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0 3/22 12-15면
  • ‘로큰로울’ 음악은 무해한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로큰로울’ 음악은 무해한가?
  • 깨어라!—1970
  • 소제목
  • 상인들의 악용
  • 항의와 반항
  • 시끄럽고 난폭한 음향
  • 신성 모독 및 부도덕 요소
깨어라!—1970
깨70 3/22 12-15면

‘로큰로울’ 음악은 무해한가?

현대 청소년층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음악이 소위 ‘로큰로울’ 음악이다. ‘로큰로울’이란 명칭은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따라서 ‘로큰로울’ 음악이라고 하면 어느 한 가지를 지칭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음악의 공통된 특징의 한 가지는 “강렬하고 저돌적이고 특색있는 박자의 흥분”, 즉 ‘리듬’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로큰로울’이란 명칭의 어원은 어떠한가? 1967년 11월호 「하이파이」지에 의하면 “‘로큰로울’이란 용어는 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로킹’(흔들다)과, ‘로울링’(굴리다)은 원래 남녀간의 정사를 의미하였다.”고 하는데, 동지는 “‘째즈’란 용어도 원래는 동사였으나,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큰로울’ 음악은 원래 흑인 ‘리듬’과 “불루스” 형식을 합친데서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 한 가지 증거를 들자면, 흑인 가수들과 흑인 음악이 ‘로큰로울’ 음악계에 큰 영양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음악을 인기화시킨 것은 선정적인 가사로 노래를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최근에 와서는 “비틀즈”가 이 음악을 크게 유행시켰다.

‘로큰로울’ 음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그 젊음이다. “이러한 종류의 음악은 온전히 청소년의,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음악이다.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이란 8세부터 25세 사이를 말한다.” 하고 논평한 ‘레오나드 번쉬타인’의 말과 같다. 일례로 3인조 ‘로큰로울’ 악단의 연령을 보면, 둘은 14세이고 하나는 12세이다. “몽키즈”라는 인기 ‘보컬 그릅’의 ‘팬’들은 평균 연령이 10세이다.

현대 청소년들은 ‘레코드’나 ‘테이프’를 통하여 혹은 실제 연주에 의하여 ‘로큰로울’ 음악을 애청하고 있다. 미국에서 연간 20억불어치나 팔리는 ‘레코드’ 중 대부분이 ‘로큰로울’ 음반이다. 그러면 청소년층이 ‘로큰로울’ 음악을 애호하는 것이 좋은 일인가, 혹은 해로운 일인가? 그 대답은 음악의 종류 및 애호 정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상인들의 악용

청소년들과 부모들은 제작자들이 ‘로큰로울’ 음악에 포함된 유해한 요소를 제거해 줄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약점과 편애, 정열을 이용하여 청소년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털어내자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혼이다. 이것은 현대 영화의 경우와도 같다. 1968년 11월호 「하이파이」지는 이러한 우려를 다음과 같이 표명하였다. “음악업계는 창부와도 같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잘 팔릴 것을 제작하여 판매하며 선전한다. 그들은 무엇이 건전하냐를 생각하지 않고, 일반 대중 특히 청소년층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항상 생각하고 그대로 한다.”

오늘날 연예업은 대사업이며, 대사업체들은 이익을 위하여 서슴치 않고 청소년들을 착취한다. 그들의 한 가지 방법은 ‘로큰로울’ 악단을 조직하는 것이다. 현대 청소년들은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거나 혹은 스스로 돈을 벌기 때문에 잡비가 풍족한 편이다. 대사업체들은 이러한 돈을 수입원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혹은 그들로 무엇을 원하도록 설득시켜서 청소년층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유행가 제작업체만큼 냉정하고 정밀하게 청소년층을 조정하는 업체는 없을 것이다.” 하고 말한 ‘진 리즈’의 말은 일리가 있다. 물론 대사업체들만이 ‘로큰로울’ 음악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군소업자들도 ‘로큰로울’의 인기를 이용하여 한몫을 보려고 한다. 청소년들은 군중심리에 이끌려 이러한 ‘로큰로울’ 제작자들의 ‘그물’에 걸려든다.

