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7 12/1 546-549면
  • 폭력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하는 행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폭력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하는 행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
  • 장래는 어떠할 것인가?
  • 그리스도인의 행실
  • 중립
  • 하느님은 폭력을 어떻게 여기시는가?
    깨어라!—2002
  • 폭력
    깨어라!—2015
  • 이 위험한 때—왜 이토록 폭력적인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5
  • 폭력 시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9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12/1 546-549면

폭력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하는 행실

폭력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당신은 어느 길을 취해야 하는가?

세계적으로 각종 폭력이 증가일로에 있다. 국제적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폭력 증가로 말미암아 국제 연합 사무총장 「우 탄트」씨는 『우리가 제3차 세계 대전의 서곡을 목격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a

국가적 규모로 일어나는 혁명은 최근 여러 정부를 전복시켰다. 어떤 나라에서는 반대당이 전국을 유혈 전쟁으로 몰아 넣겠다고 위협까지 한다.

동시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폭력은 범죄와 폭동이라는 형태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미국에 관해서 한 잡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범죄는 본국 인구 증가보다 4, 5배나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무정부 상태가 될 것미다』.b 최근 조사에 의하면, 1967년의 처음 석달 동안 중범죄 건수가 작년의 동일한 기간보다 20「퍼센트」나 더 증가하였다. 이것은 인구 증가율의 15배 이상이다.

세계 도처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인가? 그 최종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그러한 폭력을 직면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

폭력의 근본 원인은 인류 전반이 하나님의 지도(指導)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지배하게끔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표준대로 생활하는 한, 인간은 평화와 행복을 확보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첫 조상은 하나님을 그들의 지도자로 삼기를 거절하였다. 그 대신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주 독립하기 위해서 반역하였고 자기 고집을 따랐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셨는데, 그 목적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규칙을 벗어난 인간의 행동이 평화와 행복을 가져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깨우치도록 하기 위함이다.—창세 3:17-19.

역사는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은 인간과 나라는 그들이 만들어 낸 정부, 이념, 철학을 채택하였다. 동일한 하나님의 법률과 원칙으로 지도받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사회 내에서는 분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하였다. 인간 반역 이래로 지금까지 반복된 사건들은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고 말한 「예레미야」의 말이 참됨을 증명한다. (예레미야 10:23) 「예레미야」는 또 이렇게 기록하였다.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예레미야 8:9)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고 자기 지혜에 의존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인류는 평화를 상실했다.

여러 세기를 거쳐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개선되지 못하였다. 왜? 왜냐 하면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 그들은 단 한 가지 방향—아랫쪽으로 타락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떨어져 있을수록, 그 상태는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다. 이 사실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가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아래로 굴러 가리라는 것을 예언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하다. 하나님의 법률을 떠나는 결과는 혼란상태로 타락되는 것뿐이다.

인간 상태가 점차 악화되었고 하나님의 지도를 너무나 오랫동안 받지 않았다는 사실 이외에 현재 폭력 증가의 원인이 있다. 성서는 계시 12:1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나님께 반역한 영물들인 「사단」 마귀와 부하 악귀들은 폭력의 주요 선동자들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계로부터 지상에 있는 인간을 자극하여 인류에게 피해를 입히도록 한다. 그들의 영향력의 범위는 얼마나 넓은가? 성서는 요한 1서 5:19에서 『온 세상은 악한자 안에 처』하였다고 말한다. 성서 예언과 현 상태를 비교해 볼 때, 현 20세기에 「사단」과 부하 악귀들은 천계에서 추방되어 지구 근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시 12:7-9) 이 보이지 않는 세력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폭력을 일으킴으로 인간을 더욱 타락시키고 있다. 왜? 그들은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을 포함한 모든 악한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가까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을 기필코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인류를 파멸시키려고 최후 발악을 하는 것이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베드로 전 5:8.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고, 악령들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인류는 그러한 행동에 후안무치가 되었다. 성서는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상태를 꼭 그대로 묘사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디모데 후 3:1-4.

장래는 어떠할 것인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폭력은 점점 감소될 것인가, 혹은 증가될 것인가? 성서 예언은 『악한 사람들[은] . . . 더욱 악하여』지리라고 확언한다. (디모데 후 3:13) 동시에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고 예언한다. (디모데 전 4: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예언하셨다.—마태 24:12.

