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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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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9
날19 88-97면

9월

9월 1일 일요일

자녀를 ···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십시오.—에베소 6:4.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는 매우 소중한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 127:3) 고대 이스라엘 나라에서 자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여호와께 헌신한 백성의 일원이었지만, 그리스도인 부모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부모가 하느님과 진리를 사랑한다고 해서 자녀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는 날부터 자녀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그가 헌신하고 침례받은 여호와의 종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가오는 큰 환난 때 구원을 위한 표를 받으려면 우리 각자가 하느님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고 충실히 그분을 섬겨야만 합니다. (마태 24:13) 부모 여러분, 자녀가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아 그분의 종이 되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파18.03」 12면 16-17항

9월 2일 월요일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한결같이 주의를 기울이십시오.—디모데 전서 4:16.

가정에서든 회중에서든 성경에 근거한 징계를 베풀 권한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에게 틀 잡히고 싶은 열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징계를 잘 받아들이고 여호와와 예수를 본받아 다른 사람을 징계할 때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을 받습니다. 우선, 가정과 회중이 평화로운 안식처가 됩니다. 또한 우리 각자는 자신이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며 안정감을 누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미래에 누릴 축복을 아주 조금 맛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시 72:7) 사실, 지금 우리는 여호와의 징계를 받아들임으로 앞으로 한 가족으로서 아버지의 돌봄을 받으며 평화와 연합 가운데 영원히 살 때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11:9) 그 점을 기억한다면 하느님의 징계가 우리에 대한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의 증거라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파18.03」 26면 15항; 27면 17, 19항

9월 3일 화요일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고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았다.—마태 3:6.

그들은 모세 율법을 어긴 죄를 회개한다는 표시로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마태 3:1-6) 하지만 요한이 베푼 가장 중요한 침례는 죄를 회개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아들이자 완전한 인간인 예수께 침례를 주는 특별한 영예를 누렸습니다. (마태 3:13-17) 예수께서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2:22) 예수의 침례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히브리 10:7) 예수께서 지상에서 봉사하실 때 그분의 제자들도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요한 3:22; 4:1, 2)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처럼, 예수의 제자들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도 모세 율법을 어긴 죄에 대한 회개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고 부활되신 후로, 그분의 제자들은 전혀 다른 의미의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파18.03」 5면 6-7항

9월 4일 수요일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고린도 전서 2:15.

“영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영적인 사람은 육적인 사람과는 정반대로 하느님에게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을 본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에베소 5:1) 다시 말해 여호와와 같은 생각과 시각을 갖기 위해 힘씁니다. 영적인 사람에게 하느님은 매우 실제적인 분입니다. 그는 육적인 사람과는 달리 모든 면에서 여호와의 표준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시 119:33; 143:10) 영적인 사람은 육적인 일에 관심을 쏟지 않으며 “영의 열매”를 나타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갈라디아 5:22, 23) 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영적·종교적 문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파18.02」 19면 3, 6항

9월 5일 목요일

매우 귀중한 사람 다니엘.—다니엘 10:11.

다니엘은 바빌론으로 강제로 끌려가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도시는 우상 숭배와 영매술로 가득했습니다. 더욱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무시하면서 그들과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를 조롱했습니다. (시 137:1, 3) 다니엘과 같은 충실한 유대인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다니엘은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얼마 안 있어 음식과 음료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니엘 1:5-8, 14-17) 어떤 면에서는 다니엘의 능력도 그에게 시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대단히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 그 덕분에 특별한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1:19, 20) 하지만 다니엘은 거만해지거나 독선에 빠진 것이 아니라 겸손과 겸허를 유지하면서 언제나 여호와께 합당한 영예를 돌렸습니다. (다니엘 2:30) 사실 여호와께서 다니엘을 노아와 욥과 함께 의의 모범으로 언급할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셨을 때 그는 여전히 나이가 어렸습니다. (에스겔 14:14) 다니엘에 대한 하느님의 확신은 잘못된 것이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죽을 때까지 계속 믿음과 순종을 나타냈습니다. 「파18.02」 5면 11-12항

9월 6일 금요일

레위는 [예수를] 위해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누가 5:29.

