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77 1/1 8-12면
  • 거룩한 봉사의 보배를 인식함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거룩한 봉사의 보배를 인식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왜 우월한가?
  • “거룩한 봉사”의 의미를 알아봄
  • 그리스도인 “거룩한 봉사”를 위한 모형
  • 밤낮으로 거룩한 봉사를 드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그리스도인은 섬기는 일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0
  • 이 “마지막 때”의 거룩한 봉사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 독자로부터의 질문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0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파77 1/1 8-12면

거룩한 봉사의 보배를 인식함

“주[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거룩한 봉사를 드리]라.”—마태 4:10.

1-4. (ㄱ) 많은 사람들은 무슨 봉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영예로 생각하였으며, 세상은 그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았읍니까?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도 어떤 입장에 처해 있읍니까?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인간 남녀들은 가치있는 명분을 위하여, 자기들이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해 왔읍니다.

2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 전쟁에서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최고의 희생”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3 또 어떤 사람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국가나 민족에 관계없이 온 인류를 위해 봉사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인류에게 유익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 자기의 재능과 정력을 바치고 심지어는 자기의 건강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질병 치료 방법을 발견하거나 빈곤하고 압제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남녀들을 “인도주의자들” 혹은 “박애주의자들”이라고 찬양하였읍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 탁월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념비를 세우거나 공공 건물 혹은 거리를 그들의 이름에 따라 명명함으로써 그들의 공적과 희생을 길이 기념합니다.

4 그렇지만, 그러한 모든 봉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구상에는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지 않은 나라가 없읍니다. 많은 나라는 범죄와 부패로 얼룩져 있으며,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읍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는 병들어 있고 근심에 싸여 있고 죽어 가고 있읍니다.—마태 9:36; 로마 8:22.

5. 그리스도 예수의 진정한 제자들은 무슨 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무엇을 확신합니까?

5 참 그리스도인들은 봉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봉사는 그리스도교의 기본을 이루고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봉사는 영예와 가치에 있어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다른 어떠한 봉사보다도 우월한 것입니다. 이 봉사는 시간과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하며, 심지어 우리의 생명을 요하기도 합니다. 이 봉사는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의 찬양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영예를 위하여 기념비가 세워지는 일도, 거리가 우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요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봉사가 분명히 가치있는 것임을 잘 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훌륭한 봉사, 가장 크고 가장 항구적인 유익 곧 우주적인 유익을 가져다 주는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읍니다. 이 봉사는 바로 우리의 웅대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봉사, 참으로 거룩한 봉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처럼 그것은 훌륭한 보배입니다.—고린도 후 4:6-10, 16-18.

왜 우월한가?

6. 그 “거룩한 봉사”가 다른 어느 봉사보다도 우월한 한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다른 어느 봉사보다도 이 “거룩한 봉사”를 더욱 보배로 여겨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그 봉사가 모든 인종과 나라의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전체 역사를 통하여 인류가 달성하려고 하였으나 달성하지 못한 일들, 곧 빈곤과 굶주림과 질병과 압제로부터의 자유와 세계 평화의 실현을 깨닫도록 도움을 주는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봉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일, 곧 죽음 자체로부터의 해방을 깨닫도록 도움을 주는 봉사입니다.—로마 8:18-21; 히브리 2:15.

7-9. (ㄱ)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세상적인 봉사보다도 그 “거룩한 봉사”를 우월하게 생각하셨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ㄴ) 이 사실은 이 봉사를 다른 모든 것보다 더욱 보배로 여기는 이유를 어떻게 지적해 줍니까?

7 어떠한 인간적 다스림, 어떤 박애적인 혹은 인도적인 노력도 그러한 것들을 이룩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떠나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도주의적인 면에서 굉장한 일을 하실 능력이 그에게 있음을 인식한 열성적인 군중이 그를 그 나라의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을 때, 그것을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요한 6:15, 25-27)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지구상의 모든 정부들을 통치하도록 하라는 제의를 받으셨을 때, 그것을 제의한 자가 하나님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을 아시고 그것을 일축하셨던 것입니다. 그 제의를 받아들이는 대가는 사실상 숭배 행위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숭배가 아니라 그것을 제공한 자에 대한 숭배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거룩한 봉사를 드리라, 신세].”—마태 4:8-10.

8 우리가 이 “거룩한 봉사”를 보배로 여겨야 할 더 큰 이유가 또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의 봉사를 받으시는 분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군주 아래서 사는 사람들은, 높은 지위를 임명받아서 “나는 폐하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물며, “나는 천지의 창조주, 지존자, 온 우주의 주권자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큰 영광이겠읍니까?

9 그렇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봉사”가 현재 인류에게 얼마나 유익되고 또 앞으로 유익될 것인가를 알므로써 얻게 되는 모든 만족감보다도 그것이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영예를 돌린다는 것을 알므로써 얻게 되는 만족감은 훨씬 우월합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수행하신 인자한 활동과 또 앞으로 수행하실 모든 활동을 생각할 때에 어느 누구보다도 그분은 우리의 전적이고 인식깊은 봉사를 받으실 만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또 누리고 있는 생명과 기타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받았읍니다.—시 104:1, 14, 15, 24.

