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월 1일 월요일
그들은 ···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크게 놀[랐다.]—누가 4:22.
우리는 은혜롭게 말씀하신 예수를 본받아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해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 힘들여 찾아온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마가 6:34) 그분은 모욕을 당할 때에도 거친 말로 응수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2:23) 우리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부드럽고 사려 깊게 말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직선적으로 말해도 된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가족이나 회중 내의 친한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불친절하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누가 더 큰지를 놓고 반복해서 논쟁을 벌였을 때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의 예를 들어 친절한 말로 그들을 시정하셨습니다. (마가 9:33-37) 장로들은 다른 사람에게 “온화한 영으로” 조언함으로 예수를 본받을 수 있습니다.—갈라디아 6:1. 「파15」 12/15 3:15, 16
5월 2일 화요일
형제 사랑을 계속 나타내십시오.—히브리 13:1.
형제 사랑을 계속 나타내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서로 형제 사랑을 나타낼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 1서 4:7, 20, 21) 또 다른 이유는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힘든 시기에는 특히 그러합니다.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그들 가운데 일부가 곧 자신들의 집과 소유물을 뒤로하고 떠나야 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때가 매우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마가 13:14-18; 누가 21:21-23) 따라서 그 그리스도인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로마 12:9) 머지않아 역사상 가장 큰 환난의 파괴적인 바람이 놓일 것입니다. (마가 13:19; 계시록 7:1-3) 그러므로 단지 형제 자매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사랑과 훌륭한 일을 고무”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히브리 10:24, 25. 「파16.01」 1:6-8
5월 3일 수요일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했다.—사도 2:4.
때는 기원 33년 오순절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한 위층 방에서 약 120명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꾸준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1:13-15) 그들에게 곧 일어날 일로 인해 예언자 요엘이 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요엘 2:28-32; 사도 2:16-21) 그 위층 방에 모여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사도 1:8)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놀라운 일에 대해 예언 즉 증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많은 무리가 모여들자, 사도 베드로는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의 중요한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청중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각자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날 모두 합해 약 3000명이 그 권고에 따라 침례를 받고 약속된 성령을 받았습니다.—사도 2:37, 38, 41. 「파16.01」 3:1-3
5월 4일 목요일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빵을 먹거나 주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1:27.
이 성구에서 사도 바울의 말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이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표상물을 취한다면, 표상물을 합당하게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 6:4-6; 10:26-29) 그 경고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상을 붙잡지 못했음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위로 부르시는 상을 얻기 위해 목표”를 계속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 3:13-16) 바울은 영감을 받아,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으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과 온화함을 온전히 나타내고 참을성을 보이고 사랑으로 서로 참으며 연합시키는 띠인 평화 가운데 영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십시오.” (에베소 4:1-3) 여호와의 영은 교만이 아니라 겸손을 촉진합니다.—골로새 3:12. 「파16.01」 4:5, 6
5월 5일 금요일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창세 22:1.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는 한 연로한 남자를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그는 일생에 가장 힘든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행이 그처럼 힘든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125세 정도 되었겠지만, 여전히 활력이 넘칩니다. 그를 따라가는 아들 이삭은 아마 나이가 25세일 것입니다. 그는 땔감으로 쓸 나무를 지고 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칼과 불을 붙일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희생으로 바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22:1-8) 당시 아브라함은 일생에 가장 큰 믿음의 시험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저 맹목적으로 하느님께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영적 시력이 있었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믿음의 눈으로, 하늘의 아버지 여호와께서 충실한 종들에게 영구적으로 해가 될 일은 결코 시키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순종한다면 하느님이 자신과 사랑하는 아들을 축복하실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기초는 무엇이었습니까? 지식과 경험이었습니다. 「파16.02」 1:3, 4
5월 6일 토요일
저는 여호와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누가 1:38.
마리아는 하느님의 독생자를 임신하고 낳아 키우게 될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받은 놀라운 특권만을 생각하다 보면, 그가 얼마나 걱정이 많았을지는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천사인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고도 기적으로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의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가서 마리아가 임신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족과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마리아는 약혼자인 요셉에 대해서도 걱정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임신하기는 했지만 요셉에게 불충실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시킬 것입니까? 게다가, 가장 높으신 분의 독생자를 낳고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정말 막중한 책임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마리아가 머릿속으로 무슨 걱정을 했을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리아가 오늘의 성구에서와 같이 대답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누가 1:26-37. 「파16.02」 2:13, 14
5월 7일 일요일
거기에 아렉 사람 후새가 다윗을 만나려고 와 있었는데, 그의 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사무엘하 15:32.
