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월 1일 수요일
아브라함은 장수를 누리고 늙어서 만족하는 가운데 숨을 거두고 죽[었다.]—창세 25:8.
아브라함이 “늙어서 만족”했다고 해서, 그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했고 장래의 삶에 아무 미련이 없었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는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도시를 설계하고 건축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히브리 11:10) 아브라함이 낙원이 된 땅에 살면서 여호와와 우정을 계속 길러 나가며 얼마나 감격스러워할지 상상이 되십니까? 그는 자신이 남긴 믿음의 본이 자신이 죽은 후에도 수천 년 동안 여호와의 종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참으로 가슴이 뭉클할 것입니다! 낙원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삭을 돌려받은 일이 훨씬 더 큰 일의 “모형”이었다는 것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 11:19) 또한 그는 이삭을 제물로 바칠 준비를 하면서 자신이 고통을 겪은 일을 통해, 수많은 충실한 사람이 여호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줄 때 겪으신 고통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3:16. 「파16.02」 1:15, 16
11월 2일 목요일
이 반역적인 여자의 아들아, 네가 이새의 아들 편이 되기로 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것은 너 자신에게도 수치요 네 어미에게도 수치이다.—사무엘상 20:30.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잘못 판단할 때 여호와께 충성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요나단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왕인 사울은 아들 요나단이 다윗과 친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왜 그런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심하게 화를 터뜨리며 요나단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똑같이 응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을 존중하면서도 하느님과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에게 흔들림 없이 충성심을 나타냈습니다. (사무엘상 20:31-41)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들에서는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일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인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불완전하며, 따라서 우리의 행동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13-17) 혹시라도 누군가가 우리를 잘못 판단하거나 오해한다 해도 여호와께 계속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파16.02」 3:14, 15
11월 3일 금요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십시오.]—마태 16:24.
일부 사람들은 헌신과 침례가 어떻게 다른지 헷갈려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청소년들은 자신이 여호와께 헌신했지만 아직 침례받을 준비는 안 됐다고 말합니다. 이치에 맞는 말입니까? 헌신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영원히 섬기겠다고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으면 자신이 헌신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침례는 이미 기도로 여호와께 개인적으로 헌신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침례받기 전에 여러분은 자신이 헌신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 여러분이 여호와께 헌신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헌신이란 삶에서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것을 다른 모든 것보다 앞자리에 두겠다고 그분께 약속하는 것입니다. 약속은 어떤 것이든 다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느님께 한 약속은 얼마나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겠습니까!—마태 5:33. 「파16.03」 1:14, 15
11월 4일 토요일
모든 일에서 사랑으로 ··· 자라도록 합시다.—에베소 4:15.
바울은 인체를 예로 들어 우리가 회중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연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온몸이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모든 관절을 통해” 협력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베소 4:16) 나이가 많든 적든, 건강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 각자는 회중의 연합과 영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습니까? 비결은 회중에서 인도하는 일을 하도록 예수께서 임명하신 사람들 즉 장로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13:7, 17) 때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성령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회중 마련을 지원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장로들이 주는 지침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겸손히 협력하는 것이 어떻게 회중의 연합에 도움이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협력한다면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욱 자랄 것입니다. 「파16.03」 3:8, 9
11월 5일 일요일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을 발휘[합니다.]—히브리 4:12.
일부 젊은 형제들은 성장기에 영적 목표를 추구하도록 격려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형제들은 자신의 삶에서 진리를 첫째 자리에 둔 적이 없습니다. (마태 10:24) 그러므로 장로들은 시간을 내서, 회중에서 특권을 맡도록 훈련시키고자 하는 형제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 나가고, 그가 회중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적당한 때에는 언제든, 함께 앉아 특정한 성구들을 검토해 보면서 그가 여호와께 한 헌신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도와야 합니다. (전도 5:4; 이사야 6:8; 마태 6:24, 33; 누가 9:57-62; 고린도 전서 15:58; 고린도 후서 5:15; 13:5) ‘여호와께 헌신했을 때 그분께 무슨 약속을 했나요?’ 하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그의 마음에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가 침례받았을 때 여호와는 어떤 느낌이 드셨을까요?’ (잠언 27:11) ‘사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베드로 전서 5:8) 잘 선택한 성구를 읽을 때 형제들이 받을 수 있는 깊은 영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파15」 4/15 2:9, 11
11월 6일 월요일
여러분의 염려를 모두 그분에게 내맡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베드로 전서 5:7.
