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원의 폭로
「러시아」 강제노동 노예 수용소로 부터 받은 최근 보도는 현대 물질적 구주라는 공산주의의 주장을 반증한다. 수용소 내는 어떠한 상태인가? 이 제목의 답을 들으라.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세명중에서 한명 이상이 공산주의 지배밑에 있다. 그들이 살던 상태보다 더 좋은 상태를 공산주의가 가져오리라고 확신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사실은 군국(軍國) 지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굴복당하고 있다. 물론 공산주의가 전복시킨 정부 가운데도 고쳐야 할 점이 얼마 있었던것 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택한 사람들은 한 가지 압박을 다른 압박으로 바꾸어 놓았을 따름이다. 그들이 약속한 낙원은 결코 오지 않었다. 오히려 그대신 비밀 고발자와 무자비한 경찰제도와 거대한 강제노동 노예 수용소 만이 늘어갔다. 참으로 이러한 수용소에는 공산주의 「테로」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일천만명 이상이 수용되었었다.
「쏘비에트」 지배밑에 있는 공산 주의의 모든 제도는 인민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특히 공산주의 밑에서 인민이 가지리라고 「맑스」가 주장한 자유도 갖지 못하고 있다. 또 거기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 교국의 종교들도 붉은 제국 밑에 노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참된 종교를 가지고 「메시야」의 참된 소망을 전하는 수천명의 증인들은 투옥되고 있으며 『인민의 낙원』을 부르짖는 무자비한 지배자들의 손에 심한 악형을 받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떠한 악형을 받고 있는가?
복음이 「러시아」에 들어가다
건설된 하나님의 왕국 복음이 어떻게 철의 장막 내부까지 침투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오랫동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 사람들 자신에 의하여 가능하게 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후에 「쏘비에트」 정부는 여러 지역을 합병(合倂)하여 버렸는데 그 지역은 「몰다비아」 서부 「우크라이나」 「카르파도—우크라이나」 백 「러시아」와 「발틱」의 지방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내에 수천명에 달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즉시로 진리의 강물을 강대한 공산주의 사막에다 퍼붇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예수께서 에언하신 세계적 전도에 한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마태 24:14) 이 진리의 강물은 붉은 제국 내부 각처에 흐르게 되었으며 북으로 동으로 남으로 혹은 「포르퀴타」에 있는 노예 수용소가 기타 「쏘비엣트」 연방 각처에 있는 수백개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이 진리의 물은 흐르게 되었다.
1951년만 하여도 7천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의 증인들이 『생명을 위하여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는데 이들은 황무한 땅에서 거이 연명하였으며 죽은 사람도 적지 않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대를 받은자들은 7천명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증인 하나는 단순히 그의 종교를 위하여 고초받은 사실을 다음과같이 말하였다.
『1940년 4월 10일 나는 붉은 「낙원」의 감옥과 수용소를 이리 저리 옮겨 다녔으며 그동안 세월은 14년이나 흘렀으며 법정에 불리운 일이 5회나 되었다.』 무개화물차 속에 수백명식 한데 실려 자리도 없고 음식도 없고 땔 장작도 없이 알지도 못하는 지역으로 달아난다. 가끔 저녁에 얘기하던 동료가 아침에는 얼어죽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는 말하며 『이 화차로 가는 사람 중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였다.
「스버-드로브스크」 지방에 있는 「뷔에르카투리아」에서 반수에 달하는 사람이 얼어죽으며 쇠약하여지여 굶어죽을 지경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4일간을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거기 있는 숲을 베어 버리고 거기다 헛간을 강제로 세우게 하였으며 제재소를 만들게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널판이 우리의 침대이며 우리의 바지가 요대신 사용되고 모자를 벼개 대신으로 베었으며 이불 대신에 쟈켓을 덮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나는 가끔 이처럼 굶주려 넘어갈것 같은 사람들에게 증거하여 주었는데 그들은 널판에서 사람을 하나씩 옮겨갔다. 그사람들은 얼어 죽은 사람들과 일을 하다가 굶어죽은 사람들이었다.』
그후 이 여호와의 증인은 숲을 깨끗이 베어버리는 일을 하기 위하여 「시즈란」으로 옮겼다. 거기서 그는 굶어 죽을지경 이었으며 육체가 쇠약하여 맡은 일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때문에 그는 「쏘비에트」 법률에 걸리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또 10년형을 받게 되었다.
