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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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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22
날22 47-57면

5월

5월 1일 일요일

그는 ··· 부모에게 계속 복종했다.—누가 2:51.

어린 시절에 예수는 부모에게 복종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모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여 부모의 지침을 무시하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는 맏아들로서 자신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는 가족 부양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양아버지에게서 목수 일을 열심히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의 부모는 예수에게 그가 기적으로 태어났다는 점과 하느님의 사자들이 그에 관해 해 준 말을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누가 2:8-19, 25-38) 예수는 그런 말을 들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예수가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어렸을 때도 예루살렘의 교사들이 “그의 이해력과 대답에 계속 크게 놀란”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2:46, 47) 예수는 불과 열두 살이었을 때,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여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누가 2:42, 43, 49. 「파20.10」 29-30면 13-14항

5월 2일 월요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셨[습니다.]—고린도 전서 15:12.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 희망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그 사실이란 (1) “그리스도께서 ···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2) 그분이 “묻히셨다”는 것, (3) 그분이 “성경 말씀대로 셋째 날에 일으켜지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3, 4) 예수께서 죽어서 묻혔다가 부활되신 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가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지고 “악한 자들과 함께 매장지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또 다른 점도 예언했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심으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사야 53:8, 9, 12; 마태 20:28; 로마 5:8) 예수께서 죽어서 묻혔다가 부활되신 것은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의 확고한 근거가 됩니다. 「파20.12」 2-3면 4-6항; 5면 11항

5월 3일 화요일

나는 그 누구보다도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빌립보 3:4.

사도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자주 전파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데살로니가의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 [유대인들]과 함께 성경을 가지고 토론했습니다.” (사도 17:1, 2) 바울은 유대인으로 자랐기 때문에 회당에서 편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도 26:4, 5) 그는 유대인들의 배경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 3:5) 바울은 박해자들 때문에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레아로 갔다가 거기에서도 박해가 일어나자 아테네로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하느님을 숭배하는 그 밖의 사람들과 토론했습니다.” (사도 17:17) 하지만 그가 장터에서 전파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배경이 달랐습니다. 그중에는 철학자들을 비롯한 이방인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바울의 말이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귀에 생소한 것들을 소개하고 있소.”—사도 17:18-20. 「파20.04」 9면 5-6항

5월 4일 수요일

내가 옳은 것을 하기 원할 때에, 악한 것이 내게 있습니다.—로마 7:21.

당신이 약함과 싸우고 있다면 자신이 가망이 없다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대속을 통해 베푸시는 과분한 친절이 필요합니다. (에베소 1:7; 요한 1서 4:10) 또한 우리는 영적 가족인 형제 자매들에게서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할 상대가 필요할 때 우리의 말을 잘 들어 주고 격려적인 말을 해 주어 힘을 북돋워 줄 수 있습니다. (잠언 12:25; 데살로니가 전서 5:14) 낙담으로 어려움을 겪은 나이지리아의 조이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이 없다면 제가 어디로 가겠어요? 형제 자매들은 여호와께서 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저도 낙담한 사람들을 격려하는 법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언제 격려가 필요한지 형제 자매들이 반드시 아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장성한 동료 형제 자매들에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파20.12」 23-24면 7-8항

5월 5일 목요일

나는 여러분을 친구라고 불렀습니다.—요한 15:15.

대개 누군가와 친한 친구가 되려면 우선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예수와 친한 친구가 되는 데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우리가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1세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도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지금도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냅니다.” (베드로 전서 1:8) 따라서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없어도 그분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와 직접 대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의 생각을 여호와께 말씀드립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예수께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자신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숭배의 일부이며 우리는 여호와께만 숭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 4:10)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예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파20.04」 20면 1-3항

5월 6일 금요일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베드로 전서 5:10.

그리스의 달리기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피로나 통증을 느끼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열심히 훈련하고 자신의 체력을 키우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선수들처럼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잘 달릴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들보다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의지한다면 그분은 자신의 약속대로 우리를 훈련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모욕과 박해를 당한 것에 더해, 때때로 자신이 약하다고 느꼈으며 “육체의 가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12:7) 하지만 바울은 그러한 어려움을 포기할 구실로 여기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할 기회로 보았습니다. (고린도 후서 12:9, 10) 바울이 그러한 태도를 나타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가 모든 시련을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파20.04」 29면 13-14항

5월 7일 토요일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습니다.—요한 6:44.

