니엘 11:27.
원래 “북방 왕”과 “남방 왕”이라는 칭호는 문자적인 이스라엘 땅의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 정치 강국들에 주어졌습니다. (다니엘 10:14) 기원 33년 오순절까지 하느님의 백성은 육적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여호와께서는 예수의 충실한 제자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보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따라서 다니엘 11장에 기록된 예언의 대부분은 육적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 2:1-4; 로마 9:6-8; 갈라디아 6:15, 16)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북방 왕과 남방 왕의 실체가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요소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그 왕들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둘째, 그 왕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참하느님 여호와를 미워한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셋째, 그 두 왕은 서로 세력 다툼을 벌였습니다. 「파20.05」 3면 3-4항
8월 3일 수요일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되겠다.—출애굽 3:14.
여호와께서는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되시어 자신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불완전한 인간 종들이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64:8) 여호와께서는 그 두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 무엇도 그분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46:10, 11)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해 오신 일과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들에 관해 묵상함으로 그분에 대한 경외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놀라운 창조 작품에 대해 묵상하면 여호와께서 이루신 일, 즉 그분이 존재하게 하신 것들에 큰 외경심을 느끼게 됩니다. (시 8:3, 4) 그에 더해, 여호와의 뜻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해 주셨는지 묵상하면 그분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생깁니다. 참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은 외경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이름은 우리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그분이 어떤 일을 이루셨고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지를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시 89:7, 8. 「파20.06」 9-10면 6-7항
8월 4일 목요일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십니다.—사도 17:24, 25.
산소는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체입니다. 추산에 따르면, 생물이 1년에 소비하는 산소의 양은 약 1000억 톤에 달합니다. 그러한 생물들은 산소를 들이마신 후 폐기물인 이산화탄소를 내뿜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산소가 바닥나거나 대기가 ‘폐기’ 가스인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큰 나무에서부터 아주 작은 조류에 이르기까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식물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산소의 순환 과정을 보면 오늘의 성구가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지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기를 수 있습니까? (시 115:16) 한 가지 방법은 여호와께서 만드신 것들에 대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에 대해 날마다 그분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 주변을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함으로 지구에 대해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파20.05」 22면 5, 7항
8월 5일 금요일
나라들 가운데서 더럽혀진 나의 큰 이름[을] 내가 틀림없이 거룩하게 하겠다.—에스겔 36:23.
여호와께서는 지혜, 참을성, 공의를 나타내며 사탄의 도전에 대응해 오셨습니다. 또한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전능한 능력을 나타내 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십니다. (요한 1서 4:8) 그처럼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계속 일해 오셨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하느님의 이름을 중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속여 하느님이 능력이 강하고 공의롭고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사탄은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창조주가 아니라고 믿게 만들려고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과 그분의 표준이 너무 엄격하고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심어 주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불타는 지옥에 던지시는 무정하고 잔인한 하느님이라는 가르침을 퍼뜨립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중상을 믿는다면 다음 단계 즉 여호와의 의로운 통치를 배척하는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탄은 멸망되는 순간까지 당신 역시 표적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는 성공할 것입니까? 「파20.06」 5면 13-15항
8월 6일 토요일
거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대인도 없고, 할례도 무할례도 없고, 외국인도 스키타이 사람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골로새 3:11.
많은 회중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애쓰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언어 능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들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아름다운 특성들을 보게 되면 그 형제 자매들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언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하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2:21)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회중에서 우리 각자에게 자리를 주심으로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독신이든 기혼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떤 언어를 잘하든 거의 못하든, 우리는 여호와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로마 12:4, 5; 골로새 3:10) 우리 모두 여호와의 회중에서 언제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파20.08」 31면 20-22항
8월 7일 일요일
몇몇 사람들은 그와 함께하여 신자가 되었다.—사도 17:34.
