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월 1일 목요일
인내가 그 일을 온전히 이루게 하십시오.—야고보 1:4.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인내는 우리가 “온전해지고 모든 면에서 건전해져서 아무것에도 부족함이 없게” 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야고보 1:4) 시련을 겪다 보면 우리의 약점 즉 우리의 성품 가운데 개선해야 할 부면이 드러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을 인내하면 우리의 그리스도인 성품이 더 온전하고 건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보다 더 참을성이 강하고 동정심 많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내가 우리를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틀 잡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시련을 끝내려고 성경 원칙을 어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불결한 생각과 싸우고 있다면, 유혹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기도로 도움을 구하고 그러한 욕망을 물리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자제라는 특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 성원으로부터 반대를 받고 있습니까?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계속 마음을 다한 숭배를 드리십시오. 이 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승인을 받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인내해야 합니다.—로마 5:3-5; 야고보 1:12. 「파16.04」 2:15, 16
2월 2일 금요일
겸손하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빌립보 2:3.
민족이나 문화나 나라에 대해 지나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인간 통치와 인류 가족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우리가 자신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문화적 차이는 인류 가족의 놀라운 다양성을 잘 보여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 10:12) 사실, 자신의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은 국가주의의 바탕이 됩니다. 그러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중립을 타협하는 첫 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처럼 부당한 자부심을 갖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1세기 회중에서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출신이 다른 형제들을 차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 6:1) 그러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지나친 자부심이 자라고 있지는 않은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다른 나라에서 온 형제나 자매가 어떤 제안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아는 체하고 그래!’ 하고 생각하면서 그 제안을 즉시 거절할 것입니까?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영감받은 조언을 적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16.04」 4:12, 13
2월 3일 토요일
나는 ···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누가 4:43.
예수께서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셨으며, 자신의 제자들도 그 소식을 전파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누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마태 28:19) 대답은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만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로 일해 온 사제는 어느 증인에게 자신이 여러 나라에서 지내 봤으며 나라가 바뀔 때마다 증인들에게 무슨 소식을 전하느냐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떤 대답을 들었습니까? 사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심하게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같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한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들은 결코 ‘한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그리스도인으로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대답을 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10) 그들이 전한 왕국 소식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잡지의 주된 소식이기도 합니다. 이 잡지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배부되는 잡지로서 254개 언어로 발행되며 매호 평균 약 5900만 부가 인쇄됩니다. 「파16.05」 2:6
2월 4일 일요일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하십시오.—고린도 후서 9:7.
우리가 현재 전도인이라면 정규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고 싶어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봉사를 하기 위해 생활을 단순하게 조정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예전만큼 풍족하게 생활하지 못할 텐데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될지 모릅니다. 물론, 성경에는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라는 명령이 없으며, 계속 전도인으로 여호와를 충실하게 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왕국을 위해 희생하면 풍성한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 18:29, 30) 또한 성경은 우리가 “찬양의 자원 제물”을 기꺼이 바치고 참숭배를 증진하기 위해 기쁘게 최선을 다한다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신다고 알려 줍니다. (시 119:108) 이러한 성구들을 검토하고 기도로 인도를 구한다면 이 문제에 관한 여호와의 생각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점들을 묵상한다면, 자신의 여건에 맞으면서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축복하실 만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파16.05」 3:13
2월 5일 월요일
젊은 시절에 너의 위대한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괴로운 날이 닥치기 전에.—전도 12:1.
청소년을 위한 우리 출판물에서 다루는 많은 문제는 청소년들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믿음을 변호하고, 감정을 제어하고, 주변 사람들의 해로운 압력을 물리치고, 불건전한 교제와 오락을 피해야 합니다. 이러한 주제들과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가 십 대 청소년을 위한 출판물에서 다루어집니다. 성인인 그리스도인들은 청소년을 위한 출판물을 읽는 것이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료가 청소년에게 호소력 있게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성경 원칙에 근거한 것이며 우리 모두는 그러한 영적 양식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출판물은 그들이 어려움을 잘 이겨 낼 뿐 아니라 영적으로 발전하고 여호와와 가까워지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성인인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비슷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전도 12:13. 「파16.05」 5:15, 16
2월 6일 화요일
이스라엘이여,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 당신은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해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합니다.—신명 6:4, 5.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 정말 강력한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을 듣고 큰 힘을 얻었으며, 약속의 땅을 차지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말을 마음에 새긴다면 힘을 얻어서, 곧 닥칠 큰 환난을 통과하고 뒤이어 펼쳐질 낙원의 평화와 연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영혼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며 그리스도인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함으로, 계속 그분에게 전적인 정성을 바쳐야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예수께서 양으로 판결하실 사람들에 관해 하신 이런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께 축복받은 사람들아, 와서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너희를 위해 준비된 왕국을 상속받아라.”—마태 25:34. 「파16.06」 3:2, 20
2월 7일 수요일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예레미야 17:9.
