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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신들의 상』과 『여호와의 상』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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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6
파56 2/1 23면

『귀신들의 상』과 『여호와의 상』

『너희가 여호와의 잔과 귀신들의 잔을 경하여 마시지 못하고 여호와의 상과 귀신들의 상에 경하여 참예하지 못하리라.』—고린도전 10:21, 신세.

1. 왜 여호와의 『상』은 이 이름으로 불리우는가 또 그상에 수종드는 자들에게 대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불평하였는가?

하나님의 제단(祭壇)을 『상』이라고 부른다. 그 위에서 드리는 제물을 음식으로 비겨 놓았기 때문이다. (에스겔 41:22) 여기에서 이 희생물의 상에 수종드는 것은 제사장들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 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에스겔 44:15, 16) 맡은 바 임무를 게을리 한 제사장들에 대하여 불평하여 그는 말씀하신 바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식품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말라기 1:7, 8, 11, 12.

2. 제사장들은 어찌하여 거룩함을 증명하여야 하는가?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되려면 희생물은 어떤것이라야 되는가?

2 하나님의 제단에 식물을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깨끗한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한 것을 증명하며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여호와의 제단에서 그가 기뻐하시는 것이 되려면 험없는 건전한 희생물을 드려야 한다.—레위기 21:6, 21; 3:11; 22:21, 25, 신세.

3. 『귀신들의 상』이란 무엇인가 또 누가 그들에게 희생물을 드리도록 잘못 인도되었는가?

3 귀신들의 상이란 귀신들에게 희생물을 드리는 제단을 말한다. 귀신들은 보이지 않는 악의 지적(知的) 영물들이며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에게 희생을 드리도록 여러번 유혹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대에 일어난 새 신 … 들이로다.』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邪神)에게 제사하였도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올려 가나안 우상에게 제사하므로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신명기 32:17; 시편 106:37, 38.

4.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시험에 봉착하였는가 이 문제를 통치체는 어떻게 결정하였는가?

4 그리스도인 세대 제1세기에 이교국에 사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이교(異敎)의 우상에게 희생드린 동물에관하여 시험을 받게 되었었다. 희생할 동물의 일부는 우상의 제단에 제공되었으며 일부분은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분배되었다. 그리고 그 고기에 남은 것은 잔치에서나 성전 혹은 각개인의 집에서 경배자가 스스로 소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돈이 필요하여서 혹은 이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어떤 이들은 희생드린 고기를 식육점(食肉店)에 주어 고기 시장이나 도살장에 팔게하였다. 이런 고기는 한번 우상이 대표하는 귀신들에게 제공된 것이므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고기를 먹는 것은 가증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할것인가? 제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의 통치체는 이 문제에 봉착하여 토의한 결과 『요긴한 것들』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하는 것임을 결론 지었던 것이다.—사도 15:22-29.

5. 어떠한 음식을 먹지 말도록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의 하였는가? 왜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그러한가?

5 고대 이교도시(異敎都市)인 고린도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바울이 전도한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그 중에는 그 회당이 책임자와 그의 가족도 들어있었다. 기타의 고린도들도 여러명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고린도에는 먼저 우상에게 의식적(儀式的)으로 바친 동물의 고기를 파는 도살장 혹은 육류시장(肉類市場)이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 8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 변론하였다. 그는 적절한 지식과 이해를 갖지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보고 충동을 받거나 그들의 양심에 꺼리끼는 일을 행하게 되지 않기위하여 그러한 제물을 먹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지식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자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자가 멸망하였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린도전 8:1, 4, 10-12.

6. 거기에는 양심외에 무엇이 더 있었는가? 왜 거룩히 구별된 그리스도인들은 위험을 피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6 그러나 여기에는 양심 이상의 문제가 있었다. 우상에게 드린 것들을 먹게 됨으로서 우상숭배의 죄를 짓기쉬운 위험성이 있었다. 방법으로 우상숭배를 하지않도록 변론하는 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그가 편지를 보낸 이 거룩히 구별된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만찬』 혹은 『주의 석찬(夕餐)』을 축하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것은 주 예수의 주검을 매년 기억하는 기념식인 것이다.—고린도전 11:20.

7.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에 대하여 언급한 그의 변론에 있어서 고린도전 10:6-22에 무엇이라 말하였는가?

