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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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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9
날19 67-77면

7월

7월 1일 월요일

하느님의 강력한 손 아래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이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베드로 전서 5:6.

셉나는 아마도 히스기야의 “집을 감독”하는 관리인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22:15) 하지만 안타깝게도 셉나는 교만해져서 자신의 영광을 추구했습니다. (이사야 22:16-18) 셉나가 자신의 영광을 추구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의 “직책을 박탈”하고 그의 자리에 엘리아김을 앉히셨습니다. (이사야 22:19-21) 그 일은 아시리아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계획하고 있을 때 있었습니다. 얼마 뒤 산헤립은 고위 관리들을 큰 군대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 유대인들의 사기를 꺾고 히스기야를 위협해 항복을 받아 내려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18:17-25) 엘리아김은 아시리아의 관리들을 만나러 나갔는데,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을 더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이제 비서관으로 일하게 된 셉나였습니다. 셉나는 자신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억울해하거나 분을 품지 않고 덜 중요해 보이는 책임을 겸손히 받아들인 것입니까? 「파18.03」 25면 7-8, 10항

7월 2일 화요일

계속 영을 따라 걸으십시오. 그러면 육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갈라디아 5:16.

우리의 생각이 물질주의나 육적인 욕망에 쏠릴 때에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계속 성령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생각을 이끌어 다시 올바른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누가 11:13) 사도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영적인 사람답게 행동하지 못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마태 16:22, 23; 누가 22:34, 54-62; 갈라디아 2:11-14)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여호와의 도움을 받아 점차 그리스도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우리가 어떤 면에서 노력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1:5-8) “모든 진지한 노력을 다해” 자제, 인내, 형제 애정과 같은 특성을 기르면 영적인 사람으로 계속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매일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오늘은 어떤 면에서 노력할 수 있을까?’ 「파18.02」 25-26면 12-13항

7월 3일 수요일

그분의 말씀을 내게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간직해 두었네.—욥 23:12.

욥은 하느님의 원칙들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잘 알았으며 그러한 지식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예를 들어, 욥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불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 6:14) 그는 자신을 남들보다 높이지 않았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가족같이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모태 속에서 나를 만드신 분이 그들도 만들지 않으셨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욥 31:13-22) 분명 욥은 명예와 부를 누렸지만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비뚤어진 견해를 갖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힘 있고 돈 있는 많은 사람들과 정말 다르지 않습니까! 욥은 겉으로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모든 우상 숭배를 멀리했습니다. 그는 재물에 정성을 쏟는 것을 포함해 거짓 숭배에 빠지면 “위에 계신 참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욥 31:24-28) 그는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신성한 결합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부도덕한 마음을 품고 처녀를 바라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눈과 계약을 맺기까지 했습니다.—욥 31:1. 「파18.02」 11면 16항; 12면 18-19항

7월 4일 목요일

노아는 ···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참하느님과 함께 걸었다.—창세 6:9.

노아는 단지 선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대한 “의의 전파자”가 되었으며, 여호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베드로 후서 2:5) 사도 바울은 노아가 “그 믿음을 통해 ··· 세상을 정죄”했다고 썼습니다. (히브리 11:7) 따라서 노아는 조롱과 반대, 심지어 폭행의 위협까지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보고 떨”지 않았습니다. (잠언 29:25) 노아에게는 여호와께서 충실한 종들에게 주시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노아가 500년 넘게 하느님과 함께 걸은 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구할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5:32; 6:14) 그 임무는 몹시 어려워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방주를 짓는 것 외에도 어려움이 더 있었습니다. 분명 노아는 방주를 짓는 일을 하면 훨씬 더 많은 조롱과 반대를 받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여 그 일을 했습니다. “그는 꼭 그대로 했습니다.”—창세 6:22. 「파18.02」 4면 4, 6-7항

7월 5일 금요일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것이 얼마나 좋으며 얼마나 즐거운가!—시 133:1.

연합을 강화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사랑의 하느님이신 여호와를 본받아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8) 우리는 동료 형제 자매들에 대해 ‘동료 그리스도인이니까 참아 줄 수는 있지만, 좋아할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사랑으로 서로 참으라”는 바울의 권고와 어긋나는 것입니다. (에베소 4:2) 바울이 그냥 “서로 참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참아야 한다고 말한 것에 유의하십시오. 이 두 가지 표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회중에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이끄신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 6:44)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자신에게 이끄셨기 때문에 그들을 분명 사랑스럽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동료 형제 자매들이 우리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는 사랑을 보이기를 결코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요한 1서 4:20, 21. 「파18.01」 16면 14항

7월 6일 토요일

젊은 시절에 너의 위대한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도 12:1.

