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제자의 멍에를 꺾음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시 72:12-14.
1.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구하며,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모릅니까?
오늘날 이 지상 어느 곳을 보든지 자유를 달라는 부르짖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읍니다.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지 자유를 원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정부와 그들대로의 생활 방식을 택할 자유를 원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방법대로 숭배하는 자유, 그것도 그들이 좋아한다면 숭배하는 자유를 원합니다. 현대 생활의 엄격한 시간표로부터의 자유, 노예화하고 있는 산업 형태로부터의 자유, 납세의 짐과 고가의 생활비로부터의 자유를 원합니다. 또한 군사 지배와 독재로부터의 자유를 원합니다. 인간을 ‘컴퓨터’에 사용하는 ‘카드’로 바꾸어 버린 과학과 공학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합니다. 종교적 미신과 교직 정체의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그들을 노예화한 이 제도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압제자들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하여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2.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어떠한 일들이 있읍니까?
2 사람들이 참으로 자유를 열망한다면 그들은 먼저 그들을 노예화한 장본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그 장본인을 알게 되면 참다운 해결책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이 압제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알고자 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연구하고, 그들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조화시킴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잠언 3:5-7) 그들은 또한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 자유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반대되는 길은 다만 압제와 노예 상태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들은 또한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혼란을 가져올 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3. (ㄱ) 어디에서 처음으로 압제가 소개되었으며, 누구에 의하여 그리고 어떻게? (ㄴ) 무제한의 세계를 바라던 인류의 꿈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3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처음으로 성서가 ‘사단’ 마귀라고 부르는 자에게 압제와 노예를 소개받았읍니다. (계시 12:9)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법과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멍에를 메는 대신 마귀의 말을 듣고 불순종함으로써 스스로 마귀의 멍에를 메었읍니다. 그들은 사욕의 노예와 죄의 종이 되었읍니다. (로마 6:16-18) 그들은 이제 ‘에덴’ 동산 경계 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으로 넓고 그들 마음대로 일할 수 있는 경계 밖으로 풀려 나오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은 참으로 자유로웠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하나님의 집을 나가서는 참 자유란 있을 수 없읍니다. 이제 죄와 죽음의 법이 그들의 몸안에서 작용하게 되었읍니다.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므로써 육체의 길이 소름끼치는 방법으로 나타났읍니다. 얼마 가지 않아 범죄와 폭력이 땅을 덮었읍니다. (창세 4:8; 6:5; 갈라디아 5:19-21) 하나님을 떠나 새롭고 더 나은 무제한의 세계를 바라던 그들의 젊은 꿈은 실현되지 않았읍니다. 실제로 생긴 것은 압제적인 세계, 부패와 죽음의 세계, 멸망의 운명에 처한 세계였읍니다.—창세 6:7.
4. (ㄱ) 대홍수 후에 인류는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들은 왜 실패하였읍니까? (ㄴ) 압제가 제거되려면 어떠한 일들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까? 인간의 노력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4 그 세계를 멸망시킨 ‘노아’ 시대의 대홍수 후에 인류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정부와 기타 수단을 통하여 ‘에덴’에서 상실한 자유를 되찾으려고 노력하였읍니다. (베드로 후 2:5) 그들은 자유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싸웠고, 죽었읍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인간 가족이 하나님의 법에 대한 ‘아담’의 반역의 쓰라린 결과를 피하지 못하였으며, 더우기 이 세계는 ‘사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증명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을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부르셨읍니다. (요한 12:31; 14:30, 새번역) 사도 ‘바울’은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이 세상 신”이라고 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4:4) 사도 ‘요한’은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요한 1서 5:19,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나라들이 ‘사단’의 지배 아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셨읍니다. ‘사단’이 예수에게 자기를 숭배하는 행동을 보이기만 하면 이 세상의 왕국들과 그들의 영광을 주겠다고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읍니다. (마태 4:8-10) 그러므로 이 세상 나라들이 압제의 신인 ‘사단’ 마귀의 영향을 받고 있는 한 그들이 하는 어떠한 일도 압제를 제거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읍니다. 압제를 제거한다는 것은 문제의 근원 즉 ‘사단’ 자신을 없애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또한 인류를 유전 죄의 구속으로부터 대속(代贖)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은 사람이나 나라들이 미칠수 없는 곳에 있으므로 인류가 이 압제자의 멍에를 꺾기 위하여는 다른 곳으로 향해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류 모두는 죄인 ‘아담’의 후손임으로 그들 모두는 그의 죄로 인한 무능력과 죄의 값인 죽음을 유전받았읍니다. (로마 5:12; 6:23) 그러므로 인류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출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머리를 돌려야 합니다. (욥 14:4; 시 49:7)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라들이 실패한 것입니다. 그들은 원 장본인을 제거할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노력은 대부분 한 가지 압제 제도에서 다른 압제 제도로 바꾸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하였읍니다.