7 바울의 변론 방식은 주의 만찬의 뜻에 빛을 던지고 있다. 그 변론을 따라 우리는 진리에 이로게된다. 그는 말한바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않게 되려 함이니 저희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말라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이러나서[금 송아지 앞에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중에 어떤이들이 [바알 브올의 경배와 함께]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명이 죽었나니 …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부리가 데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육신을 따라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 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져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들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여호와의 잔과 귀신들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여호와의 상」과 귀신들의 상을 겸하여 참예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여호와를 노여워 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고린도전 10:6-22, 신세.

8. 그러면 우상의 집에 가서 먹는 것을 피하는 것이나 혹은 그리스도인 형제가 그 고기는 먼저 우상에게 드린 것임을 밝힐때 먹지 않는 것이 왜 잘하는 일인가?

8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우상의 집에 가서 그 집 우상에게 드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왜 그런가?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보고 우상을 숭배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과 또 우상 숭배를 부지중에 하게될 위험성을 피하기 위하여서이다. 맥카론 (mákellon) 혹은 육류시장에서 파는 고기에 대하여 계속하여 바울은 말하였다. 『무룻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여호와의 것 임이니라」 불신자중 누가 너희를 [그의 집이나 잔치에]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불신자가 아니라 약한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 형제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오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고기에]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되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 10:25-31, 신세.

귀신들과 교제함

9. 귀신을 숭배하는 의미에서 고기를 먹는다면 무엇을 행하는 것이 되는가 또 바울은 이스라엘이 제사드린 것에서 무엇을 실예로 들었는가?

9 어떤이가 우상에게 드린 고기를 먹되 먹는 것으로 우상을 존경하는 생각으로서 먹는다면 그는 무엇을 행하는 것이 되는가? 그는 귀신들의 상에 참예하고 있으며 스스로 귀신들과 친교하는 것이며 귀신들과 사귀이며 또 그들에게 참가하는 것이 다. 왜 그런가? 이상에 인용한 구절(고린도전 10:18-21, 신세)을 다시 상고하여 보라. 그러면 사도 바울이 육적 이스라엘로써 예를 들어 질문한 것을 알게된다. 『제물을 먹는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제물을 먹는 사람들은 단지 제사장들 뿐이 아니라 그 제물을 마련한 이스라엘사람들도 먹었던 것이다. 제사장들에 관하여 바울은 앞장에서 질문하였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여호와의 상]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 9:13, 신세)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화목제 혹은 친교제를 드렸을 때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시 그 제물의 일부분을 먹었던 것이다. (레위기 7:11-37) 친교 제의 피는 여호와의 제단위에 뿌려졌으며 그 기름은 여호와께 직접 드리는 제물의 일부분으로서 제단 위에 불살웠던 것이다. 『떡』 혹은 『음식』이 되었던 것이다. (레위기 3:11; 7:14, 22-26; 9:18-20; 17:5-7; 21:6; 22:25) 친교제물의 가슴과 우편 후각은 제물을 수종한 제사장의 것이 되었다. (레위기 7:28-36; 9:21; 10:14, 15) 나머지 고기는 친교제를 드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었다.—레위기 7:15-21; 19:5-8.

10. 친교제의 일부분을 먹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엇을 갖고 있었는가 따라서 그 제사의 이름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이라할 수 있는가?

10 이와같이 화목제물을 먹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희생한 제단과 사귀이는 것 또는 교제하는 것이 된다. 그 제단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으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음식을 드린 곳은 여호와의 상이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음식으로 드린 기름을 취하였던 동일한 친교제물을 먹음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였으며 또는 그와 함께 식사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여 중보자 모세를 통하여 그들과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제사장과 제단과 더불어 친교제물음 먹음으로써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특별한 교제를 하게된 것이다. 그들은 상징적인 『여호와의 상』에 참예하였다. 이와같이 70인역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화목제와 구원의 제라고 불렀으나 『친교제(親交祭)』라는 이름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사무엘 상 10:8; 11:15; 13:9; 열왕상 3:15; 8:63, 64; 9:25; 레위기 3:1; 22:21, 70인역.

11. 하나님과의 이 친교를 즐기기 위하여 레위기 17:5-7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엇을 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는가?

