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나의 제자가 되십시오, 신세].”—마태 11:28, 29, 새번역.
1. 오늘날 세계 상태는 어떠하며,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오늘날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당신은 피곤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 오고,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어갈 뿐 아니라, 피곤한 몸으로 아침에 일어나고, 피곤한 몸으로 직장에 나갑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지친 표정이 역력하고, 그들의 몸은 흔히 무거운 짐을 진 사람과 같이 구부러졌읍니다. 심지어 소년 소녀들과 10대인 어린이들까지도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왜 그렇게 피곤합니까?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3. (ㄱ) 오늘날 사람들이 피곤한 몇 가지 이유를 말씀하십시오. (ㄴ) 성서는 “모든 피조물”이 어떠하다고 묘사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우리 시대의 견딜 수 없는 압력을 받고 있읍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출근 시간을 지키기에도 지치게 됩니다. 도시의 이른 아침 교통의 혼잡은 말할 수 없읍니다. 이 시간에 공중 도덕이란 찾아 볼 수 없읍니다. 기차와 ‘버스’는 보통 불쾌한 얼굴을 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읍니다. 능률만 생각하고 감정이입이 약하고 생산 의식이 강한 고용주에게서 고무적인 말을 듣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경쟁심과 적대심, 또는 부도덕하고 타락적인 말투를 쓰는 자들의 불건전한 분위기에 휩싸이며, 주저하지 않고 서로 속이고 훔치고 하는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인한 긴장의 분위기 가운데 있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생활비는 점점 오르고, 세금은 매년 늘어나고, 거기에다 공포로 인한 긴장 즉 도적, 강간, 침해에 대한 공포, 실직에 대한 공포, 빈곤, 질병에 대한 공포와 같은 무거운 짐을 집니다. 당신은 우리 시대의 무서운 압력과 인류에게 지워진 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3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기에다 정치 제도와 군사 및 경제 제도의 부도덕과 타락과 부패가 가져온 무거운 짐과 그들의 전쟁, 혁명, 부정을 더해 보십시오. 여기에 세계 종교의 무거운 짐 즉 낡아버린 무가치한 전통 제도와 텅빈 제도 및 믿음이 없는 교역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지출을 더해 보십시오. 또한 불순종하는 젊은이들과 우리 시대의 범죄, 폭력, 난동이 가져온 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오늘날 사람들이 피곤해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읍니다. 성서는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한 1서 5:19; 로마 8:22, 새번역) 인류는 그들을 속박해서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거대한 낙지와 같은 제도로 인하여 피곤합니다. (계시 13:16-18)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그들은 어떻게 그러한 제도를 벗어나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을 수 있읍니까?
웅대한 초대
4.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에게 어떠한 해결책을 알려 주셨읍니까?
4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1,900년 전에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오늘날과 같이 사람들은 압제를 받고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무거운 짐을 인정하셨고, 그 해결책을 알려 주셨읍니다. 예수께서 알려 주신 그 해결책이란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기 위하여 자기에게로 오라는 웅대한 초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나의 제자가 되십시오, 신세]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편히 쉬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멍에는 메기 편하고 내가 너희에게 지우는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새번역) 이 아름다운 문귀는 해결책을 알려 줍니다. 그러면 누가 이 웅대한 초대를 받았읍니까? 이 20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5. (ㄱ) 예수 당시에 이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였읍니까? (ㄴ) ‘모세’의 율법 자체가 짐이었읍니까?
5 이 초대를 받은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사람들입니다. 예수 당시에는 이 말씀이 특히 ‘모세’의 율법을 지킬 의무 아래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었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사도 행전 15:10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연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베드로’는 ‘모세’의 율법을 그들이 질 수 없는 짐의 멍에라고 말하였읍니다. 이 말은 이 율법 자체가 지기 어려운 짐이란 뜻이 아닙니다. 그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였읍니다. (로마 7:12)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그 율법이 무거운 짐이었읍니다. 그는 그 완전한 표준에 다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멍에를 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 의무로부터 자유케 하셨읍니다.—갈라디아 3:13.