눈에 보이지 않는 보물 가운데는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의 하늘 부분과 “함께 일하는” 특권도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6:1) 우리는 제자 삼는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그러한 특권을 누립니다. 바울은 자신과 그 일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을 가리켜 “하느님의 동료 일꾼”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3:9) 또한 그리스도인 봉사를 수행할 때 우리는 예수의 동료 일꾼이 됩니다. 예수께서 “모든 민족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신 뒤에 “내가 ··· 여러분과 함께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태 28:19, 20) 그러면 천사들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좋은 소식”을 선포할 때 천사들의 인도를 받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계시록 14:6) 우리는 그처럼 하늘로부터 지원을 받아 어떤 일을 이루고 있습니까? 우리가 왕국 소식의 씨를 뿌릴 때 어떤 씨는 좋은 흙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심겨져 잘 자랍니다. (마태 13:18, 23) 진리의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는 오늘의 성구에서 그 답을 알려 주셨습니다. 「파20.05」 30면 14-15항

5월 8일 일요일

더는 이 세상 제도를 따라 틀 잡히지 [마십시오.]—로마 12:2.

오늘날 이혼으로 인해 수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집에 사는 가족이라도 거의 남남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한 가정 상담 전문가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 서로에게서 떨어져서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게임기에 매달려 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라도 서로에 대해 거의 모른다.” 우리는 세상의 사랑 없는 태도에 물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족 성원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친족이 된 사람들에 대해 부드러운 애정을 길러 나가야 합니다. (로마 12:10) 부드러운 애정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까운 가족 성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따뜻함과 친밀함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랑이 우리가 영적 가족인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에게 키워야 할 사랑입니다. 우리는 부드러운 애정을 나타냄으로 참숭배에 꼭 필요한 연합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미가 2:12. 「파21.01」 20면 1-2항

5월 9일 월요일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도록 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시 86:11.

선수들이 단합이 잘되어 있는 팀은 그렇지 않은 팀보다 강한 팀이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이 하나가 되어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강팀과 같아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나누어 놓고 싶어 합니다. 그는 우리의 생각, 욕망, 감정이 서로 대립하고 여호와의 표준과 어긋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려면 마음이 온전해야 합니다. (마태 22:36-38) 결코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나누어 놓지 못하게 하십시오! 다윗처럼 여호와께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도록 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기도와 일치하게 생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매일 크고 작은 결정을 통해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에 깊은 경외심을 나타내겠다고 굳게 결심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그분의 이름에 영예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잠언 27:11) 또한 예언자 미가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우리 하느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걸을 것이다.”—미가 4:5. 「파20.06」 13면 17-18항

5월 10일 화요일

그는 ··· 크게 격분하여 나아가서 많은 사람을 멸절하고 완전히 멸망시키려 할 것이오.—다니엘 11:44.

북방 왕이 전 세계의 나머지 정부들과 함께 가하는 이러한 공격 때문에 전능자께서는 분노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계시록 16:14, 16) 그러면 북방 왕은 마곡의 곡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나라들과 함께 끝에 이를 것이며 “그를 도와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 11:45) 다니엘이 기록한 바로 다음 구절은 북방 왕과 그 동맹국들이 어떻게 끝에 이르고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지에 관해 더 알려 줍니다. (다니엘 12:1) 이 구절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미가엘은 우리의 통치하는 왕 그리스도 예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왕국이 하늘에 설립된 1914년 이래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서” 계십니다. 가까운 미래에 그분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들을 상대로 행동을 취하심으로 “일어서실” 것입니다. 그 전쟁을 마지막으로 다니엘이 말한 역사상 전례 없는 “고난의 때”가 끝날 것입니다.—계시록 6:2; 7:14. 「파20.05」 15-16면 15-17항

5월 11일 수요일

요셉은 이집트로 끌려 내려갔다.—창세 39:1.