11 하나님의 상에서 이루는 하나님과의 이 특별한 친교(親交)를 즐기기 위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귀신들에게 제사하는 것을 금지 당하였었다. 『이스라엘 자손이[그들의 동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 [친교제, 신세] 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희막 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러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그들은 … 수염소 형상이 대신한 귀신들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레위기 17:5-7, 신세.

12. 우상과 그것에게 제사한 동물이 대단한 것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바울이 고린도 전 10장에서 이러한 제물을 먹지 않도록 충고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12 이와 같은 이유로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우상에 제물드리는 것을 피하여야 한다고 바울은 변론하였다. 우상 자신이 금, 은, 목, 석등의 만들어진 물질이상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혹은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 새로운 품질이나 가치를 갖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인 상태를 변경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생명이 없는 물질로 된 우상은 귀신을 대표하고 있기때문이다. 『만방의 모든 신들은 우상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들은 귀신들[악마들]이요 주는 하늘을 지으셨음 이로다.』 (70인역 톰슨, 배그스터) 따라서 경배자가 제사하는 잔치에서 우상에게 드린 동물의 일부를 먹을때는 『귀신들의 상』에 참예하는 것이 된다. 그 우상의 제단은 귀신들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사 잔치에서 포도주를 마시면 그는 『귀신들의 잔』에서 마시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귀신들과 친교하며 「귀신들과 교제하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서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였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들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여호와의 잔과 귀신들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여호와리 상」과 귀신들의 상에 겸하여 참예하지 못하리라.』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분이시며 여호와께만 몸바치기를 요구하신다.

13. 사도 바울은 거기에서 『여호와의 잔』과 『여호와의 상』이 무엇과 관련된 것을 밝혔는가?

13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서 『여호와의 잔』과 『여호와의 상』으로서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왜 『우상에게 드린 음식』에 관하여 어떠한 혼돈이라도 피하여야 하는가 라는 이유를 변론한 바울의 말은 잔과 떡에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한바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때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린도전 10:16) 여기에서 바울은 『주의 만찬』 또는 『주의 석찬』을 설치하였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한 잔과 떡을 가리키고 있다. 이 만찬을 그리스도교국에서는 흔히 『성찬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제 바울이 변론한 것을 오늘 날 우리에게 적용하여 보기 전에 19세기 뒤로 돌아가 (주후) 33년에 예수께서 하신 일을 고려하기로 하자.

『주의 만찬』

14. 예수는 마지막 유월절을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축하하기를 마련하였는가 또 왜 그들과 함께 축하하기로 하였는가?

14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예수의 제자중 네명인 마태, 마가, 누가, 바울이 자세히 묘사하여 주었다. 12사도의 일인으로서 마태는 스스로 그 장소에 임석하였었다. 바울은 묵시로써 『주께로 부터』 직접 자기의 정보를 얻었던 것이다. (고린도전 11:20, 23) 언어나 세세한 것에 있어서는 기록 전부의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가 연결되어 특색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육신에 따라 충성스러운 유대인의 하나로서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지키는 일에 관하여 교훈하셨다.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도시었다. (신명기 16:1-7) 그날 저녁 예수는 마지막 유월절을 누구와 함께 축하하셨는가? 전년에 하듯이 그의 가족들 즉 그의 지적 어머니인 마리아와 예수의 이형제(異兄弟)인 마리아의 아들들과 같이 축하하지는 않었다. 물론 마리아와 그의 아들들은 유월절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 있었으며 다음 날 오후에 마리아는 예수가 달린 형주 곁에 있었고 예수도 그곳에서 그에게 담화하였던 것이다. 마리아의 다른 아들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유월절을 위하여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루살렘에 왔었을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유월절 축하 집단은 각각 적으며 보통 10명으로 되어 있는 고로 예수께서는 이 마지막 유월절을 그의 12사도와 같이 축하하기로 마련하신 것이다. 식탁에서 그는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바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 까지 나는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누가 22:15, 16, 신세) 그런고로 예수는 이 유월절 밤에 특별한 것을 마음에두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즉 그들을 위하여 새로운 만찬 또는 석찬을 세우신 것이다.

15. 주의 만찬을 마태는 어떻게 묘사하였는가?

15 임석한 마태에 의하면 만찬의 진행상태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이와 같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메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 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마태 26:26-30.

