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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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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8
날18 98-108면

10월

10월 1일 월요일

하느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니, 도와 달라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구출하십니다.—시 145:19.

여호와께서는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로마 15:5) 오직 그분만이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우리의 환경과 감정과 유전적 요인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온전히 이해하십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인내하는 데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는 비길 데 없는 분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인내할 힘을 달라는 우리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우리가 여호와께 시련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청하면 그분은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0:13)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여호와께서는 상황을 조정하셔서 시련을 없애 주십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인내할 수 있게” 해 주심으로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참을성과 기쁨으로 온전히 인내”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골로새 1:11) 또한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한계를 매우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충실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까지 상황이 전개되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파16.04」 2:5, 6

10월 2일 화요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마태 22:21.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 정부들에 순종하라고 가르치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사도 5:29; 디도 3:1) 이것은 서로 모순되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적인 복종이라는 원칙을 알면 그 명령들을 이해하고 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오늘의 성구에서 예수께서는 그 원칙을 간단히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라의 법을 지키고 관리들에게 존중심을 보이고 세금을 납부함으로 정부의 권위에 복종합니다. (로마 13:7) 하지만 정부 당국이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도록 요구한다면 우리는 정중히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정치 문제에서 중립을 유지합니다. (이사야 2:4) 여호와께서 인간 정부들이 존재하도록 허용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그 정부들에 대항하지 않습니다. 또한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활동을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로마 13:1, 2) 그에 더해 로비 활동을 벌이거나 선거에서 투표하거나 정치인이 되려고 출마하거나 정권을 바꾸려고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파16.04」 4:1, 2

10월 3일 수요일

그를 이방 사람[같이] 여기십시오.—마태 18:17.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는 대부분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회중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18:15-17) 잘못을 범한 사람이 피해를 입은 형제와 증인들과 회중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사람은 “이방 사람이나 세금 징수원같이” 여겨야 합니다. 오늘날 그것은 제명에 해당합니다. 그처럼 심각한 조처를 취하는 것을 보면 그 성구에서 말하는 “죄”란 사소한 갈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1) 당사자 간에 해결할 수 있는 죄이면서도, (2)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명 처분을 할 만큼 심각한 죄를 가리킵니다. 그러한 죄에는 사기가 관련된 일이나 중상으로 다른 사람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일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 조건들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마태복음 18:15-17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파16.05」 1:14

10월 4일 목요일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에베소 5:17.

성경은 모든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명령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옷을 입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세세한 규칙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이 점은 여호와의 지혜를 잘 보여 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스타일과 관습은 지역마다 다를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합니다. 만일 성경에서 어떤 스타일의 옷차림과 몸단장이 적절한지 일일이 열거했다면 그 규칙은 아마 지금쯤 구식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성경에는 직업이나 건강관리나 오락에 관해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규칙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직접적인 명령이 없는 문제의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경우 우리 각자는 단지 개인의 기호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자세히 따져 본 다음 여호와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만한 선택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시 37:5. 「파16.05」 3:2, 6

10월 5일 금요일

여러분은 ···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이 그러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데살로니가 전서 2:13.

분명 우리 모두는 성경에서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를 통해 여호와의 아름다운 성품을 보여 주는 복음서를 특히 좋아합니다. (요한 14:9) 요한 계시록과 같이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 주는 예언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계시록 1:1) 또한 우리는 시편을 읽으면서 위로를 얻거나 잠언에서 실용적인 교훈을 배운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성경에 근거한 출판물도 당연히 좋아합니다. 우리는 서적, 팜플렛, 잡지나 그 밖의 여러 형태로 제공되는 영적 양식을 소중히 여깁니다. 여호와께서 마련해 주신 이러한 출판물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고 영적 건강과 ‘건전한 믿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디도 2:2. 「파16.05」 5:1-3

10월 6일 토요일

영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 온화, 자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을 법은 없습니다.—갈라디아 5:22, 23.

성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빚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은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나타내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도록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 열매를 이루는 한 가지 특성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을 짐스럽게 여기지 않으며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에 의해 빚어지기를 원합니다. 또한 성령은 세상과 세상의 악한 영이 우리를 빚지 못하도록 저항할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에베소 2:2) 사도 바울은 젊은 시절에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교만한 태도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인해 내게는 모든 일을 할 힘이 있습니다.” (빌립보 4:13) 따라서 바울처럼 계속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온유한 자들의 진실한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10:17. 「파16.06」 1:12

10월 7일 일요일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영광과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계시록 4:11.