그리스의 도시 아테네는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과 이교 철학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사도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신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는데도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도 과거에 “신성을 모독하는 자, 박해하는 자, 불손한 자”였지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디모데 전서 1:13) 예수께서 바울의 잠재력을 보신 것처럼 바울도 아테네 사람들의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바울의 확신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9:13-15) 1세기에 온갖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의 도시 고린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 회중의 일부 사람들이 한때 범죄자였거나 매우 부도덕한 생활을 했다고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고린도 전서 6:9-11) 당신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변화하여 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까? 「파20.04」 12면 15-16항
8월 8일 월요일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 이제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열왕기상 19:4.
장로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의 가치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장로들은 그런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들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그들의 필요에 맞게 성경에 근거한 구체적인 격려를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 엘리야는 왕비 이세벨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열왕기상 19:1-3) 그는 자신이 한 일이 모두 헛수고였다고 느꼈고 죽고 싶어 했습니다. (열왕기상 19:10)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엘리야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엘리야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하느님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과 그가 할 일이 아직 많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엘리야가 염려를 표현할 때 잘 들어 주시고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열왕기상 19:11-16, 18)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 특히 장로들은 여호와의 양들을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분한 마음을 품고 있거나 여호와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장로들은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길 잃은 양과 같은 그 사람을 여호와께서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파20.06」 21-22면 13-14항
8월 9일 화요일
진정한 친구는 항상 사랑한다.—잠언 17:17.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친구들과 가족과 즐겁게 교제를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시 133:1) 예수께도 좋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요한 15:15) 성경은 진정한 친구를 갖는 것이 유익하다고 알려 줍니다. (잠언 18:24) 또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잠언 18:1) 많은 사람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면 친구를 많이 사귀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사용할 때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에 올라가 있는 글이나 사진들을 보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사람은 오히려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대개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특별한 순간을 찍은 사진들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친구들이 잘 나온 사진이나 자신이 가 본 멋진 장소를 찍은 사진들만 골라서 올립니다. 그런 사진들을 보는 사람은 그들의 삶에 비해 자신의 삶은 평범하거나 심지어 지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파20.07」 5-6면 12-13항
8월 10일 수요일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함께 모였다.—사도 15:6.
「파수대」 1988년 10월 1일호 영문판에는 이러한 말이 실렸습니다. “장로들은 그리스도께서 장로의 회의 어느 장로이든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분은 성령을 통해 그 장로의 생각을 인도하여 상황에 대처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성경 원칙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사도 15:7-15) 어떤 장로도 장로의 회에서 성령을 독차지하지 못합니다.” 동료 장로들을 존중하는 장로는 장로 모임에서 언제나 가장 먼저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토의 중에 혼자서 말을 독점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하고 겸허하게 의견을 말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이 잘 듣습니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는 생각해 볼 만한 성경 원칙들을 제시하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의 지침을 따르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합니다. (마태 24:45-47) 장로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문제를 논의한다면, 하느님의 성령이 함께하여 장로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인도할 것입니다.—야고보 3:17, 18. 「파20.08」 27면 5-6항
8월 11일 목요일
계속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로마 12:21.
사도 바울의 적들은 바울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바울을 구타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을 마땅히 지원해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회중의 일부 형제 자매들은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나타내기까지 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12:11; 빌립보 3:18) 하지만 바울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모든 사람에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는 반대를 받아도 계속 전파했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실망시켜도 그들에게 계속 충성을 나타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느님께 충실을 유지했습니다. (디모데 후서 4:8) 그가 많은 시련을 이겨 낸 것은 신체적으로 강해서가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도 모욕이나 박해를 받고 있습니까? 우리의 목표는 잘 듣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성경 말씀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용해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우리를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존중심과 친절을 나타내고, 적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한다면 그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마태 5:44; 베드로 전서 3:15-17. 「파20.07」 17-18면 14-15항
8월 12일 금요일
당신의 겸손은 나를 크게 만들어 주십니다.—사무엘하 22:36.
