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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를 말하는자가 맹세로써 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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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를 말하는자가 맹세로써 등장하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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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파66 3/15 108-114면

진리를 말하는자가 맹세로써 등장하다

1, 2. (ㄱ) 십계명의 수여자는 왜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십니까? (ㄴ) 형상을 사용하는 예에서와 같이 사람들은 무엇을 부가함으로써 자신이 거짓말장이임을 나타내었읍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예언자 「모세」를 통하여 반포하신 십계명 중 아홉째 계명은 이러합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출애굽 20:16) 거짓에 대항하는 이 법으로 말미암아 위대하신 입법자는 스스로 거짓말장이에 대항하는 대열에 서십니다. 왜냐 하면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시고 동시에 자신의 율법에 조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 1:21-25) 그는 거짓을 미워하시며 거짓의 아비가 되었던 일이 없으십니다. 그의 말씀은 모든 티를 깨끗이 한 정제된 순금과 같읍니다. 기원전 고대에 살았던 가장 현명한 사람이 말한 바와 같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언 30:5, 6.

2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인간이 만든 전통과 계명들을 부가함으로써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가르침과 계명에 반대되어 거짓말장이임이 입증되었읍니다. (마태 15:1-9) 타협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형상을 통하여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숭배할 수 있다는 종교적 가르침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부가함으로써, 그들의 교인들이 우상 숭배자가 되게 하는 길을 열어 놓았읍니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형상을 숭배의 보조물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을 로마서 1:25에 묘사된 반열에 처하게 합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그러한 피조물 즉 인간이 만든 종교적 형상들은 거짓 것입니다. 그것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으로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그들을 인정하실 수 없읍니다.

3. (ㄱ)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그 자체가 진리며 거짓이 아닙니까? (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의 말씀에 무엇을 부가하는 것을 좋아하셨읍니까?

3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은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요한 1서 2:21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이 될 수 없읍니다. 그것이 말한 바에 있어서나, 참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 실패한다는 면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읍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예언은 어김없이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것 자체를 진리로서 의지할 수 있으며 그것은 진리로서의 그 가치를 조금도 상실하지 않읍니다. 그러나 때때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단순한 약속이나 예언의 말씀에 어떤 것을 부가하시기를 좋아하셨읍니다. 그것은 모순되는 부가가 아니고 힘을 주는 부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맹세 즉 서약입니다. 그는 그의 말씀에 서약하십니다.

4. 성경에 맨 처음 맹세한 사람으로서 기록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떠한 환경에서 맹세하였읍니까?

4 성서 가운데서 맹세한 사람으로서 맨 처음에 기록된 사람은 하나님 자신의 벗, 「아브라함」입니다. (야고보 2:23; 이사야 41:8; 역대 하 20:7) 이것은 기원전 이십 세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족장 「아브라함」은 약탈해 간 네 왕들을 패주시키고 그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과 또한 「롯」이 살고 있던 곳에 인접한 「소돔」 시로부터 약탈한 물건을 되찾았읍니다. 「아브라함」이 왕의 모든 소유물을 반환하여 그에게 주었을 때 「소돔」 왕은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창세 14:11-24) 이렇게 「아브라함」은 살아계신 가장 높으신 분을 두고 맹세하였읍니다. 그는 그 이상 더 높은 분으로 맹세할 수 없었읍니다.

5. (ㄱ) 「소돔」왕에게 대한 「아브라함」의 맹세는 어떠한 몸짓으로 표시되었읍니까? (ㄴ) 사용된 두개의 「히브리」어 단어가 나타내고 있는 바와 같이 어떤 두 가지 맹세가 있었읍니까?

5 「아브라함」이 서약 즉 맹세한 것은 「소돔」 왕이 재물을 제공하였을 때에 그에게 대답하면서 그의 손을 들어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게 함으로써 표시되었읍니다. 이 사실은 맹세란 무엇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한 성서 사전은 맹세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대인들), 하나님에게나 또는 그 간원자(懇願者)가 인정하는 권위에게나 또는 거룩하다고 간주되는 어떤 것에게 단언하는 증언이나, 약속한 것 혹은 맡은 임무의 확증을 호소하는 것. . . . 『맹세(oath)』는 흠정역에서 두개의 「히브리」어 단어 「알라」(alahʹ, אלה)와 「샤부아」(shabuahʹ, שבועה)를 번역한 것인데 각각 아래의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1. 진술의 진실성을 확증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는 맹세 (느헤미야 10:30; 출애굽 22:10).