일부 부모는 자녀가 우선 고등 교육을 받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뒤에 침례를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위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런 이유로 침례를 미루는 것이 자녀가 진정으로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더 중요한 점으로, 그러한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합니까?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여호와의 목적이나 생각과 반대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야고보 4:7, 8; 요한 1서 2:15-17; 5:19) 자녀가 사탄과 그의 세상과 세상의 그릇된 생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부모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중요시한다면 자녀는 혼란을 느낄 것이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정말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가 성공에 대한 세상적인 견해에 영향을 받기를 원하겠습니까? 분명, 우리는 여호와를 우리 삶에서 첫째 자리에 둘 때에만 진정한 기쁨과 성공을 맛볼 수 있습니다.—시 1:2, 3. 「파18.03」 10면 10-11항

7월 7일 일요일

왕국과 그분의 의를 ··· 첫째로 구하십시오.—마태 6:33.

많은 사람은 단순한 생활을 하면 더 행복해질 뿐 아니라 여호와를 섬길 시간도 더 많아진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잭은 자신이 살던 큰 집을 팔고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아내와 함께 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사업 때문에 문제가 많아서 낙담한 채 집에 돌아오곤 했죠. 정규 파이오니아이던 아내는 늘 아주 행복해했어요. ‘여호와는 최고의 사장님이야!’라고 말하곤 했지요. 지금은 나도 파이오니아를 하니까 우리 둘 다 여호와를 위해 일하고 있죠.” 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 보려면 솔직하게 이러한 자문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정말로 돈에 관한 성경 말씀을 믿고 그와 일치하게 사는가? 돈을 버는 것이 내 삶에서 첫째 자리에 있는가? 나는 여호와나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물질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나는 여호와께서 내 필요를 돌봐 주실 것임을 정말 신뢰하는가?’ 우리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희망을 두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파18.01」 25면 12-13항

7월 8일 월요일

여러분은 항상 순종해 왔습니다. ··· 그러므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빌립보 2:12.

당신에게는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갈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여호와께서 자신을 어떻게 축복해 오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열심히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면 자신이 여호와와 맺고 있는 벗 관계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73:28)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 (마태 16:24) 그렇습니다. 예수를 따르려면 헌신하고 침례받는 것에 더해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현재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을 받고, 하느님이 가져오실 신세계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파17.12」 27면 18-19항

7월 9일 화요일

참을성을 입으십시오.—골로새 3:12.

부모가 참을성 있게 가르치면 자녀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점차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 3:18) 부모는 어떻게 하면 자녀의 나이와 능력에 맞게 가르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녀는 배우는 내용에 대한 확신이 커질수록 학교 친구나 그 밖의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더 잘 변호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3:15) 예를 들어, 당신의 자녀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성경을 근거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자녀는 성경에 나오는 답이 이치적이라고 생각합니까? 자녀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심어 주려면 참을성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입니다. (신명 6:6, 7) 자녀가 확신을 기르도록 도와주려면 부모의 본도 중요합니다. 세 딸의 어머니인 스테퍼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했어요. ‘여호와께서 계시고, 그분이 사랑이 많으시고, 그분의 길이 옳다고 내가 확신하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있나?’ 내가 확신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이 확신하길 바랄 순 없지요.” 「파17.12」 20면 8-10항

7월 10일 수요일

당신의 오라비는 살아날 것입니다.—요한 11:23.

마르다가 오라비가 부활될 것이라고 확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부터 과거에 일어난 기적들에 관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봉사를 시작하시기 전부터 마르다는 집과 회당에서 그러한 기적들에 관해 배웠을 것입니다. 영감받은 성경에 기록된 부활 기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부활은 예언자 엘리야 시대에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북쪽 페니키아의 해안 도시인 사르밧에서, 한 가난한 과부가 엘리야에게 후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과부를 위해 기적으로 곡식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셨고, 그 덕분에 과부와 아들은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7:8-16) 그런데 나중에 과부의 아들이 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과부를 도우러 온 엘리야는 아이 위에 엎드리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부디 이 아이에게 생명이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아이가 실제로 살아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아이를 부활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부활입니다. (열왕기상 17:17-24) 마르다는 분명 이 놀라운 일에 대해 알았을 것입니다. 「파17.12」 3면 1항; 4면 3, 5-6항

