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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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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성경을 검토함—2018
날18 88-97면

9월

9월 1일 토요일

인내가 그 일을 온전히 이루게 하십시오.—야고보 1:4.

성경에서 인내란 단지 시련이나 고난을 견디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내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내라는 특성을 나타내는 사람은 용기와 확고함과 참을성을 보입니다.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인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내는] 단지 체념해서가 아니라 열렬한 희망을 가지고 견딜 수 있는 영이다. ··· 그것은 사람이 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서 있게 하는 특성이다. 그것은 고통 너머에 있는 목표를 보기 때문에 최악의 시련을 영광으로 바꿀 수 있는 덕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 인내합니다. (고린도 전서 13:4, 7) 여호와에 대한 사랑은 그분의 뜻과 일치한 것은 무엇이든 인내하려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누가 22:41, 42)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불완전성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베드로 전서 4:8)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 해도 예외 없이 겪는 “환난”을 인내하게 해 주고 결혼의 띠를 튼튼하게 해 줍니다.—고린도 전서 7:28. 「파16.04」 2:3, 4

9월 2일 일요일

그들은 계속해서 ··· 교제하는 일[에] 전념했다.—사도 2:42.

“전념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에는 어떤 행로에 머무르기 위해 어려움을 인내하고 계속해서 힘껏 노력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로마의 통치 아래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대를 받는 상황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집회에 참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함께 모였습니다. 현대의 많은 여호와의 종들도 그리스도인 집회를 매우 소중히 여겨 왔습니다. 22년 넘게 중앙장로회 성원으로 봉사한 조지 갱거스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모이는 것은 내 삶에서 크나큰 즐거움이자 격려의 근원입니다.” 갱거스 형제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 마음속 깊은 생각과 열망은 늘 집회를 향해 있습니다.”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에 대해 당신도 그렇게 느낍니까? 그렇다면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어려움을 인내하고 계속해서 힘껏 노력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당신도 다윗 왕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여호와께 보여 드리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당신이 거하시는 집을 ··· 내가 사랑합니다.”—시 26:8. 「파16.04」 3:16-18

9월 3일 월요일

먼저 그 형제와 평화를 이루십시오.—마태 5:24.

만일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다른 형제가 감정이 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형제와 대화를 나누십시오. 대화를 나누는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마십시오. 그 목적은 상대방도 잘못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어야 합니다. 동료 그리스도인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을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사람 모두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아브라함의 가축을 치는 사람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사람들이 아마도 목초지를 두고 다투었던 것 같습니다. 긴장된 관계를 해결하기를 원했던 아브라함은 롯에게 그의 가족이 살 땅을 먼저 선택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창세 13:1, 2, 5-9) 정말 훌륭한 본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익을 구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비이기적으로 행동하여 결국 해를 입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롯과의 일이 있은 직후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 13:14-17) 하느님께서는 경건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사랑으로 불화를 해결하는 자신의 종들이 결코 오랫동안 해를 입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파16.05」 1:11, 12

9월 4일 화요일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에베소 5:17.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여러 가지 구체적인 명령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성적 부도덕, 우상 숭배, 도둑질, 술 취하는 일을 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고린도 전서 6:9, 10) 또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려울 수 있지만 보람 있는 이러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민족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나는 세상 제도의 종결까지 모든 날 동안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마태 28:19, 20) 하느님의 법과 명령은 참으로 우리에게 보호가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과 명령에 순종한 덕분에 자중심이 커지고 건강이 좋아지고 가정생활이 더 행복해졌습니다. 더 중요한 점으로, 우리는 전파하라는 명령을 포함해 여호와의 명령들을 충성스럽게 따랐기 때문에 그분의 승인과 축복을 받아 왔습니다. 「파16.05」 3:1

