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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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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9
날19 108-118면

11월

11월 1일 금요일

불경건과 세상적인 욕망을 배척하고 ··· 건전한 정신과 의와 경건한 정성으로 [사십시오.]—디도 2:12.

자기 징계에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징계할 줄 아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누구나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부모가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자녀를 참을성 있게 꾸준히 훈련하면 자녀는 자신을 징계하는 법을 배우고 지혜를 얻게 됩니다. (에베소 6:4) 이 원칙은 성인이 되어 여호와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을 징계하는 법을 이미 어느 정도 배웠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새로 제자가 된 사람들은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새 인간성”을 입는 법을 배워 나가면서 영적으로 점차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에베소 4:23, 24) 그처럼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징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18.03」 29면 3-4항

11월 2일 토요일

후대에 힘쓰십시오.—로마 12:13.

우리는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영적 식사에 함께 초대받은 손님으로 여기고 환영합니다.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이 이 식사를 주관하며 우리를 초대합니다. (로마 15:7) 하지만 집회에 새로운 사람이 참석하면, 비유적으로 말해 우리도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이 됩니다. 새로운 사람의 외모나 옷차림이 어떠하든 솔선해서 그를 환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야고보 2:1-4) 그 사람 곁에서 챙겨 주는 사람이 없다면, 함께 앉자고 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집회 내용을 잘 따라가고 성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 사람은 고마워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후대에 힘쓰는” 한 가지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다른 회중에서 공개 연사가 오거나 순회 감독자나 지부 사무실의 대표자가 방문할 때, 우리는 그러한 기회를 활용해 후대를 베풀 수 있습니다. (요한 3서 5-8) 다과나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후대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파18.03」 15면 5, 7항

11월 3일 일요일

내가 침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사도 8:36.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한 남자의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헌신한 민족인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더 이상 여호와와 특별한 관계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 남자는 유대교 전통을 열심히 따랐지만 나중에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활되어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 남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아나니아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가 일어나 침례를 받았다”고 알려 줍니다. (사도 9:17, 18; 갈라디아 1:14) 그 유대인 남자는 다름 아닌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하느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서 예수께서 수행하시는 역할에 관한 진리를 이해하자 곧바로 행동했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사도 22:12-16) 나이가 많든 적든, 오늘날 성서 연구생들도 그렇게 합니다. 「파18.03」 5-6면 9-11항

11월 4일 월요일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에게 하듯 말할 수 없어서, 육적인 사람에게 하듯 ··· 말했습니다.—고린도 전서 3:1.

야곱은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육적인 생각을 가진 형 에서와 지내면서 인내해야 했습니다. 사실,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또한 야곱의 장인은 그를 여러 번 속이고 착취하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처럼 “육적인”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강한 영성을 유지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2:14-16) 그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믿었으며, 여호와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서 특별한 역할을 할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창세 28:10-15) 야곱은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표준과 뜻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예를 들어, 야곱은 에서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을 때 하느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 기도하니 저를 ··· 구해 주십시오. ··· 주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를 선대하고 네 자손을 ··· 바다의 모래알처럼 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32:6-12) 야곱은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을 믿었고 하느님의 뜻과 목적과 일치하게 행동하기를 원했습니다. 「파18.02」 20면 9-10항

11월 5일 화요일

그는 충절을 지키는 올바른 사람이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한다.—욥 1:8.

욥은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욥은 시련을 겪기 전에 “동방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자”였습니다. (욥 1:3) 그는 부유하고 유명했으며 사람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욥 29:7-16) 그런데도 욥은 우월감을 갖거나 하느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그를 “내 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욥에게 악랄한 공격을 연이어 퍼부었고, 그 결과 욥은 자신이 겪는 시련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욥 1:13-21) 그 후에 세 명의 거짓 위로자가 와서 잔인한 말로 욥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욥에게 잘못이 있어서 하느님이 벌을 주시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욥 2:11; 22:1, 5-10) 하지만 욥은 충절을 유지했습니다. 시련이 끝나자 여호와께서는 욥의 재산을 전보다 두 배로 늘려 주셨고 그가 140년을 더 살게 해 주셨습니다. (야고보 5:11) 그 140년 동안에도 욥은 계속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파18.02」 6면 16항; 7면 18항

