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월 1일 화요일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게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계속 청하십시오.—야고보 1:5.
여호와께서는 지혜의 근원이시며 자신의 지혜를 관대하게 나눠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지혜를 얻는 한 가지 방법은 그분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잠언 2:10-12) 그 결과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자신을 지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유다 21) 하지만 우리는 죄짓는 경향이나 성장 배경이나 그 밖의 요인들로 인해 징계를 받아들이거나 징계를 올바른 시각으로 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징계의 유익을 경험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분명히 느끼면 징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잠언 3:11, 12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배척하지 마라. ···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최상의 유익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라신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 12:5-11)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기 때문에 언제나 꼭 알맞은 정도로 적절한 징계를 베푸십니다. 「파18.03」 28면 1-2항
10월 2일 수요일
서로 후대하십시오.—베드로 전서 4:9.
사도 베드로는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소아시아의 회중들에게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조언을 했습니다. 그 회중 성원들은 “불같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그처럼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베드로 전서 1:1; 4:4, 7, 12)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후대하라고 즉 그들이 이미 알고 지내는 동료 형제 자매들을 후대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서로 후대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들은 후대하면서 서로 가까워졌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경험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당신이 회중 성원들을 후대했을 때 그들과 더 친해지지 않았습니까? 후대를 하면 전에는 몰랐던 형제 자매들의 다양한 면을 개인적으로 더 잘 알게 됩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썼을 때에는 세상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더욱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 우리도 서로 더욱더 가까워져야 합니다.—디모데 후서 3:1. 「파18.03」 14면 1-3항
10월 3일 목요일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3.
성경은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로마서 8:6은 영적인 사람이 될 때 얻는 축복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육체에 정신을 쏟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영에 정신을 쏟는 것은 생명과 평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지금도 마음의 평화와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미래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육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영성을 기르고 지키기 위해 힘써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성을 잃게 되면 도덕성이 진공 상태가 되듯이 사라지고 이 세상의 오염된 “공기”가 그 빈자리를 금세 채워 버릴 것입니다. 유다는 일부 육적인 사람들이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영성이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알려 줍니다.—유다 18, 19. 「파18.02」 19면 5, 7항; 20면 8항
10월 4일 금요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더 악해질 것입니다.—디모데 후서 3:13.
의료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합니다. 그들은 환자들이 낫기를 바라기 때문에 환자들을 돌봅니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면서도 환자에게서 병이 옮지 않게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주변 사람들은 하느님의 특성과는 반대되는 태도와 특성들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인 지금 세상은 도덕적으로 몹시 타락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에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디모데 후서 3:1-5) 우리는 그러한 특성이 만연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러면서도 그러한 특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 13:20)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도우면서도 그들의 나쁜 특성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파18.01」 27면 1-2항
10월 5일 토요일
모든 민족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 그들에게 침례를 주십시오.—마태 28:19.
기원 33년에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는 물론 어린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때에 예수께서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6)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수백 명의 제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멍에를 메려면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 11:29, 30) 하느님께서 승인하시는 방식으로 그분을 섬기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여호와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서 예수께서 수행하시는 역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침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유일하게 승인하시는 물침례입니다. 성경 기록을 보면, 1세기에 새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침례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침례받는 것을 불필요하게 미루지 않았습니다.—사도 2:41; 9:18; 16:14, 15, 32, 33. 「파18.03」 5면 8항
10월 6일 일요일
매우 귀중한 사람 다니엘.—다니엘 10:11.
오늘날 우리는 “악귀들의 처소”인 큰 바빌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의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계시록 18:2) 따라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우리는 사람들의 눈에 띄며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마가 13:13)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처럼 우리 하느님 여호와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겸손과 순종을 나타내고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우리도 귀중하게 여겨 주실 것입니다. (학개 2:7) 부모들은 다니엘의 부모의 본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다니엘이 어렸을 때 유다에는 악이 만연했지만, 다니엘은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다니엘을 잘 가르친 덕분이었습니다. (잠언 22:6) “나의 재판관은 하느님”을 뜻하는 다니엘의 이름만 봐도 그의 부모가 하느님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 1:6, 각주) 그러므로 부모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자녀를 참을성 있게 가르치십시오. (에베소 6:4) 자녀와 함께 기도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자녀의 마음에 성경 진리를 심어 주려고 노력하면 여호와의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시 37:5. 「파18.02」 5면 12, 14항; 6면 15항
10월 7일 월요일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왔으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드렸을 뿐입니다.—역대기상 29:14.