9월 5일 수요일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십시오.—로마 12:2.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성경에서 밝혀 주는 여호와의 견해에 맞춰 우리의 생각을 바꿔 나간다면,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하느님을 더 닮아 갈 것입니다. (누가 11:13; 갈라디아 5:22, 23) 그렇다 해도 우리 각자는 자신이 가진 약점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4:23) 자신의 영적 발전이 더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발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영적인 특성들을 기르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성경의 도움으로 계속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면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처음에는 성경의 교훈을 따르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을 점차 여호와 하느님께 맞추어 나간다면, 시간이 갈수록 그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쉽고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시 37:31; 잠언 23:12; 갈라디아 5:16, 17. 「파16.05」 4:14, 16

9월 6일 목요일

여호와의 법을 좋아하며 밤낮으로 그분의 법을 낮은 소리로 읽는 사람.—시 1:2.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주로 자신의 말씀과 성령과 그리스도인 회중을 사용하여 자신의 종들을 빚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 있게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적용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빚어 나갈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침상에서 당신을 기억하고 밤중에도 당신에 대해 묵상합니다.” (시 63:6) 그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내게 충고해 주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리니 밤에도 나의 가장 깊은 생각이 나를 시정합니다.” (시 16:7) 그렇습니다. 다윗은 심지어 강한 충고를 받았을 때에도 하느님의 교훈을 자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받아들였으며, 그 교훈은 그의 가장 깊은 생각과 감정을 빚어 나갔습니다. (사무엘하 12:1-13) 다윗은 우리에게 겸손과 복종의 훌륭한 본이 됩니다! 당신도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그 말씀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새깁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 더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까?—시 1:3. 「파16.06」 1:11

9월 7일 금요일

성급하게 화내지 마라.—전도 7:9.

우리 모두는 원래 에덴에서 인간이 누리던 완전성에서 6000여 년이나 멀어져 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사람은 잘못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그들의 잘못에 실망한 나머지, 이 마지막 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누리는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잘못에 걸려 넘어져서 여호와의 조직을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현재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영예뿐 아니라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생명을 누릴 희망도 잃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큰 기쁨을 누리고 희망을 굳게 간직하려면, 우리는 위로가 되는 여호와의 이러한 약속을 정신에 분명히 새겨야 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이전 것들은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이사야 65:17; 베드로 후서 3:13)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그러한 축복을 놓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파16.06」 4:13, 14

9월 8일 토요일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신명 6:4.

“하나”라는 말에는 목적과 행동이 연합과 조화를 이루거나 한결같다는 뜻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느님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예측 불가능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항상 충실하고 한결같고 충성스럽고 참되십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약속의 땅을 받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4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약속을 지키려는 여호와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창세 12:1, 2, 7; 출애굽 12:40, 41) 여러 세기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증인이라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한결같은 이[이다.] 나 이전에 지음을 받은 하느님이 없었고, 나 이후에도 없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목적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실 때에도 “나는 언제나 한결같은 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10, 13; 44:6; 48:12) 여호와는 무슨 일을 하시든 한결같고 충성스러운 분입니다. 그런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으로 영예로운 일이었으며 우리에게도 그러합니다!—말라기 3:6; 야고보 1:17. 「파16.06」 3:6, 7

9월 9일 일요일

계속 살피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은 정해진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마가 13:33.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경 순찰대나 첨단 감시 시스템이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파수꾼’들은 누군가 영토를 침범하거나 적들이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지 주의 깊이 살핍니다. 하지만 사람들이나 인간 정부가 가하는 위협만을 감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파수꾼’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느님의 왕국 정부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며, 곧 모든 나라에 심판이 닥칠 때 그 정부가 어떤 일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사야 9:6, 7, 각주; 56:10; 다니엘 2:44) 반면 우리가 영적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깨어 살핀다면, 심판의 날이 언제 시작되든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시 130:6) 이 세상 제도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깨어 있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계속 깨어 살피지 못한다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파16.07」 2:2, 9, 10

9월 10일 월요일

[하느님이] 내게 베푸신 과분한 친절은 헛되지 않았습니다.—고린도 전서 15:10.

