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월 1일 수요일
훈계를 굳게 붙들고 놓지 마라. 그것이 네 생명을 의미하니 잘 지켜라.—잠언 4:13.
징계를 받으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겪게 되는 해로운 결과는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히브리 12:11) 카인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카인이 아벨을 증오하여 그를 죽이려는 마음을 품자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고 낙심하였느냐?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면 다시 호의를 얻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죄가 문에서 도사리고 있으니 죄의 욕망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네가 그것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창세 4:6, 7) 카인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고 결국 죄에 굴복했습니다. 불필요한 고통과 고난을 자초한 것입니다! (창세 4:11, 12) 여호와께 강한 충고를 받아 고통스러웠겠지만 카인이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더 큰 고통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처럼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십니다! (이사야 48:17, 18) 따라서 ‘징계를 잘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되어야겠습니다.’—잠언 8:33. 「파18.03」 32면 18-20항
5월 2일 목요일
나 다니엘은 책들을 통해서 ··· 햇수를 분별했다.—다니엘 9:2.
다니엘은 어떻게 여호와를 알게 되었습니까? 그는 분명 부모에게서 여호와와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사랑하도록 잘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평생 그 사랑을 간직했습니다. 다니엘은 연로했을 때에도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다니엘 9:3-19에 기록된 다니엘의 진심 어린 회개의 기도는 그가 하느님과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신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시간을 내어 그 기도를 읽고 묵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충실한 유대인들은 거짓 종교로 가득한 바빌론에 살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유배한 그 도시의 평화를 구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7)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분은 그들에게 마음을 다해 그분만을 섬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출애굽 34:14) 이 두 가지 명령 사이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었습니까? 그는 하느님의 지혜 덕분에 세속 권위에 상대적 복종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수백 년 뒤에 예수께서도 바로 그 원칙을 가르치셨습니다.—누가 20:25. 「파18.02」 10면 11-12항
5월 3일 금요일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여라.—에스겔 9:4.
당신은 건강 문제나 경제 문제나 박해와 같은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섬기면서 기쁨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노아, 다니엘, 욥이 보인 모범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불완전했고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충절을 지켰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믿음과 순종의 본으로 여기셨습니다. (에스겔 14:12-14) 에스겔은 기원전 612년에 바빌로니아에서 오늘의 성구가 들어 있는 예언을 기록했습니다. (에스겔 1:1; 8:1) 몇 년 후인 기원전 607년에 배교한 예루살렘은 예언된 대로 멸망되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노아, 다니엘, 욥의 특성들을 본받은 결과 생존을 위한 표를 받았습니다. (에스겔 9:1-5) 오늘날에도 그들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들만 이 세상 제도가 멸망될 때 생존을 위한 표를 받을 것입니다.—계시록 7:9, 14. 「파18.02」 3면 1-3항
5월 4일 토요일
젊은 시절에 너의 위대한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도 12:1.
청소년 여러분,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내가 영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단지 부모님이 원하시기 때문인가? 나는 하느님과 개인적으로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물론, 청소년들만 영적 목표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목표를 가지면 여호와의 종들 모두가 영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전도 12:13)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게 되었다면 발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8:6-8) 하지만 영적으로 장성한다고 해서 완전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은 우리가 필요한 발전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도 힘써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될 수는 있지만, 성경이 그저 재미로 읽는 소설책 같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유익한 영적 보물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18.02」 25면 10-11항
5월 5일 일요일
지체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일어나 침례를 받으십시오.—사도 22:16.
아주 많은 지식이 있어야만 하느님께 헌신하고 침례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나 침례받은 후에도 계속 정확한 지식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 (골로새 1:9, 10) 그러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1세기에 살았던 한 가족의 예를 통해 중요한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 16:25-33) 바울은 기원 50년경에 2차 선교 여행을 하던 중에 빌립보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는 거짓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흔들렸고 모든 문이 열렸습니다.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쳤다고 생각하여 자살하려고 했고 바울은 큰 소리로 외치면서 그를 막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간수와 그의 가족에게 훌륭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진리를 배우고 마음으로 받아들인 후 어떻게 했습니까? 지체 없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파18.03」 10면 7-8항
5월 6일 월요일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모시는 백성은 행복합니다!—시 144:15.