후새는 하느님께 충성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 했습니다. 후새는 다윗 왕의 충성스러운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많은 사람의 환심을 사고 예루살렘과 왕위를 차지하려고 했을 때, 후새는 충성심을 시험받았습니다. (사무엘하 15:13; 16:15)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한 상황에서 후새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마음을 바꿔 압살롬에게 충성을 나타낼 것입니까, 아니면 목숨을 부지하려고 도망하는 연로한 왕을 따를 것입니까? 후새는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왕에게 충성하기로 결심하고 올리브 산에서 다윗을 만났습니다. (사무엘하 15:30) 다윗은 후새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압살롬 편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아히도벨의 조언을 좌절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후새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여호와께 충성을 다하고 다윗이 부탁한 대로 했습니다. 후새가 용기를 내어 압살롬에게 조언한 결과, 다윗의 기도와 일치하게 아히도벨의 조언이 좌절되었습니다.—사무엘하 15:31; 17:14. 「파16.02」 4:15, 16
5월 8일 월요일
당신이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의 음성을 계속 듣기 때문에, 이 모든 축복이 당신에게 임하고 당신을 따라잡을 것입니다.—신명 28:2.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율법에 담긴 지침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잠시 ‘멈추어서’ 율법에 담긴 원칙들을 ‘살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거룩하신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하는 일에서 신뢰할 만한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율법이 성경에 기록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법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그 법에 담긴 원칙을 따르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더 높은 도덕 표준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여자를 계속 바라보고 정욕을 품는 사람은 마음으로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간음하지 않는 것에 더해 성적 부도덕을 범하려는 욕망도 물리쳐야 합니다.—마태 5:27, 28. 「파16.03」 4:6, 8
5월 9일 화요일
우리를 재판할 왕을 임명해 주십시오.—사무엘상 8:5.
사무엘이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기를 무척 꺼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백성의 말을 들어주라고 그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사무엘상 8:7, 9, 22) 그렇지만 사무엘은 자신을 대신할 사람에 대한 반감이나 분노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시자, 사무엘은 의무감 때문에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와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사무엘처럼 오늘날 경험 많은 장로들도 훈련받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나타냅니다. (베드로 전서 5:2) 그런 장로들은 회중에서 누리는 일부 특권들을 훈련받는 사람들에게 넘기게 될까 봐 두려워서 훈련하기를 주저하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이 넓은 조언자들은 기꺼이 배우려는 사람들을 경쟁자로가 아니라 “동료 일꾼”이자 회중의 소중한 선물로 여깁니다. (고린도 후서 1:24; 히브리 13:16) 그처럼 비이기적인 조언자들은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하여 회중에 유익을 주는 것을 보면서 매우 큰 만족을 누립니다!—사도 20:35. 「파15」 4/15 1:16, 17
5월 10일 수요일
내가 너를 적절한 정도로 징계[할] 것이다.—예레미야 30:11.
아사랴 왕은 “여호와의 눈에 옳은 일을 계속 행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 왕을 치셔서 그는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로 지냈습니다.” (열왕기하 15:1-5)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기록에서는 이유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거나 여호와께서 정당한 이유 없이 아사랴를 처벌하셨는지 의문을 품을 것입니까? 우리가 여호와께서 행동하시는 방식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사랴 왕의 또 다른 이름은 웃시야였습니다. (열왕기하 15:7, 32) 웃시야 왕에 대해 기록한 역대기하 26:3-5, 16-21을 보면, 그가 한동안 여호와의 눈에 옳은 일을 행했지만 나중에 “마음이 거만해져서 파멸을 자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제넘게도 자신의 권한을 넘어가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81명의 제사장이 그를 가로막고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웃시야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는 제사장들에게 “격노”함으로 자신이 얼마나 교만해져 있었는지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나병으로 치신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파15」 4/15 3:8, 9
5월 11일 목요일
큰 용이 내던져졌는데, 그는 원래의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로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자이다.—계시록 12:9.
