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월 1일 월요일
오 여호와여, 당신은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십니다.—시 86:5.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으로부터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속을 근거로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용서할 의무가 없지만,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시 103:3, 10-13) 일부 사람들은 여호와께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분께 용서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9, 10)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면, 여호와께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들을 위해 대속을 마련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누가 5:32; 디모데 전서 1:15. 「파25.01」 26-27면 3-4항
6월 2일 화요일
친절한 사람은 자신을 이롭게 하지만, 잔인한 사람은 어려움을 자초한다.—잠언 11:17.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우리 뜻대로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나타내는 반응을 제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흔히 가장 좋은 반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분이 우리가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화가 난 상태로 있으면서 용서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건강도 나빠질 수 있습니다. (잠언 14:17, 29, 30) 분한 감정을 떨쳐 버리면 그런 감정 때문에 마음이 고통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난 일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다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방법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심한 부상을 당했다면, 치료를 받았더라도 다 나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의 감정이 치유되어 진심으로 용서할 마음이 생기려면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전도 3:3; 베드로 전서 1:22) 용서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십시오. 「파25.02」 16-17면 8-11항
6월 3일 수요일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입니다.—히브리 5:14.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에는 회개, 믿음, 침례, 부활과 같은 교리가 있습니다. (히브리 6:1, 2) 그러한 가르침들은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면서 그러한 교리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도 2:32-35, 38) 이러한 기본적인 가르침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경고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12-14) 하지만 우리는 단지 기본적인 진리를 배우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기본적인 교리와는 달리, 단단한 영적 음식에는 여호와의 법과 원칙이 포함됩니다. 하느님의 법과 원칙은 우리가 그분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 단단한 음식을 통해 유익을 얻으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주의 깊이 적용해야 합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파24.04」 5면 12-13항
6월 4일 목요일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 일어날 것입니다.—마태 12:41.
여호와께서는 요나에게 니네베 사람들이 “옳고 그른 것조차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나 1:1, 2; 3:10; 4:9-11) 훗날 예수께서는 그 예를 사용해 여호와의 공의와 자비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심판 때”에 “일어날” 것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미래에 “심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 5:29) 그분은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이 부활될 천년 통치 기간에 대해 언급하신 것입니다. (사도 24:15) 불의한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부활된 후 여호와와 예수께서 그들이 나타내는 행실과 하느님의 가르침에 보이는 반응을 지켜보며 평가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부활된 니네베 사람들이 순결한 숭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유죄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이사야 65:20) 하지만 여호와를 충실히 숭배하기로 선택하는 모든 사람은 호의적인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살 전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다니엘 12:2. 「파24.05」 5면 13-14항
6월 5일 금요일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려고 왔습니다.—누가 19:10.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자비를 완벽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요한 14:9) 예수께서는 동정심 많고 자비로운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우리 각자가 죄와 싸워 이기도록 돕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인 사람들이 생활 방식을 바꾸고 그분의 제자가 되려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누가 5:27, 28) 예수께서는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배신당하고 기둥에 못 박혀 처형될 것이라는 점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 17:22; 20:18, 19) 그분은 자신의 희생이 세상의 죄를 없앨 것이라는 점을 아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을 희생한 후에 “모든 부류의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2:32) 죄인인 인류는 예수께 믿음을 나타내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름으로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마침내 “죄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로마 6:14, 18, 22; 요한 8:32)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 끔찍한 죽음을 용기 있게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요한 10:17, 18. 「파24.08」 5면 11-12항
6월 6일 토요일
좋은 소식이 먼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마가 13:10.
당신이 성경 진리를 처음 배웠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당신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숭배하는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고통과 고난을 없애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사망한 가족과 친구들을 신세계에서 다시 만날 희망이 있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마가 10:29, 30; 요한 5:28, 29; 로마 8:38, 39; 계시록 21:3, 4) 당신은 그러한 점들을 포함해 많은 진리를 배우면서 마음이 감동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24:32) 당신은 배운 점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한 소중한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0:9 비교) 우리의 마음에 성경 진리에 대한 사랑이 자라면 분명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알리고 싶어질 것입니다. (누가 6:45) 우리는 1세기에 예수의 제자들이 한 다음과 같은 말에 공감합니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사도 4:20) 우리는 진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기 원합니다. 「파24.05」 15면 5항; 16면 7항
6월 7일 일요일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겨라.—시 100:2.
