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월 1일 목요일
내 아들아, 지혜롭게 되어 내 마음을 기쁘게 하여라. 그러면 나를 조롱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잠언 27:11.
사탄은 비이기적인 사랑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욥 2:4, 5) 그러한 주장을 한 이후로 사탄은 달라졌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났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는 자, 곧 우리 하느님 앞에서 그들을 밤낮으로 고발하는 자”라고 불렸습니다. (계시록 12:10) 사탄은 아직도 인간의 충절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시련에 굴복하여 하느님의 주권을 더는 지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고난을 겪고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한쪽 편에 사탄과 악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련을 겪는 당신을 가리키며 당신이 결국 어려움에 굴복하여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한편에는 여호와와 왕으로 다스리는 그분의 아들, 부활된 기름부음받은 자들, 수많은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응원하면서 당신이 인내하고 여호와의 주권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합니다. 사실, 오늘의 성구는 여호와께서 우리 개개인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입니다. 「파16.04」 2:8, 9
11월 2일 금요일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십시오.—마태 18:16.
한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면 당신은 “그 형제를 얻은 것입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을 도우려고 반복적으로 노력했는데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만 장로들에게 문제를 가져가야 합니다. 사실, 마태복음 18:15-17에 나오는 세 단계를 모두 밟아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회개하지 않아 회중에서 추방되어야 할 정도가 되기 전에 대개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은 흔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문제를 바로잡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더 이상 잘못을 밝혀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용서해 주기로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예수의 말씀은 개인 간의 문제에 회중이 성급히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처음 두 단계를 밟았고 일어난 문제를 확증해 주는 분명한 증거가 있을 때에만 장로들이 개입할 수 있습니다. 「파16.05」 1:15, 16
11월 3일 토요일
그들[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요한 17:16.
우리는 하느님의 왕국의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기 위해 중립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왕국만이 인류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면서 어떻게 깨끗한 양심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에 더해, 거짓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여 교인들을 분열시키지만 참숭배자들은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국제적인 형제 관계를 누립니다. (베드로 전서 2:17) 사탄의 제도의 끝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중립 문제가 더 크게 대두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합의하려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하”기 때문에 세상은 앞으로 더욱더 분열될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3:3, 4) 이미 일부 나라들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우리 형제들이 예기치 않게 중립 입장에 시험이 되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립을 유지하려는 결심을 지금 강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어려움이 닥치면 우리의 중립 입장을 타협하거나 거스르는 행동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파16.04」 4:3, 4
11월 4일 일요일
사람은 무엇을 뿌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갈라디아 6:7.
일부 사람들은 우리 각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려면 성경에 들어 있는 법과 원칙들을 잘 검토하고 그에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승인을 얻으려면 피에 관한 그분의 법과 일치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창세 9:4; 사도 15:28, 29) 성경의 원칙과 법이 관련된 문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에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자신의 영적 건강과 복지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좋게든 나쁘게든 여호와와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하느님과 가까워지지만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하느님과 멀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회중의 연합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각자가 내리는 결정은 아주 중요합니다.—로마 14:19. 「파16.05」 3:4, 5
11월 5일 월요일
나 여호와는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는 이다.—이사야 48:17.
우리가 “시간을 잘 활용”하여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고 개인 연구를 하기 위해 노력할 때 여호와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에베소 5:15, 16)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제나 모든 영적 양식에 동일한 정도로 관심을 쏟을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잘못된 생각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위험입니까? 특정한 영적 양식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충분한 유익을 얻지 못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어떤 부분이 자신의 상황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면 어떠합니까? 어떤 출판물이 특정한 대상을 위한 것이라서 나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어떠합니까? 그러한 자료를 대충 보거나 아예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자신에게 매우 유익한 내용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영적 양식의 근원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파16.05」 5:5, 6
11월 6일 화요일
어떤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고 걸음을 잘못 내디딜지라도, 영적 자격을 가진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온화한 영으로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십시오.—갈라디아 6:1.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회중과 감독자들을 통해 우리 개개인을 빚으십니다. 예를 들어, 장로들은 우리에게 영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보면 우리를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때 인간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통찰력과 지혜를 구합니다. 그 기도와 일치하게 장로들은 우리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인 출판물을 조사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필요에 맞게 도움을 베풀 준비를 갖춥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빚으시는지를 이해하면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잘 지내고 구역에 사는 사람들과 성서 연구생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변화하도록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의로운 표준을 밝혀 주셔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생활을 깨끗하게 바로잡거나 필요한 조정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파16.06」 1:13, 14
11월 7일 수요일
너는 자신을 위해 큰일을 추구하고 있다. 더 이상 그런 일을 추구하지 마라.—예레미야 45:5.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과시” 같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고 경고했습니다. (요한 1서 2:15, 16) 따라서 우리는 세상적인 오락이나 교제나 옷차림이나 몸단장에 마음이 끌리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고등 교육을 받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큰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도 세상을 사랑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된 신세계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따라서 신명기 6:4에서 모세가 한 강력한 말을 정신에 잘 새겨 두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라는 말을 명확히 이해하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분에게 전적인 정성을 바치고 그분이 승인하시는 방식으로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히브리 12:28, 29. 「파16.06」 3:14
11월 8일 목요일
[하느님의] 왕국을 계속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러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누가 12:31.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 안 되지만 원하는 것은 끝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두 가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필요한 것”이란 살아가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의식주가 거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원하는 것”이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갖고 싶은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사는 지역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은 휴대폰이나 오토바이 혹은 작은 땅을 살 돈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옷장에 멋진 옷들을 가득 채워 놓거나 큰 집이나 비싼 자동차를 갖고 싶어 할지 모릅니다. 어떤 경우이든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질주의의 덫에 빠져 필요하거나 형편이 되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브리 13:5. 「파16.07」 1:1-3
11월 9일 금요일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미리 계획하지 마십시오.—로마 13:14.
