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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9 2/8 24-27면

덴마크의 그레이트벨트에 다리를 놓음

「깨어라!」 덴마크 통신원

지도에서 덴마크를 보면, 덴마크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바다를 항해하고 다리를 건설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483개의 섬과, 유럽 대륙에서 바다로 돌출한 하나의 반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덴마크에서 여행을 하려면 언제나 바다를 건너야 하였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의 바이킹 조상들은 항해하는 데 매우 적합한 배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대에 걸쳐 덴마크에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 어느 곳에나 인근 섬의 다른 마을로 연결해 주는 배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레이트벨트를 가로지름

하지만 배로 다니는 데는 항상 위험이 따랐습니다. 덴마크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섬인 셸란 섬과 핀 섬을 갈라놓는 탁트인 넓은 해역을 건너는 것도 그러합니다. 이 해협 즉 스토레벨트 해협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물로 된 넓은 띠 모양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종종 그레이트벨트, 즉 ‘거대한 띠’라고 불립니다.

이 나라의 수도인 코펜하겐이 있는 셸란 섬과 덴마크 서부 사이를 왕래하려면 그레이트벨트를 건너야 합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하려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폭풍이 잠잠해지고,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여러 날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건너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위험천만할 수도 있었습니다. 16세기에는, 왕의 일행이 얼음 때문에 두 섬의 중간에 있는 작은 스프로괴 섬에 일 주일 동안 고립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 다리를 건설한다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을 끈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인공 구조물이 그레이트벨트만큼이나 넓은 해역을 가로지를 수 있겠습니까? 그 구조물은 스프로괴 섬에 건설되는 부분을 포함하여 적어도 길이가 18킬로미터는 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날씨에도 육안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까지, 그것도 탁트인 바다를 가로질러 놓여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는 길이가 3킬로미터도 되지 않습니다.

기획자들의 고충

사실, 덴마크 의회에서는 19세기에 그러한 다리를 주제로 하여 논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기획자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에 골몰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리인가, 아니면 터널인가? 연결로는 열차용이나 자동차용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열차와 자동차 공용이어야 하는가? 그냥 연락선을 사용하는 데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숱하게 많은 계획을 하고 수많은 토론을 벌였습니다. 덴마크에서는, “그레이트벨트식 논의”라는 표현이 결말이 나지 않는 토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1987년에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두 개의 큰 섬의 가장 가까운 지점을 잇는 연결로는 열차와 자동차 공용이 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사는 다리 두 개와 터널 한 개로 이루어질 것이었는데, 총 길이가 18킬로미터인 전체 구간을 그레이트벨트 연결로라고 부를 것이었습니다.

서부의 다리

덴마크의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출생지인 핀 섬에서부터 철근 콘크리트로 철도와 자동차 공용 다리를 만드는 일이 그 공사의 첫 번째 작업이었습니다. 이 다리는 1994년 1월에 완공되어 이 연결로의 서쪽 절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다리는 현재 철도와 자동차 공용 다리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입니다. 바다 위로 18미터 높이에 있는 이 다리는 핀 섬에서 스프로괴 섬까지 동쪽으로 6킬로미터 이상 뻗어 있습니다.

바다 속에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이 서부의 다리는 많은 별개의 도로 부분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대부분은 길이가 110미터나 됩니다. 이 콘크리트 부분품들은 해안에서 제작되어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각 부분을 바다로 가지고 나와서 이미 조립된 부분품들에 연결하였습니까? 그 일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중기선 가운데 하나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기중기선은 길이가 90미터 이상이나 되며 7100톤의 짐을 들어올려 바다로 운반할 수 있습니다. 그 무게는 자동차 1000대를 실은 대형 연락선의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등대가 있는 조그만 스프로괴 섬까지 복선 철도와 4차선 고속 도로를 건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스프로괴 섬에서 그 다리는 뒤이은 두 개의 공사 구간과 연결되어야 하였습니다. 서부에 있는 다리의 끝에서 고속 도로는 철도와 분리되어 또 다른 다리를 통해 동쪽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하지만 철도는 이중 터널로 들어가서 바다 속으로 구간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이중 터널

