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월 1일 금요일
노아는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했다. 그는 꼭 그대로 했다.—창세 6:22.
노아는 이전에 방주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를 의지해야 했으며 여호와의 지시를 “꼭 그대로” 따랐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노아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사실, 생명을 구하려면 그 일을 꼭 해내야만 했습니다! 노아는 가장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방주를 지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지혜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대홍수 이전의 악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컸지만, 그는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좋은 본을 보였습니다. (창세 6:5) 부모는 어떻게 하느님의 지침을 “꼭 그대로” 따를 수 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여호와께서 성경과 그분의 조직을 통해 알려 주시는 자녀 양육에 관한 교훈을 적용하십시오. 하지만 부모가 힘써 노력했는데도 일부 자녀들은 여호와를 떠납니다. 그렇다 해도 자녀의 마음에 진리를 심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모는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빗나간 자녀가 언젠가 여호와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파18.03」 30면 10-11항
2월 2일 토요일
서로 후대하십시오.—베드로 전서 4:9.
후대를 베풀고 싶지만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수줍음을 많이 타서 대화가 끊기거나 손님들이 재미없어할까 봐 걱정합니다. 형편이 좋지 않아서 다른 형제 자매들만큼 잘 대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멋진 집이 아닙니다. 집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하고 손님들을 따뜻하게 환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사랑으로 후대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손님들에게 개인적 관심을 보이는 것이 언제나 도움이 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빌립보 2:4)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사적으로 함께 만날 때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을지 모릅니다. 한 장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중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그들을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어떻게 진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죠.” 사랑에서 우러나온 관심을 보이면 어떤 모임에서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파18.03」 17면 15-17항
2월 3일 일요일
지체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일어나 침례를 받으십시오.—사도 22:16.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가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돕고 싶어 합니다. 침례를 늦추거나 불필요하게 미루면 영적으로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 4:17)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가 침례를 받기 전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책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어떤 순회 감독자들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한 일부 자녀들이 10대 후반이나 20대 초가 되어서도 침례를 받지 않는 것을 보고 걱정합니다. 그런 자녀들 대부분은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야외 봉사에도 참여합니다. 또한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받는 것을 주저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침례받는 것을 미루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파18.03」 8면 1-2항
2월 4일 월요일
그리스도 예수가 가졌던 정신 태도를 [가지십시오.]—로마 15:5.
그리스도를 닮으려면 그분의 사고방식과 그분의 성품의 모든 면을 알고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의 생각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갈수록 여호와를 더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고 그분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분이 온갖 배경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경건한 원칙들을 어떻게 적용하시는지도 관찰했습니다. (사도 10:39)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직접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랑 많으시게도 예수의 성품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복음서 기록을 남겨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읽고 묵상하면 그리스도의 생각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르”고 그분과 “같은 정신 태도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베드로 전서 2:21; 4:1. 「파18.02」 22면 15-16항
2월 5일 화요일
믿음은 듣는 것에서 생깁니다.—로마 10:17.
인간 역사 초기부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 세 가지 방법은 눈에 보이는 창조물을 관찰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하느님의 의로운 표준과 원칙에 따라 생활하면서 축복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48:18) 노아는 창조물을 관찰하면서 하느님이 계시다는 풍부한 증거뿐 아니라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 같은 보이지 않는 많은 특성들도 분명히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1:20) 그 결과 노아는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분에 대해 강한 믿음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분명 가족과 친척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아담과 생애가 겹쳤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므두셀라와 고조할아버지 야렛도 있었습니다. 야렛의 생애는 노아와 366년 겹쳤습니다. (누가 3:36, 37) 노아가 그런 점들에 대해 어떻게 배웠든, 노아는 배운 것에 감동을 받아 하느님을 섬기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창세 6:9. 「파18.02」 9면 4-5항
2월 6일 수요일
해가 질 때까지 화난 상태로 있지 마십시오.—에베소 4:26.