11월 6일 수요일

사람들은 ··· 자랑하고, 거만하고, ··· 교만으로 우쭐댈 것입니다.—디모데 후서 3:2, 4.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를 존경하고 우러러보기를 갈망합니다. 한 학자는 교만에 사로잡힌 사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속에 스스로에게 절을 하기 위한 작은 제단이 있다.” 지나친 교만은 너무 불쾌한 것이라서 교만한 사람조차 다른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교만을 몹시 싫어하십니다. 그분은 “거만한 눈”을 미워하십니다. (잠언 6:16, 17) 교만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됩니다. (시 10:4) 교만은 마귀의 특성입니다. (디모데 전서 3:6) 안타깝게도 일부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종들도 교만에 빠졌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는 여러 해 동안 충실함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강해지자, 마음이 거만해져서 파멸을 자초했다. 그는 자기 하느님 여호와께 불충실하게 행동하여,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 분향하려고 했다.” 나중에 히스기야 왕도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거만의 덫에 빠졌습니다.—역대기하 26:16; 32:25, 26. 「파18.01」 28면 4-5항

11월 7일 목요일

여러분 각자는 형편에 따라 얼마를 따로 모아 두십시오.—고린도 전서 16:2.

성경 시대에 여호와의 백성에게 기부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때때로 여호와의 백성은 특별한 일이나 공사를 위해 기부했습니다. (출애굽 35:5; 열왕기하 12:4, 5; 역대기상 29:5-9)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형제들은 기근 때문에 동료 형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각자 형편에 따라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의했습니다.” (사도 11:27-30) 하느님의 백성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할 돈과 물품을 마련했습니다. 1세기에 일부 그리스도인은 밭이나 집과 같은 소유물을 판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사도들은 그 기금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도 4:34, 35)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따로 모아 두었다가 정기적으로 헌금했습니다. 따라서 매우 부유한 사람이든 아주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기부에 참여했습니다.—누가 21:1-4. 「파18.01」 18면 7항; 19면 9항

11월 8일 금요일

소년이라도 피곤해하고 지친다.—이사야 40:30.

우리가 아무리 능력이 많다 해도, 자기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일을 모두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걱정을 하느님께 털어놓았을 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능력은 약함 가운데서 완전해진다.” 바울은 그 말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합니다.” (고린도 후서 12:7-10)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더 높은 근원에서 오는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성령은 바울에게 부족한 힘을 공급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더해, 하느님의 영에 힘입어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완수할 수 없었을 일들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면 우리는 강해질 수 있습니다! 「파18.01」 9면 8-9항

11월 9일 토요일

[그대는] 유아기부터 거룩한 기록들을 알았습니다. 그 기록들은 ··· 그대를 지혜롭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해 줄 수 있습니다.—디모데 후서 3:15.

자녀가 침례받기를 원한다면, 부모는 여호와의 조직이 부모를 위해 마련해 준 자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축복인 동시에 심각한 책임이라는 점을 깨닫도록 자녀를 더 잘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는 막중한 책임과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 6:4) 부모는 성경의 가르침을 알려 주는 것에 더해 자녀가 배우는 내용에 대한 확신을 기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녀는 여호와께 헌신하고 마음을 다해 그분을 섬기기로 결심할 만큼 강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그분의 영과 부모 여러분의 도움을 통해, 여러분의 자녀들이 ‘지혜롭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파17.12」 22면 17, 19항

11월 10일 일요일

당신은 ··· 날들의 끝에 당신의 몫을 받기 위해 일어설 것이오.—다니엘 12:13.

