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월 1일 토요일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 1서 4:16.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고 생명에 이르는 길을 계속 가도록 사랑의 동기로 시정하고 교육하고 훈련하십니다. 하지만 때때로 징계에는 조언이나 시정하는 말을 듣는 것 이상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은 회중에서 특권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징계에도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권을 잃은 사람은 개인 연구, 묵상, 기도에 힘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영적으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시 19:7) 그 사람은 시간이 흘러 다시 특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제명 처분에도 여호와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마련이 회중을 해로운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5:6, 7, 11) 또한 하느님께서는 늘 적절한 정도로 징계를 베푸시기 때문에, 제명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마음이 움직여 회개할 수 있습니다.—사도 3:19. 「파18.03」 24면 5-6항
6월 2일 일요일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지체 없이 침례를 받았다.—사도 16:33.
그 간수는 성경을 잘 몰랐습니다. 따라서 성경 지식을 쌓아 튼튼한 기초를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려면 기본적인 성경 진리를 배우고, 하느님의 종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해야 했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지만 간수는 기본적인 성경 진리를 배우고 마음으로 받아들인 후 침례를 받았습니다. (사도 16:25-33) 분명 그는 침례를 받은 후에도 계속 지식을 쌓아 나갔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생각해 볼 때, 자녀가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진심으로 믿고 헌신과 침례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리스도인 부모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회중 장로들이 자녀가 침례받을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자녀에게 그들을 만나 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침례받은 제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자녀도 평생에 걸쳐, 아니 영원히 여호와의 목적에 관한 지식을 계속 쌓아 나가야 합니다.—로마 11:33, 34. 「파18.03」 10면 8-9항
6월 3일 월요일
그리스도 예수가 가졌던 정신 태도를 [가지십시오.]—로마 15:5.
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생각을 변화시킬 힘을 줄 것입니다. 영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육적인 욕망을 뿌리 뽑고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특성들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생각은 우리의 말, 직장이나 학교에서 우리의 행실, 우리가 매일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힘써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줄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늘의 아버지와 누리는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기를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유혹을 받을 때 단호히 뿌리칠 것입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잠시 멈추어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성경 원칙들이 적용될까? 그리스도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어떤 결정을 내려야 여호와께서 기뻐하실까?’ 「파18.02」 25면 12항; 26면 14항
6월 4일 화요일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호의를 얻었다.—창세 6:8.
노아의 증조할아버지인 에녹이 살던 때에 사람들은 몹시 악하고 불경건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거슬러 “충격적인 말”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유다 14, 15) 사람들은 점점 폭력적이 되어 갔습니다. 사실 노아 시대에 “땅은 ··· 폭력으로 가득 찼습니다.” 악한 천사들은 인간으로 물질화하여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고 난폭한 잡종 후손을 낳았습니다. (창세 6:2-4, 11, 12) 하지만 노아는 당시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는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참하느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창세 6:9) 그 기록이 의로운 노아에 관해 무엇을 알려 주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는 대홍수가 닥치기 전에 악한 세상 속에서 오늘날 사람들의 일반적인 수명인 70-80년 정도만 하느님과 함께 걸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거의 600년 동안 그 악한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창세 7:11) 또한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노아를 영적으로 지원해 주는 동료 숭배자들의 회중이 없었습니다. 아마 노아는 자신의 친형제자매들에게서도 영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파18.02」 4면 4-5항
6월 5일 수요일
사람들은 ··· 돈을 사랑할 것입니다.—디모데 후서 3:2.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원하며, 부를 쌓으려 애쓰다가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디모데 전서 6:9, 10; 전도 5:10)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돈이 필요합니다. 돈은 어느 정도 보호가 됩니다. (전도 7:12) 그러면 우리가 가진 돈이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정도밖에 안 되어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전도 5:12) 야게의 아들 아굴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십시오. 다만 내가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먹게 해 주십시오.” 그가 너무 가난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은 이유는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가 뒤이어 설명한 것처럼, 그는 도둑질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부유하게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면 내가 배불러서 당신을 부인하며 ‘여호와가 누구냐?’ 하고 말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잠언 30:8, 9)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마태 6:24. 「파18.01」 24면 9-11항
6월 6일 목요일
여러분이 각각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입니다.—마태 18:35.