여호와의 백성인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 알도록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봉사가 즐겁지 않다고 느끼는 전도인들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부족할지 모릅니다. 또는 초대받지 않고 사람들의 집에 찾아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남들과 가급적 마찰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배운 사람도 있습니다. 이 형제자매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당신도 앞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때때로 봉사가 즐겁지 않다고 느낍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자신감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당신이 자신에게 주의를 끌고 싶어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한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다가 거절을 당하면 더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아시며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이사야 41:13. 「파24.04」 14면 1-2항
6월 8일 월요일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잠언 11:2.
성경을 읽으면서, 모든 점을 한 번에 다 실천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한두 가지 목표만 정해 보십시오. 이렇게 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발전해야 할 점들을 적은 다음 그중에 한두 개를 골라 먼저 실천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점들은 나중에 실천해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까? 달성하기 쉬운 목표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점부터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목표를 세웠다면 출판물을 조사해 보십시오. 자신의 목표에 대해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목표를 실천할 ‘의욕과 능력’을 달라고 청하십시오. (빌립보 2:13) 그런 다음 배운 내용을 실천에 옮겨 보십시오. 첫 번째 목표를 잘 달성하면 다음 목표를 세우고 이루려는 의욕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한 부면에서 발전하거나 한 가지 그리스도인 특성을 기르다 보면 다른 부면에서도 발전하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파24.09」 6면 13-14항
6월 9일 화요일
여러분은 이 일과 관련해 모든 면에서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고린도 후서 7:11.
어쩌면 당신은 과거에 한 잘못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괴로울지 모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까? 당신의 행동으로 인한 피해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에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청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때문에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인내하고 다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한 실수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여호와께서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사용하시든 기꺼이 그분의 뜻을 따르십시오. 예언자 요나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니네베로 가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습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징계를 받고 자신의 실수를 통해 배웠습니다. (요나 1:1-4, 15-17; 2:7-10) 여호와께서는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다시 니네베로 가라고 명령하셨으며, 이번에 요나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실수에 대해 후회하기는 했지만, 그 실수 때문에 주저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맡기신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요나 3:1-3. 「파24.10」 9면 10-11항
6월 10일 수요일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켜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그러면 새 힘을 얻는 때가 여호와로부터 올 것입니다.—사도 3:19.
여호와께서는 죄라는 우리의 빚을 면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지워 주십니다. 빚을 면제해 주었다는 표시로 장부에 큰 X자가 쳐진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도 X자 밑의 숫자는 여전히 똑똑히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운다는 것은 그와는 다릅니다. 이 비유적 표현을 이해하려면 고대에 사용된 잉크가 탄소와 고무와 물과 그 밖의 재료를 섞은 혼합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잉크로 쓴 글씨는 젖은 스펀지로 깨끗이 지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빚이 적힌 그 글씨를 지우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록 자체가 없어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죄라는 우리의 빚을 면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지워 주신다는 사실은 정말 감동적이지 않습니까!—시 51:9. 「파25.02」 10면 11항
6월 11일 목요일
속상해하지 말고 악을 행하지 마라.—시 37:8.
다른 사람이 우리를 오해하거나 부당하게 대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호와께서 진실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한 확신이 있으면 결국 여호와께서 문제를 바로잡으실 것임을 알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여호와께 맡기면 분노나 반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을 품고 있으면 과민 반응을 보이고 기쁨을 잃고 여호와와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께서 남기신 본을 완벽하게 따를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나중에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야고보 3:2) 때로는 부당한 일을 당해서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평생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당신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여호와께서 잘 아신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께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신 적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감정을 잘 이해해 주십니다. (히브리 4:15, 16) 정말 감사하게도,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잘 인내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교훈을 베풀어 주십니다. 「파24.11」 6면 12-13항
6월 12일 금요일
하느님의 일은 그분이 보내신 자에게 여러분이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요한 6:29.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께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요한 3:16-18, 36; 17:3)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의 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선생님을 믿을 수 있도록 어떤 표징을 행하시겠습니까?” (요한 6:30) 그들은 모세 시대에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빵 즉 만나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9:15; 시 78:24, 25) 분명 그들은 실제 음식을 먹는 일에 정신이 쏠려 있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참된 빵” 즉 생명을 주는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6:32) 그들은 신체적인 욕구를 채우는 데 정신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알려 주시려는 영적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파24.12」 6면 10-11항
6월 13일 토요일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히브리 3:4.