이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형을 받은후에 먼곳으로 옮겨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기 저기 수용소가 연달아 있었기 때문이다. 약 1키로 메-터나 되는 골짜구니가 「볼가」강으로 부터 가루 놓여 있었다. 그곳을 사람들은 「고-리로-브 지대」라고 불렀다. 그곳에 수용소들이 있었다. 투옥된 사람들과 자유인들은 그곳을 「사망의 골짜구니」라고 부른다. 거기 있는 수용소들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굶주려 죽이는 곳이었다. 그들은 파리처럼 죽어버렸다.』
이러한 핍박은 그의 믿음을 파괴하였는가? 그는 대답하기를 『내가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나는 더 전도를 하였다. 나는 투옥된 사람들에게 전도하였다 하여 10년 언도를 두번이나 받았다. 새로 언도를 받으면 먼저 형은 무효가 되고 만다. 이러한 형 때문에 수백명이나 되는 오순절교회 복음전도교회 침례교회 계시교회 안식교회나 기타 왕국의 기쁜 소식에 귀를 막은 사람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많은 핍박을 받었다. 침례교인 하나는 그들의 찬송가를 불렀다고 하여 5년의 형을 받었다.』
이 수용소를 『교화소』라고 불렀다. 관리(官吏)들이 사용한 『교화』하는 방법의 하나는 그들이 처리해 버리고저 하는 사람을 헛간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그 헛간에는 변태적 성욕자가 있어 거기 들어온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여 나중에는 죽이게 하는 곳이었다. 그 증인은 말하기를 『나를 맡은 노예 감독자는 내가 석달반만에 헛간에서 살아나온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 나는 사자굴에 있었던 「다니엘」과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부딛힌 모든 곤난과 그들의 사악한 계획을 담대히 물리침으로 나는 그속에서 살아나올수 있었다.』
그 『교화소』의 감독자들은 그들의 변태적 성욕을 채우고저 투옥된 사람들을 때려서 몸둥이를 푸르게 혹은 까맣게 멍이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그리스도인의 전도인은 말하기를 『1950년에 비로서 나는 내 상에서 풀과 고기 뼈를 못보게 되었다. 그리고 1955년에 이르러 거이 사람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거기서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교화소」를 여기 저기 세우는 사람들 보다도 거기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견디기 쉬울 것이다. 「교화소」를 세우는 사람들은 벌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간수한 사람들 같었기 때문이다.』
1955년 6월 4일에 석방되어 지금 후대를 받고 있는 이 충성스러운 증인의 경험은 공산주의가 노동자의 낙원을 건설해왔다는 그들의 거짓 주장을 폭로시켰다.
전도사업은 계속되다
하나님의 군대들은 이러한 핍박으로 줄지 않고 늘어가고 있다. 지금 「소비엣트」 연방내에 진리를 아지 못하는 지역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약 40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진리를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감옥이나 수용소에서 전파된 결과였다. 그들 가운데도 붉은 군대의 장교들과 옥리(獄吏)들 경찰 법률가와 신문기자 기타가 들어있다.
「쏘비에트」 정부는 왜 이런 좋은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는가? 그들이 이렇게 하는 명백한 이유의 하나는 이들 지배자들이 자기들 밖에는 어떠한 주인도 인정치 않으려 하기 때문이며 심지어는 하나님도 주로 인정치 않는다. 「쏘비에트」 연방 「기에프」에 있는 「라디안스까 우크라이나」 지(誌)는 작년 11월 30일에 일반에게 공고하여 여호와의 증인을 비판한바 증인들은 나라에서 허락한 『종교적 의식을』 행하지 않고 『세상이 최고 주권자인 여호와에 의하여 통치되며 인간들은 다만 땅에서 그의 뜻을 행하는 종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동적인 선전을』 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공산주의자들은 반동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만 성경의 가르침에 지나지 않는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세상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또 천적 아버지께 드린 예수의 기도 가운데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셨다.—시편 83:18; 누가 22:42.
사실로 「쏘비에트」 정부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인정한들 손해될 일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을 성의껏 섬기는 증인들에게 근본적인 권리를 인정하므로 해를 입는 정부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을 간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에게 완전한 숭배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쏘비에트」서 자유를 인정하든 인정치 않든 여호와의 증인들은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천국의 기쁜 소식을 계속하여 전할 것이다. 우리는 옛날에 예수께서나 그의 사도들 그의 제자들이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아」나 「로오마」의 권위들로부터 아무런 「법적 신분」을 받지 않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어디를 막논하고 가서 전파하였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와 똑같은 입장에 있다.