연합을 강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함으로,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합니다. 마태복음 18:23-34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를 검토하면서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적용하고 있는가? 동료 형제 자매들에게 참을성과 이해심을 보이는가? 내게 잘못한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는가?’ 물론 죄에도 경중이 있으며, 어떤 잘못은 불완전한 사람이 용서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유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형제들을 용서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정말 정신이 번쩍 들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면 우리의 소중한 연합을 지킬 수 있습니다. 「파18.01」 15면 12항
6월 7일 금요일
왕이여, 그것은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청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진다는 것입니다.—다니엘 6:7.
다니엘은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에 대한 숭배를 타협한다는 인상조차 주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니엘이 비참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기적으로 보호해 주심으로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내린 용감한 결정을 축복하셨습니다. 그 결과 메디아-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여호와에 대한 놀라운 증거가 이루어졌습니다! (다니엘 6:25-27) 우리는 어떻게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기를 수 있습니까? 강한 믿음을 기르려면 단순히 하느님의 말씀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 13:23)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여호와의 생각을 알고 성경 원칙을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읽는 내용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특히 시련이나 어려움을 겪을 때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을 갖고 지혜와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여호와께서는 관대하게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야고보 1:5. 「파18.02」 10-11면 13-15항
6월 8일 토요일
여호와가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맛보아 알아라.—시 34:8.
어린 나이에 침례받고 하느님을 섬기는 청소년들도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여호와의 도움을 경험하면서 그분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봉사에 참여하거나 학교에서 증거하면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들은 학교 친구에게 전파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아마 당신도 그런 심정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친구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지만, 많은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우선, 자신이 믿는 것이 진리임을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jw.org에 있는 학습 자료를 잘 활용해 보십시오. 그 자료는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왜 그렇게 믿는지, 자신의 믿음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당신이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고 준비가 잘 되어 있다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전파하려는 강한 의욕이 생길 것입니다.—예레미야 20:8, 9. 「파17.12」 26면 12, 14-15항
6월 9일 일요일
배워서 확신하게 된 것에 머무르십시오.—디모데 후서 3:14.
자녀에게 영적인 교육을 베풀려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디모데는 배운 것을 알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배운 것이 진리임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유아기부터 히브리어 성경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후에 그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분명한 증거들을 살펴보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디모데처럼 확신을 키우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우선 참을성을 보여야 합니다. 확신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부모가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해서 자녀도 저절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 스스로가 “이지력”을 사용해서 성경 진리에 대한 확신을 길러 나가야 합니다. (로마 12:1) 그 과정에서 부모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자녀가 질문을 할 때 그러합니다. 「파17.12」 19면 3, 5-6항
6월 10일 월요일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라비가 살아나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4.
예수의 가까운 친구이자 제자인 마르다가 슬퍼하고 있습니다. 오라비인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슬픔을 덜어 줄 방법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확언하셨습니다. “당신의 오라비는 살아날 것입니다.” (요한 11:20-23) 마르다는 미래에 부활이 있을 것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바로 그날 기적으로 나사로를 부활시키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나 그분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그런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르다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미래에 부활될 것임을 굳게 믿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배우자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조부모를 사별했을지 모릅니다. 자녀를 잃고 슬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부둥켜안고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눌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기쁘게도 마르다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앞으로 부활될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할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각자는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파17.12」 3면 1-2항
6월 11일 화요일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니, 당신의 법이 내 속 깊은 곳에 있습니다.—시 40:8.
