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월 1일 일요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대로 저에게 하십시오.—사사 11:36.
참숭배를 증진하기 위해 입다의 딸은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를 희생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희생적인 태도를 어떻게 본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은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려고 적어도 당분간은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갖는 일을 기꺼이 희생합니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일부 그리스도인은 자녀나 손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희생하고, 신권 건축 공사에 참여하거나 왕국 전파자 학교에 참석한 후 전도인이 더 많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합니다. 또한 개인 일을 조정하여 전파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처럼 마음을 다해 드리는 봉사를 매우 기뻐하시며, 그분을 위한 우리의 일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히브리 6:10-12) 당신도 여호와를 더욱 온전히 섬기기 위해 더 희생할 수 있습니까? 「파16.04」 1:16, 17
7월 2일 월요일
[그들은] 한 목자 아래 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요한 10:16.
예수께서는 자신을 목자에 비하시고 제자들을 양 떼에 비하셨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양 두 마리가 언덕 위에 있고 다른 두 마리는 골짜기에 있으며 또 한 마리는 다른 곳에서 풀을 뜯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 양 다섯 마리를 양 떼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대개 양 떼는 목자의 돌봄을 받으며 함께 모여 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고의로 자신을 고립시킨다면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목자” 아래 있는 “한 무리”에 속하려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집회에 참석함으로 형제들의 연합에 기여합니다. (시 133:1) 동료 숭배자들 가운데는 부모와 친형제자매에게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나타낼 영적 가족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가 10:29, 30) 당신이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면 그러한 소중한 동료에게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나 자매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파16.04」 3:9, 10
7월 3일 화요일
여러분이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이 있다면 모두 용서하십시오. 그래야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마가 11:25.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지 않는다면 기도, 집회 참석, 야외 봉사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열심히 하느님을 섬긴다 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기꺼이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과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 11:4; 에베소 4:32)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는지 정직하면서도 진지한 자기 검토를 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동료 그리스도인을 기꺼이 용서합니까? 그들과 교제하는 것이 즐겁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용서를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하십니다. 자신을 솔직히 검토해 본 결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여호와께 기도로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그처럼 겸손한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요한 1서 5:14, 15. 「파16.05」 1:6, 7
7월 4일 수요일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 전파될 것입니다.—마태 24:14.
예언된 전파 활동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이 세계적인 활동이 마지막 날 기간 내내 계속될 것이며, 그러고 나서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중요한 마지막 날에 좋은 소식을 계속 전해 온 종교 단체가 여호와의 증인 외에 또 있습니까? 봉사를 하다 보면 “당신들은 전도를 하지만, 우리는 성령을 받았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파 활동을 중단 없이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사도 1:8; 베드로 전서 4:14) 때때로 일부 종교 단체도 여호와의 증인처럼 정기적으로 전도를 하려고 시도하지만 대개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짧은 기간 동안 나름대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집집을 방문하여 전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소식을 전합니까? 그 점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파16.05」 2:13, 16
7월 5일 목요일
형제 여러분, 계속 기뻐하고 자신을 바로잡고 위로를 받고 일치된 생각을 하고 평화롭게 지내십시오.—고린도 후서 13:11.
“자신을 바로잡고” “새 인간성”을 나타내려면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의 행로를 따르며 기만적인 욕망에 이끌려 썩고 있는 옛 인간성을 벗어 버리도록 가르침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지배하는 정신 태도를 계속 새롭게 하고 참된 의와 충성 가운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성을 입어야 합니다.” (에베소 4:22-24) “계속 새롭게 하고”라는 말을 보면 새 인간성을 입는 일이 계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격려가 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여호와를 섬겨 왔든, 새 인간성을 이루는 그리스도인 특성들을 계속 길러 나가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도움으로 우리는 계속 변화할 수 있습니다. 「파16.05」 4:8, 9
7월 6일 금요일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책망하신다.—잠언 3:12.