이 공사의 두 번째 단계인 이중 터널은 그 자체가 위대한 업적입니다. 지름이 각각 8미터인 쌍둥이 터널이 철도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터널은 점토층과 암반층과 해양 퇴적물층을 7.4킬로미터나 뚫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터널 시공자들은 이 지하 물질들의 특성을 자세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굴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터널은 해저 지형에 따라 바다 밑바닥 아래로 10미터에서 40미터 깊이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깊은 부분은 해수면보다 75미터나 아래에 있습니다. 사용된 터널 굴착기는 각각의 길이가 보조 차량들까지 합하여 200미터가 넘었습니다. 완성된 터널 안은 무게가 각각 8톤가량이나 되는 만곡형 콘크리트 조각 6만 개로 내벽을 만들었습니다.

터널 시공자들은 터널을 양쪽 끝에서 동시에 파기 시작하여 노련한 솜씨로 중간에서 만나는 데 성공하였는데, 서로 어긋난 거리는 불과 4센티미터도 되지 않았습니다. 1994년 10월 15일에 열린, 오랫동안 고대하던 특별 행사에서 덴마크의 요아킴 왕자는 한쪽 굴착기에서 그쪽으로 파 들어온 맞은편 굴착기로 발을 내디딤으로, 양분되어 있던 그 터널을 공식적으로 하나로 연결하였습니다. 현재 완공된 이 두 개의 터널은 그레이트벨트의 중간에 있는 스프로괴 섬에서 셸란 섬의 해안까지 동쪽으로 곧장 뻗어 있습니다. 1997년 중반부터는 그레이트벨트를 빠르게 횡단하는 열차가 정기적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직면했던 난관들

바다 밑바닥 아래로 이중 터널을 뚫는 일은 잘 진척되다가, 갑자기 터널에서 작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악몽처럼 여길 일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터널 안으로 차 오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터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가까스로 안전하게 대피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개의 터널용 갱도는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 버렸고 많은 장비들을 잃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있게 되었습니까? 예기치 않게 바다 밑바닥이 움푹 파여 바닷물이 차 있던 부분을 굴착기가 건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오싹해지게 하는 경험 때문에 자연히 전체 공사는 더디게 진척되었고, 문제를 피해 가는 새로운 공법을 개발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터널 하나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한 작업 감독관은 “연기가 너무 자욱해서 피노키오처럼 코가 큰 사람이라도 자기 코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묘사하였습니다. 현장에서 모두가 대피하고 불을 끈 다음, 원인이 파악될 때까지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유압기에 들어가는 기름에 불이 붙어 생긴 화재였습니다. 이러저러한 난관들로 인해 전체 공사는 거듭거듭 지연되었습니다.

현수교

그레이트벨트 연결로의 세 번째 부분이자 절정을 이루는 부분은 길이 6.8킬로미터의 아름다운 자동차용 현수교입니다. 이 다리에는 경간이 1.5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부분도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레이트벨트 연결로의 이 동쪽 부분의 도로는 바다 위로 67미터 높이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도로를 높이 설치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그레이트벨트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국제 항로 중 하나이므로 외항선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거대한 교탑은 높이가 각각 약 254미터로, 현재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입니다. 그에 비해, 뉴욕 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기초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높이가 약 50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탑을 바다에 세우려면 당연히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이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바다 밑바닥을 꼼꼼히 평평하게 고른 다음 돌로 된 “쿠션”을 덮었는데, 그 쿠션은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인 잠함(潛函)의 기초 역할을 하며 그 잠함 위에 탑이 세워집니다. 잠함은 각각 길이가 78미터, 폭이 35미터, 높이가 19미터, 무게가 3만 5000톤이나 됩니다.

교탑을 세우는 데는 이동식 특수 형틀이 사용되었습니다.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은 한 번에 수직으로 4미터씩,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하였습니다. 한 부분이 완성되면 형틀을 위쪽으로 옮겨서 그 위에 또 4미터를 올렸습니다. 각 탑은 위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58번이나 반복한 끝에 완성되었습니다.