교만하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게 되고 마음이 굳은 흙처럼 될 수 있습니다. 동료 그리스도인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특권을 잃어서 낙심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자기 자존심만 내세웠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상처를 준 형제와 평화롭게 지내고 여호와께 계속 충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까? (시 119:165; 골로새 3:13) 또한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고 죄를 숨기기까지 하면 하느님의 교훈에 무감각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갈수록 죄를 더 쉽게 저지르게 됩니다. (전도 8:11) 음란물을 보는 습관에 빠졌던 한 형제는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장로들에 대해 점점 더 비평적이 되어 갔지요.” 그 형제는 나쁜 습관 때문에 영적으로 해를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의 습관이 알려졌고 그 형제는 꼭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비평적인 태도를 발전시키거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하느님께 용서와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핑계를 댄다면, 마음이 이미 완고해져 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파16.06」 2:5, 6
2월 8일 목요일
더는 여러분의 목숨을 위해 ··· 염려하지 마십시오.—마태 6:25.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걱정을 그만하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렇게 하신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신경 써야 할 일에 대해서라도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염려하면, 정신이 나뉘고 주의가 흐트러져 더 중요한 영적인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아끼셨기 때문에 산상 수훈 가운데서 그런 위험한 경향에 대해 네 번이나 더 경고하셨습니다. (마태 6:27, 28, 31, 34)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여러 세기 후에 제자들이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인 “마지막 날”을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아셨습니다. (디모데 후서 3:1)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는 실직, 물가 상승, 식량 부족, 극심한 가난 등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런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다”는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파16.07」 1:8, 9
2월 9일 금요일
나는 하느님의 ··· 과분한 친절이라는 선물을 받아 ··· 봉사자가 되었습니다.—에베소 3:7.
우리가 여호와의 요구 조건에 완벽하게 달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분의 친절을 받을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현명한 왕 솔로몬은 이렇게 썼습니다. “늘 선한 일만 하고 죄를 짓지 않는 의로운 사람은 땅에 없다.” (전도 7:20) 사도 바울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지적했으며,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마 3:23; 6:23ㄱ)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사랑하셔서 비할 데 없는 과분한 친절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큰 선물인 “자신의 독생자”를 땅으로 보내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요한 3:16) 따라서 바울은 예수께서 “죽음의 고난을 통해 지금은 영광과 영예의 면류관을 쓰고 계[시며]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에 의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고 썼습니다. (히브리 2:9)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에 의한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3ㄴ. 「파16.07」 3:3, 4
2월 10일 토요일
내가 그를 위해 ··· 돕는 자를 만들겠다.—창세 2:18.
결혼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혼의 기원과 목적을 검토해 보면, 결혼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고 여호와께서 의도하신 결혼 생활의 축복을 더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뒤 동물들을 그에게 데려가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보완자가 될 돕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 데려오셨습니다. (창세 2:20-24) 따라서 결혼 마련은 여호와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여호와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확언하셨습니다.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에게 고착할 것이며,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마태 19:4, 5) 하느님께서 첫 여자를 창조하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사용하셨으므로, 첫 인간 부부는 자신들이 서로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깊이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배우자를 두 명 이상 두거나 이혼하는 마련은 없었습니다. 「파16.08」 1:1, 2
2월 11일 일요일
예수께서는 ··· 그들의 도시들에서 가르치고 전파하시려고 그곳을 떠나셨다.—마태 11:1.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왕국에 관해 자주 이야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수가라는 도시 가까이 있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자와 활발한 대화를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요한 4:5-30) 또한 그분은 세금 징수원이었던 마태 레위와도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마태는 제자가 되라는 예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마태의 집에서 잔치가 열렸을 때, 예수께서는 마태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꽤 길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9:9; 누가 5:27-39) 예수께서는 나사렛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나다나엘에게도 친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와 대화를 나눈 뒤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나사렛 출신인 예수의 가르침을 더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요한 1:46-51) 우리 역시 새로운 전도인이 사람들과 편안하면서도 친절하게 대화를 나누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도와준다면 전도인은 개인적 관심을 보이고 친절하게 말하게 될 것이며,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파16.08」 4:7-9
2월 12일 월요일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고린도 전서 7:10, 11.