현재 여호와께서는 영적 낙원에서 우리를 빚고 계시며, 이 영적 낙원은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8) 우리는 악한 세상에 둘러싸여 있지만 안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알게 되었고 자상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4:8) 신세계에서 우리는 영적 낙원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 아래 이 땅도 영적 낙원에 걸맞게 실제로 완전한 낙원이 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그 회복 기간에, 여호와께서는 땅에 사는 사람들을 계속 빚으실 것이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수준으로 그들을 교육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11:9) 그에 더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정신과 몸을 완전성으로 끌어올려 주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흠잡을 데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계속 복종함으로, 그분이 사랑 때문에 우리를 빚어 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내야겠습니다. 「파16.06」 1:8, 9
7월 7일 토요일
이스라엘이여,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신명 6:4.
모세는 기원전 1473년에 모압 평원에 모여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고별 연설을 하면서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제 곧 요르단 강을 건널 예정이었습니다. (신명 6:1)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온 모세는 그들이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용감하게 맞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느님인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께 충실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해 준 말은 백성에게 틀림없이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십계명과 그 밖의 규정들을 언급한 뒤, 신명기 6:4, 5에 나오는 강력한 말을 했습니다. 모세와 함께 모압 평원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가 “한 분인 여호와”라는 것을 몰랐습니까? 물론 알았습니다.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이 오직 한 분인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분만을 숭배했습니다. 「파16.06」 3:2, 3
7월 8일 일요일
그 날과 그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마태 24:36.
예수께서는 땅에 계실 때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세상과 전쟁을 벌일 권한을 받으셨습니다. (계시록 19:11-16)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현재 예수께서는 분명 아마겟돈이 언제 일어날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환난이 시작될 때까지 깨어 살펴야 합니다. 반면 여호와께서는 큰 환난이 일어날 시점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끝을 가져올 정확한 때를 정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큰 환난을 향한 카운트다운을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그 환난의 시작은 “늦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박국 2:1-3) 그 점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예언은 언제나 정해진 때에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출하시겠다는 여호와의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 제도가 멸망될 때 살아남으려면 깨어 살펴야 합니다. 「파16.07」 2:4-6
7월 9일 월요일
베드로가 그분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걸려 넘어질지라도, 저는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마가 14:29.
사도들은 매우 중대한 순간에 예수를 버렸습니다. 전에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버리더라도 자신은 그럴 리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마가 14:27-31, 50) 하지만 예수께서 체포되시자 모든 사도들이 그분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도 그분을 버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러 차례 예수를 모른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마가 14:53, 54, 66-72) 하지만 베드로는 깊이 뉘우쳤으며, 여호와께서는 그를 계속 사용하셨습니다. 그때 당신이 예수의 제자였다면, 베드로의 행동 때문에 여호와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렸을 것입니까? 오늘날 그와 비슷한 일이 있다면 어떠합니까? 당신은 여호와께서 잘못한 사람들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고 계시며 그분이 결국 잘못을 바로잡고 공정하게 행동하실 것임을 확신할 것입니까? 한편, 심각한 죄를 저지르고도 여호와의 자비를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당신은 여호와께서 적절한 때에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리시고 필요하다면 그를 회중에서 쫓아내실 것임을 믿을 것입니까? 「파16.06」 4:8, 9
7월 10일 화요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 여러분을 강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데살로니가 후서 2:16, 17, 각주.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큰 축복 중 하나는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시 51:17) 바울은 박해를 받고 있던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크나큰 친절을 나타내어 사랑으로 돌봐 주신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므로, 우리의 힘만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시 49:7, 8)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희망을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그 희망에 관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알아보고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입니다.” (요한 6:40)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 덕분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희망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점을 깊이 인식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이 나타나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습니다.”—디도 2:11. 「파16.07」 3:14, 15
7월 11일 수요일
젊어서 얻은 아내를 배신하지 마라.—말라기 2:15.
