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월 1일 금요일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분과 친밀한 우정을 나눕니다.—시 25:14.
성경은 세 차례나 아브라함을 하느님의 벗이라고 부릅니다. (역대기하 20:7; 이사야 41:8; 야고보 2:23) 사실, 충실한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하느님의 벗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제껏 여호와의 친구가 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을 믿었으며 그분과 가까운 벗이 된 충실한 남녀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썼는데, 그들 모두는 분명 하느님의 친구였습니다. (히브리 12:1) 그중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친구가 되는 놀라운 영예를 누렸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본들을 계속 따라야겠습니다. (히브리 6:11, 12) 그렇게 한다면 영원히 여호와와 친한 친구가 되는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파16.02」 2:1, 2, 19
12월 2일 토요일
내가 나의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습니다.]—요한 6:38.
친구가 여러분에게 자동차를 선물로 준다고 가정해 보세요. 자동차 소유권을 이전해 주면서 “자동차 키는 내가 갖고 있을게. 운전도 네가 아니라 내가 할 거야”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느낄 것 같나요? 이제 어떤 사람이 헌신하여 “제 삶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호와의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마땅히 무엇을 기대하실지 생각해 보세요. 만일 그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몰래 데이트를 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한다면 그분이 어떻게 느끼실까요? 영혼을 다해 봉사하거나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일자리를 구한다면 어떤 느낌이 드실까요? 그것은 자동차 키를 자기가 계속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여호와께 헌신하는 사람은 사실상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 삶은 저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것과 제가 원하는 게 다를 경우 언제나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오늘의 성구와 같이 말씀하셨던 예수의 생각을 본받는 것입니다. 「파16.03」 1:16, 17
12월 3일 일요일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열왕기하 2:2.
거의 3000년 전에, 예언자 엘리야는 젊은 엘리사에게 자신의 수종이 되라고 제안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제안을 신속히 받아들였고 궂은 일을 하면서 연장자인 엘리야를 충실하게 섬겼습니다. (열왕기하 3:11) 약 6년간 훈련을 받고 나서, 엘리사는 이스라엘에서 엘리야의 활동이 이제 곧 끝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잘 훈련받은 동료 엘리사에게 이제 자기를 그만 따라오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신의 조언자와 함께 있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신이 젊은 형제라면 어떻게 엘리사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할 일이 주어지면 궂은 일이라도 신속히 받아들이십시오. 조언해 주는 사람을 벗으로 여기고, 당신을 위한 그의 노력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무엇보다도, 어떤 일이 주어지든 충실하게 수행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당신이 충실하고 믿음직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회중의 더 큰 책임을 맡기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101:6; 디모데 후서 2:2. 「파15」 4/15 2:13, 14
12월 4일 월요일
손해가 되더라도 약속한 것은 지키는 사람.—시 15:4.
사울은 요나단에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라고 권했습니다. (사무엘상 20:31)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던 요나단은 왕권을 차지하려고 이기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한 것”을 어기지 않았으며, 우리도 약속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사업 계약을 이행하기가 예상보다 어려워진다 해도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심과 성경 말씀에 대한 존중심 때문에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결혼 생활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어질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반드시 배우자에게 충성을 지킬 것입니다. (말라기 2:13-16) 또한 여호와의 백성에게, 심지어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에게도 충성스럽게 행동함으로 여호와께 충성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여호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한다면,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잠언 27:11) 우리가 여호와께 계속 충성을 다한다면, 그분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시고 결국 그들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일을 하신다는 점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파16.02」 3:16, 17
12월 5일 화요일
그분을 계속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행복하다.—이사야 30:18.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잘 아십니다. (시 103:14)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시련을 인내할 것을 기대하지 않으시며 아버지로서 자상한 도움을 베푸십니다. 물론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고통당하는 일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빠져나갈 길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0:13)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정확히 아신다고 확신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했는데도 상황이 즉시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를 위해 행동할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아시는 여호와를 기다려야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계시며, 너희에게 자비를 보이려고 일어서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공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파15」 4/15 4:8, 9
12월 6일 수요일
과거에 하느님께 희망을 두었던 거룩한 여자들도 그렇게 자기를 단장하고 남편에게 복종했습니다.—베드로 전서 3:5.
