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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가족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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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가족의 연합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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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4
파64 8/15 308-312면

하나님의 가족의 연합

“형제가 연합 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1. 어디에서 분열을 찾아 볼 수 있읍니까?

우리는 분열된 세상에서 살고 있읍니다. 어디에서나 분열을 볼 수 있읍니다. 그 자체를 국제적 관계에서 현저히 볼 수 있읍니다. 동방, 서방, 중립 국가들의 「블럭」과 같은 색다른 「블럭」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상에서 볼 수 있읍니다. 그러나 긴장과 분열은 심지어 이런 나라들의 집단 사이에 그리고 한 나라 자체 내에도 존재합니다. 분열은 각 주, 도 및 공동 사회에서도 또한 발견 할 수 있읍니다. 동일한 이 긴장과 분열은 수 많은 가족 즉 인간 사회의 기초적 세포에서도 찾아 볼 수 있읍니다. 긴장과 분열은 부모 사이에 뿐 아니라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예수께서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얼마나 참됩니까!—마가 13:12.

2. 우리 시대는 왜 분열의 시대로 언급되고 있읍니까?

2 우리 시대는 실로 과거에 없는 분열의 시대이고 평화없는 시대입니다. 성서의 마지막 권 계시록이 예언한 바와 같이 평화가 땅에서 제거되어 왔읍니다.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계시 6:4) 이 말씀이 우리 시대에 성취되고 있읍니다. 즉 제 1, 2차 세계 대전이 행하여졌읍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부족하게도, 나라들은 세번째 세계 대전을 위하여 광적으로 무장을 갖추고 있읍니다.

3. (ㄱ) 세상적 종교가 연합의 띠를 마련할 수 있었읍니까? (ㄴ) 교직자가 무엇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3 전 세계에 걸친 이 무서운 분열의 묘사는 정직한 사람들이 가졌을지도 모르는 모든 환상 즉 많은 종교와 교회가 모든 사람을 함께 이끌어 연합을 유지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음에 틀림이 없읍니다. 또한 소위 그리스도인 교회는 이 연합을 가져 오는 데 온전히 실패하였읍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환영한) 공의회의 노력도 여러 가지로 많이 갈라진 종교적 교파들을 연합할 것을 뜻하였는데, 연합과 평화를 가져 올 수는 없었읍니다. 1948년에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세계 교회 회의 끝에, 그 총회는 교회가 서로 얼마나 분열되었는가를 명백히 시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읍니다. 그 성명서의 부분을 살펴 보면 이러합니다. 『우리는 서로 갈라져 있읍니다. 그것은 단지 교리, 조직 및 전통 문제에 있어서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죄 많은 자만 즉 국가적 자만, 계급적 자만, 인종적 자만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교회의 연합을 가져 올 수 없읍니다.』 (「전국신문」, 「바젤」, 425호, 1948년 9월 14일) 이것은 교회들 자체가 그들의 분열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인 교회들은 사람들을 위하여 연합의 띠가 되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들이 정치와 전쟁의 일부를 담당함으로써, 분열케 하는 세력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하나님의 회중과 양립할 수 있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질문합니다. (고린도 전 1:13) 이 모든 세상적 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회중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는 것은 확실히 어렵지 않읍니다. 교회신문은 『이세상의 왕 (사단)은 교회가 자진적 포로가 되게 하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읍니다.—「요한네스와 마르크스-게마인데블랏트」, 「스위스 베르네」, 1959년 7월 4일.

4. 참된 그리스도인 연합이 가능하다는 무슨 증거를 가지고 있읍니까?

4 세계 상태를 보고 이렇게 질문하고자 할는지 모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는 하나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가? 정치적으로 관념적으로 매우 분열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대립되어 있고, 종교계에서 세기를 통하여 지속해 온 분열과 불화의 이 세상을 관찰해 오던 많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하나의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적 종교와 교회에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단지 한 집단의 사람들 즉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닌 사람들 가운데서는 찾아 볼 수 있읍니다. 이 집단은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 사회로 알려져 있읍니다. 그들은 이 사막과 같은 상태의 분열된 세상 가운데서 평화와 연합의 「오아시스」를 이루고 있읍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읍니까? 무엇이 이 연합을 가져 오게 하였읍니까?