7월 11일 목요일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마태 6:24.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으라고 부추깁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면 지위와 권력과 부를 거머쥐게 될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삶의 주된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해서 권력과 명예를 얻게 되면 정말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사탄도 다른 이들을 좌지우지하고 영예를 얻으려는 욕망에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몹시 화가 나 있고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태 4:8, 9; 계시록 12:12) 사람들이 하느님의 지혜에서 유익을 얻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도우면 지속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세상에서의 성공은 약간의 만족을 줄 뿐입니다. 더욱이 이 세상의 영은 치열한 경쟁을 부추깁니다. 그 영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남들을 시기하고 남보다 앞서 가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결국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에 불과합니다.—전도 4:4. 「파17.11」 22-23면 11-13항

7월 12일 금요일

그들은 찬양의 노래를 부른 다음 올리브 산으로 갔다.—마태 26:30.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된 뒤에도 음악은 계속해서 참숭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 밤에 주의 만찬을 제정한 뒤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노래로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에서 본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주로 개인 집에서 모였지만, 그러한 소박한 숭배 장소에서도 여호와께 노래하려는 그들의 열심은 식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감을 받아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하며 부르는 영적 노래로 계속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며 마음으로 여호와께 노래하십시오.” (골로새 3:16) 우리의 노래책에 있는 노래들이야말로 ‘감사하며 불러야 할 영적 노래’입니다. 그 노래들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나누어 주는 영적 양식의 일부입니다.—마태 24:45. 「파17.11」 4면 7-8항

7월 13일 토요일

너희는 자신을 위해 편리한 도시들을 선택하여, ··· 도피 도시로 삼아야 한다.—민수 35:11.

도망자는 6개의 도피 도시로 쉽게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르단 강 양편에 도시들을 고르게 배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도망자들이 빠르고 편리하게 도피 도시로 피신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민수 35:12-14) 도피 도시로 가는 길은 잘 정비해 두어야 했습니다. (신명 19:3) 유대인 전승에 따르면, 도시로 가는 길을 알 수 있게 이정표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도피 도시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는 살인자는 외국으로 도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외국으로 갔다면 거짓 숭배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고의적인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하지만 바로 그분이 고의성 없는 살인자가 동정심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훌륭한 마련을 하신 것입니다! 한 성경 주석가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도피 도시 제도 전체는 최대한 분명하고 간단하고 쉽게 되어 있었다.” 여호와는 자신의 종들을 처벌하고 싶어 하는 무정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자비가 풍부”하십니다.—에베소 2:4. 「파17.11」 14면 4-5항

7월 14일 일요일

내게 돌아오너라. ···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겠다.—스가랴 1:3.

날아가는 두루마리, 용기 속에 갇힌 여자, 황새 같은 날개로 날아오르는 두 여자를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이러한 인상적인 장면들이 스가랴서의 환상에 등장합니다. (스가랴 5:1, 7-9)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스가랴에게 왜 이처럼 생생한 환상들을 보여 주셨습니까? 스가랴의 여섯 번째 환상과 일곱 번째 환상은 부정직한 행동을 중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되며 여호와께서 그릇된 일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분의 참숭배자들은 진심으로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또한 이 환상들은 하늘의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시는 보증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승인하시고 보호하실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죽음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깨끗함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좋은 결과를 거둘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도움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파17.10」 21면 1항; 25면 19항

7월 15일 월요일

연로한 여자들은 경외심 있게 행동하[여] 젊은 여자들에게 조언을 베풀어야 합니다.—디도 2:3, 4.

현재 독신 자매들에게는 봉사의 직무를 확장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파이오니아를 하거나, 도움이 더 필요한 곳으로 이주하거나, 지역 설계/건축 봉사자로 일하거나, 왕국 전파자 학교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길르앗 학교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연로한 자매들은 그러한 일 대부분을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여전히 회중에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예전만큼 일을 많이 하지 못한다 해도 용기를 내어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로한 자매는 젊은 자매에게 단정한 옷차림에 대해 조언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는 꾸짖듯이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젊은 자매가 자신이 선택한 옷차림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2:9, 10) 사랑에서 우러나온 그러한 관심은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파17.09」 31-32면 17-18항

7월 16일 화요일

너는 ···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잠언 2:5.