오늘의 성구에서는 사탄을 가리켜 “중상자”를 의미하는 마귀라고 부릅니다. 이 칭호는 사탄이 여호와를 거짓말쟁이라고 함으로 그분을 모독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원래의 뱀”이라는 말은 사탄이 에덴에서 뱀을 사용해 하와를 속였던 비극적인 날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서운 괴물을 연상시키는 “큰 용”이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목적을 방해하고 그분의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악랄한 사탄에게 잘 어울리는 칭호입니다. 분명 사탄은 우리가 충절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베드로 전서 5:8) 하느님의 종들 가운데 하나가 심각한 죄를 저지를 때 사탄이 기뻐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는 자신이 거둔 그러한 승리를 이용해 여호와를 조롱할 것입니다.—잠언 27:11. 「파15」 5/15 1:3, 4, 10
5월 12일 금요일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해로운 일의 뿌리입니다.—디모데 전서 6:10.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안락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이 아담과 하와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주신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 2:9) 하지만 사탄은 “재물의 기만적인 힘”으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려 합니다. (마태 13:22) 많은 사람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고 물질적 소유물이 성공의 척도라고 믿습니다. 그런 생각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며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즉 여호와와 누리는 벗 관계를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마태 6:24) 우리가 재물을 주인으로 섬긴다면 여호와를 섬기기를 중단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사탄이 바라는 일입니다! 돈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소유물을 결코 여호와와의 벗 관계보다 앞자리에 두지 마십시오.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물질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디모데 전서 6:6-10. 「파15」 5/15 2:12
5월 13일 토요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고린도 전서 12:26.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기가 언제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은 우리가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상이나 질병이나 노화 때문에 신체적인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울증, 공황 발작, 학대의 후유증 때문에 감정적인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겪는데, 그중에는 우리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어느 정도라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사람의 말을 주의 깊이 잘 들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필요에 따라 행동하여 여호와의 사랑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마다 필요가 다르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격려와 얼마의 실용적인 도움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로마 12:15; 베드로 전서 3:8. 「파15」 5/15 4:6, 7
5월 14일 일요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고린도 전서 1:24.
그리스도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므로, 우리는 전능한 하느님께서 자연의 힘을 완벽하게 제어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홍수 전에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7일이 지나면 내가 40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리겠다.” (창세 7:4) 또한 출애굽기 14:21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 강한 동풍으로 바다를 물러가게 하셨다.” 요나 1:4에도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다에 세찬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사나운 폭풍이 일어 배가 부서질 지경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자연의 힘을 제어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격려가 됩니다. 분명히 우리는 지구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천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그 누구도 자연재해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즐겁습니다! (계시록 21:3, 4) 우리는 천년 통치 중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자연의 힘을 제어할 능력을 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파15」 6/15 1:15, 16
5월 15일 월요일
[부도덕한] 여자를 멀리하고 그 집 입구에 가까이 가지 마라.—잠언 5:8.
이 조언을 무시하는 것의 위험성이 잠언 7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잠언 7장을 보면, 한 청년이 부도덕한 여자의 집 근처를 배회합니다. 그들은 성적 부도덕을 저지릅니다. 청년이 그 여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잠언 7:6-27) 우리도 그처럼 건전한 판단력이 부족하여 그릇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상황에 들어서게 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밤이 되면 일부 TV 채널에서 낮 시간보다 더 부도덕한 프로를 방송할지 모릅니다. 그런 시간대에 우리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부 사람들은 생각 없이 인터넷 링크를 이것저것 클릭해 볼지 모릅니다. 혹은 음란물을 보도록 유도하거나 음란 서비스 광고가 나오는 채팅방과 웹사이트에 자주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부적절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을 접하게 되어 순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경계심이 느슨해지지 않겠습니까? 「파15」 6/15 3:8, 9
5월 16일 화요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마태 6:12.
