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그리스도인에게 요구 되는 것
1-3. 왜 온유는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성품입니까?
여름철에 일기 예보가, 기온이 적어도 38도(섭씨) 이상 될 것이며, 무덥고 습할 것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기뻐하겠읍니까? 혹은 겨울 철에, 수온주가 빙점 이하로 내려가고 눈보라와 함께 강풍이 불 것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즐거워하겠읍니까? 물론 보통의 사람들은 그러한 예보를 듣기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렇게 극단적인 기후 하에서는 일상 활동을 하러 나가는 것이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기후가 온화할 것이며, 기온이 22-5도(섭씨) 사이이며, 습도는 낮고 맑은 하늘에 간간히 뭉게 구름이 낄 것이라는 일기 예보를 들을 때는 어떠합니까? 물론 보통의 사람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좋은 날에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들여마시기를 원할 것이며, 원기가 날 것입나다. 이러한 종류의 날씨는 매우 유쾌합니다. 사실이지, 사람들의 태도조차도 흔히 개선됩니다! 온화한 날씨는 바람직하고, 사납고 극단적인 날씨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는 하등의 의문도 없읍니다.
3 그리스도인 성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성품으로서 온유는 거칠음보다 바람직한 것입니다. 사실상 온유는 바람직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4:1, 2에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고 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6:11) 「베드로」는 아내 된 자들에게 충고를 줄 때, 그들의 단장은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말하면서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 이니라.』고 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3:4) 그러므로 온유는 바람직한 것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성품입니다.
온유란 무엇인가
4. 온유가 그렇게 중요한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온유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성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산물(産物) 혹은 열매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 5:22, 23에서 「바울」은 『영의 열매는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신세)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성품은 이 땅에 있는 순종적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작용하는 하나님의 활동력의 한 가지 산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조화될 때, 그들이 그들의 생활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나온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맞추어 형성시킬 때, 그들이 하나님의 영을 구하고 그 영이 그들 내에 작용하도록 할 때, 그들은 이 성품을 산출할 것입니다. 온유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빠져 있음을 암시합니다. 즉 그가 그리스도인 장성에 이르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 안에서 자유로이 작용하고 있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5. 온유는 무엇을 뜻합니까?
5 온유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온유란 우리의 방식과 행동에 있어서 안온하고 온건하며, 우리의 감정과 타인에 대한 행위가 온화함을 뜻합니다. 온유는 상냥함, 부드러움을 뜻합니다. 이 상냥함은 애기를 돌볼 때의 상냥함에 비길 수 있읍니다. 자애로운 어머니라면 애기를 잠자리에 눞힐 때, 그 애기가 어디에 떨어져도 상관없고 어디를 다쳐도 아랑 곳할 바 없다는 듯이 아무렇게나 눕히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조심성있으며, 부드럽읍니다. 그는 두 손으로 애기를 안아서 애기가 다치지 않도록 상냥하게 이리 저리 눞힐 것입니다. 그는 안전한 데 눞히기까지는 애기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온유는 그와 같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성 있읍니다. 그러나 필요한 인생의 과업을 성취하기에 충분한 견고함도 가지고 있읍니다.
6, 7. 온유에는 어떠한 아닌 것들이 있읍니까?
6 온유에는 아닌 것들도 있읍니다. 그것은 거칠지 않읍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때 톡 쏘고 날카로운 언어를 사용하지 않읍니다. 동료 인간에 대해 무정하지 않읍니다. 남편은 온유를 「와이샤쓰 컬러」에 비교할 수 있읍니다. 만일 「컬러」가 너무 빳빳하면, 목에 거칠고, 고통을 주고, 살을 벱니다. 남편은 고통을 주지 않는 「컬러」, 목에 부드러운 「컬러」를 원합니다. 그러나 「컬러」로서 충분한 견고함을 가지고 있는 「컬러」를 원합니다. 온유는 그것과 같읍니다. 온유는 무정하거나 괴롭히거나 신랄하지 않읍니다.