많은 사람은 일상생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영적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마태 5:3) 그들은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푹 빠져 있습니다. (요한 1서 2:16)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영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게 도와주십니다. (고린도 전서 2:12) 우리는 뭔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야만 영적 졸음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이라도 그 일이 영적 활동을 뒷전으로 밀어내면 우리는 영적 졸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누가 21:34, 35) 우리가 깨어 살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조롱하더라도, 긴박감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 후서 3:3-7) 우리는 하느님의 영이 흐르는 회중 집회에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정기적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파16.07」 2:13, 14
11월 10일 토요일
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여, 모든 부류의 사람이 당신에게 나아갈 것입니다. ··· 당신은 우리의 범법을 덮어 주십니다.—시 65:2, 3.
많은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기도를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이 정말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그것을 해 주겠습니다.” (요한 14:14)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여호와의 뜻과 일치한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가진 확신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청하면 그분이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 1서 5:14) 기도는 그저 마음에 위로를 얻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의 왕좌”로 가까이 갈 수 있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이 점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 아닙니까! (히브리 4:16)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에 대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침으로, 사람들이 여호와와 가까워지고 시련을 겪을 때 위로를 받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시 4:1; 145:18. 「파16.07」 4:11, 12
11월 11일 일요일
당신의 충성스러운 자들이 당신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왕권의 영광을 선포하고 당신의 위력을 이야기하여, 사람들에게 ··· 당신의 왕권의 찬란한 영화를 알릴 것입니다.—시 145:10-12.
오늘의 성구는 여호와를 섬기는 모든 충성스러운 증인들의 심정을 잘 표현해 줍니다. 하지만 노령이나 건강 문제로 봉사를 하는 면에서 다소 제약이 있다면 어떠합니까? 의료진이나 자신을 돌봐 주는 사람 혹은 그 밖의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때, 그 신성한 봉사로 우리의 위대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하십시오. 믿음 때문에 투옥되어 있다면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잠언 27:11) 증인이 아닌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에도 영적 일과를 꾸준히 따른다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3:1-4)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는 여호와께 찬양을 돌리고 영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귀중한 진리를 전하는 일에 참여한다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분명히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파16.08」 3:19, 20
11월 12일 월요일
아내들은 주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회중의 머리이신 것과 같습니다.—에베소 5:22, 23.
머리 직분 마련은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마련은 아내가 하느님께서 뜻하신 역할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아담]이 계속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해 그의 보완자가 될 돕는 자를 만들겠다.” (창세 2:18) “회중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랑을 나타내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남편도 사랑으로 머리 직분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내는 안정감을 갖게 되며 남편을 존경하고 지원하고 복종하면서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를 본받으려면 그분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 13:34, 35; 15:12, 13; 에베소 5:25)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필요하다면 배우자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을 만큼 배우자를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파16.08」 2:3, 4
11월 13일 화요일
때에 맞게 하는 말이 어찌 그리 좋은가!—잠언 15:23.