「시베리아」에 있는 증인 한사람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왔다. 『우리는 천국의 기쁜 소식 전하는 것을 중지할수 없읍니다. 우리는 이 지역을 얻어서 마음에 흡족합니다. 또 주를 합당하게 증거하여 어디나 그의 영광을 알리기로 굳게 결심하였읍니다. 우리가 절실히 느끼는 것은 신세계에 있는 형제들에게 우리의 충심으로 나오는 사랑을 전하여 줄것이며 또 세계 각처에 있는 우리 형제들이 한데 모일 기회를 한번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전세계에 있는 형제들도 그들과 함께 모일 기회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상태는 완화되다
1956년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각하운동과 더불어 약간 개량된 점이 있다. 오랫동안 감금되었던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모든 죄로부터 해제되었다』라는 문서를 받으므로 자유 석방되었다.
1951년에 「시에리아」 지방 「이르쿠-쯔크」로 이송된 7천 명의 『특별 거주자들』 중 얼마는 지금 자유 석방되었는데 나머지는 아직 지방 관청에다 매월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 석방된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올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전도 사업이 지금 발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 또다시 증인이 얼마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리고 「러시아」 수도에 있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져 원한다는 보도도 들어왔다. 또 많은 침례교인들이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침례교의 지도자들 중에서 정부와 야합(野合)하는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북극에 가까운 「포르쿠타」 수용소에는 달이 갈수록 호전되어 좋은 열매를 거두고 있다 한다. 「코들라스」부터 「포르쿠타」에 이르는 2800리의 거리에 연달아 놓여 있던 수백개의 강제 노동수용소가 폐하여지며 불탔기 때문에 그 지역으로서는 다만 「도로쿠타」와 그 부근에만 강제노동수용소가 남아있다.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진리를 배운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중 지금 자유의 몸이 된 사람들은 그 지방에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 먼 북방에서는 호별방문까지 행하여졌으며 또 「포르쿠타」 내에서도 행하여졌는데 거기서는 정규적인 집회까지 정규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포르쿠타」 수용소에 있는 사람 하나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보냈다. 『이곳에서 씨뿌리는 사업은 점점 활발성을 띄게 되었읍니다. 오랫동안 밭갈이 하지않은 이 땅은 씨를 잘 받아드리며 열매를 약속하여 줍니다. 오랫동안 사막과 같이 황무하였던 이땅은 꽃이 피기 시작하였읍니다. 여기는 기후도 변하였으므로 밭갈이 하기에(혹은 야외 봉사에) 더 적절하게 되었읍니다.』
「시베리아」 근방에 있는 「돔스크」로부터 편지를 하나 받았다. 『우리가 이렇게 먼곳으로 이동된 목적이 처음에는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었음으로 그 목적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지금 토착민들이 「잘 오셨읍니다!」 하는 말을 들을때 우리의 가슴은 말할수 없는 기쁨에 뜁니다. 제가 우리의 거주지로 부터 먼곳에 이동된 것은 일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으며 내 마음 가운데 불타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나는 여섯 식구로 되어있는 한 가족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지금 진리를 사랑하고 있읍니다. 나는 그들에게 성경을 주었읍니다. 몇달 동안 그들과 함께 공부한 결과 그들도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증거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마을은 조그마합니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거리를 걸으면서 마음껏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면 그 노래 소리는 「시베리아」 숲까지 울립니다.』
수용소에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폴랜드」 사람 하나는 다음과같이 보도하였다. 『드디어 「폴랜드」로 돌아갈 날이 왔읍니다. 깊이 감동된 장교 하나는 내게 와서 말하기를 「나는 위대한 여호와의 손이 당신 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당신과 같은 확고한 여호와의 증인의 신분으로서 「시베리아」를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있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여 줄것을 바랍니다」라고 하였읍니다.』 그곳 「시베리아」에 있는 「쏘비에트」 장교에게 얼마나 놀라운 증거를 남겼던 것인가!
1956년에 많은 증인들이 석방되었다. 그러나 얼마는 아직 수용소에 남아있다. 「시베리아」로 압송된 수천명의 증인들은 아직 성경이나 성경연구 서적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순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접촉하지도 못하며 회중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히랍정교(正敎)나 침례교는 상대적 자유를 즐기고 있는가? 그 이유는 다만 그들이 하나님 보다도 「가이사」에게 더 순종할 것을 스스로 성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 불충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한다.