여호와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에 즉시 응답하시지는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자신과 우리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 비하신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시 103:13) 자녀는 자신의 요구를 부모가 모두 들어주거나 당장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녀의 마음이 금방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적당한 때가 되기까지 시간이 흘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녀가 해 달라는 것이 자녀 자신이나 관련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녀의 모든 요구를 즉시 들어준다면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주종 관계로 변질되어 아이가 상전 노릇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의 응답이 명확해지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러가게 하실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창조주이자 사랑 많은 주인이자 하늘의 아버지이신 여호와의 권리입니다. 우리의 모든 요청을 즉시 들어주신다면 우리와 그분의 합당한 관계가 왜곡될 것입니다.—이사야 29:16; 45:9. 「파15」 4/15 4:6, 7
11월 7일 화요일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도망할 것입니다.—야고보 4:7.
이 세상 제도의 끝이 가까운 지금, 사탄은 우리가 경계를 늦추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서 이 세상에서 성공을 추구하다가 긴박감을 잃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계속 “깨어 살피십시오.” (마태 16:22, 23; 24:42) 끝이 아직 멀었다거나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탄의 거짓된 선전에 결코 속지 마십시오. 사탄은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우리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사탄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 퍼뜨리는 거짓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로 여호와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정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가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의하지 않으시므로, 여러분이 ··· 행한 일과 그분의 이름을 위해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히브리 6:10)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소중히 여기시며, 우리가 드리는 봉사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15:58) 따라서 사탄의 거짓된 선전에 속지 마십시오. 「파15」 5/15 1:16-19
11월 8일 수요일
그들은 ···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히브리 11:13.
아브라함에게는 자신의 희망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아직 실제로 보지 못한 일을 보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행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나타내어 우르라는 도시를 떠났고 가나안의 어느 도시에서도 정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르와 마찬가지로 그 도시들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통치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흔들리는 기초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4:2)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난 이후로 긴 생애 내내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렸습니다.] 그 도시를 설계하고 건축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히브리 11:10)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영구적인 거처에 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같은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으며,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인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를 받으며 땅에서 살 때를 고대했습니다. 그러한 축복들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더욱 강해졌습니다.—히브리 11:15, 16. 「파15」 5/15 3:8, 9
11월 9일 목요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고린도 전서 1:24.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놀랍게 보여 주셨습니다. 사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얼마의 기적에 대해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세부점을 알려 줍니다. 아마 그분은 그 밖에도 더 많은 기적을 행하셨을 것입니다. (마태 9:35; 누가 9:11)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예수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분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기적들은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기적 즉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2:22) 예수께서 땅에서 행하신 강력한 일들은 그분이 왕으로 통치하실 때 있을 더 큰 축복들의 예고편이었습니다. 그 일들은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예수께서 전 세계적인 규모로 행하실 기적들을 미리 보여 줍니다! 또한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의 성품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 줍니다. 「파15」 6/15 1:1, 2
11월 10일 금요일
[그 여자는] ‘저분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거야’ 하고 계속 생각했다.—마가 5:28.