과거의 압제 제도
5. (ㄱ) 무엇으로 보아 애굽이 압제 제도였음을 알 수 있읍니까? (ㄴ) 누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해 냈읍니까?
5 첫째 세계 강국인 애굽(‘이집트’)이 압제 제도가 되었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그 나라의 냉혹한 ‘바로’를 섬겼읍니다. 그들의 압제에 관한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감독들을 그들[‘이스라엘’ 자손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쑤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출애굽 1:11-14) 애굽 압제자들의 멍에는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의 재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꺾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써 이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셨읍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너희로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레위 26:13) 그들의 압제자의 멍에를 꺾으신 분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그들은 기억해야 하였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읍니다. 그 사실은 우리 역시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자유와 노예를 의미하는 것이었읍니까?
6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자유를 의미하였읍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속박의 멍에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찐대 ··· 내가 너희를 치리[라].” (레위 26:14-17)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고, 일부러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을 가고, 하나님의 충고를 거절한다면 그들의 이러한 불순종의 길은 마침내 그들을 멸망으로 인도할 것이었읍니다. “네가 ···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신명 28:15, 48; 레위 26:18-41.
7. 멍에라는 말은 어떻게 여러 가지 상징 혹은 비유로 사용되었으며, 우리는 어떻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에 철 멍에를 메우신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7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있었읍니다. 그들은 농민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멍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읍니다. 철 멍에 즉 쇠 멍에는 엄한 속박의 상징이었읍니다. (예레미야 28:14) 그것은 또한 재난 혹은 고통의 상징이기도 하였읍니다.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모욕이나 압제를 당하는 것을 ‘유대’인들은 속박의 멍에로 비유하였읍니다. (예레미야 27:8; 28:4) 노예가 예속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멍에를 꺾’는 것으로 묘사하였읍니다. (이사야 9:4; 14:25; 예레미야 28: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이 만일 그의 말을 청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목에 “철 멍에”를 메우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그들의 노예와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읍니다.
8.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스라엘’은 점점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읍니까?
8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 나라는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읍니다. 그들은 재삼 재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거절하였고, 결과적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읍니다. 기원전 1117년에 이 나라는 예언자 ‘사무엘’을 통하여 한 왕을 기름 부어 줄 것을 요구하였읍니다. ‘사무엘’은 지적 왕을 갖는다는 것은 왕들이 통치자로서 압제적이고 강요적일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될 것임을 경고하였읍니다. 그러나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이다].” (사무엘 상 8:18, 19) ‘사울’이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읍니다. 그후 얼마 안되어서 그들은 인간 왕을 가진 결과로 고통을 받기 시작하였읍니다. 세일이 흐름에 따라 짐은 점점 무거워졌읍니다.
9. (ㄱ) 압제가 언제 국가적 문제가 되었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읍니까? (ㄴ) 어떤 사실이 기억할 만한 일입니까?
9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 120년 후에 압제는 국가적 문제가 되었읍니다. ‘솔로몬’ 왕은 그의 만년에 와서 매우 가혹한 통치자가 되었읍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그의 위를 계승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그에게 짐을 가볍게 해 달라고 이렇게 탄원하였읍니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 왕의 대답은 이러하였읍니다.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열왕 상 12:1-11) 이로 인하여 반역이 일어나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어, 기원전 607년에 ‘유다’ 왕국이 ‘바벨론’ 군대에게 멸망되기까지 약 390년간 존속하였읍니다. 생존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노예가 되었읍니다. 이러한 포로 생활을 한지 68년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그들의 구조자가 되시어 그들의 압제자의 멍에를 꺾어 주셨고 2년 후에는 고국으로 돌아갈 자유를 얻게 하셨읍니다. 이것 역시 기억할 만한 일입니다.—에스라 1:1, 2.