자녀는 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물체의 모양에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각각의 눈송이는 프랙털이라고 하는 기하학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랙털 구조는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구조를 이루는 규칙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정교한 디자인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자녀가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본다면 하느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믿음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녀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그분이 가장 잘 아시지 않을까?” 그런 다음 자녀에게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이 성경에 나온다고 알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파24.12」 16면 8항
6월 14일 일요일
여러분 가운데 성적 부도덕이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고 하는데, 그런 부도덕한 일은 심지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5:1.
사도 바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편지를 통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회중에서 내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5:13) 그러면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했습니까? 바울은 그 사람과 “더는 어울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무슨 의미였습니까? 바울은 바로 뒤이어 “그런 사람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썼습니다. (고린도 전서 5:11)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면 그 사람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말은 회중 형제자매들이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할 때, 부패시키는 영향으로부터 회중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5:5-7) 또한 형제자매들이 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을 때, 그는 자신이 여호와의 길에서 얼마나 많이 빗나갔는지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껴 회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수 있었습니다. 「파24.08」 15면 4-5항
6월 15일 월요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매우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한 3:16.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속죄일을 지켰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동물 희생을 바쳤습니다. 물론 그러한 동물 희생으로는 그 누구의 죄도 온전히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동물은 인간보다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서 요구하신 희생을 바쳤을 때, 그분은 그들의 죄를 기꺼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히브리 10:1-4)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일에 바친 희생 제물은 그들이 죄인임을 생각나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여호와께서는 죄를 용서하기 위한 영구적인 마련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아들이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지기 위해 자신을 단 한 번 바치”도록 마련하셨습니다. (히브리 9:28) 예수께서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과 교환하는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마태 20:28. 「파25.02」 4면 9-10항
6월 16일 화요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살피고 계속 기도하십시오.—마태 26:41.
“참으로 영은 간절하지만 육신이 약합니다.” (마태 26:41ㄴ)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보면 그분이 우리의 불완전함을 잘 이해하고 계신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바로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말씀을 하시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제자들은 그분 곁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마태 26:35) 그들은 분명 옳은 일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압력을 받게 되면 그러한 결심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것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깨어 살피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체포되셨을 때 그들은 예수 곁을 지켰습니까, 아니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쳤습니까? 제자들은 방심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로 그 일을 했습니다. 예수를 저버린 것입니다.—마태 26:56. 「파24.07」 14면 1-2항
6월 17일 수요일
우리는 ···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로마 5:10.
아담과 하와는 아버지이신 여호와와 누리던 소중한 관계를 잃었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가족이었습니다. (누가 3:38)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분의 가족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들이 자녀를 갖기 전이었습니다. (창세 3:23, 24; 4:1) 따라서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여호와와 화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5:10, 11) 다시 말해, 그분과 좋은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한 참조 자료에 의하면 “화해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적이었다가 친구가 되다”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화해가 가능하도록 여호와께서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죄 많은 인류와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속죄 마련을 하셨습니다. 이 마련에는 어떤 것을 동일한 가치를 지닌 다른 것으로 교환하는 것이 관련됩니다. 이렇게 하여 잃은 것을 되찾거나 손상된 것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파25.02」 3-4면 7-8항
6월 18일 목요일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가져옵니다.—고린도 후서 7:10.
사도 바울은 의붓어머니와 성적 부도덕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사람이 “대다수에게서 충분히 꾸짖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2:5-8; 고린도 전서 5:1) 다시 말해 그를 징계한 목적이 달성된 것입니다. 어떤 목적입니까? 그가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히브리 12:11) 그래서 바울은 잘못을 저지른 그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고 위로해 주[고]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라”고 고린도 회중에 지시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보면 고린도 회중은 단지 그 사람을 여호와의 백성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회개한 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그에게 확실히 보여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할 때 회중으로 돌아온 그를 환영한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파24.08」 15면 4항; 16-17면 6-8항
6월 19일 금요일
여러분은 ··· 공개적으로 치욕과 환난을 당[했습니다.]—히브리 10:33.
사도 바울은 인내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시련을 겪을 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바울은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가 나를 돕는 분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다.” (히브리 13:6)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부 형제들은 박해를 인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필요하다면 실용적인 도움을 베풂으로 그들을 충성스럽게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경건한 정성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알려 줍니다. (디모데 후서 3:12) 따라서 우리 모두가 앞으로 겪게 될 일을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계속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그분이 그 어떤 시련도 인내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임을 확신해야겠습니다.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충실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구출해 주실 것입니다.—데살로니가 후서 1:7, 8. 「파24.09」 12-13면 17-18항
6월 20일 토요일
말씀을 들은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침례를 받았다.—사도 18:8.