예수께서 이 기도에서는 “우리의 빚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시고 나중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 6:12, 각주; 누가 11:4) 60여 년 전에 「파수대」지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잘 설명했습니다. “하느님의 법을 범하는 죄를 저지르면 그분께 빚을 지게 된다. ··· 하느님께서는 죄에 대한 대가로 우리의 생명을 요구하고 앗아 가실 수 있다. ··· 그분은 우리와의 화목한 관계를 모두 끊으시어 우리에게서 자신의 평화를 거두어 가실 수 있다. ··· 우리는 순종을 통해 그분께 사랑을 나타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 그분께 드려야 할 사랑의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 죄는 하느님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 1서 5:3) 우리가 날마다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점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없애실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 즉 예수의 대속 희생의 가치를 강조해 줍니다. 대속의 값은 거의 2000년 전에 지불되었지만, 우리는 대속을 오늘 받은 선물처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대속하는 값은 너무 비싸서” 불완전한 인간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해도 결코 그 값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시 49:7-9; 베드로 전서 1:18, 19. 「파15」 6/15 5:9, 10
5월 17일 수요일
나는 내 발이 있는 자리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이사야 60:13.
우리는 봉사에서 실용적이고 호소력 있고 눈길을 끄는 출판물을 전하면서 큰 기쁨을 맛보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는 jw.org 웹사이트와 같은 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진리를 전함으로, 사람들이 어디에 살든 모두에게 인도를 베푸시려는 여호와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 인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점으로, 저녁 가족 숭배나 개인 연구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게 한 조정은 매우 지혜로운 결정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대회 프로그램이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형제들은 대회가 해마다 더 좋아진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여러 신권 학교들을 통해 점점 더 많은 훈련이 베풀어지는 것에 매우 기뻐합니다. 이 모든 변화에서 여호와의 손길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조직 그리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영적 낙원을 점진적으로 더 아름답게 가꾸고 계십니다! 「파15」 7/15 1:16, 17
5월 18일 목요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누가 10:27.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께서 사셨던 나라에는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요한 4:9) 또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사도 23:6-9), 일반 사람들과 세금 징수원(마태 9:11), 랍비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요한 7:49)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1세기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인들이 자신들 가운데 있는 것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종교적 진리를 옹호하셨고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시작된다는 점을 인정하셨지만, 제자들에게 그러한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도록 가르친 적이 결코 없으십니다. (요한 4:22) 오히려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여겨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파15」 7/15 3:5
5월 19일 금요일
여호와께서 내 편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께서 나를 돕는 분으로 내 편에 계시[다.]—시 118:6, 7.
인간에게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타고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낙담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시련이나 실망스러운 일이 닥치거나, 건강을 잃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야외 봉사에서 성과가 별로 없으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더는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어 낙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분이 우리를 매우 소중히 여기시며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고” 도와주시기 위해 늘 우리 곁에 계신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충실하다면 그분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사야 41:13; 49:15) 남편이 사망한 뒤에 두 자녀를 혼자서 키운 브리짓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탄의 세상에서 자녀를 키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배우자 없이 혼자서 키우는 건 더 힘들지요. 하지만 여호와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걸 확신해요. 눈물도 많이 흘리고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그 시기를 잘 헤쳐 나가도록 여호와께서 인도해 주셨으니까요. 그분은 결코 내가 인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셨죠.”—고린도 전서 10:13. 「파15」 8/15 1:1-3
5월 20일 토요일
계속 기대하여라!—하박국 2:3.
예언자 하박국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그 도시의 멸망에 대한 경고가 여러 해 동안 발해진 후였습니다. 당시에는 이미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고 공의가 구부러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박국이 이렇게 질문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 여호와여, 제가 도와 달라고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합니까]?” 여호와께서는 그 충실한 예언자에게 예언된 멸망이 “늦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해 주셨습니다. (하박국 1:1-4) 하박국이 낙심해서 이렇게 생각했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여러 해 동안 들어 왔어. 그 멸망이 아직도 멀었으면 어떡하지? 도시가 갑자기 멸망되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 예언하는 건 현실적이 아닌 것 같아.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겠어.’ 하박국이 그런 생각을 품었다면 여호와 앞에서 은혜로운 신분을 잃었을 것이며, 바빌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파15」 8/15 2:12, 13
5월 21일 일요일
나쁜 교제는 유익한 습관을 망칩니다.—고린도 전서 15:33.
자신의 유익한 습관을 망치지 않으려면,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여호와를 숭배한다고 주장하지만 고의적으로 그분의 법을 어기는 사람들과도 가깝게 지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과의 교제를 중단할 것입니다. (로마 16:17, 18) 하느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그들에게서 인정을 받기 위해 그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면, 우리도 부도덕한 행동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부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으며, 그중 일부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명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5:11-13)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는다면, 베드로가 묘사한 것과 같은 처지가 될 것입니다.—베드로 후서 2:20-22. 「파15」 8/15 4:4-6
5월 22일 월요일
내가 명령하는 것을 행하면 여러분은 나의 친구입니다.—요한 15:14.