여호와는 행복하신 하느님이며 그분의 백성도 행복을 누립니다. 더욱이, 자기를 사랑하고 받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여호와의 종들은 다른 사람의 복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주는 데서 기쁨을 맛봅니다. (사도 20:35; 디모데 후서 3:2) 그러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강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빌립보서 2:3, 4에 나오는 이러한 조언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 일도 다툼이나 자기중심적으로 하지 말고, 오히려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적용하고 있는가? 나는 회중 사람들과 야외 봉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는가?’ 헌신적으로 남을 돕기가 항상 쉽지만은 않습니다. 노력과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주 주권자께서 우리에 대해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겠습니까? 「파18.01」 23면 6-7항
5월 7일 화요일
여러분이 믿음 안에 있는지 계속 시험하십시오.—고린도 후서 13:5.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조직이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택하신 유일한 조직이라고 확신하는가? 나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지금이 마지막 날이며 사탄의 통치가 곧 끝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는가? 여호와 하느님께 헌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호와와 예수에 대한 확신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가?’ (마태 24:14; 디모데 후서 3:1; 히브리 3:14)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계속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기념식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성경 출판물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요한 3:16; 17:3)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를 “알아 가고” 그분의 독생자인 예수께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기념식을 준비하기 위해, 여호와와 예수와 더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되는 주제들을 정해 개인 연구를 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파18.01」 13면 5-6항
5월 8일 수요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습니다.—요한 6:44.
우리는 성경이나 출판물 혹은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충실을 유지했는지 알려 주는 경험들을 보고 듣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우리의 삶에서 여호와의 손길을 직접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가지 특별한 면으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인도로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어떤 청소년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부모님을 이끄신 건 맞지만 난 그냥 부모님을 따른 거야.’ 하지만 당신은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받을 때, 자신이 그분과 소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을 정말로 아시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아십니다.” (고린도 전서 8:3) 따라서 여호와의 조직에서 자신의 자리를 늘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파17.12」 26면 12-13항
5월 9일 목요일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징계하신다.—히브리 12:6.
“징계”라는 말을 들으면 벌을 주는 것이 먼저 떠오를지 모르지만, 징계에는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징계는 흔히 긍정적으로 묘사되며 종종 지식, 지혜, 사랑, 생명과 함께 언급됩니다. (잠언 1:2-7; 4:11-13, 각주) 그것은 당연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를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2:6) 하느님의 징계는 처벌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결코 지나치거나 가혹하지 않습니다. 사실, “징계”라는 말이 주로 전달하는 의미는 교육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양육할 때 그런 교육을 베풉니다.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인 우리는 하느님의 집안 식구들입니다. (디모데 전서 3:15)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가지고 계신 권리를 존중합니다. 그분은 표준을 정할 권리를 가지고 계시고, 그 표준을 어기는 사람을 사랑으로 징계할 권리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나쁜 결과를 겪을 때, 하늘의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징계는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줍니다.—갈라디아 6:7. 「파18.03」 23면 1항; 24면 3항
5월 10일 금요일
지식 있는 자는 말을 삼가고, 분별력 있는 자는 차분함을 유지한다.—잠언 17:27.
십 대 청소년은 그리스도인 부모가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너무 많은 제약을 가한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럴 경우 속상하고 답답해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정말 최고의 인생인지 의문이 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 때문에 여호와를 섬기기를 포기한다면, 머지않아 그리스도인 부모와 회중 성원들만큼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당신을 전혀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면, 부모가 당신을 정말 사랑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겠습니까? (히브리 12:8) 물론, 부모가 당신을 징계하는 방식 때문에 기분이 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가 징계하는 방식에 기분 나빠하기보다 부모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부모가 잘못을 지적할 때 차분함을 유지하면서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징계 방식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보다 조언을 차분하게 받아들여 유익을 얻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십시오.—잠언 1:8. 「파17.11」 29면 16-17항
5월 11일 토요일
네가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버린 것이다.—계시록 2:4.