고린도 사람들이 침례받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고린도 후서 10:4, 5)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받아들인 고린도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강력한 힘 덕분에 생활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 4:12) 그들은 술 취함과 도둑질과 동성애와 같은 나쁜 습관과 행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6:9-11) 고린도 사람들이 뿌리 깊은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비좁은 길에 들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태 7:13, 14) 당신도 침례를 받고 싶지만 나쁜 습관이나 행실에서 벗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쁜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그 충동을 물리칠 힘을 얻을 수 있게 성령을 달라고 여호와께 계속 간청하십시오. 「파25.03」 6면 15-17항
6월 21일 일요일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 하느님께 계속 청하십시오.—야고보 1:5.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이 기뻐하실 결정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그러한 지혜를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게 주시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 기도로 인도를 구했다면 그분의 응답을 분별하기 위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행 중에 길을 잃었다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냥 가 버리겠습니까? 물론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그 사람의 설명을 주의 깊이 들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 지혜를 청했다면 자신의 상황에 적용되는 성경의 법과 원칙을 찾아 봄으로 그분의 응답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예를 들어 특정한 사교 모임에 참석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면, 성경에서 흥청거리는 파티나 나쁜 교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알려 주는지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왕국을 앞자리에 두라고 했다는 것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마태 6:33; 로마 13:13; 고린도 전서 15:33. 「파25.01」 16면 6-7항
6월 22일 월요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겠지만 너희는 굶주릴 것이다.—이사야 65:13.
이사야의 예언은 영적 낙원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풍부히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과 성경과 풍부한 영적 양식이 있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기뻐합니다.’ (계시록 22:17 비교) 그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영적 낙원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수치를 당합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전혀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8:11) 여호와께서는 영적 양식을 포함해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들을 관대히 공급해 주십니다. (요엘 2:21-24) 그분은 성경과 성경 출판물, 우리의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집회와 크고 작은 대회들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마련들을 통해 매일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영적으로 더 건강해지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파24.04」 21면 5-6항
6월 23일 화요일
언제나 은혜롭게 말하십시오.—골로새 4:6.
누군가와 교제를 시작하고 싶다면 그 사람과 약속을 잡아, 공개된 장소에서 만나 이야기하거나 전화로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관심이 있고 교제하고 싶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하십시오. (고린도 전서 14:9) 필요하다면 상대방에게 생각해 볼 시간을 주십시오. (잠언 15:28) 상대방이 교제할 생각이 없다면 그의 뜻을 존중해 주십시오. 누군가가 당신에게 관심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그 말을 하기까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친절하고 존중심 있게 대해 주십시오. 교제를 시작할지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달라고 말하십시오.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대답해 주십시오. (잠언 13:12) 그 사람과 교제할 생각이 없다면 그 점을 친절하면서도 분명하게 밝히십시오. 그 사람과 교제할 마음이 있다면, 교제에 대해 각자가 어떤 생각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누십시오.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파24.05」 23면 12-13항
6월 24일 수요일
나는 ···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사무엘상 17:45.
당시 십 대였을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의 진영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몹시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골리앗이라는 블레셋 거인이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7:10, 11) 군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골리앗의 큰 몸집과 그의 조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7:24, 25) 하지만 다윗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골리앗이 단지 이스라엘 군대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군대”를 조롱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사무엘상 17:26) 다윗은 여호와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다윗은 목동일 때 자신을 도와주셨던 하느님께서 이번에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그는 골리앗과 맞서 싸우러 나갔으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사무엘상 17:45-51. 「파24.06」 21면 7항
6월 25일 목요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고 너를 도와주겠다. 내가 참으로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이사야 41:10.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호와를 계속 충실히 섬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필자처럼 우리도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 내게는 좋습니다.” (시 73:28) 우리는 “살아 계신 참하느님의 종”이기 때문에 이 마지막 날에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9) 우리 하느님께서는 살아 계신 분이시며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십니다. 그분은 과거에도 자신의 종들과 함께해 주셨고 오늘날에도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다. 머지않아 이 땅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환난이 닥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가 나를 돕는 분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다.”—히브리 13:5, 6. 「파24.06」 25면 17-18항
6월 26일 금요일
너희는 의인과 악인의 차이[를] 보게 될 것이다.—말라기 3:18.