여호와께서는 정말 겸손한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다윗은 오늘의 성구에서 그 점을 인정했습니다. (시 18:35) 아마 다윗은 오래전에 예언자 사무엘이 자신의 아버지의 집을 찾아온 날을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다음 왕에게 기름을 부으러 왔습니다. 다윗은 여덟 아들 중 막내였지만 여호와께서는 사울왕을 대신하도록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1, 10-13) 분명 다윗은 여호와에 대해 이렇게 말한 시편 필자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몸을 굽혀 하늘과 땅을 눈여겨보시고 낮은 자를 흙먼지에서 일으키시며 가난한 자를 ··· 들어 올리시어 ··· 귀인들과 함께 앉히시는 분.” (시 113:6-8) 여호와께서는 불완전한 인간 숭배자들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겸손을 나타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드리는 숭배를 받아들여 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자신의 친구로 여겨 주십니다. (시 25:14)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솔선하여 자신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정말 큰 자비와 동정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파20.08」 8면 1-3항
8월 13일 토요일
여호와께서는 ··· 아무도 멸망되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베드로 후서 3:9.
여호와께서는 이 낡은 세상을 끝내실 날과 시간을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마태 24:36) 그분이 참을성을 잃고 그 시간 전에 행동하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기를 간절히 바라시지만 참을성을 나타내십니다. (욥 14:14, 15) 그분은 그들을 부활시킬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한 5:28)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참을성에 감사해야 할 이유들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참으시기 때문에 우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회개에 이를”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기회를 갖기를 바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참을성에 감사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열심히 찾고 그들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섬기도록 도움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도 13:48) 그러면 그들도 우리처럼 여호와의 참을성으로부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파20.08」 18면 17항
8월 14일 일요일
오 여호와여, 내게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십시오.—시 25:4.
연구생은 성서 연구를 통해 정신에 지식을 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망, 감정, 느낌을 모두 포함하는 우리의 마음은 행동하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는 논리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따른 것은 단지 그러한 지식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24:15, 27, 32) 연구생은 여호와를 실재하시는 분이자 친밀한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는 분으로 느끼고 자신의 아버지, 하느님, 친구로 여겨야 합니다. (시 25:5) 연구를 사회할 때 하느님의 성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십시오. (출애굽 34:5, 6; 베드로 전서 5:6, 7) 어떤 주제를 다루든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연구생이 사랑, 친절, 동정심과 같은 여호와의 아름다운 특성을 깊이 이해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가장 큰 첫째 계명”이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2:37, 38) 연구생의 마음속에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파20.10」 9면 12항
8월 15일 월요일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요한 11:5.
예수께서는 모든 여자를 존중심 있게 대하셨습니다. (요한 4:27)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여자들을 깊이 존중하셨습니다. 유의할 만하게도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매로 여기셨으며, 자신이 영적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남자들만 아니라 여자들도 포함시키셨습니다. (마태 12:50) 또한 예수께서는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누신 우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독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10:38-42) 예수께서는 분명 말과 행동으로 그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셨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제자로서 그분의 발치에 앉아 배우는 것을 편안하게 느꼈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아서 기분이 상했을 때 주저 없이 예수께 자기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그처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께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영적인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또 그분은 다른 때에도 그 두 사람과 그들의 형제인 나사로를 방문하심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요한 12:1-3) 따라서 나사로가 심한 병이 들었을 때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께 도움을 청해도 된다고 확신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요한 11:3. 「파20.09」 20면 3항; 21면 6항
8월 16일 화요일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즉시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다.—누가 19:11.