따라서 폭력은 잠시 동안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가 끝날 때까지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폭력과 폭력범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갈 것이다. (요한 1서 2:17) 광폭한 폭력 사건이 차례로 발생함에 따라,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끝으로 급속도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는 약속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폭력으로 가득 찬 제도의 종말을 살아 넘을 것이라는 위안을 주는 약속은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정직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실

그러나 폭력을 가져 오는 여러 사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압제적인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하는 데 가담해야 하는가? 각종 권리와 불평 조정을 위한 「데모」를 하면서 시청으로 행진해야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난폭하게 굴거나 모욕을 가할 때, 그리스도인은 동일하게 응수하여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는다고 천명하고 있다. (디모데 후 2:24) 이 충고가 현명함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환경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충고를 적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그 정부가 아무리 독재 정부라 할지라도 폭력으로 전복시키는 일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같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하는 동안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은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을 잃는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기도하라고 하셨지, 현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싸우라고 하시지 않았다. (마태 6:9, 10; 요한 18:36) 그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압제적 정부들을 영원히 멸망시키실 것을 알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싸울 필요가 없으며」 단지 여호와께서 친히 해결하실 것을 인내깊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 해결만이 모든 인류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만족한 해결이다.

어느 국가에서든지 편견과 차별이 있다. 그 나라의 합법적 수단으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을 때, 당신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폭동을 일으켜야 하는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무법자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법을 준수하는 조직이며, 무법 면허장이 아니다. 무법이 정의를 가져 올 수 없다. 오히려 압제와 차별을 가중시킬 뿐이다. 하나님의 실용적 지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시 37:8, 9)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제는 너희가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의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고 기록하였다. (골로새 3:8)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악한 사물의 제도의 악행을 시정하실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정의를 가져다 주실 것을 기다린다.

폭동이나 「데모」가 자기 동네에서 일어났을 때, 그리스도인은 크게 주의하여 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폭력이 가라앉을 때까지 안전한 장소로 피신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경건한 지혜를 반영하는 것이다.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폭동이나 「데모」에 가담하거나, 심지어 호기심으로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다.—잠언 26:17.

그러나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시비를 걸고 모욕하고, 거칠게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동일하게 응수해야 하는가? 성서는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케』 한다고 경고한다. (잠언 15:1) 동일하게 응수하면 더욱 노를 일으키게 만들며, 아마 상대방은 신체적 폭력을 가할지 모른다. 특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악귀의 조정을 받고 있으며 환각제 등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대신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중 한 가지를 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유순한 대답을 할 것이다. 그것으로도 사태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은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라고 충고한다.—잠언 17:14.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폭력범을 피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위험 지대에서는 가능하다면 혼자 걷거나 어두운 거리를 지나는 일을 미리 피할 것이다. 우범 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알려 주기 위해 방문할 때에도 그리스도인은 짝과 함께 가는 것이 좋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해를 피하려고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대한 숭배가 관련된 경우에는 박해를 견딜 용의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성실과 불일치되는 이유로서는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중립

그리스도인은 폭력과 유혈을 가져 오는 국내 혹은 국제 분규에서 어느 쪽을 지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는 이 세상의 분쟁에 중립을 지킬 것이며, 그 분쟁과 관련된 유혈을 피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 관해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요한 17:1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폭력 투쟁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악행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이며, 순진한 사람들은 조금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을 안다.

세상의 분쟁에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제 일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것과 꼭 같이 하고 있다. 「주스틴 마티」가 제2세기에 쓴 기록을 유의하라. 『전에는 전쟁과 상호 살육과 각종 악행으로 가득찼었던 우리는 땅 전역에서 우리의 전투 무기는—우리의 칼을 보습으로, 우리의 창을 쟁기로 바꾸었고, 경건과 의와 박애심과 믿음과 회망을 배양한다. 이러한 성품들은 형주에 달린 분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다.』—「니케야 공의회 이전 교부들」 1권 254면.

많은 관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중립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내분으로 말미암아 경찰과 군대는 검문소를 설치하였다. 검문은 매우 엄격하며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에 군인과 경찰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최단 시간 내에 검사를 마치고 통과시킨다. 흔히 관리들은 『당신네들은 신임합니다.』라든가 『걱정마십시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을 압니다.』라고 말한다. 이 그리스도인들이 대회에 참석하러 갈 때는 검문소에서 『이미 다른 분들은 대회장으로 갔읍니다. 그러니 빨리 가십시오.』라는 말을 듣는다. 법시행 관리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중립 입장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며, 그들이 국가 혼란에 전혀 무관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관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때 개개 그리스도인은 중립을 유지한다.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 알려 주셨다. 그리스도인은 여하한 이유로라도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의 폭력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리실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머지 않아 곧 하나님께서는 폭력이 난무하는 현 사물의 제도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이다. 그는 『의의 거하는 바』 새 질서로 대치하실 것이다. (베드로 후 3:13) 폭력 앞에서 올바른 행실을 유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때 놀라운 혜택을 받을 것이다. 즉 생명과 건강, 평화, 행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폭력이 없는 새질서에서 영원히 생을 향유할 것이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 37:11.

[각주]

a 「뉴욕 타임스」, 1967년 5월 12일, 1면.

b 「유 에스 뉴스 엔드 월드 리포트」, 1966년 10월 17일, 86면.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