바울은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하느님의 큰 자비를 받을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 그럴 만한 자격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생애가 끝나기 얼마 전에 동료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합니다. 그분이 나를 충실한 자로 여기시고 봉사의 직무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전서 1:12-14) 이 봉사의 직무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바울은 그에 관해 에베소 회중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행로와 내가 주 예수에게서 받은 봉사의 직무 곧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의 좋은 소식을 철저히 증거하는 일을 마칠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목숨을 조금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도 20:24) 바울은 봉사의 직무를 열심히 수행하여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남겼으며, 하느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과분한 친절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파16.07」 4:1-3

9월 11일 화요일

나는 ···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겠다.—미가 7:7.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충실한 종들을 언제나 지원해 주시지만, 그들이 한동안 기다린 후에야 특권을 받거나 상황이 나아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족장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는 믿음과 참을성을 보여야 했습니다. (히브리 6:12-15)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날 때까지 여러 해를 기다려야 했지만 낙담하지 않았고, 여호와께서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창세 15:3, 4; 21:5) 기다리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잠언 13:12) 실망스러운 일을 계속 생각하면 몹시 낙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는, 영적으로 더 좋은 자격을 갖추는 데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지혜, 통찰력, 좋은 판단력, 지식, 사고력, 건전한 정신을 기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락, 옷차림과 몸단장, 돈 관리,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에서 날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배우는 점을 적용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파16.08」 3:9-11

9월 12일 수요일

하느님은 ···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빌립보 2:13.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사람들과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물리치도록 도와주셨고, 느헤미야와 그의 동료들이 재건 공사를 완수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반대나 무관심에 직면하거나 염려가 있어도 꿋꿋하게 전파 활동을 수행하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5:10) 하지만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몫을 다해야 합니다.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매주 집회를 준비하고 참석하며, 개인 연구와 가족 숭배를 통해 영적인 것으로 정신과 마음을 채우고, 기도로 늘 여호와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힘과 격려를 주시는 마련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신이 그런 마련들을 활용하는 면에서 손을 늘어뜨리고 있다고 느낀다면 하느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그분의 영이 어떻게 ‘당신에게 힘을 주고, 의욕과 행동할 능력을 주는지’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파16.09」 1:12

9월 13일 목요일

성적 부도덕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십시오.—고린도 전서 7:2.

사도 바울은 독신 생활을 권장했지만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을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제할 수 없다면 결혼하십시오. 정욕으로 타오르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따라서 결혼을 하면 성적 욕망 때문에 수음이나 성적 부도덕 같은 행동에 빠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또한 나이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결혼하지 않고 지내면서 적절하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 젊음의 한창때가 지났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사람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것은 죄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결혼하십시오.” (고린도 전서 7:9, 36; 디모데 전서 4:1-3) 하지만 젊은 시절의 욕망이 강하다고 해서 서둘러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결혼 생활의 책임을 짊어질 만큼 장성하지 못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16.08」 1:17

9월 14일 금요일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합니다.—고린도 후서 6:4.

많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즉 외모를 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합니다. (사무엘상 16:7) 따라서 하느님의 봉사자인 우리는 단지 자신이 좋아하거나 편안한 옷을 입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원칙들을 알기 때문에 꼭 끼거나 속이 비치거나 선정적인 옷을 입지 않습니다. 신체의 은밀한 부위가 도드라지거나 노출되는 옷도 입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옷차림 때문에 사람들이 민망해하거나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옷차림과 몸단장이 단정하고 깔끔하고 정숙하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더 존중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숭배하는 하느님께 마음이 이끌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단정한 옷차림을 통해 우리가 대표하는 조직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생명을 구하는 우리의 소식을 더 잘 듣게 될 수 있습니다. 「파16.09」 3:5, 6

9월 15일 토요일

합리적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을 온전히 보이[십시오.]—디도 3:2.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지레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진화를 믿으면서도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진화를 통해 다양한 생물을 창조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진화가 사실이 아니라면 학교에서 가르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화를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에 실망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 대화할 때는 먼저 질문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합리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면 그 사람도 당신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창조를 믿는 것을 상대방이 비난한다면, 창조주 없이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십시오. 또 다음과 같은 점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생물이 그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개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한 화학 교수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도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고 말했습니다. 「파16.09」 4:12, 13

9월 16일 일요일

어떤 사람들은 타협하여 풀려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것은 더 나은 부활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히브리 11:35.

