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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그 대가는 무엇인가?
  • 깨어라!—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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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7
깨87 4/15 8-13면

낙태—그 대가는 무엇인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두 간호원은 “끔찍스런 악몽”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쳤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는 보도했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들이 24주 된 사내 아기를 낙태하는 수술을 거들었기 때문이었다. 뜻하지 않게도, 그 아기는 “한동안” 살아 있었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는, 모태 속의 29주 된 태아에게 주사를 놓아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태반에서 떼어 내어 낙태 병동 강철 양동이에 버렸다. 그러나 그 아기는 살아 있었다. 이 여아가 우는 소리가 들렸으며, 때마침 이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그 아기를 특수 보호실로 옮겼다.

살아갈 수 있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일은 낙태 수가 증가함에 따라 늘어나는 문제이다. 의학 기술의 진보로 인해 조산아를 더 잘 보살피게 되어 현재는 26주밖에 안된 조산아라도 건강한 아기로 키울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몇해 전만해도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는 간호원이 양심상 낙태에 동참하기를 거부할 법적인 권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낙태 사업

“낙태 의사로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죠”라고 필립 스터블필드 박사는 「뉴스위크」지와의 회견에서 털어 놓았다. 사실상 미국 내의 많은 의사는 대중의 압력 때문에 낙태 수술을 전면 중지하였다. 적지 않은 폭파 사건으로 인해 낙태 진료소가 파괴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원장 없는 진료소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지역 사회에서 가할지도 모를 일에 대해 의사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스터블필드 박사는 설명한다.

그렇지만, 낙태 건수는 여전히 늘어만 간다. 그렇게 되는 한 가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낙태는 돈벌이가 괜찮은 사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파리에서 부모들은 십대 딸이 비밀리에 낙태하게 하는 데 1,000파운드 (약 120만원)를 들인다고 의학 잡지 「펄스」에 실린 한 보고서는 알려 준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런던에서는 낙태 때마다 2,000파운드(약 240만원)를 요구하는 진료소도 있다고 한다.

1982년에 영국 최대의 낙태 대행업소 두곳에서 올린 수익은 총 450만 파운드(약 54억원)였다. 이 수자를 보도하면서, 「인간사」(Human Concern)라는 출판물은 논평하기를 “낙태는 수지 맞는 사업”이라고 하였다. 일본 정부는 경구 피임약을 합법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처럼 금지하는 이유는 낙태로 돈 버는 의사들의 공작 때문”이라고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지는 보도하였다. 낙태 세계의 어디를 보나 돈, 돈이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혼인 십대 딸아이가 임신하게 되는 경우와 같은, 갑작스레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많은 부모는 그러한 상황을 해결할 만한 합리적인 방안이 있다면, 특히 안전하고도 신속하면서 극비로 낙태시킬 수만 있다면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낙태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수의 의사는 그 일과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에 관하여 점점 더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데일리 메일」지에 따르면, 영국에서 낙태 시대가 막이 오를 무렵 아이앤 모리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현재 낙태에 관해 아는 바를, 이 직업에 들어설 그때에 알았었더라면, 나는 결단코 산부인과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나는 낙태 수술을 극히 싫어한다. 그것은 나의 모든 의학 훈련과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목표는 오로지 생명을 구하는 것이지, 특정 형태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실로 강력한 언사이기 때문에 모든 의사가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낙태 수술에 대하여 일부 의사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혐오감을 잘 나타내 준다.

낙태—누가 택할 일인가?

여자가 낙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쩌면 그 여자 자신도, 아버지 될 사람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친구나 가족의 지원을 받아 여자 혼자서 낙태를 결정하는 사례가 흔하다. 그러나 “남자도 상실감으로 슬퍼하며, 여자가 어머니가 된다는 데서 갖게 되는 상당한 심적인 동요를 남자도 겪는다”고 「뉴욕 타임스」지는 보도한다.

아버지가 원하는 점도 고려되어야 하며, 어머니가 낙태를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 될 사람과 좀더 상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남자들은 그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강요가 아니라 참여하기를 원했다”고 그 문제를 10년간 조사한 후에 사회학자 아서 쇼스택은 말한다. 분명히 그러한 생각은 비이치적인 생각이 아니다.

몸의 반응에 대처함

그런데, 결정하면서,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갑작스런 임신 중절로 오게 되는 전신의 신체적 충격에 대처해야만 한다. 필시 뒤따르는 것은 무엇인가?