어쩌면 당신은 일부 청소년들이 침례를 받은 뒤에 하느님의 표준에 따라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 의문을 품는 것을 보았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청소년들은 진리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자녀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진리에 대해 처음 가졌던 사랑을 잃어버릴까 봐 염려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가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영적으로 ‘자라서 구원에 이르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베드로 전서 2:2)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대는 배워서 확신하게 된 것에 머무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알고 있으며, 유아기부터 거룩한 기록들[히브리어 성경]을 알았습니다. 그 기록들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대를 지혜롭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14, 15) 바울이 언급한 세 가지 부면 즉 (1) 거룩한 기록들을 아는 것, (2) 배운 것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 (3)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파17.12」 18-19면 2-3항
5월 12일 일요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워 기뻐 외치겠지만, 너희는 마음이 아파 부르짖을 것이다.—이사야 65:14.
많은 종교가 지옥불 교리를 가르치고 십일조를 거두고 정치 선전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종교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거짓 종교라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신 하느님” 여호와와 벗 관계를 맺지 못하고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디모데 전서 1:11)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그분의 피조물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분의 종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행복을 느낍니다. (사도 20:35) 예를 들어, 참숭배가 가정의 행복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참숭배자들은 배우자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결혼 서약을 신성하게 여기고, 간음을 멀리하고, 자녀를 예의 바르게 양육하고,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함께 연합하여 행복한 회중을 이루며 국제적인 형제 관계를 누립니다. 「파17.11」 21면 6-7항
5월 13일 월요일
나는 정말 비참한 사람입니다!—로마 7:24.
하느님의 많은 충실한 종들은 사도 바울이 한 이 말에 공감합니다. 우리 모두는 유전받은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며,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간절한 마음과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비참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심각한 죄를 지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도저히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여호와께 도피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죄책감에 빠져 있을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시 34:22) 바울은 여호와께 완벽하게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의 비참한 심정에 대해 언급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로마 7:25) 그렇습니다. 그는 죄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이미 회개하기는 했지만 과거의 잘못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용서를 확신했습니다. 우리의 대속주인 예수께서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내적 평화를 주십니다. (히브리 9:13, 14)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자기를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탄원하시기 때문입니다.”—히브리 7:24, 25. 「파17.11」 8면 1-2항; 12면 15항
5월 14일 화요일
너희 하느님 여호와께 서원을 하면 그것을 지켜라.—시 76:11.
우리는 자신의 헌신의 서원이 진실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크고 작은 시련에 직면할 때 우리가 취하는 입장은 여호와를 “날마다” 찬양하겠다는 서약을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지 드러내 줄 것입니다. (시 61:8) 예를 들어, 우리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일 때 단호히 선을 그어서 자신이 “[여호와의] 길을 기뻐한다”는 것을 나타냅니까? (잠언 23:26) 종교적으로 분열된 가정에서 가족들이 여호와를 섬기지 않아도 계속 그리스도인 성품을 나타내기 위해 여호와께 도움을 구합니까? 날마다 사랑 많은 하늘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그분의 인도와 사랑에 대해 감사를 표현합니까? 매일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습니까? 사실,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이것은 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여호와를 숭배함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진정으로 헌신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숭배는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입니다. 「파17.10」 23-24면 11-12항
5월 15일 수요일
우리 하느님께 찬양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으니.—시 147:1.
한 유명한 작사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은 생각하게 하고, 음악은 느끼게 하지만, 노래는 생각을 느끼게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호와에 대한 사랑과 찬양을 표현하는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더없이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부르든 하느님의 백성의 회중과 함께 부르든 노래는 순결한 숭배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회중에서 사람들과 함께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낍니까? 혹시 쑥스럽게 느껴집니까? 일부 문화권에서 남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그런 견해는 회중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인도하는 사람들이 노래 부르기를 주저하거나 회중이 노래 부르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한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시 30:12) 노래가 우리가 드리는 숭배의 일부라는 점을 깊이 인식한다면, 집회에서 노래를 부를 때 참석해 있지 않거나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17.11」 3면 1-3항
5월 16일 목요일
내가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습니다.—마태 10:34.
