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월 1일 월요일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십시오.]—유다 3.
입다의 딸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마침내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달려 나가 아버지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거둔 큰 승리에 대해 기뻐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그런데 입다는 그 모습을 보고 전쟁에서 더러워진 자신의 옷을 찢으며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아, 내 딸아! ··· 내 가슴이 찢어지는구나.” 그러면서 딸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말을 합니다. 그 말대로 하려면 입다의 딸은 자신이 품었던 꿈과 평범한 삶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합니다. 하지만 입다의 딸은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여호와께 한 약속을 지키라고 권합니다. 입다의 딸이 한 말에서 강한 믿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입다의 딸은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일은 무엇이든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사 11:34-37) 입다는 딸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입다는 자신의 결정을 딸이 기꺼이 따르는 것을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입다와 그의 딸은 여호와께서 일을 처리하시는 방식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여호와를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승인을 얻는 것은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파16.04」 1:1, 2
1월 2일 화요일
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해 들었으며, 여호와께서 주신 결과를 보았습니다.—야고보 5:11.
친구나 가족이 한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낙담했거나, 심각한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다면 욥의 본으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욥 1:18, 19; 2:7, 9; 19:1-3) 욥은 자신이 왜 그런 시련을 겪는지 몰랐지만 절망에 빠져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가지는, 그가 “하느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욥 1:1) 욥은 상황이 좋든 나쁘든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리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여호와의 도움으로 욥은 그분이 성령을 통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숙고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여호와께서 적절한 때에 자신의 시련을 끝내 주실 것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욥 42:1, 2)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환난을 없애시고 다시 번영하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욥이 전에 가졌던 것의 두 배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욥은 “오래도록 만족스럽게” 살았습니다.—욥 42:10, 17. 「파16.04」 2:11, 13
1월 3일 수요일
뱀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비둘기처럼 순진하게 되십시오.—마태 10:16.
우리는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분별함으로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 타협하지 않음으로 “순진하게” 즉 진실하게 행동합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왕국 소식을 전할 때 특정 정당이나 지도자의 정책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정치적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집주인의 공감을 이끌어 내십시오. 그런 다음 성경을 사용해서 하느님의 정부가 어떻게 그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해결할 것인지 보여 주십시오. 동성 결혼이나 낙태와 같이 민감한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하느님의 표준을 알려 주고 우리가 생활에서 그 표준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런 문제들의 정치적인 측면에 관해서는 철저히 중립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정한 법을 제정하거나 폐지하거나 변경해야 하는지에 관해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견해를 따르도록 압력을 가하지도 않습니다. 「파16.04」 4:8, 9
1월 4일 목요일
그러므로 가서 ···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십시오.—마태 28:19.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침례를 주고, 가르치는 일도 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관해 한 성경 학자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가라’는 사명은 신도들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며, 길을 건너가야 하든 바다를 건너가야 하든 꼭 해야 할 일이다.” (마태 10:7; 누가 10:3) 그러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개별적으로 그 일을 하는 것만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까? 아니면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여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한 사람이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갈 수는 없으므로, 이 활동에는 많은 사람의 조직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그런 뜻이었습니다. (마태 4:18-22) 예수께서 말씀하신 고기잡이는 혼자서 낚시를 드리우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 때까지 한가로이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물을 사용한 고기잡이를 언급하신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흔히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누가 5:1-11. 「파16.05」 2:3, 4
1월 5일 금요일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신뢰하고 자신의 이해에 의존하지 마라. 모든 길에서 그분을 유의하여라. 그러면 그분이 너의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잠언 3:5, 6.
여호와의 생각을 잘 알려면,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개인 연구를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거나 연구할 때, ‘이 내용은 여호와와 그분의 의로운 특성과 생각에 대해 어떤 점을 알려 주지?’ 하고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 필자 다윗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 여호와여, 내게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은 내 구원의 하느님이시니, 내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온종일 당신에게 희망을 둡니다.” (시 25:4, 5) 성경 구절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을 대할 때 이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이 내용을 어디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가정이나 직장이나 학교에서 혹은 봉사할 때 적용해 보면 어떨까?’ 그 내용을 어디에서 적용할지 정하고 나면 어떻게 실천할지 더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파16.05」 3:9, 11
1월 6일 토요일
감독자는 책잡힐 것이 없어야 합니다.—디모데 전서 3:2.
