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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로마’가 주는 경고
  • 깨어라!—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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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을 사랑한 사람들
  • 자제가 없음
  • 짐승같은 사람들
  • 심는 대로 거둔다
  • 오락
깨어라!—1970
깨70 2/8 9-11면

고대 ‘로마’가 주는 경고

상업상 유리한 곳. 거리에는 범죄가 득실거리고 성적 부도덕과 이혼이 흔한 곳. 야수같은 환락의 물결. 이 말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묘사한 것처럼 들리는가?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고대 ‘로마’를 묘사한 말임을 아는가?

바로 이러한 행위가 ‘로마’를 그토록 약화시키어 기원 476년에 ‘로마’는 속이 썩은 아람드리 나무가 폭풍에 쓰러지듯이 적들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고를 받는다.

돈을 사랑한 사람들

‘로마’인들은 그들이 모을 수 있는 재물을 위하여 산 물질주의자들이었다. 돈으로 이러한 것들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든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탐욕적으로 돈을 추구하였다. ‘마샬’이라는 이름의 ‘로마’ 저술가는 정직하게 살려는 자기의 친구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촉구하였을 때에 ‘로마’ 귀족의 일반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다. 왜 떠나라고 하였는가? 왜냐 하면 이 친구는 식객이 아니었으며 연로한 귀부인들을 속이고 재산을 사기하거나 부정한 수단으로 정치적인 허위 소문이나 도박 소문을 팔거나 부정한 수단으로 돈을 버는 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독신이며 재산이 많은 노인들은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그를 아는 친구들은 유언장에서 언급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노인에게 아첨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윌리암 에스. 데이비스’ 저 「고대 ‘로마’에서의 하루」라는 책은 이렇게 논평한다. “돈이 많은 독신자는 각계 각층으로부터 아첨하는 대접을 받을 것을 확신한다. 그가 기침을 더 할수록, 그가 더욱 창백해 질수록, 그는 선물을 더 많이 받으며 큰 소리로 위안하는 친구들이 머리맡으로 더욱 몰려든다. 그들은 노예나 나름없이 되며 때때로 그들은 보상을 받는다.” 일단 유언에서 언급되면 이런 친구들 중에 그 독신자의 죽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돈을 사랑하는 이 사람들에게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거리의 범죄는 만연하였다. 해가 지면 친구들과 여럿이 동행하거나 혹은 횃불을 든 종들을 동반하지 않고는, 사람들이 어두운 거리를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칼을 품은 사람들이 거리에 숨어 있었다. 또한 불량한 귀족 청년들이 떼를 지어 거리에서 배회하다가 밤에 그 거리를 호위하는 사람이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구타하는 악취미를 가지기도 하였다.

법정의 판사들은 돈이 있고 아름다운 귀걸이나 훌륭한 의상을 한 사람을 편들었다. 외관상 부유해 보이지 않으면 배심원들은 그가 하잘것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불리한 입장을 취하곤 하였다. 이에 관하여 ‘존 로드’ 저 「역사의 봉화」는 이렇게 말한다. “특수한 점에 대하여 재판을 할 때에 일반적으로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법에 호소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들뿐 아니라 너무나 엄청나서 집안이 망할 판인데 거만한 재판관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겠는가? 법률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법률이 착취의 통로가 되고 재판관석이 세력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독점적 권리를 옹호하는데 사용되는 도구인데야 무슨 기대를 법에 걸 수 있겠는가?”

‘로마’가 몰락하기 400년 전에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의 시대에도 관리들이 뇌물을 받는 것은 보통이었다. ‘로마’ 총독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뇌물을 얻을 것을 바랐기 때문에 ‘바울’은 심문을 기다리면서 투옥되어 2년간을 보냈다.—사도 24:26, 27.

자제가 없음

‘로마’인들은 물질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온갖 방법으로 육체의 욕망을 채웠다. ‘에드워드 기본’ 저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은 이렇게 말한다. “재산을 사치일락에 낭비한 대부분의 귀족들은 부귀 가운데서 가난하게 되었으며 계속적인 낭비의 생활로 게으르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천명의 노고로써 계속 욕심을 채웠다. 그들의 가내의 노예들은 허다하였고 형벌이 두려워서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기술자와 상인들은 이득을 얻고자 더욱 강제당하였다.”