오늘날에도 배우자를 배신하는 일은 여호와의 백성 가운데서 용납될 수 없습니다. 만일 침례받은 기혼자가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간음을 범하고 원래의 배우자와 이혼한 후 그 새로운 사람과 결혼한다면 어떠합니까? 그런 잘못을 범한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회중의 영적 순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 사람은 제명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5:11-13) 그 사람이 회중으로 다시 받아들여지려면 먼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 3:8; 고린도 후서 2:5-10) 그 사람이 복귀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하는지를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배신행위는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 죄인이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상당한 기간, 1년이나 그 이상의 기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 사람은 복귀된다 해도 결국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답변해야만 합니다.—로마 14:10-12. 「파16.08」 1:12, 13
7월 12일 목요일
어떤 사람이 감독자가 되려고 힘쓰고 있다면, 그는 훌륭한 일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디모데 전서 3:1.
“힘쓰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몸을 뻗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 영적으로 발전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봉사의 종이 아닌 한 형제가 앞으로 회중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형제는 영적 특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는 먼저 봉사의 종이 될 자격에 달하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시간이 흐르자, 감독자로 섬길 영적 자격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 두 경우에 이 형제는 회중에서 더 많은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파이오니아 봉사나 베델 봉사나 왕국회관 건축 자원봉사를 하기 원하는 형제 자매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치 몸을 앞으로 내뻗치듯이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16.08」 3:3, 4
7월 13일 금요일
그들은 주께서 큰 능력과 강력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며 주의 백성입니다.—느헤미야 1:10.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도시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었으며, 동족인 유대인들은 크게 낙담해 있었습니다. 외국인 반대자들은 유대인들을 위협해 그들이 일손을 놓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 때문에 느헤미야는 손을 늘어뜨리고 낙심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사 그리고 여호와를 충실하게 섬긴 그 밖의 많은 사람들처럼, 느헤미야도 이미 기도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17:8-13; 역대기하 14:8-13) 이번에도 느헤미야는 어김없이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지만, 여호와께서는 도움을 구하는 느헤미야의 진실한 간청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큰 능력과 강력한 손”으로 축 늘어진 유대인들의 손을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느헤미야 2:17-20; 6:9) 당신은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 “큰 능력과 강력한 손”으로 자신의 종들을 강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파16.09」 1:9
7월 14일 토요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고린도 전서 10:31.
한 네덜란드 신문은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회의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히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캐주얼 차림을 한 사람이 많았다.” 그 신문은 이어서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 대회는 다르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러한 칭찬을 자주 듣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권고에 따라, ‘하느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는 사람에게 어울리게 품위 있는 옷을 입고 겸허와 좋은 판단력으로 자기를 단장합니다.’ (디모데 전서 2:9, 10, 각주) 이 말은 바울이 여자들에 대해 한 말이지만 그 표준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 남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여호와의 백성인 우리는 옷차림에 관한 합당한 표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숭배하는 하느님도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창세 3:21) 성경을 보면, 우주 주권자께서 참숭배자들의 옷차림과 몸단장에 관해 건전한 표준을 갖고 계시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옷을 선택할 때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파16.09」 3:1, 2
7월 15일 일요일
사람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말한 것입니다.—베드로 후서 1:21.
어떤 사람들은 성경 예언이나 성경의 역사적, 고고학적, 과학적 정확성에 대해 조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3:15은 공부해 볼 만한 매우 흥미로운 예언입니다. 이 성구에는 왕국이 하느님의 주권을 입증하고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이라는 성경의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예언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에덴에서의 반역 이후 인간이 겪어 온 모든 고난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끝내실 것인지 밝혀 줍니다. 당신은 창세기 3:15을 어떤 방식으로 조사해 보고 싶습니까? 연대표를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그 연대표에 하느님께서 창세기 3:15의 세부점을 점진적으로 밝혀 주신 성구들을 적어 보고, 그 예언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 알려 주는 성구들도 적어 보십시오. 그 성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면, 성경의 예언자들과 필자들이 “성령에 감동된”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파16.09」 4:8
7월 16일 월요일
누가 당신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만듭니까?—고린도 전서 4:7.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 한동안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마음속에서 점차 없앨 수 있었습니다. (사도 10:28, 34, 35; 갈라디아 2:11-14) 우리도 자신에게 편견이나 인종적 우월감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느낀다면, 그런 감정을 마음속에서 뿌리 뽑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1:22)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국적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3:9, 10, 21-24) 따라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기름부음받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더 이상 나그네나 외국인이 아니라, ··· 하느님의 집안 식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 2:19) 우리와 배경이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다면, 분명 새 인간성을 입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골로새 3:10, 11. 「파16.10」 1:9
7월 17일 화요일
밤낮으로 그분의 법을 낮은 소리로 읽는 사람.—시 1:2.
