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월 1일 화요일
암몬 사람들이 ··· 굴복하게 되었다.—사사 11:33.
입다는 이스라엘을 암몬 사람들의 손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신다면, 자신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 집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사람을 여호와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사 11:30, 31) 그 말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을 혐오하십니다. 따라서 분명 입다는 실제로 인간을 제물로 바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신명 18:9, 10) 모세 율법 아래서 번제물은 제물 전체를 여호와께 바쳐야 했기 때문에, 입다의 말은 자신이 하느님께 바치는 사람이 그분께 전적인 봉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입다는 그 사람이 평생 장막에서 봉사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입다의 서원을 받아들이셨으며, 그를 축복하여 큰 승리를 거두게 해 주셨습니다. (사사 11:32) 그런데 입다가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맞으러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가 사랑하는 외동딸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믿음이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킬 것입니까? 「파16.04」 1:11-13
5월 2일 수요일
그들은 ··· 읽어 준 것을 백성이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느헤미야 8:8.
몇 해 전 대부분의 회중들은 회중 성서 연구에서 「여호와께 가까이 가십시오」 책을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를 통해 하느님의 특성들에 대해 배우고 형제 자매들의 진심 어린 해설을 들으면서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형제 자매들이 연설과 실연과 성경 낭독을 할 때 주의를 기울임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늘려 갑니다. 또한 집회에서 우리는 성경 원칙들을 생활의 모든 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배웁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9, 10) 예를 들어, 「파수대」 연구 시간에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꼭 필요한 점들을 살펴봅니다. 당신은 「파수대」 연구 덕분에 자신의 목표를 다시 점검해 보거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용서하거나 기도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마음을 갖게 된 적이 있습니까? 평일 집회에서는 봉사를 위한 교육을 받습니다. 우리는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방법과 성경 원칙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배웁니다.—마태 28:19, 20. 「파16.04」 3:4, 5
5월 3일 목요일
전에 기록된 모든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로마 15:4.
사람들 사이의 불화에 관한 성경 기록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까? 창세기의 처음 몇 장에도 여러 예가 나옵니다. 카인은 아벨을 죽였고(창세 4:3-8), 라멕은 자신을 친 젊은이를 죽였습니다. (창세 4:23) 또한 아브라함(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사람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창세 13:5-7) 하갈은 사라(사래)를 업신여겼으며, 그래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불만을 표현했습니다. (창세 16:3-6) 이스마엘은 모든 사람을 대적했고 모든 사람도 그를 대적했습니다. (창세 16:12) 성경에 그러한 기록이 들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가지는 그러한 기록을 통해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가 왜 서로 평화롭게 지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떻게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실제 인물들이 실제 문제들과 힘겹게 싸운 성경 기록을 읽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그들이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고 교훈점을 우리의 생활에서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러한 모든 기록은 우리가 그와 비슷한 문제를 겪을 때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지 깨닫는 데 도움이 됩니다. 「파16.05」 1:1, 2
5월 4일 금요일
좋은 소식이 먼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마가 13:10.
예수와 제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까? 그들은 공공장소든 개인 집이든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습니다. 그들은 집집을 다니면서 합당한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마태 10:11; 누가 8:1; 사도 5:42; 20:20) 이러한 체계적인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해 왔습니까? 여호와의 증인만이 예수께서 1914년 이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의 지시와 일치하게 그들은 전파 활동을 생활에서 우선순위에 둡니다. 「믿음의 기둥—미국의 교회들과 그 동반자들」(Pillars of Faith—American Congregations and Their Partners)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 세상 끝이 다가오고 있고 구원이 필요하다는 영적인 소식을 전하는 것이 자신들의 주된 임무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은 그 소식을 예수와 제자들이 사용한 방법으로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파16.05」 2:10, 12
5월 5일 토요일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잠언 2:5.