때때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접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하지만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반대에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4세기의 신학자인 존 위클리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성경을 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382년에 한 영어 번역판이 발행되었는데, 이 번역판은 나중에 위클리프 성경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롤러드파에 속한 여행하는 전도사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을 심어 주려고 영국 전역을 걸어 다니며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흔히 롤러드파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에게 위클리프 성경을 읽어 준 후, 손으로 베껴 쓴 성경의 일부를 남겨 주고 떠났습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유럽과 다른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일반인들의 유익을 위해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하는 일을 추진했습니다. 「파17.09」 20-21면 10-12항

7월 17일 수요일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에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7:28.

자녀를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하는 것은 ‘육체의 환난’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13:12) 성경 시대에는 대개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야곱의 아내인 라헬은 언니가 자녀를 갖는 것을 보고 몹시 속상해했습니다. (창세 30:1, 2) 결혼 생활에 따르는 환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잘 떠올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사별입니다. 배우자와의 사별은 많은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됩니다. 홀로 남은 배우자는 현 세상에서 그런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앞으로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예수의 약속을 굳게 믿습니다. (요한 5:28, 29) 이 희망은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에게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부활 희망은 큰 위로를 줍니다. 사랑 많은 우리 아버지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부활을 약속하심으로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위로하십니다. 「파17.06」 4면 1항; 5면 6항; 6면 9항

7월 18일 목요일

여호와, 여호와, 자비롭고 동정심이 많[은] 하느님.—출애굽 34:6.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이름과 특성을 선포하심으로 모세에게 자신에 관해 알려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처음으로 언급하신 두 가지 특성은 자비와 동정심이었습니다. (출애굽 34:5-7)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를 강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후원하신다는 보증을 해 달라고 한 모세에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자비와 동정심을 강조하심으로 자신의 종들을 기꺼이 돕기를 원한다는 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출애굽 33:13) 인간은 동정심을 갖도록 창조되었지만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기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울 것인지 자신의 일에 집중할 것인지 결정하기가 어렵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 가지 행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힘들어 하며 끊임없이 갈등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기르고 계속 나타내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우선, 여호와께서 어떻게 동정심을 보이셨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 특성을 나타냈는지 시간을 내서 살펴보십시오. 그런 다음, 어떻게 하느님을 본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왜 진정으로 유익한지 알아보십시오. 「파17.09」 8면 1항; 9면 3항

7월 19일 금요일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빌립보 2:3.

우리가 새 인간성을 입으려는 동기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영예를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한때 완전했던 천사도 마음속에 교만이 자라는 것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에스겔 28:17 비교) 그렇다면 죄 많은 인간이 교만과 거만을 멀리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겸손을 입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면 우리는 매일 시간을 내어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그 내용을 묵상해야 합니다. (신명 17:18-20) 예수의 가르침과 겸손하게 봉사하신 그분의 탁월한 본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특히 도움이 됩니다. (마태 20:28) 예수께서는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실 정도로 겸손하셨습니다. (요한 13:12-17) 또한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느끼는 경향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영으로 도와 달라고 수시로 기도해야 합니다.—갈라디아 6:3, 4. 「파17.08」 25면 11-12항

7월 20일 토요일

여러분의 청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 그러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줄 것입니다.—빌립보 4:6, 7.

아마 우리는 살면서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은 적이 있을지 모릅니다. 어려움을 겪게 되었거나,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어 삶에서 큰 변화를 해야만 했을 수 있습니다. (전도 9:11) 그러면 우리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한 말을 보면, 염려를 줄이는 비결이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염렷거리가 생기면 기도로 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5:6, 7)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면서 그분께 기도하십시오. 당신이 받은 축복을 기억하면서 “감사와 더불어” 기도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넘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분에 대한 확신이 더 커질 것입니다.—에베소 3:20. 「파17.08」 9면 4, 6항; 10면 10항

7월 21일 일요일

의논이 없으면 계획이 실패하지만, 조언자가 많으면 계획이 이루어진다.—잠언 15:22.