여호와께 드리는 것은 그분을 숭배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환상을 통해 사도 요한은 하늘에 있는 여호와의 종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영광과 영예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것들이 주의 뜻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4:11) 여호와가 모든 영광과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므로, 그분에게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 차례의 연례 축제 때 그분 앞에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한 축제 때 그분께 드리는 일은 숭배의 일부였으며, 그들은 “여호와 앞에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 되었습니다. (신명 16:16) 오늘날에도 하느님께 드리는 일은 숭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비이기적으로 주는 일을 하여 여호와의 조직의 지상 부분이 수행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감사를 표현합니다. 「파18.01」 18면 4-5항
10월 8일 화요일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마태 11:28.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멍에를 메[십시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마태 11:29, 30) 정말 맞는 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회중 집회에 참석하거나 야외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섭니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어떤 느낌이 듭니까? 새 힘이 나고 문제들을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의 멍에는 참으로 편합니다! 케일라(가명임) 자매는 만성 피로 증후군, 우울증, 편두통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해할 만하게도, 때때로 그 자매는 회중 집회에 참석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번은 어렵게 공개 집회에 참석한 뒤 이렇게 썼습니다. “낙담에 관한 공개 강연을 들었어요. 연설에서 동정심과 이해심이 느껴져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회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 자매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힘들게 노력한 덕분에 큰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파18.01」 8-9면 6-7항
10월 9일 수요일
나는 하마터면 발이 길에서 벗어날 뻔했다.—시 73:2.
자녀가 침례를 받은 뒤에 진리에 의구심을 갖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침례받은 청소년 자녀가 세상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혹은 성경 원칙에 따라 사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시 73:1, 3, 12, 13) 그럴 때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녀는 부모의 믿음을 더 본받고 싶어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믿음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주 어린 자녀이든 청소년 자녀이든, 자녀를 강압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자녀를 도와주고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침례받은 자녀는 여호와께 엄숙한 헌신의 약속을 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다른 모든 것보다 앞자리에 두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마가 12:30) 여호와께서는 그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며, 따라서 그분께 헌신한 사람도 그 약속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전도 5:4, 5. 「파17.12」 22면 16-17항
10월 10일 목요일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라비가 살아나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4.
마르다와 같은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종들은 미래에 부활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상속자인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런 명령을 주셨습니다. “부디 너의 아들,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너의 외아들 이삭을 ··· 번제물로 바쳐라.” (창세 22:2) 아브라함이 그 명령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 13:14-16; 18:18; 로마 4:17, 18) 또한 그 축복이 “이삭을 통해서” 있게 될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21:12)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어떻게 그러한 축복이 가능하겠습니까? 영감받은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히브리 11:17-19) 아브라함은 아들이 언제 살아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께서 이삭을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파17.12」 6면 12-14항
10월 11일 금요일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깨끗합니다.—사도 20:26.
바울처럼 우리도 생명에 대해 하느님과 같은 견해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베드로 후서 3:9) 당신도 그렇습니까? 마음속에 자비의 불씨를 지피면 봉사의 직무에 더욱 열심을 내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안전 의식을 키움으로 생명에 대해 여호와와 같은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 운전을 하고 일도 안전하게 해야 합니다. 숭배 장소를 짓거나 보수하거나 그런 장소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성이나 비용이나 일정을 결코 안전이나 건강보다 앞자리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공의로운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을 언제나 올바르고 적절한 방법으로 하시며, 우리는 그분을 본받기 원합니다. 특히 장로들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잠언 22:3) 따라서 장로가 당신에게 안전 규칙이나 표준에 대해 일깨워 준다면 그의 권고를 받아들이십시오. (갈라디아 6:1) 생명에 대해 여호와와 같은 견해를 갖는다면 “유혈죄가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신명 19:10. 「파17.11」 16면 11-12항
10월 12일 토요일
[아무도] 여러분에게서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십시오.—골로새 2:18.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 위로 부르시는 상”을 받을 소중한 전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3:14)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왕국에서 봉사하면서 인류를 완전성으로 끌어올릴 때를 고대합니다. (계시록 20:6)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정말 놀라운 희망을 주셨습니다! 다른 양들은 그들과 다른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양들은 땅에서 영원한 생명의 상을 받을 때를 고대합니다. 정말 행복한 전망이 아닙니까! (베드로 후서 3:13) 기름부음받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충실을 유지하고 상을 받도록 돕기 위해, 바울은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의 정신을 ··· 위에 있는 것들에 고정시키십시오.” (골로새 3:2) 그들은 하늘의 유산을 받을 소중한 희망을 정신에 깊이 새겨야 했습니다. (골로새 1:4, 5)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축복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계속 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고린도 전서 9:24. 「파17.11」 25면 1-2항
10월 13일 일요일
여호와께 노래하여라!—시 96:1.