우리가 여호와의 생각에 맞추어 결정을 내린다면 그분과 더 가까워지고 그분의 승인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 4:8) 그 결과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생각을 밝혀 주는 성경의 법과 원칙들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호와에 대해 아무리 배운다 해도 그분에 관해 끝없이 더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욥 26:14)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지금도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혜와 지식과 분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잠언 2:1-5) 불완전한 인간들의 생각과 계획은 수시로 변하지만, 시편 필자가 말한 것처럼 “여호와의 결정은 영원히 서 있고 마음에 품으신 생각은 대대에 이릅니다.” (시 33:11)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가장 지혜로우신 여호와 하느님의 생각과 일치할 때 우리는 최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파16.05」 3:17
5월 6일 일요일
여호와는 마음속을 들여다본다.—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마음을 읽으시고 자신에게 이끌 사람들을 직접 선택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면, 구역 내에서나 회중 내에서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 6:44) 여호와를 우리의 도공으로 여긴다면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사야 64:8) 당신은 형제 자매들을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보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완성품이 아니라 그분이 지금도 빚고 계시는 미완성의 작품으로 생각합니까? 그분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능숙한 손 안에서 그들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계시며 곧 없어질 불완전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십니다. (시 130:3) 우리는 하느님의 종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 그분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영적으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형제 자매들을 도와줌으로 도공이신 하느님과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4, 15) “사람들로 된 선물”인 장로들은 그 면에서 솔선해야 합니다.—에베소 4:8, 11-13. 「파16.06」 1:4-6
5월 7일 월요일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린도 전서 10:12.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면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이루는 다양한 특성들과 겸손을 길러 나갈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5:22, 23)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나타내면 우리의 소식이 더욱 돋보이게 되며, 일부 집주인들은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두 증인은 한 집주인이 아주 무례하게 말하는데도 존중심을 보이며 잘 들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자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고 지부 사무실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는 이러합니다. “그 두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어요. 제가 제 주장만 내세우고 심하게 무시했는데도 그분들은 대단한 참을성과 겸손을 보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두 분을 그런 식으로 쫓아 버리다니 제가 정말 어리석었어요.” 그 전도인들이 화난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집주인이 그런 편지를 보냈겠습니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외 봉사는 우리 자신과 이웃들에게 정말로 유익합니다! 「파16.06」 2:12, 13
5월 8일 화요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불완전합니다. (로마 5:12, 19) 따라서 회중의 성원들이 말이나 행동으로 우리를 실망시킬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럴 때 여호와와 그분의 백성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예를 들어, 대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여호와의 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악한 자들로, 여호와에 대한 존중심이 없었다.” (사무엘상 2:12) 아버지인 엘리는 참숭배를 증진하는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아들들은 매우 심각한 죄를 지었습니다. 엘리는 그 점을 알고 있었고 그들을 징계해야 했지만 그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께서는 엘리의 집안에 벌을 내리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사무엘상 3:10-14) 결국 엘리의 자손들은 더 이상 대제사장으로 봉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엘리 시대에 살았다면, 엘리가 아들들의 죄를 눈감아 준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 것입니까? 그 일 때문에 걸려 넘어져서 더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을 것입니까? 「파16.06」 4:5, 6
5월 9일 수요일
그분이 그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마태 6:33.
예수께서 오늘의 성구와 같이 말씀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은 앞 구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음식과 옷과 거처가 필요한지 쉽게 아실 수 있으며, 우리가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아실 수 있습니다. (빌립보 4:19) 그분은 우리가 가진 옷 중에 어느 것이 얼마 안 있어 해질지 아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어떤 음식이 필요한지 그리고 가족이 함께 살려면 집이 얼마나 커야 하는지도 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반드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즉 생활에서 영적인 것들을 우선순위에 둔다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먹을 것과 입을 것[또는 “거처할 곳”, 각주]”이 있다면 만족합니다.—디모데 전서 6:6-8. 「파16.07」 1:17, 18
5월 10일 목요일
우리가 적이었을 때에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로마 5:10.