현수교 건설에서 흥미 있는 특징 한 가지는, 지지하는 데 사용되는 튼튼한 케이블을 꼬는 방법입니다. 이 케이블들은 작은 케이블 169개를 용의주도하게 한데 묶어 놓은 것이며, 개개의 작은 케이블은 지름이 각각 약 5밀리미터인 127개의 강철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처럼 무거운 케이블 묶음을 어떻게 공중으로 끌어올렸습니까? 끌어올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묶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각 철선이 특수 고가 이동식 활차에 연결되면, 활차는 탑의 꼭대기로 철선을 끌고 올라가서 맞은편으로 내려오고 그 다음 다른 탑으로 올라가서 결국에는 기초까지 끌고 내려왔습니다. 매번 활차가 왔다갔다할 때마다 케이블은 조금씩 굵어졌습니다. 일 년 동안 활차가 2만 번가량 그처럼 오르락내리락하자 결국 케이블이 완성되었습니다.

개통

마침내 1998년 6월에 그레이트벨트 연결로의 모든 구간이 공식 개통식을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레이트벨트 연결로는 일개 작은 나라가 수행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과감한 사업이었으므로, 덴마크 사람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사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개통식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보행자들과 자전거를 탄 사람들에게는 자동차들이 다니기 전에 다리를 건너 보는,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6월의 어느 화창한 날에 보행자들, 스케이트보드와 롤러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포함하여 25만여 명이 물밀듯이 몰려와 핫도그 판매대, 악대, 기념품 가게가 있는 화려한 ‘개통식 마을’을 지나서 다리로 나와 바다와 해안의 상쾌한 경관을 감상하였습니다.

축제 중에 덴마크의 여왕은 한 연설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제트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다리 상공을 가로질렀습니다. 새로 작곡한 곡인 “다리 칸타타”가 연주되었는데, 그 음악에는 오래 된 연락선 한 척이 고별 인사를 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휘자가 음악의 한 부분에서 지휘봉으로 텔레비전 카메라를 가리키자, 약 1킬로미터 밖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연락선이 신호를 받고는 안개가 끼었을 때 울리는 경적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울렸습니다.

개통식이 끝나고 난 저녁에는 이제는 필요 없게 된 연락선들이 현수교 아래에 모여, 없어지는 것을 한탄이라도 하듯 뱃고동을 울려 댔습니다.

연결로의 영향

수많은 기획자들과 작업자들의 노고가 끝난 지금 결과는 어떠합니까? 분명, 덴마크에는 관광객들을 끄는 또 다른 명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다리들은 육지에서 보나 바다에서 보나 참으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차를 운전해서 한쪽 끝이나 양쪽 끝이 안 보일 때가 자주 있을 정도로 거대한 다리를 건너는 것은 특이한 경험입니다! 그리고 건너는 시간이 실제로 단축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연락선은 한 시간 이상 걸렸던 데 비해, 열차는 현재 단 7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 연결로는 이미 사람들의 몇 가지 생활 방식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서 친구를 찾아가고, 장사를 하고, 오락거리를 찾는 덴마크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도시화와 상권 개발도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이제는 그레이트벨트의 한쪽 편에 있는 직장을 다니면서 맞은편에 거주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품들도 전보다 훨씬 빠르게 국토를 횡단하여 운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습니다. 이 바다를 운항하던 연락선들은 여러 세기에 걸친 오랜 전통을 상징하였고, 많은 여행자들은 연락선들을 탔을 때 느끼는 여유를 오히려 좋아하였습니다. 한 사업가는 이렇게 한탄합니다. “연락선들이 그리워질 겁니다. 바다와 큰 배들은 매혹적입니다. 갑판에서 바람 쐴 때의 기분도 좋고요.” 하지만 이 새로운 연결로가 섬 왕국인 덴마크의 두 지역을 더 가까워지게 하고, 북유럽과 왕래하는 일을 훨씬 더 용이하게 만들어 줄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25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덴마크

핀 섬

셸란 섬

핀 섬

서부의 다리

스프로괴 섬

터널

현수교

셸란 섬

철도

자동차용 고속 도로

[26면 삽화]

완공된 현수교의 개통식 날 저녁

[자료 제공]

Nordfoto, Liselotte Sabr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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