아내들은 결혼 밖에서의 정사를 가졌고, 남편들은 정부를 두었다. 십대 소년들도 매음굴에 출입하였고 어른들과 관계를 가졌다. 이혼은 흔하였다. 이혼의 절차란 증인들 앞에서 “당신의 재산을 가지고 가시오!”라고 배우자에게 말하는 것 뿐이었다. 부부가 별거하면서 다른 사람과 결혼하였다가 또 별거하고 먼저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떤 여인들은 5년 동안에 여덟명의 남편을 둔 것을 자랑으로 여기어 그것이 그들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해롤드 매팅리’ 저 「‘로마’ 제국의 문명」이라는 책은 이렇게 말한다. “사생활의 많은 미덕과, 남편과 아내의 헌신과 견고한 가족 충성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항의를 이리 저리 정당화하였다. 표준은 매우 낮았고 극장과 공개 ‘쇼’에서 부도덕을 가르쳤고 결혼도 아주 쉬웠고 이혼도 아주 쉬웠다.”

먹고 마시는데 있어서도 ‘로마’인들은 자제가 없었다. 연회는 수라장이 되기 일쑤였다. 손님들에게 토제를 주어서 그 목적으로 특별히 마련된 곳에 가서 토하고 다시 돌아와 연회석에서 계속 먹고 마시는 육체의 욕망에 빠질 수 있게 하였다.

‘로마’인들의 방종한 태도가 실제 묘비에 새겨진 글은 이렇게 표현한다. “목욕, 술, 정사—이런 것들이 우리 몸을 해치지만 그러한 것들은 생활을 보람있게 하여 준다. 나는 살만큼 살았다. 나는 마셨다. 실컷 마셨다. 한 때 나는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있었다. 이제 다시 나는 없다. 하지만 아랑곳 할바 아니다.”

짐승같은 사람들

동정, 자비, 친절, 감정이입의 훌륭한 성품은 ‘로마’인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은 어찌나 도덕적으로 부패하였던지 다른 사람들의 복지나 고통에 무감각하였다. ‘기본’은 이렇게 말한다. “집안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로마’의 귀족들은 어떠한 개인적인 손해에도 극히 예민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는 경멸적인 냉담을 표시하였다. 그들이 따뜻한 물을 떠오라고 하였는데 종이 늦장을 부리면 즉각 삼백대의 태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그 종이 고의적인 살인을 하면 주인은 그가 무익한 녀석이라고 관대하게 평가하고 그가 범행을 계속하면 처벌한다.”

‘로마’의 투기장에서 사람들은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고 야수들이 사람이나 다른 짐승을 갈기 갈기 찢는 것을 구경하는 특수한 쾌락을 가졌다. ‘헨리 스미스 윌리엄’ 저 「역사가의 세계사」는 이렇게 논평한다. “이러한 일이 우연히 또는 어떤 이상한 광적 기분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고의로, 조직적으로 조용히 이런 일을 하였으며 이런 일들이 모든 사람들의 주된 즐거움이었다. 거의 직업적이었다. 그들은 ‘빵과 피’를 갈구하였다.”

심는 대로 거둔다

관능적 쾌락과 물질을 위하여 생활하므로 ‘로마’인들은 육체를 위하여 이기적으로 심었고 그 결과 썩은 것을 거두었다. 이것은 성서에 있는 기본 법칙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리라]” (갈라디아 6:7, 8) 타락한 행위는 한 방향으로만 발전할 수 있으며 ‘로마’인들에 의하여 생생하게 증명된 바와 같이 계속 하락한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같은 과정을 볼 수 있다. 도덕적 부패는 계속 악화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성의 자유를 제창하고 있으며 많은 남자 대학생들은 밤에 그들의 방으로 여학생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결혼도 하지 않고 동거생활을 한다. 그리고 어떤 종교 지도자들은 동성애를 변호하는 발언을 한다.

성에 대한 거리낌없는 견해를 피력하여 ‘마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 있는 감독신학교 교수 ‘조셉 플레처’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상호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성관계는 금지해서는 안 된다. 단 미성년자를 유혹하거나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에는 예외다.” 이것은 고대 ‘로마’와 같지 않은가?