우리가 여호와를 오직 한 분의 유일한 하느님으로 인정한다면 그분에게 전적인 정성을 바쳐야 합니다. 다른 신들을 숭배하거나, 우리의 숭배에 거짓된 사상이나 관습을 조금이라도 섞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는 그저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이거나, 단지 그 신들 가운데 가장 높고 강력한 신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우리가 숭배해야 할 유일한 분입니다. 여호와께 전적인 정성을 바치려면 우리의 삶에서 여호와만이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다른 무언가에 조금이라도 내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이 여호와의 자리에 들어서게 될 수 있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그분의 백성이 그분 외에 다른 어떤 신들도 섬겨서는 안 되며 어떤 형태의 우상 숭배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신명 5:6-10) 오늘날 우상 숭배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며, 그중에는 알아차리기 힘든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마가 12:29. 「파16.06」 3:10, 12

10월 8일 월요일

여러분이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을 용서하실 것입니다.—마태 6:14.

베드로가 잘못한 사람을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는지 물었을 때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말하는데,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십시오.” 분명, 예수의 말씀은 우리가 언제나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저하지 않고 용서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 6:15; 18:21, 22) 우리는 모두 약점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실망시켰다면, 성경의 조언대로 그 사람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태 5:23, 24)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감을 품지 않을 때 고마움을 느낍니다. 따라서 우리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5; 골로새 3:13) 다른 사람을 계속해서 용서한다면 여호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 자비를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를 때 우리도 그분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시 103:12-14. 「파16.06」 4:15, 17

10월 9일 화요일

나는 좋은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실, 좋은 소식은 ···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로마 1:16.

이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백성은 ‘왕국의 좋은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기 위해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마태 24:14) 우리가 전하는 소식은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의 좋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왕국의 통치 아래 누리게 될 모든 축복은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는 과분한 친절 덕분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20:24; 에베소 1:3) 우리 각자는 바울을 본받아 열심히 전파함으로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에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로마 1:14, 15) 우리는 죄인이지만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나타내시는지, 그들이 그로부터 어떻게 개인적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최선을 다해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파16.07」 4:4, 5

10월 10일 수요일

준비하고 있으십시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누가 12:40.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제자들에게 “이 세상의 통치자”에 대해 세 차례 경고하셨습니다. (요한 12:31; 14:30; 16:11) 예수께서는 마귀가 사람들을 정신적인 어둠 속에 가두어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예언에 담긴 긴박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 것임을 아셨습니다. (스바냐 1:14) 사탄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합니다.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들은 이 세상 제도의 끝이 가까웠고 그리스도께서 현재 하느님의 왕국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마귀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고린도 후서 4:3-6)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이야기하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담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에 영향을 받아 깨어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거나 그들의 생각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파16.07」 2:11, 12

10월 11일 목요일

여러분도 각자 자신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에베소 5:33.

결혼식 날 멋진 신랑과 사랑스러운 신부가 서로 마주할 때, 그 두 사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결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지혜로운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결혼을 창시하신 사랑 많은 하느님께서 모든 부부가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면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8:22) 하지만 성경에서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결혼하면 “육체에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고린도 전서 7:28) 어떻게 하면 그러한 어려움을 최대한 줄일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결혼에는 부드러운 애정(그리스어 필리아)이 필요합니다. 낭만적인 사랑(에로스)은 기쁨을 더해 주며, 자녀가 태어나면 가족에 대한 사랑(스토르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원칙에 근거한 사랑(아가페)입니다. 「파16.08」 2:1, 2

10월 12일 금요일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한결같이 주의를 기울이십시오.—디모데 전서 4:16.

디모데는 이미 경험 많은 왕국 선포자였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봉사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가르침에 “한결같이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늘 하던 방식대로 이야기를 건네도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계속 호소력 있게 전파하려면 사람들의 필요에 맞게 방법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왕국 선포자로서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호별 방문을 해 보면 사람들이 집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지역에는 출입이 통제된 아파트나 주택 단지들이 있습니다. 우리 구역의 상황도 그러하다면,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개 증거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많은 증인들은 이 방법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봉사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은 시간을 내어 기차역, 버스 터미널, 시장,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 가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파16.08」 3:14-16

10월 13일 토요일

늘어진 손과 연약한 무릎을 강하게 하십시오.—히브리 12:12.