6-8. 예수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이었읍니까?
6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는 이 웅대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또한 그 당시 헛된 전통적 제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사람들이었읍니다. 이러한 전통을 육성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3:4; 마가 7:2-5) ‘바리새’인들은 사소한 일에만 집념하고 공의와 자비와 충성과 같은 중요한 것은 완전히 무시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헛된 숭배인 그러한 얽매는 전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셨읍니다.—마태 15:1-9.
7 그 초대를 받은 사람은 또한 ‘가이사’의 지배와 세금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느끼며,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었읍니다. (마태 9:36; 22:17-21) 예수의 해결책에 응하므로써 이러한 사람들도 편히 쉼을 얻을 수 있었읍니다.
8 예수께서는 또한 양심의 가책으로 말미암은 죄의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초대를 하셨읍니다. 죄의 행실은 가장 심한 타락과 부패로 인도하며 사람을 가장 큰 궁핍으로 몰아 넣습니다. (마태 6:23) 이러한 사람들도 “내게 오라”는 예수의 초대에 응하므로써 그들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었읍니다.
메기 편한 멍에와 편히 쉼
9.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있도록 그의 초대에 응하도록 어떻게 하셨읍니까?
9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그의 초대에 응하므로써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을 수 있게 하셨읍니까? 예수께서는 오늘날 많은 ‘히피’들이 원하는 바와 같이 생활의 짐이나 일을 피하므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그의 제자가 되므로써 편히 쉼을 얻을 수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 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나의 제자가 되십시오, 신세]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편히 쉬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1:29, 새번역) 1950년판 “신세계역” 각주를 보면 이 귀절은 “나와 함께 나의 멍에 아래로 들어 오십시오”라고 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적 멍에 혹은 매임을 벗어버리고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멍에 아래로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았읍니다. 이 새로운 멍에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책임을 이행하는 일입니다.
10. (ㄱ) 우리는 왜 예수의 멍에는 메기 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소의 멍에와 어떻게 다릅니까? (ㄴ) 예수의 초대는 시편에 있는 어떠한 초대와 비슷합니까? (ㄷ) 예수의 멍에를 지는 것은 어떻게 편히 쉼을 얻게 합니까?
10 고대 ‘이스라엘’ 자손들은 멍에에 관하여 잘 아는 농민들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잘 이해하였읍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께서 목수로서 소의 멍에와 사람의 지게를 만드셨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게는 흔히 사람의 목이나 어깨에 맞도록 만들어서 물이나 기타 물건들을 운반하는데 사용되었읍니다. 그러나 소의 멍에는 강제적이지만 예수의 멍에는 자진적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멍에를 지고 자기의 제자가 되라고 초대하셨읍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초대는 그들이 기꺼이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들의 믿음으로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마태 22:36-40; 로마 1:17) 이 권고는 시편 55:22에 있는 초대와 비슷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는 여호와의 도움을 굳건히 의뢰할 수 있으며, 또한 지상에서 그의 일을 하도록 보내신 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편히 쉬는 일은 구원을 위한 여호와의 마련이신 자기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므로써 온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4:12) 이러한 지식은 희망을 배양합니다. 그것은 의로운 새 사물의 제도에서 얻을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편히 쉼을 얻게 합니다.—베드로 후 3:13; 요한 1서 1:9; 2:17.
11. 편히 쉼을 얻은 사람은 무엇을 경험하게 되며,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편히 쉼을 얻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11 편히 쉰다는 것은 주로 내부의 경험이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모세’의 율법을 행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이유로 하나님의 가족내에서 어린 아이가 된다는 즐거움과 지식의 경험입니다. 이 편히 쉬는 일은 믿음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예수의 완전한 사랑에 근거한 순종의 경험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향하고 그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지친 몸은 편히 쉼을 얻게 되고 즐거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편히 쉼을 받은 사람은 정신적 평화를 즐기게 되고 마음의 깊은 안정과 상상하기 어려운 생활의 만족을 경험합니다.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편히 쉬는 일을 경험하였고, 그 경험을 성경에 기록하였읍니다.—요한 14:27; 빌립보 4:7.