여호와께서는 감독자의 자격 조건들을 알려 주심으로 임명받아 일하는 형제들에 대해 높은 표준을 갖고 계시다는 점을 밝혀 주셨습니다. (디모데 전서 3:2-7) 그분은 그들이 좋은 본을 보이기를 기대하시며, “자신의 아들의 피로 사신” 회중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사도 20:28)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임명된 아랫목자들의 돌봄을 받으며 안전감을 느끼기를 바라십니다. (이사야 32:1, 2)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 장로에 대한 성경의 자격 조건을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돌보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 성구들에 나오는 자격 조건을 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격 조건은 대부분 여호와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합리적이 되고 건전한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 4:5; 베드로 전서 4:7) 장로들은 “양 떼의 모범”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장로들에게서 배우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베드로 전서 5:3; 히브리 13:7. 「파16.05」 5:8-10
1월 7일 일요일
네가 지키는 모든 것보다 네 마음을 잘 지켜라.—잠언 4:23.
우리는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는 어떤 특성들을 조심해야 합니까? 그중에는 교만,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경향, 믿음의 부족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이 있으면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태도가 자랄 수 있습니다. (다니엘 5:1, 20; 히브리 3:13, 18, 19) 예를 들어, 유다의 웃시야 왕은 매우 교만한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역대기하 26:3-5, 16-21) 처음에 웃시야는 “여호와의 눈에 옳은 일”을 했고 “계속해서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강해지자, 마음이 거만해졌습니다.” 그를 강하게 해 주신 분은 하느님이었는데 말입니다! 웃시야는 성전에서 분향하려고까지 했는데, 그것은 아론 가계의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막으려고 하자 교만한 웃시야는 화를 터뜨렸습니다!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파멸”적인 결과가 뒤따랐습니다. 하느님이 웃시야를 나병으로 치셨고 그는 나병 환자로 지내다 죽었습니다. (잠언 16:18) 우리도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으며, 심지어 성경의 조언을 배척하게 될지 모릅니다.—로마 12:3; 잠언 29:1. 「파16.06」 2:3, 4
1월 8일 월요일
사랑으로 서로 참으십시오.—에베소 4:2.
자신과 문화적 배경이 많이 다른 동료 그리스도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들의 모국어나 옷 스타일이나 관습이나 음식이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혹시 그런 사람들을 피하고 나와 배경이 비슷한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회중이나 순회구나 지부에서 감독자로 임명된 사람이 당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문화나 인종이 다른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백성이 하나의 목적으로 연합을 이루어야 하는데도 그러한 차이를 이유로 연합을 약화시킬 것입니까? 우리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바울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살던 번영하는 도시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적절한 조언을 했습니다. (에베소 4:1-3) 바울은 겸손, 온화함, 참을성, 사랑 같은 특성을 먼저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집을 떠받치는 기둥들에 비할 수 있습니다. 「파16.06」 3:17, 18
1월 9일 화요일
여러분은 계속 깨어 살피며 온갖 탐욕을 경계하십시오.—누가 12:15.
사탄은 우리가 여호와의 종이 아니라 물질의 노예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 6:24) 재물을 모으기 위해 대부분의 활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만족시키는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의 삶이 영적으로 공허해지고 슬픔과 좌절로 가득해진다는 점입니다. (디모데 전서 6:9, 10; 계시록 3:17) 예수께서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가운데서 그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분은 왕국 소식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면]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한 욕망이 들어와 말씀이 숨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마가 4:14, 18, 19) 이 세상 제도의 끝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지금은 우리 자신을 위해 재물을 모을 때가 아닙니다. 아무리 소중하고 값진 소유물을 갖고 있다 해도, 그런 것들을 가지고 큰 환난을 통과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잠언 11:4, 각주; 마태 24:21, 22. 「파16.07」 1:5, 6
1월 10일 수요일
우리는 모두 ··· 과분한 친절에 과분한 친절을 더하여 받았다.—요한 1:16.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들을 구하려고 이른 아침에 장터로 갔습니다. 일꾼들은 주인이 제시한 품삯을 받기로 하고 일을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일꾼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그날 여러 차례 장터에 다시 가서 더 많은 일꾼들을 고용했고, 오후 늦게 고용한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품삯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주인은 일꾼들을 불러 모아 품삯을 주었는데, 여러 시간 일했든 한 시간만 일했든 모든 일꾼에게 동일한 품삯을 주었습니다. 맨 처음 일하러 온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제시한 품삯을 받기로 합의하지 않았소? 내 일꾼들에게 내가 주고 싶은 대로 줄 수 없단 말이오? 내가 관대하기 때문에 당신이 시기하는 것이오?’ (마태 20:1-15, 각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를 보면,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이라는 특성이 떠오릅니다.—고린도 후서 6:1. 「파16.07」 3:1, 2
1월 11일 목요일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여라.—계시록 21:5.