요셉은 노예였을 때나 감옥에 있었을 때나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이동할 자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요셉은 여호와를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창세 39:21-23) 우리도 이 세상이 냉혹하고 사람들이 우리를 불공정하게 대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형제 자매들도 우리에게 상처를 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호와를 우리의 반석이자 도피처로 삼는다면 용기를 잃거나 그분을 섬기기를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 62:6, 7; 베드로 전서 5:10) 또한 여호와께서 요셉이 꿈을 꾸게 하셨을 때는 그가 아마도 17세쯤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분명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청소년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도 요셉과 같은 청소년이 많습니다. 그들도 여호와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에 부당하게 투옥되기도 했습니다.—시 110:3. 「파20.12」 16면 3항; 17면 5, 7항

5월 12일 목요일

그들은 ···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한 다음 더 이상 예수의 이름을 근거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했다.]—사도 5:40.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를 따르고 그분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것을 영예롭게 여겼습니다. (사도 4:18-21; 5:27-29, 41, 42) 제자들은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1세기의 그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반대자들에 비할 때 인류 전체에게 훨씬 더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쓴 영감받은 책들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파한 왕국은 현재 설립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곧 모든 인류를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 24:14) 그와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강력한 로마 정부는 몰락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또한 그 충성스러운 제자들은 현재 하늘에서 왕이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그 반대자들은 모두 사망했으며, 부활된다 해도 그들이 미워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전파한 왕국의 통치를 받게 될 것입니다.—계시록 5:10. 「파20.07」 15면 4항

5월 13일 금요일

[아브라함은]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도시를 설계하고 건축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히브리 11:10.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왕국의 왕이 될 기름부음받은 자 즉 메시아를 실제로 보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기를 기대하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요한 8:56) 분명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이 여호와의 후원을 받는 왕국을 구성할 것임을 알았으며, 그분이 약속을 성취시키실 때를 기꺼이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께서 설계하신 도시 즉 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선 아브라함은 이 땅의 어떤 왕국에도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 유목 생활을 하면서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으며 어떤 인간 왕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여호와께 계속 순종하면서 그분이 약속을 이루실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탁월한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파20.08」 3면 4-5항

5월 14일 토요일

죽은 사람은 자기의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로마 6:7.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사람은 아무도 “내가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33:24) 따라서 부활되는 사람들은 재창조되어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활되는 즉시 완전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처럼 즉시 완전해지면 가족과 벗들이 그들을 알아보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중에 점진적으로 완전성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천년 통치 끝에 가서야 예수께서는 왕국을 아버지께 돌려 드릴 것입니다. 그때까지 왕국은 인류를 완전한 상태로 끌어올리는 일을 포함하여 해야 할 모든 일을 완수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24-28; 계시록 20:1-3)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 환영할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은 너무 기뻐서 웃을 것입니까, 아니면 울 것입니까?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여호와께 찬양 노래를 부를 것입니까?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부활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신 사랑 많은 아버지 여호와와 그분의 비이기적인 아들에게 깊은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 「파20.08」 16-17면 9-10항

5월 15일 일요일

각 사람마다 하느님께 받은 선물이 있어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습니다.—고린도 전서 7:7.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독신으로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격려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7:8, 9) 분명히 바울은 독신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젊은 독신 형제인 디모데에게 중요한 책임들을 맡겼습니다. (빌립보 2:19-22) 그러므로 결혼 여부만으로 어떤 형제가 자격을 더 잘 갖추었다거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7:32-35, 38) 예수와 바울은 모두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반드시 독신으로 지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결혼과 독신을 어떻게 보는 것이 좋습니까? 「파수대」 2012년 10월 1일호에서는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잘 알려 주었습니다. “참으로, 결혼과 독신은 모두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는 독신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슬퍼할 이유로 보지 않으십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회중의 독신 형제 자매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파20.08」 28면 8-9항

5월 16일 월요일

그 날과 그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마태 24:36.

일부 나라에서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 소식을 간절히 기다려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나라들에서는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성경에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는 반응이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반응에 관계없이, 여호와께서는 전파 활동이 그분이 원하시는 만큼 수행될 때까지 우리가 그 일을 계속하기를 바라십니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전파 활동은 종료될 것이며 그러고 나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예수께서는 마지막 날의 특징이 될 일들과 상황들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일들이 제자들의 주의를 분산시켜 전파 활동을 완수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깨어 살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4:42)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다른 일들에 주의를 빼앗겨 노아가 발하는 경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한 일들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을 수 있습니다. (마태 24:37-39; 베드로 후서 2:5)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에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파20.09」 8면 1-2, 4항

5월 17일 화요일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경건한 정성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디모데 후서 3:12.