우리는 긍정적인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그들이 여호와를 더 온전히 섬기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집회에서 손을 들고 격려적인 해설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느헤미야와 그의 동료들은 여호와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손을 강하게 하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끝냈습니다! (느헤미야 2:18, 각주; 6:15, 16) 느헤미야는 그저 뒷짐 지고 공사를 감독하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느헤미야 5:16) 오늘날에도 많은 장로들은 느헤미야를 본받아 신권 건축 공사를 지원하거나 왕국회관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또한 다른 전도인들과 함께 봉사하고 형제 자매들을 방문함으로 근심이 있는 사람들의 약한 손을 강하게 합니다.—이사야 35:3, 4. 「파16.09」 1:15, 16
11월 14일 수요일
사랑은 ···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고린도 전서 13:4, 5.
하느님의 백성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조언을 따르려고 힘써 노력합니다. “성적 부도덕, 더러움, 무절제한 성욕[과] 관련해 땅에 속한 여러분의 몸의 지체를 죽이십시오.” (골로새 3:2, 5)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그 조언을 따르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부도덕한 생활을 중단한 형제 자매들은 여전히 죄 많은 경향과 힘써 싸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고린도 전서 6:9, 10) 우리 중에 그들의 싸움을 더 힘들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영적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의 옷차림은 회중이 도덕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어떤 옷을 입을지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을 고려할 책임도 있습니다. 우리의 옷차림은 다른 사람들이 도덕적 깨끗함을 유지하면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표준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베드로 전서 1:15, 16. 「파16.09」 3:9, 10
11월 15일 목요일
청년들과 처녀들, ···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여라.—시 148:12, 13.
“부모가 여호와를 믿는다고 자녀도 저절로 믿게 되는 건 아니죠.” 프랑스에 사는 한 부부의 말입니다. 그 부부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대를 이어 그냥 물려주는 게 아니에요. 자녀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하죠.”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형제는 이렇게 썼습니다. “자녀의 마음에 강한 믿음을 심어 주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거예요. ··· 자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고 나서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질문을 또 할 때가 있어요! 우리가 해 준 대답에 오늘은 만족할지 몰라도 내일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죠.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 여러분, 자녀를 잘 가르쳐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 책임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지혜만으로는 그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10:23) 하지만 하느님께 지침을 구한다면 가능합니다. 「파16.09」 5:1, 2
11월 16일 금요일
네가 선을 베풀어야 할 자들에게 선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마라.—잠언 3:27.
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새로운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힘써 노력합니다. 룻은 그 면에서 훌륭한 본이 됩니다. 첫째로, 룻은 이삭을 주워도 될지 허락을 구함으로 새로운 나라의 관습에 대해 존중심을 보였습니다. (룻 2:7)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마땅히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룻은 자신이 받은 친절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룻 2:13) 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그런 훌륭한 태도를 나타낸다면 지역 주민이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존중받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셔서 온갖 배경의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듣게 해 주신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그들은 고국에서는 성서 연구를 하거나 여호와의 백성과 자유롭게 연합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와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더 이상 낯선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16.10」 1:17-19
11월 17일 토요일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해, ··· 형주를 인내하셨습니다.—히브리 12:2.
오늘날 하느님을 숭배하는 수많은 사람은 예수의 본을 따라 희망을 늘 또렷하게 간직하며 시련을 겪어도 믿음을 강하게 유지합니다. 1925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루돌프 그라이헨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자기 집 벽에 걸려 있던 성경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 그림은 이리와 어린양, 새끼 염소와 표범, 송아지와 사자, 이 모든 동물이 평화롭게 함께 어울리고 한 어린아이가 그 동물들을 이끌고 다니는 장면이었습니다. ··· 그러한 그림들은 내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사야 11:6-9) 루돌프는 처음에는 나치 게슈타포에게, 나중에는 동독의 공산주의 단체인 슈타지에게 여러 해 동안 모진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땅이 낙원이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유지했습니다. 루돌프는 또 다른 힘든 시련들도 겪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라벤스브뤼크 강제 수용소에서 발진 티푸스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믿음이 약해져서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을 포기했습니다. 「파16.10」 3:12-14
11월 18일 일요일
여러분은 ···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 사실이 그러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데살로니가 전서 2:13.
여호와의 종들은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책인 성경을 정말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때로 성경에 근거한 조언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1세기의 그리스도인인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름부음받은 이 여자들 사이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의 문제로 인해 자칫 회중 전체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자매들 사이의 문제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도 바울의 사랑에 찬 조언을 잘 따랐을 것입니다. (빌립보 4:2, 3)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들에서도 그와 비슷한 상황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들어 있는 조언을 적용한다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리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여호와께서 주신 책인 성경을 정말 소중히 여긴다면, 성경의 지침에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시 27:11. 「파16.11」 3:1-3
11월 19일 월요일
고난의 날에 낙담한다면 힘이 빠지게 될 것이다.—잠언 24:10.
