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2 6/15 236-240면
  • 사랑 받은 사도가 제 4복음을 기록하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사랑 받은 사도가 제 4복음을 기록하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기본적으로 보충적인 것
  • 필자인 「요한」 사도
  • 증명하고 있는 다른 성격들
  • 사랑받은 사도
  • 사랑받은 ‘요한’이 소개한 “말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 요한복음 소개
    신세계역 성경 (연구용)
  • 성서 제43권—요한 복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익하다’
  • 요한에 의한 좋은 소식
    성경 통찰, 제2권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6/15 236-240면

사랑 받은 사도가 제 4복음을 기록하다

기쁜 소식 즉 복음에 관한 네가지의 기록은 단순한 사본들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풍부한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그들과 익숙하여지면 질수록 그들의 특이한 면들을 더 배워 인식하게 되며, 그들이 사실 네가지로 각각 독립되어 있으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야」의 지상 전도의 사실에 대하여 조화있게 증거한다는 것을 더 배워 인식하게 된다.

4복음의 하나하나가 각기 주제와 목적과 특이한 필치와 특이한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심지어 각각 상이한 장소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표시하기까지 한다. 즉 「마태」는 「팔레스타인」에서, 「마가」는 「로마」에서, 「누가」는 「가이사라야」에서, 그리고 「요한」은 「에베소」에서나 혹은 그 근처에서 기록되었다. 사실 그들은 너무 상이함으로, 각 기록이 기록된 방법은 어떤 세상적 마음을 가진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마태 에비오인」파, 「마가 도쎄테」파, 「누가 마씨오」파 및 「요한 발렌티아」파와 같은 특이한 교파를 만드는데 구실의 역할까지 하였다.

비록 「마가」 복음 중 단지 7「퍼센트」 만이 다른 모든 복음과 다른데도 이 7「퍼센트」가 그의 특이한 주제와 필치 즉 간결하고 급진적이며, 나전어 식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을 가지고 이 복음 전역에 걸쳐 너무 흩어져 있기 때문에 「마가」 복음은 하나의 독립적인 증인으로서 굳게 서 있다. 한편, 92「퍼센트」가 독특 하기는 하지만, 다른 것들이 말하지 않은 점들을 포함하고 있는 제 4복음은 기본 진리와 묘사된 인물들의 형상과 그의 정신 및 받게되는 인상에 관하여 다른 세권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에 관하여 이 책들이 말한바에 의하여 예증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처음 세권의 복음서들은 「베드로」를 말과 행동에 있어서 충동적으로 표시하였으며 제 4복음도 그렇게 표시한다. 이 복음서는 예수께서 그의 발을 씻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베드로」이며 해변가의 낯선 사람이 다름 아닌 그의 주 즉 부활된 예수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디베리아」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친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음을 표시한다.—요한 13:4-10; 21:7.

기본적으로 보충적인 것

의심할바 없이 「요한」은 그의 이전에 처음 세복음을 가졌었다. 그럼으로 그의 복음을 보충적인 것으로 만들어 채우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은 말하고 어떤 것은 말하지 않은 것으로 명백하다. 유사한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공관복음이라고 알려진 처음 세권은 예수의 초자연적 탄생을 말한다. 「요한」 복음은 우리들에게 「로고스」의 인간 이전의 존재와 그 『말씀이 육신』이 된데 관하여 말한다. 그리고 「누가」도 아기 예수의 순종성에 관하여 말하는 한편, 「요한」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함으로 한 남자의 자격에 달한 그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예수에 관하여 말한다.—요한 1:14; 2:4.

공관복음 필자들은 예수의 침례시에 일어났던 바를 기록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후일에 침례자가 이 사건에 관하여 말한 것을 인용한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그들은 예수의 지상 전도의 첫 부분을 생략하고 침례 「요한」의 투옥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요한」 복음은 예수의 처음 기적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과 더불어 그의 전도의 처음 부분을 기록한다.—요한 1:32.

예수의 「갈릴리」 전도는 처음 세복음 필자들로 말미암은 특색을 이루나 「요한」은 예수의 「유다」의 전도로 특색을 이룬다. 그들은 예수의 비유들을 말하며 심지어 「마가」도 네가지를 들었으나 「요한」은 단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한편, 그만 홀로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과 「빌라도」와의 대화를 말한다. 동시에 그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예수의 여러 가지 형상에 관하여 말한다. 예수께서 「모세」가 집어 올린 뱀에 비기셨을 때라든가, 선한 목자라든가, 혹은 포도나무 등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선언에 관하여 말하고, 「요한」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그들의 아비 마귀에 비기신 것에 관하여 말한다. 그들은 지상 전도의 마지막에 있던 예수의 성전 정결에 관하여 말하고, 「요한」은 처음에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에 관하여 말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시작하신 그의 죽음의 기념에 관하여 말하고, 「요한」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경우에 관하여, 그가 마음으로부터 마음을 향하여 하신 이야기에 관하여, 그리고 기념하여야 할 밤에 그들을 위하여 그가 드리신 기도에 관하여 말한다.