10.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교훈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10 오늘날 인간 가족 성원은 그의 국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러한 사실을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읍니다. 교훈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자유가 없읍니다. ‘사단’의 지배 아래서 인류를 구출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 자신 외에 아무도 없읍니다. 이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 사물의 제도의 신에 의하여 소경이 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곧 멍에를 꺾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매우 연약하고, 오히려 불리한 것이며, 실패작임을 알게 됩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한 가지 압제 제도로부터 다른 압제 제도로 대치시키는 것 뿐입니다.
현대 압제 제도
11. ‘칼 마르크스’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하였읍니까? 그의 생각이 여지 없이 실패하였음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11 예를 들어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마르크스’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자기가 우리 시대의 제도를 과학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는 새로운 압제가 아니라 참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 정부 제도를 발전시키는 일을 착수하였읍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존재하던 모든 제도 중에서 가장 압제적인 공산주의의 시작이었읍니다. 공산주의가 백성에게 얼마나 가혹한 멍에가 되는가는 중공의 인민공사가 좋은 증거입니다. 그것은 중국 농민의 약 98‘퍼센트’를 강제 집단 제도로 끌어들였읍니다. 그들의 모든 권리와 자유 및 재산은 국가의 것이 되었읍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압제를 제거하고 온 인류에게 참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제도의 열매입니다. ‘마르크스’는 무신론적, 유물론적 사회에 자유가 존재한다고 믿도록 ‘사단’의 속임에 빠진 것이 아닙니까? 분명히 그러하였읍니다. 수백 수천 만명이 ‘마르크스’의 교리를 따랐읍니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 되었고 유물론자들이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읍니다. (고린도 후 11:14, 15) 하나님을 떠나서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12, 13. 자본주의 하에서도 어떠한 방법으로 압제를 경험합니까?
12 그러면 자본주의 세계는 어떠한가? 자본주의 세계는 사람이 살기가 나은가? 하고 어떤 사람은 물을 것입니다. 나은 점은 여러 가지 있읍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 역시 거의 어디에서나 압제의 멍에를 볼 수 있읍니다. 거대한 산업제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의 노예화하는 직장에 매어 놓았고 그들의 시간과, 간접적으로는 그들의 생활의 표준까지 지배하고 있읍니다. 근로자들이 더 나은 근로 조건을 요구하고, 높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지만 흔히 가중된 압제를 초래합니다. 고용주들이 파업이나 중재를 통하여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도록 강요되면 그들은 부가적 경상비를 메꾸기 위하여 그들의 생산품의 값을 올리는 것이 보통이며, 생산비가 오르면 소매 가격이 오르게 되고, 이 생산품을 살 근로자들은 결국 오른 임금으로 비싼 값을 치루게 됩니다. 파업이나 집단 흥정이 자본주의 나라에서 압제의 멍에를 꺾지 못하였읍니다.
13 근년에 와서 납세라는 형태의 압제가 특히 심하여졌읍니다. 미국에서 1959년부터 1969년까지 국방비로 지출한 금액만도 6,300억불($630,000,000,000)을 넘습니다. 이 거대한 금액은 미국의 납세자들 매인당 수천불의 납세에 해당합니다. 미국 군비 통제 및 축소 기관의 연례 보고에 의하면 지난 6년간에 모든 나라들이 군비를 위하여 사용한 금액은 1조불($1,000,000,000,000)을 넘습니다. 얼마나 과중한 멍에입니까!
14. 어떠한 것을 자문해 볼 수 있읍니까?
14 이러한 막대한 돈의 지출이 인간의 멍에를 가볍게 하였으며, 적어도 세계를 안전하게 보이게 만들었읍니까? 이러한 멍에가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의 구원을 바라게 만들었읍니까? 현 제도는 단 한 가지라도 인류에게 즐거워할 만한 것을 만들어 주었읍니까?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에 잠간 우리 시대의 제도가 가져온 가공할 만한 격변의 얼마를 간단히 고려해 봅시다.
현대적 압제의 열매
15, 16. (ㄱ) 이러한 압제 제도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ㄴ) 그러한 일들은 어떠한 예언의 성취입니까?