2. 서약한 진술 (창세 26:28; 사무엘 하 21:7).

3. 저주 혹은 악담 (민수기 5:21; 다니엘 9:11) . . .

그러나 「알라」(alaah’)와 「샤부아」(shabuah’)이 두 단어는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그것은 두 가지 형식의 선서, 보다 더 두 가지 계급의 맹세를 나타낸다. 「알라」(어원은 「알랄」[alal’], 탄식하다, 슬퍼하다, 비애를 나타내다 . . . )는 자신에게 재난을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만일 확언한 것이 사실이 아니면, 자기에게 신의 복수를 청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선서의 형태를 나타내지만, 「샤부아」(어원은 「세바」[sheʹbaʽ], 일곱)는 문자 그대로는 자기 자신을 일곱으로 하다, 일곱을 만들어 내다, 다시 말하면, 희생자 일곱명으로 혹은 일곱 증인 앞에서 확증한 선언을 하다를 의미한다. 왜냐 하면, . . . 고대에 상호 약속을 하거나 동맹을 맺을 때 짐승 일곱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 21:28-30) . . . 그러므로 두 가지 맹세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전자(알라)의 경우에 있어서는 저주가 있고, 후자(샤부아)에 있어서는 저주가 없다.a

6, 7. (ㄱ) 가장 많이 맹세한 분으로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ㄴ) 여호와께서 맹세하실 때에 왜 자신에게 화를 불러 댈 필요가 없었읍니까?

6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맹세하신 것으로 성서에 기록된 사실을 아십니까?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에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곳이 칠십회 혹은 그 이상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나 그와 관련해서는 「히브리」어 「알라」(alah’)가 결코 사용된 적이 없읍니다. 즉 맹세한 자가 거짓말하였다거나 성취시키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자기에게 화를 부르는 것을 표시하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실 때에는, 그가 하신 선언이 참되지 않을 경우나, 그의 약속이나 예언을 그가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나, 그가 책임진 의무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 자기 위에 어떤 화가 미치도록 요구해야 할 필요가 결코 없읍니다.

7 그러한 일이 있을 가능성이란 전혀 없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이 거짓임이 증명되거나 그의 말씀을 이루지 못하거나 그것에 따라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에게 무슨 무서운 일이 발생되기를 요구할 필요가 없읍니다. 자기와 관련해서는 그러한 것을 암시도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셨다고 기록된 「히브리」어 원문의 모든 경우에, 「히브리」어 단어 「샤바」(shabaʽʹ)가 재귀형(再歸形)으로 사용되었읍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일곱까지』의 의미입니다. 성서에서 일곱이라는 수자는 완전한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므로, 그것은 한 사람이 완전한 점까지 갔음을 의미합니다.

8. (ㄱ) 하나님께서 언제 맨 처음으로 맹세하신 것이 성경에 나와 있읍니까? (ㄴ) 맹세한 말씀에는 어느 정도 중요성이 있었읍니까?

8 성서에 기록된 맨 처음 맹세에서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은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읍니다. 또한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맨처음 맹세하신 때에 그는 자기의 벗,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맹세하셨읍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맹세하실 만큼 느끼신 사건이라면 보통이 아닌 특별한 것임에 틀림없읍니다. 실제로 그랬읍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최후의 인간 아기가 출생될 때까지 모든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었읍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은 천 구백년후에 지구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144,000의 인간 족속에게 특히 중요하였읍니다.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여 그것을 말씀하셨읍니까?

9. 언제 어디에서 맹세하는 말씀을 하셨으며,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는 일을 중지당하였읍니까?

9 그 맹세하는 말씀을 하신 것은 기원전 십 구 세기에 「모리아」 산에서였읍니다. 그 때에는 「살렘」 (후에 「예루살렘」)시의 성벽이 「모리아」 산정을 둘러있지 않았었읍니다. 하나의 제단이 그곳에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의 「솔로몬」왕의 성전에 있던 제단은 아니었읍니다. 그 성전은 기원전 십 일 세기에 처음으로 「모리아」 산에 건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다듬지 않은 돌로 세운 제단으로서 그 위에서 그의 아들 「이삭」을 여호와 하나님께 인간 희생으로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낳은 독자 「이삭」을 제사드리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제단 위에 놓은 나무 위에 묶어 놓인 「이삭」을 죽이려고 하던 바로 그 찰라 하나님의 천사가 「이브라함」의 이름을 부르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0.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읍니까?