낙태를 일찌감치 했을지라도, 여자들은 허약해지고 피로를 느끼게 마련이다. 경련이 일어나고 병이 생기고 흔히 하혈도 있다. 낙태를 상당히 뒤늦게 했을 시에는 임신 중절의 후유증이, 호르몬 양이 감소됨에 따라 일주일 이상 계속될 수 있다. 유방의 통증과 함께 우울증도 겪게 된다. 그렇다. 낙태를 한다는 것은 여자만이 아는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이며,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낙태가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체적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상처와 감정적 고통은 나중에 나타나며, 치유된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낙태를 했던 사람들과 직업상 수시로 만나야 하는 사람의 말을 빌면, 그런 사람들은 흔히 낙태를 한 후 여러 해 동안 몹시 괴로와한다”고 런던의 「타임스」지 통신원은 기술한다. 이 문제는 어느 정도나 심각한 것인가?

“쉬쉬하던 문제의 규모가 이제서야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선데이 타임스」지는 논평하였다. 흔히 우울증과 감정적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치료라는 명목으로 낙태를 한 미혼 여성의 절반은 정신의학적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결론은 런던의 ‘왕립 대학 병원’의 연구로 실증되었다. 이 연구에 의해 “임신 중절을 하기로 한 남녀가 쓰라린 비통함을 겪을 수 있”으며, 그 비통한 심정에 “대처하기가 힘겨운 것”임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타임스」지는 기술한다.

일본인들은 이같은 인간적인 문제를 특이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낙태시킨 아기를 상징하는 조그마한 형상을 플라스틱이나 석고 또는 돌로 만들어서 사원에 둔다. 그곳에서 불교의 어린이 수호신인 지조에게 그 아기 형상을 맡긴다. 부모들은 그 신에게 용서를 빌면서, 자기들의 수치감과 슬픔 및 죄책감을 털어 놓는다. 그러나 그들만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음 면에 나오는 체험들을 고려해 보자.

‘이내 부끄러워졌어요’

일레인은 22세때까지 세번이나 낙태를 하였다. 그는 이렇게 떠올린다. “임신 6주 정도면 아직 아기가 형성되지 않았고, 아기가 되려면 3개월 이상은 지나야 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낙태를 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거나 범죄가 아니라고들 하더군요. 그후 미혼모에 대해서 사람들이 악평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낙태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읍니다. 2년 후에 나는 두번씩이나 또 낙태를 하였는데, 아기를 낳지 않는 길을 찾은 것이 갈수록 다행스럽게 여겨졌읍니다.”

그후 얼마 안 있어 일레인은 간호원이 되어 조산술을 익혔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보는 일과 또 그러한 출생이 의사와 조산부 및 부모에게 주는 기쁨을 경험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읍니다. 그러자 나는 무고한 세 생명을 지워 버린 일이 이내 부끄러워졌고, 불안과 당혹스런 감정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내 아기들이 태어났다면 몇 살이 되었을까, 사내아이였을까, 여자 아이였을까, 또 어떻게 생겼을까를 되뇌였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노라면 참담하기 그지 없지요.”

재니트는 현재 39세된 주부인데, 낙태를 하고 나서 느낀 감정을 이렇게 진술한다. “대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는 것뿐이었읍니다. 수년 간에 걸쳐 내가 확신하게 된 것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세뇌시킬 수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상당히 소름끼치는 악몽이었다는 것입니다.”

19세인 캐런은 이렇게 털어 놓는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낙태한 사실을 잊으려고 했지만, 어린 아기나 임신부를 볼 때면 울곤 했지요. 몹시 우울해졌읍니다. 그때쯤 유방에서 젖이 나오기 시작하여 더욱 잊을 수 없게 되었지요. 악몽을 꾸다 깨어나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눈물을 흘렸어요. 이 모든 일로 인해 아주 비참해졌읍니다.”

낙태를 편리하고도 간단한 수술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일단 낙태를 하고 나면, 번복할 수 없다. 당면한 문제는 사라진 듯하지만,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 여파는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낙태를 권한다면 어떠한가?

“아기를 낙태시켜야 합니다”

슈는 의사로부터 그처럼 단도 직입적인 충고를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슈에게는 이미 어린 자녀가 둘 있었는데, 그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바로 그 무렵에 한 아이가, 흔히 풍진이라고 하는 루벨라에 걸렸기 때문이다. “전에 그 병을 앓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 역시 꼼짝없이 그 병에 걸릴 것 같았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아니나다를까, 곧 그는 몹시 앓았다.

