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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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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9
깨89 4/1 6-7면

참다운 가치관의 근원

모든 인간 사회에는 도덕률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인정하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모든 사람은 자신보다 뛰어난 인도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숭배 혹은 봉사의 대상으로 보다 높은 힘을 바라본다. 태양, 달, 별, 산, 강, 동물, 인간 혹은 조직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의 도덕률은 상이한 문화의 수많은 경전 중 하나에 나와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런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C. G. 융에 의하면, “종교는 인간 특유의 본능적 태도로서, 인간 역사 전체를 통해서 그 점을 밝혀 주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저명한 과학자인 프레드 호일은 “모든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도덕률”에 대해 기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끊임없이 도덕감에 역행하는 온갖 유혹[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도덕감이 존속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상당량의 증거를 구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잘 알려졌고 가장 널리 배포된 책인 성서는 인간에게 그런 타고난 도덕감이 있음을 인정한다. 성서는 로마서 2:14, 15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호일은 진화론을 “온갖 형태의 편의주의적 행동의 특허장”으로 간주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언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인류가 자멸로 향할 수밖에 없는 행로를 걷게 된 것은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 발표된 이후 소위 학식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인 허무주의 철학 때문이었다는 확신을 버릴 수가 없다. 운명의 날 시한 폭발 장치는 그때부터 똑딱거리기 시작했다. ·⁠·⁠· 요즈음 사회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이런 저런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항의하는 일로 자신들의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

생명의 기원 배후의 지성적 존재

그런 다음, 호일은 수학적으로 엄밀히 살펴볼 때, 생명이 지상에서 우연히 생겨났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알려 준다. 그는 “종교가 과거에 자행한 만행들” 때문에, 정통적인 과학자들이 창조의 힘에 대한 사상으로부터 등을 돌려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일은 우주 공간에 있는 외계의 어떤 지성적 힘에 의해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호일은 지상에서 불가능했던 일이 외계에서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심지어 외계에서도 모종의 지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인 박테리아도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을 창조하는 데는 지성이 관련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호일은 그런 지성적 존재자를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사회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지성적 존재자를 인정하기를 별로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앞서 인용한 정신과 의사인 융이다. “하느님에게 믿음을 두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신체적 도덕적 유혹에 대해 자신의 힘만으로는 저항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내부의 초월적 경험의 증거를 필요로 하는데, 그런 경험의 증거만이 그것이 없을 경우 다수에 휩쓸리고 말 상황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

상소 재판부의 수석 판사인 프랜시스 T. 머피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인은 “자신의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모르며,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 어떤 도덕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든 간에, 현대인은 사실상 자신의 생활, 자신의 직장, 자신의 가정에서 하느님을 추방하였다. 그러므로 현대인에게는 도덕적 구심점이 결여되어 있다.” 스포츠계에서도, 하워드 코셀은 선수들의 약물 남용 문제를 다루면서 같은 견해를 제시하였다. “미국에는 더 이상 명확한 도덕적 구심점이 없으며 ·⁠·⁠· 바로 그것이 전체 문화의 문제거리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여러 신문에 동시 기고하는 칼럼니스트, 조지 앤 게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도덕적 공동체 혹은 국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신속하게 ‘나’에게로 집중되는데, ‘나’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 ‘나’가—하느님, 교회, 가족 그리고 시민 및 공민 행동의 인정된 규범을 희생시키고—만물의 척도가 될 때, 우리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만약 20세기의 주된 특징을 몇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면, “인간이 하느님을 잊은” 시대라고 답하겠다고 말하였다. 솔제니친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0세기 전체가 무신론과 자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 우리가 회개하여 우리의 주의를 다시 만물의 창조주에게로 돌리지 않는 한, 오늘날의 세계의 곤경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려는 시도는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탈출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찾으려 노력해도 허사일 것이다.”

6천년 동안, 인간은 나름대로의 방법을 시도하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직접 결정하였다. 이제 현대의 추세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옳은 일과 그릇된 일이란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두 길 모두의 끔찍스러운 결과를 기록하면서, 사람이 자신의 걸음을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언 14:12; 예레미야 10:23)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으므로, 사람의 속과 겉을 아시고, 행복에 이르는 지도를 마련해 주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그분의 말씀인 성서는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참다운 가치관을 알려 준다. 함께 실린 네모 안에는 몇 가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열거되어 있다.

[7면 네모]

생활 표준으로서의 가치관

▸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 귀감이신 예수를 따르라.

▸ 용서받기를 원하면 남을 용서하라.

▸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 먼저 남을 존경하라.

▸ 모든 대인 관계에서 충실하라.

▸ 모든 사람과 평화를 추구하라.

▸ 온유와 친절과 자제를 구하라.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 선으로 악을 이기라.

▸ 거짓 신들을 숭배하지 말라.

▸ 형상에 절하지 말라.

▸ 살인하지 말라.

▸ 도적질하지 말라.

▸ 거짓 증거하지 말라.

▸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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