결혼 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지속되면 배우자 한쪽이나 양쪽 모두 별거나 이혼을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별거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경우 별거가 해결책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별거를 하면 대개 문제가 더 많아집니다. 예수께서는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에게 고착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언급하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마태 19:3-6; 창세 2:24) 이 말씀은 남편이나 아내 역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결혼을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관계로 보십니다. (고린도 전서 7:39)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답변해야 한다는 점을 부부가 마음에 새긴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신속히 해결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할 것입니다. 「파16.08」 2:10, 11
2월 13일 화요일
악에게 지지 마십시오.—로마 12:21.
적들은 특히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거나 우리가 가장 힘이 빠져 있을 때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라”는 권고를 보면 우리가 악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을 상대로 계속 싸운다면 악에게 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경계를 늦추고 싸우기를 중단한다면 사탄과 그의 악한 세상과 우리의 불완전한 육체에 패배당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위협 때문에 손을 늘어뜨리고 패배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베드로 전서 5:9)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싸움을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승인과 축복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6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계속 되새겨야 합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은 그분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자신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성구에서 “진지하게 찾는”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의 형태는 열렬한 태도와 집중적인 노력이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사도 15:17. 「파16.09」 2:4, 5
2월 14일 수요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고린도 전서 10:31.
성경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지침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옷차림에는 개인의 기호가 어느 정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사람마다 취향과 경제적 여건이 제각기 다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옷은 언제나 단정하고 깔끔하고 정숙해야 하며 상황과 지역의 정서에 맞아야 합니다. 사실,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고 좋은 판단력을 나타내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많은 상점들이 유행하는 옷들을 판매하기 때문에, 단정한 치마나 원피스나 블라우스, 꼭 끼지 않는 정장이나 바지를 찾으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정하면서도 멋진 옷을 찾기 위해 진실한 노력을 기울일 때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눈여겨보고 좋게 여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사랑 많은 하늘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옷을 입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파16.09」 3:15, 16
2월 15일 목요일
그분은 북쪽 하늘을 허공에 펴시고 땅을 공중에 떠 있게 하신다.—욥 26:7.
아이들은 대개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따라서 자녀를 가르칠 때 비유나 예를 자주 사용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비유나 예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성경의 정확성에 대한 믿음을 키우도록 자녀를 도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의 성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성구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습니까? 단지 사실을 설명만 해 줄 수도 있겠지만, 자녀가 상상력을 발휘해 보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욥이 살았던 시대는 망원경이나 우주선이 발명되기 훨씬 오래전이었다는 점을 알려 주십시오. 자녀에게 지구같이 엄청나게 큰 물체가 허공에 달려 있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믿기 어려워했을지 이야기해 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는 공이나 돌을 사용해서, 무거운 물체가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일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 보면 자녀는 인간이 정확한 사실을 발견하기 훨씬 오래전에 여호와께서 이미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다는 점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느헤미야 9:6. 「파16.09」 5:9, 12
2월 16일 금요일
마음으로 믿으[십시오.]—로마 10:9.
믿음에는 하느님의 목적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 행동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입니다. 하느님이 구원을 가져오실 것임을 믿는 사람은 마음이 움직여 다른 사람에게도 그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인지는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을 강하게 유지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믿음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은 식물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인조 식물과는 달리, 살아 있는 진짜 식물은 그 상태가 끊임없이 변합니다. 물이 부족하면 시들지만 물을 정기적으로 주면 생기 있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튼튼한 식물도 물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결국 죽어 버립니다. 믿음도 그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잘 돌보지 않으면 믿음이 시들어 결국 죽어 버릴 것입니다. (누가 22:32; 히브리 3:12) 하지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믿음은 살아서 계속 ‘자랄’ 것이며,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 건전해져’ 튼튼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데살로니가 후서 1:3; 디도 2:2. 「파16.10」 4:4, 5
2월 17일 토요일
궁정 관리장이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고] 했다.—다니엘 1:7.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되었을 때, 바빌론 사람들은 그들에게 “칼데아 사람들의 언어”를 가르쳐 바빌론의 문화에 동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을 훈련할 책임을 맡은 궁정 관리는 그들에게 바빌론식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다니엘 1:3-7) 다니엘이 받은 이름에는 바빌론의 주요 신인 벨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바빌론의 신이 다니엘의 하느님 여호와를 굴복시켰다는 점을 다니엘에게 각인시키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 4:8)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을 수 있었지만, 그런 것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다니엘 1:8) 그는 모국어로 “성경”을 계속 연구했기 때문에 외국에 살면서도 영적 건강을 잘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 9:2, 각주) 따라서 바빌론에 온 지 약 70년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히브리식 이름으로 불렀습니다.—다니엘 5:13. 「파16.10」 2:7, 8
2월 18일 일요일
생물들은 영이 이끄는 곳으로 갔다.—에스겔 1:20.