그리스도인 연합의 영적 기초

5.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읍니까?

5 참된 그리스도인 사이의 연합은 어느 사람에게 돌릴 수 없읍니다. 마치 고대 「이스라 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로부터 구출된 것이 어느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상징적으로 「애굽」과 같은 세상으로부터 구출된 것은 불완전한 인간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계시 11:8) 이 구출의 기초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놓으셨읍니다. 즉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진리를 전파하시고 희생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되시어 영광스럽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렇게 하셨읍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 회중과 그리스도인 연합이 이루어지는 문이 열려졌읍니다.—요한 18:37; 마태 20:28; 요한 10:7.

6. 무슨 연합을 예수께서는 언급하셨읍니까?

6 하나님의 참된 회중 가운데는 참된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의 아버지께 대한 기도에서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읍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요한 17:20-23.

7. 진리를 아는 것이 어떻게 연합에 영향을 줍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연합에 이르는 데 어떻게 방해를 받읍니까?

7 적어도 우리는 이 기도로부터,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이 여호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에 비교되는 연합에 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읍니다.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위한 그의 뜻이고,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사이의 이 완전한 연합이 그들을 위한 높은 표준임에는 아무런 의심이 없읍니다. 연합은 오로지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일치가 있는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한 연합이 세워질 수 있는 견고한 기초는 올바로 이해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서입니다. 사람을 자유케 하여 연합시키는 것은 이 진리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8:31, 32) 예수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과 그의 행동에 일치 하였읍니다. 그들은 그와 하나가 되었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 왔으며, 그들은 그들을 만드신 분을 따랐읍니다.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에 일치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의 자만과 성경의 그릇된 해석이 그와 연합하는 데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읍니다. 오늘날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8. 무슨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은 성실한 그리스도인을 돕습니까?

8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된 진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정직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 진리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파악할 수가 없읍니다. 그리하여 성령은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놀라운 영의 열매를 맺게 하고, 육의 일로부터 그들을 깨끗하게 합니다. 육의 일이 갈라디아서 5:19-21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 관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러한 일 가운데,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 이 모든 일은 사람들을 나누어 더 작게 만듭니다. 즉 더 큰 분열을 조성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반대의 특성은 하나님의 영의 영향을 통하여 제거됩니다. 이것은 하룻밤이나 일시에 생기지 않고, 마치 열매가 자라는 것처럼 자라서 열매맺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 즉 활동력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스럽고, 우정있고, 화평스럽고, 인내 깊고, 선량하고, 온유하고, 서로 견딥니다. (갈라디아 5:22, 23)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필수적이고 강력한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하나님의 영이 없이,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생각한다는 것은 당치 않는 말입니다.

질서의 필요성

9.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세계적 가족으로서 무슨 사실들을 인정합니까?

9 그러나 마치 분열이 무질서와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연합은 질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읍니다. 연합이 없는 가족은 가족 생활에 조화와 질서를 가지고 있지 않읍니다. 아마 거의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각각 제멋대로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가족의 질서는 깨뜨러지게 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그리스도인 단체는 세계적 가족으로 비교될 수 있읍니다. 연합과 질서가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대가족의 각 성원은 『믿음의 집』을 지배하는 질서를 인정하고 존경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린도 전 14:33) 그 자신께서 이 놀라운 질서 혹은 마련의 중심이고 으뜸이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대가족의 모든 성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그 앞에 엎드립니다. 그들 모두는 여호와께서 만물의 후사로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임명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그에게 맡기신 것을 인정합니다. (마태 28:18; 히브리 1:2) 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사물에 대한 하나님의 이 마련에서 두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족의 모두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들을 인정하지 않은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가족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며, 그 가운데 자리도 없을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 3:36.