그 여자를 고쳐 주신 분이 아버지 여호와라는 것을 깨달은 예수께서는 그를 친절히 대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이여,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낫게 했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고통스러운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지십시오.” (마가 5:34) 예수는 참으로 친절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애처롭게 여기신다는 것을 압니다. 사탄은 우리가 사랑받지 못하며 무가치한 존재라고 믿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우리와 우리의 문제들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동정심 많은 왕이자 대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 4:15) 우리는 만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런 질환을 앓은 적이 전혀 없다면 특히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으신데도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셨다는 점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예수의 본을 따라야겠습니다.—베드로 전서 3:8. 「파15」 6/15 2:11, 12
11월 11일 토요일
하느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고 있다.—로마 2:24.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알 뿐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위한 백성”으로서 그 이름을 지니는 것은 크나큰 영예입니다. (사도 15:14; 이사야 43:10)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마태 6:9) 또한 그 요청과 일치하게 우리는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에 모독을 돌릴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도와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에 언급되어 있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스스로는 실천하지 않았던 1세기의 일부 사람들처럼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온전히 거룩해지고 그 이름에 돌아간 모독이 모두 씻겨지려면 어떤 일이 있어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자신의 주권을 고의로 거부하는 모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행동하셔야 합니다. (에스겔 38:22, 23) 그 후 인류는 점차 완전성을 회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성 있는 창조물 모두가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받들 때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그때가 되면 마침내 우리의 사랑 많은 하늘의 아버지께서 “모두에게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5:28. 「파15」 6/15 4:7, 10
11월 12일 일요일
하늘은 나의 왕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이사야 66:1.
히브리어 성경에서 “발판”이라는 표현은 이 땅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비유적인 의미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한 고대의 성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역대기상 28:2; 시 132:7) 이 땅에 있었던 성전은 참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전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매우 아름다웠으며, 성전의 존재는 여호와의 발이 있는 자리를 영광스럽게 해 주었습니다. (이사야 60:13) 오늘날 참숭배의 중심지는 지상에 있는 문자적인 성전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영적 성전이 존재하는데, 그 성전은 그 어떤 건물보다도 훨씬 더 여호와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그 성전은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 주는 마련이며, 그러한 마련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직과 희생으로 인해 가능해졌습니다. 그 성전은 기원 29년에 예수께서 침례받으시고 여호와의 거대한 영적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기름부음받으셨을 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히브리 9:11, 12. 「파15」 7/15 1:1-3
11월 13일 월요일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구름에 싸여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누가 21:27.
그때는 충실한 자들에게 상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는 때가 될 것입니다. (마태 24:46, 47, 50, 51; 25:19, 28-30)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복합적인 표징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양과 염소의 비유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신의 영광 중에 모든 천사와 함께 와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을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모아질 것이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리하듯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분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양은 자기 오른편에, 염소는 자기 왼편에 둘 것입니다.” (마태 25:31-33) 양과 염소는 어떤 심판을 받을 것입니까? 그 비유는 이러한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들[염소들]은 영원한 끊어짐을 당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마태 25:46. 「파15」 7/15 2:11, 12
11월 14일 화요일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것이 얼마나 좋으며 얼마나 즐거운가!—시 133:1.
자신이 성장한 국가와 그곳의 문화와 언어와 음식에 어느 정도 애착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것이 최고다”라는 식의 태도를 가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기쁨을 위해 모든 것을 매우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시 104:24; 계시록 4:11) 따라서 한 가지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요한 3:16; 디모데 전서 2:3, 4) 받아들일 만한 다양한 견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그리스도인 연합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세상의 논쟁에 결코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분열을 일으키는 잘못된 충성심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의 세상의 주된 특징인 분열과 경쟁심과 우월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파15」 7/15 3:17, 18
11월 15일 수요일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베드로 전서 5:7.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왕국 전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함으로 하느님과 이웃에게 사랑을 나타냅니다. (마태 24:14; 28:19, 20) 또한 믿음의 시험이 닥칠 때 충절을 지키고 인내함으로 여호와께 진실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시 84:11; 야고보 1:2-5) 극심한 시련을 겪게 된다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시 56:8)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그분의 창조 작품을 비롯해 그분이 해 오신 놀라운 일들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함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기도로 더욱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마련하신 대속 희생에 대해 묵상함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키워 갑니다. (요한 1서 2:1, 2) 여호와의 변치 않는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그 밖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여호와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파15」 8/15 1:6, 17, 18
11월 16일 목요일
참을성을 보이는 것이 ··· 낫다.—전도 7:8.
