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희생의 정신을 부흥시킴
“누구든지 나의 추종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자신을 뒤에 남겨 두지 않으면 안된다.”—누가 9:23.a
1. 자기 희생의 생활을 시작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읍니까?
그리스도교의 창설자께서는 한 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형주, 신세]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자기 희생의 행로로 초대하고 계셨읍니다. 이 말씀은 성서 누가 복음 9:23-26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2. 그 초대에 대하여 어떤 질문이 생길 수 있읍니까?
2 그러나 그 초대는 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닙니까? 오늘날에는 아무도 자기 희생을 하는 사람을 별로 알아 주지 않으며, 또 현대 세상이 제공하는 매력있는 것이 많고, 추구해 볼만한 목표가 많은데, 왜 자기 희생의 행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어디에 사는 사람들이나 “자기를 부인”하기는 커녕 자기를 내세우고 점점 더 많은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이 때에, 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까? 그들은 이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며, 다른 방법으로 여의치 않을 때는 폭력으로라도 그러한 것을 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 세상을 얻’기 위하여 혹은 적어도 그 중 일부를 얻기 위하여 노력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구원할 정도로 그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성서와 참 그리스도인들의 최근 역사는 이에 대하여 대단히 격려적인 대답을 몇가지 제시해 줍니다. 존경심과 충성과 희생적 정신이 땅에 떨어진 현 상태에 비추어 볼 때, 영적인 사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읍니다.
3. 자기 희생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까?
3 하지만 이 세상이 그 정도로 나쁩니까? 세상과는 일체의 관계를 끊는 것이 절대 필요할만큼 이 세상의 행로가 나쁩니까? 그렇습니다. 전체 세상이 점점 더 방종해지고 물질주의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에 놀라지 마십시요. 이러한 상태를 가장 신뢰할만한 예언자의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이 예언하였는데 그의 예언이 디모데 후서 3:1-5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 서라.” 도처에서 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읍니다. 사실 단순히 사람들이 더욱 방종해지고 물질주의적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부드러운 표현입니다. 현 상태를 보면 반역과 무질서의 정신이 어디에나 만연해 있읍니다.
4. 누가 희생적 정신에 관심이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예언되었읍니까?
4 그러나 희생적 정신을 함양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읍니까? 있읍니다. 그들은 바로 여호와의 참다운 종들입니다. 이것도 예언되어 있읍니다. 시편 110:3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5. 그들은 가치있는 무엇을 위하여 희생합니까?
5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자신을 희생하는 데는, 무엇인가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런 가치가 있읍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하늘에 건설되었으며 얼마 동안 다스려왔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사실상 마지막 때는 오래 경과되었으며 이 낡은 사물의 제도를 위하여 남아있는 때는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행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이 지상에서 제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동을 개시하실 때는 하나님의 안전지대로 피신해 나오기에 너무 늦은 때일 것입니다. 성서 예언 성취로서 발생되고 있는 세상 사건들은 이 악한 사물의 마련에게는 불과 몇 해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희생하고,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왕국편에 굳건히 서도록 격려하는 것보다 더욱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읍니까? 이보다 더 나은 대의명분이 있을 수 없읍니다!
6. 왜 성서의 관점을 배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6 그러므로 희생적 정신을 부흥시킬 필요가 절실합니다. 그 왕국에 관한 기쁜 소식은 필히 전파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는 데는 충실하고 열성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요구됩니다. 자기 희생에 함축된 의미를 인식하는 것은 충실한 행로를 계속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기 희생이란 결코 단순한 형식주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 희생의 참된 정신을 갖고자 합니다.
무엇을 희생하는가?
7. 자기 희생에는 무엇이 포함되며, 무엇이 포함되지 않습니까?
7 여기서 논하는 희생은 다른 사람을 희생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희생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우리는 자기 희생에 관하여 논하는 것입니다. 광적인 독재자는 종종 자기의 대의명분이 정당하다고 확신하고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서슴치 않고 희생시킵니다. 소위 “자유” 국가에서 폭동을 일으켜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자들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읍니다. 무정부주의자들과 혁명가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의 희생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지, 부당하게 남까지 관련시키거나 남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8. (ㄱ) 무엇을 포기할 필요성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까? (ㄴ) 왜 그런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까?
8 희생이라는 것은 무엇을 포기하는 것과 관계가 있읍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들을 포기하는 것과 커다란 관계가 있는데 물질은 육신을 유혹하고 그리고 여호와께 대한 완전하고 순조로운 봉사를 방해합니다. 죄있고 타락한 육신은 이러한 물질의 매력과 육신의 욕망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말씀이 철저히 비난하는 일이나 강력히 경고하는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폭음 폭식은 이런 범주에 속할 것입니다. 도박이나 도박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과 가까이 교제할 자유가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한다든가 부당한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권리 밖에 있는 사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읍니다. 또한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적 건강을 해치기가 일쑤입니다. 그런 일을 피하는 것은 보통 과히 어렵지 않으며 실로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기본적인 것입니다.