우리 모두에게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성장기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교육자인 티머시 에번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식물에 물이 필요하듯 아이들에게는 ··· 격려가 필요하다. ··· 아이들은 격려를 받으면 자신이 꼭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위급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비정하며, 격려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 후서 3:1-5) 사탄 마귀는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낙담하면 영적으로나 그 밖의 면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의로운 욥이 재난을 당하는 것에 더해 비난도 받게 해서 그를 낙담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악랄한 책략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욥 2:3; 22:3; 27:5) 우리는 가족과 회중 성원들을 격려함으로 마귀의 계략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가정과 왕국회관에는 행복과 안정감이 가득할 것입니다. 「파16.11」 1:4, 6
11월 20일 화요일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베드로 전서 2:9.
16세기 초에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성경을 실제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어디에 연옥이 나오는가? 죽은 자들을 위해 돈을 주고 미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가? 교황이나 추기경 얘기는 어디에 나오는가?’ 교회는 그 상황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지도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단 말입니까! 교회는 강력히 대응했습니다. 교회의 교리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이단으로 낙인찍혔습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국가는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교회의 속셈은 대중이 성경을 읽고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계략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은 큰 바빌론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의 말씀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더욱더 맛보고 싶어 했습니다! 「파16.11」 4:13
11월 21일 수요일
충실한 증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잠언 14:5.
정직성은 그리스도인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특성입니다. (에베소 4:25) 사탄은 “거짓의 아버지”입니다.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들처럼 되기를 원치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요한 8:44; 사도 5:1-11) 하지만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정직한 것입니까?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면 모든 면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거짓말은 진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은 명백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분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십니다. 그분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하느님은 무엇이 거룩한 것인지 몇 가지 예를 드셨습니다. 그중 일부는 이러합니다. “너희는 도둑질해서도 안 되고, 속여서도 안 되며, 서로를 거짓으로 대해서도 안 된다.” (레위 19:2, 11) 안타깝게도, 명백한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말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파16.12」 1:17, 18
11월 22일 목요일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줄 것입니다.—빌립보 4:7.
성경에는 위로가 되는 예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새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께서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을 달래 주고 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우울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분에게 이끌렸습니다. (마태 11:28-30) 그분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그들의 영적, 감정적, 신체적 필요를 돌봐 주셨습니다. (마가 6:30-32) 힘을 내도록 도와주시겠다는 예수의 약속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도들처럼 우리도 그분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문자 그대로 예수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의 왕이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동정심을 갖고 계시며 동정심을 실제로 나타내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염려가 있을 경우, 그분은 자비를 나타내어 ‘제때에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괴로움을 겪을 때 잘 대처해 나가도록 도와주실 수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히브리 2:17, 18; 4:16. 「파16.12」 3:4, 6
11월 23일 금요일
내가 모든 육체에 끝을 가져오기로 결정하였다.—창세 6:13.
노아는 “폭력”과 부도덕이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창세 6:4, 9-12) 노아는 충실하게 여호와의 경고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악한 사람들이 그 소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수도 없었고 대홍수가 닥칠 때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도 없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서 악을 끝낼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실 것임을 확신했으며, 꼭 알맞은 때에 그렇게 하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창세 6:17) 우리 역시 악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여호와께서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 1서 2:17) 그때까지, 우리는 사람들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수도 없고 “큰 환난”이 시작될 때를 앞당길 수도 없습니다. (마태 24:14, 21) 노아처럼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곧 개입하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 37:10, 11) 우리는 여호와께서 이 악한 세상을 자신의 목적에 필요한 것보다 하루라도 더 지속되게 하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하박국 2:3. 「파17.01」 1:5-7
11월 24일 토요일
나 여호와는 ···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걸어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이사야 48:17.
오늘날 수많은 사람은 선택의 자유를 잘못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힙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마지막 날”인 오늘날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디모데 후서 3:1, 2) 우리는 여호와께서 주신 이 소중한 선물을 잘못 사용하거나 당연하게 여겨서는 결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유 의지라는 선물을 오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교제 대상, 옷차림과 몸단장, 오락 등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육적인 욕망의 종이 되는 편을 선택하거나 이 세상의 천박한 유행과 추세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자유는 “악행을 덮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2:16) 우리는 자유를 “육적인 욕망을 추구할 기회”로 삼지 말고, 오히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교훈을 따르는 데 도움이 될 선택을 해야겠습니다.—갈라디아 5:13; 고린도 전서 10:31. 「파17.01」 2:12-14
11월 25일 일요일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 계속해서 단식하고 하늘의 하느님 앞에서 기도했다.—느헤미야 1:4.