가족 숭배 시간에는 영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되므로, 가족이 연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가족이 함께 야외 봉사를 위해 연습하면 효과적으로 전파할 준비를 더 잘 갖출 수 있습니다. 또한 가족 성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자연히 서로 더 가까워집니다. 모두가 같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데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부부들은 서로 협력하여 여호와께 찬양을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부부가 모두 여호와를 충실히 섬긴다면, 그 결과 두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엘가나와 한나는 모두 배우자에게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창세 26:8; 사무엘상 1:5, 8) 그렇게 하면 배우자와 더 친밀해지고 하늘의 아버지와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전도 4:12. 「파16.03」 3:12, 13
12월 7일 목요일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사탄을] 대적하십시오.—베드로 전서 5:9.
사탄은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다른 양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요한 10:16) 마귀의 목표는 자기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여호와의 종들을 가능한 한 많이 삼키는 것입니다. (계시록 12:9, 12) 우리가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도망할 것입니다.” (야고보 4:7) 많은 사람은 사탄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탄과 악귀들은 소설이나 공포 영화나 비디오 게임에 나오는 가공의 존재일 뿐입니다. 그들은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악한 영들의 존재를 믿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사탄과 그를 따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리들을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존재로 치부한다고 해서 사탄이 기분 나빠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에게는 그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4:4) 사실, 사탄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한 가지가 바로 영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파15」 5/15 2:1, 2
12월 8일 금요일
[모세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큰 부로 여겼[습니다.] 그는 상을 받을 것을 열렬히 바라보았습니다.—히브리 11:26.
모세는 친부모에게서 여호와에 대해 배우면서 그분이 노예살이를 하는 히브리 사람들을 해방시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실 목적이 있으심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창세 13:14, 15; 출애굽 2:5-10)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그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커져 갔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모세도 여호와께서 인류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때를 그려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욥 14:14, 15; 히브리 11:17-19) 따라서 모세가 히브리 사람들과 모든 인류에게 동정심을 가지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믿음과 사랑은 평생 동안 모세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신명 6:4, 5) 모세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고 아마도 밝은 미래를 자주 그려 보았기 때문에, 파라오가 모세를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에도 용기 있게 맞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출애굽 10:28, 29. 「파15」 5/15 3:11-13
12월 9일 토요일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갈릴리의 가나에서 열린 결혼 잔치에서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아마 잔치에 온 손님이 예상보다 많았을지 모릅니다. 이유가 어떠했든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손님 중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임을 알고 있었으며, 분명 자신의 아들에 관해 예언된 모든 약속을 여러 해 동안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누가 1:30-32; 2:52) 마리아는 예수께서 아직 기적을 행하신 적은 없어도 그렇게 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했습니까? 분명한 점은 가나에서 마리아와 예수가 신혼부부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그들을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사회에서 후대가 매우 중요한 덕목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기적으로 약 380리터의 물을 “좋은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요한 2:6-11) 예수께서는 이 기적을 행할 의무가 있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셨으며 관대함을 나타내어 하늘의 아버지를 본받으신 것입니다. 「파15」 6/15 1:3
12월 10일 일요일
주여, 주께서 이스라엘에 왕국을 회복시키실 때가 지금입니까?—사도 1:6.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사도들은 그분께 오늘의 성구에서와 같이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왕국이 언제 통치를 시작할지 그들이 아직 알 때가 아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증거 활동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1:7, 8)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이 오기를 고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사도 시대 이래로 그리스도인들은 왕국이 오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하늘 왕국에서 통치를 시작할 때가 가까워지자, 여호와께서는 사건들이 일어날 시기를 자신의 백성이 이해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1876년에, 찰스 테이즈 러셀이 기술한 기사가 「사경」(Bible Examiner)이라는 잡지에 실렸습니다. “이방인의 때: 언제 끝나는가?”라는 그 기사는 1914년을 의미심장한 해로 지적했습니다. 그 기사에서는 다니엘의 예언에 나오는 “일곱 때”를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라들의 정해진 때”와 연관 지었습니다.—다니엘 4:16; 누가 21:24. 「파15」 6/15 4:11, 12
12월 11일 월요일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요한 11:35.