예수께서는 쾌락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는 면에서 완벽한 본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결혼 잔치”에도 참석하고 “큰 잔치”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요한 2:1-10) 예수께서는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기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쾌락에 빠져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를 첫째 자리에 두셨으며 다른 사람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헌신적으로 일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형주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인내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여러분에 대해 거짓으로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십시오. 하늘에서 여러분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마태 5:11, 12)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이 명백히 싫어하시는 것뿐 아니라 그분이 싫어하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도 멀리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마태 22:37, 38. 「파18.01」 26면 16-18항

9월 7일 토요일

종을 어려서부터 너무 애지중지하면 나중에는 감사할 줄 모른다.—잠언 29:21.

우리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께 감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을 그분께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해 오신 모든 일을 생각하면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다윗 왕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며 우리가 그분께 무엇을 드리든 그분에게서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것일 뿐임을 인정했습니다. (역대기상 29:11-14) 주는 일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대하게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에게 유익합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가 준 용돈을 아껴서 부모에게 선물을 해 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가 그 선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겠습니까! 부모와 함께 살면서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는 자녀는 가족의 생활비를 어느 정도 보탤지 모릅니다. 부모는 자녀가 그러기를 기대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자녀가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의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지원을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그와 비슷하게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가진 가치 있는 것을 그분께 드릴 때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파18.01」 18면 4, 6항

9월 8일 일요일

당신과 당신의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하십시오.]—신명 30:19.

자녀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육적인 일들을 성경에서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것이 언제나 유익하다고 내가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사야 48:17, 18) 자녀가 침례받기를 원한다면, 부모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따르는 책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합니까? 희생보다 유익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가 10:29, 30) 침례를 받는 사람은 유익도 얻지만 당연히 희생도 치르게 됩니다. 따라서 침례라는 중요한 단계를 밟기 전에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부모가 자녀를 도와주면 자녀의 확신은 점점 강해질 것입니다. 어떤 확신 말입니까?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것이 언제나 가장 유익하다는 확신입니다. 「파17.12」 21면 14-15항

9월 9일 월요일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사야 40:26.

수많은 소중한 형제 자매들이 심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도 나이가 많지만 연로한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형제 자매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치스럽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를 돌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형제 자매들은 이 중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들을 떠안고 살아갑니다! 당신도 그런 문제를 겪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무생물인 별에도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계시다면, 그분을 섬기는 당신에게는 얼마나 더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실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그분을 섬기는 이유는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 19:1, 3, 14) 우리의 사랑 많은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속속들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머리카락까지도 모두 세어 두셨습니다.” (마태 10:30) 또한 시편 필자는 이렇게 확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나무랄 데 없는 자들이 겪는 일을 알고 계신다.” (시 37:18)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어떤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지 눈여겨보시며 각각의 어려움을 인내할 힘을 주실 수 있습니다. 「파18.01」 7면 1항; 8면 4항

9월 10일 화요일

다비다, 일어나십시오!—사도 9:40.

베드로가 다비다를 부활시킨 일은 큰 증거가 되어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 예수에 관한 일반적인 점들에 더해 여호와께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점도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9:36-42) 또 다른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사도 바울이 트로아스의 어느 위층 방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트로아스는 오늘날 터키의 북서쪽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 모임에서 바울은 한밤중까지 연설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두고라는 젊은이가 창문에 걸터앉아 연설을 듣다가 그만 잠이 들어 3층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처음으로 와서 유두고를 살핀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진단을 내렸습니까? 유두고는 단순히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내려와 유두고를 끌어안고 놀랍게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가 살아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들은 유두고가 실제로 죽었다가 부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참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사도 20:7-12. 「파17.12」 5면 10-11항

9월 11일 수요일

와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똑똑히 보아라.—시 46:8.