사탄은 “몹시 화가 나” 있습니다. 만일 자신만큼은 어떻게든 사탄의 분노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계시록 12:12) 머지않아 우리 모두는 충절의 시험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곧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는 큰 환난’이 닥칠 것입니다. (마태 24:21) 그때에는 가족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거나 우리의 활동이 금지될지 모릅니다. (마태 10:35, 36) 우리 각자는 아사왕처럼 도움과 보호를 받기 위해 여호와를 신뢰할 것입니까? (역대기하 14:11) 여호와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비하도록 우리를 영적으로 준비시켜 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계속 굳건히 그분을 섬길 수 있도록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인도하셔서 영양가가 풍부한 영적 ‘양식을 제때에’ 공급해 주십니다. (마태 24:45) 하지만 우리도 자신의 몫을 다하고 여호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길러야 합니다.—히브리 10:38, 39. 「파20.09」 18면 16-18항

5월 18일 수요일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줄기와 같아서 그분이 어디로든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잠언 21:1.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목적과 일치하는 경우, 강력한 성령을 사용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분의 뜻을 행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운하를 파서 물의 흐름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도 성령을 사용해 통치자들의 생각을 그분의 목적과 일치한 방향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에스라 7:21, 25, 26 비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이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과 봉사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해야 할 때 우리는 그들에 대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2:1, 2, 각주; 느헤미야 1:11) 1세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도 감옥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하느님께 열렬히 기도합니다.—사도 12:5; 히브리 13:3. 「파20.11」 15면 13-14항

5월 19일 목요일

모든 민족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 그들에게 침례를 주십시오.—마태 28:19.

만일 당신이 새로운 제자의 연구 사회자라면 그가 침례받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19, 20) 새로 침례받은 제자는 연구 사회자뿐 아니라 회중 전체를 추천하는 좋은 “추천서”입니다. (고린도 후서 3:1-3) 기쁘게도 4년 동안 전 세계에서 매달 평균 약 1000만 건의 성서 연구가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기간에 매년 평균 28만 명이 넘는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으로 침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성서 연구생이 침례를 받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시간과 기회를 참을성 있게 허락하시는 동안, 우리는 그들이 최대한 빨리 발전하여 침례를 받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고린도 전서 7:29ㄱ; 베드로 전서 4:7. 「파20.10」 6면 1-2항

5월 20일 금요일

하느님께서는 거만한 사람들을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과분한 친절을 베푸신다.—야고보 4:6.

사울왕은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언자 사무엘이 문제를 지적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불순종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함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5:13-24) 전에도 사울은 그와 비슷한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사무엘상 13:10-14)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마음이 거만해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책망하고 배척하셨습니다. 사울의 예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자문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조언을 읽을 때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는가? 나는 하느님께 불순종하면서도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가?’ 자신에게 이러한 문제가 하나라도 있다면 반드시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 거만해져서 여호와께서 더는 우리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파20.11」 20면 4-5항

5월 21일 토요일

젊은 시절에 너의 위대한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괴로운 날이 닥치기 전, “인생에 낙이 없구나” 하고 말할 해가 이르기 전에.—전도 12:1.

청소년 여러분, 누구를 섬길지 결정하십시오. 당신은 여호와가 누구인지, 그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분의 뜻이 당신의 인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로마 12:2) 그러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즉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24:15) 계속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한다면 여호와에 대한 사랑이 계속 자라고 그분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여호와의 뜻을 삶에서 첫째 자리에 두기로 선택하십시오. 사탄의 세상은 당신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능을 사용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사실 물질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은 고통으로 온통”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디모데 전서 6:9, 10) 반면에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의 뜻을 삶에서 첫째 자리에 두기로 선택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지혜롭게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여호수아 1:8. 「파20.10」 30-31면 17-18항

5월 22일 일요일

나는 ···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해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누가 4:43.