16, 17. (ㄱ) 예수는 떡을 가지고 어떻게 하셨는가? (ㄴ) 왜 예수는 떡을 자기 자신의 살로 변질이나 변갱하지 않으셨는가?

16 예수께서 떼신 떡은 전부 누룩을 넣지 않은 떡 혹은 발효(發酵)시키지 않은 떡이었다. 유월절과 그 후 7일간에는 유대인의 집에 누룩이 법적으로 금하여졌었다. (출애굽 12:8, 15, 17) 예수는 떡을 칼로 비지 않으셨다. 누룩이 들지 않은 떡은 편편하고 연한 것이었다. 그는 그 당시에 식사 시 떡 먹을 때에 하는 보통 방법으로 그것을 떼셨던 것이다. (마태 15:36; 14:19; 마가8:6, 19; 누가 24:30; 사도 27:35) 그러나 먼저 그는 축복을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축사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누가와 바울은 그들의 기록 속에 그가 감사 드렸다고 한 것이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누가 22:19; 고린도전 11:23, 24) 그런고로 떡을 쪼긴 것에는 아무런 특별한 뜻이 포함될 필요는 없다. 예수는 이것을 그들에게 분배하기 위하여 쪼긴 것이며 그것은 5,000명과 또 한번은 4,000명을 먹인 때와 같은 것이다.

17 그러나 예수는 그가 쪼기셔서 그들에게 준 떡에 대하여는 특별한 의의(意義)를 두셨던 것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여 그가 기적을 행하시고 덕을 변질(變質)이나 바꾸어서 누룩이 들지 않은 반죽을 사람의 살로 만든 것은 아니다. 예수는 자신이 살 전부를가지고 계셨다. 그가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는 흠이 없고 아무 것도 없어지지 않은 그 자신의 육신 전부를 갖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몸은 그들이 방금 먹었던 유월절의 어린 양과 같어야 되었었다. 그 어린 양은 예수를 표상한 것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이런 면에서 이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그렇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그런고로 그가 떡을 변질 시킨 것은 아니며 다만 그의 몸을 포상하기 위하여 떡을 사용하셨을 뿐이다.—요한 1:29; 출애굽 12:5; 베드로전 1:19.

18. 『내 몸』이란 말로써 예수는 어떤 몸을 의미하셨는가?

18 그의 몸? 그렇다. 예수 자신의 몸 즉 그들에게 그가 주실 것은 머리로부터 전부를 포함한 그의 몸 전부이다. 예수는 자기 자신의 몸을 가리켰으며 그는 다음에 잔에 관하여 말씀하실때 이 몸과 자신의 피를 관련시키셨다. 33년 반동안 그 몸은 갈보리에 형주위에서 쏟을 피를 담고있었던 것이다. 그 육체의 생명은 그 속에 있는 피었다. 그 몸을 침예받기 위하여 요한에게 왔을때에 예수는 시편 40:6-8을 인용하여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짐승의]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자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 하러 왔나이다.』」』—히브리 10:5-7.

19. 그 육신으로서 예수는 무엇을 견디셨는가 그것을 통하여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그는 무엇을 열어 놓으셨는가?

19 그 몸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준 것인즉 죽은 자 가운데서 부할하였을 때에도 그것을 도루 찾아가지는 않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그의 천적 아버지는 그에게 다른 몸을 준비하셨는데 그것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거할 영적 몸이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 하늘에 있는 영원한』 것이다. (고린도 후 5:1) 예수께서는 보통의 지적 몸으로 반대자들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비난을 견디셨다.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대한 충성을 더럽히지 않았다. 사도 베드로도 이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티를 범치 아니하시고 … 친히 형주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라. (베드로전 4:1; 2:21, 22, 24)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을 위하여 인간으로서의 육신으로의 존재를 포기하셨다. 이처럼 그는 그들이 하늘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즉 『예수의 피를 힘 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브리 10:29, 20.

20. 예수의 피는 어떤 역활을 수행할 것이었는가? 또 예수는 이 점을 만찬시에 어떻게 지적하였는가?