7 온유는 성급하거나 조급하지 않읍니다. 온유는 즐겁게 해 주기가 힘들거나,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사소한 일에까지 사사 건건 문제삼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는 불쾌하거나 싸움을 좋아하지 않읍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쳐주라고 권면한 것처럼, 그것은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디도 3:2.
8, 9. 온유는 약함의 증거입니까?
8 그러나 온유를 약한 성격이나 비겁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결코 그렇지 않읍니다. 어떠한 사람이 온유한 성품 배양하고,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극단을 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용기가 없다거나 무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에 있어서 그것은 내강(內剛)을 암시하며, 그가 자신의 정신을 통제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틀잡혀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약하거나 무능할 수 있겠읍니까? 그렇지 않읍니다. 온유를 약함이나 우유부단, 마음이 변하기 쉬움, 결단력이 없음, 의지 박약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읍니다. 정반대로, 하나님의 성령의 이 열매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강하고, 담대하며, 결단력이 있읍니다.
9 사도 「바울」은 온유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할 때, 자기 자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린도 후 11:23-28, 32, 33) 이 모든 일은 용기 없는 사람의 사업같이 들립니까? 「바울」이 인간으로서의 약함과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작용한 하나님의 성령은 그가 수고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고, 두려움 없고 용감하도록 만들어 주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았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로 온유한 성품을 가지도록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성품에 있어서 온유한 반면, 동시에 하나님의 이 순종적인 인간 내에서 산출하는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 유익
10, 11. 온유가 가져다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10 온유는 온유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유익이 됩니다. 우선, 정신과 신체에 커다란 평정(平靜)을 가져다 줍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흥분하지 않읍니다. 그는 항상 걱정과 갈등으로 정신과 신체를 괴롭히지 않읍니다. 온유한 사람은 궤양이나 정신병에 걸릴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정반대로 온유는 감정을 균형잡히게 유지해 주고, 그 결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유익합니다.
11 온유한 사람이 받는 또 하나의 유익은 그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와 교제하기를 즐겨합니다. 그들은 온유한 사람과 교제할 때, 그의 유쾌한 태도와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새로운 힘을 얻읍니다. 마치 온화하고 유쾌한 날이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것과 같읍니다. 온유한 사람이 주는 유쾌한 영향력이 잠언 16:24에 잘 묘사되어 있읍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 니라.』 당신이 온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바로 그와 같이 느낄 것입니다. 당신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읍니다. 오히려 그의 온화한 태도는 꿀송이와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됩니다.
12. 우리가 여호와의 배열에 따라 우리의 위치를 지키도록, 온유는 어떻게 도움을 줍니까?
12 온유는 우리로 여호와의 사물의 배열에 따라 우리의 위치를 지키도록 해 줍니다. 왜냐 하면 온유는 우리로 순종적이 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상대적 복종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온유한 정신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배열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 것은 교만한 정신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매우 훌륭한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다! 그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 죽으심이라.』—빌립보 2:5-8, 신세.
13. 온유는 우리로 어떠한 탐탁치 않는 성품을 피하도록 도와 줍니까?
13 온유가 주는 다른 이익이 있읍니다. 즉 우리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눈에 『빛』나 보이려는 경향을 피하도록 도와 줍니다. 이러한 경향은 장성한 참 그리스도인들과 여호와께 불쾌한 것으로서 피해야만 할 경향입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그릇된 명예심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라].』 (잠언 16:5) 온유한 사람은 이 사실을 더 잘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형제를 희생해서 까지 자신을 높이려는 야심을 가시거나 자기가 우월하다는 망상으로 그들을 깔보거나, 하나님께 속한 온유하고 양같은 다른 사람들을 주관하려고 꾀하는 일을 피할 것입니다. (마태 23:11, 12) 온유는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대할 때, 주인과 같이 아니라 종과 같이 행동하도록 해 줄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항상 높임을 받아야 될 분은 여호와이시고, 모든 인간은 죄를 타고 태어났으며, 대속물(代贖物)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합니다. 자신의 타락된 상태와 여호와의 대속물의 마련의 필요성을 기억하는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지 않읍니다.