예수께서는 모세 율법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율법은 예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분인 아버지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법에 대한 예수의 깊은 애정이 오늘의 성구에 예언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율법이 완전하고 유익하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증하셨습니다. (마태 5:17-19) 따라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아버지의 율법을 왜곡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그들은 율법의 일부 규정들을 아주 작은 부면까지 세세히 지켰습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인정하셨습니다. “당신들은 박하와 딜과 쿠민의 10분의 1을 바칩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분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율법의 더 중요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등한시해 왔습니다.’ (마태 23:23) 독선적인 그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율법에 담긴 정신과 각각의 계명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의 특성들을 이해하셨습니다. 「파17.11」 13면 1-2항
6월 12일 수요일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하게 되고 성적 부도덕을 멀리하는 것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4:3.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거야.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게 뭐가 나빠?”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성적 부도덕을 용인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성적 부도덕을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4-8)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를 위해 법을 제정할 권리가 있으십니다. 하느님의 법은 결혼한 두 남녀만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하느님은 결혼 마련에 그 법을 포함시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법을 주시며 그분의 법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하느님의 법을 따르는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안정을 누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법을 고의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 13:4) 하느님의 말씀은 어떻게 성적 부도덕을 멀리할 수 있는지 알려 줍니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우리의 눈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마태 5:28, 29)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음란물을 보거나 음탕한 가사가 담긴 음악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에베소 5:3-5. 「파17.11」 22면 9-10항
6월 13일 목요일
우리 하느님께 찬양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으니.—시 147:1.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은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음악을 사용해 왔습니다. 흥미롭게도, 고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충실히 섬길 때는 노래가 숭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은 성전 봉사를 준비할 때 음악으로 여호와를 찬양하기 위해 레위 사람 4000명을 조직했습니다. 그중 288명은 “모두 여호와께 노래하는 일에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역대기상 23:5; 25:7) 성전 낙성식 때 음악과 노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나팔 부는 자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여호와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다. 그들은 나팔과 심벌즈와 다른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 여호와를 찬양했다. ··· 여호와의 영광이 참하느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그 행사를 통해 사람들의 믿음은 참으로 크게 강화되었을 것입니다!—역대기하 5:13, 14; 7:6. 「파17.11」 4면 4-5항
6월 14일 금요일
내가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습니다.—마태 10:34.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분열시킬 것이며 제자들이 반대를 받으면서도 자신을 따르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물론, 예수의 목적은 하느님의 진리의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었지 사람들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 18:37) 하지만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진리를 거부한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고수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께 합당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에게 조롱당하거나 심지어 가족에게서 버림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이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마가 10:29, 30) 가족들이 우리가 여호와를 숭배하는 것을 반대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첫째 자리에 와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 10:37) 또한 사탄이 가족에 대한 애정을 이용해 우리의 충절을 꺾으려 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파17.10」 13면 3-6항
6월 15일 토요일
그 천사는 [악을] 도로 에바 용기 속으로 밀어 넣고는 무거운 납 뚜껑으로 입구를 덮어 버렸다.—스가랴 5:8.
이 환상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어떤 악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분은 악한 일을 억제하고 신속히 제거하십니다. (고린도 전서 5:13) 천사는 납으로 된 뚜껑으로 용기를 막아 버림으로 그 점을 확신시켜 줍니다. 스가랴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이 환상을 통해 순결한 숭배를 깨끗하게 보호하실 것임을 보증해 주셨을 때 얼마나 안심이 되었겠습니까! 또한 이 환상을 통해 유대인들은 숭배를 순결하게 유지할 책임이 있다는 점도 떠올렸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백성 가운데 악이 슬며시 들어와 머무는 일은 용납될 수도 없고 결코 용납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깨끗한 조직에 들어와 따뜻한 돌봄과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그 조직을 깨끗하게 유지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열망이 있습니까? 어떤 형태의 악도 우리의 영적 낙원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됩니다. 「파17.10」 24면 14-15항; 25면 17-18항
6월 16일 일요일
내가 ··· 당신의 법을 사랑합니다.—시 119:163.