우리 모두는 아무 염려 없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하느님의 평화” 즉 불안한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내적 평온함을 주시는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빌립보 4:6, 7) 또한 우리는 여호와께 헌신했기 때문에 “하느님과 평화”를 즉 그분과 좋은 관계를 누립니다. (로마 5:1) 하지만 아직은 하느님께서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위급한 때인 이 마지막 날에 세상은 분쟁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걸핏하면 다투려고 합니다. (디모데 후서 3:1-4)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사탄과 그가 조장하는 거짓 가르침에 대항하여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10:4, 5)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족의 반대가 우리의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됩니다. 그들은 우리의 신앙을 비웃거나, 가족을 분열시킨다고 비난하거나,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면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고 겁을 줄지 모릅니다. 「파17.10」 12면 1-2항
5월 17일 금요일
내가 당신의 법을 어찌나 사랑하는지요! 온종일 그것을 숙고합니다.—시 119:97.
언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 갑니다. 성경 번역에 사용된 언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번역되었을 때는 이해가 잘되던 성경 번역판도 시간이 지나면 처음만큼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영어로 나온 성경 번역판 한 가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은 1611년에 최초로 발행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영어권에서 매우 널리 보급되었으며 영어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지만 수 세기가 지나면서 「킹 제임스 성경」에 사용된 많은 단어들은 더는 사용하지 않는 고어가 되었습니다. 다른 언어들로 나온 오래된 성경 번역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현대어로 된 「신세계역 성경」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이 성경은 전역과 부분역을 합쳐 15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의 명확한 표현은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소식이 우리의 마음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파17.09」 19면 5-6항
5월 18일 토요일
내 아들아, 지혜롭게 되어 내 마음을 기쁘게 하여라.—잠언 27:11.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들이 좋은 교제 대상, 건전한 오락, 도덕적 깨끗함, 침례와 관련하여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조롱하는 자인 사탄의 뜻을 거슬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내려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은 바로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청소년들이 고등 교육이나 보수가 좋은 직장에 초점을 맞춘 목표를 세우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경제적 상황 때문에 청소년들도 가족을 물질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영적인 목표를 세우고 왕국 권익을 삶에서 첫째 자리에 두기 위해 용기를 내어 노력하는 청소년들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이 가족의 필요를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1세기에 청년 디모데는 영적인 목표를 추구했으며,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빌립보 2:19-22. 「파17.09」 29-30면 10-12항
5월 19일 일요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 그 안에 기록된 것을 모두 주의 깊이 지켜야 한다. 그러면 네가 성공하고 지혜롭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여호수아 1:8.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제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성경에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 어떤 좋은 결과나 나쁜 결과가 있을 수 있는지 생생하게 알려 주는 기록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런 기록을 남기신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로마 15:4) 따라서 반드시 그러한 기록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그 기록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분께 요청하십시오. 어떤 면으로인가 자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점을 인정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 점에 관해 기도하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야고보 1:5) 그리스도인 출판물을 조사해 보면 더 도움이 되는 자료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파17.09」 6면 15-16항
5월 20일 월요일
새 인간성을 입으십시오.—골로새 3:10.
“새 인간성”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는 인간성입니다. (에베소 4:24) 우리가 이처럼 새로운 인간성을 길러 나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셔서 그분의 아름다운 특성들을 본받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1:26, 27; 에베소 5:1) 바울은 새 인간성을 입으라고 권고한 뒤에, 새 인간성의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인 차별하지 않는 태도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대인도 없고, 할례도 무할례도 없고, 외국인도 스키타이 사람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회중에 인종, 국적,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참제자들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3:11; 갈라디아 3:28) 새 인간성을 입은 사람은 사회적, 인종적 배경에 상관없이 동료 신자와 그 밖의 사람들을 존중심 있게 대합니다.—로마 2:11. 「파17.08」 22면 1항; 23면 3-4항
5월 21일 화요일
여호와께서는 ··· 참을성 있게 기다리신다.—이사야 30:18.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기꺼이 기다리는 면에서 뛰어난 본을 남기셨습니다. (베드로 후서 3:9) 여호와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제기된 도덕적 쟁점을 의문의 여지 없이 해결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려 오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이 온전히 거룩해질 때를 “참을성 있게” “계속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결과, “그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0:18, 각주) 예수께서도 기꺼이 기다려 오셨습니다. 그분은 지상에서 충절의 시험을 통과하셨고 기원 33년에 대속 희생의 가치를 바치셨지만, 통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1914년까지 기다리셔야 했습니다. (사도 2:33-35; 히브리 10:12, 13) 또한 자신의 모든 적이 멸망되는 것을 보려면 천년 통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5:25) 하지만 그 기다림은 매우 큰 축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파17.08」 7면 16-17항
5월 22일 수요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시련을 겪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고린도 후서 1:3, 4.