예수의 제자들은 왕국이 “즉시 나타나”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구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왕국이 악을 없애고 의로운 신세계를 가져올 날을 고대합니다. (베드로 후서 3:13) 하지만 우리는 참을성 있게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노아가 방주를 짓고 “의의 전파자”로 일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셨습니다. (베드로 후서 2:5; 베드로 전서 3:20) 아브라함이 악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을 멸하시겠다는 여호와의 결정에 대해 반복적으로 의문을 제기했을 때 그분은 그의 말을 잘 들어 주셨습니다. (창세 18:20-33) 여러 세기 동안 여호와께서는 불충실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단한 참을성을 보이셨습니다. (느헤미야 9:30, 31)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이끄는 모든 사람에게 “회개에 이를”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참을성을 보이고 계십니다. (베드로 후서 3:9; 요한 6:44; 디모데 전서 2:3, 4) 여호와의 본을 생각해 볼 때 우리도 계속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참을성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파20.09」 10면 8-9항
8월 17일 수요일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사도 24:15.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을 부활시킬 때 각 사람이 가진 고유한 기억과 성품과 개성을 되살리실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생각과 느낌과 말과 행동을 모두 살피고 기억해 두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부활시켜야 한다면 당신의 기억, 태도, 성품, 개성을 쉽게 되살리실 수 있습니다. 다윗왕은 여호와께서 우리 각자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시 139:1-4) 여호와께서 우리를 얼마나 잘 아시는지를 알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신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우리 각자가 가진 독특한 성품과 개성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가 살면서 하는 경험이 우리의 성품과 개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주의 깊이 살피십니다.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결코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삶의 매 순간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도울 기회를 찾고 계십니다.—역대기하 16:9. 「파20.08」 17면 13-14항
8월 18일 목요일
내가 네게 통찰력을 주고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르치겠다.—시 32:8.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가르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그분을 알고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영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우리를 교육하지 않으신다면 그 모든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요한 17:3) 1세기에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사용하여 자신의 백성을 교육하셨습니다. (골로새 1:9, 10) 성령 즉 예수께서 약속하신 “돕는 자”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요한 14:16) 성령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주었고 예수께서 하신 많은 말씀과 행동을 기억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예수의 말씀과 행동은 나중에 복음서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한 지식 덕분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강해졌고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과 서로에 대한 사랑도 강해졌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말일에” 모든 나라 사람들이 그분의 비유적인 산으로 모여들어 그분의 길에 관해 배울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2:2, 3) 우리는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파20.10」 24면 14-15항
8월 19일 금요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노련한 지도를 얻는다.—잠언 1:5.
무엇 때문에 친구가 사랑으로 해 주는 유익한 조언을 배척하게 될 수 있습니까? 교만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말을 좋아하며 “진리를 듣지 않고 돌아섭니다.” (디모데 후서 4:3, 4)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견해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6:3) 솔로몬왕은 그 점을 이러한 말로 잘 설명했습니다.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아이가, 지각력이 없어서 더는 경고를 따르지 않는 늙고 미련한 왕보다 낫다.” (전도 4:13) 사도 베드로가 사도 바울에게서 공개적으로 시정을 받았을 때 어떤 본을 보였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 2:11-14) 베드로는 바울이 그 말을 한 방식과 그 말을 공개적으로 한 것만을 생각하면서 화를 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지혜롭게 행동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충고를 받아들였고 바울에게 반감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나중에 바울을 “사랑하는 형제”라고 불렀습니다.—베드로 후서 3:15. 「파20.11」 21면 9, 11-12항
8월 20일 토요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 가르치십시오.—마태 28:19, 20.
집회 참석은 성서 연구생이 영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집회에서 성경에 대해 배우면 지식이 깊어지고 믿음이 강해지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게 됩니다. (사도 15:30-32) 또한 형제 자매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더 사랑하게 되면서 그분의 계명에 순종할 수 있었는지 연구생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7:1; 빌립보 4:13) 성서 연구생은 다양한 배경의 충실한 전도인들을 알아 가면서 그들의 훌륭한 본을 통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배웁니다. (요한 13:35; 디모데 전서 4:12) 성서 연구생은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도인들을 보면서, 자신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신명 30:11) 회중의 형제 자매들은 누구나 성서 연구생이 영적으로 발전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마태 5:16. 「파20.11」 5면 10-12항
8월 21일 일요일
나는 ··· 에베소에서 야수들과 싸웠습니다.—고린도 전서 15:32.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경기장에서 실제로 짐승들과 싸웠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8; 4:10; 11:23) 아니면 “야수”와 같은 적대적인 유대인들과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 19:26-34; 고린도 전서 16:9) 어느 경우든 바울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30, 31; 고린도 후서 4:16-18) 우리는 위험한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일부 형제들은 범죄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지역에 사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어떤 형제들은 전파 활동이 제한되어 있거나 심지어 금지된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명이나 자유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형제 자매들은 인내하면서 여호와를 숭배함으로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그들은 지금 생명을 잃는다 해도 여호와께서 미래에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임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파20.12」 9면 3-4항
8월 22일 월요일
우리는 하느님의 동료 일꾼입니다. 여러분은 경작되고 있는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고린도 전서 3:9.