예수께서는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는 유일한 통로로 ‘충실한 종’을 임명하셨습니다. (마태 24:45-47)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919년 이래로 그 종을 사용하여 자신의 제자들이 하느님의 책을 이해하고 그 지침을 따르도록 도와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지침에 순종하면 회중의 깨끗함과 평화와 연합에 기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오늘날 예수께서 사용하고 계신 통로를 충성스럽게 지지하는가?’ 여호와께서 기록하신 성경을 보면 그분의 조직의 하늘 부분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는 하느님의 조직의 하늘 부분을 하늘 수레로 묘사합니다. (에스겔 1:4-28)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이 이 악한 세상을 멸망시킬 때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수레는 그분의 주권을 입증하고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파16.11」 3:9, 10
2월 19일 월요일
서로 격려하며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더 그렇게 [하십시오.]—히브리 10:25.
예수의 초기 제자들처럼, 우리는 배우고 격려를 받기 위해 함께 모입니다. (고린도 전서 14:31) 경험 많은 하느님의 종들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여호수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하느님을 충실히 섬겼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격려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를 임명하고 그를 격려하고 강하게 하여라. 그가 이 백성 앞에서 건너가, 네가 볼 땅을 그들이 상속받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명 3:27, 28) 이제 곧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을 것이었습니다. 그는 난관에 부딪치고 적어도 한 번은 전쟁에서 패배를 경험할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 7:1-9) 여호수아에게 분명 격려와 힘이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해 애쓰는 장로들을 개인적으로 격려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는 순회 감독자도 포함됩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12, 13. 「파16.11」 1:12, 13
2월 20일 화요일
내가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매춘부가 받을 심판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계시록 17:1.
성경 연구생들은 거짓 종교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친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이나 교회 성원들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큰 바빌론이 종교적 매춘부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1917년 12월부터 1918년 초까지 몇 천 명에 불과한 성경 연구생들은 그리스도교국을 통렬하게 폭로하는 「바빌론의 무너짐」(The Fall of Babylon)이라는 제목의 전도지를 1000만 부나 배부했습니다. 당연히 교직자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성경 연구생들은 물러서지 않고 그 중요한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순종하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사도 5:29) 이 점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 그리스도인들은 큰 바빌론의 속박 아래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었습니다. 「파16.11」 5:2, 4
2월 21일 수요일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의 일에 정신을 쏟지만 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의 일에 정신을 쏟습니다.—로마 8:5.
어떤 사람들은 이 성구가 진리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과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즉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대조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들이며 거룩한 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의 모든 사람”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로마 1:7) 따라서 바울은 육체를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들과 영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한때 “육체를 따라 살았을” 때 “죄의 욕망이 [그들]의 몸에서 작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로마 7:5) 이것을 보면 바울이 “육체의 일에 정신을 쏟는”다고 말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불완전한 인간의 욕망이나 성향에 좌지우지되거나 그것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성적인 면에서든 다른 면에서든 자신의 충동과 욕망과 갈망에 따라 행동합니다. 「파16.12」 2:5, 7
2월 22일 목요일
잘못을 용서받[은] 사람은 행복합니다.—시 32:1.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이나 잘못 때문에 염려할 수 있습니다. 다윗 왕 역시 때때로 자신의 ‘잘못들이 머리 위로 엄습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내가 마음의 고통으로 신음한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시 38:3, 4, 8, 18)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습니까? 다윗은 실제로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여호와께서 자비롭게 용서해 주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시 32:2, 3, 5) 때로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염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시편 55편을 쓸 당시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시 55:2-5) 그렇지만 그런 염려 때문에 여호와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열렬히 기도했습니다. 그에 더해 다윗은 염려의 원인이 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실제적인 조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5:30-34) 우리도 다윗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염려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런 다음에는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의 손에 문제를 맡기십시오. 「파16.12」 3:14, 15
2월 23일 금요일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습니다.—사무엘하 12:13.
다윗은 여호와의 대표자인 예언자 나단의 시정을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다시 여호와의 은혜를 받고 싶다는 진실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시 51:1-17) 다윗은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통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와 같은 심각한 죄를 다시는 짓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여러 해 후에 죽을 때까지 충실을 유지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남긴 충절의 기록을 자신의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계십니다. (히브리 11:32-34) 우리는 다윗의 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심각한 죄를 짓게 되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여호와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그분께 고백해야 합니다. (요한 1서 1:9) 또한 우리를 영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장로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야고보 5:14-16) 우리는 여호와의 마련들을 활용함으로, 우리를 낫게 하고 용서하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여호와를 섬기면서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고,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히브리 12:12, 13. 「파17.01」 1:13, 14
2월 24일 토요일
당신의 종이 주제넘은 행동을 하지 않게 막아 주십시오.—시 19:13.