오늘날 메기 편한 멍에
12.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멍에는 무엇입니까?
12 그러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멍에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게으름의 멍에도 아니요 일하는 것이나 영예로운 요구로부터 면제되는 멍에가 아니라 영원한 보상의 희망을 가진 생활의 길입니다. 그것은 희생과 본을 요구하는 생활입니다. (마태 16:24-26; 19:16-29) 그러므로 그것은 억제받지 않는 생활이나 책임없는 생활이나 “무제한의 자유”의 생활이 아닙니다. 그러한 생활은 곧 초조하게 되며 피곤하게 됩니다. 책임감과 수행감과 소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멍에는 예수 당시와 같은 멍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께 완전한 헌신을 하는 멍에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길입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참다운 종으로서 믿음으로써 생활하는 길입니다.—히브리 10:7-10; 시 40:6-8.
13.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그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편히 쉼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 이러한 멍에를 그리스도인들은 자진적으로 멥니다. 그것은 편히 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멍에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자유를 경험합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8:31, 32, 36) 그러므로 자유를 얻고 편히 쉼을 얻기 위하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란 없읍니다. (로마 7:4; 갈라디아 5:1)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유 혹은 편히 쉼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그들의 관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그분은 약속을 반드시 성취시키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열왕 상 8:56.
14. 그리스도의 멍에는 어떻게 메기 편합니까?
14 예수께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제자가 되라고 초대하셨을 때 그는 ‘자기의 멍에는 메기 편하고 자기의 지우는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면 그의 멍에는 어떻게 메기 편합니까? 오늘날에도 예수 당시와 같이 멍에에다 부드러운 헝겁을 대서 소의 목을 비벼 상하지 않게 합니다. 그러한 멍에는 고려와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메기 편한 멍에”라고 할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도 메기 편한 멍에입니다. 왜냐 하면 헌신의 멍에는 자진적인 것이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대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이나 능력 있는 사람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힘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예외 없이 이 헌신의 특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은 그 멍에가 메기 편한 것임을 증명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이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 하고 말하였읍니다.—사도 10:34, 35.
15. (ㄱ)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멍에를 멜수 있으며, 그것은 왜 즐거운 경험입니까? (ㄴ) 그리스도의 멍에는 만족을 갖다 주지만 이 세상 멍에는 만족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이 멍에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는 “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았읍니다. 이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는 자신을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 11:29, 새번역; 베드로 전 2:21) 이러한 성품은 이 세상 권위자들의 가혹하고 강요적 정신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므로 우리는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의 멍에에는 참 사랑이 대어 있읍니다. 그 멍에는 이 세상 멍에와 같이 피부를 벗겨지게 비비지 않습니다. 세상의 멍에는 가혹하고 강요적입니다. 그들은 피부를 비벼 상하게 하고 피곤케 합니다. 다만 가혹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속적 유익이나 참다운 수행감을 느낄 수 없고 지상의 악한 사람들의 이기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일하는 데서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의 멍에를 메면 우리는 여호와를 섬기므로써 오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갖게 되고 그것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이 영혼에게 참다운 쉼을 얻게 합니다.—잠언 10:22.
가벼운 짐
16.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가벼운 짐’이란 무엇입니까?
16 예수께서는 오늘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영혼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지우는 짐은 가볍다”고 약속하십니다. (마태 11:30, 새번역) 이 가벼운 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따라 생활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 1서 5:3)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와 함께 걸을 때 우리에게 의롭고 인자하고 친절하고 겸손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지나친 요구입니까? 이러한 성품들이 우리가 바로 다른 사람에게서 즐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계에 전파”할 것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서 원칙과 일치하게 생활하도록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고 있읍니다. (마태 24:14; 28:19, 20) 이것이 특히 무거운 짐이며 지기에 너무나 어렵습니까? 생각해 봅시다.