10 이제 「아브라함」의 주의는 근처 숲에 걸려 있는 어린 양에게로 끌리게 되었읍니다. 「아브라함」은 이 짐승을 하나님의 마련으로 받아들여 「이삭」 대신 그것을 제물로 드렸읍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틀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shabaʽʹ] 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세 22:1-18

11. 맹세하신 그 말씀은 왜 세계적으로 중요하며, 그러나 어떤 반대자들은 왜 그 성취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11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경우에 『여호와께서 이르』신 것이 세계와 관계될 만큼 중요한 것이었읍니까? 그렇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오늘날의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여, 『천하 만민』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간에 그것의 성취는 우리에게 축복을 의미합니다. 예외없이, 우리 모두는 「아브라함」의 약속된 씨에 의하여 축복을 받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여호와의 약속은 거의 삼십 구 세기 전에 행해졌는데 지상의 모든 족속들은 아직도 「이삭」을 통한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지 못하였다. 제발 오늘날 이 형편없는 국제 정세를 보라. 또한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씨라고 주장하는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의 상태를 보라.

12. 여러 민족이 축복을 받는 것에 대하여 반대자들은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읍니까?

12 그러나 반대자들은 중대한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렇지 않읍니까? 그들은 지상의 모든 민족이 십구 세기 전에 「아브라함」의 약속된 씨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읍니다. 할례받은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알려져 있는 약 이백의 민족으로부터 백만명 이상이 「아브라함」의 참된 씨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고 있읍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읍니까? 영감받은 성서 필자 중의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있읍니다. 그가 기록한 때는 기원 일 세기 중엽쯤이었읍니다.

13. (ㄱ)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씨는 주로 누구임을 상기시켰읍니까? (ㄴ) 그러나 「아브라함」의 씨는 어떻게 많은 수라는 것이 알려졌읍니까?

13 그때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에있는 「로마」의 행정구역인 「갈라디아」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편지 했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던 이들 신자들중 얼마는, 그들이 「유대」인이 되어 할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그의 예언자 「모세」를통하여 주신 옛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잘못 설득을 받았읍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올바로 하기 위하여 편지를 썼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약속된 씨라는 사실을 상기시켰읍니다. 이 예수는 실제로 하나님의 독생자였읍니다. 족장 「아브라함」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북쪽 성벽 밖, 곧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올려 놓았던 「모리아」 산 근처에서 그의 독생자를 인간의 희생으로 제공하셨읍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참된 씨는 한 사람이 아니고, 별이나 바닷가의 모래알의 수처럼, 당시에 수가 알려지지 않은 많은 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14. (ㄱ)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에 의하여 문자적으로 성취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ㄴ) 「아브라함」의 참된 아들들이 되기 위하여 약속의 씨에 참여하는 자들은 어떠하여야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14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 탄생되셨고 할례를 받으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혈연적으로 족장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를 통하여 지상 만민의 축복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읍니다. 정확하게 그대로 되었읍니다. 나머지 「아브라함」의 씨는 선천적으로 육적 「유대」인일 필요가 없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나머지 필요한 「아브라함」의 씨는, 그 모두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읍니다. 구십 구세 때에 할례를 받기 전에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되고 선언되었읍니다. (로마 4:9-22) 약속의 씨의 일부라고 인정받을 「아브라함」의 참된 아들들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의롭다고 선언된 후에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그들을 출생시키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에 의하여 예표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15.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었으면서도 다른 모든 씨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15 그들은 이처럼 더 큰 「아브라함」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이 되며, 「아브라함」의 약속된 씨의 일부로 인정을 받읍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선천적으로 지적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출생되었고 이렇게 하여 더 크신 「아브라함」의 영적 아들이 되었읍니다. 그의 출생은 그가 침례받은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의 위에 내려오고 하나님께서 영적 아들이 되었음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고 선언하심으로 이루어졌읍니다. (마태 3:13-17) 결국 지상의 모든 민족을 축복할 「아브라함」의 씨는 모두 영적 반열이 될 것입니다.

16. 사람이 「아브라함」의 씨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었읍니까? 그러한 씨의 성원이 될 자격은 누구를 통하여 왔으며, 누구에게 먼저 왔읍니까?

16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출생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아브라함」의 약속된 씨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더 크신 「아브라함」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의 독생자, 더 크신 「이삭」 예수를 통하여 오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역시 축복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씨의 일원이 되는 축복을 처음으로 받은 자들은 육적 「유대」인들이었읍니다. 기원 33년 오순절에 처음으로 백 이십명이 그렇게 되었읍니다. 후에 「유대」교 개종자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에 부가되었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축복은 단지 「유대」인들만 아니라 모든 민족, 심지어 할례받지 않은 자들까지 이른다고 선언되었읍니다.