인간은 인류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습니까? 분명 인류는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이버 범죄와 가정 폭력과 테러와 같은 범죄들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치사적인 질병은 여전히 만연해 있습니다. 오늘날 경제 제도와 정치 제도는 이기적인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러한 세력들은 전쟁과 범죄와 질병과 가난을 완전히 없애지 못합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왕국만이 그러한 문제들을 없앨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실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쟁: 하느님의 왕국은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이기심, 부정부패, 애국심, 거짓 종교, 그리고 사탄을 없앨 것입니다. (시 46:9) 범죄: 하느님의 왕국은 이미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정부도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사야 11:9) 질병: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35:5, 6) 가난: 여호와께서는 가난을 완전히 없애시고 자신의 백성이 영적인 풍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시 72:12, 13. 「파17.11」 23-24면 14-16항

9월 12일 목요일

유혈죄가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신명 19:10.

도피 도시의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혈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생명을 사랑하시며, “무고한 피를 흘리는” 살인을 미워하십니다. (잠언 6:16, 17) 공의롭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실수로 인한 살인도 눈감아 주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와는 달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생명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습니다]. 당신들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방해합니다.” (누가 11:52)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가도록 도울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을 “생명의 수석 대표자”인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결국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길로 이끌었습니다. (사도 3:15) 교만하고 이기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복지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말 잔인하고 무자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파17.11」 15면 9-10항

9월 13일 금요일

누구든지 ··· 나[를]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마가 8:38.

처음에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경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믿음이 자라면서, 여호와를 숭배하려는 자신의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용기 있게 행동한 결과 자신과 증인이 아닌 가족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들에게 이해심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우리는 성경 진리를 배우면서 기쁨에 넘칠지 모르지만, 가족이나 친족들은 우리가 속았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함께 축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죽은 후에도 영원히 벌을 받을까 봐 염려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해심을 보이기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며, 그들의 말을 잘 들어서 그들이 걱정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잠언 20:5) 사도 바울은 “모든 부류의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도 그와 비슷한 태도를 나타낸다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고린도 전서 9:19-23. 「파17.10」 15면 11-12항

9월 14일 토요일

여호와께 ··· 찬양 노래를 불러라.—시 33:2.

어쩌면 우리는 노래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노래하기가 꺼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제안을 적용하면 노래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올바로 호흡하면 더 크고 힘차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전구에 불을 켜려면 전기가 필요하듯이, 말하거나 노래할 때 힘 있는 목소리를 내려면 호흡이 필요합니다. 노래할 때의 성량은 말할 때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커야 합니다. 사실, 때때로 성경은 여호와의 숭배자들이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 ‘기뻐 외쳐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시 33:1-3) 다음의 제안을 따라 해 보십시오. 노래책에서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선택합니다. 크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가사를 낭독합니다. 그다음 목소리 크기를 유지하면서 한 소절의 가사를 한 호흡으로 모두 읽습니다. 그런 다음, 읽을 때와 같은 힘찬 목소리로 그 소절을 노래합니다. (이사야 24:14) 그렇게 하면 더 풍성한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쑥스러워하지 마십시오! 「파17.11」 5-6면 11-13항

9월 15일 일요일

참하느님께서 그 영을 움직여 주신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던 여호와의 집을 재건하러 올라가려고 준비를 했다.—에스라 1:5.

유대인들은 여행하는 동안 틀림없이 자신들이 살게 될 새로운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도시가 한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들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매우 연로한 사람들은 예전 성전의 장엄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에스라 3:12) 당신이 그들과 함께 여행했다면, 새로운 삶의 터전인 예루살렘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겠습니까? 폐허가 된 건물들에 잡초가 무성한 모습을 보면서 슬퍼했을 것입니까?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고 한때 성문과 파수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예 성벽도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바빌론의 거대한 이중 성벽을 떠올렸을 것입니까? 하지만 그들은 용기를 냈습니다. 이미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먼 길을 오는 동안 여호와의 보호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성전이 있던 자리에 제단을 세웠으며, 매일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에스라 3:1, 2. 「파17.10」 26-27면 2-3항

9월 16일 월요일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마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역대기상 28:20.