성경의 처음 39권은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하느님의 신성한 선언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 3:1, 2) 하지만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많은 유대인이 더 이상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 활동을 통해 그리스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8:5-7, 20, 21) 그러면서 그리스어가 제국 내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여러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이 그리스어를 사용하게 되자, 대다수가 히브리어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성경이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2세기에 번역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성경 번역본을 그리스어 「칠십인역」이라고 합니다.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번역한 최초의 번역본입니다. 「파17.09」 20면 7-9항
6월 17일 월요일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히브리 13:5.
가족 숭배나 야외 봉사나 그리스도인 집회를 위해 따로 계획해 놓은 저녁이나 주말 시간에 고용주가 추가 근무를 해 달라고 자주 요청할지 모릅니다. 매번 그러한 요청을 거절하고 자녀에게 좋은 본을 보이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자녀가 영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루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파이오니아를 하거나,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거나, 베델 봉사를 하거나, 신권 건축 현장에서 일하도록 격려해 주기를 망설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자녀가 돌봐 주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들은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약속에 믿음을 둡니다. (시 37:25) 또한 자녀들도 그렇게 하도록 도움으로 용기를 보이고 여호와께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사무엘상 1:27, 28; 디모데 후서 3:14, 15. 「파17.09」 30면 14-15항
6월 18일 화요일
영의 열매는 ··· 자제입니다.—갈라디아 5:22, 23.
부모는 자녀가 자제력을 기르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부모는 자녀에게 이 특성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녀가 배워야 하는 모든 특성이 그러하듯이, 부모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에베소 6:4) 그러므로 자녀가 충동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된다면, 자신이 부모로서 좋은 본을 보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가 정기적으로 야외 봉사에 참여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가족 숭배를 사회하는 것의 효과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뭔가를 해 달라고 할 때,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한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한계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권위에 대한 합당한 존중심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부모는 자녀에게 자제를 가르치기 위해 징계하고 본을 보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분의 표준을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가 자녀에게 심어 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잠언 1:5, 7, 8. 「파17.09」 7면 17항
6월 19일 수요일
몸에 분열이 없[어야 하고] 그 지체들은 서로 관심을 나타내[야 합니다.]—고린도 전서 12:25.
사탄의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시련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실직, 심각한 질병, 박해, 자연재해, 범죄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서는 진정한 동정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드러운 동정심이 있다면 친절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에베소 4:32) 새 인간성을 이루는 이러한 특성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3, 4) 어떻게 하면 회중 내에 있는 외국인이나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이 회중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2:22) 또한 많은 증인들은 이민자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우러나와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고린도 전서 9:23) 그러한 노력은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 「파17.08」 23-24면 7-9항
6월 20일 목요일
여호와는 나의 몫이시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을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겠다.—애가 3:24.
우리 각자는 기꺼이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태도를 반드시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기도로 하느님의 영을 구하는 것입니다. 참을성 즉 오래 참음이 영의 열매의 한 부면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에베소 3:16; 6:18; 데살로니가 전서 5:17-19) 참을성 있게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간청하십시오. 또한 아브라함, 요셉, 다윗이 여호와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여호와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거나 편안한 삶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큰 보람을 맛보았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도 기다리는 태도를 나타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과 시련이 닥친다 하더라도 “기다리는 태도”를 나타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오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외치게 될지 모릅니다. (이사야 6:11)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을 통해 강화된다면, 오늘의 성구와 같이 말한 예레미야의 태도를 본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파17.08」 7면 18-20항
6월 21일 금요일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기쁨입니다.—시 40:8.
예수께서는 어릴 때 놀기도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웃을 때가 있으며, ··· 춤출 때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전도 3:4) 또한 예수께서는 여호와와 가까워지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살이었을 때 성전에 있던 교사들은 영적인 것들에 대한 “그의 이해력과 대답에” 크게 놀랐습니다. (누가 2:42, 46, 47) 예수께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지내셨습니다. 무엇이 그분을 행복하게 했습니까?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바라시는 것이 ‘가난한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눈먼 사람에게 시력의 회복을 공포하는’ 것임을 아셨습니다. (누가 4:18)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할 때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아버지에 대해 가르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누가 10:21) 한번은, 어떤 여자에게 참숭배에 관해 가르치신 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끝내는 것입니다.” (요한 4:31-34)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며 행복해하셨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파17.07」 23면 4-5항
6월 22일 토요일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줄 것입니다.—빌립보 4:7.