동료 형제나 가족이 말이나 행동으로 깊은 상처를 주면 몹시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여러 해 동안 분노를 품고 있을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의 지혜로운 조언에 따라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것입니까? 문제를 오래 방치해 둘수록 형제들과 평화를 이루기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 형제와 세워 주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청하십시오. 그 형제가 여호와의 벗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시 25:14)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벗을 친절하게 대하시며, 우리도 그러기를 바라십니다. (잠언 15:23; 마태 7:12; 골로새 4:6) 둘째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형제가 의도적으로 상처를 준 것이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도 불화가 생긴 데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파18.01」 10면 15-16항
2월 7일 목요일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요한 13:34.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사랑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은 동료 인간에게 진정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여호와의 백성은 항상 그런 태도를 나타내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모세 율법에서 이웃 사랑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 다음으로 중요한 둘째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2:38, 39) 또한 예수께서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참그리스도인을 구분하게 해 주는 특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3:35) 그리스도인은 원수에게도 사랑을 나타냅니다. (마태 5:43, 44)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도시에서 도시로 다니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알리셨습니다. 그분은 시각 장애인, 저는 사람, 나병 환자, 청각 장애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도 부활시키셨습니다. (누가 7:22) 그분은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의 생명을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아버지께서 나타내시는 사랑을 완벽히 본받으셨습니다. 세계 전역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같은 사랑을 나타냅니다. 「파18.01」 29-30면 11-12항
2월 8일 금요일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인해 내게는 모든 일을 할 힘이 있습니다.—빌립보 4:13.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자격을 갖추어 이미 침례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 충실을 유지하려면, 당신이 여호와께 조건 없이 헌신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당신은 친구나 부모가 여호와를 섬기기를 중단한다 해도 계속 그분을 섬기겠다고 우주 주권자인 그분께 약속한 것입니다. (시 27:10) 여호와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헌신에 따라 사는 데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 4:11, 12) 여호와께서는 당신과 친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그분과 벗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빌립보서 2:12에서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떻게 여호와와 벗 관계를 유지해 나갈지, 어려움이 있어도 어떻게 충실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너무 자신만만해서는 안 됩니다. 오랫동안 하느님을 섬기다가도 충실을 유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파17.12」 24면 4, 6-7항
2월 9일 토요일
저는 ··· 이 모든 것을 자원해서 바쳤습니다.—역대기상 29:17.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오늘날 수행되는 놀라운 일을 지원할 수 있는 영예를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왕국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보증하십니다. (말라기 3:10) 여호와께서는 관대하게 주는 사람들이 번영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잠언 11:24, 25) 또한 주는 일을 하면 행복해집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20:35) 말과 본을 통해, 우리는 자녀와 새로운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일을 지원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하면 어떻게 많은 축복을 받게 되는지 알려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받은 것을 돌려드림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해 주신 모든 일에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건축을 위해 “자원 제물을 바치며 기뻐했습니다.” (역대기상 29:9) 우리 모두 여호와께서 주신 것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일을 하면서 계속 기쁨과 만족을 얻기를 바랍니다. 「파18.01」 21면 18-19항
2월 10일 일요일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다음은 그리스도의 임재 중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고린도 전서 15:23.
첫째 부활 즉 하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시작되고 얼마 후에 있을 것이었습니다. 큰 환난 중에 살아 있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구름에 싸여 이끌려 갈”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13-17; 마태 24:31) 그들은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이 울리는 동안에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51, 52) 오늘날 대부분의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섬기라는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날”에 이 악한 세상이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끝이 정확히 언제 올지 모르지만, 증거들은 그때가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3) 악한 세상이 끝나고 나면, 다른 종류의 부활 즉 지상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낙원이 된 땅에서 부활되는 사람들은 인간 완전성에 이르러 다시는 죽지 않을 전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파17.12」 11면 15항; 12면 18-19항
2월 11일 월요일
질투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무질서와 온갖 악한 일도 있습니다.—야고보 3:16.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과 친절이라는 특성을 키워 나간다면, 쉽게 질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질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13:4) 질투가 마음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하느님과 같은 시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형제 자매들을 그리스도인 회중이라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말씀과 일치하게 동료감을 보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 전서 12:16-18, 26)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축복을 받을 때 질투하지 않고 기뻐할 것입니다.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을 생각해 보십시오. 요나단은 다윗이 차기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 질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윗을 격려했습니다. (사무엘상 23:16-18) 우리도 요나단처럼 친절과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파17.11」 27면 10-11항
2월 12일 화요일
그는 ···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재판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낮은 자들을 공평하게 재판하고 ··· 올바르게 책망할 것이다.—이사야 11:3, 4.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율법 계약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율법의 세세한 점들에 치중하기보다는 “더 중요한 것” 즉 그 계명들에 담긴 숭고한 원칙들을 분별하여 적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 23:23) 모세 율법은 여호와와 그분의 의로운 원칙에 대한 “지식과 진리의 뼈대”를 담고 있습니다. (로마 2:20) 예를 들어, 도피 도시 마련은 장로들에게 “참된 공의로 재판”하는 방법을 알려 주며, 우리 모두에게 “서로 충성스러운 사랑과 자비를 보이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스가랴 7:9)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는 변하지 않으시며, 여전히 공의와 자비라는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그분의 특성들을 본받을 수 있으며 그분께 도피할 수 있습니다! 「파17.11」 13면 2-3항; 17면 18-19항
2월 13일 수요일
지혜를 찾아내는 사람과 분별력을 얻는 사람은 행복하다.—잠언 3:13.
