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7 7/1 309-312면
  • “체면유지”라는 함정을 피하라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체면유지”라는 함정을 피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그들과 함께 『달음질하지』 말라
  • 『죄』를 시인하고 대항함
  • 예기치 않는 사태
  • 「온유한 심령으로 . . . 바로잡음」
  • 여호와께 명예를 돌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 체면 유지에 대한 균형잡힌 견해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당신의 체면 유지는 어느 정도인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도움이 필요할 때 영적 도움을 위한 마련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7/1 309-312면

“체면유지”라는 함정을 피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할복 자살을 권유한다면, 당신은 그의 말을 듣겠읍니까? 물론 당신은 그의 말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에서는 그러한 식의 「체면 유지」책(策)은 다반사였었읍니다. 오늘날에 와서 그러한 식의 자살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으나 『체면 유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계속되어 내려왔읍니다. 이것은 불경이며 비성경적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그렇게 할 때, 혼란과 불화가 오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할 때, 심지어는 영적 면으로 자살하게 될 수도 있읍니다.

「웹스터 신 국제사전」에 의하면 『체면을 유지하다』의 정의는 다음과 같읍니다. 『허위 수습책으로 자기의 패배, 낭패, 혹은 위신의 상실을 감추다.』 그러므로 이것은 거짓말에 해당합니다. 체면 유지의 근저에는 교만, 자아(自我)를 상(傷)한다는 공포가 깃들어 있읍니다. 그리하여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며, 문제를 직면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시정과 징계가 필요함을 부인합니다. 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자기만 옳다는 것입니다. 「체면 유지」는 원칙이 아니라 감정에 뿌리박고 있읍니다. 흔히 그 결과로 그들은 위축되거나, 혹은 그들이 곤궁할 때 진실로 도와줄 친구들과 교제까지도 멀리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체면유지』라는 함정을 피할 수 있읍니까?

그들과 함께 『달음질하지』 말라

그들 주위에 있던 이교도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에서 돌아선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느니라].』 (베드로 전 4:4) 「군중과 함께 달음질하는 것」은 오늘날의 풍조입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동네에서 외양상으로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어떠한 부정직한 일까지도 감행합니다. 그들의 불문률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웃에게 『체면을 유지』하고 『면목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 악한 사물의 제도로부터』 구출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떠합니까? 그는 과거의 행로를 따르던 『낡은 성품』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성품에 따라 생활하고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 1:4; 에베소 4:22-24) 여기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란 말에 유의하십시오. 이제부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며, 충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로마 12:1, 2.

그러면 『체면을 유지』하고 군중과 함께 영합(迎合)하는 것이 그가 살고 있는 곳의 관습일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다. 빚을 져서까지 『체면』을 세울 필요가 있읍니까? 그 동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하여 사치스러운 결혼식, 특별한 축제일, 어린이 날들, 종교적 성일들을 지켜야 합니까? 이교식의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혹은 심지어 불신자인 배우자를 맞아들임으로 친척들 앞에서 『체면을 유지』해야 합니까? 분명히 그렇지 않읍니다! 또한 그가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 형제들과의 이해와 협조로써 능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집회에 빠지거나 심지어 집회 참석을 중단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를 시인하고 대항함

교만으로 인한 「체면 유지」는 흔히 『죄』를 인정하지 않고, 죄를 대항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죄』를 죄 그대로 시인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위합니다. 그들은 문제를 얼버무리거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시킵니다. 그들이 계속 자신을 정당화함에 따라서 그들의 마음은 마치 부젓가락으로 화인맞은 것처럼 무감각하게 되어서, 급기야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디모데 전 4:2.

우리 모두는 죄를 짓는 경향이 있읍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 3:2) 그러나 죄를 지었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자기를 정당화함으로 그 일을 얼버무리거나 혹은 숨기려고 해야 하겠읍니까? 『체면을 유지』하려고 하는 대신 「야고보」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따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야고보 5:16) 고침을 받은 다음에야 양심의 가책이 더 있을 수 없지 않읍니까? 그 죄는 과거의 것입니다. 이제는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매진하십시오.—빌립보 3:13.