여호와의 동정심 많은 아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말과 행동으로 여호와의 부드러운 동정심을 완벽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요한 5:19) 예수께서는 “마음이 찢긴 사람”과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도록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이사야 61:1, 2; 누가 4:17-21) 그분의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 깊은 동정심, 즉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진심으로 그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히브리 2:17) 성경에서는 이렇게 보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히브리 13:8) “생명의 수석 대표자”께서는 비탄에 잠긴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경험을 통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시험받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사도 3:15; 히브리 2:10, 18)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고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제때에” 위로를 베푸십니다.—히브리 4:15, 16. 「파17.07」 13면 6-7항; 14면 10항
6월 23일 일요일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누가 12:34.
사탄과 그의 세상은 여호와께서 주신 영적 보물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약화시키거나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계략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수가 많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 화려한 생활에 대한 꿈, 또는 물질적인 부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 쉽게 유혹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은 지나가고 있으며 세상의 욕망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요한 1서 2:15-17)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잘 지켜서 영적 보물을 계속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마음을 다한 사랑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포기하십시오. 생명을 구하는 봉사의 직무를 사랑하는 마음을 결코 잃지 말고 계속 열심히 전파하십시오. 성경 진리를 계속 진지하게 찾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도둑도 들지 않고 좀이 먹는 일도 없습니다.”—누가 12:33. 「파17.06」 13면 19-20항
6월 24일 월요일
당신의 뜰에서 보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습니다!—시 84:10.
여호와의 통치 방식은 압제적이거나 엄격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통치 방식은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해 줍니다. (고린도 후서 3:17) 다윗은 그 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존엄과 영화가 [하느님] 앞에 있고 힘과 기쁨이 그 거처에 있구나.” (역대기상 16:7, 27) 그와 비슷하게 시편 필자 에단은 이렇게 썼습니다. “기뻐 외치는 소리를 아는 백성은 행복합니다. 오 여호와여, 그들은 당신 얼굴의 빛 가운데 걷습니다. 그들이 온종일 당신의 이름으로 기뻐하고 당신의 의로 높아집니다.” (시 89:15, 16) 여호와의 선하심에 대해 자주 묵상하면 그분이 최상의 방식으로 통치하신다는 확신이 강해질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느끼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를 설계하고 창조하신 사랑 많은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며 그러한 것을 풍부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희생을 치러야 한다 해도 그 요구 조건을 따른다면 우리는 결국 가장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이사야 48:17. 「파17.06」 29면 10-11항
6월 25일 화요일
기대하는 것이 늦추어지면 마음이 병든다.—잠언 13:12.
영국에 사는 한 자매는 자녀를 갖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폐경기가 찾아왔습니다. 이 자매는 현 세상에서는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매우 비참한 심정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우울한 감정을 떨쳐 내기 어려웠어요. 자녀를 입양하는 것이 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과 같을 순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 여자가 “자녀를 낳는 일로 안전을 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디모데 전서 2:15) 이 말은 여자가 자녀를 낳거나 기르는 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자녀를 돌보고 그 밖의 집안일을 하는 것이 남의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디모데 전서 5:13. 「파17.06」 5-6면 6-8항
6월 26일 수요일
당신이 [하느님]에게 무엇을 드리며, 그분이 당신에게서 무엇을 받으시겠습니까?—욥 35:7.