여호와께서는 세계적으로 연합된 사랑 많은 형제 자매들을 주셨으며, 그들은 우리를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히브리 12:12, 13) 1세기에 많은 사람들은 형제 자매들을 통해 영적인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아론과 후르는 전투 중에 문자 그대로 모세의 손을 받쳐 주었습니다. (출애굽 17:8-13) 오늘날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구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노령, 좋지 않은 건강, 가족의 반대, 외로움, 사별의 슬픔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에게도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쁜 행동을 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고등 교육을 받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좋은 직업을 가져서 출세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1-3; 5:11, 14) 왕국회관에 있을 때, 봉사할 때, 형제들과 함께 식사할 때, 전화로 대화를 나눌 때 사람들에게 진실한 관심을 보일 기회를 찾으십시오. 「파16.09」 1:13, 14

10월 14일 일요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고린도 전서 10:31.

옷차림과 관련하여 우리는 거룩하신 하느님과 영적 형제 자매들과 구역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소식을 돋보이게 하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로마 13:8-10) 집회에 참석하거나 전파할 때처럼 그리스도인 활동을 할 때는 특히 그래야 합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2:10) 물론, 어떤 곳에서 적절한 옷이 다른 곳에서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여호와의 백성은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지역의 관습을 고려합니다. 대회에 참석할 때에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스타일의 옷이 아니라 적절하고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당하게 자신을 여호와의 증인으로 밝히고 기회가 있을 때 거리낌 없이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16.09」 3:7, 8

10월 15일 월요일

집마다 누군가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히브리 3:4.

바울이 사용한 논리는 정말 이치에 맞고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분명, 복잡한 설계는 지성을 가진 설계자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성경을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상대방이 실제로 무엇을 믿는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잠언 18:13) 과학에 흥미가 있는 사람인 경우, 성경이 어떻게 과학적으로 정확한지 알려 주면 좋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과 역사가 정확하다는 점을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산상 수훈의 교훈처럼 삶에 도움이 되는 성경 원칙들을 알려 줄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잘 들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질문을 하고, 부드럽고 존중심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십시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는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당신의 생각을 더 존중해 줄 것입니다. 「파16.09」 4:14-16

10월 16일 화요일

서로 환영하십시오.—로마 15:7.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회중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도와주고 싶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내가 만약 외국에서 살고 있다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해 주면 좋을까?’ (마태 7:12)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 처음에는 그들의 생각이나 반응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우리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외국에서 온 사람들의 출신 국가와 문화에 대해 알아본다면, 그들과 더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회중이나 구역에 우리가 잘 모르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는 경우,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가족 숭배 때 조사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으므로, 우리도 “믿음으로 친족이 된”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사도 14:27; 갈라디아 6:10; 욥 31:32. 「파16.10」 1:15, 16

10월 17일 수요일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적인 말을 인내하신 분을 면밀히 고려하십시오.—히브리 12:3.

바울은 강한 믿음을 가진 여러 남녀들에 관해 이야기한 뒤, 그 누구보다 뛰어난 본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합니다. 히브리서 12:2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해, 수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고 형주를 인내하셔서 하느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분명, 우리는 극심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믿음의 본을 보이신 예수를 “면밀히 고려”해야 합니다. 예수와 마찬가지로, 제자 안티파스와 같은 초기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충절을 지켰습니다. (계시록 2:13) 그들은 하늘의 생명으로 부활되는 상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대에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기대했던 “더 나은 부활”보다 더 탁월한 상입니다. (히브리 11:35) 그 충실한 기름부음받은 사람들 모두는 죽음의 잠을 자고 있다가 1914년에 왕국이 탄생하고 얼마 후에 부활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인류를 다스리도록 하늘 생명으로 일으켜졌습니다.—계시록 20:4. 「파16.10」 3:12

10월 18일 목요일

매일 서로 계속 격려하십시오.—히브리 3:13.

어떤 부모들은 자신도 부모에게서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녀에게 칭찬을 해 주지 않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많지만,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한 일에 대해 칭찬함으로 그 사람을 격려해 줍니다. 또한 상대방이 가진 좋은 특성을 언급해서 자신감을 심어 주거나 “낙담한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여 격려할 수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4, 각주) 흔히 “격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있을 때, 격려의 말을 해 줄 기회들이 생길 것입니다. (전도 4:9, 10) 우리는 적절한 상황을 활용해서 우리가 왜 그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말해 줍니까? 그러한 자문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잠언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때에 맞게 하는 말이 어찌 그리 좋은가!”—잠언 15:23. 「파16.11」 1:3-5