「‘기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에 수록된 많은 노래들은 기도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들을 부를 때 자신의 감정을 여호와께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랑과 훌륭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고무”하는 노래들도 있습니다. (히브리 10:24) 우리는 새로운 노래책에 실린 노래들의 멜로디, 박자, 가사에 익숙해지기를 원합니다. 집에서 노래를 연습해 보면 자신감을 가지고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노래는 우리의 숭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노래는 여호와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이사야 12:5) 우리가 기쁨으로 노래하면 다른 사람들도 격려를 받아 자신감을 가지고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연로한 사람이든 최근에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든, 회중의 모든 사람은 함께 노래를 부름으로 여호와를 숭배하는 데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래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노래하기 바랍니다! 「파17.11」 7면 18-19항
10월 14일 월요일
뱀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비둘기처럼 순진하게 되십시오.—마태 10:16.
오늘날 난민들 중에는 전파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증인들이 그들에게 열심히 증거한 덕분에 수많은 난민이 평생 처음으로 “왕국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태 13:19, 23) “무거운 짐을 진” 많은 사람이 우리 집회에 참석하여 영적으로 새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금방 알아봅니다. (마태 11:28-30; 고린도 전서 14:25) 우리는 난민들에게 증거할 때 ‘조심스럽고’ ‘슬기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잠언 22:3)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참을성을 가지고 잘 들으십시오.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지부 사무실과 당국의 지침을 잘 따르십시오. 난민들이 종교나 문화적 배경 때문에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것을 존중해 주십시오. 예를 들어, 일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여자들이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당히 강한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난민들에게 증거할 때는 불필요하게 반감을 살 만한 옷차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파17.05」 7면 17-18항
10월 15일 화요일
언제나 은혜롭게 말하십시오.—골로새 4:6.
우리는 믿지 않는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때 성령의 열매를 나타낼 수 있도록 여호와께 성령을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믿는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일일이 따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말이나 행동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면 사도들의 본을 따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아도 축복해 주고, 박해를 받아도 참을성 있게 인내하며, 중상을 당해도 온화하게 대답합니다.” (고린도 전서 4:12, 13) 반대하는 가족을 대할 때 온화한 말이 도움이 되지만 우리의 좋은 행실은 그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3:1, 2, 16) 우리의 본을 통해 여호와의 증인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자녀들을 잘 돌보며, 깨끗하고 도덕적이고 보람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가족들이 끝까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충실한 행로를 통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파17.10」 15면 13-14항
10월 16일 수요일
그대 자신을 승인받은 사람으로 ··· 하느님께 바치[십시오.]—디모데 후서 2:1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 덕분에 커다란 변화를 한 것이 놀라운 일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에 관해 듣게 되면, 하늘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1세기의 형제 자매들이 떠오릅니다. (고린도 전서 6:9-11)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인지 열거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과 하느님의 성령의 도움을 받아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나서도 심각한 영적 문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1세기에 기름부음받은 한 그리스도인이 제명될 수밖에 없었지만 나중에 복귀되었다고 알려 줍니다. (고린도 전서 5:1-5; 고린도 후서 2:5-8) 우리의 동료 형제들이 하느님의 말씀의 힘으로 온갖 문제들을 극복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격려가 되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이 도구를 최대한 활용하기를 원합니다. 「파17.09」 23-24면 2-3항
10월 17일 목요일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요한 1서 3:18.