끝이 가까워 오고 있으므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우리의 사명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마가 13:10) 분명, 좋은 소식에는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증거할 때 그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파 활동을 하는 목적은 여호와께 영예를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세계에 관한 모든 약속이 여호와의 크나큰 친절의 표현임을 사람들에게 알려 줌으로 그분께 영예를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증거할 때,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 아래 인류가 대속 희생으로부터 온전한 유익을 얻을 것이며 점차 완전성에 이를 것임을 알려 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로마 8:21) 이것은 오로지 여호와의 넘치는 친절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파16.07」 4:17-19
1월 12일 금요일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이행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와 같이 하십시오.—고린도 전서 7:3.
성경은 부부가 자연스럽게 성적 즐거움을 누릴 때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까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규칙을 알려 주지는 않지만, 남녀간의 애정 표현에 대해 언급합니다. (솔로몬의 노래 1:2; 2:6) 그리스도인 부부는 서로를 부드럽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어떤 이유로도 배우자와의 관계를 약화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배우자 한쪽이 음란물에 중독되어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결혼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음란물을 보고 싶거나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성적 관심이 생긴다면 그러한 마음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낭만적인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랑이 없는 행동이며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순결을 유지하겠다는 마음이 강해질 것입니다.—마태 5:27, 28; 히브리 4:13. 「파16.08」 2:7-9
1월 13일 토요일
우리는 ··· 여러분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청해 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정확한 지식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기도합니다.]—골로새 1:9.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여호와께 합당하게 걸어 그분을 온전히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선한 일에서”, 특히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서 계속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골로새 1:10) 여호와를 잘 섬기려면 반드시 성경을 정기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 연구생이 그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이 그 가치를 확신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먼저 좋은 성경 연구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의견을 말하거나 어려운 질문을 한다면, 나는 성경을 근거로 대답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면서 얻은 유익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줌으로, 그들도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서 유익을 얻도록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파16.08」 4:3, 4
1월 14일 일요일
우리는 ···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의 세력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에베소 6:12.
우리는 “견고한 요새”와도 같은 이 세상의 해로운 것들을 반드시 물리쳐야 합니다. 그 가운데는 세상의 이론과 철학이나 부도덕, 흡연, 과음, 마약 남용 등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육적인 약함과 낙담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계속 싸워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10:3-6; 골로새 3:5-9) 그처럼 강력한 상대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기려면 힘껏 싸워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대의 권투 선수에 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 주먹을 뻗어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9:26) 우리도 권투 선수가 상대 선수와 싸우듯 적들과 싸워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훈련시켜 주시고 이 싸움에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또한 그분은 성경에 근거한 출판물, 그리스도인 집회, 크고 작은 대회를 통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당신은 자신이 배우는 점들을 실제로 적용하고 있습니까? 「파16.09」 2:2, 3
1월 15일 월요일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로마 15:3.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자신의 편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봉사할 때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나 액세서리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포기할 것입니다. (로마 15:2)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에게 성경의 원칙들을 적용하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단정한 옷차림과 몸단장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잠언 22:6; 27:11) 부모가 좋은 본을 보이고 사랑으로 실제적인 조언을 베푼다면, 자녀의 마음에 거룩하신 하느님에 대한 합당한 존경심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적절한 옷을 살 수 있는지 알려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단지 자녀가 좋아하는 옷이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을 대표하는 영예로운 신분에 어울리는 옷을 선택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파16.09」 3:13, 14
1월 16일 화요일
학생이 선생보다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가르침받은 사람은 모두 자기 선생처럼 될 것입니다.—누가 6:40.