그처럼 화해하면 여호와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바울은 그러한 영예를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과 연관 지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가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평화를 누립시다.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과분한 친절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 5:1, 2) 정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의한 성향을 타고났습니다. 하지만 예언자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통찰력 있는 자들” 즉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이 “많은 사람을 의로 이끌”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다니엘 12:3)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통해, 수백만 명의 “다른 양들”이 여호와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갖도록 도와 왔습니다. (요한 10:16) 하지만 그 일이 가능한 것은 오직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 덕분이었습니다.—로마 3:23, 24. 「파16.07」 3:10, 11
5월 11일 금요일
그들은 자기들이 택하는 사람을 모두 아내로 삼기 시작했다.—창세 6:2.
물질화한 천사들과 여자들의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결혼을 통해 네피림이라고 하는 난폭한 잡종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땅에는 사람의 악이 가득”했습니다. (창세 6:1-5) 여호와께서는 노아 시대에 악한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결혼과 같은 일상생활에 너무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의의 전파자인 노아”가 다가오는 멸망에 대해 경고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후서 2:5) 예수께서는 우리 시대에도 상황이 그와 비슷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4:37-39) 오늘날 우리는 이 악한 세상 제도가 멸망되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기 위해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온 땅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소식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결혼이나 자녀 양육 같은 가족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문제 때문에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는 생각이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명심해야겠습니다. 「파16.08」 1:8, 9
5월 12일 토요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고린도 전서 7:29-31.
“마지막 날”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금은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입니다. (디모데 후서 3:1-5) 그렇지만 영적으로 강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 세상의 나쁜 영향력을 물리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구에서 바울은 결혼한 사람들에게 배우자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기혼자들도 영적인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마태 6:33) 우리가 매우 힘든 시대에 살고 있고 주변의 많은 결혼이 실패로 끝나고 있지만, 행복하고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부가 여호와의 백성과 계속 연합하고, 성경의 조언을 적용하고, 여호와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결혼의 띠를 잘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마가 10:9. 「파16.08」 2:17, 18
5월 13일 일요일
하느님의 양 떼를 돌보십시오.—베드로 전서 5:2.
그리스도인 회중에는 목자들이 많이 필요하며, 앞으로 목자로 일할 사람들은 계속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나에게서 들었고 많은 증인이 확증한 것들을 충실한 사람들에게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적합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2:1, 2) 디모데는 연장자인 사도 바울과 함께 일하면서 잘 배웠습니다. 그런 다음, 야외 봉사를 하거나 다른 형태의 신성한 봉사를 드릴 때 바울이 사용한 방법을 적용했습니다. (디모데 후서 3:10-12) 바울은 디모데가 저절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봉사할 때 젊은 디모데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사도 16:1-5) 적절할 경우, 장로들은 양 치는 방문을 할 때 자격을 갖춘 봉사의 종을 데리고 감으로 바울의 본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봉사의 종들은 그리스도인 감독자에게 필요한 가르치는 기술, 믿음, 참을성, 사랑을 직접 관찰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장차 “하느님의 양 떼”의 목자가 될 사람들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파16.08」 4:16, 17
5월 14일 월요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스바냐 3:16.
손을 늘어뜨린다는 말은 어떤 사람이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희망을 잃는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종종 사용됩니다. (역대기하 15:7, 각주; 히브리 12:12) 그런 사람은 흔히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탄의 악한 세상에서 살면서 엄청난 압력을 받으며, 그 때문에 염려가 생기고 지칠 수 있습니다. 배가 닻을 내리면 움직일 수 없듯이, 염려에 짓눌리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잠언 12:25) 무엇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게 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했거나,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거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가족 부양을 하려고 애쓰거나, 반대를 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로 인해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시간이 가면서 힘이 빠지고 기쁨마저 잃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이사야 41:10, 13. 「파16.09」 1:2, 4
5월 15일 화요일
내가 당신의 계명의 길을 열렬히 추구할 것입니다.—시 119:32.
많은 사람은 육체의 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투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봉사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힘써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지 않은 건강이나 외로움을 계속 견뎌야 할지 모릅니다. 혹은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여호와를 섬겨 왔든,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처럼 충실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자신에게 어느 정도 그런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반드시 기도로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와 성령은 여호와께서 축복하시는 올바른 길로 계속 가도록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하십시오. 매일 성경을 읽고 정기적으로 개인 연구와 가족 숭배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시 119:32. 「파16.09」 2:10, 11
5월 16일 수요일
믿음은 ···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히브리 11:1.