1세기에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시작한 일을 계속하여,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증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 1:8)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그 일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돕는 자”인 성령이 필요했습니다. (요한 14:26; 스가랴 4:6) 예수의 제자들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그들은 즉시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얼마 안 되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도 2:41; 4:4) 반대가 시작되었을 때 제자들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의 종들이 아주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계속 전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계속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사도 4:18-20, 29, 31. 「파20.10」 21면 4-5항

5월 23일 월요일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일으켜지셨[습니다.]—고린도 전서 15:3, 4.

여호와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많은 목격 증인들이 예수께서 부활되셨다고 증언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5-7) 사도 바울이 언급한 첫 번째 증인은 사도 베드로(게바)입니다. 베드로가 부활된 예수를 보았다는 것을 여러 제자들이 확언했습니다. (누가 24:33, 34) 또한 “열두 제자” 즉 사도들이 부활되신 예수를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마도 그 즐거운 모임은 마태복음 28:16-20에 언급된 갈릴리의 모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마 그분의 이부동생이었을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 7:5) 야고보는 부활되신 예수를 보고 나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의할 만한 점은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쓴 기원 55년경에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증인들이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문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당시 여전히 살아 있었던 믿을 만한 증인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파20.12」 3면 5, 7-8항

5월 24일 화요일

여호와께서 병상에서 그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시 41:3.

몸이 안 좋을 때, 특히 만성 질환이 있을 때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움을 얻기 위해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현재 우리의 병을 기적으로 고쳐 주시지는 않지만, 우리를 위로하시며 인내하는 데 필요한 힘을 주실 수 있습니다. (시 94:19) 예를 들어 우리가 집안일을 하는 데 도움이 필요할 때 그분은 우리의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를 돕게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형제들이 우리와 함께 기도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혹은 성경에 나오는 위로가 되는 내용을 생각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가오는 신세계에서 질병과 고통 없이 완전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놀라운 희망을 떠올리게 하실 수 있습니다. (로마 15:4) 하지만 자신이 봉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럴 자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인공호흡 장치인 철폐 속에 37년이나 갇혀 살았습니다! 그 자매는 암에 걸렸고 몇 차례 대수술을 받았으며 만성 피부 질환을 앓았습니다. 그래도 로럴 자매는 전파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에 찾아오는 간호사와 간병인들에게 증거했으며, 적어도 17명이 성경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얻도록 도왔습니다! 「파20.12」 24면 9항; 25면 12항

5월 25일 수요일

여호와께서 내 편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시 118:6.

사도 바울에게는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기원 56년경에 군중이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그를 끌어내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음 날 바울은 산헤드린으로 소환되었으며 적들의 손에 거의 찢겨 죽을 뻔했습니다. (사도 21:30-32; 22:30; 23:6-10) 그때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내가 이런 박해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바울은 어떤 도움을 받았습니까? 바울이 체포된 날 밤에 “주” 예수께서는 그의 곁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에 대해 철저히 증거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한다.” (사도 23:11) 정말 시기적절한 격려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증거한 것에 대해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에 안전하게 도착해 그곳에서도 증거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약속을 받은 바울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이처럼 마음이 놓였을 것입니다. 「파20.11」 12면 1항; 13면 3-4항

5월 26일 목요일

우리가 가진 이 희망은 ··· 확실하고 굳건[합니다.]—히브리 6:19.

우리의 왕국 희망은 ‘영혼을 위한 닻’ 역할을 하여 힘든 상황이나 염려가 있어도 안정감을 갖게 해 줍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모두 사라진 미래에 관한 여호와의 약속을 묵상하십시오. (이사야 65:17) 고난이 더는 없는 평화로운 신세계에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미가 4:4) 또한 우리의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면 그 희망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전파하고 제자 삼는 활동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끝까지 희망에 대한 온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 6:11) 이 세상의 끝이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를 일으키는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행동으로 여호와의 이러한 약속을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너희의 힘은 평온을 유지하고 나를 신뢰하는 데 있다.’—이사야 30:15. 「파21.01」 7면 17-18항

5월 27일 금요일

여호와는 애정이 매우 부드[러운] 분이십니다.—야고보 5:11.