다니엘은 거의 100세에 이르러 죽음이 멀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다니엘서의 끝부분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러한 보증을 해 주셨습니다. ‘계속 끝까지 가시오. 당신은 쉴 것이오.’ 연로한 다니엘은 죽은 사람들이 쉬고 있으며 “무덤에는 ···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역시 조금만 있으면 무덤에 들어갈 것이었습니다. (전도 9:10) 그렇다고 해도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약속된 미래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천사는 이어서 다니엘에게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을 했습니다. 천사는 그날이 언제일지, 다니엘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수명이 다하면 죽어서 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다니엘은 ‘자신의 몫을 받기 위해 일어설’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죽고 난 뒤 먼 미래에 부활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이었습니다. 그 부활은 “날들의 끝”에 있을 것이었습니다. 「파17.12」 7면 17-18항

11월 11일 월요일

한 증인의 증언만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민수 35:3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자신의 높은 공의의 표준을 따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선 장로들은 사실을 정확히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자비를 보일 것인지 결정할 때 살인자의 동기, 태도, 이전의 행실을 주의 깊이 검토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공의를 본받기 위해, 살인자가 피해자를 “미워하여” “악의를 품고” 행동했는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민수 35:20-24) 증인들의 증언을 고려할 때는 적어도 두 명의 증인이 고의적인 살인 혐의를 입증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장로들은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확인한 후, 범죄자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검토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을 보고 문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필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여호와의 성령이 필요했습니다. 성령이 있어야만 그들은 하느님의 통찰력, 자비, 공의를 본받을 수 있었습니다.—출애굽 34:6, 7. 「파17.11」 16면 13-14항

11월 12일 화요일

이러한 것들을 숙고하십시오.—디모데 전서 4:15.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과 처음 연합하기 시작했을 때 얼마의 값진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자 생명을 주신 분이며 인류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들을 통해 대속을 마련하심으로 사랑을 나타내셨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의 왕국이 모든 고통을 없앨 것이며 우리가 왕국 통치 아래 평화와 행복을 누리면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 3:16; 계시록 4:11; 21:3, 4) 때때로 성경 예언이나 일부 성경 구절에 대한 이해가 조정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이해가 밝혀지면, 시간을 내어 그 내용을 주의 깊이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사도 17:11) 우리는 이전의 이해와 새로운 이해 사이의 주된 차이점뿐만 아니라 미묘한 차이점까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분명 새로운 진리를 자신의 보물 창고에 안전하게 쌓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파17.06」 12-13면 15-16항

11월 13일 수요일

성적 부도덕, 더러움, 무절제한 성욕[과] 관련해 땅에 속한 여러분의 몸의 지체를 죽이십시오.—골로새 3:5.

여호와의 도덕 표준을 어기게 만들 수 있는 상황들을 경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트를 하는 남녀는 처음 교제를 시작할 때부터 신체 접촉이나 입맞춤이나 둘만 함께 있는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한계를 정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잠언 22:3) 또한 그리스도인이 출장을 가거나 이성과 함께 일해야 할 때 도덕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잠언 2:10-12, 16) 우울하거나 감정이 가라앉아 있을 때는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달래 줄 사람이 너무나 절실해서 그 누가 관심을 보이든 그냥 받아들이려 할지 모릅니다. 그런 느낌이 든다면, 여호와와 그분의 백성에게 의지해 도움을 받으십시오.—시 34:18; 잠언 13:20. 「파17.11」 26면 4-5항

11월 14일 목요일

도피 도시들을 너희를 위해 선택하여라.—여호수아 20:2.

여호와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모든 살인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셨습니다. 고의적인 살인자는 희생자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 즉 “피의 복수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민수 35:19) 그러한 조처를 통해 무고하게 죽은 사람의 피에 대해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신속한 처형은 약속의 땅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막아 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사는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피[즉 유혈 행위]가 땅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민수 35:33, 34)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수로 인한 우발적인 살인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그 경우 살인자의 행동은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지만, 그는 여전히 무고한 사람을 죽인 죄가 있었습니다. (창세 9:5)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살인자가 피의 복수자를 피해 여섯 개의 도피 도시 중 하나로 피신할 수 있는 자비의 마련이 있었습니다. 도피 도시에서 그는 보호를 받았습니다. 고의성이 없는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 도시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민수 35:15, 28. 「파17.11」 9면 3-5항