17. 우리는 이 짐이 왜 가벼운 짐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17 이 짐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말하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함을 명심하십시오. 이것은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입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할 줄 알며, 사람들은 보통 그들이 잘 아는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사실상 그러한 대화는 고무적이고 격려적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겠읍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본과 대속물이 되시므로써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겠읍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이 모든 순종하는 인류를 위하여 할 일과 이 땅을 낙원으로 변화시키고 인류를 완전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에 관하여 듣기를 원하지 않겠읍니까?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즐거움이 되는 일들은 무거운 짐이 될 수 없으며 영혼을 편히 쉬게 합니다. 특히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에 관한 일들은 그러합니다. 사실상 “사람이 의를 위하여는 마음으로 믿음을 실천해야 하지만, 구원을 위하여는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해야” 합니다.—로마 10:10, 신세.
편히 쉬게 하는 일
18. (ㄱ)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의 짐이 무거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ㄴ) 그들은 무엇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까?
18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제자의 짐이 가벼운 것이 아니며 편히 쉬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읍니까?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회의주의자 혹은 의심하는 사람을 초대해서 하나님의 봉사에 동반해 볼 수 있읍니다. 이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전도 봉사에서 참으로 편히 쉼을 얻는 것을 구경하게 하십시오. 이러한 사람들은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을 만나서 왕국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줄 때 하나님의 전도인이 생기를 얻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사실상 즐거워 뛰게 됩니다. 그가 문에서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에 얼마나 기뻐합니까? 관심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소식이 실려 있는 한 부의 서책을 전하게 되었을 때에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 전도인은 참으로 활기를 얻게 됩니다. 그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그는 새롭게 된 활력으로 계단를 오르내립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전도인들은 모두 똑 같이 느낍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열정적입니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편히 쉬게 하기 때문입니다.
19. 회중 성서 연구에 참석하는 것은 무거운 짐입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대답합니까?
19 그리스도인은 매주 회중 성서 연구에 참석하도록 격려를 받습니다. 이것이 너무 무거운 짐입니까?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느라고 피곤하게 된 후에 이러한 성서 연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이 이러한 집회에서 한 시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다음에는 보통 피곤함을 잊게 됩니다. 그들은 편히 쉼을 느끼고 또 그렇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진리를 배웠을 때 그들은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들의 몸은 생기를 얻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느낍니까? 그러한 모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편히 쉬게 하기 때문입니다.
20. 우리는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회중 집회와 순회 대회, 지역 대회, 국제 대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읍니까?
20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기적으로 회중에 모일 것을 격려합니다. (히브리 10:24, 25) 그들은 한 주일에 몇번씩 그렇게 모입니다. 이것은 지나치게 무거운 짐입니까? 이 세상의 짐을 지기에 매맞아 상한 몸이 된 사람도 한 주일도 빼지 않고 충실하게 왕국회관에 참석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형제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이 있는 부모가 그들과 함께 매주 회중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들이 순회 대회나 지역 대회나 국제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흔히 많은 여비를 들여서 여행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이러한 모임에서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1, 3) 이러한 모임에서 그들은 여호와의 풍부한 축복을 경험합니다.
피곤하지만 만족함
21. (ㄱ)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대답합니까? (ㄴ) 무엇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편히 쉼을 얻고 있음을 증명합니까?
21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체적으로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도 피곤해집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잠간 쉬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가 6:31) 마음은 원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읍니다. (마태 26:41)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도 그러한 피곤함은 여호와의 뜻을 행하였다는 만족감을 갖게 합니다. 결코 포기하게 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 6:9, 10) 가장 오랫 동안 그리고 가장 열심히 전도 봉사에서 일하는 전 시간 전도인들에게 과연 그러한가 물어 보십시오. 오늘날 지상에서 ‘파이오니아’들과 선교인들과 ‘벧엘’에서 봉사하는 종들 즉 하나님의 전 시간 봉사자들보다 더 행복하고 더 만족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읍니다. 그들의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편히 쉼을 얻는다는 증거입니다.