10. 참된 교회에 관하여 어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읍니까?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참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말합니까?

10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의 질서는 또한 바로 땅에 관한 그의 보이는 표현에서도 찾아 볼 수 있읍니다. 질서는 조직과 관련되어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참된 교회가 사람들의 조직된 단체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위 기독교 종교의 모든 교파에 흩어져 있는 많은 개인들로써 구성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은 교회가 혼잡과 대립되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것이 유일한 논리적인 설명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즉 신조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큰 「바벨론」의 일부인 이들 갖가지 모든 기회에 많은 성실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들이 이 「바벨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으로부터 나올 것을 말하고 있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자 원한다면 나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 .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 후 6:14-18, 신세) 「요한」도 역시 『무너졌도다 (큰「바벨론」)이여 . .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말하였읍니다.—계시 18:2, 4, 신세.

11.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단 하나의 참된 믿음만이 있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1 만일 하나님의 참된 회중이 기독교국의 모든 교회 제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면, 생각과 행동의 연합이 어디에 있읍니까? 초기 교회를 지배한 연합이 어디에 있읍니까? 「에베소」인에게 보내는 편지 4장에 강력하게 묘사되어 있읍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4-6절, 신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연합에 달하기 위하여, 이전의 모든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도인 회중과 연합하셨읍니다. 예수의 「유대」인 제자들은 「유대」교와 그 종파를 떠났고, 「희랍」인 제자들은 그 당시의 철학적 제도와 우상 숭배로부터 떠났으며, 「로마」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런 제도의 무엇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든지, 그들은 그것을 떠났읍니다. 즉 그 「바벨론」적 거짓 종교로부터 나왔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 회중의 보이는 하나의 단체에 들어 왔읍니다.

12. 초기 회중에 무슨 질서있는 마련이 있었읍니까?

12 이 보이는 사람들의 단체는 질서 혹은 조직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거기에 통치하는 부분 즉 인도하는 부분이 있었으며, 그것은 사도들과 다른 장성된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읍니다. 지방 회중들은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디모데 전 3:1-9) 모든 회중은 그들의 가르침과 교훈을 같은 기초 즉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받았읍니다. 회중들은 통치체는 물론, 지방의 감독자들을 인정하도록 충고를 받았읍니다. 주된 책임을 가지고 있었던 형제중 하나인 「바울」이 그들에게 편지하였읍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브리 13:17) 회중이 사업을 책임진 형제들을 인정함으로써, 지방적으로 보통 연합이 보존되었읍니다. 이 모든 감독자들과 책임진 형제들이 불완전한 남자들이고 잘못을 저지를지 모르지만,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감독자들은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읍니다.

13. 「바울」은 연합에 대한 무슨 충고를 주었읍니까?

13 감독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전파하거나 회중을 가르칠 자유나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분만을 받아들일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 전파할 것을 지시받은 회중의 각 성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무엇이나 전파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루살렘」이나 「로마」나 「고린도」에 있든지, 같은 소식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 이치적이었읍니다. 『형제들아 내가 . . .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 전 1:10) 오늘날의 경우와 같이 하나의 같은 교회에 『독단적』 「그룹」이 있는가 하면, 예수의 희생의 죽음과 그의 부활까지도 인정하지 않은 『자유적』 「그룹」이 있는 그러한 자가당착의 운동들이 있을 수 없읍니다. 사도 「바울」은 감독자 「디도」에게 「그의 가르침이 부패치 않음」을 나타내야 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해야 함을 편지로 말하였읍니다. (디도 2:7, 8) 이것은 확실히 「디도」와 그의 회중의 이익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14. 종파를 조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하여야 합니까?