9. 어떠한 것들을 포기하거나 감축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읍니까?
9 하지만 단순히 “정상적인” 생활의 일부로 갖는 오락은 어떠합니까? 그 지방이나 그 나라의 다른 점잖은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은 무방하지 않습니까? 성서는 지상 낙원에서 우리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들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줍니다. 아늑하고 큼직한 주택을 갖는 것, 교육적인 취미에 얼마의 시간을 보내는 것, 우수한 ‘텔레비 프로’를 보는 것, 수영이나 뱃놀이, ‘스키’나 관광 여행 같은 일을 통하여 정력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아마겟돈’ 후의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도 그와 같은 일을 즐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한 깨끗하고 건전한 일을 즐기는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10. 이러한 일들이 그 자체에 잘못이 없다면, 어디에 위험성이 있을 수 있읍니까?
10 이러한 일들은 그 자체에 잘못이 없읍니다. 그러한 일은 허용된다기보다 최상의 것에 가깝습니다. 적절히 즐긴다면 대단히 유익합니다. 단순히 균형을 잡느냐가 문제입니다. 남아있는 시간을 가능한 한 가장 선용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참으로 가치있고 가장 유익하며 특히 우리 시대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 혹은 결정하기 위하여는 사물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보람있는 일은 무엇이었읍니까? 마태 24:38, 39은 이렇게 말합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는 일 모두가 그릇되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읍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의 전파자”인 ‘노아’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들었어야 하였읍니다. 생활에서 이런 정상적인 것들이 그들의 생활 전체를 점유하여 그 당시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배척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되었읍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세상의 정상적인 추구에 과도히 열중하는 것보다 우리가 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세상적 추구를 포기하는 것은 아마 자기 희생에 있어서 보다 큰 시험이 될 것입니다.—고린도 전 7:29-31.
11. 이 면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는데 무엇이 필요합니까?
11 우리는 현재 포기하는 것과 장차 얻게 될 보상과를 올바른 각도에서 비교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에서’가 연상됩니다. 그의 가치 판단은 좋지 않았읍니다. 그는 죽 한 그릇을 얻고자 자기의 아주 귀중한 장자권을 포기하였읍니다. (창세 25:29-34) 예수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으셨지만, 그에게 약속된 보상을 얻기 위하여 충성과 자기 희생의 행로에 고착하였읍니다. 그는 균형잡힌 견해와 건전한 가치관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사도 ‘바울’도 건전하고 균형잡힌 견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빌립보 3:8에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
12. (ㄱ)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합니까? (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어떻게 우리를 가르쳐 줍니까?
12 또 다른 이유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자기 희생의 생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식별될 때 세상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견해와 관계가 있읍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평을 받기를 원하는 법입니다. 멸시를 받는 것 특히 부당하게 멸시를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으로서 두드러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만큼 탁월할 수 없읍니다. 이것을 그는 희생해야 합니다. 경멸당하는 것을 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 전서 4:13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라고 묘사하고 있읍니다. 어떠한 유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며 여호와의 종들에 대한 세상의 대체적인 견해는 어떨 것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바울’이 묘사한 것에 유의하십시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리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린도 전 1:26-31.
자기 희생은 쉽지 않다
13. (ㄱ) 변화받는 것을 곤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읍니까? (ㄴ) 더 나은 견해는 무엇입니까?
13 일부 사람들은 변화받는 것을 곤란하게 여깁니다. 그렇게 하면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무리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당신이 왜 다른가를 보일 기회를 포착하십시오. 이러한 것들은 기회이지 방해물이 아닙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은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옹호하고 그로서 효과적인 증거를 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많이 가질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스타일’, 유행, ‘파티’, 인기, 대학을 단념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당신은 의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참신한 본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들과 주부들은 인근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남이야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무엇이라고 말하건 진리를 단호히 지지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세속 직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들과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4. 자기를 부인하는 면에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14 사실 어떤 사람들은 변화받는 것이 곤란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들은 한 동안 여호와의 증인들과 연구하다가 중지합니다. 그들은 이것이 진리임에 틀림없다고 인정하지만, 그들이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는 못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헌신과 침례의 단계까지 밟고 얼마 동안 충성스럽게 섬기다가 떨어져 나갔읍니다. 장성으로 매진하려면 자기 희생의 행로를 충실히 걸을 것이 요구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식으로 자기의 여행 동반자를 잃었읍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느니라].” (디모데 후 4:10) 잘 발전하다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15. 자기 희생의 행로에서 이탈하고 변명할 수 있읍니까?