신세계에서도 참을성을 나타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람들이 부활되어 그들의 가족과 벗들이 기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부활되지 않아서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면서 참을성을 나타낼 것입니까? (로마 12:15) 우리가 지금 여호와의 약속들이 성취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면 그때에도 참을성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밝혀지는 진리에 대해 참을성을 나타냄으로 신세계의 삶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경 진리에 대한 이해가 점진적으로 명확해질 때 우리는 그러한 점들을 깊이 연구하고 참을성을 나타냅니까? 그렇다면, 신세계에서 여호와께서 인류에 대한 그분의 요구 조건을 밝히실 때 참을성을 나타내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잠언 4:18; 요한 16:12. 「파15」 8/15 3:9, 10
11월 17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온전함과 같은 수준에 이르십시오.—에베소 4:13.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믿음과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정확한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온전함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에베소 4:13) 바울이 그 편지를 썼을 때는 에베소의 회중이 설립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난 뒤였습니다. 그곳의 많은 제자들은 이미 영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발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장성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있습니다. 많은 형제 자매들은 오랫동안 하느님을 섬겨 왔고 발전하여 영적 장성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매년 수십만 명의 새로운 사람들이 침례를 받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지금도 장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떠합니까?—골로새 2:6, 7. 「파15」 9/15 1:2, 3
11월 18일 토요일
육체의 훈련도 조금은 유익합니다.—디모데 전서 4:8.
많은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적당히 운동을 하면 건강이 좋아지고 신체와 정신에 새 힘을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체 스포츠를 즐기려고 할 때 그저 아무하고나 함께 운동을 할 것입니까? 잠언 13:20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지혜로운 자와 함께 걸으면 지혜롭게 되지만, 미련한 자와 어울리면 해를 입는다.” 따라서 이 성구의 말씀대로, 성경으로 훈련된 양심에 따라 여가 활동을 신중히 선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언제 여가 활동을 즐겨야 하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집회, 야외 봉사, 개인 연구 등 신권 활동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여가 활동을 계획합니까? 아니면 여가 활동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사이사이에 신권 활동을 끼워 넣으려고 합니까? 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국과 그분의 의를 계속 첫째로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그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마태 6:33) 당신의 양심은 예수의 조언과 일치하게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당신을 인도합니까? 「파15」 9/15 2:13, 15
11월 19일 일요일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고 낙심하였느냐?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면 다시 호의를 얻지 않겠느냐? ··· 네가 [죄를]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 4:6, 7.
이 말씀은 카인에게 꼭 알맞은 때에 베풀어진 충고이자 유익한 지침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카인이 매우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그러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카인은 그 경고를 무시했으며 그 결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창세 4:11-13) 예레미야의 비서관 바룩이 지치고 낙심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그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조언하셨습니다. 바룩은 카인과 달리 여호와의 조언을 받아들였으며 그 덕분에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45:2-5)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징계하신다. 사실 그분은 아들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채찍질하신다.” (히브리 12:6) 하지만 징계는 벌을 주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징계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충실한 종들이 극심한 시련을 겪으면서 징계와 훈련을 받은 많은 예가 나옵니다. 「파15」 9/15 4:12, 13
11월 20일 월요일
당신의 종들은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의 이름 때문에 ··· 왔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명성과 그분이 ··· 하신 모든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9:9.
지혜롭게도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돕는 분이 참하느님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라합도 당시의 사건들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작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라합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어떻게 구출하셨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이스라엘 정탐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라합은 여호와께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구출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여호수아 2:9-13; 4:23, 24) 이 예와 성경에 들어 있는 다른 많은 예들은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손길을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도 그분을 알아 가면서 “마음의 눈”으로 그분의 특성과 행동을 분별할 때 그분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에베소 1:18) 틀림없이 우리도 고대와 현대에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돕는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을 본받기 원합니다. 「파15」 10/15 1:6, 7, 9
11월 21일 화요일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자매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요한 11:5.
