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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왜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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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왜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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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78 10월호 3-4면

사랑은 왜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가?

그들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였으며, 사업도 번창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온전히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25년 동안 그들은 여러 가지 즐거움을 같이 해 왔다. 그러다가 어느날 남편이 뇌일혈로 쓰러졌다. 그는 그 후 20년이나 살았지만 점차 더 무력해졌으며 결국 사망하여 그의 충성스러운 아내는 짐을 벗게 되었다. 그 아내는 편히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떻게 불평없이 상냥하게 남편을 돌볼 수 있었는가? 그것은 남편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당신이 그 남편에 대해 묻는다면 그 아내는 “나의 남편은 아주 훌륭하고 인자한 남편이었읍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그 아내는 “사랑은 ··· 모든 것을 참”는다는 영감받은 말씀이 참됨을 증명하였다.—고린도 전 13:4, 7.

때때로 생활하다 보면 참기 어려운 일들이 생긴다. 매일 우리는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나 그들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된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어린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기혼자들은 서로 헤어지거나 이혼을 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들에게는 사물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는가? 영감받은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사랑의 부족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만하다. 사랑이 있었다면 ‘모든 것을 참’았을 것이다. 혹은 사도 ‘바울’의 그 말을 다른 번역들이 옮긴 것처럼 행하였을 것이다. “사랑은 ··· 항상 기꺼이 용서한다.” “사랑은 견디는 데 한계가 없다.”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직면하지 못할 것이 없다.” “사랑은 어떠한 대우도 견딜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 “어떠한 대우도” 견딜 수 있는가? 어떠한 종류의 “사랑”이든지 그럴 수 있는가? 다른 사람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같은 형태의 사랑은 어떠한가? 그러한 사랑도 아마 때때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성서는 족장 ‘야곱’이 자기가 사모하는 ‘라헬’을 위하여 여러 해를 일하였다고 알려 주는 데 그 기간은 그에게 단지 몇해같이 느껴졌다. 더우기 그가 수행해야 할 양치는 일은 각종 어려운 일로 가득차 있었다.—창세 29:18-20; 31:36-42.

가족간의 강력한 사랑도 가혹한 대우를 참을 수 있게 한다. 희랍인들은 이러한 종류의 사랑을 ‘스토르게’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유다’는 자기 아버지가 몹시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잃는 슬픔을 겪게 하지 않으려고 기꺼이 평생 ‘애굽’ 식량 관리인의 종이 되려고 하였다. (창세 44:18-34) 공통성이 많은 친구들 사이의 사랑 즉 희랍인들이 ‘필리아’라고 부른 종류의 사랑도 불쾌한 것을 참을 수 있게 한나. ‘요나단’과 ‘다윗’이 상호간에 가진 종류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는가? 확실히 그렇다. ‘다윗’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요나단’은 기꺼이 자기 생명까지도 희생하려 하였다.—사무엘 상 18:1; 20:32-34.

무엇보다도 원칙에 근거한 사랑 즉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필자들이 ‘아가페’라고 불리운 사랑은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게 한다. 그러한 사랑 때문에 위대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하고 고집센 인간 자녀들에게 인내를 보이고 오래 참을 수 있었다. (베드로 후 3:9, 15) 또한 그러한 사랑 때문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인내해야 할, 자기 적들로부터 받은 모든 대우를 견딜 수 있었고, 자기 제자들의 약점에 대하여도 참을 수 있었다. 결국 예수께서는 사랑의 표현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셨다.—요한 15:13.

사도 ‘바울’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어떠한 대우도 견’딜 수 있었던 탁월한 본이었다.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젖을 먹이고 자기 자녀를 아끼는 어머니의 사랑 혹은 자기 아들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사랑에 비유할 수 있었다. (데살로니가 전 2:7, 11) 그리고 그가 참은 모든 점들을 생각해 보라! 참으로 그의 사랑은 ‘견디는 데 한계가 없었다.’ 그는 여러 차례 매를 맞았으며, 온갖 위험에 처하였고, 먹지 못하고, 잠자지 못하고 종종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겪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겪은 것이다.—고린도 후 11:23-33.

왜 ‘아가페’ 사랑은 어떠한 대우라도 견딜 수 있게 하는가?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은 다른 사람의 복지에 비이기적인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젖을 먹이는 어머니가 자기 아기에게 가지는 사랑이 이것을 잘 예시해 준다. 아기를 돌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약점에 대해 참음으로써 사랑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이러한 감독자들이 좋지 않은 경향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도 온유함으로 교훈하게 한다.—디모데 후 2:24, 25.

사랑은 또한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랑은 감정이입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우리를 놓게 할 수 있다. 사랑은 우리가 “항상 기꺼이 용서”하고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참작할 수 있게 이해력을 준다. 사랑은 귀에 거슬리는 음조, 어떤 몸짓이나 단순히 수다스러움 등 다른 사람들의 짜증나게 하는 버릇을 참을 수 있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그러한 여러 가지 특이한 버릇을 인자하게 감싸 줄 것이다.—베드로 전 4:8.

“사랑은 직면하지 못할 것이 없”는 다른 이유 중에는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들어 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 (고린도 전 13:4) 교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비평적이 되게 하며, 다른 사람들의 약점과 단점들에 대하여 참아야 할 때 분개함을 느낀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부당하게 민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복지와 관심사에 대하여 과도하게 염려하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 하고 약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사랑으로 아주 선뜻 참을성을 나타낸다.—로마 15:1, 2.

오늘날 많은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인으로서 외국으로 갔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소식”의 선포자가 크게 필요한 곳으로 가서 봉사해 왔다. 이러한 사람들은 더 열등한 생활 조건이나 더 낮은 수입, 무관심과 반대를 참았다.—이 모든 것을 그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 때문에 참은 것이다. 그들은 또한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그러한 종류의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그러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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