바울이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봇이나 스가랴 같은 사람들은 하느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행한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열왕기상 21:3, 15; 역대기하 24:20, 21)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타협하여 충절을 버리면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힘을 꺾을’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 11:33, 34; 다니엘 3:16-18, 20, 28; 6:13, 16, 21-23) 미가야나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은 믿음 때문에 “조롱과 ··· 감옥으로 시련을 겪었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들 모두는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인내했습니다.—히브리 11:1, 36-38; 열왕기상 18:13; 22:24-27; 예레미야 20:1, 2; 28:10, 11; 32:2. 「파16.10」 3:10, 11

9월 17일 월요일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빌립보 2:3.

왕국회관에서 우리는 외국에서 온 새로운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인사함으로 친절을 보일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낯을 가리고 자기들끼리만 있으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장 배경이나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자신이 다른 인종이나 국적의 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하고 진실한 관심을 보이기 위해 솔선해야 합니다. 당신의 언어로 「JW 랭귀지」 앱을 이용할 수 있다면,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로 인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립보 2:4)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감정을 이겨 내는 한 가지 방법은 먼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상대방과 차이점이 있든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실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으며 문화마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파16.10」 1:13, 14

9월 18일 화요일

여러분 가운데 성적 부도덕이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 그런 부도덕한 일은 심지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5:1.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지침을 따름으로 회중의 영적 깨끗함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고린도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헌신적으로 그 도시에서 전파했으며, 그곳에 있는 ‘거룩한 자들’인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1, 2) 그런데 고린도 회중이 성적 부도덕을 용인해서 바울이 그 문제를 다뤄야 했을 때 그는 틀림없이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바울은 부도덕을 범한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주라고 즉 그를 제명하라고 장로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장로들은 회중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누룩”을 없애야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5:5-7, 12) 장로들이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제명하기로 결정할 때 우리가 그 결정을 지지한다면, 회중의 깨끗함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이 회개하고 여호와께 용서를 구할 마음을 갖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파16.11」 2:14

9월 19일 수요일

이 사람들을 격려할 말씀이 있거든 해 주십시오.—사도 13:15.

격려는 큰 힘이 됩니다. 루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제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한번은 어느 장로 형제랑 봉사를 했는데, 그 형제는 제가 그날 우울한 걸 눈치채셨죠. 제 감정을 말씀드렸더니 공감하면서 잘 들어 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잘하고 있는 점에 대해 말해 주셨죠. 또 예수께서 하신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많은 참새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씀이었죠. 저는 그 성구를 자주 떠올리는데 그때마다 마음에 감동을 받아요. 그 장로 형제가 해 준 말은 제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태 10:31) 성경에서 다른 사람을 자주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매일 서로 계속 격려하여, 여러분 중에 누구도 죄의 기만적인 힘에 의해 완고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히브리 3:13) 다른 사람이 해 준 격려의 말 때문에 기운이 났던 때를 떠올려 본다면, 격려하라는 이 권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파16.11」 1:2, 3

9월 20일 목요일

사람들이 일어나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을 말할 것입니다.—사도 20:30.

소위 그리스도교는 기원 313년에 이교도인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합법화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뒤에 아리우스 사제를 유배시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예수가 하느님이라는 교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부패한 그리스도교는 가톨릭교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통치(기원 379-395년) 중에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교 국가인 로마가 4세기에 “그리스도교화”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배교한 그리스도교는 그 전에 이미 로마 제국의 여러 이교 집단들처럼 큰 바빌론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밀과 같은 소수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숭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마태 13:24, 25, 37-39. 「파16.11」 4:8, 9

9월 21일 금요일

여러분의 염려를 모두 [여호와께] 내맡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베드로 전서 5:7.