10. 그 “거룩한 봉사”를 행할 때에 어떤 웅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10 우리의 봉사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그것은 결국 썩어질 기념비가 아니라, 의로운 새 질서에서의 생명, 곧 평화와 건강과 행복을 누릴 생명을 약속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백성으로부터 나온 셀 수 없이 큰 무리의 사람들을, 급속히 다가오고 있는 큰 환난을 통과한 후 하나님께서 만드실 새 질서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언적 환상에서 그 생존자들을 보고, 계시록 7:14, 15에 그들에 관해 기록할 특권을 가졌었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니라] [거룩한 봉사를 드리고 있다, 신세].”

11, 12. (ㄱ)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거룩한 봉사”를 드리고 있다고 주장합니까? (ㄴ) 어떠한 상태를 볼 때에 그 주장이 의심스럽습니까?

11 우리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거룩한 봉사”를 드리고 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현재 거의 10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에 속해 있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서의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으로 할례를 받은 수백만의 ‘유대’인들은 ‘유대’교 회당과 ‘랍비’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자기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숭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수십억의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비그리스도교의 신들을 섬기고 있읍니다.

12 그러나 나라마다 당면하고 있는 종교 상태와 도덕 상태를 살펴볼 때에 우리는 그 사람들의 견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 사람들이 “어린양의 피”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을 깨끗케 하였으며, 믿음에 수반되는 제자 신분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어디 있읍니까? 그들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으며, 성적 부도덕, 거짓말, 도둑질 등에 물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직접 돕고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도록 새로운 제자들을 돕고 있읍니까?—요한 15:27-16:3; 사도 24:13, 14.

13, 14. 무엇은 “거룩한 봉사”이고, 무엇은 그것이 아닌지를 아는 것은 왜 매우 중요합니까?

13 우리 모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 하면, 그 종교인들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들의 행동의 결과는 충격적인 실망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거에 의하면 그러한 결과는 가까운 장래에 나타날 것입니다.

14 다가오는 환난의 시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행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께 참다운 “거룩한 봉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거나 보호를 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 7:22, 23) 그릇된 봉사는 “거룩한 봉사”가 아니며, 다가오는 큰 환난을 생존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거룩한 봉사”의 의미를 알아봄

15, 16. ‘거룩한 봉사를 드리다’(‘라트레우오’)는 뜻의 희랍어 단어는 ‘봉사하다’(‘디아코네오’)라는 뜻의 단어와 어떻게 다릅니까?

15 성서는 하나님의 승인과 보호를 가져다 줄 “거룩한 봉사”가 무엇인가를 판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예수께서 유혹을 물리치실 때에 사용하신 희랍어 단어는 ‘라트레우오’입니다. (마태 4:10) 그 단어는 많은 번역판에서 “봉사하다” 또는 “섬기다”라고 번역한 희랍어 단어 ‘디아코네오’와는 다릅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16 두 단어가 다 봉사를 의미하지만 ‘디아코네오’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한 개인적 성질의 봉사를 의미합니다. (누가 12:37) 그러나 ‘라트레우오’는 성경에서 엄격히 하나님께 바친 봉사에만 사용되었으며, 몇번의 경우에는 거짓 신들에게 바친 봉사를 나타내기도 하였읍니다.—사도 7:42; 로마 1:25.

17, 18. (ㄱ) 그리스도 전 시대에 수행한 “거룩한 봉사”에 대해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봉사”는 특정 장소에 혹은 회중 내의 특별 계급에만 국한되어 있읍니까?

17 지구상에서 참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봉사”가 그리스도 예수 때부터 혹은 그리스도교를 설립한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님을 성서는 알려줍니다.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 8:5에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섬기는 것[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것, 신세]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였을 때에 이 점을 나타내었읍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회막에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바치는 봉사를 드렸던 것입니다.—히브리 9:1, 6; 10:2; 13:10.

18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봉사”는 어느 특정 장소에 국한되어 있으며,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직과 같이 특정 집단이나 계급에 한정되어 있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우에도 “거룩한 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회막에서 봉사하도록 임명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전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한 봉사에 참여할 특권과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출애굽 3:12; 사도 7:6, 7; 로마 9:4.

19, 20. ‘바울’은 왜 자기 시대에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었다고 말할 수 있었읍니까?

19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아론’의 제사직이 속한 ‘레위’ 지파 사람들만 아니라 육적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모두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희망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사도행전 26:7에서 ‘바울’은 그들이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즉 거룩한 봉사를 드림으로써 나타낸다고 하였읍니다. 그들은 그 일을 어떻게 하였읍니까?