예수께서는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과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가르칠 때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실 수 있었습니다. (누가 24:32; 요한 7:46) 부모가 그러한 사랑을 갖고 있다면 자녀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신명 6:5-8; 누가 6:45) 따라서 부모 여러분, 성경과 출판물을 부지런히 연구하십시오. 창조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창조물에 관한 우리 출판물의 기사들을 유의해서 살펴보십시오. (마태 6:26, 28) 그렇게 한다면 지식이 더 많아지고 여호와에 대해 더 많은 점을 깨닫게 되어 자녀를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진리가 가득하면 가족에게 진리에 대해 말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집회를 예습하거나 가족 숭배를 할 때만 아니라 어느 때에든 그런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또한 강압적으로가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파16.09」 5:6, 7
1월 17일 수요일
유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느헤미야 13:24.
외국어로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경우, 우리의 영적 건강이 실제로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 느헤미야는 염려가 되는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자녀 중 일부가 히브리어를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사실 그 자녀들은 하느님의 숭배자라는 신분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8:2, 8) 외국어 봉사를 하는 일부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진리에 대한 관심이 식어 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외국어로 글을 읽으면 모국어로 읽을 때만큼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해,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지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국어 봉사를 하면서 여호와를 섬기려는 열망을 유지하는 한편, 자신의 영적 건강도 지켜야 합니다.—마태 4:4. 「파16.10」 2:4-6
1월 18일 목요일
믿음은 ···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히브리 11:1.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소중한 특성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2)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분을 숭배하는 각 사람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로마 12:3; 갈라디아 5:22)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은 여호와께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예수를 통해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끄십니다. (요한 6:44, 65)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갖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와 영원히 우정을 누릴 전망을 갖게 됩니다. (로마 6:23) 우리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서 그처럼 놀라운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게 된 것입니까? 죄인인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시 103:10)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셨습니다. 그분은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셔서 우리가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에게 믿음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요한 1서 4:9, 10. 「파16.10」 4:1, 2
1월 19일 금요일
[바울은] 거기 있는 사람들을 많은 말로 격려했다.—사도 20:2.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에서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했습니다. 바울은 그중 얼마의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여행했고 분명 그들의 단점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 대해 좋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디모데를 “주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충실한 아들”이라고 불렀으며, 디모데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일을 진실하게 돌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4:17; 빌립보 2:19, 20) 또한 고린도 회중에 보낸 편지에서 디도를 “나의 동료이며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동료 일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8:23) 디모데와 디도는 자신에 대해 바울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격려를 받았겠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전에 반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던 곳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간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리스트라에서 맹렬한 반대를 받았었지만 새로 제자가 된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기 위해 또다시 리스트라로 갔습니다. (사도 14:19-22) 또한 에베소에서 바울은 성난 폭도들에게 위협을 받은 후에도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격려했습니다.—사도 20:1. 「파16.11」 1:10, 11
1월 20일 토요일
같은 정신과 같은 생각으로 온전히 연합하십시오.—고린도 전서 1:10.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조직의 지상 부분에 속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영적으로 먹이기 위해, “회중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지도를 받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사용하십니다. (에베소 5:23; 마태 24:45-47) 1세기의 중앙장로회와 마찬가지로 이 종은 성경을 하느님의 영감받은 말씀이자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정말 소중히 여깁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13) 성경에는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라는 지침이 있습니다. (히브리 10:24, 25) 성경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가르침을 믿을 것을 권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왕국을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태 6:33) 또한 호별 방문을 하거나 공공장소나 그 밖의 모든 상황에서 전파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태 28:19, 20; 사도 5:42; 17:17; 20:20) 하느님이 주신 책은 그리스도인 장로들에게 그분의 조직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지침도 줍니다. (고린도 전서 5:1-5, 13; 디모데 전서 5:19-21) 또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이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깨끗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고린도 후서 7:1. 「파16.11」 3:7, 8
1월 21일 일요일
내 백성아, 그 여자에게서 나오너라.—계시록 18:4.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수십 년 동안, 찰스 테이즈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성경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거짓 종교라고 생각하는 종교와는 어떤 관련도 맺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찍이 「시온의 파수대」(Zion’s Watch Tower) 1879년 11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성경에 근거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스도와 약혼한 순결한 처녀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짐승)과 결합하여 세상의 지원을 받고 있는 모든 교회를 우리는 성경의 표현에 따라 창녀 교회로 정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창녀 교회는 큰 바빌론을 가리킵니다. (계시록 17:1, 2)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이 거짓 종교 조직을 계속 지원한다면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성경 연구생들은 교회에서 나오기 위한 탈퇴서를 작성했습니다. 「파16.11」 5:2, 3
1월 22일 월요일
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의 일에 정신을 쏟습니다.—로마 8:5.