진화는 과학이지만 하느님은 그냥 믿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든 진화가 맞다고 생각하든 결국은 둘 다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하느님을 보았거나 무언가가 창조되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 1:18) 그렇지만 과학자이든 일반인이든, 생물이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 진화하는 것을 본 사람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파충류가 포유류로 진화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욥 38:1, 4) 따라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려면 반드시 사고력을 사용해서 증거를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창조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만드신 것을 통해 그 특성들을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로마 1:20. 「파16.09」 4:4
5월 17일 목요일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기를 잊지 마십시오.—히브리 13:2, 각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 사는 외국인들을 위해 사랑의 마련을 해 주셨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외국인에게는 남은 곡식이나 열매를 모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레위 19:9, 1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국인을 존중하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동정심에 호소하셨습니다. (출애굽 23:9) 이스라엘 백성은 “외국인의 심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노예가 되기 전에도, 이집트인들은 인종적 우월감이나 종교적 편견 때문에 히브리인들을 멀리했을 것입니다. (창세 43:32; 46:34; 출애굽 1:11-14)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외국인으로 힘들게 살았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그들 가운데 있는 외국인들을 “본토인처럼” 대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레위 19:33, 34) 분명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는 회중 집회에 참석하는 외국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신명 10:17-19; 말라기 3:5, 6) 차별이나 언어 장벽 등 외국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들에게 친절과 동료감을 나타낼 방법을 찾으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베드로 전서 3:8. 「파16.10」 1:3-5
5월 18일 금요일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보 2:26.
야고보는 자신이 쓴 편지에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믿음은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행함이 없는 당신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야고보 2:18) 이어서 야고보는 믿기만 하는 것과 믿음을 나타내는 것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악귀들도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만 그들에게는 진정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야고보 2:19, 20) 야고보는 그 악귀들과는 달리 강한 믿음이 있었던 고대의 또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친 후에,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지 않았습니까? 당신도 아는 것처럼,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했으며, 행함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해졌습니다.” (야고보 2:21-23) 그런 다음 믿음에는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는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야고보는 오늘의 성구에 나오는 말을 했습니다. 「파16.10」 4:8
5월 19일 토요일
그분은 ···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전도 3:11.
과학 덕분에 우리는 우주와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에 관해 많은 점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삶도 여러 모로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여러 가지 의문점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정확히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혹은 지구에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 답해 줄 수 없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에게 영원히 살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수많은 과학자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하느님이 없다고 주장하고 진화론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책인 성경을 통해, 사람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의문점들에 대한 답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일관되고 믿을 수 있는 자연법칙에 의존해 살아갑니다. 전기 기술자, 설비 기술자, 공학자, 조종사, 외과 의사와 같은 사람들은 그러한 법칙을 따라야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파16.11」 2:4, 5
5월 20일 일요일
우리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가지게 되었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우리에게는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그분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책인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하느님의 소식으로 받아들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13) 하느님의 말씀 덕분에 우리는 여호와께 가까이 가게 되었고 그분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야고보 4:8)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조직의 일부가 되는 놀라운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한 모든 축복들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시편 필자의 이러한 아름다운 노랫말에 공감합니다. “여호와께 감사드려라. 그분은 선하시다.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랑은 영원하다.” (시 136:1) 시편 136편에는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랑은 영원하다”라는 후렴구가 26번 나옵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에 충성을 나타낸다면, 앞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시편 필자의 이 감동적인 말이 참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파16.11」 3:18, 19
5월 21일 월요일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해 죽음이 들어왔으며, 이와 같이 모두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습니다.—로마 5:12.