“아들이 죽고 나서 거의 1년 동안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수시의 말입니다.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한 그리스도인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몸에도 이상이 와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리스도인 회중의 많은 형제 자매들은 아마겟돈이 오기 전에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별의 아픔을 직접 겪었거나,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을 알고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아픔이 저절로 치유됩니까? 남편을 잃은 한 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감정적인 상처도 몸에 난 상처와 마찬가지로 잘 보살펴 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물 수 있습니다. 「파17.07」 12-13면 1-3항
5월 23일 목요일
여호와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여라. 그분이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다.—시 37:4.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그분을 알고 충실하게 섬길 때 행복을 얻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시 128:1; 마태 5:3) 하지만 동물들은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동물들은 그저 먹고 마시고 새끼를 낳으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한 것들로 만족하는 동물과는 달리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의미 있는 일들을 계획하여 행복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사랑의 하느님’이자 “행복하신 하느님”이시며,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고린도 후서 13:11; 디모데 전서 1:11; 창세 1:27) 사랑 많은 하느님을 본받을 때 우리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성경 말씀이 맞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도 20:35) 이 말씀은 인간의 삶에 관한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사람들과 하느님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기를 바라십니다.—마태 22:36-39. 「파17.07」 23면 3항
5월 24일 금요일
여호와께서는 충절로 걷는 이들에게 어떤 좋은 것도 숨기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84:11.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인간 종들을 품위 있고 존중심 있게 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돌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 전체의 복지에만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깊은 관심을 보이십니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약 300년 동안 여호와께서는 재판관들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적들로부터 구출하셨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여호와께서는 룻이라는 한 여자에게 주의를 기울이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던 룻은 참숭배로 개종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남편과 아들을 주심으로 룻을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룻이 부활되면 자신의 아들이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성경의 한 책에 보존되었고 그 책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실을 알고 큰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룻 4:13; 마태 1:5, 16. 「파17.06」 28-29면 8-9항
5월 25일 토요일
성령[이]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줄 것입니다.—요한 14:26.
1970년 당시 열아홉 살이던 피터라는 형제는 영국 베델에서 봉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호별 봉사를 하다가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중년 남자를 만났습니다. 피터는 그 남자에게 성경을 알아보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그는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집이 유대교 랍비의 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랍비는 피터를 시험해 보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다니엘서가 무슨 언어로 기록되었는지 아는가?” 피터는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죠”라고 대답했습니다. 피터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 랍비는 내가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더군요. 하지만 더 놀란 사람은 바로 나였죠! ‘도대체 내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가서 「파수대」와 「깨어라!」 이전 호들을 찾아 보니, 다니엘서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고 설명하는 기사가 있더군요.” (다니엘 2:4, 각주)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이전에 읽었던 내용을 생각나게 할 수 있습니다.—누가 12:11, 12; 21:13-15. 「파17.06」 13면 17항
5월 26일 일요일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에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7:28.
아내가 남편에게 “나 임신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종종 또 다른 염렷거리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부부는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임신 기간과 그 이후에 있을지 모르는 의료상의 문제들에 대해 염려하게 됩니다. 또한 부부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당장 그리고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아내는 이제 어머니로서 대부분의 시간과 관심을 아이에게 쏟을 것입니다. 아내가 자녀를 돌보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많은 남편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남편은 아버지로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돌보고 부양해야 할 식구가 늘면서 책임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들은 또 다른 종류의 환난을 겪기도 합니다. 자녀를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자녀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는 임신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심한 감정적 고통을 느낄지 모릅니다. 「파17.06」 4면 1항; 5면 5-6항
5월 27일 월요일
당신이 하신 말씀이 내 입천장에 어찌나 달콤한지, 내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시 119:103.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의 궁극적인 근원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7:17) 따라서 진리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골로새 1:10) 하지만 단지 머릿속에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시편 119편에 나오는 영감받은 필자의 말에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 119:97-100) 우리는 하루 중 어느 때이든 시간을 내어 성경 구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까? 성경 진리를 생활에 적용할 때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지 묵상해 보면 그 진리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의 조직이 마련하는 성경에 근거한 영적 양식의 맛을 즐겨야 합니다. 비유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입천장으로 영적 양식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면 진리의 “기쁨을 주는 말”을 더 잘 떠올리고 그 말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전도 12:10. 「파17.05」 19-20면 11-12항
5월 28일 화요일
하느님께서 참으로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고린도 전서 14:25.