엘리후는 하느님을 섬기려는 우리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엘리후가 한 말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숭배에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더 부유하거나 더 강한 분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선한 특성이나 재능이나 힘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며, 그분은 우리가 그러한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심을 갖고 보십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종들에게 충성스러운 사랑을 나타낼 때 그분은 그것을 자신에게 한 사랑의 행동으로 여기십니다. 잠언 19:17은 이렇게 말합니다. “낮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이는 여호와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이 그가 하는 대로 갚아 주신다.” 이 성구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낮은 자에게 하는 친절한 행동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신다는 뜻입니까? 우주의 창조주께서 한낱 인간에 불과한 우리가 자비로운 행동을 할 때 우리에게 빚을 졌다고 여기시고 그 빚을 은혜와 축복으로 갚아 주어야 한다고 느끼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도 그 점을 확증하셨습니다.—누가 14:13, 14. 「파17.04」 29면 3-4항
6월 27일 목요일
여호와의 법을 좋아하며 밤낮으로 그분의 법을 낮은 소리로 읽는 사람.—시 1:2.
성경과 성경에 근거한 출판물을 읽는 것 외에 또 어떤 방법으로 성경 진리에 대한 깊은 사랑을 기를 수 있습니까? 회중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매주 「파수대」를 통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가르침을 받는 한 가지 주된 방법입니다. 「파수대」에서 다루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 기사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참조된 성구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이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요즘에는 「파수대」를 다양한 언어로 jw.org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하거나 「JW 라이브러리」 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전자 파일 형식을 이용하면 연구 기사의 참조 성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참조 성구를 주의 깊이 읽고 묵상하면 성경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질 것입니다. 「파17.05」 20면 14항
6월 28일 금요일
우리는 각자 자신에 대해 하느님께 답변하게 될 것입니다.—로마 14:12.
우리는 침례를 받은 후에도 계속 헌신의 서원에 따라 하느님을 충실하게 섬기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 한 약속인 헌신의 서원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를 섬기거나 그리스도인으로 살기가 싫어졌다고 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헌신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받은 침례가 무효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는 자신이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심각한 죄를 지을 경우 그는 여호와와 회중에 답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버렸다’는 말을 듣는 일은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너의 행위와 너의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알고 있고, 네가 처음보다 최근에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계시록 2:4, 19) 계속해서 우리의 헌신의 서원에 따라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함으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파17.04」 6-7면 12-13항
6월 29일 토요일
반석이신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니 그분의 활동은 완전하다.—신명 32:4.
“온 땅의 심판관께서 옳은 일을 하지 않으시렵니까?” (창세 18:25) 이러한 질문으로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완전한 공의를 시행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의로운 사람을 악한 사람과 함께 죽이심으로” 불공정하게 행동하실 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기에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공의와 의의 최상의 모범이라는 점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공의”와 “의”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의로운 것과 의로운 즉 옳은 것은 기본적으로 의미에 차이가 없습니다. 여호와는 의의 절대적인 표준이시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그분의 생각은 언제나 공의롭습니다. 또한 성경에 의하면 “그분은 의와 공의를 사랑하십니다.”—시 33:5. 「파17.04」 18면 1-2항
6월 30일 일요일
내게는 내 자녀가 진리 안에서 계속 걷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요한 3서 4.
부모 여러분, 자녀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 들어서는 데는 여러분의 본이 정말 중요합니다. 부모가 ‘왕국을 첫째로 구하’면, 자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매일의 필수품을 얻기 위해 여호와를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마태 6:33, 34) 그러므로 검소하게 살아가십시오. 영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 물질적인 것을 희생하십시오.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십시오. 부를 쌓거나 “사람의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보물’ 즉 여호와의 승인을 받기 위해 힘쓰십시오. (요한 12:43; 마가 10:21, 22) 자녀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바쁘게 생활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는 방법은, 자녀가 자신이나 부모를 위해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첫째 자리에 두기로 선택하는 것임을 알려 주십시오. 부모의 편안한 노후를 자녀가 책임져야 한다는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견해를 멀리하십시오.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자녀가 부모를 위해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위해 모아 두는 법입니다.”—고린도 후서 12:14. 「파17.05」 8-9면 3-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