성경에는 40명이 넘는 이스라엘 왕들의 이름이 나오며, 선한 왕들이 한 악한 일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한 왕인 다윗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 다윗[은] 마음을 다해 나를 따라 걸어서 내 눈에 옳은 일만 행했다.” (열왕기상 14:8) 하지만 다윗은 남편이 있는 여자와 성적 부도덕을 저질렀고, 계략을 꾸며 그 여자의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사무엘하 11:4, 14, 15) 한편 불충실했던 많은 왕도 선한 일을 했습니다. 르호보암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역대기하 12:14) 하지만 르호보암은 열 지파가 이스라엘 왕국에서 분리되도록 내버려두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또한 도시들의 방비를 강화하여 백성에게 유익을 주었습니다. (열왕기상 12:21-24; 역대기하 11:5-12)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충실한 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셨습니까? 그분은 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 그들이 회개했는지, 그들이 참숭배에 고착했는지를 고려하신 것 같습니다. 「파24.07」 20면 1-3항
6월 27일 토요일
[자녀를] 계속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로 양육하십시오.—에베소 6:4.
만 18세 미만의 침례받은 미성년자가 심각한 죄를 지은 경우는 어떠합니까? 장로의 회는 두 명의 장로가 그 미성년자와 그의 그리스도인 부모를 만나도록 마련할 것입니다. 그 두 장로는 자녀가 회개하도록 돕기 위해 부모가 이미 어떤 조처들을 취해 왔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미성년 자녀가 좋은 태도를 보이고 있고 부모가 그를 적절히 돕고 있다면 두 장로는 위원회가 그 문제를 다루도록 마련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에게 사랑으로 징계를 베풀 책임을 부모에게 주셨으며, 장로들은 그 점을 기억합니다. (신명 6:6, 7; 잠언 6:20; 22:6; 에베소 6:2-4) 그 후 그 장로들은 자녀가 필요한 도움을 받고 있는지 종종 부모에게 확인할 것입니다. 하지만 침례받은 미성년 자녀가 회개하여 행실을 바로잡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경우에는 장로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그의 그리스도인 부모와 함께 그를 만날 것입니다. 「파24.08」 24면 18항
6월 28일 일요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합니다.—사도 20:35.
우리 모두는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았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는 일을 할 때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낍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이렇게 창조하신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는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노력함으로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다는 것이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시 139:14) 성경에서는 우리가 주는 일을 할 때 더 행복해진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여호와를 “행복하신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디모데 전서 1:11) 그분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주는 일을 하신 분이고 가장 많이 주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분 덕분에 “생명을 가지게 되었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사도 17:28) 참으로 여호와께서는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의 근원이십니다. (야고보 1:17) 아마 우리 모두는 주는 일을 하면서 더 큰 행복을 누리기를 바랄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관대함을 본받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에베소 5:1. 「파24.09」 26면 1-4항
6월 29일 월요일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진보했든지 이 동일한 행로로 계속 걸읍시다.—빌립보 3:16.
어떤 봉사의 종들은 장로가 되기 위해 달해야 할 자격 조건이 너무 많아서 자신은 장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은 여러분이 그러한 자격 조건에 완벽하게 달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전서 2:21) 또한 여호와의 강력한 성령이 여러분이 그러한 특성들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빌립보 2:13) 특히 발전시키기를 원하는 특성이 있습니까? 그 점에 관해 여호와께 기도해 보십시오. 그 특성에 관해 연구 조사하고 장로들에게 그 부면에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십시오. 계속 발전하기 위해 힘써 노력하십시오! 여호와와 회중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훈련해 달라고 그분께 청하십시오. (이사야 64:8) 장로로 섬길 자격을 갖추기 위해 힘써 노력하는 여러분을 여호와께서 풍성하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파24.11」 24-25면 17-18항
6월 30일 화요일
하느님께서는 불의하지 않으시므로, 여러분이 거룩한 자들을 섬겼고 지금도 섬기면서 행한 일과 그분의 이름을 위해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히브리 6:10.
여러 해 동안 여호와를 섬겨 왔다 해도 그분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물론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쌓아 온 충실한 봉사의 기록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한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가 아니라 거저 주는 선물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분에게 자비를 받을 권리를 획득했다거나 특별한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실상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갈라디아 2:21 비교) 사도 바울은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권리를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여호와를 섬겼습니까? 자신이 여호와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과분한 친절에 감사를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에베소 3:7) 바울처럼 우리도 여호와의 자비를 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비에 감사를 나타내기 위해 계속 열심히 그분을 섬깁니다. 「파25.01」 27면 5-6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