14 연합을 보존하고 종파와 분열을 피하도록, 그 초기 통치체의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에게의 그의 편지에다 이렇게 썼읍니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데살로니가 후 3:14) 사도의 영감받은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은 그런 사람은 회중에서 안전한 동료가 될 수 없었읍니다. 사도가 편지하고 말한 것에 모순되는 그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연단에 서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되었읍니다. 그는 무시당해야 했읍니다. 그럼으로써 그의 태도가 이치적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며, 견책을 통하여 마침내 순종하도록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회중은 각기 그 자리에서 그리고 다른 회중들과 인도하는 형제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연합을 유지하였읍니다.

15. 「바벨론」적 종교를 떠난 그들은 무슨 기초를 즐깁니까?

15 오늘날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복된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같은 질서와 같은 원칙을 볼 수 있읍니다. 지난 수 십년 동안에 수 십만의 선의자들이 그들의 「바벨론」적 종교의 교회들을 떠났읍니다. 그들 대부분은 그런 종교 가운데 출생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건전한 소식을 받아들여, 여호와께 헌신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의 조직된 회중들과 연합하였읍니다. 이전에 그들이 「가톨릭」 교도였든지, 신교도였든지, 「유대」인이었든지, 불교 신자였든지, 「모술렘」 교도였든지, 어느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든지, 심지어 무신론자였든지, 그들은 지금 성경 진리의 공분모 즉 하나님의 왕국 아래 있는 하나님의 대가족 안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그들이 이전에 몰랐던 연합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독재가 아님

16. 독재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에 대하여 무슨 질문이 있읍니까?

16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밀접한 세계적 연합을 보고, 모두가 일정한 원칙에 복종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독재 밑에 살고 있지 않는가, 라고 질문합니다. 『독재』라 하면, 보통 우리는 힘과 탄압으로써 절대적 권능과 지배를 행사하는 정부 형식이라고 이해합니다. 수 백만의 사람들이 오늘날 그와 같은 독재 하에서 살고 있읍니다. 보통 이런 정부 제도는 교회로부터 훌륭한 지지를 받고 있읍니다. 그러나 독재 하에서 살고 있는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그런 정부를 기뻐하고 만족하고 있읍니까? 독재 하에서 부당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것으로부터 구출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런 형식의 정부 하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생활 방식을 원하지 않고 있읍니다. 그것은 강제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읍니다.

17. 하나님의 통치와 독재가 어떻게 다른가를 대조하십시오.

17 하지만, 하나님의 왕국은 독재가 아니며, 여호와의 증인의 신 세계 사회도 그렇지 않읍니다. 독재자는 강제로 지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들의 자유와 선의에 호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그를 섬기도록 강요하시지 않읍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여호수아 24:15) 그것이 항상 존재해 온 원칙이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오늘날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 운영되고 있는 신권적 조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되고 있지 않읍니다. 그것은 자유 선택의 문제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사랑을 나타내심으로써 그의 신민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신민이 그를 남김없이 사랑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마태 22:37, 38) 하나님의 통치는 사랑에 근거하고 있고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옵니다. 어떤 독재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나아 가서 완전한 공의와 지혜와 능력에 근거하고 있읍니다. 이것 역시 어느 독재 지배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만물의 창조주시기 때문에, 그의 모든 창조물의 완전한 순종과 헌신에 대하여 절대적이고 논의할 여지없는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어느 독재자도 그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읍니다.

18, 19. (ㄱ)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ㄴ) 하나님의 가족의 일부로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18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 아래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그의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요한 1서 5:3)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은 강요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진적이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탄식하고 고통을 느끼는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왕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1:30) 시편 필자가 다음과 같이 표현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 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12:1.

19 그러므로 독재 주의와 여호와의 조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읍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할 수만 있다면 독재적 지배에서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 반면에 정직한 수 만의 사람들이 매년 하나님의 왕국으로 도망해 들어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읍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의 연합을 받아 들였읍니다. 『형제가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309면 삽화 설명]

’내가 비옵는 것은 . . .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311면 삽화 설명]

사도 ’바울’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썼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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