마르다는 성경 필자가 직접 이름을 들어 예수께서 사랑하셨다고 언급한 유일한 여자입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다른 경건한 여자들에 대해서도 순수하고 비이기적인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중에는 그분의 소중한 육적 어머니 마리아와 마르다의 자매인 마리아가 있습니다. (요한 19:25-27) 그러면 복음서에서 마르다가 예수께 사랑을 받았다고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마르다를 사랑하셨던 것은 그가 후대를 잘하고 부지런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영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요한 11:21-27)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마르다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마르다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셨을 때, 주제넘게도 마르다는 자기 생각에 잘못된 상황을 예수께서 시정하시도록 그분이 해야 할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제 자매가 저 혼자 일하게 두는데도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제 자매에게 저를 거들어 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누가 10:38-42. 「파15」 10/15 3:1, 2
11월 22일 수요일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야고보 4:8.
계속 영적인 것들을 숙고한다면 진리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들뿐 아니라 야외 봉사에서 만나는 관심자들에게 새 힘을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인 예수의 대속 희생에 대해 깊이 묵상한다면, 거룩하신 아버지 여호와와 가까운 관계를 누리는 특권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 3:24) 그리스도인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로 3년간 교도소에 수감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마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묵상은 흥미진진한 탐험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영적인 것들을 더 묵상할수록 우리 하느님 여호와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니까요. 이따금 기분이 좀 우울하거나 앞날이 걱정스러울 때면 성경을 집어 들고 성구를 묵상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정말 편안해져요.” 「파15」 10/15 4:15
11월 23일 목요일
내게 이해력을 주시어 당신의 법을 준수하고 마음을 다해 지키게 해 주십시오.—시 119:34.
적절한 경우에는, 규칙을 정하거나 결정을 내린 이유를 자녀에게 말해 주십시오. 십 대 자녀가 그 문제에 대한 부모의 생각을 이해하면 기꺼이 순종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네 자녀를 키운 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십 대 자녀에게 이유를 알려 주면, 부모가 독단적으로나 기분 내키는 대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을 자녀가 이해하기 때문에 부모를 더 신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십 대 자녀는 “이지력”을 기르고 있으며 성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로마 12:1) 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십 대 자녀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현명하게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겸손을 나타내어 결정을 내린 이유를 알려 주면, 청소년 자녀는 자신이 성인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부모가 인정해 준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며, “이지력”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파15」 11/15 2:11
11월 24일 금요일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으로 친족이 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합시다.—갈라디아 6:10.
지상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여호와를 숭배하고 그분의 이름과 목적에 대해 증거합니다. 여호와의 숭배자 각자는 동료 증인들을 어떻게 여겨야 합니까? (로마 12:10)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위선이 없는 형제 애정을 갖게 되었으니, 서로 마음으로부터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또한 베드로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베드로 전서 1:22; 4:8)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는 동료 종들을 열렬히 사랑하기 때문에, 독특한 세계적인 조직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분의 법에 순종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성령 즉 그분의 활동력으로 우리를 지원해 주십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진정한 국제적 형제 관계를 이루고 놀라운 연합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한 1서 4:20, 21. 「파15」 11/15 4:8, 9
11월 25일 토요일
나라들의 모든 언어에서 나온 사람 열 명이 ···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 할 것이다.—스가랴 8:23.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목적에 대해 알려면 특정한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으십니다. (계시록 7:9, 10)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번역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긴 것 때문에 하느님께서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방해를 받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예수께서 사용하신 원어 표현이 몇 가지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 27:46; 마가 5:41; 7:34; 14:36)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예수의 소식이 그리스어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언어들로 전달되게 하셨습니다. 후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사본을 계속 베껴 써서 거룩한 기록을 보존했습니다. 그 거룩한 기록은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기원 4세기와 5세기에 걸쳐 살았던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는 당시 예수의 가르침이 시리아인, 이집트인, 인도인, 페르시아인, 에티오피아인과 수없이 많은 다른 민족의 언어들로 번역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파15」 12/15 1:10, 11
11월 26일 일요일
때에 맞게 하는 말이 어찌 그리 좋은가!—잠언 15:23.