20 예수는 단순히 육신으로서 피를 갖지 않은 화신(化身)이나 체현한 육신은 아니다. 그는 혈육을 가진 인간의 자녀를 대속하기 위하여 오셨으며 기록되었으되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 하였다. (히브리 2:14) 제자들이 예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축하하도록 이 만찬을 설치할 때 예수께서는 그의 피가 수행하는 역활에 관하여 주의를 집중시켰던 것이다. 그는 잔을 드셨다. 그 충만한 잔을 그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라 부르셨다. 그리고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 26:27, 28; 마가 14:23, 24)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 22:20) 이같이 자기의 피가 특별한 용도에 사용될 것 즉 많은 제자들의 죄를 사하게 하는 바 새 언약이 효능(效能)을 발하도록 할것을 기록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그들을 위하여 혈과 육을 주신 것이다.

21. 여기에서 예수는 왜 자기의 피를 유월절 양의 피에게 비기지 않었는가 그러나 누구의 말을 예수는 여기에 인용하였는가?

21 예수는 자기가 말한 것으로서 그의 피를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와 비교치 않았음을 아무쪼록 주의하라 유월절의 양이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를 표상한것은 사실이다. 또한 유월절 의 어린양의 피를 고대 애굽에서 이스라엘 집의 문설주와 기둥에 발러 여호와의 멸망케하는 천사로 하여금 보고 안에 있는 초태생의 어린이나 동물을 죽이지않고 그 집을 지나가도록 한 것도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사도들은 『마음의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그의 피를 밝히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출애굽 12:7, 21-23; 히브리 10:19, 20, 22; 9:14) 그러고로 그들도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되는 것이다. (베드로전 1:19) 그러나 선지자 모세가 중보 노릇을하며 세워진 율법의 언약은 유월절의 양의 피로 말미암아 유효케 된 것은 아니다. 백성과 언약의 율법책 위에 뿌리워진 것도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는 아니었다. 그때 모세는 말한바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하였다. (출애굽 24:7, 8) 그렇다. 그것은 다른 동물들의 피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 새 언약을 맺일 것을 미리 가리켰으며 『언약의 피』 라고한 모세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 자신 의 피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22. 사도 바울에 의하면 시내산에서 『첫 언약』이 시작되었을때 어떤 동물을 죽였는가?

22 시내산에서 『첫 언약』이 설치되었을매 어떤 동물을 죽였는가? 그것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기록하였다. 『언약은 죽은 희생물이 있어야 되나니 언약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 한즉 언약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히브리 9:17-20, 신세) 피를 준비하기 위하여 염소나 송아지를 죽였던 것이다.

23, 24. (ㄱ) 모세에 의하면 구 율법의 언약을 세우기 위하여 어떤 종류의 제물이 제공 되었는가? (ㄴ) 고기를 가지고는 무엇을 하였으며 피는 무엇을 하고 또 이러한 것으로 표상한 것은 누구의 피었는가?

23 이제 유월절이 지난지 세번째 되는 달에 구 율법의언약 시작될때에 그들이 바친 제물의 종류에 주의하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 [친교제, 신세]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여호와의 상]에 뿌리고 언약서를 갖어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 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새우신 언약의 피니라.」』—출애굽 24:5-8.

24 거기에는 번제만을 드린것이 아니라 친교제도 드렸음을 주의하라 친교제는 보통 양이나 염소와 같은 적은 가축들로 행하여 졌다. 바울은 이러한 친교제가 염소도 포함하였다고 표시 하였다. 이것은 여호와께서만 이러한 친교제의 기름을 취하였을 뿐 아니라 제사장들도 제물의 우편 후각과 어깨를 취하였으며 제사장들이 이런 일에 친교제물의 남은 것 전부를 취하지 않을때에는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인 『이스라엘의 칠십 장로들』이 친교제물의 남은 것을 먹었다. 이같이 이스라엘은 제사장들과 대표자들을 통하여 전부가 구 율법의 언약이 세워졌을때 제단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친교하였던 것이다. 시내산에서 죽여진 이 송아지와 염소들 전부의 피는 여호와의 새 언약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표상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동물들의 피는 여러 양푼에 함께 넣어 혼합한 후에 율법책과 백성들에게 뿌렸기 때문이다. 예수에 관하여 기록된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드러가셨느니라.』 (히브리 9:12) 예수는 자기의 피를 제공하기 위하여 희생적으로 죽으셨다.

25. 예레미야 31:31-34에서 여호와는 무엇을 마련하시기로 약속하셨는가 또 그 기초로서 왜 피가 필요한가?