많은 그리스도인은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면서 청소년기를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당신이 청소년이라면,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한 영적인 사람들은 전 시간 봉사가 평생에 걸쳐 도움이 될 훌륭한 교육이라고 말해 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실 때도 아버지께 교육을 받으셨지만 이 땅에서 봉사하실 때도 계속 배우셨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때의 기쁨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충절을 지킬 때의 기쁨에 대해 알게 되셨습니다. (이사야 50:4; 히브리 5:8; 1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 가르치십시오.” (마태 28:19, 20) 제자 삼는 일을 하며 살기로 계획한다면, 여러분은 하느님께 영예를 돌리는 가장 만족스러운 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제자 삼는 일도 능숙하게 잘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파17.07」 23-24면 6-7항

7월 22일 월요일

내가 늘 너희를 위로할 것이다.—이사야 66:13.

의문의 여지 없이, 위로의 주된 근원은 하늘에 계신 동정심 많은 우리 아버지 여호와이십니다. (고린도 후서 1:3, 4)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근원은 그리스도인 회중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1) 우리는 ‘영이 꺾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힘을 주고 위로를 베풀 수 있습니까? (잠언 17:22)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전도 3:7) 남편과 사별한 덜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은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건 말을 끊지 않고 잘 들어 주는 거죠.”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큰 슬픔을 겪은 유니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슬픔을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건 그 심정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거예요.” 우리가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파17.07」 13면 3항; 14면 11-13항

7월 23일 화요일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당신, 당신만이 홀로 온 땅을 다스리는 가장 높으신 분임을 사람들이 알게 하십시오.—시 83:18.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는 돈입니다. 그들은 부를 쌓고 자산을 잘 관리하는 데 몰두하며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가족이나 건강 또는 개인의 목표 달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직면한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여호와의 주권이 입증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쟁점을 한시라도 잊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 쟁점을 잊게 될 수 있습니까? 일상생활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하느님의 주권이 입증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게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이 겪는 시련 때문에 너무 힘든 나머지 그 중요한 쟁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호와의 주권의 입증이라는 쟁점을 더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와도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파17.06」 22면 1-2항

7월 24일 수요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린도 전서 11:1.

여호와께서는 사랑에 찬 방식으로 권위를 행사하십니다. 그와 일치하게, 여호와의 주권을 사랑하는 가장들과 장로들은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태도를 나타내어 마치 가정이나 회중에 대한 주권이 자신에게 있는 듯이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을 본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압력을 주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했습니다. (로마 12:1; 에베소 4:1; 빌레몬 8-10)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통치 방식을 사랑하고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머리 직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나타냅니까? 우리는 그 머리 직분에 대해 존중심을 나타내고 협조함으로 여호와의 주권을 지지합니다. 어떤 결정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신권 질서를 지지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과는 많이 다르지만, 여호와의 통치권 아래서 따라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에베소 5:22, 23; 6:1-3; 히브리 13:17. 「파17.06」 30면 14-15항

7월 25일 목요일

여러분[은] 하느님에게서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데살로니가 전서 4:9.

낙담해 있거나 우울한 감정을 느끼거나 그 밖의 시련을 겪고 있는 형제 자매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의 관심과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잠언 12:25; 골로새 4:11) 우리는 “믿음으로 친족이 된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깊은 관심을 표현함으로 형제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6:10) 성경은 이 악한 세상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태도를 나타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디모데 후서 3:1, 2) 따라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느님과 성경 진리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때때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사소한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면 어떤 불화가 생기든 사랑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회중 성원 모두에게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에베소 4:32; 골로새 3:14) 그러므로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과 우리 형제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계속 키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파17.05」 21면 17-18항

7월 26일 금요일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요한 1서 1:8.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 회중 밖에서는 어느 정도 불공정을 겪을 것을 예상합니다. 하지만 회중 내에서 불공정해 보이는 일을 목격하거나 그런 일을 직접 겪게 될 경우 그것은 믿음에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회중 내에서 혹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서 무언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그로 인해 걸려 넘어질 것입니까?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고 죄를 짓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회중 내에서 불공정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남에게 불공정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회중에서 불공정한 일이 생길 때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놀라거나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충절을 지킬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는 성경을 통해 실용적인 조언을 베푸십니다.—시 55:12-14. 「파17.04」 19면 4-5항

7월 27일 토요일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에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7:28.