예수께서는 가깝게 지낼 친구를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충성스럽게 따르고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러한 친구를 선택하셨습니다. 당신도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깝게 지낼 친구를 선택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형제들과 나누는 따뜻한 교제는 우리가 장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청소년이라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섬기고 회중의 연합을 증진하는 면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동료 신자들과 교제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었을지 모르며 하느님을 섬기면서 어려움에 직면했을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당신이 최상의 인생행로를 선택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런 형제 자매들과 따뜻하고 격려적인 교제를 나누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고 장성을 향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히브리 5:14. 「파15」 9/15 1:14, 15
5월 23일 화요일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베드로 전서 5:9.
예수께서는 말과 행동을 통해 제자들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셨습니다. (마가 11:20-24) 우리는 예수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믿음을 키우도록 다른 사람을 도우면 자신의 믿음도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잠언 11:25) 전파하고 가르칠 때, 하느님이 존재하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시며 성경이 그분의 영감받은 말씀이라는 증거를 강조하십시오. 또한 형제 자매들이 믿음을 강화하도록 도우십시오. 어떤 사람이 임명된 형제들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하면서 믿음의 부족을 드러낸다 해도, 성급하게 그를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가 믿음을 되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도록 재치 있게 도와주십시오. (유다 22, 23)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진화론에 관해 배울 때 창조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담대하게 변호하십시오.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는 믿음 안에 굳게 서도록 우리 모두를 도와주십니다. (베드로 전서 5:10) 믿음을 키우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믿음을 나타낼 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15」 9/15 3:20, 21
5월 24일 수요일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알리고 창공은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선포합니다.—시 19:1.
오늘날 우리는 여호와의 창조 작품과 그분의 목적의 성취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대학 교육과 고등 학문을 장려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면 믿음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잃게 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지식만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지혜와 이해력을 얻으라고 권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알려 주신 지식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잠언 4:5-7) 하느님의 “뜻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2:4) 우리는 마음을 다해 왕국의 좋은 소식을 모두에게 알리고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웅대한 목적을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 여호와에 대한 사랑을 나타냅니다.—시 66:16, 17. 「파15」 9/15 5:10, 11
5월 25일 목요일
전에 기록된 모든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로마 15:4.
엘리야가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엘리야는 여호와께서 가뭄을 일으키실 것임을 아합 왕에게 알릴 때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내 말이 있을 때까지 ···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7:1) 엘리야는 가뭄이 계속되는 동안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필수품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열왕기상 17:4, 5, 13, 14) 그는 여호와께서 죽은 아이를 살리실 수 있다는 확신을 표현했습니다. (열왕기상 17:21) 갈멜 산에서 그는 여호와께서 불을 내려 자신의 제물을 태우실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8:24, 37) 여호와께서 가뭄을 끝내실 때가 되자, 엘리야는 아직 비가 올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아합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라가서 먹고 마시십시오. 큰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열왕기상 18:41) 이런 기록을 살펴보면 나의 믿음도 그렇게 강한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 않습니까? 「파15」 10/15 2:4, 5
5월 26일 금요일
이러한 것들을 숙고하십시오.—디모데 전서 4:15.
