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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가치관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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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가치관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가?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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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9
깨89 4/1 8-10면

어떤 가치관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가?

위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부, 명성, 흥분, 감각적 모험, 성적 충족인가? 아니면 우리의 목표는 정직, 인간애, 동정심, 공적인 봉사, 영성으로 명망을 얻는 것인가?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성서의 규정은 참되다.—갈라디아 6:7.

만약 우리가 참다운 가치관을 팽개쳐 버린다면, 우리는 그로 인한 결과를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고등 법원 판사인 폴 R. 휴트는 그런 결과 중의 일부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 사회적 예절 및 규율이 사라져 가는 것을 언급하면서, 휴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일도 더는 흑백이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만사가 회색 지대에 속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의를 상실하였다. 우리는 공손함을 상실하였다. 우리는 품위를 상실하였다.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의 차이를 인식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제는 범법 행위가 죄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붙잡히는 것이 죄로 여겨진다.”

지식이 증가하고 권력이 늘어남에 따라, 그런 것들의 사용을 지배할 도덕의 필요성도 커진다. (잠언 24:5) 불행하게도, 지식과 권력이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도덕이 몰락하였다.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그 점에 관하여 이렇게 논평한다. “우리가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그처럼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도덕상의 실패에 관한 기록이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 것은 실로 비극이다. ·⁠·⁠· 도덕성의 격차가 계속해서 넓어진다면, 시민들이 각자의 주머니 속에 원자 폭탄을 넣고 다녀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다운 가치관을 낮게 평가하고 죄를 쓰레기더미 속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그런 태도는 잠언 30:20에 나오는 음녀의 태도와 같다.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그렇지만 죄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다만 개방, 자유, 상대주의, 가치 해명, 판단 기피—요컨대 “신 도덕”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릇된 것을 옳게 보이게 함

이사야 시대 이래로 진실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사야의 이러한 말은 여전히 정확하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이사야 5:20) 그릇된 것을 옳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체온계의 눈금을 고쳐서 열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어떤 가치관이 훌륭한 결과를 산출하는가? 어떤 가치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충성된 벗을 산출하며, 내적인 평화와 만족을 가져다 주는가? 우리는 정직하고, 진실하며, 다른 사람들을 염려한다는 평판을 얻기를 원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무한정으로 소유물을 갖고, 엄청난 부의 힘을 맛보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는가? 육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최고로 중요한 일인가? 자기 달성에 집착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가?

불법적인 성이 널리 퍼져 있으며, 일반 보도 매체와 사회로부터 승인의 다독거림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결혼 생활과 가족 및 자녀의 복지에는 실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성적 방임주의로 인해, 오늘날 부자연스러운 동성애의 극심한 변태 행위가 대단히 만연해 가고 있는데, 그리스도교국의 몇몇 주요 종교는 그런 행위를 관용하고 심지어는 공인하기까지 한다. 그런 행위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자문 자답한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예레미야 6:15.

예수께서는 영적 필요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5:3, 신세)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런 필요를 무가치한 것으로 무시하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생활은 허울뿐인 생활이 되고 만다. 심지어 세상적으로 많은 성취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활은 여전히 허울뿐인 것으로서, 진정한 행복과 영적인 만족이 결여된 생활이다. 그리고 섭섭하게도, 그런 필요를 의식하고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에서 그런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공허하게 되돌아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국 내에는, 예언자 아모스가 예언한 것처럼, “기근 ·⁠·⁠·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있기 때문이다.—아모스 8:11.

더우기, 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은 건전한 영적 가르침을 구하는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다.’ (디모데 후 4:3, 4) 교직자와 평신도 모두가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처럼 생각하면서, 영적 필요를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정로를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이사야 30:10, 11.

경건한 가치관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결정이 하나님께서 추천하시는 참다운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 되려면, 따라야 할 방침이 하나님의 말씀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옛 성품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성품을 입으십시오. 그것은 정확한 지식을 통해 그것을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읍니다.”—골로새 3:9, 10, 신세.

하지만, 독자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지 않을지 모른다. 불멸의 영혼이 불타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초를 당한다는 것과 같은 교리 때문에, 혹은 성서를 단지 신화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는 고등 비평 때문에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한다고 거짓 주장하면서 종교를 구실삼아 위선적으로 돈을 긁어 모으는 전도자들의 비행 때문에, 흥미를 잃게 되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조사해 본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지 불 가운데서의 고초가 아니라는 것, 현대 고고학은 성서가 신화가 아니라 정확한 역사라는 사실을 확증한다는 것,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직자는 성서 시대의 충실한 예언자들 및 사도들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거짓 교직자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로마 6:23; 마태 5-7, 23장.

성서는 참다운 가치관의 근원이다. 그런 가치관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것을 뜻하며, 의로운 신세계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신세계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인류의]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을 것이다.—계시 21:4; 요한 17:3.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높이 평가하는 참다운 가치관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게 하여,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게 하자.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이사야 48:17, 18.

[9면 삽화]

강과 같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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