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성장의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가?
성장(成長)은 모든 신체 기능의 기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성장은 여러 가지 면으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예를 들어 성장이란 세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가? 성장이란 세포의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코끼리의 세포나 쥐의 세포는 그 크기에 있어서 거의 같다. 그러나 세포의 수에 있어서 코끼리는 쥐보다 훨씬 더 많다.
또 한 가지 흥미있는 점은 육상 동물의 신체적 성장은 보편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이나 식량에 관계없이 각 동물의 키는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인간의 성장률은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춘기에 달한 소년 소녀들은 갑자기 성장하는데, 그 때의 성장률은 보통 때의 2배 내지 3배가 된다.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급격한 성장을 할 때에 일어나는 사지통을 흔히들 “성장의 고통”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피할 수 없으며 또한 막을 수도 없다.
그런데 신체적 성장 외에도 다른 종류의 성장이 있다. 이를테면 지성적 감정적 영적 성장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보편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지성적 감정적 영적 성장은 그 사람의 환경과 크게는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즉 이 삼부면에 있어서 성장하기 위하여 얼만큼 노력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성장에도 “성장의 고통”이 수반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이러한 고통을 받지 않는 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수줍어하고 머리가 둔하고 내성적이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물론 신체적 기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러한 증좌는 감정적으로 비장성되어 있다는 표시이다. 이러한 사람이 감정적으로 장성하려면,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어느 정도 “성장의 고통”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는 배우는 동안에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을 각오하고,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솔선하는 습관을 들이는 동안에 책망도 받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러한 “성장의 고통”을 감수할 각오를 할 때, 그는 점차 감정적으로 장성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로부터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지성적 혹은 정신적 성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더블류. 에이취. 암스트롱’의 「공부는 힘들다」란 책에 지적된 바와 같이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청소년들은 공부를 등한히 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성장하려면 자제하고, 정신집중을 하고, 지식섭취에 몰두하고 사고력을 강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성장의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지성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특히 영적 성장에는 “성장의 고통”이 수반된다. 예수께서는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 (히브리 5:8, 9) 그가 추종자들을 가르치실 때, 수차 그들을 책망할 필요성을 느끼셨다. 그러한 책망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 불쾌하였거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나, 그들이 예수의 제자로서 장성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마태 16:23; 20:20-28; 누가 9:54, 55; 24:25-27.
오늘날도 그러하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과 처음으로 성서 연구를 시작한 사람은 친지로부터 조롱이나 반대를 흔히 당한다. 그가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려면, 이러한 “성장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건, 자기가 옳고 현명하다고 생각한 바를 계속 행할 때, 그러한 사람은 영적으로 장성하게 될 것이다.—시 118:6.
증인들과 함께 성서를 계속 연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덕 표준과 일치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자기 생활을 크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성서 원칙을 적용하기 위하여 자기 생활을 조정하는 일은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이러한 “성장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린도 전 6:9-11.
그리스도인 전도봉사를 위한 훈련 중에는 학생 연설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충고 받는 일이 포함된다. 충고 주는 사람은 친절한 방법으로 할 것이지만,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이러한 충고를 불쾌하게 여길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는 이러한 충고가 필수적이다. 공개 전도봉사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두나 호별에서 성서 서적을 전하는 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조롱이나 면전에서 문을 쾅 닫는 경우를 감수하려면 “성장의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영적으로 장성하려면, 이러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러하였던 것과 같이, 당신도 때때로 책망을 받아야만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책망은 유쾌한 것이 못되며,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영적으로 전진하고 성장하려면, 그러한 책망을 달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러한 책망을 경시하거나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히브리 12:4-11) 때로는 당신이 잘못을 범하여 고백하거나 사과할 필요가 생길지 모른다. 이 경우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나, 영적으로 장성하려면, 이러한 고통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하면 “성장의 고통”을 쉽게 감수할 수 있는가? 성서 원칙에 고착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의 성품이다. 왜냐 하면 흔히 교만이나 허영 때문에 “성장의 고통”을 회피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욕망을 가진다면 또한 도움이 된다. 흔히 “성장의 고통”을 피하려는 동기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며 지혜로운가를 알고 있을 때, 우리가 원칙에 입각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성장의 고통”이 여하한 형태로 임한다 할지라도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사랑은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한 사랑을 가질 때 우리는 지성적 감정적 영적 성장에 수반되는 “성장의 고통”까지도 감수할 힘을 얻을 것이다.—고린도 전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