솔로몬은 아버지에게서 용기에 관해 많은 점을 배웠을 것입니다. 다윗은 전투 경험이 많은 거인과 맞설 때 놀라운 용기를 나타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매끄러운 돌 하나로 골리앗을 무찔렀습니다. (사무엘상 17:45, 49, 50) 그런 다윗이 이제 솔로몬에게 용기를 내어 성전을 지으라고 격려한 것은 참으로 적절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이 성전 공사를 마칠 때까지 함께하실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정신과 마음에 새긴 솔로몬은 자신의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이 장애가 되지 않게 했습니다. 그는 큰 용기를 나타내어 일했으며 여호와의 도움으로 7년 반 만에 웅장한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을 도와주신 것처럼 우리도 가정과 회중 내에서 용기를 내어 일하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41:10, 13) 여호와를 섬기면서 용기를 나타낸다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그분의 축복을 받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파17.09」 28-29면 3-4항; 32면 20-21항

9월 17일 화요일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을 발휘합니다.—히브리 4:12.

여호와의 백성인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즉 그분이 인류에게 보내신 소식이 “살아 있고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많은 형제 자매는 성경에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산증인입니다. 그들은 한때 도둑이나 마약 중독자였거나 성적으로 부도덕한 생활을 했습니다. 혹은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인생이 공허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전도 2:3-11)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이던 많은 사람이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의 힘 덕분에 생명의 길을 찾았습니다. 아마 당신도 「파수대」의 “성경이 생활을 변화시키다” 기사에 실린 경험담을 읽으면서 많은 격려를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받아들인 후에도 성경의 도움 덕분에 영적으로 계속 발전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파17.09」 23면 1항

9월 18일 수요일

그에 대한 여호와의 동정심 때문에 그 사람들이 ··· 그[를] 데리고 나와 도시 밖에 두었다.—창세 19:16.

롯이 경험한 이 일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충실한 백성들이 때때로 처하는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계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사야 63:7-9; 야고보 5:11, 각주; 베드로 후서 2:9)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도 동정심을 나타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군가의 옷을 담보로 잡는 문제에 관해 이스라엘에 주어진 법을 고려해 보십시오. (출애굽 22:26, 27) 몰인정한 사람은 돈을 빌려 줄 때 빌리는 사람의 옷을 담보로 잡고는 그가 밤에 덮고 잘 것이 없어도 돌려주려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그런 무정한 태도와 행동을 피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백성은 동정심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이 법에 들어 있는 원칙을 생각해 보면 그에 따라 행동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비유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형제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면,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못 본 척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겠습니까?—골로새 3:12; 야고보 2:15, 16; 요한 1서 3:17. 「파17.09」 9면 4-5항

9월 19일 목요일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누가 23:34.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스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온화와 참을성을 보이는 면에서 정말 훌륭한 본이 되십니다! (베드로 전서 2:21-23) 우리는 어떻게 온화와 참을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있더라도 계속 서로 참고 서로 기꺼이 용서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골로새 3:13) 바울이 한 이 명령을 따르려면 반드시 온화와 참을성을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꺼이 용서한다면 회중의 연합을 더욱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화와 참을성을 입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에 꼭 필요합니다. (마태 5:5; 야고보 1:21) 더 중요한 점으로, 우리가 그 특성들을 나타낸다면 여호와께 영예를 돌리고 다른 사람들이 성경의 조언을 따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갈라디아 6:1; 디모데 후서 2:24, 25. 「파17.08」 25-26면 15-17항

9월 20일 금요일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경건한 정성을 바치는 사람들을 시련에서 구출하[는지] 알고 계십니다.—베드로 후서 2:9.