20 하나의 예로 여 예언자 ‘안나’가 있었읍니다. 누가복음 2:37에 의하면,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거룩한 봉사를 드리, 신세]”었읍니다. 그 여자는 성전에서의 모든 대중적인 봉사에 꾸준하고 정기적이었읍니다. 모든 ‘유대’인이 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성전에 자주 올 수는 없었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어디에 살든지 ‘바울’의 말대로 ‘밤낮으로 봉사를 드릴’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실제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들은 율법 언약과 그 법에 열심을 나타내고, 성전 봉사를 위해 소득의 10분의 1을 바치고,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아침 저녁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회당에 정기적으로 참석함으로써 봉사를 드렸읍니다.a

21, 22. 오늘날의 “거룩한 봉사”는 왜 율법 언약과 그의 희생 제사를 중심으로 하지 않습니까?

21 오늘날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봉사”는 그러한 율법 언약과 그의 희생을 중심으로 하고 있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그 모든 것은 장차 올 더 큰 것의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히브리 8:5) 그리고 히브리서 9:9, 10에서 그는 말하기를, 장막에서 바친 그러한 희생 제사가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고 하였읍니다.—빌립보 3:3 비교.

22 “개혁할 때”는 그리스도 예수와 더불어 왔읍니다. 그분은 율법의 “그림자”들을 성취하셨읍니다. (히브리 10:1-4)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반복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희생물로 자기 생명을 바치셨읍니다. 그리고 사도가 히브리 9:14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거룩한 봉사를 드리게, 신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 “거룩한 봉사”를 위한 모형

23. 많은 ‘유대’인들이 밤낮으로 드린 “거룩한 봉사”는 왜 ‘예루살렘’이 멸망되던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가져다 주지 못하였읍니까?

23 ‘바울’ 시대에 그 많은 ‘유대’인들이 밤낮으로 드린 봉사는 하나님의 보호를 가져다 주지 못하였으며, 제 1세기에 ‘예루살렘’에 닥친 무서운 환난 곧 하나님의 아들이 예언한 환난 기간에 살아 남게 해 주지 못하였읍니다. 왜 그러하였읍니까? ‘바울’은 그들에 관하여 말하기를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읍니다. (로마 10:2)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성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로 말미암아 장래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봉사의 표준을 정하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어서 마음이 주요 관건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시와 지도에 대해 마음을 민감하게 하지 않았읍니다. (신명 10:12-14, 16; 마태 15:8) 그 때문에 그들이 당하였던 중대한 결과를 우리가 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가 가납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 지금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배울 필요가 있읍니다.

24, 25. (ㄱ)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어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거룩한 봉사”의 표준을 세우셨읍니까? (ㄴ) 어떤 방법으로 그분은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셨읍니까?

2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지상에 오신 것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고 하셨읍니다. (요한 18:37) 예수께서는 힘차게 진리를 증거하셨으며, 생애의 마지막 3년 반 동안에는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열심히 선포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이 진리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읍니다. 그분은 그에 따라 생활해야 하였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자신에 대해 예언된 모든 것들을 실천하심으로써, 그리고 사람들이 아버지의 길과 표준을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생활을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였읍니다. (요한 1:14, 18) 그분은 자기의 전체 행실을 주의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모독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셨읍니다.—마태 6:9.

25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와 같이, 그 당시 사람들에 대해 진정한 동정심을 가지셨읍니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고 하였읍니다. (마태 9:36) 그분은 왕국의 좋은 소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은 연설만 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인간적 친절을 베푸셨읍니다. 연설을 들으러 몰려온 큰 군중에게 연설을 하신 다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때에 그분은 기적으로 그들에게 음식을 먹이셨읍니다. (마가 8:2, 3)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자기를 고치실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지고 말하였을 때에, 예수께서는 “내가 원하노[라]”고 말씀하시고 즉시 고쳐 주셨읍니다.—마가 1:40, 41.

26. 예수께서는 주로 어떠한 동기에서 그러한 인도적 행동을 하셨읍니까?

26 예수께서는 왜 사람들의 고통을 풀어 주는 그런 일을 하셨읍니까? 단순히 그분이 인도주의자이거나 박애주의자이기 때문이었읍니까? 아닙니다. 이러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선행을 하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 좋은 소식이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도록 굳은 기초를 제시하기 위해서였읍니다. 그분은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대표자라는 증거로서 자신의 말씀만이 아니라 자기 행위도 지적하셨읍니다. 만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특성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 받아 들일 수 있었겠읍니까?—요한 10:37, 38.

27. 이 “거룩한 봉사”의 특권을 보배로 여긴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결심을 해야 합니까?

27 만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가 가납되려면 우리는 오늘날 예수의 본을 따라야만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이러한 방법으로 사용할 때에 오게 되는 커다란 유익을 깨닫고 우리는 꾸준히 확고함을 유지하고 어떠한 난관이나 박해를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원해 주신 사실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기도를 들어주신 바와 같이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심으로써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거룩한 봉사를 드리게, 신세]”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누가 1:74, 75.

[각주]

a 사도행전 26:7에 나오는 ‘바울’의 말에 대해 「설교자 주해서」라는 책에서는, “섬김(봉사함, ‘라트레우온’); 숭배, 기도, 희생 제사 등등으로 봉사함”이라고 설명하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