11월 15일 금요일

슬기로운 자는 모욕을 당해도 지나쳐 준다.—잠언 12:16.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아버지께서 진리를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시아버지가 잘 지내시는지 알아보려고 통화하기 전에 우리 부부는 아버님이 화를 내시면 똑같이 응수하지 않게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곤 했지요. ··· 또 대화가 길어지면 종교에 관한 열띤 논쟁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끝낼 시간을 정해 두었죠.” 가족을 깊이 사랑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늘 노력해 왔다면, 그들과 갈등을 겪을 때 죄책감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 여호와에 대한 충성을 앞자리에 두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처럼 확고한 입장을 취한다면, 가족들은 성경 진리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자신의 생활을 통해 보여 주십시오. 사랑 많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처럼 그들에게도 어떤 인생을 살지 선택할 기회를 주십니다.—이사야 48:17, 18. 「파17.10」 15-16면 15-16항

11월 16일 토요일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요한 1서 3:18.

우리는 사랑을 단지 말로만 표현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특히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그저 잘 지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야고보 2:15, 16)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여호와와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분께 “수확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파 활동에 최선을 다해 참여할 것입니다. (마태 9:38) 사도 요한은 우리가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랑은 ‘위선이 없어야’ 합니다. (로마 12:9; 고린도 후서 6:6) 그러므로,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한다면 진정한 사랑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위선이 있는 사랑도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사실 그런 사랑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겉만 번지르르한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파17.10」 8면 5-6항

11월 17일 일요일

이 율법책을 ··· 밤낮으로 낮은 소리로 읽어[야 한다.] 그러면 네가 ··· 지혜롭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여호수아 1:8.

하느님의 말씀이 힘을 발휘하게 하려면 성경을 정기적으로, 가능하다면 매일 읽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아주 바쁘게 생활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심지어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도 성경 읽기 계획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 5:15, 16) 수많은 여호와의 백성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을 내어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나 마칠 때 혹은 그 밖의 다른 때에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습니다. 그들은 시편 필자의 이러한 말에 공감합니다. “내가 당신의 법을 어찌나 사랑하는지요! 온종일 그것을 숙고합니다.” (시 119:97) 하지만 성경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읽은 내용을 묵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 1:1-3) 그렇게 할 때에만 시대를 초월한 성경의 지혜를 개인 생활에 가장 잘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책으로 읽든 전자 기기로 읽든, 우리의 목표는 그 말씀을 성경에서 옮겨 우리의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파17.09」 24면 4-5항

11월 18일 월요일

여러분은 모두 ···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내십시오.—베드로 전서 3:8.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동정심을 나타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울 왕은 하느님의 백성의 적인 아각의 목숨을 살려 주었을 때 자기 나름대로 동정심을 나타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께 불순종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사울에게서 이스라엘의 왕권을 빼앗기로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5:3, 9, 15, 각주) 물론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재판관이십니다.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시며 동정심을 나타내서는 안 되는 때를 아십니다. (애가 2:17; 에스겔 5:11) 그분이 자신에게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실 때가 오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6-10) 그때 그분은 자신이 악하다고 판결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처형하심으로, 그분이 구원할 의로운 사람들에게 합당한 동정심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물론, 누가 처형되고 누가 살아남을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파17.09」 10-11면 10-12항

11월 19일 화요일

영의 열매는 ··· 자제입니다.—갈라디아 5:22, 23.

자제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특성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완벽한 자제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제를 계속 나타내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은 자제의 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제가 부족하면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되고 학교 성적이 떨어지거나 직장에서 능률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또한 언어 및 신체적 폭력, 술 취함, 이혼, 불필요한 빚, 중독, 수감, 정신적 충격, 성병, 원치 않는 임신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시 34:11-14) 그런데 사람들의 자제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습니다. 1940년대에 자제력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그러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사람들의 자제력이 그때보다 훨씬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제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는 한 가지 증거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디모데 후서 3:1-3. 「파17.09」 3면 1-2항

11월 20일 수요일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 줄 것입니다.—빌립보 4:7.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편안해집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전서 5:10) 그러한 사실을 아는 것은 염려나 낙담에 압도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줍니다. 머지않아 인류는 이제까지 땅에 일어난 적이 없는 가장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마태 24:21, 22) 그 환난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우리는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염려에 휩싸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과거에 하신 일들을 통해, 그분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자신의 목적을 이루실 것이며 때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렇게 하실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실 때마다, 우리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를 새로운 방법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파17.08」 12면 16-17항

11월 21일 목요일

주의 임재 때까지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야고보 5:7.