우리가 강한 믿음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친절하게도 그분의 말씀인 완성된 성경을 주셨습니다. “행복”을 누리고 “성공”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가능하다면 매일 읽어야 합니다. (시 1:1-3; 사도 17:11) 그에 더해 우리는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여호와를 숭배한 사람들처럼, 하느님의 약속을 계속 묵상하고 그분의 요구 조건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통해 풍부한 영적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마태 24:45) 우리가 여호와께서 마련해 주신 영적 양식을 통해 배우는 점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믿음의 본이 되는 고대 사람들처럼 왕국 희망에 대해 “보증된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 11:1) 기도 역시 그리스도 이전 시대의 증인들이 강한 믿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믿음이 더 강해졌습니다.—느헤미야 1:4, 11; 시 34:4, 15, 17; 다니엘 9:19-21. 「파16.10」 3:7, 8
7월 18일 수요일
내가 ···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졌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린도 전서 13:2.
예수께서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어느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마태 22:35-40) 믿음과 사랑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필자들은 여러 차례 이 두 가지 특성을 함께 강조했으며, 때로는 같은 문장이나 구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은 형제들에게 “믿음과 사랑의 흉갑을 입으라”고 권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8)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 1서 3:23) 믿음이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약속들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그리스도인 희망이 실현되고 나면 그러한 약속과 희망에 대한 믿음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끝없이 더 길러 나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나 믿음, 희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랑입니다.”—고린도 전서 13:13. 「파16.10」 4:15-17
7월 19일 목요일
회중들은 믿음 안에서 계속 굳건해졌다.—사도 16:5.
중앙장로회를 대표하는 형제들은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사도 16:4) 회중들은 그 규정을 지킨 결과 “믿음 안에서 계속 굳건해지고 그 수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느님의 조직으로부터 지침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주신 책인 성경에서는 우리 모두가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신명 30:16; 히브리 13:7, 17) 하느님의 조직에는 비평적이거나 반항적인 태도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태도는 회중들이 사랑과 평화와 연합을 누리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은 디오드레베처럼 존경심 없고 충성스럽지 못한 태도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 3서 9, 10) 이런 자문을 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영성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인도하는 형제들이 지침을 알려 줄 때 나는 신속하게 받아들이고 지지하는가?’ 「파16.11」 2:10, 11
7월 20일 금요일
내가 너희를 유배한 그 도시의 평화를 구하여라.—예레미야 29:7.
하느님의 뜻에 복종한 유대인 유배자들은 바빌론에서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어느 정도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그 나라 안에서 자유롭게 여행하거나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바빌론은 고대 세계에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발굴된 문서들에 따르면,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서 상거래 기술을 익히거나 유능한 장인이 되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상당한 부를 쌓기도 했습니다. 바빌론에서의 유배 생활은 여러 세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경험한 노예 생활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출애굽 2:23-25)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하느님이 온전히 승인하시는 방식으로 숭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까? 당시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포로들을 석방하는 일이 결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해방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이사야 55:11. 「파16.11」 4:3, 5
7월 21일 토요일
우리는 죄에 대해 죽었습니다.—로마 6:2.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땅에 아직 살아 있었는데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대속의 가치를 바울과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적용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성령으로 그들에게 기름을 붓고 그들을 자신의 영적 아들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충실을 유지하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통치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여전히 땅에 살면서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는데도 “죄에 대해 죽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예로 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살다가 죽은 후 부활되어 하늘에서 불멸의 영이 되셨습니다. 더는 죽음이 예수를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죄에 대해서는 죽었지만 하느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살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6:9, 11) 그들의 생활 방식은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죄로 향하는 욕망이나 충동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이전의 생활 방식에 대해 죽었습니다. 「파16.12」 1:9, 10
7월 22일 일요일
영에 정신을 쏟는 것은 생명과 평화를 의미합니다.—로마 8:6.