느헤미야의 본은 임명이 바뀌거나 더 많은 책임을 맡는 경우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데 겸허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장로가 자신의 경험에만 의지하게 되면 여호와께 먼저 기도하지도 않고 회중 일을 처리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부 형제 자매들은 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 여호와께 축복해 달라고 기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겸허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겸허한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며 하느님의 마련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늘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익숙한 상황이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경우에 특히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 3:5, 6) 하느님의 집안 식구인 우리는 정부나 기업에서 승진의 사다리를 오르듯 어떤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 아니라, 가정과 회중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디모데 전서 3:15. 「파17.01」 4:7, 8
11월 26일 월요일
[여호와께서] 땅은 사람의 아들들에게 주셨다.—시 115:16.
여호와의 원래 목적은 인류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었습니다. (창세 1:28; 시 37:29) 그분은 아담과 하와에게 삶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되는 온갖 소중한 선물들을 관대하게 주셨습니다. (야고보 1:17)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자유 의지, 사고력, 사랑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아담과 대화하시면서 자신에게 순종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아담은 자신의 필요를 돌보고 동물들과 땅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창세 2:15-17, 19, 20) 또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미각, 촉각, 시각, 청각, 후각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집인 낙원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첫 인간 부부 앞에는 만족을 주는 일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끝없는 기회가 놓여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완전한 자녀를 출산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풍부한 자원이 가득한 지구는 그들이 영원히 살 집이 될 것이었습니다. 「파17.02」 1:6, 7
11월 27일 화요일
[그는] 이 율법을 책에 베껴 써서 자기를 위해 사본을 만들어야 합니다. ···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신명 17:18, 19.
하느님의 말씀은 인도하는 일을 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요시야 왕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 율법이 들어 있는 문서가 발견된 뒤에, 요시야의 비서관은 그것을 그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요시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나오는 지침을 따라, 우상 숭배를 없애는 대대적인 활동에 착수했고 전례 없는 규모로 유월절을 지킬 마련을 했습니다. (열왕기하 22:11; 23:1-23) 요시야를 비롯한 충실한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알려 준 지침을 기꺼이 조정하고 더 명확히 밝혀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하느님의 고대 백성은 그분의 뜻과 일치하게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대에 하느님의 백성을 다스린 왕들이 모두 하느님의 지침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지도자들을 징계하기도 하시고 다른 사람을 대신 임명하기도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3:13, 14) 하느님께서는 정해진 때가 되자, 그 전까지 자신이 사용한 그 어떤 사람보다 탁월한 지도자를 임명하셨습니다. 「파17.02」 3:11, 12, 14
11월 28일 수요일
당신은 [사람을] 신 같은 자들보다 조금 낮추시고 영광과 영화로 면류관을 씌우셨습니다.—시 8:5.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 1:27)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느님이 나타내시는 선한 특성들을 나타냅니다.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을 보일 역량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창조될 때 양심을 받았습니다. 양심이 부정확하거나 뒤틀린 경우도 있지만, 대개 양심은 옳은 것과 그른 것, 정직한 것과 부정직한 것, 합당한 것과 부당한 것을 알려 주는 내면의 소리를 발합니다. (로마 2:14, 15) 대부분의 사람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에 이끌리며, 타인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사람은 여호와의 영광을 어느 정도 반영하며, 그러한 이유로 어느 정도 존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존중심을 보여야 할지 판단할 때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파17.03」 1:5, 6
11월 29일 목요일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하셨던 재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셨다. 그러고는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요나 3:1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홧김에 행동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고 태도를 바꾼 것을 보시고 자신의 결정을 바꾸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심으로 합리적인 태도와 겸손과 동정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어떤 선택이나 결정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황에 변화가 생깁니다. 여호와께서도 상황이 변했을 때 결정을 바꾸신 일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21:20, 21, 27-29; 열왕기하 20:1-5) 혹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결정을 바꿔야 할 타당한 이유가 생기기도 합니다. 다윗 왕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에 대해 잘못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자 자신이 내렸던 결정을 바꾸었습니다.—사무엘하 16:3, 4; 19:24-29. 「파17.03」 2:14, 15
11월 30일 금요일
여러분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하십시오.—빌립보 4:5.
문제가 생기면 그와 관련된 성경 원칙을 고려하고 균형 잡힌 방법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자매는 자신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 4:20) 그런데 야외 봉사를 하기로 계획한 날이 되자 믿지 않는 남편이 오늘은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둘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자매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성구들을 떠올립니다. (마태 28:19, 20; 사도 5:29) 하지만 그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합리적이 되라는 원칙들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 5:22-24) 남편은 자매가 봉사를 아예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날만 다른 일을 하자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노력할 때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파17.03」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