올바른 원칙에 근거한 사랑(아가페)은 여호와의 선물입니다. 이 사랑의 근원은 여호와이십니다. (요한 1서 4:7) 이 사랑은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입니다. 아가페는 따뜻한 애정을 포함할 수 있지만, 아가페의 주된 특징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비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한 참조 문헌에 따르면, 아가페 사랑이 무엇인지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비이기적으로 사랑할 때 행복하고 의미 있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기 전에도 인류를 위해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영원한 보금자리가 될 지구를 만드셨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은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즐길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지상의 자녀들이 자신이 준비해 놓은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전망을 주심으로 그들에게 비이기적인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파17.10」 7면 1-2항
10월 18일 금요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야고보 2:8.
야고보는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여러분이 계속 편애한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야고보 2:9)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랑이 있다면 학력, 인종,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만 차별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차별하지 않는 태도는 우리의 성품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우쭐대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13:4) 왕국 소식을 이웃 사람들에게 계속 전하기 위해서는 참을성과 친절함과 겸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태 28:19) 그러한 특성이 있다면 회중의 모든 형제 자매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보이면 어떤 좋은 결과가 있습니까? 회중이 연합되어 여호와께 영광이 돌아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회중으로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적절하게도, 성경은 새 인간성에 관한 말을 끝맺으면서 중요한 진리를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 모든 것에 더해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한 연합의 띠입니다.”—골로새 3:14. 「파17.08」 26면 18-19항
10월 19일 토요일
여호와께서는 ··· 자신의 백성[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셔서 거듭거듭 경고하셨다.—역대기하 36:15.
죄를 지으며 살아 왔지만 회개하여 하느님의 은혜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그와 비슷한 동정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께서는 다가오는 심판 때에 아무도 멸망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 후서 3: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악인들을 멸망시키는 조처를 취하실 때까지, 우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동정심으로부터 유익을 얻도록 경고의 소식을 계속 전해야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만난 무리에게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버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들의 불쌍한 처지를 보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마태 9:36; 마가 6:34) 보통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바리새인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마태 12:9-14; 23:4; 요한 7:49)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보면 예수처럼 영적 양식을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습니까? 「파17.09」 9면 6항; 10면 9항
10월 20일 일요일
내가 하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이사야 43:13.
이집트에서 구덩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요셉은 자신이 그 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또는 여호와께서 그를 사용하여 그의 가족이 굶어 죽지 않도록 구출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창세 40:15, 각주; 41:39-43; 50:20) 틀림없이, 여호와께서 하신 일은 요셉의 모든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연로한 사라가 여호와께서 그가 아들을 낳게 해 주실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삭이 태어난 것은 분명 사라가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 21:1-3, 6, 7) 물론, 우리는 약속된 신세계가 오기 전에 여호와께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기적을 통해 없애 주실 것으로 예상하지 않으며, 우리의 삶에서 극적인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의 종들을 도우셨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43:10-12)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온전히 행할 능력을 갖는 데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4:7-9) 그렇습니다. 여호와께 충실을 유지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할 수 있도록 그분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파17.08」 11-12면 13-14항
10월 21일 월요일
네가 하는 일을 모두 여호와께 맡겨라. 그러면 네 계획이 성공할 것이다.—잠언 16:3.
전 시간 봉사를 하면 다른 전 시간 봉사자들을 많이 알게 되며,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사람은 청소년 시절에 여호와를 온전히 섬긴 것이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느낍니다. 결혼하기 전에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던 사람들은 흔히 결혼한 후에도 배우자와 함께 계속 전 시간 봉사를 합니다. (로마 16:3, 4) 계획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편 20:4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당신의 모든 계획이 성공하게 해 주시기를.”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 시대에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그분의 일에 자신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십시오. 여호와를 최선을 다해 섬기면 깊은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기 바랍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시 37:4. 「파17.07」 26면 15-18항
10월 22일 화요일
야를 찬양하여라! ···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마땅한 일인가!—시 147:1.