22. (ㄱ) 여러 전 시간 전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전도 봉사에 관하여 무엇을 추천합니까?
22 미국 ‘뉴욕·브루클린’에 있는 한 회중 감독자는 그의 회중에 있는 ‘파이오니아’ 전도인들과 만나서 그들이 전 시간 전도 봉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이야기한 일이 있읍니다.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읍니다. “온 종일의 봉사가 끝나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낍니다.” “참으로 훌륭한 경험이며 나는 결코 ‘파이오니아’ 봉사를 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이오니아’ 봉사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나가 다 이와 같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전세계에서 들어오는 소식도 이와 똑 같습니다. ‘파이오니아’ 봉사가 참으로 상과 편히 쉼을 얻는 생활임에는 틀림 없읍니다. 당신도 ‘파이오니아’ 봉사에 대하여 생각해 본 일이 있읍니까?
현명한 결정을 하고 낙심시키는 것과 싸움
23. (ㄱ)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가 무거운 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ㄴ) 그들은 무엇을 알게 될 것입니까?
23 아직도 우리는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가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읍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만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거운 짐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입니까? 혹은 당신의 직장에서 요구하는 일입니까? 그것은 전도 봉사에 대한 당신의 태도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세상적 의무와 매임이 전도 봉사에서 당신이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도록 피곤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문제를 발견해 내십시오. 솔직하게 살펴보고 필요한 시정을 하도록 부지런히 노력하십시오. 당신은 틀림없이 당신의 생활 방식에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전도 봉사의 짐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그것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읍니다.
24. 전도 봉사가 더 큰 즐거움이 되도록 우리 생활에서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24 우리 생활에서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함으로써 우리가 전도 봉사로부터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읍니다. ‘마르다’는 성찬으로 손 대접하기를 좋아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아마 당신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것은 시간 낭비이고 피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10:38-42) 어떤 사람은 재산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짐을 지고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이 당신에게도 짐이 된다면 그러한 것들을 팔아버리라고 교훈하셨읍니다. (마태 19:21) 다른 사람들은 어리석게 육체의 일에 빠져서 죄를 행하는 일에 걸렸읍니다. (시 38:3-5) 그러한 짐은 정신에 크나큰 부담이 됩니다. 즉시 끊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생활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생활이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25. (ㄱ) 우리는 어떻게 실망시키는 것과 싸울 수 있읍니까? (ㄴ)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을 수 있읍니까?
25 당신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속히 해결하십시오.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당신의 열심을 꺾거나 실망시키게 하는 짐을 벗어 버리십시오. 지금은 누구에게나 매우 어려운 때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계시 12:12) 또한 이 위기에서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는 것이 생활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것임을 인식하십시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의 제자가 되므로써 우리의 영혼이 편히 쉼을 얻을 수 있읍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여호와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데서,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우리의 깨끗한 형제 자매들과 교제함으로써 그리고 왕국 전도 봉사에 종사함으로써 편히 쉼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족 밖에서는 편히 쉼을 얻을 수 없읍니다.
26. (ㄱ) 우리가 우리의 영혼이 편히 쉼을 원한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ㄴ) 어떠한 전망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26 그러므로 손짓하며 부르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편히 쉬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멍에는 메기 편하고 내가 너희에게 지우는 짐은 가볍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초대에 응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됨으로써 그 멍에를 메십시오. 우가리 죽어 가는 이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 점점 가까이 옴에 따라 격심한 압력을 당하는 때인 지금 즐겁게 살도록 깊은 인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의 가벼운 짐을 지도록 하십시오. ‘피곤한 이 낡은 세계는 지나가고 그 정욕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들은 지금 편히 쉼을 즐길 뿐 아니라 쉼을 얻는 생명을 영원히 즐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2:17) ‘그에게로 오라’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응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행복한 운명이 될 것입니다.—마태 11:28-30,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