성경을 조사해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하신 많은 예들을 보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이 유다를 다스릴 때, 아시리아의 산헤립 왕은 유다를 침략해 예루살렘을 제외한 모든 요새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열왕기하 18:1-3, 13) 결국 산헤립은 예루살렘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기도로 여호와께 나아갔으며 여호와의 예언자 이사야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열왕기하 19:5, 15-20) 또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요구한 조공을 바침으로 합리적인 태도를 나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열왕기하 18:14, 15) 나중에 히스기야는 장기간 이어질 포위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역대기하 32:2-4) 하지만 결국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 하룻밤에 산헤립의 군사 18만 5000명을 전멸시키셨습니다. 히스기야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열왕기하 19:35. 「파17.08」 10면 7항; 11면 12항

9월 21일 토요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마태 28:19, 20.

전 시간 봉사자가 되기 위해 어떤 계획을 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특성들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를 더 잘 섬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회중 집회 때 자신의 믿음을 표현할 기회를 찾아 보십시오. 학교에 다니면서도 좋은 소식을 전파하며 경험을 쌓고 봉사 기술을 익힐 수 있습니다. 재치 있게 의견을 물어보고 귀 기울여 들음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법을 배우십시오. 또한 왕국회관 청소와 유지·보수를 돕는 것과 같은 회중 일에 자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겸손하고 기꺼이 자원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사람들을 사용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시 110:3; 사도 6:1-3)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선교 봉사에 초대했습니다.—사도 16:1-5. 「파17.07」 24면 7항; 26면 14항

9월 22일 일요일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이사야 45:23.

인간이나 천사들의 마음속에 여호와의 주권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남아 있다면, 나라와 인종, 부족, 가족, 개인 간에 진정한 평화와 연합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주권이 입증되고 나면, 모두가 그분의 의로운 통치에 영원히 복종하게 될 것이며 온 우주에 평화가 회복될 것입니다. (에베소 1:9, 10) 하느님의 주권의 정당성은 입증될 것이며, 사탄과 인간의 통치는 완전히 실패해 제거될 것입니다. 메시아 왕국을 통한 하느님의 통치는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통치권을 충성스럽게 지지할 수 있다는 점이 충절을 지킨 사람들에 의해 증명될 것입니다. (이사야 45:24) 당신도 그처럼 충절을 지키며 여호와의 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기를 바랍니까? 분명 그럴 것입니다. 그와 같이 충절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면 주권 쟁점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그 쟁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파17.06」 23면 4-5항

9월 23일 월요일

진정한 친구는 항상 사랑하니 그는 고난의 때를 위해 태어난 형제이다.—잠언 17:17.

슬픔을 느끼는 과정은 사람마다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친구와 친척들이 곁에 있어 주는 처음 며칠간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러 달 동안 계속 도움을 베푸십시오.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사별의 아픔을 겪는 사람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계속해서 위로를 베풀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7)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은 기념일이 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밀려와 매우 힘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특정한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보거나 어떤 활동을 할 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심지어 냄새나 소리나 계절도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은 대회나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많은 일들을 처음으로 혼자 하게 될 때 특히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우에만 격려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파17.07」 16면 17-19항

9월 24일 화요일

여러분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십시오.—빌립보 2:4.

흥미롭게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표현하다 보면 자신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자매들은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 좋은 소식을 전할 때 큰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치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구역 내에 있는 사람들과 회중 성원들에게 관심을 표현함으로 회중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면에서 좋은 본을 보였습니다. 그는 “젖 먹이는 어머니”처럼 데살로니가 회중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그들에게 영적 아버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7, 11, 12) 참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법을 배우는 자녀는 가족을 위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면으로도 가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파17.06」 7면 13-14항; 8면 17항

9월 25일 수요일

여러분 자신을 위해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십시오.—누가 16:9.

오늘날, 수십억 명은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몇 대가 먹고살기에 충분할 만큼 엄청난 부를 쌓아 놓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경제 제도가 하느님의 왕국이 올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18:3에서 “상인들”로 묘사된 탐욕적인 상업 제도는 정치적, 종교적 요소와 함께 사탄의 세상을 구성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정치와 거짓 종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사탄의 세상의 상업 제도로부터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오늘날의 상업 제도와 관련하여 자신이 어떤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소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느님께 충실을 나타내는 것인가? 어떻게 상업 제도와 관련을 맺는 일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가? 하느님의 백성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어떤 예들이 있는가?’ 「파17.07」 7-8면 1-3항