우리는 스트레스가 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몹시 화가 나 있으며 “울부짖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베드로 전서 5:8; 계시록 12:17) 따라서 하느님을 섬기는 우리도 때때로 이런저런 염려를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다윗 왕처럼 여호와를 두려워한 고대의 종들도 이따금 “근심 걱정”에 시달렸습니다. (시 13:2) 사도 바울도 ‘모든 회중에 대해 염려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11:28) 그러면 염려에 휩싸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랑 많은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과거에도 자신의 종들을 도와주셨으며, 오늘날에도 우리가 불안한 마음과 염려를 크게 덜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여호와의 성령의 도움을 받고, 믿을 만한 벗에게 마음을 털어놓음으로 염려를 덜 수 있습니다. 「파16.12」 3:1, 2

9월 22일 토요일

그것들의 결과는 죽음입니다.—로마 6:21.

여호와의 백성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기 전에 “맺던 열매”에서 돌아섰습니다. 이전에 그들의 삶은 자신들이 ‘지금은 부끄러워하는 일들’ 곧 자신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일들로 얼룩져 있었을지 모릅니다. (로마 6:21) 하지만 그들은 변화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고린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과거에 우상 숭배, 간음, 동성애, 도둑질, 술 취하는 일과 같은 나쁜 행동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깨끗이 씻겨졌고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6:9-11) 로마 회중에 있던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영감을 받아 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계속 죄에게 내주지 말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들로서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몸도 의의 무기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로마 6:13) 바울은 그들이 영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로부터 계속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파16.12」 1:13

9월 23일 일요일

여호와를 신뢰하여라.—시 37:3.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여러 가지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문제들을 해결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고력을 주셨습니다. (잠언 2:11) 합당한 목표들을 이루어 나가도록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빌립보 2:13) 또한 옳고 그른 것에 관한 내적인 감각인 양심을 넣어 주셨습니다. 양심은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실수를 하더라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로마 2:15) 여호와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능력을 유익하게 사용하라고 반복적으로 권고하십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부지런한 자의 계획은 성공하게 마련이다.” “손에 닿는 일은 무엇이든 힘을 다해 하여라.” (잠언 21:5; 전도 9:10) 그리스어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각자 선물을 받은 대로 서로 섬기는 일에 그 선물을 사용하십시오.” (갈라디아 6:10; 베드로 전서 4:10) 분명,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기를 바라십니다. 「파17.01」 1:1, 2

9월 24일 월요일

이런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났으며, 세상 제도들의 끝에 이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고린도 전서 10:11.

아담과 하와의 후손은 불순종한 부모에게서 불완전성과 죽음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유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신 일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의 특별한 재산이 되는 특권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선택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출애굽 19:3-6)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 의지에 따라 하느님의 이름을 지니는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을 이행하기로 결정했으며, 다 함께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기꺼이 행하겠습니다.” (출애굽 19:8) 아쉽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결국 선택의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이 예는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 여호와 곁에 가까이 머물고 그분의 의로운 요구 조건에 순종함으로 자유 의지라는 선물을 항상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파17.01」 2:9

9월 25일 화요일

겸허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걸어라]!—미가 6:8.

여로보암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 배교한 왕에게 엄중한 심판의 소식을 전하도록 유다에서 한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겸손한 그 예언자는 하느님의 소식을 충실히 전달했고, 여호와께서는 그가 격노한 여로보암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13:1-10) 그 예언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한 연로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가까운 베델에서 온 그 남자는 자기가 여호와의 예언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에서 온 그 예언자를 속여서 ‘이스라엘에서 빵을 먹거나 물을 마셔서는 안 되며 왔던 길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여호와의 분명한 지시를 어기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에서 온 예언자의 불순종을 불쾌하게 여기셨습니다. 후에 그 예언자가 집으로 가는데 길에서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그를 죽였습니다. (열왕기상 13:11-24) 처음에는 겸허했던 그 예언자가 거짓말을 하는 연로한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제넘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는 ‘겸허하게 하느님과 함께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을지 모릅니다. 「파17.01」 4:1-3

9월 26일 수요일

내가 말하였으니 그것을 이룰 것이다. 내가 목적을 세웠으니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이사야 46:11.