예수께서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친구인 나사로의 죽음 때문에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감정이 북받쳐 “신음하고 괴로워하셨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이었는데도 그렇게 느끼셨습니다. (요한 11:33-36) 예수께서는 자신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나사로와 그의 가족에게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여 친구를 다시 살리심으로 참으로 큰 동정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요한 11:43, 44) 성경은 예수가 “[창조주]의 본성의 정확한 표상”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 1:3) 따라서 예수의 기적들은 질병과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없애기를 원하시는 그분과 아버지의 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그분들은 성경에 기록된 몇 차례의 부활에 만족하지 않으시며 그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념 무덤에 있는 모든 사람이 ··· 나올 때가 오고 있습니다.”—요한 5:28, 29. 「파15」 6/15 2:13, 14
12월 12일 화요일
그들이 당신의 크신 이름을 찬양하게 하십시오.—시 99:3.
일부 종교인들은 이 땅을 떠나서 하늘에 간 다음에야 하느님을 찬양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은 모두 지금 바로 이 땅에서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를 찬양함으로 시편 99:1-3, 5에 묘사된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의 본을 따릅니다. 시편 99편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은 자기 시대에 있었던 참숭배를 위한 마련을 온전히 지원했습니다. (시 99:6, 7) 오늘날,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은 하늘에서 예수와 함께 제사장으로 섬기기 전에 영적 성전의 지상 뜰에서 충실하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다른 양들”은 충성스럽게 그들을 지원합니다. (요한 10:16) 그 두 집단은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하느님의 발판인 이 땅에서 연합하여 여호와를 숭배합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개인적으로 ‘나는 순결한 숭배를 위한 여호와의 마련을 온전히 지원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파15」 7/15 1:4, 5
12월 13일 수요일
계속 기대하여라!—하박국 2:3.
오랫동안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영감받은 예언들이 성취되기를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황폐된 유다를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분을 계속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행복하다.” (이사야 30:18) 미가도 하느님의 고대 백성에 대해 예언하면서, 개인적으로 “나는 늘 여호와를 바라보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미가 7:7) 또한 여러 세기 동안 하느님의 종들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기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누가 3:15; 베드로 전서 1:10-12) 오늘날 하느님의 종들도 계속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이 지금도 성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왕국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악한 자들을 멸하고 자신의 백성을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불안정한 세상에서 구출하심으로 인류의 고난을 곧 끝내실 것입니다. (요한 1서 5:19) 따라서 우리는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이 세상 제도가 끝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온전히 의식해야 하겠습니다. 「파15」 8/15 2:1, 2
12월 14일 목요일
당신의 집에 대한 열심이 나를 삼킬 것입니다.—요한 2:17.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장막을 세웠습니다. (출애굽 25:8) 훗날 그들은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열왕기상 8:27, 29)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뒤로는 회당에서 정기적으로 모였습니다. (마가 6:2; 요한 18:20; 사도 15:21)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회중 성원들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사도 12:12; 고린도 전서 16:19)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은 전 세계의 수많은 왕국회관에 모여서 교육을 받고 숭배를 드립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있던 여호와의 성전을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에 한 복음서 필자는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예언을 예수에게 적용했습니다. (시 69:9) 물론 어떤 왕국회관도 예루살렘 성전과 동일한 의미에서 “여호와의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역대기하 5:13; 33:4) 하지만 성경에 들어 있는 원칙들을 보면 우리가 현대의 숭배 장소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그 장소들에 어떻게 존중심을 나타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파15」 7/15 4:1, 2
12월 15일 금요일
사랑을 입으십시오.—골로새 3:14.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 중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지금 기꺼이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때 그렇게 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골로새 3:12, 13) 신세계에서 산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것을 원할 때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때도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여호와의 사랑에 찬 주권에 복종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고 만족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가르침에 따라 지금 길러 나가고 있는 특성들을 신세계에서도 실제로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신세계에서 살게 될 방식에 따라 사는 법을 배움으로, 영원히 나타내야 할 특성들을 기를 수 있습니다. 또한 “장차 올 세상”에 대한 믿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히브리 2:5; 11:1) 그에 더해, 이 땅이 의로 가득 찰 때를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영원히 살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파15」 8/15 3:11, 12
12월 16일 토요일
[예수] 안에서 계속 걸으십시오.—골로새 2:6.