9월 26일 목요일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과 과음과 생활의 염려로 짓눌[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누가 21:34.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염렷거리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이 “왕국의 말씀”을 받아들여 처음에는 발전하지만 “이 세상 제도의 염려와 재물의 기만적인 힘 때문에 말씀이 숨 막히게” 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마태 13:19-22; 마가 4:19) 그러므로 조심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일상생활의 염려에 휩싸여 영적인 활동에 대한 열심이 식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일을 첫째 자리에 둠으로 그분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계속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자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애착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주로 영적인 활동에서 기쁨을 얻는가, 아니면 다른 활동에서 기쁨을 얻는가?’ 「파17.05」 23면 3-4항

9월 27일 금요일

이해하기 쉽게 말하[십시오.]—고린도 전서 14:9.

“외국인 거주자들”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증인들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 경우 현지 언어 회중과 연합해야 할 것입니다. (시 146:9) 하지만 인근에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회중이 있는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가장은 가족이 어떤 언어 회중과 연합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배우자와 자녀들과 의논한 뒤에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1:3) 부모는 자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간에 자녀가 진리를 명확히 이해하려면 매주 집회 때 단지 몇 시간 동안 영적인 교육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가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집회를 본다면 단지 참석해 있기만 해도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아마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입니다. 반면, 자녀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집회를 보는 경우에는 그러한 유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4:11. 「파17.05」 10면 10-11항

9월 28일 토요일

백성이 자원하니, 여호와를 찬양하여라!—사사 5:2.

우리 각자는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믿음과 용기를 나타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여호와의 분명한 명령을 수행하는가? 경제적으로 더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서 다른 도시나 외국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족과 회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도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는가?’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주권을 지지할 기회를 주심으로 우리를 품위 있게 대해 주십니다. 마귀가 최초로 사람들을 유혹해서 하느님을 버리고 자신의 주권을 옹호하게 만든 이래로, 우리 각자가 여호와의 통치권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의 편임을 사탄에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믿음과 충절이 동기가 되어 기꺼이 자원할 때 기뻐하십니다. (잠언 23:15, 16) 우리가 여호와의 주권을 지지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면, 그분은 자신을 조롱하는 사탄에게 대답하실 수 있습니다. (잠언 27:11)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께 충성과 순종을 드릴 때 그분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시고 크게 기뻐하십니다. 「파17.04」 32면 15-16항

9월 29일 일요일

언제든지 하느님께 서원하거든 미루지 말고 지켜라. 그분이 미련한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서원하는 것은 지키도록 하여라.—전도 5:4.

모세 율법에는 이러한 말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여호와께 서원을 하거나 맹세를 통해 스스로 ··· 서원을 하면, 자기 말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그는 자기가 하겠다고 서원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민수 30:2) 후에 솔로몬은 영감을 받아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을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서원이 심각한 일임을 확증하셨습니다. ‘“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되며, 여호와께 한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는 말을 옛사람들은 들었습니다.’ (마태 5:33) 따라서 하느님께 약속하는 것은 분명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서원을 어떻게 여기는가는 여호와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다윗은 이렇게 썼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습니까? ··· ‘내[여호와의] 생명을 두고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고 기만적으로 맹세하지도 않는 자이다.’”—시 24:3, 4; 각주. 「파17.04」 3-4면 3-4항

9월 30일 월요일

혀로 중상하지 않[는] 사람—시 15:3.

그리스도인은 불공정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 경우, 남의 험담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회중 성원이 심각한 잘못을 범했을 경우 장로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은 적절한 일입니다. (레위 5:1)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심각한 범죄가 관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장로들이나 그 밖의 사람들을 개입시키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 5:23, 24; 18:15) 그러한 문제는 충성을 나타내어 성경 원칙에 따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은 자신이 불공정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동료 그리스도인에 대해 험담하지 않아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옳든 그르든, 상처를 주는 말은 결코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와 형제들에게 충성스럽다면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파17.04」 21면 1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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