25 여호와께서는 구 율법의 언약을 없이 하시고 모세보다 큰 선지자에 의하여 새 언약을 마련하실것을 약속하셨다. 이것을 예레미야 31:31-34절에 기록하고 있다. 새 언약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담당하실 역활에 관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죄악이 사하여지고 죄가 합법적으로 제하여지기 위하여 이 새 언약의 기반이 될 무엇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흘린 피인 것이다. 첫 언약의 설립에 관한 기사를 뒷이어 히브리 9:22절은 이같이 말 하였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사함이 없느니라.』

26. 그런고로 예수께서 주의 만찬시에 무엇이라고 말한것이 마땅한가 그러면 마땅히 누가 그 잔을 마실 것인가?

26 그런고로 죄와 과실의 정리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하여는 예수의 피가 완전한 인간 제물로서 쏟아져야 하였다. 우리는 율법의 첫 언약 아래서 동물 제물에 의하여 정죄된 곳으로부터 해방될수는 없다. (히브리 9:15, 신세) 새 언약은 하나님의 죄 사하심을 약속하였고 잔에 드른 포도주는 새 언약에 필요한 예수의 깨끗하고 완전한 생명의 피를 고상한 이상 예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언약의 피」니라.』 (마태 26:27, 28) 새 언약에 드러오고 영적 이스라엘이된 이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주의 만찬의 잔을 마시도록 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그의 피를 마심

27. 그 잔을 마심으로써 그들이 무슨 언약에 들어 있는것을 표상하는가 또 어떤 영향을 받는 것을 상징하는가?

27 잔을 마심으로써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새언약안에 있음과 그 이익 즉 예수의 피를 통한 하나님의 죄사함 받는 것을 표상한다. 그 잔을 마심으로써 그들이 그의 피 마시는 것을 표상한다. 그 잔을 마심으로써 그들은 정죄 받지 않고 이익 받는 것을 표상한다. 이 표상적 면에서 예수의 피를 마심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정죄함을 받지않고 대신 생명의 이익을 마시는 것이다. 피 속에는 생명이 들어있기때문이다. 믿음을 통하여 그의 피를 표상적으로 마시는 것으로서 정죄받아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의 육신인 몸을 먹는 것과 동일하여 금단의 음식을 먹은 것 같이 죽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이익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28. 요한 6장에 예수는 이러한 견지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였는가?

28 예수는 유대인에게 말씀하실 때 그런 견지에서 사실을 설명하셨고 여러 유대인은 그 소리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 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죽음이나 비합리한 음료가 아니라]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시몬 베드로는 이 말이 『영생의 말씀』이라고 하였다.—요한6:47-58, 68.

29.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어떤 두가지 요소를 제공하였는가? 잔의 뜻과 부합되기 위하여 떡은 무엇을 의미하고 없음에 틀림 없는가?

29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피와 함께 육신도 주셨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한 두가지 요소를 만찬을 설립하실 때에 떡과 포도주 잔으로서 표상하셨다. 포도주 잔은 새 언약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문자대로의 피를 대표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쪼겨 분배한 떡은 동일하게 문자대로의 인간 가치를 가졌어야 한다. 그것은 신세계를 얻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하여 제공한 그의 육신의 몸을 의미함에 틀림 없다.

30.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충격을 받은 이 유대인은 무엇을 하였는가?

30 그의 피를 마시는 것은 그의 죽음의 책임을 질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믿음으로서 그것을 감사하게 받으며 희생적으로 쏟은 예수의 생명의 피로 인한 이익을 수락(受諾)할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형주에 매달음으로써 그의 죽음을 요구한 사람들이야말로 그의 피를 마신다는 생각을 놀랍게 여기고 또한 믿음으로서 피 마실것을 거절한 사람들이었다.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 하였을때 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라 함으로써 예수의 사망의 책임을 담당한자들은 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마태 27:24, 25) 후에 유대인의 고등 법정은 사도들에게 항의하였다. 『너희가 … 이 사람[예수]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라 말하면서도 그들은 예수의 피를 상징적으로 마시기를 거부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의 무죄함을 표시하지 뭇하였었던 것이다.—사도 5:24,25.