시장에서 잘 익은 과일들을 살펴보면, 모든 과일이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잘 익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장성한 그리스도인들도 국적, 배경, 건강 상태, 나이, 경험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성품이나 문화도 다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자라 가는 사람들은 모두 장성의 표가 되는 특성들을 길러 나갑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여호와의 장성한 종은 예수의 본에 따라 생활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남겨 “자신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르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2:21)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마음과 영혼과 정신을 다해 여호와를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태 22:37-39)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그 교훈과 일치하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생활 방식을 통해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드러내며 타인을 위해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나타냅니다. 「파15」 9/15 1:3-5
12월 17일 일요일
우리는 ··· 진리를 나타내어,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 우리 자신을 추천합니다.—고린도 후서 4:2.
선한 양심은 단지 그릇된 일을 경고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양심은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고무합니다. 그러한 선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호별 방문 봉사에 참여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공식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양심의 작용에 따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나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9:16) 우리가 바울을 본받는다면, 우리의 양심의 소리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좋은 소식을 전파함으로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그렇습니다. 양심은 아주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배운 점들을 묵상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함으로 양심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양심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파15」 9/15 2:16, 18
12월 18일 월요일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책망하[신다.]—잠언 3:12.
성경에는 요셉과 모세와 다윗만큼 생애에 대한 기록이 생동감 있고 자세하게 나오는 인물이 거의 없습니다. 시련을 겪는 내내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하셨고 나중에 그들을 크게 사용하신 기록을 읽어 보면, 그분이 자신의 종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더욱더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한편, 여호와의 징계는 그분의 사랑의 또 다른 부면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여호와께 징계를 받을 때 반응을 보여 회개하면 “그분은 너그러이 용서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55:7) 무슨 의미입니까? 다윗은 여호와의 용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분은 너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너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며 네 생명을 구덩이에서 되찾아 주시고 충성스러운 사랑과 자비로 네게 면류관을 씌우신다.” (시 103:3, 4) 우리는 여호와의 조언과 징계가 우리에 대한 여호와의 무한한 사랑의 표현임을 기억하면서, 그러한 조언과 징계를 언제나 잘 분별하고 그에 신속히 반응을 보여야 하겠습니다.—시 30:5. 「파15」 9/15 4:13, 14
12월 19일 화요일
마리아[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계속 듣고 있었다.—누가 10:39.
마르다는 예수를 위해 풍성한 식탁을 차릴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마리아에게 짜증이 났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가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친절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 마르다, 당신은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런 다음, 음식을 한 가지만 차려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마리아에게 주의를 돌리시고 그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10:38-42) 마리아는 그 특별한 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는 곧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예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훌륭한 영적 양식을 얻고 그분께 칭찬을 들은 것은 결코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60여 년 후에 사도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그의 자매를 ··· 사랑하셨다.” (요한 11:5) 이 영감받은 말씀은 마르다가 예수의 따뜻한 조언을 마음에 새겼고 평생 동안 여호와를 충실히 섬기려고 노력했음을 알려 줍니다. 「파15」 10/15 3:3, 4
12월 20일 수요일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은] 하느님의 것[입니다.]—고린도 후서 4:7.
오늘날 여호와께서 사람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신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많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영적인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시 53:2) 앨런은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호별 봉사를 하다가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는 앨런을 보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앨런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그날 아침에 그 여자는 증인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기도를 그토록 빨리 들어주셔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1년도 안 되어 여호와께 헌신했습니다. 많은 하느님의 종들이 흡연, 마약 사용, 음란물을 보는 것과 같은 중독성 있는 습관을 이겨 내면서 그분의 도움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그런 습관을 극복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자 그분이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주셨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이겨 냈습니다.—시 37:23, 24. 「파15」 10/15 1:10, 11
12월 21일 목요일
시간을 잘 활용하십시오.—에베소 5:16.