이 성구는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에 여러 번 나옵니다. 자녀나 그 밖의 사람과 이 책을 공부하다 보면, 땅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과 대속과 죽은 사람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3장, 5장, 6장에서 로마서 5:12을 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호와 앞에서 자신이 가진 신분이나 자신의 행동이나 미래의 전망과 관련해서도 로마서 5:12을 자주 생각해 봅니까? 물론 우리 모두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현실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가 흙으로 지어졌음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기꺼이 자비를 보이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시 103:13, 14) 예수께서는 모범 기도에서 하느님께 이렇게 요청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누가 11:2-4)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미 용서하신 잘못에 대해 두고두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용서하셨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유익합니다. 「파16.12」 1:1-3
5월 22일 화요일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의 일에 정신을 쏟습니다.—로마 8:5.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실제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해 보아야 했습니다. “육체의 일”이 그들의 삶을 좌우하거나 삶의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았습니까? 오늘날 우리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주로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까? 내가 매일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쩌면 온갖 종류의 포도주를 마셔 보는 것, 집 안 꾸미기,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사는 일, 투자, 여행 계획 같은 일에 정신이 온통 쏠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한 일들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일상적인 일들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도 포도주를 만드신 적이 있고 바울도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조금”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디모데 전서 5:23; 요한 2:3-11) 하지만 예수와 바울의 삶에서 포도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포도주를 즐기는 데 푹 빠져서 항상 포도주 이야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입니까? 「파16.12」 2:5, 10, 11
5월 23일 수요일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히브리 13:5.
이 영감받은 약속은 왕국과 하느님의 의를 첫째로 구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더욱 힘을 실어 줍니다. (마태 6:33)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 (마태 19:27) 예수께서는 그런 질문을 했다고 베드로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치른 희생에 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실한 사도들을 비롯한 제자들은 미래에 하늘에서 예수와 함께 통치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제자들은 지금도 상을 받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나 받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마태 19:29) 예수의 제자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든 그 희생을 훨씬 뛰어넘는 축복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자녀는 우리가 왕국을 위해 버리거나 포기한 그 무엇보다 훨씬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파16.12」 4:4, 5
5월 24일 목요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입니다.—히브리 11:1.
참그리스도인들은 매우 놀라운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기름부음받은 자이든 “다른 양”이든,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원래 목적이 이루어지고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해질 때를 고대합니다. (요한 10:16; 마태 6:9, 10) 그것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의미 깊은 희망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의 “새 하늘”이나 “새 땅”의 일부가 되어 약속된 영원한 생명의 상을 받을 날을 고대합니다. (베드로 후서 3:13) 그때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계속 영적으로 번영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한편, 사탄의 세상에 속한 사람들도 바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희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사지만 실제로 당첨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믿음 즉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파16.10」 3:1, 2
5월 25일 금요일
각자 선물을 받은 대로 서로 섬기는 일에 그 선물을 사용하십시오.—베드로 전서 4:10.
여호와께서는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셔서 우리 각자에게 다양한 재능, 능력, 역량과 같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물을 활용해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로마 12:4-8) 여호와께서 우리를 신임하여 그 선물을 맡기신 것은 영예로운 일이며 우리는 그 선물을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마련 안에서 우리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 그분은 여호와와 단둘이 계셨습니다. (잠언 8:22) 후에 예수께서는 여호와를 도와 다른 천사들과 우주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골로새 1:16) 세월이 흘러 예수께서는 땅에서 새로운 임무를 맡으셨습니다. 그분은 힘없는 아기로 태어나 자라서 성인이 되셨습니다. (빌립보 2:7) 그리고 인간 생명을 희생한 뒤에는 영적 생명체로 부활되어 하늘로 돌아가셨으며 1914년에는 하느님의 왕국의 왕이 되셨습니다. (히브리 2:9) 천년 통치가 끝난 뒤에는 왕국을 여호와께 넘겨 드릴 것이며,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5:28. 「파17.01」 3:11, 12
5월 26일 토요일
여러분이 누구를 섬길 것인지를 오늘 스스로 선택하십시오.—여호수아 24:15.