「폴랜드」와 기타 나라에서
이처럼 순직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억압은 「쏘비에트 러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그 위성국가인—「항가리」 「책코」 「폴랜드」와 기타 나라에도 행하여지고 있다.
「폴랜드」의 백성들은 교회의 지지를 받고 있던 봉건제도 밑에서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봉건제도는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였다면 죽어서야 받을 먼 장래의 약속뿐이었다. 농부들은 특권 계급의 향낙적인 생활을 위하여 비참한 고통을 겪어왔다. 그리고 농노(農奴)를 면하였다는 것은 이름뿐이다. 이러한 낡은 제도를 전복시킨 공산제도 밑에서 「폴랜드」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발생된 테로 정치로 말미암아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
경제상태는 극도로 엄하다. 도덕은 악화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여자들을 「부엌의 노예」로 부터 해방시켜 공장에 보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폴랜드」의 신문은 도덕의 부패를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들의 도둑 떼가 늘어가고 있는 것은 여자들이 가정을 떠난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핍박은 전체주의 국가의 특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방해를 하고있다. 일치 단결하여 굳세게 나아가는 사람들을 「폴랜드」의 공산주의는 처음으로 보았다. 증인들이 숭배를 위하여 결정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에 관리들까지도 당황할 지경이었다.
수천명에 달하는 얌전하고 정직한 여자들과 아이들 (그 중에는 노동자 농부 가정주부들)이 모두 바보같은 의심을 받았으며 간첩으로 고발당하였으나 그들은 무자비한 체포자들에게 천국 소망을 증거하여 주었다. 모두가 다 같은 내용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과 왕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의로운 신세계에 대하여 놀라운 증거를 하였다. 심지어는 가장 열성적인 공산주의 관리들도 똑같은 것을 이구동성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들의 추궁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체포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몇시간 혹은 이삼일의 질문을 받은 후 석방되었는데 수백명의 순진한 사람들은 억압과 폭행과 유혈로 말미암은 무자비한 『낙원』의 옥중에 갇혀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대항해 보았으나 증인들의 확고부동한 태도는 서있는 바위와 같었으며 양쪽의 대립은 마치 여호와와 「사단」이 그들의 신임을 받는 종들과 숭배자들의 성품을 쓰고 서로 대립하고 있는것과 같었다. 어떠한 억압도 그들을 마비시키거나 흩으는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갇쳐있던지 자유로운 몸으로 있든지 그들의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며 듣고저 하는 사람에게 주의 목적을 설명하여 준다.
형무소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많은 사람이 진리를 배웠다. 증인들을 환영한 사람들이 수천명에 달하였으며 그들은 여호와께 가르치심을 받고저 원한다. 그러므로 천주교 교직자들이 말한바와같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공산주의자들과 연맹하고 있다는 말이 어리석은 것과 같이 공산주의자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을 간첩이라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폭력과 고초도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베리아」를 심문한 것과 같은 심문으로 왙취타워 성서책자 협회의 지부의 종과 기타 책임있는 전도인들을 수개월간 심문하였다. 그들이 가끔 육체에 심한 상처를 입을지언정 그들의 영적면에는 하등의 충동을 주지 못하였다. 많은 증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폴렌드」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개월간 증인들의 수효는 계속적으로 늘어갔다. 모든 핍박 가운데서도 그들은 영적 기근을 당하지 않었다. 그들 몇사람씩 집회를 가지므로 모이기를 폐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공개강연』은 장례식때 행하여졌다. 장례식 때마다 아무런 목사도 없이 수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성읍을 통과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신기하게 보였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이 결코 『해산』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동리에서 호별방문 전도를 하였다. 「스탈린」 각하운동이 시작된 후로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오늘날 전해야할 유일한 참된 복음을 가지고 호별방문을 하였다.
그들은 이 새상 모든 문제에 대하여 인간의 해결책이 항상 실패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을 참으로 해결할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인정하며 또 고대하고 있다. 참다운 해결은 정치적 해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으로 부터 온다. 지금이야말로 이 왕국을 받아드려서 위안을 받으며 「사단」의 악한 제도의 종말을 통과하여 창조주께서 친히 가져오실 의롭고 새로운 신세계로 들어갈수있는 길을 택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