성경은 다음과 같은 간단하면서도 의미 깊은 말로 시작합니다. “시초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 1:1) 물론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공간, 빛, 중력 같은 많은 것들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하며, 지금까지 우주의 극히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전도 3:11)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지구와 인류에 대한 자신의 목적을 우리에게 밝혀 주셨습니다. 지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녀가 살기에 꼭 알맞은 집이 될 것이었습니다. (창세 1:26) 그들은 여호와의 자녀가 되고 여호와는 그들의 아버지가 되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것처럼 여호와의 목적에 도전이 제기되었습니다. (창세 3:1-7) 하지만 그 도전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도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 46:10; 55:11)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의 원래 목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파17.02」 1:1, 2

9월 27일 목요일

자신의 성령을 [모세]의 속에 넣어 주신 분은 어디 계신가?—이사야 63:11.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성령이 모세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까? 모세는 성령에 힘입어 기적을 행하고 파라오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 7:1-3) 또한 성령으로 인해 모세는 사랑, 온유, 참을성 같은 훌륭한 특성들을 기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자신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다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후에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도록 임명하신 다른 사람들도 성령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눈의 아들 ···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이 충만했습니다.” (신명 34:9)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습니다.” (사사 6:34) “여호와의 영이 ··· 다윗에게 능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상 16:13) 그 사람들은 도움을 얻기 위해 하느님의 영에 의지했으며,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해냈습니다.—여호수아 11:16, 17; 사사 7:7, 22; 사무엘상 17:37, 50. 「파17.02」 3:3-5

9월 28일 금요일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아니라, 여러분의 기쁨을 위한 동료 일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믿음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고린도 후서 1:24.

스스로 결정을 내릴 동료 형제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면에서 바울은 훌륭한 본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장로들은 개인적인 선택이 관련된 문제에 대해 조언할 때 그러한 본을 따라야 합니다. 그들은 회중 성원들에게 특정한 문제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알려 주는지 기꺼이 말해 줍니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을 내릴 형제 자매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성경의 원칙과 교훈을 알려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 자매들 각자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린다면 그들 자신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 대신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런 생각을 물리쳐야 합니다. 「파17.03」 2:11

9월 29일 토요일

여러분 가운데서 인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십시오.—히브리 13:17.

충실한 종은 왕국의 좋은 소식을 널리 알리고 전하는 일에 열정을 쏟음으로 훌륭한 믿음을 나타내 왔습니다. 당신은 다른 양의 한 사람으로 이 중요한 활동에서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도자인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때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이 내 형제들 중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마태 25:34-40) 예수께서는 하늘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 28:20) 그분은 땅에서 인도하는 일을 하는 동안 성령과 천사들과 하느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오늘날 충실한 종에게도 동일한 수단들을 통해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그 종을 구성하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계속 따라갑니다.” (계시록 14:4) 그러므로 그들의 인도를 따를 때 우리는 지도자인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계시록 7:14-17) 이것은 그 어떤 인간 지도자도 약속할 수 없는 놀라운 상입니다! 「파17.02」 4:17-19

9월 30일 일요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분을 의지하면 그분이 너를 위해 행동하실 것이다.—시 37:5.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자연히 여호와께 의지하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사소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습니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함으로 인간의 생각에 의지합니까? 아니면 성경 원칙을 찾고 적용하려고 함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호와의 방식에 의지한다는 것을 나타냅니까? 예를 들어 때때로 가족이 집회나 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반대할지 모릅니다. 여호와께 인도를 구하고 그 상황을 헤쳐 나갈 가장 좋은 방법을 분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까? 혹은 실직한 뒤에 새로운 직장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인사 담당자와 대화할 때 자신이 정기적으로 평일 집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어떤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우리는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시편 필자의 말을 따라야겠습니다. 「파17.03」 4:6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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