구역이 생산적이지 않거나 사람들이 집에 거의 없어서 낙담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쁨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더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봉사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과 왕국을 선포하는 데 계속 초점을 맞추십시오. 예수께서는 생명의 길을 찾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7:13, 14) 우리는 봉사할 때 여호와, 예수, 천사들과 함께 일하는 영예를 누립니다. (마태 28:19, 20; 계시록 14:6, 7) 여호와께서는 합당한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끄십니다. (요한 6:44) 따라서 어떤 사람이 이번에는 우리의 소식에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다음번에는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데버러라는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낙담은 사탄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무기는 여호와 하느님께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파20.12」 26면 18-19항; 27면 21항
8월 23일 화요일
계속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4:7.
많은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전 시간 일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충실한 전도인들은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조직을 지원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들은 재해 구호 활동을 하거나 건축 공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모두는 세계적인 활동을 위해 헌금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합니다. 매주 우리는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참여함으로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피곤해도 집회에 참석하며 긴장이 되어도 해설에 참여합니다.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집회 전후에 다른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히브리 10:24, 25) 우리는 동료 형제 자매들이 하는 일에 대해 정말 감사합니다! 「파21.01」 10면 11항
8월 24일 수요일
자기중심적이 되[지] 맙시다.—갈라디아 5:26.
교만한 사람은 영예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더 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잘 칭찬하지 않습니다. 대개 그런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며 경쟁심을 조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을 훈련하고 권한을 위임하기보다는, 일을 제대로 즉 자기가 보기에 올바로 처리하려면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흔히 야심과 질투심이 있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교만이라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정신을 새롭게” 하도록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나쁜 특성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로마 12:2) 우리는 여호와께서 좋은 본을 보여 주시는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시 18:35)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을 대하시는 방식에는 그분의 겸손이 잘 드러나 있으며 우리는 그런 그분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걸은 겸허한 성경 인물들의 훌륭한 본도 따르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여호와께 그분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예와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계시록 4:11. 「파20.08」 13면 19-20항
8월 25일 목요일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에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7:28.
결혼은 하느님이 주신 완전한 선물이지만 사람들은 불완전합니다. (요한 1서 1:8) 따라서 성경은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육체에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말로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가족의 영적, 감정적, 물질적 필요를 돌보기를 기대하십니다. (디모데 전서 5:8) 하지만 결혼한 자매들은 바쁜 일과 속에서도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여호와께 진지하게 기도할 시간을 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 바쁘게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우리 각자가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17:27) 물론, 아내가 불완전한 남편에게 복종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성경적인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여호와께서 아내에게 주신 역할을 수행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파21.02」 9면 3, 6-7항
8월 26일 금요일
시험받은 믿음이 인내를 낳습니다.—야고보 1:3.
시련은 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불과 같습니다. 칼날을 불에 달구었다가 식히면 더 강해집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시련을 인내하면 믿음이 더 강해집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이렇게 썼습니다. “인내가 그 일을 온전히 이루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온전해지고 모든 면에서 건전해질 것입니다.” (야고보 1:4) 시련이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 준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기쁨으로 시련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한편, 야고보는 자신의 편지에서 어떤 문제들이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있는지도 알려 줍니다. 그중 한 가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시련을 겪을 때 우리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고, 형제 자매들을 돕고, 충절을 지키기 위해 그분께 도움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 10:23)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반대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판단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낙담에 빠져 쉽게 기쁨을 잃을 수 있습니다. 「파21.02」 28면 7-9항
8월 27일 토요일
서로 마음으로부터 열렬히 사랑하십시오.—베드로 전서 1:22.