난잡한 성관계, 흥분제의 사용, 과음은 젊은이들과 어른들이 광적으로 추구하는 관능적 쾌락이다. 그 결과 성병은 현대의 여러 가지 치료법에도 불구하고 유행하며 사생아와 낙태가 증가하고 알콜 및 마약 중독이 급증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1961년까지 영국에서의 동성애는 남자의 경우만 600%나 증가하였고, 1967년에 사생아가 7만명이나 출생하였다. 1968년 3월 11일자 「시카고 아메리칸」지에 의하면 1938년부터 1965년까지 미국에서의 사생아 출생률은 젊은이들 뿐 아니라 성인들간에 특히 급증하였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15-19세의 어머니들 사이의” 사생아 출생률은 “123% 증가하였다.” 동지는 이어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40세 이상의 사람들 중에서는 300% 증가하였고, 35-39세에서는 400%, 30-40세에서는 673% 증가하였다.”

‘로디지아’의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딸은 17세 되어서 낙태를 하였어요 ··· 오늘날은 어떤 소녀도 믿을 수가 없어요. 만일 어머니들이 딸에게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그리고 솔직한 말을 듣는다면) 뒤로 넘어질 것입니다.” 고대 ‘로마’와 무엇이 다른가!

오락

‘로마’ 제국의 경우와 같이 오늘날 오락은 통보 선한 도덕, 인간 생명에 대한 존경심, 동정심, 비이기심을 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60년 11월 5일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에는 인기있는 서적과 극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논평이 실려있었다. “[서적에서의] 이상주의는 성, 변태성욕, ‘쇼크’ 타락으로 변하였다. ···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유일한 효력있는 소재는 외설, 욕설, 타락이 되었으며 우리의 취미는 극히 무디어져서 정상적인 인간의 행실로는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이에 대한 불길한 역사적 전례가 있다. 폭식을 하고 나른해진 ‘로마’의 귀족들은 사람들이 투기장에서 찢기는 것을 구경하면서 썩힌 고기로 만든 ‘소스’를 먹었다.”

‘텔레비’와 영화 장면에 “오락”으로 묘사되는 모든 형태의 야수성과 도덕적 타락과 변태성욕을 볼 때 현 세대는 극장과 투기장에서 비슷한 것을 열광적으로 구경하던 ‘로마’인들과 같지 않은가?

우리는 오늘날도 ‘로마’ 제국을 부패시킨 돈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볼 수 있다. 상업계에서나 정치계에서 올바른 원칙도 돈에 대한 탐욕적 추구 앞에 굴복한다. 전세계 각국에서 계약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세관을 통과하기 위하여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행위는 도덕적 부패상을 드러낸다. 때때로 정치적 지도자들이 뇌물을 취하고 공금을 오용하는 비행이 추문을 일으켜 신문에 보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정치적 부패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돈에 대한 이러한 탐욕에 대하여 ‘텍사스’ 대학의 ‘스튜어트 매코클’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생각에는 시대의 주제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능한 모든 것을 취하라는 것이며 이러한 태도의 대부분은 높은 것으로부터 내려오는 것같다.” 고용인의 증가하는 부정직, 사업계에서의 만연한 부정한 행위, 계속 증가하는 범죄율에 그것이 분명히 나타난다.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이 고대 ‘로마’의 거리와도 같이 위험하다.

오늘날 도덕적 부패의 이 모든 증거를 볼 때에 우리는 어떠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세상이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가? 그러나 오늘날은 단일 국가나 단일 제국만이 감연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사물의 제도가 감염되었다.

19세기 말의 추세를 보고 역사가 ‘존 로드’는 ‘로마’ 제국의 몰락에 대하여 기록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과학과 예술의 큰 업적의 와중에서 우리가 만일 고대인들의 향락주의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생활 방식에 빠지면 그들과 똑 같이 타락할 것이며—미덕과 공중 도덕에 있어서—그리고 같은 형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현 사물의 제도의 최종적인 몰락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래 전에 성서에 예언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으로써 올 것이다. 바로 성서에서 우리는 또한 더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의로운 새 제도이며 그 제도는 결코 내부로 도덕적 부패가 번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배우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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