의료 경험을 통해 확증된 바에 의하면, 임신 초기의 여성이 루벨라에 걸리면 자라나는 태아가 흉측한 기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의사는 그처럼 말했던 것이다. 슈는 그때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의사는, 아기가 기형아가 될 것이며, 그 모습을 결코 내가 차마 보지 못할 것이라고 냉혹하게 말하더군요. 의사는 그의 진료소에서 강력히 요구하기를, 내가 그의 충고를 무시한다면 그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지우지 않고 내가 다 지겠다는 서류에 서명하라고 하더군요.” 슈는 그 서류에 서명하였다. “공정하게 생각하더라도, 의사는, 특히 내가 간질 환자였기에, 진심으로 나를 염려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슈는 덧붙인다.

슈의 남편은, 물론 관심은 많이 있었지만 결정을 아내에게 맡겼으며, 슈는 아기를 낳기로 하였다. 때가 되어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 즉시 아기를 시험해 보았으나, 가벼운 빈혈 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의사들이 놀란 사실은, 산모에게도 없는 항체가 그 아기의 혈액 속에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이 점은 그 아기가 모태에서 자라면서 루벨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기형에 대처함

이 경우에 있어서는 다행스럽게도 결과가 좋게 나왔으나, 많은 아기는 기형으로 태어나며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신체 장애자를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인도주의적인 처사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누가 다른 사람의 인생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단 말인가? 어느 사회건 사람들은 온갖 다양성 속에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분량 만큼 인생을 즐기며 인류의 유익을 위해 무언가 기여하지 않는가?a

슈도 그런 견해를 가졌다. 그러나 슈는 그러한 생각을 이끌어 내는 또 하나의 힘의 근원 곧 믿음도 갖고 있었다. 처음에 의사가, 아기가 기형일 것이라고 위협하였을 때, 슈는 그럴지라도 그가 대처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의지하겠노라고 의사에게 말했었다. 또한, 하나님의 왕국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새 사물의 제도에서 모든 신체적 병이 치료될 놀라운 희망”을 신체 장애가 있는 아기에게서 박탈할 권리가 그에게는 없었다. (계시 21:1-4) 그러한 믿음에는 보상이 따른다.

중대한 선택

“출산? 혹은 낙태?”라는 선택에 직면하여,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슈는 이렇게 추리하였다. “우리 아기가 잉태를 요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무슨 권리로 이 작은 생명이 생명을 즐길 기회도 갖기 전에 없앨 수 있겠읍니까?”

슈의 질문은 지극히 간단 명료하다. 독자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각주]

a 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기를 돌보는 일은 본지 1986년 4월 15일호에서 논의되었다.

[9면 네모]

상충하는 충성심?

1948년 9월에,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 의학 협회 총회’는 제네바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고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초로 한것이다. 다음은 그 선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의사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은 시점에서: 나는 나의 생명을 인류에 대한 봉사에 바치기로 엄숙히 서약한다. ·⁠·⁠· 나는 양심적이고도 존엄하게 나의 의술을 행할 것이다. ·⁠·⁠· 나는 잉태된 그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에 대하여 최상의 존경심을 유지할 것이다. 어떠한 위협이 있다해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도주의적인 법에 배치되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은 그러한 선서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아래에 두 가지 상충하는 견해가 있다. 독자의 견해는 어느 쪽인가?

의사 I. M.

“임신 중절을 시키면서 내가 제거해 온 그 덩어리를 볼 때마다 끔찍스럽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덩어리가 젤리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가 없애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 생명인 것이다.”

의사 V. A.

“나는 낙태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개체가 그 모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 그 개체는 사람이 아니다.”

[11면 네모]

낙태 기법

임신부의 낙태 위험도는 태아가 얼마나 되었느냐와 직접 관련이 있다. 이 위험성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첫 3개월 중에는 보통 진공 펌프로 태아를 뽑아낸다. 대개가 진료소에서 짧은 시간 내에 처리된다. 두번째 3개월 중에는 모태에서 끌어내려고 태아를 잘라내거나, 주사액으로 낙태를 유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흔히 병원에 잠시 들러서 한다. 세번째 3개월에 접어들면 자궁 절개술과 같은 대수술을 해야만 할 것이다.b

[각주]

b 자궁 절개술은 자라는 태아를 제거하려고 자궁을 가르는 것이다. 이것을 자궁 자체를 제거하는 자궁 절제술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8면 삽화]

의학 기술의 진보로 인해 이제는 조산아의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자료 제공]

Justitz/Zefa/H. Armstrong Roberts

[10면 삽화]

아기의 아버지 될 사람의 감정을 깊이 헤아리는 사람은 드물다

[12면 삽화]

낙태는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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