인간의 언어 능력은 하느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시 139:14; 계시록 4:11)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두뇌는 다른 중요한 면으로도 독특합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언어 능력을 사용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창세 1:27) 언어를 만드신 분에게 영예를 돌리기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성경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전역과 부분역을 합해 2800여 개 언어로 나와 있습니다. 그 거룩한 기록을 열심히 읽으면, 우리의 정신은 하느님의 생각으로 가득 찹니다. (시 40:5; 92:5; 139:17) 그러면 우리를 “지혜롭게 하여 구원을 얻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즐거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14-17) 묵상한다는 말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언가에 정신을 집중해서 깊이 생각하거나 숙고한다는 뜻입니다. (시 77:12; 잠언 24:1, 2) 우리는 무엇보다 여호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묵상할 때 가장 큰 유익을 얻습니다.—요한 17:3. 「파15」 10/15 4:2-4
5월 27일 토요일
자기 집안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회중을 돌보겠습니까?—디모데 전서 3:5.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겸손히 섬기도록 말과 본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누가 22:27) 그분은 사도들이 자기희생적인 태도로 여호와를 섬기고 동료 신자들을 대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는 겸손히 자기를 희생하는 본을 보임으로, 자녀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칠 수 있습니다. 두 자녀의 어머니인 데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이 장로로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 때 결코 서운해하지 않았어요. 우리 가족에게 남편의 관심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남편이 관심을 보여 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요.” 데비의 남편 프라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중에 우리 자녀들은 대회나 신권 활동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잘 발전했고 친구들도 사귀었으며 소속감을 느꼈죠!” 현재 그 가족은 모두 전 시간 봉사를 하며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다. 부모가 겸손과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나타내면 자녀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법을 배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파15」 11/15 1:9
5월 28일 일요일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만드신 것을 통해 그 특성들을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로마 1:20.
여호와께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를 들어 장엄한 우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주에는 수백억 개의 은하가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수많은 별과 행성이 있습니다. 우리 은하에 속한 별들 중에는 태양이 있는데, 태양이 없다면 지구 상에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창조물에는 여호와의 신성뿐 아니라 그분의 능력, 지혜, 사랑과 같은 특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땅에 살도록 창조된 피조물의 유익을 위해 지구 상의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위해 낙원과 같이 아름다운 동산을 만드셨고 그들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완전한 정신과 몸을 주셨습니다. (계시록 4:11) 그에 더해 그분은 “모든 생물에게 양식을 주”십니다.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시 136:25. 「파15」 11/15 3:7, 8
5월 29일 월요일
나는 ···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마태 28:20.
여러 해에 걸쳐 왕께서는 우리에게 도구들을 주셨고, 우리는 그 도구들로 수많은 사람이 왕국 소식을 받아들일 마음을 갖도록 준비시킬 수 있었습니다. 어떤 도구들은 대략 10년 정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효과적인 도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도구들 덕분에 우리는 여러 면에서 봉사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처음 봉사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한 가지 도구는 증거 카드입니다. 왕국 전도인들은 1933년부터 증거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카드에는 간단한 성경 소식이 들어 있었습니다. 증거 카드는 여러 가지 면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부 전도인들은 전파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수줍음을 많이 탔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반면에 어떤 전도인들은 집주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몇 분 안에 다 쏟아 냈고, 게다가 늘 재치 있게 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와는 달리, 증거 카드는 잘 준비된 간단한 소식을 전도인 대신 ‘말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파15」 11/15 5:3-6
5월 30일 화요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여라.—시 148:13.
성경에는 하느님의 이름과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 주는 성구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출애굽 3:15; 시 83:18; 이사야 42:8; 43:10; 요한 17:6, 26; 사도 15:14) 성경의 저자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성경 필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분의 이름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 38:23) 그러므로 고대 사본에 수천 번 나오는 그 이름을 삭제하는 것은 저자에게 불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경 번역판에 하느님의 이름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옳다는 증거는 예전에 비해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영문 「신세계역」 2013년 개정판에는 그 이름이 7216번 나오는데, 이 수치는 1984년판보다 6번이 늘어난 것입니다. 그중 다섯 군데는 사무엘상 2:25; 6:3; 10:26; 23:14, 16입니다. 이 구절들에 그 이름이 복원된 주된 이유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1000년 이상 더 오래된 사해 문서에 그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대 사본들을 더 깊이 연구한 결과 사사기 19:18에도 하느님의 이름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파15」 12/15 2:5, 6
5월 31일 수요일
형제 사랑을 계속 나타내십시오.—히브리 13:1.
우리는 바로 지금 형제 사랑을 길러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앞으로 어떤 시험과 시련이 닥쳐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큰 환난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도 우리에게는 형제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의 많은 형제들이 지진, 홍수, 허리케인,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일부 형제들은 반대와 박해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마태 24:6-9) 그에 더해 우리는 이 부패한 세상 제도에서 날마다 경제적인 문제로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계시록 6:5, 6) 그러한 문제들이 증가할수록 우리가 형제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타낼 기회도 더 많아집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형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마태 24:12. 「파16.01」 1: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