연단에서 연설하는 형제들은 성경이 연설의 뼈대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요한 7:16)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점으로, 경험담, 비유, 자신의 연설 방식 등 그 무엇도 연설에서 사용하는 성경 구절보다 더 돋보이거나 더 주의를 끌지 않게 하십시오. 또한 단순히 여러 성구를 낭독하는 것 자체는 성경을 사용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사실, 너무 많은 성구를 사용하면 어떤 성구도 청중의 정신에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요 성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며, 그 성구들을 낭독하고, 설명하고, 예를 들고, 적절하게 적용하기 위해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합니다. (느헤미야 8:8) 골자에 나오는 문장과 참조된 성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점으로, 여호와의 말씀에 나오는 소중한 생각들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분께 기도로 요청하십시오.—에스라 7:10. 「파17.09」 26면 11-12항
2월 14일 목요일
내게 돌아오너라. ···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겠다.—스가랴 1:3.
기원전 537년은 여호와의 헌신한 백성에게 매우 기쁜 해였습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들은 대단한 열정을 갖고 예루살렘에서 참숭배를 회복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기원전 536년에는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16년 뒤에는 여호와의 성전 건축이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개인적인 일을 첫째 자리에 두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한다는 점을 일깨움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520년에, 하느님께서는 백성이 바빌론에서 해방된 이유를 기억하도록 돕기 위해 예언자 스가랴를 보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를 의미하는 스가랴의 이름은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신 것을 잊었지만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여전히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1:3, 4) 그분은 백성이 다시 순결한 숭배를 확립하도록 도와주겠다고 따뜻하게 안심시켜 주시면서도, 나뉜 마음으로 드리는 숭배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경고하셨습니다. 「파17.10」 21-22면 2-3항
2월 15일 금요일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내십시오.—에베소 4:32.
정신 건강 전문가들은 동정심을 나타내면 건강과 삶의 질과 인간관계가 좋아진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 주면 더 행복해지고 낙관적이 되며 외로움을 덜 느끼고 부정적인 생각을 덜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은 유익합니다. 사랑에서 우러나와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주신 원칙과 일치한 행동을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거리낌 없는 양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 성향을 가지면 더 자상한 부모, 더 좋은 배우자, 더 좋은 친구가 됩니다. 기꺼이 동정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과 지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마태 5:7; 누가 6:38) 하지만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이 그 특성을 기르려고 하는 주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주된 이유는 사랑과 동정심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느님을 본받고 그분에게 영예를 돌리기 원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잠언 14:31. 「파17.09」 12면 16-17항
2월 16일 토요일
그는 왕좌에 앉아서 통치하며 왕좌에서 제사장으로도 일할 것이다.—스가랴 6:13.
예수께서는 왕 겸 대제사장으로 임명받으신 것에 더해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임무를 받으셨습니다. 현대에 예수께서는 이 건축 활동의 일환으로 1919년에 참숭배자들을 큰 바빌론에서 해방시키고 그리스도인 회중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거대한 영적 성전의 지상 뜰에서 활동을 인도하도록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임명하셨습니다. (마태 24:45) 그 후로도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을 정련하고 그들이 깨끗한 숭배를 드리도록 도우면서 바쁘게 일해 오셨습니다. (말라기 3:1-3) 천년 통치 중에 예수와 14만 4000명의 보조 왕 겸 제사장들은 충실한 사람들을 완전성으로 끌어올리실 것입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면 깨끗해진 지상에 오직 하느님의 참숭배자들만이 남을 것입니다. 마침내 참숭배가 온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파17.10」 29면 15-16항
2월 17일 일요일
그는 ···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가 피신했던 도피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민수 35:25.
고의성이 없는 살인자가 자비를 받으려면 행동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도피 도시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 20:4) 도망자가 안일한 태도를 보였을 리는 없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그 도시로 가서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것에 생사가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희생을 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직업과 안락한 집과 어디든 마음대로 다닐 자유를 포기하고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도시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편을 감수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회개하는 범죄자가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유익을 얻으려면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짓는 행로를 완전히 버려야 하며, 심각한 죄만이 아니라 그러한 죄로 이끌 수 있는 사소한 죄도 도망치듯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짓는 행로를 버리기 위해 열의를 가지고 행동함으로 우리가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여호와의 자비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분께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고린도 후서 7:10, 11. 「파17.11」 10-11면 10-11항
2월 18일 월요일
투덜거리지 말고 서로 후대하십시오.—베드로 전서 4:9.