맡은 일을 잘 해내거나 훌륭한 그리스도인 특성을 나타내는 사람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느님은 우리의 찬양을 얼마나 더 많이 받으셔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놀라운 창조물에 나타난 하느님의 강력한 능력 때문에 그분을 찬양합니다. 또한 아들을 대속물로 주신 일에 잘 나타나 있듯이 하느님께서 인류를 따뜻하게 대해 오셨기 때문에 그분을 찬양합니다. 시편 147편의 필자는 마음이 감동되어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자고 권했습니다. (시 147:7, 12) 이 시의 필자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는 여호와께서 바빌론에 유배되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을 무렵에 살았을 것입니다. (시 147:2) 시편 필자는 분명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참숭배의 장소로 돌아오게 하신 일 때문에 마음이 벅차올라 그분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할렐루야!” 즉 “야를 찬양하여라!” 하고 외칠 어떤 이유들이 있습니까?—시 147:1, 각주. 「파17.07」 17면 1-3항
10월 23일 수요일
여러분 자신을 위해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십시오.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 친구들이 여러분을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일 것입니다.—누가 16:9.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 대부분이 이 불공정하고 상업적인 세상에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재물을 “불의”하다고 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으셨지만 성경에서는 상업 제도가 하느님의 목적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한 것을 풍부하게 주셨습니다. (창세 2:15, 16) 나중에 기름부음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1세기 회중에 성령이 작용했을 때 “아무도 자기 소유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가졌습니다.” (사도 4:32) 예언자 이사야는 모든 사람이 땅에서 나는 것을 풍족하게 누릴 때가 올 것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사야 25:6-9; 65:21, 22) 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 예수의 제자들은 “실용적인 지혜”를 나타내어, 현 세상의 “불의한 재물”을 사용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누가 16:8. 「파17.07」 8면 4-6항
10월 24일 목요일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네 손안에 있다.—욥 1:12.
초기에 기록된 성경 책 중 하나인 욥기에는 욥이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 하느님을 배척할 것이라는 사탄의 주장이 나옵니다. 사탄은 하느님께서 직접 욥에게 고통을 주실 것을 제안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지만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것은 허용하셨습니다. 얼마 안 있어 욥은 자신의 종들과 생계 수단과 사랑하는 열 자녀를 잃었습니다. 사탄은 욥이 겪은 재앙을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욥 1:13-19) 그 후 사탄은 욥이 매우 고통스럽고 끔찍한 질병에 걸리게 했습니다. (욥 2:7) 또한 욥의 아내와 세 명의 거짓 친구들은 상처를 주는 말로 욥을 더욱 괴롭게 했습니다. (욥 2:9; 3:11; 16:2)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사탄의 주장이 완전히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욥은 극심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결코 하느님께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욥 27:5. 「파17.06」 24면 9-10항
10월 25일 금요일
만일 어떤 사람이 ··· 자기 집안 식구들을 부양하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을 저버린 사람입니다.—디모데 전서 5:8.
오늘날 가장들은 자신에게 가족을 물질적으로 부양할 성경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날에 세속 일은 종종 염려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일자리 수가 제한되어 있고 취업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많은 직장인은 보수가 적더라도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또한 더 많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압력에 계속 시달려 정신적, 감정적으로 지치고 건강 문제를 겪기도 합니다. 그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이러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가장 충성을 나타내야 할 대상은 고용주가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입니다. (누가 10:27) 세속 일은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속 일을 통해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를 채우고 봉사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합니다. 그러나 주의하지 않으면 세속 일이 우리가 드리는 숭배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파17.05」 23면 5-7항
10월 26일 토요일
너를 낳아 준 아버지의 말을 잘 듣고, 어머니를 늙었다고 업신여기지 마라.—잠언 23:22.
때때로 진리 안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자신의 자녀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도와 달라고 장성한 전도인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가 다른 사람에게 자녀와 연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 연구 사회자는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 6:1-4) 일부 형제 자매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는 부모의 자녀와 성서 연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연구 사회자는 자신이 영적인 도움을 베푼다고 해서 그 자녀의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연구는 연구생의 집에서 그의 부모나 다른 장성한 증인이 곁에 있을 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적절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연구 중에 생기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이 오해할 만한 여지를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녀를 영적으로 가르칠 책임을 부모에게 주셨으므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부모가 그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파17.06」 8면 15-16항
10월 27일 일요일
내가 어떤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나에게 외국인이 될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4:11.