배우자가 믿지 않는 경우 결혼 생활에서 특히 더 많은 염려와 스트레스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가 현재 그리스도를 따를 마음이 없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별거나 이혼의 타당한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7:12-16) 믿지 않는 남편은 영적인 활동을 인도하지 않지만, 아내는 가족의 머리인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 남편은 믿지 않는 아내에게 희생적인 사랑과 부드러운 애정을 보여야 합니다. (에베소 5:22, 23, 28, 29) 배우자가 당신의 숭배 활동에 제한을 가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한 그리스도인 자매의 남편은 자매에게 특정한 요일에만 야외 봉사에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배우자는 내게 아예 하느님을 섬기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배우자에게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합리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결혼 생활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빌립보 4:5. 「파17.10」 13면 7-8항

7월 28일 일요일

그것을 아들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신명 6:7.

예언된 대로, “나라들의 모든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이 여호와의 조직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스가랴 8:23) 하지만 이민 가정에서 언어의 차이는 부모가 자녀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데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가장 중요한 성서 연구생입니다. 자녀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여호와를 “알아 가야” 합니다. (요한 17:3) 자녀가 여호와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모든 적절한 기회를 활용하여 그분의 가르침에 대해 “말해 주어야 합니다.” (신명 6:6, 7) 자녀는 학교에 다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현지 언어를 익힐 것입니다. 반면에 부모의 언어는 대개 부모와 자주 대화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자녀가 부모의 언어를 할 줄 알면 부모와 마음을 터놓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두 언어를 사용하면 사고력이 향상되고 사회성이 발달합니다. 「파17.05」 9면 5-6항

7월 29일 월요일

가서, 다볼 산으로 진군하여라. ··· 내가 ··· 시스라[를] 끌어내어, 그를 네 손에 넘겨주겠다.—사사 4:6, 7.

이스라엘 백성은 공격 무기나 방어용 장비가 빈약했지만, 적들은 철낫이 달린 병거 900대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사 4:1-3, 13; 5:6-8)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바락에게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바락은 지체 없이 여호와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사사 4:14-16) 다아낙에서 벌어진 큰 전투 중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그 일대가 진흙탕이 되었습니다. 바락은 시스라의 군대를 뒤쫓아 하로셋까지 24킬로미터를 추격했습니다. 도망치던 시스라는 한때 무시무시한 무기였지만 이제 무용지물이 된 병거를 버리고 아마도 게데스 근처의 사아난님으로 도피한 것 같습니다. 시스라는 겐 사람 헤벨의 아내인 야엘의 천막에 몸을 숨겼는데, 야엘은 그를 친절하게 맞이했습니다. 전투로 지친 시스라는 잠이 들었습니다. 야엘은 용기 있게 행동하여 잠든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사사 4:17-21) 이스라엘의 적들이 패배한 것입니다! 「파17.04」 29-30면 6-8항

7월 30일 화요일

여호와가 민족들과 논쟁을 벌[일 것이다.] 그가 ··· 악인을 칼에 넘겨줄 것이다.—예레미야 25:31.

아마겟돈 후에도 이 땅에 조직이 있을 것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의 약속에 따라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의가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13) 낡은 하늘과 땅 즉 부패한 정부들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인류 사회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을 보면 새로운 정부와 그 정부의 다스림을 받는 새로운 인류 사회가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왕국은 질서의 하느님이신 여호와의 특성을 완벽하게 반영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4:33) 따라서 “새 땅”은 잘 조직되어 있을 것입니다. 선한 사람들이 이 땅의 여러 일들을 관리할 것입니다. (시 45:16) 그들은 그리스도와 14만 4000명의 공동 통치자의 인도를 따를 것입니다. 모든 부패한 조직이 사라지고 나서 결코 부패하지 않을 하나의 연합된 조직만 존재할 때를 그려 보십시오! 「파17.04」 11면 8-9항

7월 31일 수요일

그들이 한 몸이 될 것이다.—창세 2:24.

결혼은 신성한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합니다. 대개 그들은 “하느님의 결혼 마련에 따라 ··· 지상에서 함께 사는 동안” 배우자를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한편 일부 증인들은 결혼 서약을 할 때 그와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하느님 앞에서 서약을 합니다. 그 후 주례자는 그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제 두 사람은 결혼한 부부로서 평생을 함께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7:39)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남편과 아내뿐 아니라 그 누구도]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결혼하는 부부는 이혼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가 10:9) 물론 완벽한 결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결혼은 불완전한 두 사람의 결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결혼한 사람에게 때때로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고린도 전서 7:28. 「파17.04」 7면 14-1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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