17.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에 이 특별한 축복은 누구에게 미쳤으며, 이처럼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이 되었읍니까?

17 이 점과 일치하여 기원 33년 오순절로부터 삼년 반 후에, 「유대」 「가이사랴」에 사는 「이탈리아」인이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첫 사람이 됨으로써 이 축복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더 크신 「아브라함」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출생되어 「아브라함」의 씨의 일부가 됨으로 「아브라함」의 씨의 축복을 받는 길을 열어 놓았읍니다. 그리하여 축복은 차별 없이 모든 민족에 이르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내려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약속을 성취시키는 데 실패하시지 않았읍니다.

18, 19. (ㄱ) 「아브라함」의 축복은 율법의 행위에 의존하는 자들에게 임합니까? (ㄴ) 「아브라함」을 본받음으로써 사람들은 어떠한 면에서 그의 씨의 성원이 됩니까?

18 이제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동료 씨의 성원들에게 편지할 때 그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였는지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한 자라고 말한 후에 이렇게 계속합니다.

19 그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듣고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20. 정한 언약은 폐할 수 있읍니까? 얼마나 많은 씨들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았읍니까?

20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씨]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씨들]이라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씨]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21. 성원이 많으면서도 어떻게 단 하나의 씨일 수 있읍니까?

21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씨]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22. 사도 「바울」의 형제들은 어떻게 「이삭」과 같은 자녀였읍니까?

22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라디아 3:5-10, 14-16, 26-29; 4:28.

23, 24. (ㄱ) 지금쯤 「아브라함」의 씨는 얼마나 많을 것입니까? (ㄴ) 우리는 씨의 한계 수자를 어떻게 알며, 그들 모두는 왜 죽기까지 충성을 지켜야 합니까?

23 제 일 세기부터 계산하여 금년 1966년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아브라함」의 씨는 얼마나 됩니까? 성경의 대답에 의하면 이들 「아브라함」의 영적 아들들이 144,000명보다 더 많지 않읍니다. 이의 정확한 수자가 성경의 맨 마지막 책에 나타나있읍니다. 이 144,000이라는 수는 과학자들이 현재까지 셀 수 있는 별의 수와는 결코 비교가 안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육안으로 본 별의 수를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편지를 쓴 후 사십년간 혹은 그 이상 실제적인 수가 그리도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읍니다.

24 그런데 기원 96년 경에, 계시록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두 개의 환상 가운데, 주체가 되는 씨와 연합한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정확한 수가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완전히 균형잡힌 수인 144,000입니다. (계시 7:1-8; 14:1-3) 주체가 되는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출생된 144,000의 추종자들은 모두 지상에서 그와 함께 희생되어야만 합니다. 그들의 육체가 죽기까지 충성스러움을 입증한 후에, 그들은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어 하늘의 왕국에서 그와 함께 연합된 후사가 됩니다.—고린도 전 15:29-57; 고린도 후 5:1-9.

25. 1965년 주의 만찬식에서 11,500명은 떡과 포도주를 취함으로써 무엇을 나타내었으며,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맹세는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까?

25 그런데 사실 지난 1965년 「니산」월 14일 주의 만찬 기념 때에,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일원이며, 주체가 되는 씨,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유업을 이을 자들임을 표시하여 표상물인 떡과 포도주를 취한 자가 약 11,500명 있었읍니다. (누가 22:14-30; 고린도 전 11:20-32)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부가한 맹세는 이 144,000의 남은 자 소수가 믿음을 지속하는 데 특별한 위안과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맹세하신 목적

26. 히브리서 6:16에 말한 바와 같이 맹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26 그런데 맹세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영감받은 설명이 히브리서 6:16에 있읍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27. 그러므로 여호와의 「아브라함」에 대한 맹세는 어떠한 논쟁을 종식시켰어야 합니까?

2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맹세하실 때, 그것은 우주의 최고 재판자의 편에서 특별한 합법적 보증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뿐 아니라 지상의 모든 다른 족속에게도, 즉 지상의 모든 민족에게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에 관한 논쟁을 온 인류들에게서 심지어 오늘날 우리 중에서도 종식시켰어야 할 것입니다.—창세 12:1-3; 22:16-18.

28. 하나님의 맹세에 관한 어떠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부가적인 확신을 받아야 합니까?