한 여자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한테 생각하라고 하지 말고, 그냥 어떻게 하면 될지 말해 줘. 그게 더 편하거든.” 그 여자는 창조주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인 자유 의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결정을 대신 내려 주기를 바랐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를 좋아합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까? 자유 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여러 세기 동안 자유 의지라는 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 의지라는 것은 없으며 하느님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을 예정하신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인간에게 절대적인 자유가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 의지를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여호와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 의지 즉 지성을 활용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역량과 자유를 주셨다는 사실을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 「파17.01」 2:1, 2
5월 27일 일요일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 내가 그를 위해 준비를 해야겠다.—역대기상 22:5.
다윗은 솔로몬이 하느님을 위한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중요한 공사를 감독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성전은 “매우 웅장해야” 했는데 당시 솔로몬은 “어리고 경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께서 솔로몬이 맡은 공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엄청난 양의 자재를 준비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연로한 형제들은 자신의 임무를 젊은 사람들에게 넘길 필요가 생길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책임을 맡도록 훈련하는 것은 우리의 활동에 매우 유익합니다. 임명받은 남자들은 자신이 훈련한 젊은 사람들이 일을 맡을 자격을 갖추게 될 때 깊은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파17.01」 5:8, 9
5월 28일 월요일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너의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적의를 둘 것이다. 그는 너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다.—창세 3:15.
하느님의 왕국의 왕으로서 예수께서는 뱀의 머리를 짓밟고 사탄의 반역의 모든 흔적을 우주에서 말끔히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땅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하느님의 왕국의 중요성을 이해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침례받으신 직후부터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널리 전하셨습니다. (누가 4:43) 예수께서는 하늘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시면서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이르러” 자신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1:6-8) 왕국 전파 활동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은 대속에 대해 배우고 하느님의 왕국 국민이 될 기회를 갖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지원하여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세계 전역에 전하는 사명을 수행함으로 왕국을 지지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마태 24:14; 25:40. 「파17.02」 2:7, 8
5월 29일 화요일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 주셨습니다.—에베소 4:11.
중앙장로회는 초기 회중에서 권위를 행사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지도자가 예수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일에서 사랑으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도록 합시다”라고 썼습니다. (에베소 4:15) 제자들은 탁월한 사도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호칭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도 11:26) 물론 바울이 사도들과 인도하는 사람들이 제시한 “전통” 즉 성경에 근거한 관행을 “굳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알기를 원합니다. [중앙장로회 성원들을 포함하여]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십니다.” (고린도 전서 11:2, 3) 그렇습니다.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머리인 여호와 하느님의 지도를 받으며 눈에 보이지 않게 회중을 인도하셨습니다. 「파17.02」 4:7
5월 30일 수요일
훌륭하게 주재하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중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기십시오.—디모데 전서 5:17.
합당한 사람에게 존중심을 보인다면 우리 각자가 자기 중심적이 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영예를 받을 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조직과 보조를 맞추어 동료 신자든 아니든 사람에게 과도하거나 부당한 영예를 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해, 우리가 존경하던 사람이 실망스러운 일을 저지를 때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존중심을 보이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그처럼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행동함으로 그분께 충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조롱하려고 하는 모든 자들에게 대답하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잠언 27:11)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존중심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비뚤어진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방식에 따라 존중심을 보이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정말 감사합니다. 「파17.03」 1:13, 20, 21
5월 31일 목요일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눈에 옳은 일을 행했다.—역대기하 20:32.
여호사밧은 그의 아버지 아사처럼 백성이 여호와를 찾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율법책”을 사용해서 백성을 가르치는 마련을 함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역대기하 17:7-10) 심지어 그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영토에 있는 에브라임 산간 지방까지 가서 사람들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역대기하 19:4) 우리 모두는 오늘날 여호와께서 수행하시는 대대적인 교육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기려는 마음을 갖도록 성경을 가르치는 활동에 매달 참여할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열심히 노력한다면 성서 연구를 시작하도록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실지 모릅니다. 당신은 성서 연구를 사회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성서 연구를 사회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 시간도 기꺼이 희생할 것입니까? 또한 여호사밧이 사람들을 참숭배로 돌아오게 하려고 에브라임 지역에 간 것처럼, 우리도 무활동이 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파17.03」 3: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