15 불과 몇해 사이에 인류는 세계를 유혈의 혼란으로 몰아넣은 ‘아돌프 히틀러’나 ‘베니토 무솔리니’와 같은 악한 독재자들이 일어난 것을 보았읍니다. 그들은 ‘조셉 스탈린’과 중공의 홍위병들의 잔인한 숙청을 목격하였읍니다. 그들은 ‘러시아’의 ‘베를린’ 장벽 건축,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점령, ‘유럽’에 걸친 철의 장막의 건축을 가져온 1948년의 냉전을 관찰하였읍니다. 근년에 와서 그들은 거의 연속적인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전쟁, 중공의 수소폭탄 첫 실험, ‘볼리비아’군의 ‘체 게바라’ 살해, ‘나이제리아’의 내전을 목격하였으며, 그들은 월남과 ‘캄보디아’에서 증가하고 있는 유혈의 참상을 보았읍니다. 또한 세계는 미국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뉴와크’, ‘뉴욕’ 등지에서 있었던 폭도들의 난무상을 구경하였읍니다. 세계는 영국의 ‘파운트’와 ‘프랑스’의 ‘프랑’화의 평가 절하와 금 위기가 세계의 경제 기반을 흔들어 놓는 것을 목도하였읍니다. 인간의 심장 이식이 행해지고, 인간이 인공 위성을 타고 달 주위를 돌고 달위에 발을 디디는 것을 본 것도 오늘날의 인류입니다.
16 세계는 또한 전례 없는 범죄와 폭력의 증가를 보았읍니다. 또한 세계의 유망한 지도자들을 살해함으로써 자기의 이름을 내려는 철면피들을 목도하였읍니다. 1968년 4월에 일어난 “마틴 루터 킹”의 살해 사건은 미국 125개 도시에서 46명의 사망자와 2,600명의 부상자를 내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55,000명의 주방위군을 동원하게 한 흑인 폭동을 야기시켰읍니다. 1968년 6월에는 둘째 ‘케네디’가 암살되어 이 극적인 젊은 지도자는 자기의 세력 벽두에 쓸어졌읍니다. 조직적인 학생 반항이 ‘벨지움’에서, 영국,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태리, 일본, ‘멕시코’, ‘폴랜드’, ‘스페인’, 서독, 미국 대학 ‘캠퍼스’ 내에서 일어났읍니다. 참으로 지금은 성서 예언의 성취의 때로서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이며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는 때입니다. (디모데 후 3:1, 신세; 누가 21:26)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인간이 ‘딜레마’에 빠져 나갈 길을 알지 못하면서도 영속시켜보려고 고투하는 이 제도의 열매입니다.
세계적 혼란의 인과
17. 급변하는 사건들 배후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는것 같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읍니까?
17 우리 시대의 이 무서운 급격한 행동은 거의 우발적인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목적이 있는 것같읍니다. 1968년 8월 30일호 「타임」지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새로운 자유와 실현에 대한 광범위한 동경은 공산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국가나 신생 국가나 할 것 없이 어디에서나 휩쓸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부유와 평등과 교육이 너무 느리게 이루어지면 그들은 좌절감을 갖게 된다고 「타임」지는 말하였읍니다. “구태의연한 정치적 추이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나타난 결과는 점점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고, 직접 행동하려는 욕망이 불일듯 일어나고, 거의 매일같이 법과 논리를 무시하는 충돌을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모든 형태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상실되었읍니다. 젊은이들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수십억에 달하는 계획이 실패하였으며, 민권법이 이전 어느 때보다도 흑인들에게 욕구불만을 주었고, 고등교육과 재정적 “성공”이 참다운 성취감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옛 도덕표준으로부터 떠났으며, 정치적 공약(公約)은 더 큰 위기와 많은 젊은이들이 생을 완전히 포기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격변을 가져왔을 뿐임을 보아 왔읍니다.
18. (ㄱ) 오늘날 젊은이들이 이 세상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어떠한 사건들이 증명합니까? (ㄴ) 예언과 일치하게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읍니까?