28 오늘날 누가 그것에 대하여 논쟁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오늘날 누가 그에 대하여 의심을 품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차라리 하나님의 자진적 맹세로부터 부가적인 확신을 받읍시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씨에 관한 약속의 진실성에 대하여 맹세할 의무가 없었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다 맹세하시도록 요구할 권리가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하실 만한 사랑스러운 이유가 있었읍니다. 「바울」은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2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맹세로 보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게 되는 것보다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29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아브라함]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지성소]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브리 6:12-20.

30. 왜 남은 자들의 소망은 견고하고 확실하여야 하며, 어떻게 할 수 있어야 합니까?

30 그 결과 144,000명중 아직 지상에 남아있는 자들 즉 「아브라함」의 약속된 씨 중의 적은 수가 지존하신 하나님의 맹세로부터 강한 격려를 받읍니다. 그는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코 거짓 맹세를 하시거나 거짓 서약을 하실 수 없으십니다. 지성소 흑은 여호와 하나님의 하늘의 성소에 뿌리를 박은 남은 자들의 소망은 항상 견고하고 확실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들의 때에 하였던 것처럼, 오래 참음과 인내를 계속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3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맹세로부터 또 어떤 사람들이 강한 격려를 받게 되어 있으며, 「요한」이 본 어떤 환상에 의하여 그것을 알 수 있읍니까?

31 그러나 144,000중 육체로 아직 남아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약속에 덧붙인 맹세로부터 오늘날 강한 격려를 받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그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둔 다른 큰 무리도 그렇게 할 권리가 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성서 역사상 처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정확한 성원들의 수를 헤아린 후에 계시록 칠장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계시 7:9, 10) 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약속은 144,000명인 「아브라함」의 영적 씨가 된 자들보다 더 많은 수에게 성취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144,000의 연합된 후사로 구성된 이 약속의 씨 외에 지상의 민족들과 족속들에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이들은 죽은 인간들과 현재 살아있는 인간들도 포함됩니다.

32. 현재 『큰 무리』가 자기들의 구원에 대한 영예를 하나님과 그의 어린양에게 돌리고 있다는 사실로써 무엇이 명백합니까?

32 이미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으로부터 나온 신자들의 이 『큰 무리』가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은 축복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남은 자들이 하늘의 왕국으로 변화되기 전에, 이미 더 큰 「아브라함」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씨를 통하여 오는 진귀한 축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결과적으로 이 초인종적, 초국가적, 초민족적, 초언어적 『큰 무리』는 그들의 구원에 대한 명예를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의 씨의 주체에게 돌리고 있읍니다.

33. 왜 이 『큰 무리』도 역시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으며, 무엇을 기억하여야 합니까?

33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모든 원수들과 핍박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큰 「바벨론」의 멸망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과,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을 결박하여 투옥하는 일이 아직 발생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국 하에 지상 낙원에서의 소망을 가진 이 『큰 무리』도 영적 남은 자들처럼 게으름을 피하고 충실하고 인내하도록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무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원한 축복을 위하여 파기할 수 없는 약속을 확증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읍니다.

34. (ㄱ) 무슨 두 가지 것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변경시킬 수가 없게 되었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이미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으로 입증하셨으며, 우리는 「바울」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어떻게 선언합니까?

34 하나님의 말씀은 변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의 맹세도 변할 수 없읍니다. 이 두 가지 즉 그의 말씀과 그의 맹세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기를 좋아하시는 그의 계획과 관련하여 주셨기 때문에, 이 사실은 또한 그의 계획도 변할 수 없게 합니다. 심지어 지금도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나타내신 계획에 대하여 이미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그는 온 하늘과 땅에서 뚜렷이 입증되고 정당화되었읍니다. 악귀들로 그것을 부정(否定)하게 버려 두십시오. 악귀들의 조종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하고 믿지 않는 것을 버려 두십시오. 그러나 여호와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으로서 뚜렷이 나타나고 입증됩니다. 이 세상의 압도적인 대다수가 불신자라고 하여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참되기 때문에 우리는 믿고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또한 모든 존재하는 자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높으신 분을 가리켜 행한 하나님의 맹세의 파기할 수 없는 제어력을 존중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이 취한 바와 동일한 입장을 분명히 선포할 수 있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각 사람은 거짓 말장이임이 밝혀지지만 하나님은 참되심이 밝혀진다.』—로마 3:4, 신세.

[각주]

a 「맥클린톡과 스트롱 사전」 1891년판 7권 256면 『맹세(o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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