15 그러나 한 사람이 자기 희생의 행로에서 벗어나 방종한 세상적 행로로 되돌아가는 것은 실제로 누구의 잘못입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분은 지나치게 큰 시험을 허용하여 넘어지지 않을 수 없게 하신 일이 없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고린도 전서 10:13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호와께서는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방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자기 희생의 행로에서 이탈하여 물질주의적인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 가도록 유혹하는 것은 많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16. (ㄱ) 자기 희생의 훈련은 언제 시작해야 합니까? (ㄴ) 이에 대해 어떤 부모들은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나 최선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16 자기 희생의 행로를 몇 살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일찍 시작할수록 더 좋습니다. 유년 시절은 가장 좋습니다. 자녀들을 가치있는 집안 일로 바쁘게 하여 주는 부모는 가장 훌륭한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가족의 마련에 기여하는 뜻깊은 일이어야 하며 그렇게 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 어떤 부모들은 그들이 어렸을 때에 힘든 일을 해야 되었으며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다르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렸을 때와 같이 무엇을 자녀들에게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유년 시절에는 꾀죄죄한 옷차림을 하였고 장난감은 있을까말까 했으며 장시간 힘든 일을 하고서도 매우 검소한 식사를 했읍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녀에게 유익이 되게 하려면 이 모든 것을 다 변경시킬 필요는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필요한 옷을 마련해 주고, 건전한 오락을 허용하고, 위생적인 식사를 마련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들의 할 일을 없애 주지는 마십시오. 한가한 시간이 지나치게 많으면 어린이에게 전혀 이롭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여호와의 종으로서 정력적인 자기 희생의 생활과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훈련과 경력을 마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젖은 습관은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게으름도 확실히 습관이 될 수 있읍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언 21:25.
17. (ㄱ) 어린 시절에 검소한 생활을 한 부모들은 지금에 와서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은 무엇일 수 있읍니까?
17 실제로 그들이 자라던 시절에는 고되게 일을 해야 되었으며 장난감과 같은 것이 없이 지내야 했던 많은 부모들은 보통 그 일에 대하여 지금 무척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제는 대부분의 그런 일들이 자신들에게 이로웠으며, 그들이 그러한 훈련과 환경을 경험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잠언 22:6은 이렇게 격려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당신의 아들과 딸을 자기 희생의 행로로 징계하는 것은 당신이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유산입니다. 그리고 또한 당신이 본을 보이는 것이 당신의 구두 교훈의 요점을 강조하여 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8. (ㄱ)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경고하셨읍니까? (ㄴ)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18 다시 방종의 길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하기 쉬운 것이 불완전한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이라는 것을 아셨읍니다. 그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를 경고하셨읍니다. 역경의 40년 광야 여행 끝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느니라]” (신명 8:10-14) 그렇습니다.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된 사람은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가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대신에 자기를 의지하게 되고 타락으로 미끌어져 진리 밖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이것도 염두에 두시고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태 19:23, 24) 충성스럽게 여호와를 계속 섬기기를 원한다면 물질적 재산을 획득하는 일에 극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많은 물질적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기 희생의 선한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19. 물질을 소유하는 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읍니까?
19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정력에는 한도가 있읍니다. 이 가치있는 두 가지를 물질적 소유를 축적하고 관리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를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물질적인 것에 시간이 소비되고 정력이 소모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동안에 정신은 무익한 일에 바쁘게 됩니다. 영적 상태는 정신이 영적인 사물로 바쁠 때만 구축됩니다. 필요한 것 외에는 이 세상의 물품을 적게 갖는 것이 여러 면으로 축복이 될 수 있읍니다. (잠언 30:8)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시간과 정력과 생각을 왕국 관심사에 사용하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20, 21. 봉사 마련에 있어서 더 큰 융통성을 제안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20 그러나 협회는 근년에 회중의 봉사 계획과 다른 봉사면에 있어서 보다 광범위한 융통성을 제안하여, 회중에서는 전도인들에게 엄격한 규칙과 마련을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 형제들 각자가 가장 적합하다고 결정한 시간에 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예를 들면 일요일 아침에 우선 호별방문 사업을 반드시 하지 않고도 재방문이나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해도 무방하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읍니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억지로 봉사에 나갈 필요가 없으며 전파 사업과 가르치는 사업은 어떻게 해서든지 수행될 것이며 우리가 그토록 분투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까?
21 세밀히 조사해 보면 우리는 제안된 것이 손을 늦추라는 것이 아니라, 만일 개인적으로 원한다면 개인 전도인에게 맞게 일을 조정함으로 그가 실제로 더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봉사에 있어서 더 큰 솔선력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는 유업의 상을 [여호와]께 받을 줄을 앎이니[라]”(골로새 3:23, 24)라고 하였읍니다. 제안의 진의를 깨달은 많은 하나님의 종들은 야외 봉사에 있어서 시간과 능률을 크게 증가시켰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희생의 행로에 있어서 헌신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사실 그 필요성은 지금 더 커졌읍니다.
22. 자기 희생의 문제에 관한 결론은 무엇입니까?
22 자기 희생의 행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힘든 노력과 경계심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행로로 가도록 우리를 초대하신 분과 앞에 놓인 보상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것이 참으로 보람있는 일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그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오늘날 방종의 길을 피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배가시켜 줄 것입니다.
[각주]
a 「신 영어 성서」(영문), 1961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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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은 자기 희생의 행로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이다. 자녀들로 가치 있는 집안 일을 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