우리가 할 말이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것일 수 있지만,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분별하지 않으면 그 말의 유익이 반감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11년 3월에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부 지역을 강타하여 여러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1만 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지역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웃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모든 기회에 성경을 사용하여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많은 사람은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모릅니다. 우리 형제들은 쓰나미가 지나간 직후에는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부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분별했습니다. 따라서 형제들은 부활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언어의 선물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위로하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그처럼 끔찍한 일이 닥치는 이유를 성경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파15」 12/15 3:7
11월 27일 월요일
순진한 자는 온갖 말을 믿어도, 슬기로운 자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히 살핀다.—잠언 14:15.
안타깝게도 이 탐욕스러운 세상에는 병에 걸린 사람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익을 많이 내려고 고가의 상품을 사용할 것을 권유하는 개인이나 업체도 있습니다. 병이 있어서 몸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거나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절박하게 찾고 있다면, 그러한 상품이 정말 솔깃할지 모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격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한 “말” 즉 제안을 들으면 각별히 조심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비타민이나 약초나 식이 요법이 누군가에게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걸 확증해 줄 사람이 많이 있나? 이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게 나한테도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을 만한 확실한 근거가 있을까? 조사를 더 해 보거나 이 분야에서 교육을 받은 자격 있는 사람에게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신명 17:6. 「파15」 12/15 4:14, 15
11월 28일 화요일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사랑이 우리에게 강권합니다.—고린도 후서 5:14.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탁월한 사랑을 깨달으면, 그 사랑이 우리에게 강권하여 즉 우리가 그 사랑에 감동되어 그분을 위해 살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들을 정신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그분의 사랑에 마음으로 감동을 느낀다면, 영혼을 다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살아가려는 열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한 열망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다시 말해 그분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르려는 마음을 갖습니다. (베드로 전서 2:21; 요한 1서 2:6) 우리는 순종을 통해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사랑을 나타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할] 것입니다.” (요한 14:21; 요한 1서 5:3) 그러므로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어떤 부면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발걸음을 잘 따르고 있는가? 어떤 부면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가?’ 이처럼 자신을 검토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방식을 따르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12:2. 「파16.01」 2:7-9
11월 29일 수요일
우리는 그분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3:2.
당신은 자신이 남들보다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하느님의 깊은 것”을 파고들어 가기를 좋아합니까? (고린도 전서 2:10) 여호와께서 당신이 하는 봉사를 특별히 축복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까?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는 불타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까? 여호와께서 당신의 삶에 직접 개입하신다는 증거를 보았습니까? 만일 당신이 이 질문들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생각이나 느낌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은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힘을 발휘합니다. 사실, 자신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당신이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파16.01」 3:14, 15
11월 30일 목요일
내가 ··· 그분 앞에서 언제나 즐거워했다.—잠언 8:30.
예수께서는 아버지 곁에서 즐겁게 일하면서, 자신이 해낸 일과 여호와께서 자신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에서 큰 기쁨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께서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이 모두 행복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20:35) 우리는 진리를 받아들였을 때 기쁨을 느꼈고,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 주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경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때,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하느님과 귀중한 성경 진리를 배우고 그에 대해 고마워하며 기쁨에 넘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생각만이 아니라 생활 방식도 변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감동됩니다. 그러면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전파 활동은 하느님과 화해하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길을 열어 줍니다. (고린도 후서 5:20)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줄 삶을 살도록 사람들을 돕는 일보다 더 기쁘고 만족스러운 일이 있겠습니까? 「파16.01」 5: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