10월 19일 금요일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것이 얼마나 좋으며 얼마나 즐거운가!—시 133:1.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미래에 누릴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우리에 있는 양 떼같이 그들이 연합을 이루게 하겠다.’ (미가 2:12) 또한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스바냐를 통해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민족들의 언어를 [성경 진리의] 순결한 언어로 바꾸어서, 그들이 모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또는 “연합하여 하느님을 숭배하게”, 각주] 하겠다.” (스바냐 3:9) 우리가 연합을 이루어 여호와를 숭배하는 영예를 누리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분명, 하느님이 주신 책에 들어 있는 영감받은 조언은 고린도와 그 밖의 지역에 있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회중의 깨끗함과 평화와 연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10; 에베소 4:11-13, 각주; 베드로 전서 3:8)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백성은 하나의 연합된 조직으로서 전파 활동을 열심히 수행합니다. 그로 인해 하느님의 놀라운 목적에 관한 지식이 세계 전역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파16.11」 2:16, 18

10월 20일 토요일

여러분은 ··· “왕 겸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특별한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신 분의] “탁월하심을 여러분이 널리 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베드로 전서 2:9.

기원 1세기부터 몇 백 년 동안에는 많은 사람이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가르침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성경에서 읽은 내용을 근거로 교회의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며, 그렇게 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반대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충실한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혹시 함께 모일 수 있다 해도 비밀리에 모여야 했습니다. “왕 겸 제사장”인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조직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큰 바빌론은 사람들을 족쇄처럼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파16.11」 4:8, 10, 11

10월 21일 일요일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6:9.

우리는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한때 저질렀던 심각한 죄를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받아들였고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부 사람들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죄도 짓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까? (로마 6:14, 17)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그는 고린도 전서 6:9-11에 언급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육적인 존재이며 죄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오히려 싫어하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 7:14, 15) 따라서 바울은 심각한 잘못이 아닌 다른 일들도 죄로 여겼으며, 그러한 일들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힘써 싸우고 있었습니다. (로마 7:21-23) 우리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려면 그처럼 노력해야 합니다. 「파16.12」 1:15, 16

10월 22일 월요일

너의 무거운 짐을 여호와께 내맡겨라.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니.—시 55:22.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염려가 되는 상황이 생기면 사랑 많은 하늘의 아버지께 마음을 쏟아 놓으십시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면, 염려하기보다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분명 더 유익할 것입니다. (시 94:18, 19) 빌립보서 4:6, 7에서 알려 주듯이,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열렬히 간구할 때 응답해 주십니다.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정신과 마음의 불안감을 없애 주는 내적 평온함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불안과 염려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진정한 평화와 평온함을 누리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로가 되는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약속을 온전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고 너를 도와주겠다.”—이사야 41:10. 「파16.12」 3:3, 4

10월 23일 화요일

믿음으로 모세는 성장했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를 거절했습니다.—히브리 11:24.

모세는 이집트의 보물을 포기했고 “잠시 동안 죄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쪽을 택했습니다.” (히브리 11:25, 26) 우리도 모세와 같은 고대의 충성스러운 본들의 믿음을 본받아 자유 의지라는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자유 의지를 사용해 하느님의 뜻을 행해야겠습니다. 우리 대신 다른 사람이 결정을 내려 주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가 자유 의지를 통해 누리는 한 가지 큰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그 축복이 무엇인지가 신명기 30:19, 20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절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선택의 자유를 주셨는지 알려 줍니다. 20절을 보면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여호와께 보여 드릴 소중한 기회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숭배하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주신 자유 의지라는 선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그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분께 영예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파17.01」 2:10, 11

10월 24일 수요일

여호와를 신뢰하며 선을 행하고 ··· 충실하게 행동하여라.—시 37:3.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능력을 올바로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면 만족감을 느낄 것을 아십니다. 물론, 여호와께서는 사람에게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완전성과 죄와 죽음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모두에게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열왕기상 8:46) 우리에게 지식이나 경험이 얼마나 많든 여호와와 비교하면 우리는 늘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이사야 55:9) 우리는 여호와께서 지원을 베푸시고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 주실 것임을 신뢰하면서, 모든 상황에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여호와를 신뢰하며 선을 행해야” 합니다. “충실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파17.01」 1:2-4

10월 25일 목요일

나와 함께 건너가십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당신에게 양식을 주겠습니다.—사무엘하 19:33.

바르실래는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연로한 자신이 다윗 왕에게 짐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자기 아들이었을 김함을 대신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9:31-37) 바르실래는 겸허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책임을 맡을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노년에 편안한 삶을 즐기고 싶어서 다윗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 6:4, 5) 우리가 지위나 명성을 얻고 인정을 받는 데 치중하다 보면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인 태도가 싹트게 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실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 5:26) 하지만 우리가 겸허하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각자 자신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할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0:31. 「파17.01」 4:5, 6

10월 26일 금요일

하느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아주 좋았다.—창세 1:31.