우리가 이 불완전한 육체에 거하고 있는 한은 죄를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면하도록 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할 것이요.』 (요한 1서 1:8–2:2) 하나님께, 우리의 형제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죄와 결점을 시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짖지 않은 척함으로 『체면 유지』를 하려는 습관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예기치 않는 사태

그리스도인은 그의 성실을 시험하는 어떤 환경에 갑자기 걸려 들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어느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한 사람이 『축배』를 들자고 합니다. 그는 축배가 이교에 기원을 둔 관습임을 알고 있읍니다. 혹은 장례식에 갔는데, 참석한 모두가 일렬로 서서 향을 피우거나 죽은 사람의 사진에 절을 합니다. 그러한 관습은 영혼이 불멸이라는 거짓 신앙과 관련을 가진 이교 관습입니다. 혹은 군중 속에 끼어 있는데 애국가가 연주되자 모두가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한편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눌 수 없는 충성을 하나님의 왕국에 서약한 사람입니다. 최선책은 타협으로 인도할지도 모르는 환경을 미리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면 장성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세 「히브리」 청년들과 「다니엘」과 기타 시련 하에서도 성실을 지킨 사람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성실을 지키는 사람임을 증명할 것입니다.—마태 4:1-11; 다니엘 3:14-18; 6:6-11.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즉 여호와의 이름과 그리스도인 회중에 커다란 모독을 돌린 죄를 범하였을 경우, 건전한 행로는 자기의 잘못을 회중 내에 있는 책임있는 형제들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5:14-16)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조직 내에서 일하는 이 종들을 어떻게 볼 것입니까? 무서운 재판관으로? 결코 그렇지 않읍니다! 회중 위원은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지고, 격려하고 북돋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로마 15:1, 2.

「온유한 심령으로 . . . 바로잡음」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은 남이 가까이 하기 쉬운 사람들이어야 하며, 보통의 경우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이 가까이하기 쉬운 것 자체가 하나의 방지책으로서 약한 회중 성원들이 『체면 유지』에 급급하지 않도록 해 줍니다. 만일 회중 내의 어떤 사람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즉시 감독자나 혹은 다른 장성한 형제들에게 가야 합니다. 그의 비위만 맞춰 줄 감정적이고 비장성한 사람에게 가지 말 것입니다. 책임있는 형제들은 『사람으로 된 선물』로 임명된 사람들입니다. 즉 그들은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 . .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하기 위하여 모두가 한 믿음에 있어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하여 임명 되었읍니다. (에베소 4:8, 13, 14) 그들은 광풍과 같은 곤경의 때에 『광풍을 피하는 곳』입니다. (이사야 32:2) 진정한 의미의 감독자는 「바울」의 다음과 같은 충고와 일치하게 도와 주고 북돋아 주기 위해서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읍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갈라디아 6:1.

그러므로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은 약한 성원을 때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바로 잡』고 그들을 북돋아 주기 위한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충고할 때, 심지어 중대한 범죄를 저질른 경우라 할지라도 이 종들은 결코 야단치거나 화를 내지 않읍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비[친절, 신세]와 . . . 온유와 절제』를 포함하는 『성령의 열매』를 모범적으로 나타낼 것입니다. (갈라디아 5:22, 23) 이 사실을 인식하는 회중 성원들은 모름지기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이 종들에게 가기를 힘 쓸 것입니다. 그 반대로 그리스도인 회중에 나오지 않음으로 『체면 유지』만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조직으로부터 제명처분을 받아 쫓겨나는 자들은 「습관적으로 죄」를 계속 범하는 회개치 않는 자들입니다. (요한 1서 3:4; 고린도 전 5:11) 「미처 깨닫기 전에 발을 잘못 디딘 사람」은 그러한 고칠 수 없는 죄인의 부류에 들지 않읍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읍니다. 즉 그 범죄가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회중 위원들이 하나의 도움이 되고 시정시킬 수 있는 방책으로서 그 사람에게 감시 근신 처분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읍니다. 그러나 근신 처분을 불리한 심판, 『명예』에 커다란 손상을 가져 오는 것, 저항해야 할 형벌로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근신 처분은 그의 회개의 성실도를 증명하고, 그 회개한 범죄자가 그의 영적 상태를 회복하고, 다시 강하게 해 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기회를 주는 자비스러운 마련입니다. 근신 기간 동안 친절하게 충고를 준다면, 그 사람은 죄를 「습관적」으로 짓지 않도록 북돋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근신 처분에 반항함으로 『체면 유지』에 급급하는 대신, 죄를 지은 사람은 그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자비스러운 마련을 환영해야 마땅합니다.

모든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신임해야 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경멸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사무엘 상 2:30)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죽을 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의 명예를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거만하고 『체면 유지』만 하려는 인간의 생각을 가지는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을 구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 명백히 선명하신 원칙들에 따라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