점진적으로 온유를 배양함
14-16. 온유를 반대하는 세 가지 영향력을 말하십시오.
14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지식에 이른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생애를 돌이켜 볼 때, 『아, 내가 온유하지 못하였고, 또 온유했었어야 할 때를 여러번 기억할 수 있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순간에도 그들이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온유한 사람 가운데 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틀림없이 많을 것입니다. 아마 당신의 경우가 그러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나 낙담하여 더 온유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온유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선천적 성품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유전 받은 죄와 불완전성 때문에 우리 인간은 선보다는 악을 행하기 쉬운 경향을 타고 났읍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 5:12) 시편 필자 「다윗」은 이 사실을 시인하여, 시편 51:5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15 그 외에도 우리를 온유로부터 멀리 잡아 끄는 것들이 있읍니다. 그중에는 그리스도인 활동을 반대하고, 혹은 악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지상의 앞잡이들을 시켜서 박해나 압력을 가함으로 그들의 온유를 시험하는 악령(惡靈)들이 있읍니다. 「바울」은 그러한 반대를 에베소 6:12에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읍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6 또한 악귀의 통제를 받는 사물의 제도와 그 악한 세상의 영을 대항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하나님께 속한 온유한 정신을 가지지 않고 「사단」 마귀에게 속한 거칠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매일 일합니다. 이 사물의 제도의 정신적 경향 혹은 분위기는 그리스도인의 온유를 반대합니다.
17, 18. 우리는 세상과의 접촉을 전적으로 피할수 없으므로 무엇을 할 필요가 있읍니까?
17 우리는 온유한 정신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전적으로 피할 수는 없읍니다. 왜냐 하면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구되는 것은 상대방이 반대하거나 괴롭힐 때, 그와 동일하게 보복하지 않도록 자신의 정신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 제어된 온유한 정신은 그러한 긴장의 때에 우리를 건져 주며,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게 해줍니다. (고린도 전 5:10; 4:12, 13) 이 점에 있어서 예수께서도 모범을 세우셨읍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느니라].』—베드로 전 2:23.
18 악으로 인도하는 영향력이 너무나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이 온유한 성품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할 필요성이 있음은 명백합니다. 이 성품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오는 성품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무정하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매년 매년 우리는 유전받은 죄, 「사단」 마귀와 악귀들, 이 사물의 제도의 악한 영의 인도를 받는 자들을 대항하기 위해서 온유함을 점진적으로 배양(培養)해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온유를 배양하지 않는다면, 그런 것들이 다른 세상 사람들과 같이 우리도 거칠게 만들 것입니다.
19. 필요한 일차적 단계는 무엇입니까?
19 우리는 어떻게 온유를 배양할 수 있읍니까? 우선, 온유에 관해서 배움으로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온유는 배양될 필요가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 성품임을 발견함으로써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올바른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을 압니다. 온유란 탐탁치 않은 성품이라고 믿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정하고, 난폭하고 거만해야 한다고 믿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20. 왜 우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고려해야 합니까?
20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더 온유해지려는 우리의 노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서, 우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계속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불완전하며, 잘못을 범하기 쉬운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읍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 감정이입(惑淸移入)이 필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됨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없음을 인식하십시오. 온유를 배양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것이며, 심지어 『일흔 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온유한 사람은 사랑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마태 18:21, 22, 신세; 베드로 전 4:8.
21, 22. 왜 우리는 남을 화나게 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까?
21 만일 우리가 상대방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실망은 하나의 시험이 됩니다. 왜냐 하면 온유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거칠은 정책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은 상대방으로 그들의 온유를 상실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반응은 우리 쪽에서 온유를 더욱 상실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결국 악순환이 계속될 뿐입니다. 최선책은 처음부터 그런 과정을 시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언 26:20에서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말한 바와 같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억압하고 강요하고 약을 올린다면, 상대방이 괴로워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화나게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모세」—『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몰지각하고 도발적인 태도로 인해서 그의 온유를 상실하지 않았읍니까?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민수 12:3; 20:2-13; 시 106:32, 33.