이 말은 성경이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나 미래의 희망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을 비롯한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렸지만 여러 면에서 평범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마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결혼을 해서 가족과 즐겁게 살았고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했습니다. (마가 6:3; 데살로니가 전서 2:9) 하지만 하느님을 섬긴 그들이 삶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그런 일상적인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고 알려 주지만,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 그가 무엇을 중심으로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사도 18:2-4; 20:20, 21, 34, 35) 또한 바울은 로마의 형제 자매들에게 그런 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삶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영적인 일과 활동이었습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을 본받아야 했으며, 우리 역시 그래야 합니다.—로마 15:15, 16. 「파16.12」 2:5, 15, 16
7월 23일 월요일
낮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이는 여호와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이 그가 하는 대로 갚아 주신다.—잠언 19:17.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든, 분명 그분은 그 모든 노력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거나 의문을 품고 있어도 그분은 그러한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십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짐을 지고 있어서 지쳐 있거나, 건강 문제나 감정적인 문제로 신성한 봉사를 많이 드리지 못해도, 그분은 우리에게 동정심을 보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충실함을 유지하려는 자신의 종들의 노력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점을 우리는 온전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6:10, 11) 또한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 나아갈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염려에 관심을 보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시 65:2)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적, 영적 도움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며, 동료 숭배자들을 통해 그런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3)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보일 때 여호와께서는 마음에 감동을 받으십니다. (마태 6:3, 4) 그리고 그분은 그런 친절한 행동에 대해 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파16.12」 4:13, 14
7월 24일 화요일
여호와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고린도 후서 3:17.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대적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마태 4:10) 죽기 전 밤에는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 번 표현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렇지만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누가 22:42) 우리도 예수를 본받아 여호와께 영예를 돌리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데 우리의 자유 의지를 사용해야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닮을 수 있게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창세 1:26)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가지고 계신 절대적 자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자유에 정해진 테두리가 있으며 우리가 여호와께서 적절히 정해 놓으신 한계를 따라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또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해야 합니다.—에베소 5:22; 6:1. 「파17.01」 2:4, 5
7월 25일 수요일
그곳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로마 12:3.
우리 시대에는 많은 흥미진진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조직의 지상 부분은 여러 면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장 때문에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그런 변화로 인해 우리 자신이 영향을 받게 될 때, 겸손을 나타내고 나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께 유익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연합은 더 튼튼해질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로마 12:4, 5) 따라서 자신의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 모두 여호와의 웅대한 왕국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연로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일을 젊은이들이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젊은 형제 여러분, 책임을 받아들이고 겸허를 나타내고 연로한 분들을 계속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아내 여러분,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남편 아굴라와 함께 봉사하면서 남편을 충실히 지원한 브리스길라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사도 18:2. 「파17.01」 5:15, 16
7월 26일 목요일
저는 ···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사사 6:15.
기드온은 자신이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며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인정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임명을 받아들인 뒤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여호와께 인도를 구했습니다. (사사 6:36-40) 기드온은 담대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중하고 슬기롭게 행동했습니다. (사사 6:11, 27) 그는 자신의 임명을 이용해 탁월해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맡은 임무를 마치자마자 기꺼이 이전의 위치로 돌아갔습니다. (사사 8:22, 23, 29) 우리도 겸허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많은 봉사의 특권을 받으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거나 그런 특권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진보하라고 격려합니다. (디모데 전서 4:13-15) 그렇지만 꼭 임명이 바뀌어야 진보하는 것입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어떤 역할을 맡고 있든 여호와께서 축복해 주신다면 영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파17.01」 3:15, 16
7월 27일 금요일
하느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를 통해 생명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요한 1서 4:9.