31. 마시기를 거절한 유대인의 제사장들에 대하여 바울은 무엇이라 말하였는가? 그런고로 주의 만찬에서 상징적으로 예수의 피를 마실 자격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31 이같이 믿음 없이 그의 피 마시기를 거절한 까닭에 이 유대인들은 새 언약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 생명을 주는 유일의 『참된 음료』를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제사장들이었다. 이제 예수의 제물을 거절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의 성전의 물질적 제단에서만 계속 봉사하였던 제사장들에 대하여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속죄일의] 짐승의 피는 [유대인의]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이스라엘의]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예루살렘의]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브리 13:10-13) 이 낡은 조직 제도밖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이들은 믿음으로 예수의 피를 상징적으로 마시는 이들이다. 그들은 『주의 만찬』에서 잔으로부터 상징적으로 마실 자격이 있다. 그들 각인은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충분히 존중히 여긴다. (히브리10:29) 그들은 상직적인 떡을 가치있게 먹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같이 말할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브리 10:10.

귀신들과 아니하고 여호와와 교제함

32, 33. (ㄱ) 친교제물을 먹음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와 교제하였는가 또 왜 그런가? (ㄴ)우상 숭배자들은 어떻게 귀신들의 잔을 마시고 그들과 교제하였는가?

32 전항에 기록된 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 10:16-21와에서 한 말과 조화되는가? 조화되어야 할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가? 거기서 바울은 귀신들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제물들은 친교제물의 성질을 가진 것이며 그 제물을 바치는 제단을 「상」으로 비겨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 제단위에 놓아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바치는 제단을 하나님은 『여호와의 상』이라고 스스로 칭하셨다. (말라기 1:7, 12) 친교제물을 여호와께 바칠 때에는 포도주도 그것과 함께 드려 제단에 뿌리도록 명하여졌던 것이다. (민수기 15:8-16; 출애굽 29:40; 30:9) 경배자들이 친교제물의 허락된 부분을 먹을 때에는 그들이 『「여호와의 상」에 참예』하는 것이었으며 『사례하고 참예』하였던 것이다.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 살르고 그 피는 그 제단에 뿌린 제물을 먹는 것으로서 그들은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 제단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의 음식을 바치는 여호와의 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제물에 여호와와 함께 참예함으로써 그들은 여호와와 실제 교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함께 음식을 즐김으로써 하나님과 친히 사귀인 것이다.

33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자들이 귀신들에게 제사하고 그 제물의 일부분을 먹으면 그들은 『귀신들의 상에 참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귀신들과 교제하는 자』였으며 귀신들과 함께 음식을 즐겨 먹음으로써 그들과 연락하고 벗하며 친교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귀신들을 숭배하는 잔치에서 마시면 그들은 『귀신들의 잔에서 마시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이 주의 만찬에 참예할 때에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알리고 있다.

34. 이렇게 비교함으로써 주의 만찬을 어떻게 보게 되는가 그런고로 떡과 포도주는 어떤 의미를 가졌다고 볼것인가?

34 이상과 같이 비교하여 놓음으로써 사도 바울은 주의만찬을 희생적 만찬으로 보아야 할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떼는 떡』과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무엇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인가? 누룩이 들지않은 떡는 그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린 무죄한 『그리스도의 몸』 즉 육신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 육신은 『참다운 음식』이다. 예수께서 사례하신 포도주 잔은 『그리스도의 피』로 생각할 것이다. 그 피로써 그는 새로운 언약을 확약(確約)하셨으며 그것은 『참다운 음료』가 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이 완전한 희생은 언약을 세울 때에 드린 친교 제물과 같이 본다. 그 제물의 기름은 여호와의 제단에서 태웠으며 피는 논아 반은 하나님의 제단에 뿌리고 남어지 반은 먼저 하나님의 율법 책에 뿌린 후에 언약 속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뿌렸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치도록 제단과 같이 마련된 것을 바울은 『여호와이 상』이라 불렀으며 이 『상』으로부터 새언약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먹는다. 여호와이 위대한 제단의 마련과 그의 새 언약인 상징적 책 위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의 잔은 『여호와의 잔』이며 주의 만찬시의 포도주 잔으로 표상되어 있는 것이다.

35. 떡과 잔을 취하여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더 큰 무엇을 먹는 것을 표상하였는가? 도대체 그들은 누구와 더불어 보이게 참예하는가?