22 거칠은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으로 온유를 상실하도록 한다는 점을 잘 예시하는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가 있었읍니다. 그 기사는 영국 하원(下院)의 여자 의원에 관한 사건입니다. 한 때 그 여자 의원은 전(前) 영국 수상이었던 「원스톤 처칠」씨에게 『만일 내가 당신의 아내라면, 당신의 「커피」에 독을 넣겠소.』라고 매우 신랄하게 말하였읍니다. 이에 「처칠」씨는 『만일 내가 당신의 남편이라면, 그것을 마시겠소.』라고 응수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불타는 데 나무를 집어 넣었으며 그 결과로 열띤 대꾸를 유발 시켰읍니다. 잠언 26:21의 말씀과 같읍니다.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 [혹은 여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읍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그들의 온유를 상실할 정도로 화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입니다.
23. 다양성을 시인하는 것은 우리의 온유에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23 우리가 온유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되는 또 한 가지는 여호와께서 적절한 범위 내에서는 각자의 성품, 취미, 기호에 있어서 다양성을 허용하심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놀라운 자유 도덕 기능을 부여하셨읍니다. 이것이 완전한 자유를 허용하지는 않으나, 인간 행동의 여러 분야에 있어서 상대적 자유를 허용합니다. 왜냐 하면 완전한 자유란 인간이 하나님과 그의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양성을 허용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매사에 있어서 당신 주장대로 혹은 당신 취미대로 하려고 고집 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이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틀에 꼭 들어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각각 다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창조에 속한 다채로운 차이를 파괴하려는 당신 자신의 법칙을 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엄격함이나 일치가 요구되는 경우, 숭배나 올바른 교리, 올바른 행동에 관한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보이는 조직이 우리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알려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에 다분히 달려 있는 것, 말하자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오락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등등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을 우리도 허용해야 됨을 염두에 둘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취미가 나의 취미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흥분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24, 25. 온유를 배양한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까?
24 온유를 배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까? 아마 각자의 배경, 초기 훈련, 인생의 경험, 그리스도교에 있어서의 장성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온유를 배양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발전이 더딜 것입니다. 그러나 낙담하여 포기하지 마십시오. 「바울」이 로마 7:21-23에서 말한 바를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5 그렇습니다. 당신의 타락된 육체와 외부 영향력은 당신이 온유를 배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줄 수 있읍니다. 그러나 당신이 때때로 거칠게 행동하게 된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걸음마를 배우는 애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그러나 일어나서 계속 노력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성공하여, 확고히 발을 내 딛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온유를 배양하기 위해서 점진적으로 노력할 때, 때때로 넘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발전하겠다는 결의를 재확인하십시오. 이 온유란 면에 있어서 장성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하십시오. 점진적인 발전에 만족하십시오. 그 일이 당신의 예상보다 더디다는 이유만으로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26. 여호와께서는 이 점에 있어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 것입니까?
26 동시에 여호와는 자비로우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부족할 때,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할 수 있읍니다. 또한 우리는 도움을 달라고 계속 기도할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온유는 여호와의 영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온유를 산출하는 하나님의 영을 달라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때가 되면 이 강력한 도움을 받음으로 온유를 결하던 사람은 온유를 획득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것이 그의 성품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마치 걷는 것이 신체가 장성됨에 따라 거의 습관화 되듯이 온유도 거의 습관화될 것입니다.
27. 온유는 어떠한 풍부한 축복들을 가져다 줍니까?
27 온유를 배양할 때 풍부한 보상이 온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 결과로 비록 당신이 암담한 상태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은 더욱 더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당신은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로 낙담하거나 무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유가 주는 또 한 가지 보상은 당신으로 하여금 진리를 더 잘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을 당신에게 점진적으로 계속 계시함에 따라서 당신은 그러한 새로운 진리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되고, 당신의 생활을 그 진리에 따라 틀잡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야고보 1:21이 그 대답입니다.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그렇습니다. 당신의 구원이 관련 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성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시편 37:11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라고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받을 수 있는 대열에 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