여호와께서는 사랑을 나타내는 면에서 본이 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매우 강해서 우리가 그분께 충성을 유지하는 한 그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로마 8:38, 39) “열렬히”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에는 “내뻗치다”, “최대한 팽팽하게 늘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부드러운 애정을 나타내기 위해 “내뻗치”고 “최대한 늘이”듯이 힘써 노력해야 할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화나게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사랑으로 서로 참으며 연합시키는 띠인 평화 가운데 영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에베소 4:1-3) 우리는 형제들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형제들을 여호와께서 보시듯이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무엘상 16:7; 시 130:3) 형제 자매들에게 부드러운 애정을 나타내기가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그들의 단점들을 알고 있다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1세기에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같은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 두 사람에게 “주 안에서 같은 정신을 가지라”고 권고했습니다.—빌립보 4:2, 3. 「파21.01」 22-23면 10-11항
8월 28일 일요일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으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2:14.
어른들은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함께 여호와를 섬기는 청소년 여러분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스바냐 3:9) 그들은 여러분이 맡은 일을 할 때 나타내는 열심과 활력과 열정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좋게 여깁니다. 청소년 형제 여러분,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신뢰하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분은 마지막 날에 자신을 기꺼이 바치는 청년들의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시 110:1-3) 그분은 당신이 그분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그분을 섬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참을성을 나타내고, 자신에 대해서도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 실수를 해서 훈련이나 징계를 받게 될 경우, 그것을 여호와께서 해 주시는 것으로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히브리 12:6) 어떤 일이 맡겨지든 그 일을 성실히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모든 일에서 하늘의 아버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리십시오.—잠언 27:11. 「파21.03」 7면 17-18항
8월 29일 월요일
어려운 시기에 낙담한다면 힘이 빠지게 될 것이다.—잠언 24:10, 각주.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그 밖의 요인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들로 낙담하게 될 수 있습니다. 낙담의 원인 중에는 불완전성, 약함, 건강 문제가 있습니다. 또 여호와를 섬기면서 원하는 임명을 받지 못하거나 반응이 없어 보이는 구역에서 봉사해야 할 때도 낙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불완전성과 약함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 때문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신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 태도는 해로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알려 줍니다. (로마 3:23) 하지만 성경의 저자이신 여호와는 우리에게서 흠을 찾거나 완벽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사랑 많은 아버지로서 우리를 돕고 싶어 하십니다. 또한 그분은 참을성이 많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약함과 싸우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아시며, 우리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로마 7:18, 19. 「파20.12」 22면 1-3항
8월 30일 화요일
끝으로 형제 여러분, 계속 기뻐하고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고린도 후서 13:11.
우리 모두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 즉 목표는 사랑 많은 여호와의 통치를 받으며 신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는 생명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길은 비좁으며, 그 길을 걷기가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마태 7:13, 14)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길에서 벗어나기가 쉽습니다. (갈라디아 6:1) 우리가 생명에 이르는 비좁은 길을 따라 계속 걸으려면 자신의 생각, 태도, 행동을 기꺼이 조정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자신을 바로잡으라”고 권고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올바른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은 믿을 수 없으며, 따라서 마음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7:9) 우리는 “거짓된 생각”으로 자신을 속이기가 쉽습니다. (야고보 1:22)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사용해 자신을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속사람 즉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과 의도”를 드러내 줍니다.—히브리 4:12, 13. 「파20.11」 18면 1-3항
8월 31일 수요일
서로 존중하는 면에서 솔선하십시오.—로마 12:10.
겸손하고 겸허한 사람은 기쁨을 느끼기가 더 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때 감사와 행복을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나병이라는 끔찍한 병에 걸린 열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들 중 한 명만 예수께 돌아와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었을 그 병을 고쳐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이 겸손하고 겸허한 사람은 예수의 도움을 받고 감사함을 느꼈으며 그에 대해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가 17:11-19) 겸손하고 겸허한 사람은 흔히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며 친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특성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고 그들에게 신뢰심을 표현합니다. 겸손하고 겸허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임명을 받든 그들이 그 임명을 잘 수행해 낼 때 기뻐하며 기꺼이 그들을 칭찬합니다. 「파20.08」 12-13면 17-1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