여호와께서는 형제 자매들에게 관대하게 베풀라고 명령하십니다. (요한 1서 3:17) 하지만 그렇게 할 때는 순수한 동기로 해야 하며 이기심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주로 친한 친구나 탁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어떤 식으로든 보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 후대를 베푸는가? 아니면 잘 모르는 형제 자매들이나 호의를 되갚을 입장이 아닌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베풀 방법을 찾는가?’ (누가 14:12-14) 또한 동료 그리스도인이 계획을 잘못해서 형편이 나빠졌거나 우리의 후대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경우라면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조언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 조언을 따른다면 올바른 동기로 베풀 때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사도 20:35. 「파17.10」 9면 12항
2월 19일 화요일
내가 어떻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느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창세 39:9.
보디발의 아내는 “체격이 좋고 잘생긴” 요셉을 눈여겨보고 그를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거듭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그 여자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요셉의 본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한 가지 교훈은 우리가 하느님의 법을 어기게 하려는 유혹을 받을 경우 비유적으로 말해 도망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잠언 1:10) 여호와의 증인 중에는 과거에 과식과 과음, 흡연, 마약 남용, 성적 부도덕과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있습니다. 침례받은 후에도 그들은 때때로 이전의 습관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여호와의 법을 어기게 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면, 죄짓게 하는 충동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영적으로 어떤 비참한 결과를 겪게 될 수 있는지 시간을 내어 곰곰이 생각해 봄으로 자신을 강화하십시오. 유혹을 받을 만한 상황을 예상하고 어떻게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 26:4, 5; 잠언 22:3) 시험이 되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유혹에 저항할 지혜와 자제력을 달라고 여호와께 청하십시오. 「파17.09」 4-5면 8-9항
2월 20일 수요일
여러분 자신을 위해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십시오.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 친구들이 여러분을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일 것입니다.—누가 16:9.
여호와의 친구가 되는 한 가지 방법은 상업 제도와 관련을 맺는 일을 최대한 줄이고 우리의 환경을 활용하여 “참된” 부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천막생활을 하며 여호와의 친구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분께 순종하여 번영하는 도시 우르를 떠났습니다. (히브리 11:8-10) 그는 하느님을 참된 부의 근원으로 여겨 항상 그분을 의지했으며, 물질적인 이득을 추구하여 신뢰심의 부족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창세 14:22, 23) 예수께서는 부자인 한 젊은 남자에게 그런 믿음을 갖도록 이렇게 권하셨습니다. “당신이 완전해지기를 원한다면, 가서 당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십시오.” (마태 19:21) 그 젊은이에게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파17.07」 10면 12항
2월 21일 목요일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이 땅을 소유지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그에게 아직 자녀가 없었는데도 말입니다.—사도 7:5.
아브라함의 후손은 그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넌 지 430년이 지난 후에야 그 땅을 소유할 나라로 조직되었습니다. (출애굽 12:40-42; 갈라디아 3:17) 아브라함이 기꺼이 기다린 이유는 여호와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1:8-12) 아브라함은 살아 있는 동안 그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가 부활되어 낙원이 된 땅에서 살게 될 때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 관한 이야기가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알고 몹시 놀랄 것입니다. 그가 약속된 자손에 관한 여호와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데 자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될 때 얼마나 감격스러워할지 상상해 보십시오! 분명히 그는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파17.08」 5-6면 10-11항
2월 22일 금요일
더러움[과] 관련해 땅에 속한 여러분의 몸의 지체를 죽이십시오.—골로새 3:5.
성경에서 “더러움”으로 번역되는 원어 단어는 의미 범위가 넓으며, 성적인 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리킵니다. 흡연이나 음탕한 농담 같이 해로운 습관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7:1; 에베소 5:3, 4) 또한 성욕을 자극하는 서적을 읽거나 음란물을 보는 것처럼 개인이 남몰래 행하는 더러운 행동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 행동을 하면 더러운 습관인 자위행위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음란물을 보는 사람은 “무절제한 성욕”을 키우게 되어 결국 성에 중독될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음란물을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도저히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와 동일한 중독 증세를 보입니다. 따라서 음란물을 보는 습관이 심한 수치심, 업무 생산성 저하, 가정불화, 이혼, 자살과 같은 해로운 결과를 낳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파17.08」 19면 8-9항
2월 23일 토요일
그분은 너의 성문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있는 너의 아들들을 축복하신다. 네 영토에 평화를 가져다주신다.—시 147:13, 14.