항의와 반항

‘로큰로울’의 음악의 한 가지 면은 항의의 요소이다. 청소년층은 현재 세상사에 대하여 항의할 만한 이유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한 유명한 음악잡지는 연주자들과 청중은 “현대 미국 사회의 표류 상태—즉 물질주의, 이기주의, 공약 시행의 답보 상태, 대도시의 치부, 의회의 무능, 월남전에 대한 윤리문제”를 표현하려는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로큰로울’ 음악의 가사는 이러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종류의 가사를 가진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로큰로울’ 음악은 고래의 표준과 원칙에 대한 청소년층의 반항을 교묘한 방법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청소년층의 의상과 언어가 그러한 반항을 표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사실에 관하여 ‘진 리즈’는 청소년들이 원래 반항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이러한 기질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음악업자들은 청소년들에게 반항이란 상품을 약삭빠르게 판매하고 있다.” 하고 개탄하였다.

‘다니엘 그린’도 1968년 1월 15일호 「내셔널 옵서버」지에 비슷한 논평을 한바 있다. “새로운 음악은 세대차를 가장 현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음악은 기존질서에 대한 청소년층의 반항의 모든 표현—즉 ‘히피’족, 마약 복용, ‘데모’, 난폭한 평화시위, 너절한 옷차림, 종교와 도덕의 배척, 텁수룩한 머리, 이와 같은 모든 반항의 표현을 반향하고 있다.” 일례로 부모들이 ‘텔레비’ 시청하는 것을 조롱한 노래가 있는데, 실상 청소년들은 부모들보다 더 많이 ‘텔레비’를 시청하는 것이 현 실정이다. “그녀는 집을 떠나다”란 노래는 마치 부모가 잘못하여 자녀가 집을 뛰쳐 나가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래들은 “‘로큰로울’ 음악에 이미 존재하는 반항적 생동력”을 가일층 강조해 줄 뿐이다. 그러므로 검열당국은 유해한 가사를 금하기는 하지만 ‘로큰로울’ 음악에 내재한 반항 요소는 근절시킬 수가 없다. 왜냐 하면 반항이 그 음악의 일부이며 ‘리듬’이기 때문이다. ‘그린’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가사가 아무리 개선된다 하더라도 ‘리듬’은 계속 존재한다. ··· 보통의 경우 가사는 잘 듣기가 어렵다. ··· 유행가는 그 음 자체가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로큰로울’ 음악의 가사를 쓰는 ‘엔·다이아몬드’도 이 점을 시인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대부분의 ‘레코드’는 가사가 좋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 아니다. 그 음 자체가 좋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다. 일단 음이 마음에 들 때, 그 다음에 가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현대 음악의 평론가인 ‘리차드 골드쉬타인’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1968년 11월 24일호 「뉴욕 타임즈」지 기사 “청소년들이 ‘로큰로울’을 좋아하는 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로큰로울’ 음악에서 반항 요소를 제거하려면, 그 음악 자체를 금지시켜야 한다. 왜냐 하면 ‘불루스’ 형식을 강화한 이 음악 내에는 반항 요소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 ‘로큰로울’ 음악이 비행소년 소녀들의 음악으로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 최초의 반항은 ··· 유행가로 발단되며, 그 다음 노래에 기운을 얻어 갑자기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러한 원시적 음악은 폭력과 활력이라는 쌍둥이 귀신을 불러낸다. 그 강력한 박자는 반항의 발자국 소리와도 같다.”

이 모든 사실은 대부분의 “로큰로울” 음악에 내재한 폐해를 웅변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은 ‘로큰로울’ 음악을 들을 때 중용을 나타내고 엄밀히 취사선택하는 것이 좋다.

시끄럽고 난폭한 음향

또한 ‘로큰로울’ 음악은 시끄러운 음향과 난폭한 몸짓을 수반하기 때문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시끄러운 음향은 앙칼진 목소리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전기 ‘기타’ 소리 때문일 수 있다. 한 십대 악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나이가 젊기 때문에 나는 그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내가 춤을 추러 갈 때 흔히 이러한 경험을 한다. ‘댄스 홀’ 문 앞에 섰을 때, 나를 처음으로 자극하는 것은 그 음량이다. 피가 온 몸에서 끓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 5분간이라도 실로 유쾌하다.” 1969년 1월호 「전자화보」지와 1968년 8월 20일자 「뉴욕 타임즈」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시끄러운 ‘로큰로울’ 음악”은 청각에 해를 준다. 어느 정도로 해를 받는가는 그 음악이 얼마나 시끄러우며 또 얼마 동안 듣는가에 따라 심한 해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영원히 청각을 상실하는 수도 있다.