여호와는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그분이 가지고 계신 가장 높은 표준을 충족시킵니다. (예레미야 10:12) 창조물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사랑에서 우러나와 여러 가지 한계를 정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이 조화롭게 기능을 수행하도록 자연법과 도덕법을 제정하셨습니다. (시 19:7-9) 따라서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목적 속에서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저마다 정해진 위치와 기능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창조물들이 상호 작용을 하도록 법칙을 정하고 표준을 세우십니다. 중력의 법칙은 지구의 대기권이 계속 제 위치에 머물러 있게 하고, 밀물과 썰물과 바다의 경계를 조절하며, 지구의 생명체에 꼭 필요한 물리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창조물은 이처럼 정해진 테두리 내에서 움직이고 기능을 수행합니다. 창조물의 질서는 하느님께서 땅과 인류를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언해 줍니다. 우리는 봉사할 때 이처럼 놀라운 질서를 존재하게 하신 분에게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계시록 4:11. 「파17.02」 1:4, 5

10월 27일 토요일

모세를 하느님께서는 ··· 천사를 통해 지도자와 구출자로 보내셨습니다.—사도 7:35.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의 군왕”을 통해 힘을 얻어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여호수아 5:13-15; 6:2, 21) 나중에 히스기야 왕 시대에는 엄청난 수의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여호와의 천사가 나가서 ··· 18만 5000명을 쳐 죽였습니다.” (열왕기하 19:35) 물론, 천사들은 완전하지만 그들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불완전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를 거룩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민수 20:12)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인도를 구하지도 않고 기브온 사람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여호수아 9:14, 15) 히스기야는 잠시 “마음이 거만해졌습니다.” (역대기하 32:25, 26) 그처럼 그들이 불완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인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그 지도자들을 후원하셨습니다. 분명,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파17.02」 3:7-9

10월 28일 일요일

왕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영예와 영광과 위력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랍니다.—계시록 5:13.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관심과 존경을 나타내는 대상이라면 당연히 존중받기에 합당한 일을 했거나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존중심을 보이고 영예를 돌려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 계시록 5:13에서 지적하듯이 “왕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은 분명 영예를 받아 마땅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4장에서는 우리가 여호와께 영예를 돌려야 하는 한 가지 이유를 알려 줍니다. 영적 피조물들이 하늘 영역에서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인 여호와께 큰 소리로 찬양을 드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영광과 영예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것들이 주의 뜻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계시록 4:9-11. 「파17.03」 1:1, 2

10월 29일 월요일

자기 마음을 신뢰하는 자는 미련하다.—잠언 28:26.

사람들은 흔히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면에서 그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생각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불완전한 마음을 따르거나 단지 감정에 이끌려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성경에는 마음 가는 대로 결정했다가 쓰라린 결과를 맛본 사람들의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7; 13:10; 17:9; 열왕기상 11:9) 따라서 우리가 단지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고 감정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화가 났을 때 결정을 내리면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과거에 그렇게 해 본 적이 있다면 잘 알 것입니다. (잠언 14:17; 29:22) 혹은 낙담했을 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민수 32:6-12; 잠언 24:10) 그렇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감정에 휘둘린다면 감정에 쉽게 속을 수 있습니다. 「파17.03」 2:12, 13

10월 30일 화요일

저는 주 앞에서 충실하게 온전한 마음으로 걸[었습니다.]—열왕기하 20:3.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많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의 대속 희생을 근거로 믿음을 가지고 겸손히 여호와께 나아가면, 감사하게도 그분은 “우리의 죄에 따라” 우리를 대하지 않으십니다. (시 103:10)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여호와께 드리는 매일의 숭배가 그분께 받아들여지려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말한 것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역대기상 28:9)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분께 영원히 온전한 정성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말은 대개 속사람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욕망, 생각, 성향, 태도, 능력, 동기, 목표가 포함됩니다. 따라서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은 그저 형식적으로만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위선 없이 계속 하느님께 온전한 정성을 바친다면,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역대기하 19:9. 「파17.03」 3:1, 3

10월 31일 수요일

여호와는 ··· 겸손한 자를 유의해 보십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멀리서나 아십니다.—시 138:6.

우리가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이루었을 때,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시험하려고’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셔서’ 우리의 마음이 드러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가 열심히 준비해서 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의 연설에 대해 칭찬합니다.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칭찬을 받을 때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맡겨진 일을 다 했을 때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누가 17:10) 우리는 히스기야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은혜를 고맙게 여기지 않”음으로 거만한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역대기하 32:24-27, 31)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묵상해 보면 그분이 싫어하시는 태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을 충성스럽게 도우시는 여호와께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파17.03」 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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