자녀가 부모의 문화에 거리감을 느낀다면 부모의 언어에 대해, 더 나아가 부모가 가진 믿음에 대해 배우는 것도 꺼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것보다 자녀의 영적 복지를 더 우선시합니다. (고린도 전서 10:24) 새뮤얼이라는 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어떤 언어로 배울 때 영적으로 잘 발전하는지 관찰하고 기도로 지혜를 구했어요. ··· 아이들이 부모의 언어로 집회를 볼 때 유익을 거의 얻지 못하는 걸 보면서 현지 언어 회중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린 아이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봉사했습니다. 또 이곳 형제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도 하고 놀러도 다녔죠.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형제들과 친해지고 여호와와도 가까워졌어요. 여호와를 단지 자신이 섬기는 하느님으로만이 아니라 아버지이자 벗으로 여기게 되었죠. 우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의 언어를 익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파17.05」 10면 11-13항
10월 28일 월요일
여호와를 찬양하여라!—사사 5:2.
머지않아 이 땅은 여호와의 주권만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때가 정말 기다려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드보라와 바락처럼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 여호와여, 주의 적들은 모두 ··· 망하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주를 사랑하는 이들은 영광 가운데 떠오르는 해처럼 되게 해 주십시오.” (사사 5:31) 이 청원의 노래는 여호와께서 사탄의 악한 세상을 끝내실 때 응답될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되면, 적을 멸망시키는 일에 참여할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대로 서서 ··· 여호와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역대기하 20:17) 하지만 그 전까지는 용기와 열심을 나타내 여호와의 목적에 기여할 기회가 많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백성이 자원하니, 여호와를 찬양하여라!”라는 말로 창조물이 아니라 가장 높으신 분께 찬양을 돌리며 승리의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사사 5:1, 2) 오늘날에도 우리가 자원하여 수행하는 봉사에서 많은 사람이 유익을 얻고 “여호와를 찬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파17.04」 32면 17-18항
10월 29일 화요일
나는 ··· 여기서도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창세 40:15.
요셉은 자신이 13년 동안 겪은 불공정한 일들을 잊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반감을 품지는 않았습니다. (창세 45:5-8) 가장 중요한 점으로, 그는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이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여호와에게서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충성을 지킨 결과 여호와께서 불공정을 바로잡으시고 그와 그의 가족을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여호와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잘 지켜야 합니다. 형제들의 불완전함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로마 8:38, 39) 동료 그리스도인에게서 불공정한 일을 당한다면, 요셉처럼 여호와께 더 가까이 가고 그분과 같은 시각을 가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성경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한 뒤에는, 여호와께서 그분이 정하신 때에 그분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그 문제를 여호와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파17.04」 20면 12항; 22면 15-16항
10월 30일 수요일
이 종에게 사내아이를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사무엘상 1:11.
한나는 하느님께 한 서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는 서원을 어기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실로의 장막에 있는 대제사장 엘리에게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이었는데, 여호와께서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제가 이 아이를 여호와께 빌려 드립니다. 이 아이를 그의 평생 동안 여호와께 빌려 드립니다.” (사무엘상 1:24-28) 장막에서 살게 된 “소년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랐습니다.” (사무엘상 2:21) 한나는 그 서원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습니까? 한나는 어린 아들을 매우 사랑했지만, 앞으로는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나가 아들을 곁에 두고 돌보면서 안아 주고 함께 놀아 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어머니들처럼 사랑하는 자녀를 키우면서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나는 하느님께 한 서원을 지킨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마음은 여호와 안에서 기뻐했습니다.—사무엘상 2:1, 2; 시 61:1, 5, 8. 「파17.04」 4-5면 7-8항
10월 31일 목요일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마지막 날에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가 올 것입니다.—디모데 후서 3:1.
사도 바울은 우리 시대가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뒤 이렇게 썼습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더 악해질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3:2-5, 13) 우리는 이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폭력배, 증오에 찬 차별주의자, 흉악범과 같은 악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합니다. 그들 중에는 공공연하게 악행을 일삼는 사람도 있고, 의로운 척하면서 남을 속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악한 사람들에게 직접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그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악행에 대해 들으면 속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악인들이 아이나 노인이나 아무 힘없는 사람들에게 잔인한 행동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 세상 살기가 무서워집니다. 악인들이 나타내는 태도를 보면 그들이 인간 이하이고 짐승 같고 심지어는 악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야고보 3:15) 다행히도 여호와의 말씀에는 이런 나쁜 소식들을 뛰어넘는 좋은 소식이 들어 있습니다. 「파17.04」 10면 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