해마다 돌아오는 예수의 죽음의 기념식 철에 로마서 8:15-17을 읽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 중요한 성구는 그리스도인이 기름부음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지 설명합니다. 즉 성령이 그 그리스도인의 영과 함께 증언하기 때문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을 받으며 “[육적인] 몸에서 놓여 아들로 입양되기를 ···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 8:23) 그렇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하늘에서 하느님의 아들들이 될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대속의 가치를 적용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을 영적 아들로 의롭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 3:23-26; 4:25; 8:30) 하지만 땅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로마서 8장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면에서는 그들도 의롭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도 의로운 사람들에게 주어진 로마서 8장의 교훈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파16.12」 2:1-3
1월 23일 화요일
결코 염려하지 마십시오.—마태 6:34.
예수께서는 어떤 의미로 “결코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물론 그 말씀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살면서 전혀 염려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는 과도하거나 극단적인 염려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하루하루 그 날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걱정거리에 과거나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도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문제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종종 불필요한 염려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걱정하는 만큼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께 모든 염려를 내맡길 수 있습니다. 그분이 통제하지 못하시는 상황은 없습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충실히 섬기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고 그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염려에 대처하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파16.12」 3:13, 16
1월 24일 수요일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잠언 11:2.
고대 이스라엘의 사울은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겸허하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9:1, 2, 21; 10:20-24)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제넘은 행동들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 사무엘이 정해진 시간이 되었는데도 길갈에 오지 않자, 사울은 조바심이 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을 떠나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얼른 뭔가 조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권한이 없는데도 하느님께 희생을 바쳤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행동을 불쾌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무엘상 13:5-9) 길갈에 도착한 사무엘은 사울을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시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변명하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의 잘못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사무엘상 13:10-14) 이 일을 시작으로 사울은 큰 잘못을 거듭 저질렀으며, 그로 인해 결국 왕권을 잃었고 더 중요한 것으로 여호와의 승인도 잃었습니다. (사무엘상 15:22, 23) 사울은 출발은 좋았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사무엘상 31:1-6. 「파17.01」 3:1, 2
1월 25일 목요일
내가 ···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사도 13:22.
다윗은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몇 차례 심각한 죄를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밧세바와 간음을 범했습니다. (사무엘하 11:1-21)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 잘못으로 인한 결과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 결과 중 일부는 평생 동안 지속될 것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2:10-12, 14) 따라서 그에게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여호와께서 용서해 주시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를 인내하게 도와주실 것임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어떤 잘못은 다른 잘못에 비해 더 심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잘못을 돌이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한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갈라디아 6:7) 하지만 우리는 잘못을 회개하면 자신이 어려움을 자초했어도 힘든 시기를 인내하도록 여호와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신뢰합니다.—이사야 1:18, 19; 사도 3:19. 「파17.01」 1:10-12
1월 26일 금요일
해 아래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다. 설사 자기가 알 만큼 지혜롭다고 주장하더라도 실제로는 이해할 수 없다.—전도 8:17.
겸허한 태도는 앞으로의 상황을 온전히 알 수 없거나 자기 뜻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에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전 시간 봉사를 시작할 경우 나중에 병이 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부모님이 연로해져 도움이 필요하시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 자신이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갈 것입니까? 기도나 연구 조사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이런 질문들에 대해 확실한 답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신뢰한다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 더해 받아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연구 조사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기도로 인도를 구한 다음에는 하느님의 영이 이끄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전도 11:4-6) 그렇게 할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으며, 그분은 필요하다면 우리가 목표를 조정하도록 부드럽게 도와주실 것입니다.—잠언 16:3, 9. 「파17.01」 4:14
1월 27일 토요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된다.—창세 2:17.
