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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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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3
깨83 6/1 11-13면

‘요가’—당신에게 유익한가?

「깨어라!」 ‘인도’ 통신원 기

‘안나’는 등 아랫부분에서 발까지의 통증으로 고통을 당한다. 아픔을 덜기 위해 그는 발 뒤꿈치를 깔고 앉아 허리를 편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는 오른쪽 팔을 앞으로 내밀고 인지를 위로 세운다. ‘안나’는, 이 자세가 잘 고쳐지지 않는 자기의 좌골 신경통을 치유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천둥 번개 (‘산스크리트’어로 ‘바쥐라 아사나’)라고 하는 ‘요가’ 자세를 취한 것이다. ‘안나’는 비종교적인 이유로 ‘요가’를 하는 수백만명의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요가’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요가’는 나의 건강을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요가’는 원래 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인가? 일부 사람들은 ‘요가’가 숨겨져 있는 재능을 끌어내 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이 사실인가? ‘요가’는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주거나 좌절감을 주는 긴장을 해소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요가’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단순한 행위인가? ‘요가’란 무엇인가?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요가’가 유행하거나 혹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요가’를 고려하고 있다면, 당신은 ‘요가’의 진상을 알 필요가 있다.

‘요가’는 철저히 ‘힌두’교적인 것이다. 그것은 복잡한 ‘힌두’교의 철학 체계이다. “요가”란 말은 “멍에를 메다”라는 뜻을 가진 ‘유쥐’라는 ‘산스크리트’어 어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의 ‘라마크리쉬나’ 선교지 「베단타 케사리」, 1981년 12월호에서 ‘B. S. 수르티’ 박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요가’ 철학의 주된 목표는, 인간 영혼이 최고의 영과 완전히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요가’를 좀 더 설명하고 정의하면서 ‘힌두’교의 ‘스와미 하르샤난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것들[정신적인 갈등들]을 올바른 수양과 훈련으로 제어하고 억누르고 제거할 수 있을 때, ‘요가’ 즉 개인이 최고자와 결합하는 일은 ‘요가’ 또는 ‘사마디’[‘요가’의 경지]를 통해 있게 될 것이다. 이 수양과 훈련 역시 ‘요가’인 것이다.” 간략하면, ‘힌두’교의 ‘요가’는 신(神)과 자신과의 결합이다.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기타」는 가장 훌륭한 ‘요가’ 안내서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18개 장의 각 장은 각기 다른 형태의 ‘요가’를 다루고 있다. 그러한 형태 중 하나인 ‘하다 요가’란 것은 신체적인 운동과 호흡을 강조하며, 건강에 유익하다고 하여 널리 지지되고 있다.

‘요가’를 하는 사람을 일컬어 ‘요기’라고 한다. 「기타」의 주인공 ‘아르쥬나’는 “‘요기’가 되라”라는 권고를 받는다. 이 충고를 동료 ‘힌두’인들에게 적용하여, ‘인도’의 ‘스와미 치다난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여러분의 주된 의무 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최고 ‘다르마’[성법(聖法)]입니다. 여러분의 참되고 영원한 복지가 여기에 놓여 있읍니다.”

‘힌두’교의 신 ‘시바’는 “‘요기’의 주(主)”라고 불린다. 그리고 ‘시바’는 ‘요가’의 84종의 몸 자세의 창안자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므로, ‘요가’ 배후에 있는 모든 생각은 비그리스도교와 동양의 신들에 깊이 뿌리박혀있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요가’를 하는 것은 어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인도’의 옛 현인 ‘파탄잘리’는 “무한자”와 함께하는 경지에 달하는 여덟 가지 단계를 열거함으로써 ‘요가’ 철학을 체계화하였다 한다. 그리고 이 결합의 결과로 좋은 건강을 갖게 된다고 한다. ‘힌두’교 신앙에 따르면, ‘파탄잘리’는 ‘요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는 14종의 장애들을 열거하였다. 그 중에서 두 가지는 신체적으로 나쁜 건강과 “수족의 불안정”이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건강과 몸 자세는 ‘요가’ 철학의 선행 조건이다. ‘아사나’ 즉 자세는 그 여덟 가지 단계 중 세번째 것이며, 서구 세계에서 많은 주의를 끌고 있다. 호흡 조절, 정신 집중 및 명상은 서양 ‘요가’에 흘러 들어간 다른 단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은 ‘요가’의 주된 목적이 아니다. ‘힌두’교의 작가 ‘스와하난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적 구도자(求道者)들은 항상 건강상의 유익을, 그들의 주된 목표인 자기 또는 신을 깨닫는 일에 부수되는 가외의 유익으로 간주할 것이다.”