충실한 예언자들인 이사야와 하박국은 “언제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여호와께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6:11; 하박국 1:2)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주위 사람들의 믿음 없는 태도를 보시고 비슷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마태 17:17) 따라서 우리도 때때로 그와 동일한 질문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어떤 면으로인가 불공정한 일을 겪어 왔을 수 있습니다. 또는 나이가 들어 건강이 악화되었거나,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디모데 후서 3:1) 그런가 하면 주위 사람들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지쳤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과거에 살았던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이 우리와 같은 질문을 거리낌 없이 했으며 그러한 질문을 했다고 해서 여호와께 정죄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힘든 상황에 처할 때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제자 야고보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파17.08」 3-4면 1-3항

11월 22일 금요일

여러분 자신을 위해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십시오.—누가 16:9.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불의한 재물”을 사용해 하늘에 계신 분들을 친구로 사귀라고 권하셨습니다. 우리의 소유물로 충실을 나타낼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방법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세계적인 전파 활동을 위해 기부하는 것입니다. (마태 24:14) 인도에 사는 한 어린 소녀는 작은 저금통에 동전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갖고 싶은 장난감도 사지 않았습니다. 저금통이 가득 차자, 소녀는 그 돈을 전파 활동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코코넛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인도의 한 형제는 말라얄람어 현지 번역 사무실에 많은 양의 코코넛을 헌물했습니다. 번역 사무실에서 어차피 코코넛을 사야 하기 때문에 코코넛을 직접 헌물하는 것이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실용적인 지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의 형제들은 베델 가족을 위해 올리브유나 치즈와 같은 식품을 정기적으로 헌물합니다. 「파17.07」 8면 7-8항

11월 23일 토요일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불러 보아라.—시 137:3.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예언하신 대로 페르시아 왕 키루스를 통해 그들을 구출하셨습니다. 바빌론을 정복한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 예루살렘에 그분을 위해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주셨다. 너희 가운데 있는 그분의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기를 바란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역대기하 36:23) 이 일로 인해 바빌론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으로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만이 아니라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위로를 베푸셨습니다. 그 점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이 찢긴 이들을 고쳐 주시고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시 147: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신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의 감정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시 34:18; 이사야 57:15)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어떤 시련을 겪든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십니다.—야고보 1:5. 「파17.07」 18면 4-5항

11월 24일 일요일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누가 12:34.

여호와께서는 우주에서 가장 부유한 분이십니다. (역대기상 29:11, 12) 관대한 아버지이신 그분은 영적 보물의 뛰어난 가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그 보물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영적 보물을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합니다! 그 보물 중에는 (1) 하느님의 왕국, (2) 생명을 구하는 봉사의 직무, (3) 그분의 말씀에 들어 있는 소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보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잃고 그 보물을 내버리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보물을 계속 간직하려면, 잘 사용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계속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은 하느님의 왕국의 국민이 되기 위해 생활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로마 12:2)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과 부도덕한 성적 욕망과 같은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계속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잠언 4:23; 마태 5:27-29. 「파17.06」 9면 1항; 10면 7항

11월 25일 월요일

네가 ··· 이것을 알고 있느냐?—욥 38:21.

하느님께서는 욥에게 그가 고통을 겪는 이유를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그분이 마치 뭔가를 해명해야 하는 것처럼 욥이 왜 고통을 겪는지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욥이 위대하신 하느님에 비할 때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깨닫도록 돕고 싶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욥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더 큰 쟁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도우셨습니다. (욥 38:18-20) 그 덕분에 욥은 올바른 시각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매우 극심한 시련을 인내한 욥에게 그처럼 단도직입적으로 교훈하신 것은 가혹한 일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욥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힘든 시련을 겪었지만 욥은 결국 합당한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한 말을 거두어들이고 먼지와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욥이 그러한 태도를 나타낸 것은 여호와께서 해 주신 예리하면서도 힘이 되는 조언을 잘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욥 42:1-6) 욥이 여호와의 시정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견해를 바로잡자, 그분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충실을 나타낸 욥을 승인하신다는 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욥 42:7, 8. 「파17.06」 24-25면 11-12항

11월 26일 화요일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누가 10:42.