공관복음 기록자들은 예수의 전도의 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을 말하는데, 그들의 기록으로부터는 예수의 전도가 단지 약 1년간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다. 그러나 「요한」은 되풀이하여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예수께서 올라가신 것에 관하여 말하며, 그것은 예수의 전도 기간 즉 3년 반에 관하여 우리들에게 하나의 단서를 준다. 이것은 「다니엘」의 70주의 해에 관한 예언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는 「메시야」가 69주의 마지막에 오시는 것으로 표시되었으며, 제 70주의 중간 즉 3년반 후에 죽음을 당하시는 것으로 표시되어있다.—다니엘 9:24-27; 요한 2:13; 5:1; 6:4; 12:1; 13:1.

「요한」은 예수의 기적에 관하여도 보충적인 것으로 보인다. 단지 그만이 예수의 첫 기적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하며 예수의 마지막 기적 즉 그의 부활 후 고기를 단번에 이끄신 것에 관하여 말한다. 또한 「요한」만이 소경으로 탄생된 사람을 예수께서 회복시키신 것에 관하여, 그리고 죽은지 4일 후에 「나사로」를 일으키신 것에 관하여 말한다.

필자인 「요한」 사도

여러 해 동안 어떤 사람들은 제 4복음은 초기 사본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사도 「요한」으로 말미암아 기록될 수 없었다고 논박한다. 그러나 「요한」 복음이 그의 생존시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지금 「라릴랜드 파피루스」 457(P52)로 알려져 있는 그의 복음서의 파편을 발견함으로써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요한 18:31-33, 37, 38을 포함하고 있고, 영국 「만체스터」 소재의 「존 라일랜드」 도서관에 보존되었다. 그에 관하여 후일에 「런던」의 「프레데릭 케년」경은 1948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 「성경과 현대 학자」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그것이 적기는 하지만 약 주후 130-150년 사이에 이 복음의 사본이 발견된 본토 「이집트」에 아마 유포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하다. 그의 본 고장으로부터 그 사본이 유포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비록 최소 한으로 허락하드라도, 이것은 저작일을 너무나도 제 1세기의 마지막 10년의 전통적인 일자에 가까이 가져감으로 더는 전통의 확실성을 의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요한」 복음이 사랑에 관하여 그렇게도 많이 강조한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그를 「우뢰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것이 그로 말미암아 기록되지 않았다고 반드시 논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젊은 사람으로 묘사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90세에 그가 더욱 무르익었다는데 대하여 논박하지는 않는다. 「요한」이 12명 중에서 가장 젊었다는 것은 상당히 있음직 하다. 그러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의 주에 대한 큰 헌신과 동시에 「요한」에 대한 예수의 특별한 애호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에 대하여 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은 「요한」이 이상하게 온유한 성품, 약한 성품 혹은 심지어 이성적인 사람이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다 부당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의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과 그의 시대의 교직자들에게 대한 공적 비난이 증거하는 것이지만, 마치 그가 의의에 대한 불타는 열의를 가지고 계셨듯이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도 그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보아네게」 즉 『우뢰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때문에 그들의 주인이 「사마리아」의 도시를 통과는 것을 「사마리아」의 어떤 도시는 원하지 않음으로 그들은 너무 의분으로 가득차서 하늘로부터 불을 불러 내리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표현적이었으며 때때로 있는 것이였고 또한 그들의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마가 3:17; 누가 9:54.

「요한」 복음은 동일한 열열한 충성과, 동일한 열정적인 사랑과, 동일한 의분을 나타낸다. 「요한」은 「니고데모」를 아껴보지 않고 「니고데모」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가 두려워하기 때문에 야음을 타서 예수께 왔다고 무뚝뚝하게 말한다. 그리고 회당의 다른 성원인 「아리마대」의 「요셉」에 관하여도 동일하다. 항상 돈의 가치에 관하여 의식적이었던 세리 「마태」는 「요셉」이 부자요 동시에 예수의 제자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인들에게 편지한 「마가」는 「요셉」이 좋은 입장에 있는 고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누가」는 더욱 자세한 것을 말한다. 즉 「요셉」은 회당의 한 성원으로서 선하며 의로운 사람이었고 예수께 대한 대적 계획과 행동을 지지투표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든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한」의 예수께 대한 충성과 의에 대한 예민한 감관과 타고난 이상주의 때문에 그가 「아리마데」의 「요셉」의 심각한 결점을 간과하지 않은 것은 「니고데모」에게서 동일한 결점을 간과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당신은 이제 이해할 것이다!—마태 27:57; 마가 15:43; 누가 23:50, 51; 요한 19:38.

「요한」은 누구나 자기 주인의 제자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반자 「유다」에 대한 그의 반응이 복음 필자 중에서 제일 강하다는 것을 알고 놀랄 필요는 없다. 「요한」은 「유다」가 그의 주를 배반하기 오래 전에 우리에게 말한다.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자러라.』 그렇다. 비록 12명 중의 하나이나 그를 배반하게 된다.—요한 6:64, 70, 71.