“주제넘은 행동”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권한이 없으면서도 성급하거나 예의 없게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모두는 죄를 유전받았기 때문에 때때로 주제넘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는 것이 습관이 되면 머지않아 하느님과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시편 119:21에서는 여호와께서 ‘주제넘은 자를 꾸짖으신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제넘은 행동은 단순한 실수보다 더 심각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겸허하지 않게 행동하면 주권자이신 여호와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예를 그분에게 돌리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가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과 문제를 겪기가 쉽습니다. (잠언 13:10) 셋째로, 우리가 주제넘게 행동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면 창피나 굴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누가 14:8, 9) 주제넘게 행동하면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겸허를 나타내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입니다. 「파17.01」 3:4, 5
2월 25일 일요일
그들이 타락한 행동을 했으니, 그들은 그분의 자녀가 아니요, 그 흠은 그들 자신의 것이구나.—신명 32:5.
완전성을 잃은 아담은 하느님의 특성들을 완전하게 반영할 수 없었습니다. 아담은 놀라운 미래의 전망을 잃었을 뿐 아니라 후손에게 불완전성과 죄와 죽음을 물려주었습니다. (로마 5:12) 그는 자기 후손에게서 끝없는 생명을 누릴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는 더는 완전한 자녀를 낳을 수 없었으며,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탄 마귀는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반역하게 만든 후에도 지금까지 계속 인류를 속이고 있습니다. (요한 8:44) 하지만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반역했지만, 여호와께서는 인류가 자신과 좋은 관계를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은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 후서 3:9) 따라서 반역이 일어난 직후에,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의로운 표준을 고수하면서도 인간이 다시 자신과 벗 관계를 누릴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하셨습니다.—요한 3:16. 「파17.02」 1:12-14
2월 26일 월요일
조언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잠언 13:10.
우리가 하느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찾는다면, 여호와를 위한 봉사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목을 받으려고 하거나 늘 자신이 나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겸허하게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제안을 따르려고 더 노력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특권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있는 연합된 모든 형제들”을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그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5:9) 또한 겸허를 나타내어 여호와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우면 판단력이 더 좋아질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연구하고 기도하고 배운 것을 적용할 때 양심이 점차 건전해질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1:5) 우리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면 겸허를 비롯한 훌륭한 특성들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주고 ‘우리의 훈련을 끝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베드로 전서 5:10. 「파17.01」 4:17, 18
2월 27일 화요일
훌륭하게 주재하는 장로들, 특히 말하고 가르치는 일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을 두 배나 존중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디모데 전서 5:17.
믿음으로 우리의 친족이 된 사람들은 분명히 존중과 존경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인도하는 일을 하는 장로들이 특히 그러합니다. 우리는 그런 형제들의 국적이나 교육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에 관계없이 그들을 존중합니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사람들로 된 선물”이라고 부르며, 그 형제들은 하느님의 백성의 필요를 돌보는 그분의 마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에베소 4:8) 회중 장로, 순회 감독자, 지부 위원, 중앙장로회 성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1세기 형제 자매들은 그처럼 인도하는 일에 임명된 형제들을 매우 존중심 있게 대했으며 우리도 그러한 형제들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 회중의 대표자들을 연예인처럼 떠받들거나 마치 천사가 나타나기라도 한 듯이 행동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겸손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그 형제들을 존경하고 존중합니다.—고린도 후서 1:24; 계시록 19:10. 「파17.03」 1:13
2월 28일 수요일
왜 나를 선하다고 합니까?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습니다.—마가 10:18.
유대 지역의 왕이 된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예수와 전혀 달랐습니다! 한번은 헤롯이 외교 모임에 “왕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면서 “이것은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신의 음성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헤롯은 그런 찬사를 한껏 즐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즉시 여호와의 천사가 그를 쳤습니다. 그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 죽고 말았습니다.” (사도 12:21-23) 그것을 보고도 여호와께서 헤롯을 지도자로 선택하셨다고 생각할 사람은 분명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께 임명받았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셨고, 백성을 인도하는 최고 지도자이신 여호와께 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단지 몇 년 동안만 지도자의 역할을 하도록 임명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부활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 나는 세상 제도의 종결까지 모든 날 동안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마태 28:18-20. 「파17.02」 3: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