아담과 하와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순종할 것입니까, 아니면 뱀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그들은 하느님께 불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창세 3:6-13)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께 반역한 결과 완전성을 상실했습니다. 또한 반역으로 인해 여호와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눈이 정결하여 차마 악한 것을 보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악을 용납하지 못하십니다.” (하박국 1:13) 그분이 악을 용납하셨다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의 복지에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에덴에서 저질러진 죄에 대해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이 신뢰할 만한 분인지에 의문이 제기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표준을 충실히 지키시며 그 표준을 결코 어기지 않으십니다. (시 119:142) 따라서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해서 하느님의 법을 무시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여호와께 반역한 결과 그들은 죽었고 그들이 창조되기 전과 같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창세 3:19. 「파17.02」 1:8, 10, 11
1월 28일 일요일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마태 4:4.
예수께서는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실 때부터 성경에서 지침을 얻으셨습니다. 심지어 그분은 죽기 직전에도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7:46; 누가 23:46) 반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전통과 어긋날 때는 언제나 그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 대해 말하면서, 여호와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이러한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이 사람의 명령을 교리로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숭배하고 있다.” (마태 15:7-9) 예수께서는 행동할 때뿐 아니라 가르칠 때도 하느님의 말씀에서 지침을 구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논쟁하려고 왔을 때, 그분은 자신이 가진 엄청난 지혜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에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여겨 성경을 근거로 대답하셨습니다.—마태 22:33-40. 「파17.02」 3:18, 19
1월 29일 월요일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존중하고 ··· 왕을 공경하십시오.—베드로 전서 2:17.
공직자들을 존중하는 것이 의무나 관습으로 여겨지든 그렇지 않든,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에게 기꺼이 존중심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그들이 공무를 수행할 때 협조합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합당한 한계 내에서 그들을 존중하고 지원합니다. 하느님께 불순종하거나 그리스도인 중립을 어길 정도로 그들을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 전서 2:13-16) 고대의 여호와의 종들은 정부와 공직자들을 대하는 면에서 본을 남겼습니다. 로마 제국이 국민들에게 인구 조사에 응할 것을 요구했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그에 따랐습니다. 마리아가 첫아이를 출산할 때가 가까웠지만 그들은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갔습니다. (누가 2:1-5) 또한 바울은 범죄 혐의로 고발당했을 때 헤롯 아그리파 왕과 로마의 유대 속주 총독 페스투스 앞에서 존중심 있게 자신을 변호하고 그들에게 합당한 존경을 보였습니다.—사도 25:1-12; 26:1-3. 「파17.03」 1:9, 10
1월 30일 화요일
이런 일들은 ···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고 기록되었습니다.—고린도 전서 10:11.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사람들의 죄짓는 행로를 받아들이자 보호의 손길을 거두셨습니다. (사사 2:1-3, 11-15; 시 106:40-43)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가족들이 그 어려운 시기에 여호와께 충성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에서는 믿음을 나타낸 가족들이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예를 들어 입다와 엘가나와 한나와 사무엘은 하느님의 승인을 얻기 위해 힘써 노력했습니다. (사무엘상 1:20-28; 2:26)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이 고대 가나안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성과 폭력을 미화하고 물질주의를 부추깁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분명한 경고를 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그러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입니까? (고린도 전서 10:6-10) 우리는 자신에게서 가나안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뿌리 뽑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로마 12:2) 당신은 그렇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까? 「파16.04」 1:4-6
1월 31일 수요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노련한 지도를 얻는다.—잠언 1:5.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성경에 들어 있는 최상의 조언을 찾고 기도로 여호와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뜻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특성들을 기르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이 결정에는 내가 여호와를 사랑한다는 것이 나타나 있는가? 이렇게 결정하면 우리 가족이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인가? 이 결정은 내가 참을성 있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주는가?’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으므로, 그분을 섬길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우리의 책임과 권리를 존중하십니다. (여호수아 24:15; 전도 5:4) 하지만 우리가 그분의 지침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면, 그분은 우리가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하기를 바라십니다. 여호와께서 친절하게 알려 주신 원칙들과 그분의 방식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고 삶의 모든 길에서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보 1:5-8; 4:8. 「파17.03」 2:1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