심히 우려할만한 사실은 ‘로큰로울’ 음악 연주시 악단이 나타내는 난폭성이다. 유명한 ‘로큰로울’ 가수는 노래 도중에 ‘마이크’를 청중석으로 내던지고 앞줄의 청중에게 침을 뱉고 나중에는 자기 ‘기타’까지 ‘라이타’ 불로 태워버렸다. 영국의 한 ‘로큰로울’ 악단은 연주 도중 무대 위에서 자동차를 부숴뜨렸다. 영국에서 인기 3위의 ‘로큰로울’ 악단은 “무대 위에서 도구들을 파괴하고 ‘드럼’을 발로 차고 ‘마이크’를 내던지고 ‘앰플리파이어’를 부수고 ‘기타’를 몽둥이와 철사로 두들겼다.” (1968년 6월 28일 「라이프」지) 한 악단의 경우, ‘고수는 북을 치다가 나중에는 흥분한 나머지 도리깨질을 하듯이 북을 때린다. 그의 연주 방법은 실로 추종을 불허한다. 북을 무대 위로 굴리며 ‘신발’을 공중으로 내던진다. 그 다음 고수는 서서 축구공을 차듯이 북을 발로 이리차고 저리찬다. 한편 다른 악사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열심히 연주만 한다. 그들이 이렇게 날아오는 악기에 맞지 않는 것이 천만 다행이다!’

이러한 행동이 진정한 의미로 음악 연주라고 볼 수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미친 행동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들은 청중도 그러한 무법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악단의 연주는 ‘로큰로울’ 연주회를 피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된다. 언론기관은 이러한 연주를 “선정적”, “마귀적”, “사악한”이란 형용사로 묘사한다.

신성 모독 및 부도덕 요소

그러나 많은 ‘로큰로울’ 음악의 가사에 나타난 신성모독적이고 부도덕한 요소를 본다면, 그러한 난잡한 연주가 나올 법도 함을 알 수 있다. 음악의 전체 분위기는 가사와도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다. 한 유명한 여가수는 술에 만취되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아. 우리가 하나님이니까.” 하면서 성인 사회의 위선을 폭로하였다. 유명한 ‘로큰로울’ 악단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와 같은 성서의 유명한 귀절을 풍자하는 신성모독적인 노래를 연주하였다.

최근 악단들은 ‘전신을 움직이며, 때때로 목소리를 내는’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청소년들에게 주는 내용은 “형제 자매들이여, 모든 속박을 벗어 던지라”라는 곡명이 잘 표현해 준다. 여기서 말하는 속박은 도덕률을 의미한다.

‘비틀즈’ 악단의 한 가수가 최근 그의 정부(현재는 아내임)와 함께 부른 곡명은 “두 처녀”이다. 미국에서 이 ‘레코드’ 갑은 이들 두 남녀의 나체 사진을 실었다. 전면에는 그들의 전면 사진을, 후면에는 그들의 후면 사진을 실었다. 대다수의 영국 ‘레코드’ 회사는 제작을 거절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한 신흥 ‘레코드’ 회사가 제작을 수락하였다. 그 명칭은? ‘테트라그라마톤’, 즉 성서와 우주의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표시하는 ‘히브리’어 네 글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실로 신성 모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리차드 골드쉬타인’이 「라이프」지에서 말한 바와 같다. “‘로큰로울’은 부도덕과 마약과 값싼 흥분을 옹호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금제에 구애받지 말도록 권장하기 때문에 대단히 파괴적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선한 원칙에 구애받지 말고 행동하도록 권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밤을 함께 보냅시다”, “‘버디’, 내일은 없으니 오늘을 즐기자”, “무엇이든지 듣고 보고 싶어”와 같은 곡명이 잘 예시해 준다.

‘로큰로울’ 음악 가운데도 일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가사 또한 애수를 띄고 있어서 별반 귀에 거슬리지 않는 노래들이 있다. 그러나 전술한 사실을 고려할 때,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는 모든 청소년들은 ‘로큰로울’ 음악을 취사선택하여 절도있게 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 전도인이라고 하는 청소년들은 더욱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우상화하거나 이교 축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는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성서를 모독하는 유행가를 동일하게 피해야 할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부모에 대한 반항을 표현하고, 부도덕을 권장하고 마약 복용을 지지하는 노래를 피해야 할 것도 마땅하지 않겠는가?

성서에 입각한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현대 ‘로큰로울’ 음악의 대부분은 그 정반대가 아닌가? 그러한 음악은 이 세상의 영을 발산하고 있지 않는가? 이 세상의 영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 실로 청소년들이 취사선택하여 절도있게 듣지 않는다면, ‘로큰로울’ 음악은 청소년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야고보 3:15, 17.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