아마 당신은 ‘하지만 나는 영적 구도자가 아니다. 나는 다만 좋은 건강을 원할 뿐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요가’의 옹호자 ‘시디나다난다’가 건강과 ‘요가’에 관해 쓴 것을 숙고해 보기 바란다. ‘인도’의 ‘요가’ 잡지 「베단타 케사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신체적 복지를 제공해 주는 그 잠재 능력은 또한 그 매력적인 인기에 기여한다. 그러나 그것을 영적인 것이 아닌 다른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것을 오용하는 것이다.”

‘요가’는 그 주장처럼 잠재 능력을 끌어내 주는가?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그러한 잠재 능력은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가? 그 답변을 얻기 위해 ‘힌두’교의 ‘타파샤난다’가 주장하는 주의 사항에 유의해 보자. “하지만 ‘요기’가 극히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요가’를 할 때 [비범한 묘기]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묘기를 천리안적 투시력, 초인적 청력 및 무중력이라고 열거하고서, “그 힘은 자기를 창조한 자를 멸절하는 ‘프랑켄쉬타인’적 괴물이 된다”고 덧붙인다.

더우기 ‘하리다스 차우두리’ 저 「완전한 요가」란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정신—신체의 중심력은 ‘쿤달리니’ 즉 말려 있는 힘(뱀 ‘에너지’)이라고 불린다. 이 ‘쿤달리니’가 발동할 때, 개인은 내부로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초감각적 감지[ESP]의 중추가 자극을 받게 된다.” 다소 건강상의 유익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은 이러한 종류의 ‘에너지’원을 개발하고자 할 것인가?

‘요가’는 당신에게 유익한가?

그 대답은 두 가지 사실에 좌우된다. 그 첫째는 인생에 있어서의 당신의 목적이고, 두번째는 당신의 영적 가치 기준과 원칙이다. ‘요가’를 시작하거나 혹은 그것을 계속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당신은 당신이 함께 하게 될 그 “무한자”의 정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당신을 지배하고자 하는 초인적 영의 세력과 만나기를 원할 것인가? ‘요가’를 하는 사람은 이러한 가능성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 ‘요가’를 하면 신비술에 말려들게 될 수 있다. 한때 서양 ‘요가’를 하던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우주에 숨겨져 있는 다른 힘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렵게도, 이제 나는 그 힘이 실제로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초감각적 감지[ESP], 천리안적 투시, 초인적 청력 및 공중 부양(浮揚)은 모두 영매술과 관련이 있다. 성서는 영매술을 유해한 근원—악한 영물 즉 악귀들과 연관시킨다. (신명 18:10-12; 사도 16:16-1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자신의 영적 복지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신체 건강 요법을 유익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해롭다고 생각하는 ‘요가’의 특징과 무해한 특징을 아마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힌두교 사전」에 나와 있는 다음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일이 가능한 것같지 않다. “‘요가’의 어떠한 체계도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각 체계는 흔히 다른 요소와 서로 결합되어 있다.” ‘요가’를 하는 것은 악귀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고 누가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겠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해로운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예로서, 다음과 같은 고대의 평행적 사건을 고려해 보기로 하자. ‘이스라엘’ 나라는 성서의 하나님 즉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 여호와를 숭배하였다. (출애굽 20:5, 신세)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의 비와 다산의 신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는 땅에 정착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거짓 숭배에 말려들지 말라는 명백한 경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려들었다. ‘바알’은 인간이 만든 형상에 불과한 것임을 알았는 데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이스라엘’인들은 농경 사회였으므로, 그들의 영농과 목축업을 개선하는 데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릇된 원천—‘가나안’인들—에게서 도움을 구했다. 점차적으로 그들은 ‘가나안’인들을 모방하기 시작하였고, ‘바알’을 그들의 목축과 농작물의 다산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물질적인 욕망이 그들과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전적 숭배 사이에 서서히 쐐기를 박아 그들은 ‘바알’ 숭배, 즉 대대적인 배교로 떨어져 나갔다! (사사 2:11-13)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은 좋은 건강을 가지려는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가 침식당하게 할 것인가?

규칙적인 신체의 운동이 근육의 상태를 발달시키고, 긴장을 완화해 주고, 신체 균형을 개선시키고, 호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다. 육체의 연습이 중요할 수 있다는 점에 성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요가’와는 달리, 성서는 그러한 육체의 연습을 종교와 구별하여 이같이 말한다. “신체적 연습은 약간의 가치가 있읍니다. 그러나 영적 연습은 모든 면으로 가치가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현재와 장래 모두를 위해 생명을 약속해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전 4:8, 오늘날의 영어 역본

운동과 건강 요법을 선택하는 문제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생활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활동을 선택하고, 그분을 숭배하는 일과 조화되지 않는 종교적인 생각을 갖게 하려는 사람들을 피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자기 추종자들에게 하신 초대와 조화될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태 11:29, 30.

[12면 삽입]

“그것을 영적인 것이 아닌 다른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것을 오용하는 것이다”

[13면 삽입]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숨겨진 힘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힘이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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