일부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읽고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점심시간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른 저녁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아침에도 읽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느 시간대에 읽든, 우리는 “밤낮으로” 즉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1:8)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기 위해 덜 중요한 일들로부터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배운 것을 적용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은 누구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약속합니다. (시 1:1-3)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행복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11:28) 그에 더해 가장 중요한 점으로, 날마다 영적인 것들을 묵상하면 우리의 놀라운 두뇌를 만드신 위대한 창조주께 영예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분은 우리가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의로운 신세계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야고보 1:25; 계시록 1:3. 「파15」 10/15 4:17, 18
12월 22일 금요일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모시고 가서 이렇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주여,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십시오. 결코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마태 16:22.
사도 베드로는 좋은 의도로 예수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도록 강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잘못된 생각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돕기 위해 예수께서는 직접적인 충고를 베푸셨으며, 몸을 사리는 태도에 어떤 결과가 따르고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보이면 어떤 축복을 받을 것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 16:21-27) 베드로는 그 일을 통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베드로 전서 2:20, 21) 십 대 자녀가 어떤 면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통찰력을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십시오. (시 32:8) 예를 들어, 무엇을 보면 자녀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아마 기쁨을 잃어 가거나 동료 형제 자매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거나 숨기는 것이 많아질지 모릅니다. 그런 징후가 있다고 해서 자녀가 심각한 죄를 짓고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고 성급하게 단정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그러한 징후를 무시하거나 십 대 자녀가 혼자 있으려고만 하는 것을 누구나 거치는 과정으로 가볍게 넘기지도 마십시오. 「파15」 11/15 2:12, 13
12월 23일 토요일
동정심 어린 부드러운 애정, 친절, 겸손, 온화, 참을성을 입으십시오. ···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한 연합의 띠입니다.—골로새 3:12, 14.
여호와의 종들의 진정한 사랑과 연합은 그들이 참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표가 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 13:34, 35) 사도 요한도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이 사실로 분명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계속 행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에게서 나온 사람이 아니며,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어 온 소식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1서 3:10, 11) 탁월한 연합을 누리게 해 주는 사랑은 여호와의 증인이 그리스도의 참제자들이라는 표가 되며,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사용하여 왕국의 좋은 소식을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할 목적을 이루고 계십니다.—마태 24:14. 「파15」 11/15 4:10, 11
12월 24일 일요일
적절한 때에 한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 같다.—잠언 25:11.
지역마다 문화와 종교적 신념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처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좋은 의도로 말했는데도 그 말에 우리의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에게 뭔가 말하지 않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그 문제가 심각한 것인지 시간을 내어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꼭 말해야 한다면, 화가 나서 다소 격하게 말할 가능성이 있을 때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잠언 15:28)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진리에 대해 말할 경우에도 적절한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여호와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라지만 참을성을 나타내고 상황을 잘 판단해야 합니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말을 하면 마음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파15」 12/15 3:6, 8, 9
12월 25일 월요일
그 과분한 친절은 우리를 교육하여 ··· 이 세상 제도에서 건전한 정신[으로] 살게 합니다.—디도 2:12.
진단 방법이나 치료법에 관한 설명이 특이하거나 석연치 않아 보인다면 “건전한 정신” 즉 좋은 판단력을 나타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요법을 시술하거나 홍보하는 사람은 그 요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 요법은 잘 알려진 사실들과 일치하며, 많은 전문가가 그 효과를 인정합니까? (잠언 22:29) 아니면 그 요법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주로 감정에 호소합니까? 그들은 치료법이나 약재가 아주 먼 오지에서 발견되었거나 이용되던 것이라서 아직 의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한 주장이 믿을 만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까? 이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일부 진단 도구와 요법은 신비의 물질이나 힘을 사용한다고 설명할지 모릅니다. 그런 경우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주술을 행하는 것”과 영매술에 대해 경고하시기 때문입니다.—이사야 1:13; 신명 18:10-12. 「파15」 12/15 4:16
12월 26일 화요일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 왕국에서는 작은 자라도 그 사람보다 더 큽니다.—마태 11:11.