여호와께서는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대속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1:19) 그분은 인류를 매우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자신의 독생자를 기꺼이 주셔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는 원래의 첫 조상인 아담을 대신해 인류의 조상이 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5:45)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회복시키실 뿐 아니라 우리가 마침내 하느님의 가족에게로 돌아갈 기회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희생을 근거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의의 표준을 타협하지 않고도 인간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다시 받아들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충실한 사람들이 완전성에 이르게 될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지 않습니까? 그때가 되면 하늘과 땅에 있는 그분의 모든 가족은 온전히 연합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온전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로마 8:21) 우리가 대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이 귀중한 선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파17.02」 1:17, 19
7월 28일 토요일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과연 누구입니까?—마태 24:45.
「파수대」 2013년 7월 15일호에서는 현재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중앙장로회를 구성하는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의 작은 집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앙장로회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함께 중요한 결정들을 내립니다.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중앙장로회 성원들은 매주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긴밀하게 의사소통하고 합심하여 일합니다. (잠언 20:18) 중앙장로회 성원 중 그 누구도 다른 성원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각 성원이 매년 번갈아 가며 그 모임의 사회자로 일합니다. (베드로 전서 5:1) 중앙장로회의 6개 위원회에서도 해당 위원회에 속한 중앙장로회 성원들이 매년 사회자를 윤번합니다. 중앙장로회 성원들은 자신을 동료 형제들의 지도자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 각자는 자신도 충실한 종을 통해 영적 양식을 얻고 그 종의 감독을 받는 “집안 일꾼들”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장로회는 영감을 받지 않으며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교리를 설명하거나 조직에 필요한 지침을 정할 때 실수할 수 있습니다. 「파17.02」 4:10-12
7월 29일 일요일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주셨습니다.—로마 8:32.
대속에 대해 감사를 나타내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대속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침례는 “우리가 여호와의 것”임을 나타내 줍니다. (로마 14:8) 여호와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동기는 사랑이므로, 그분은 그분의 숭배자 모두가 그 어떤 특성보다 사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 1서 4:8-11) 우리는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싶은 열망을 나타냅니다. (마태 5:43-48)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 다음으로 중요한 명령입니다. (마태 22:37-40) 우리는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이웃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냄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반영합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특히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킬 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해집니다.”—요한 1서 4:12, 20. 「파17.02」 2:13, 14
7월 30일 월요일
여호와가 참하느님이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참하느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열왕기상 18:21.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언제나 지혜롭고 유익하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정을 하기가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사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바알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마음이 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지혜롭게도 엘리야는 참하느님 여호와를 섬기는 길을 선택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튼튼한 기초가 되는 정확한 지식이나 경건한 지혜를 쌓지 않았고 여호와를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정확한 지식에 따라 행동했다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 25:12) 또한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주변의 이교 민족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미 오래전에 경고하셨습니다.—출애굽 23:2. 「파17.03」 2:6, 7
7월 31일 화요일
[히스기야는]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을 부서뜨렸다.—열왕기하 18:4.
히스기야의 본을 묵상해 보면,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에 방해가 되거나 참숭배에 관심을 쏟지 못하게 만드는 일들을 물리쳐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인터넷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유명인을 우상처럼 떠받들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수단을 이용해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많은 세상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팔로잉’하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쏟습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의 사진이나 그들에 관한 글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바칩니다. 그러다 보면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과 글에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면 우쭐해지거나 사람들이 자기를 더 이상 ‘팔로잉’하지 않으면 속상해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자문해 보기 바랍니다. ‘혹시 나는 사람을 우상으로 떠받들거나,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소중한 시간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에베소 5:15, 16. 「파17.03」 3:1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