35 포도주 잔을 마시고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는 새 언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행하는 것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인간 제물인 그의 피와 살 양쪽을 함께 먹는것을 표시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의 잔을 마시며』 『여호와의 상에 참예』하여 『제단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지를 표상한다. 또 그리스도의 혈육의 제물을 통하여 어떻게 그들이 죄사함을 받는 이익과 구원의 이익에 참예하는지를 표상한다. 따라서 이제 남은 큰 문제는 믿음으로써 그들이 매일 행하며 매년 주의 만찬시에 표상적으로 이것을 행할때에 그들은 누구와 교제하며 누구와 연락하고 벗이 되어 친교하는가? 이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 [히랍어 코이노니아, koi.no.niʹa]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코이노니아]이 아니냐?』 그떻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이런 일에 참예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회중』 전부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전부와 더불어 참예하는 것이다. (고린도전 1:2) 즉 새 언약 안에 들은 영적 이스라엘 전부와 함께 참예한다는 것이다.

36. 그러나 그들은 주로 누구와 더불어 참예하는가 또 무엇에 참예하는가?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에 있어서도 어떻게 참된가?

36 그러나 이것이 전부인가? 사도 바울의 변론은 이 정도로 끝쳤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시 주로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참예하기 때문이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 『귀신들과 교제하는 자』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여호와께 드린바 된 하나의 커다란 제물 즉 모든 이를 위하여 단번에 바친 그리스도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여호와와 교제하는 자가 될것을 의미하며 그와 친교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여호와께 드린바 된 그리스도의 제물을 우리를 위한 제물로 받아 드린다. 물론 여호와께서 주의 만찬사의 문자대로의 누룩이 안들은 떡이나 포도주에 참예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떡과 잔이 다만 표상물 노릇을 한 참다운 육과 피에는 참예하신다. 이 유일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에 합동으로 참예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의 새 언약에 관계자가 된다. 제물에서 오는 이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련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일에 있어서 하는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과 사귀이며 친교하고 함께 참예한다. 이것에 대하여는 다음과같이 기록되었다. 『우리가 보고 들은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 [코이노니아]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 [코이노니아]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 [코이노니아]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어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 [코이노니아]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 1서 1:3, 6, 7.

37. 그런고로 주의 만찬을 먹는 이들은 모든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라야 하는가? 그 이유는?

37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과 귀신들 사이에 선택할 것이다. 타협이나 미지근한 것이나 쌍지팽이를 번가라 기대는것처럼 두가지의 틀린 의견에 의지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참다운 유일의 하나님 여호와에게든지 혹은 거짓 귀신들에게든지 분열되지 않은 충분한 경배를 하여야한다. 만일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주의 만찬을 먹고』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표상물인 떡과 포도주 잔을 마신다면 그들이 『여호와 의 상』에 참예하고 있다는 것과 여호와의 『제단에 참예하는 자』임을 스스로 언명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서 그들은 모든것이 여호와를 위한 것이라야 한다. 그들의 경배나 봉사를 분열시킬 수 없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이 세상의 열국이 현대 여러가지 우상들에게 바치고 있는 제물에 참예할 수도 없는 것이다.

38. 어떻게 주의 마찬시에 표상물을 떼어 먹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될수 있는가 또 그것은 여호와를 어떻게 하는 것이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38 동시에 주의 만찬을 축하하는 자들인 여러분이여 『너희가 여호와의 잔과 귀신들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여호와의 상」과 귀신들의상에 겸하여 참예하지 못하리라.』 그런고로 사도 바울은 말한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코이노니아] … 하나님이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다. (고린도후 6:14-16) 당신의 사랑과 열성과 경배와 봉사를 여호와 하나님과 귀신들간에 논고저 하면서도 주의 만찬에 참석하여 표상물을 떼어 먹는다면 당신은 거짓으로 행하는것이 된다. 그것으로 당신은 빛의 하나님과 사귀이고 벗하는척 하면서 사실은 그렇게 행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사실상 위선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너희는 어두운가운데 행하며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고 당신은 『여호와를 노여워하시게』 한다. 『여호와는 전적으로 몸 바치는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뉘인 사랑을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출애굽 34:14, 신세)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 온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바울은 이같이 질문하였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고린도전 10:22) 그렇지 못하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노엽게 한까닭에 그가 우리에게 가져오실 멸망을 이기거나 거절할만한 힘이 우리에게는 도저히 없다.—시편 78:5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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