이리하여 다른 복음 필자들은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 직전에 그에게 부은 비싼 기름 때문에 야기된 불평에 관하여 말하나, 한편 「요한」만은 우리에게 누가 왜 그랬는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불평하였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여기에서 또 다시 『우뢰의 아들』은 그의 분노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만일 「요한」이 「유다」에게 관하여 우리에게 말한 것이 없었다면 그 자의 배반적인 과정은 대부분 수수꺼끼로 남을 뻔 하였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요한 12:4-6.

증명하고 있는 다른 성격들

제 4복음서의 필치는 「요한」과 같은 『학문 없는 범인』이 필자였으매 틀림이 없다는 부수적 증거를 우리들에게 준다. (사도4:13) 「요한」의 필치는 극히 단순하다. 단순한 단어들, 단순한 문장,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서의 대부분의 다른 필자들보다 훨씬 더 적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동시에 그의 것은 가장 드높은 곳에 있다. 1세기 전의 저명한 성경 학자 「웨스트콧」씨가 표현한 것과 같다. 『「요한」 복음은 가장 완성된 단순함으로부터 나오는 가장 완성된 단순한 예술이다. 더욱 단순하면서도 더욱 심원한 깊이를 가진 기록은 없다.』 그러므로 요한 7:53–8:11을 알게 되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데 그것은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요한」의 필치가 아니』라는 것이다.—「4복음들」, 「돔 제이 · 채프먼」

제 4복음의 필자로서 사도 「요한」을 더욱 결론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름들의 사용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다른 복음서보다도 더 많은 이름들이 나타난다. 5,000명의 남자들을 먹이는데 관하여 예수와 함께 말한 것은 「빌립」과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라는 것과 「베드로」가 베어버린 것은 「말고」의 귀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홀로 「요한」뿐이다. 비록 33회나 「베드로」를 말하고 있으나 이 복음서에는 「요한」이나 혹은 그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단지 한번 『「세베데」의 아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들에 언급하였다. 그 외에도 「요한」은 『그(예수)의 사랑하시는 자』라는 그의 마음에 가장 친밀한 명칭하에 익명으로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요한 6:5-8; 18:10; 13:23.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요한」이 이 복음을 기록하였다는 증거 중에서 가장 강력한 증거는 『요한』이라는 이름이 이 복음서에 되풀이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한번도 사도 「요한」에 언급한 것이 아니라 침례 「요한」에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 「요한」은 다른 복음 필자들보다 우리에게 사람들의 완전한 이름을 말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나 침례 「요한」에 관하여 말 할 때는 비록 다른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즉 자기 자신이 있었음에도 그의 완전한 이름을 결코 부르지 않고 단지 『요한』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이 구별을 한다. 왜냐하면 「요한」이라고만 말할 때에는 침례자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사도「요한」을 말하는 것인지 당신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렇게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가 『요한』에 언급하였을 때는 자신에 언급한 것이 아니라 침례 「요한」에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사도 「요한」이 어느 「요한」에 언급된 것인가를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받은 사도

이와 일치하여 비상시에 사랑받은 사도 「요한」은 자기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다. 마지막 유월절에 그는 예수의 품 앞에 기대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알고 있는 대제사장의 뜰에 예수를 따라 들어 갔으며 그가 바로 「갈보리」에서 예수를 본 사도였으며 거기에서 그는 예수의 어머니를 맡았던 것이다.—요한 13:23; 18:15; 19:27.

제 4복음에서 그 필자는 인간 이전의 존재에 관하여 가장 예리한 인식을 가졌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그리고 그는 홀로 예수께서 인간 이전의 존재에 관하여 하신 많은 말씀을 인용한다. 즉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한 1:1-3; 3:13; 6:41; 8:58; 17:5.

「요한」복음은 거룩한 진리의 가장 높은 곳까지 다다른다. 「로고스」이며, 선한 목자이며, 세상의 빛이며, 생명의 떡이며, 길이며, 진리와 생명인 예수에 관하여 그는 우리에게 가장 높은 인식을 준다. 다른 세복음 필자들의 편찬 보다도 그는 사랑에 관하여 더 말할 것을 가지고 있다. 예수에 관한 그러한 그림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예수의 친밀한 제자 외에 다른 사람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12명 중에서 특별히 친밀한 3명을 뽑으셨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다. 단지 이들만을 동반하시고 예수께서는 회당 주관자의 젊은 딸의 주검을 일으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셨다. 이들만을 데리고 변모산으로 가셨다. 그리고 이들만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더 깊이 들어가셨다. 합리적으로 이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예수께 관하여 가장 드높은 견해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제 4복음서가 기록되기 오래 전에 사망하였다. 예수께서 특히 사랑하신 자가 바로 이들 셋 중의 하나였을 것임에 틀림 없으며 그러므로 그것은 「요한」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요한 복음 21장은 자기의 새끼 양들과 어린 양들을 먹이라는 3중의 임무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것에 관하여 말하는데 그 전장(20)의 마지막 절이 결론적인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것은 이 복음의 다른 부분을 기록하지 않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기록되었다고 어떤 사람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21장의 필치는 「요한」의 필치이며 후일에 자기 자신이 부가하였다는 것은 의심할바 없다.

제 4복음서에 우리는 얼마 만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그의 목적에 잘 이바지하고 있다.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 20:31.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