18 더 이상 젊음이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불안정한 세계, 욕구불만의 세계, 혼란의 세계에 살고 있읍니다. 흔히 그들은 이러한 세계에 대하여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고 범죄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패거리의 요란한 소리, 학생들의 난동, 주연 난무, 난잡한 성교는 이 세계의 비인도주의와 혼란된 도덕의 가치관, 그리고 압제적 멍에에 대한 맹목적 반항의 표현입니다. 이 경쟁적인 “지식 경주”의 올무에 빠진 많은 젊은이들은 진정제, 정력제 또는 기타 환각제를 찾고 있읍니다. 최근 ‘캐나다’의 ‘터론토’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통계에 의하면 37‘퍼센트’의 남학생과 36‘퍼센트’의 여학생이 그들의 시간표 대로 생활하기 위하여 이러한 약들을 사용하였음이 증명되었읍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자살을 합니다. 대학생의 남자 30‘퍼센트’와 여자 17‘퍼센트’가 자살할 생각을 한 일이 있음을 시인하였읍니다.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사망의 이유가 자살이 사고 다음가는 둘째 이유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류블리아나’에서 경찰은 청년층에서 자살 ‘클럽’이라고 믿어지는 한 ‘클럽’을 적발하였읍니다. 젊은이들은 다음에는 누가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계가 마침내 오게 된 서글픈 압제 상태입니다. 영감받은 잠언은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잠언 29:2) 그리고 압제를 받는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울’고 있읍니다. (에스겔 9:4) 그렇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19. (ㄱ) 젊은이들은 이러한 상태에 대하여 누구를 원망하려고 하며, 실제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읍니까? (ㄴ) 무엇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까? (ㄷ) 이것은 도움의 근원에 관하여 어떠한 사실을 강조합니까?
19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 위에 미친 비인도적 시련에 대하여 성인들을 원망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큰 과실입니다. 오늘날의 성인들 역시 현 세계의 젊은이들만큼이나 같은 사회와 경제 제도의 피해자들입니다. 그들도 같은 짐을 지고 있고, 변화를 열망합니다. 압제의 원 장본인은 “온 천하를 꾀는 자”인 ‘사단’이라고 성서는 알려 줍니다. 성서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 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계시 12:9, 12) 압제의 근원이 영계(靈界)에 있는 ‘사단’에게 있고 그가 구상한 제도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읍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압제자의 멍에를 그가 산산조각이 나게 하실 것을 기대하는 피압제자들은 현명합니다.—시 37:34.
압제자의 멍에가 꺾임
20. (ㄱ) 우리는 어떻게 미래에 대한 빛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주에서 압제를 제거하실 것입니까?
20 성서에는 오늘날 모든 인류에게 불길하게 보이는 장래가 변화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읍니다. 이 아름다운 혹성인 지구는 다시 의로운 인류의 거처가 될 것입니다. 혼란이 아니라 질서가 있게 될 것이고,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있게 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안전과 풍부한 자유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시 46:8, 9; 계시 21:1-4)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 일을 수행하실 것입니까? ‘사단’과 그의 악귀들을 영계에서 일소하고 그의 보이는 조직의 모든 형적을 멸절시키므로써 가져오십니다. 우리 시대의 중첩되는 문제를 보고 「타임」지는 “유일한 해결책은 사회를 뿌리 뽑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이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압제적]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다니엘 2:44.
21. 언제 압제가 제거될 것이며, 어떻게 인류가 자유롭게 될 것입니까?
21 이 왕국은 이미 즉위하신 왕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늘에서 다스리고 있읍니다. (계시 11:15)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인 ‘아마겟돈’에서 하나님의 집행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모든 적들을 소탕하시고 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왕국]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합니다. (계시 16:14, 16; 마태 6:10; 베드로 후 3:13)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사단’과 그의 악귀들도 치시므로 무력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로마 16:20) 왕국 통치 아래 압제는 완전히 지상에서 없어질 것입니다. 통치하는 그리스도께서는 그때 자기의 대속 희생의 은공을 가장 유력하게 적용시키시므로써 유전 죄의 영향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마태 20:28; 로마 5:17, 21)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계시 21:4) 인류는 완전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22, 23. (ㄱ)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가지고 무슨 기도를 합니까? (ㄴ) 우리는 어떠한 확신을 즐길 수 있으며, 의의 반응은 어떠할 것입니까? (ㄷ) 지금 이 세계의 예속으로부터 해방을 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수 있으며,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읍니까?
22 오늘날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시편 필자와 같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로다].” (시 72:1-4, 11-14) 그러므로 현 격변과 위기의 때에 압제받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를 바랄 수 있읍니다. 당신은 그의 구원과 자유를 의뢰할 것입니까?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열왕 상 8:56.
23 하지만 모든 압제자들로부터의 하나님의 웅대한 구원이 완성되기 전인 지금에 있어서도 현 악한 세계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하며 인류는 그것을 즐길 수 있읍니다. 다음 기사는 우리가 어떻게 지금 그러한 해방을 얻을수 있는지 알려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영혼이 지쳐있고 그러한 해방을 원한다면 꼭 다음 기사를 읽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