시편 필자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관해 생각하면서 여호와에 대해 오늘의 성구와 같이 노래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숭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을 튼튼하게 하실 것임을 알고 큰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려움에 부딪혀 염려에 휩싸이게 될지 모릅니다. 그럴 때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도록 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시편 필자는 하느님께서 “땅에 명령을 보내시니, 그분의 말씀이 빨리도 달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여호와를 가리켜 ‘눈을 내리시고 서리를 흩으시며, 우박을 던지시는 분’이라고 하면서 “누가 그분의 추위를 견딜 수 있으랴?”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말씀을 보내시자 그것이 녹는다”고 했습니다. (시 147:15-18) 우박과 눈을 제어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장애물도 잘 극복하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파17.07」 20면 14-15항
2월 24일 일요일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영광과 영예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계시록 4:11.
하느님의 주권은 정당합니다. 그분은 최상의 방식으로 통치하시며, 우리는 마음을 다해 그분의 주권을 지지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영적 피조물과 인간을 다스릴 전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사탄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주 통치권을 주장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탄과 첫 인간 부부가 여호와의 주권에 반역한 것은 교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0:23) 물론, 그들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길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할 권리도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유 의지 덕분에 매일 나름대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해서 창조주이자 생명을 주신 분에게 반역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여호와께 반역하는 것은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인 우리는 여호와의 의로운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파17.06」 27-28면 2-4항
2월 25일 월요일
나의 행로와 ··· 봉사의 직무[를] 마칠 수만 있다면.—사도 20:24.
우리가 봉사의 직무를 소중히 여긴다면 사도 바울을 본받아 박해를 받을 때에도 계속 전파할 것입니다. (사도 14:19-22) 1930년대와 1940년대 초에 미국의 형제들은 극심한 반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처럼 그들은 반대에 굴하지 않고 계속 전파했습니다. 형제들은 전파할 권리를 확립하기 위해 많은 법적 투쟁을 벌였습니다. 1943년에 네이선 H. 노어 형제는 미국 대법원에서 거둔 승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이 계속 싸워 준 덕분입니다. ··· 주의 백성이 굴하지 않고 박해를 이겨 낸 결과 이러한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봉사의 직무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박해를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봉사의 직무를 여호와께서 주신 값진 보물로 여긴다면, 우리는 단지 봉사 시간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소식을 철저히 증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디모데 후서 4:5. 「파17.06」 11-12면 11-12항
2월 26일 화요일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여호와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다면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고 인내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시 97:10) 하지만 사탄과 그의 세상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약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왜곡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합니다. (디모데 후서 3:2)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과시”를 부추깁니다. (요한 1서 2:16) 사도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체에 정신을 쏟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 육체에 정신을 쏟는 것은 하느님과 적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8:6, 7) 실제로, 부를 쌓거나 성적 욕망을 채우는 데 몰두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결국 허탈감에 빠지고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고린도 전서 6:18; 디모데 전서 6:9, 10. 「파17.05」 18면 5-6항
2월 27일 수요일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십시오.—데살로니가 후서 3:10.
난민 형제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를 나타낸다면 도움을 베푸는 형제들도 기쁨과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물론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만 의지한 채 살아간다면, 자중심이 낮아지고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도 나빠질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7-9) 그렇다 해도 난민 형제들에게는 실제적인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난민 형제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베푸는 데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 아니라 주로 시간과 관심입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법, 직업이나 집을 구하는 법, 저렴하면서도 몸에 좋은 식품을 사는 법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문제가 있을 때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돈을 버는 데 필요한 도구나 장비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를 알려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회중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집회에 오가는 차편을 제공해 주십시오. 또한 구역에서 왕국 소식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들과 함께 봉사하십시오. 「파17.05」 5면 11-12항
2월 28일 목요일
말씀의 순수한 젖에 대한 열망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에 의해 자라서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베드로 전서 2:2.
육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물질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감각이 무디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2:14) 분별력이 약해지면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히브리 5:11-14) 그러다 보면 물질에 대한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그 욕망을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전도 5:10) 다행히도 물질주의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으셨던 것처럼, 성경 원칙을 적용하면 물질주의적인 욕망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마태 4:8-10) 그렇게 함으로 물질적인 것보다 예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그분께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파17.05」 26면 17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