자신이 세속 일과 영적인 책임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다음과 같은 자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세속 일은 재미있고 즐겁다고 느끼면서 영적인 활동은 지루하거나 따분하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이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어느 쪽에 진정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속 일과 영적인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자매지간인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셨는데, 마르다가 식사 준비로 한창 바쁠 때 마리아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10:38-42)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마르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속 일 때문에 주의가 산만해지는 일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좋은 몫”을 선택해야, 즉 영적인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파17.05」 24면 9-10항

11월 27일 수요일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들어라.—잠언 1:8.

여호와께서는 자녀를 진리 안에서 양육할 중요한 책임을 조부모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부모에게 맡기셨습니다. (잠언 31:10, 27, 28) 하지만 현지 언어를 모르는 부모들은 진리를 자녀의 마음에 심어 주는 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한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부모에게 주어진 영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노력도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6:4) 예를 들어, 부모는 회중 장로들에게 가족 숭배를 사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해 달라고 하거나 자녀가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이따금씩 다른 가족을 초대해서 가족 숭배를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은 영적으로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잘 발전합니다. 이를테면, 함께 봉사를 하거나 건전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잠언 27:17. 「파17.05」 11-12면 17-18항

11월 28일 목요일

이집트로 피신하시오.—마태 2:13.

여호와의 천사가 요셉에게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려 한다고 경고하자, 그는 아내와 어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피했습니다. 그들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난민으로 살았습니다. (마태 2:14, 19-21) 수십 년 뒤에 예수의 초기 제자들은 박해 때문에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도 8:1) 예수께서는 많은 제자들이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도피하게 될 것을 내다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도시에서 사람들이 여러분을 박해하거든, 다른 도시로 피하십시오.” (마태 10:23) 현대의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와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많은 증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진 것을 거의 다 잃었습니다. 일부 증인들은 대피하는 중에 혹은 난민 보호소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난민 보호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도박과 도둑질과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이 결국 끝난 것처럼 자신들의 보호소 생활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냈습니다.—고린도 후서 4:18. 「파17.05」 3-4면 2-5항

11월 29일 금요일

당신의 법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풍부한 평화가 있으니,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시 119:165.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나 자신이나 내가 아는 사람이 회중에서 불공정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도 걸려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충실한 종인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며 충성스럽게 그분을 의지합니다. 한편 우리는 자신이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시각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말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충성을 나타내고 그분이 문제를 바로잡으실 때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겠다고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의 승인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온 땅의 심판관”이신 여호와께서는 분명 언제나 옳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롭기 때문입니다.—창세 18:25; 신명 32:4. 「파17.04」 22면 17항

11월 30일 토요일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 여호와께 돌아오너라. 그분이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이사야 55:7.

큰 환난이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변화하기를 거부하고 계속 이 세상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는 땅에서 악한 사람들을 영원히 없애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시 37:10) 악인들은 자신들이 그런 심판을 받을 리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많은 악인들은 자기가 저지른 일을 숨기는 법을 알고 있으며, 흔히 공정한 판결과 처벌을 피해갑니다. (욥 21:7, 9)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하느님의 눈이 사람의 길 위에 있어, 그의 발걸음을 낱낱이 보[십니다.] 행악자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어둠도, 짙은 그늘도 없습니다.” (욥 34:21, 22) 그 누구도 여호와 하느님의 눈을 피해 숨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기꾼도 그분을 속일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짙은 어둠 속에서도 무한한 능력으로 진실을 꿰뚫어 보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마겟돈이 끝난 후에 악인들이 있던 곳을 살펴보아도 그들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사라지고 없을 것입니다!—시 37:12-15. 「파17.04」 10면 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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