성경을 보면, 강한 믿음이 있었고 성령의 작용을 크게 경험했지만 하늘에서 살 희망은 없었던 사람들의 예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 중에 침례자 요한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을 크게 칭찬하셨지만 그가 하늘 왕국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도 성령의 작용을 경험했습니다. (사무엘상 16:13) 그는 영적으로 아주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고 영감을 받아 성경의 일부를 쓰기도 했습니다. (마가 12:36) 하지만 기원 33년 오순절에 베드로는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2:34) 성령이 그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작용했지만 그들이 하늘 생명을 얻도록 선택되었다는 특별한 증언을 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면으로인가 자격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여호와께서 그들을 낙원이 된 땅에서 살도록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요한 5:28, 29; 사도 24:15. 「파16.01」 3:16
12월 27일 수요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요한 10:30.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그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의 성품과 특성을 잘 알게 됩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 그 일을 어떻게 이루려고 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여호와와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서로에 대해 끊을 수 없이 강한 사랑과 애정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분들은 놀라운 연합을 이루며 서로 늘 온전히 협력하여 함께 일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제자들을 지켜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1) 우리는 하느님의 표준을 따르고 전파 활동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끄는 그분의 특성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 왜 지혜로운 일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그분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야고보 4:8) 또한 우리는 영적인 형제 자매들과도 가까워집니다. 그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비슷한 기쁨을 누리며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16.01」 5:9, 10
12월 28일 목요일
너도 동서와 함께 돌아가거라.—룻 1:15.
나오미는 자기 고향인 이스라엘로 계속 가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있는 룻은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룻은 모압에 있는 자기 민족에게 돌아갈 수도 있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룻 1:1-8, 14) 룻은 모압에 있는 자기 가족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친어머니와 친족들이 젊은 과부인 자신을 맞아들여 돌봐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모압은 룻의 고향이었습니다. 룻은 모압의 문화와 언어에 친숙했으며 모압 민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베들레헴에서 그러한 이점들을 누리며 살게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사실 나오미는 그에게 모압에서 살라고 권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남편을 얻어 주거나 집을 마련해 주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룻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오르바는 “자기 백성과 신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룻 1:9-15) 룻도 자기 민족의 거짓 신들에게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파16.02」 2:4, 5
12월 29일 금요일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단지 공의를 행하고 충성을 소중히 여기며 겸허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한밤중에 다윗과 아비새는 잠을 자고 있는 3000명의 군인들 사이를 숨죽여 걸어갑니다. 진영 한가운데서 이 두 사람은 깊이 잠든 사울 왕을 발견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찾아서 죽이려고 유다 광야까지 왔습니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가 창으로 [사울을] 단번에 땅에 박게 해 주십시오. 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뜻밖에도 다윗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를 해치지 마시오.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치고도 결백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소?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오!” (사무엘상 26:8-12) 다윗은 하느님께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을 해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울은 하느님께서 기름부으신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종들은 그분이 임명하신 사람들을 존중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 모두에게 “충성을 소중히 여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파16.02」 4:1, 2
12월 30일 토요일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의 기쁨입니다.—시 40:8.
청소년 여러분, 침례받을 생각을 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예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침례는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침례는 여러분이 헌신했음을, 다시 말해 삶에서 여호와의 뜻을 다른 모든 것보다 앞자리에 두고 그분을 영원히 섬기겠다고 엄숙히 약속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례받을 자격을 갖추고, 침례받기를 정말 원하고, 헌신의 의미를 이해했을 때에만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침례받을 준비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는 여러분은 침례를 받고 싶지만 부모님은 여러분이 좀 더 시간을 갖고 그리스도인 생활을 더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경우이든 실망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 시간을 이용해서 잘 발전한다면 머지않아 여러분도 침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파16.03」 2:1, 2
12월 31일 일요일
믿지 않는 사람과 맞지 않는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고린도 후서 6:14.
현재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진리를 배웠으며 배우자가 증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의 조언을 적용하는 것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 원칙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한 최대로 협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떤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오늘날 사탄이 가족을 공격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종들 모두가 결혼 생활에서 계속 서로 잘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혼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든, 배우자와의 관계를 더 튼튼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 면에서 회중의 젊은 성원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젊은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가족 숭배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젊은 부부는 나이가 더 많은 부부와 함께하면서, 결혼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든 애정과 화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디도 2:3-7. 「파16.03」 3: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