우리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증인이 아니라 해도 기꺼이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누가 10:33-37) 그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 난민을 도운 경험이 있는 한 장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이며 우리의 주된 목적은 그들을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돕는 것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밝히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이기적인 목적으로 우리와 친분을 유지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내면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시 146:9) 한 자매는 자신의 가족이 에리트레아에서 있었던 박해를 피해 도망했다고 말했습니다. 자매의 자녀들 중 넷은 8일 동안 힘겹게 사막을 가로질러 결국 수단에 도착했습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 형제들이 우리 아이들을 가족처럼 대해 주었어요. 음식과 옷과 머물 곳을 마련해 주고 교통비도 챙겨 주었죠. 같은 하느님을 섬긴다는 이유만으로 낯선 사람을 친절히 자기 집으로 맞아 주는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여호와의 증인뿐이죠!”—요한 13:35. 「파17.05」 7면 17, 19-20항
5월 29일 수요일
너희는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욥 42:8.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에게 유익이 될 수 있겠는가?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 해서 그분에게 유익이 되겠는가? 자네가 의롭다 한들 전능자가 무슨 관심을 가지며 충절의 행로를 따른다고 해서 그분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욥 22:1-3) 당신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처음에 이 질문을 한 엘리바스는 사람이 하느님께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엘리바스의 친구인 수아 사람 빌닷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결코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욥 25:4) 이 거짓 위로자들은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섬기려는 우리의 노력이 그분께 아무 유익이 되지 않으며, 하느님의 눈에 우리는 나방이나 구더기나 벌레만큼 하찮은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욥 4:19; 25:6) 여호와께서는 거짓 주장을 한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질책하셨지만, 욥은 기뻐하시고 “내 종”이라고 부르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혀 주셨습니다. (욥 42:7) 그렇습니다. 사람은 분명히 “하느님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파17.04」 28면 1-2항
5월 30일 목요일
[그들은] 풍부한 평화 가운데 더없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시 37:11.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 낡은 세상에서 살아왔으므로 이 세상 상태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시끄러운 기차역 근처에 살면 소음에 무뎌지고 쓰레기장 근처에 살면 냄새에 둔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지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사라진 세상은 어떠할 것입니까?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약속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가슴이 설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그러한 삶을 즐기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이 힘겨운 마지막 날에 여호와 하느님 곁에 머물고 그분의 조직과 연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의 희망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관해 묵상하여 마음과 정신에 생생하게 살아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지런히 그 희망에 관해 알려 주십시오! (디모데 전서 4:15, 16; 베드로 전서 3:15)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사형 선고를 받은 이 낡은 세상이 지나갈 때 살아남아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파17.04」 13면 16-17항
5월 31일 금요일
우리는 모두 여러 번 실수를 저지릅니다.—야고보 3:2, 각주.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만, 막상 다른 형제의 불완전성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공의에 대한 여호와의 시각을 본받을 것입니까? 예를 들어, 장로가 어느 정도 편견이 담긴 말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장로가 생각 없이 말을 해서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는다면 그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까? 그 형제가 장로의 자격이 없다고 속단하기보다 회중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행동하실 때를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입니까?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고, 그 형제가 여러 해 동안 얼마나 충실히 봉사해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것입니까? 나에게 죄를 지은 형제가 계속 장로로 봉사하거나 더 많은 특권을 받는다면 그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까? 우리는 그러한 형제를 기꺼이 용서하여 공의에 대한 여호와의 시각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마태 6:14, 15. 「파17.04」 27면 18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