야고보서 5:11은 여호와의 부드러운 애정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끄는 그분의 또 다른 특성인 자비를 언급합니다. (출애굽 34:6)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나타내시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시 51:1) 성경에서 자비는 잘못을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자비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그를 도우려고 할 때 우리 내면에서 솟아나는 강렬한 감정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돕고 싶어 하시는 자신의 열망이 어머니가 자기 아이에 대해 갖는 감정보다 더 강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9:15)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자비에서 우러나와 우리를 도우십니다. (시 37:39; 고린도 전서 10:13) 우리는 형제 자매들이 우리를 실망시켜도 그들을 용서하고 반감을 품지 않음으로 자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에베소 4:32) 하지만 우리가 자비를 나타낼 수 있는 주된 방법은 어려움을 겪는 형제 자매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부드러운 애정을 나타내는 면에서 최고의 본이신 여호와를 본받습니다.—에베소 5:1. 「파21.01」 21면 5항

5월 28일 토요일

그리스도께서도 ···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자신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르게 하셨습니다.—베드로 전서 2:21.

가장은 균형을 잘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세속 일에 너무 몰두하느라 가족의 영적, 감정적 필요를 적절하게 돌보지 못하고 가족을 가르치는 데 소홀해져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최상의 유익을 염두에 두시고 우리를 가르치고 징계하십니다. (히브리 12:7-9)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십니다. (요한 15:14, 15) 그분은 확고하면서도 친절하게 가르치십니다. (마태 20:24-28) 그분은 우리가 불완전하며 잘못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마태 26:41) 여호와와 예수를 본받는 가장은 아내와 자녀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그는 아내나 자녀에게 “심하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골로새 3:19) 오히려 자신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갈라디아서 6:1의 원칙을 적용해 가족을 “온화한 영으로” 바로잡으려고 노력합니다. 예수처럼 가장은 본을 보이는 것이 가족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파21.02」 6-7면 16-18항

5월 29일 일요일

숨 쉬는 것은 모두 야를 찬양하여라.—시 150:6.

여호와께서는 대속을 통해 회중에 있는 각 사람의 생명과 예수께 믿음을 둘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사셨습니다. (마가 10:45; 사도 20:28; 고린도 전서 15:21, 22) 따라서 여호와께서 대속물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예수를 회중의 머리로 임명하신 것은 적절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머리로서 개개인과 가족들과 회중 전체가 따라야 할 규칙을 만들고 시행할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갈라디아 6:2) 하지만 예수께서는 규칙을 만들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돌보고 소중히 여기십니다. (에베소 5:29) 자매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돌보도록 임명하신 남자들이 지침을 베풀 때 잘 따름으로 그분께 존경심을 나타냅니다. 형제들은 자매들을 존중함으로 머리 직분 마련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회중의 모든 사람들이 머리 직분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회중은 평화를 누립니다. 더 중요한 것으로, 우리는 사랑 많은 하늘의 아버지 여호와께 찬양을 돌리게 됩니다. 「파21.02」 18-19면 14-17항

5월 30일 월요일

다윗이 여호와께 물었다.—사무엘상 30:8.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사울을 피해 도망자 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을 남겨 두고 전투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 있는 동안 적군이 그들의 집을 습격하여 가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다윗은 전투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족들을 구출할 좋은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께 인도를 구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이 약탈대를 쫓아가야 합니까?”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윗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보증하셨습니다. (사무엘상 30:7-10)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언을 구하십시오. 청소년 여러분, 부모님과 상의해 보십시오. 또한 경험 많은 장로와 대화해 보면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임명된 장로들을 신뢰하시므로 당신도 그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회중을 위한 “선물”로 여기십니다. (에베소 4:8) 장로들의 믿음을 본받고 그들이 해 주는 지혜로운 제안을 잘 듣는다면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파21.03」 4-5면 10-11항

5월 31일 화요일

[그 무엇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로마 8:38, 39.

예수께서는 배운 것을 적용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지만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폭풍과 홍수가 닥치면 그 집이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7:24-27)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배운 것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시련이나 박해가 닥치면 우리의 믿음은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고 배운 것을 적용하면 우리는 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고 평화를 더 누리며 더 강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48:17, 18) 시련 아래서도 충절을 지키려면 기도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좋은 연구 습관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그 무엇도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끊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히브리 13:5, 6. 「파21.03」 15면 6항; 18면 20항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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