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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체면 유지는 어느 정도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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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3월호 23-25면

당신의 체면 유지는 어느 정도인가?

당신은 할복 자살하는 것과 “촉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것”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또 큰 빚을 지면서까지 사치스러운 종교 의식을 치르는 것과 논쟁에서 결코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사이의 공통점은 어떠한가? 공통점이란, 이러한 일들이 대부분 체면을 유지하려는 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체면 유지란 무엇인가? 중국어에서, “체면”이라는 단어는 “명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체면 유지란 “명예나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 특히 “수치”스러운 일을 당할 것 같을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잘못된 일인가? 아마도, 자존심을 유지하려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상당한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태 22:39) 자존심을 갖고 있으면 우리가 깨끗하고, 신뢰할 만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 더럽고, 신뢰할 수 없고, 부정직하다는 평을 받고 싶은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그러나 체면 유지란 그 이상의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우리의 명성이나 명예가 최대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예를 들어 한 관측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수치심이, 서구 윤리에서 ‘깨끗한 양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 그리고 죄를 피하는 일 등이 점하는 권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인이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하여 희생을 하듯, 어떤 사람들은 수치를 피하기 위하여 또는 체면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을 하고자 한다. 심지어 한 때 일본에서 어떤 이들은,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것 같을 때, 매우 참혹한 자살 방법인 할복으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우리는 체면 유지를 위하여 그 정도까지 가야 할 것인가?

“체면”을 위하여 사람들이 하는 일들

동양에서 어떤 사람들은 “체면”이 손상당할 것으로 생각이 되면, 할복 자살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 또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희생을 치르는 때도 있다. 특정 불교 경축일에, 어떤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가정들이 이웃에 대한 체면 유지를 위하여 가족의 일주일치 전 식비를 들여서 한 가지 의식용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그 지역에서 가장 비싼 식당으로 모시는 경우도 있다. 아마 주인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르며, 손님은 차라리 집에서 식사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집주인은 체면을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낀다.

어떤 나라에서는, 딸이 시집을 가면 친정 아버지가 신혼 부부를 위하여 가구 딸린 집을 마련해 주는 습관이 있다. 만일 그가 값비싼 집을 마련해 준다면 “체면”을 세우는 것이 된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하기 위하여 큰 빚을 지는 경우가 있다. 보통, 신랑은 신부에 대한 답례금(答禮金)을 주게 된다. 그 역시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거액의 답례금을 주고자 빚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부의 아버지는, 가구 딸린 집을 마련해 주느라고 이미 빚을 졌을 텐데도, 그 답례금을 되돌려 주고자 한다. 그는 그 돈을 받음으로써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체면 유지를 위하여 그 정도까지 하려고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또한 체면을 유지하려는 욕망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경우도 있다. 동양의 한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면, 종종 “서양 종교에 들어 감”으로써 가족의 체면을 손상시키려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서양 종교”가 아닌데도, 그러한 곳에서는 그렇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비난을 받고 싶지는 않겠지만, 만일 우리가 옳다고 알고 있는 일을 “체면”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세계적인 경향

체면을 유지하려는 경향은 동양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예를 들어 “촉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경우를 고려해 보자. 자신의 필요에 꼭 알맞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느날 이웃 사람이 비싼 신형 자동차를 산다. 이전에는 자기의 자동차로 완전히 만족하고 있던 그 사람이 이제는 불만을 느끼게 된다. 이유는? 자기의 차를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웃 사람의 신형 자동차 때문에 자기의 차는 구형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전혀 필요하지도 않으며 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는 신형 자동차를 사게 되는 것이다. 이웃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그의 동기는, 할복 자살을 하는 어떤 동양인들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충고나 시정의 말을 해주었을 때 당신은 화를 낸 일이 있는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일이 있는가? “온 기가 막혀서, 도대체 자기가 무엇인데, 남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자기나 잘 할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였다면 당신은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자존심 또는 명예심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떤 사람은 체면을 유지하려 하다가 마침내 큰 희생을 치르게 되는 일이 있다. 가령, 그가 심각한 죄를 범했다고 하자.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사실을 솔직히 시인하고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가 없다. 마침내 그 죄가 드러나게 되고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그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면 그는 모든 사실을 부인한다. 수치심 또는 완고함 때문에, 그는 심지어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떨어져 나가, 그와 창조주와의 관계 및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위태롭게 만드는 길로 빠지고 말 수 있다. 우리는 체면 유지를 위하여 그 정도까지 해야 할 것인가?

또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죄를 짓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당신은 쉽게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공의”를 요구하는가? 때때로 그리스도인은 다른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죄를 범할 수 있다. 몹시 감정이 상한 피해자는 그 건을 회중의 장로들에게 제출한다. 그리하여 범죄자는 책망을 받고 회복을 하게 된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 일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장로들이 너무 관대하였으며 자기의 피해를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런 추리의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의 위신이 손상되었다는 감정이, 범죄한 형제의 회복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체면” 또는 명예를 유지하기 위하여, 범죄자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예들도 많이 거론할 수 있다. 당신은, 진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명약관화한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또는 다른 사람의 제안은 받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제안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 들이지 않을 때에는 감정이 상하여 화난 태도를 보이는 사람, 혹은 자신의 의견을 완고히 고집하며 결코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을 보았는가? 자신의 명망있는 직업 또는 높은 교육 수준을 지나치게 자랑하는 사람, 혹은 그와는 반대로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에 부끄러워 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가? 이러한 것들은 모두 “체면” 또는 개인적 명예에 대하여 과도한 관심을 가진 결과 나타나는 특성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체면 유지를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가고자 하는가? 사실상, 나는 체면 유지라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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