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하여 배운 순종으로 말미암은 축복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완전하게, 신세]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의 되시[니라].”—히브리 5:8, 9.
1. 인내는 왜 흔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며, 인내는 어떠한 일들과 관련되어 있읍니까?
초인간적 인내의 시험! 신문에 이러한 표제가 실린다면 즉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화제거리가 될 만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인내의 질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과 관련이 있는 것같이, 그들 자신은 그러한 시험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 것인가를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그 기사 내용을 읽고자 할 것입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등산이나, ‘마라돈’, 수영과 같은 인내의 엄격한 시험을 기꺼이 겪고자 합니다. 이러한 인내의 시험들은 다만 중단하지 않고 계속적인 활동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압력과 어려움 혹은 고난 아래서도 굴복하거나 단념하는 일이 없이, 끊임 없이 확고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내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을성과 꾸준함, 전력, 꿋꿋함, 담대함을 필요로 하는 순전한 성품을 기대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위에서 말한 경우에는 직접적인 동기가 경쟁과 성취감으로서의 자존심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나 인내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회복될 가망이 없이 오랫 동안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간호하는 일이나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사람과 몇해씩 사는 일, 이러한 것들이나 이와 비슷한 환경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상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때로는 전혀 무시되고 또는 아무도 그러한 인내를 알아 주지 않고 지나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2. 성서는 어떠한 특별한 인내의 본에 우리의 주의를 이끕니까?
2 이제 우리는 초인간적 인내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독특한 경우에 당신의 관심을 이끌고자 합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써 당신도 이 시험에 관계를 갖도록 초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사실상 우리 모두는 각기 관련되어 있읍니다. 이 경우는 이 시험이 다른 시험의 경우와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현저한 특징과 환경 때문에 독특합니다. 아마 당신은 이미 추측했을지 모르지만 이 경우는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의 경우입니다. 그에 관한 기록은 이러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완전하게, 신세]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시[니라].” (히브리 5:8, 9) 그러나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시험을 받으셨는지 우리가 자세한 것을 고려하기 전에 우리에게 격려가 되게 하기 위하여 그가 인내한 직접적인 결과로 얻게 된 얼마의 축복들을 간단히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3. 예수께서 인내로 말미암아 어떠한 축복들을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간단히 말해 보십시오.
3 우선 ‘바울’은 이러한 축복들 중의 세 가지를 즉각적으로 언급합니다. (1) 예수는 이 시험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의미로 “완전하게” 되셨으며, (2) 그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도록 인정받으셨으며, (3)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가지시게 되었읍니다. (히브리 5:9, 10) 이 마지막 축복을 위하여 예수께서 자격을 가지시게 된 것은 (4) 그가 또한 ‘멜기세덱’과 같은 “왕”으로서의 자격도 가지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축복들 외에 우리는 또한 (5) 예수께서 “새 언약의 중보”로 임명되셨으며, 또한 (6)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으로 높이 올리움을 받으셨음을 추가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7)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집을 “맡은 아들로” 머리가 되셨읍니다. 이제 우리가 어두운 면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것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상관하지 아니하시고 형주를 견디셨”다는 기록을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브리 7:1, 2; 9:15; 3:6; 12:2, 신세.
4. 히브리 7:26을 고려할 때 히브리 5:8, 9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4 우리의 관심을 다시 히브리 5:8, 9에 있는 사도의 영감 받은 말씀으로 돌려 봅시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사용한 표현들이 얼른 생각하기에 이상한 것 같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같이 느껴집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아들로서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신 분인데 어떻게 그가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셨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히브리 7:26) 그의 경우에 그러한 것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었읍니까? 그는 항상 순종적이었으며, 항상 완전하시지 않았읍니까? 이러한 주된 질문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인식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전체 문제를 ‘바울’의 눈을 통하여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특히 ‘바울’은 여호와의 영으로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5. 히브리 1장에서 ‘바울’이 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지지를 받고 있읍니까?
5 ‘바울’이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논증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갔는지 살펴 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입니다. 또한 그가 편지 서두에서 천사를 자주 언급한 사실도 재미있읍니다. 우선 첫째로, 그가 주제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높은 지위로 독특하게 올려지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나셨느니라].” (히브리 1:3, 4)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지셨음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성귀가 「히브리어 성경」으로부터 인용되었읍니다. 그리고 그가 높여지신 근본적 이유를 ‘바울’이 시편 45편 7절을 인용함으로써 명백히 하였읍니다. “네[아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료들[‘이스라엘’ 왕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히브리 1:9) 우리는 이 기본적 원칙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어떠한 시험을 받든지 이 원칙을 따른다면 우리도 여호와의 승인과 축복으로 말미암아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6. (ㄱ) 히브리 2:1-4에서 그 논증은 어떻게 계속되며, 어떠한 책임을 알려 줍니까? (ㄴ) 히브리 2:5-9에서 이 논증은 어떻게 발전해 나갑니까?
6 예수께서 높이 올리우심을 명심함으로써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천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이 같이 큰 구원”의 소식에 대하여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신세)다고 한 ‘바울’의 말의 힘을 더 잘 인식할 수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하늘의 희망을 가지고 있든지 그의 왕국 통치 아래 있는 땅의 희망을 가지고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있게 된 구원의 기회를 등한히 여긴다면 그러한 과분하신 친절의 독특한 마련을 일축함으로 인한 무서운 “공의의 보응”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읍니까? (히브리 2:1-4, 신세 참조)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목적이 그의 왕국에서 만물이 예외 없이 “천사가 아니라” 예수이신 “인자”의 발 아래 굴복하게 하시는 것임을 설명하면서 시편 8편을 인용하므로 이 논증을 확대시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한 때 즉 그가 지상에 오셨을 때에 “조금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읍니다. 그 목적과 결과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 대답은 이러합니다.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브리 2:5-9) 그의 논증은 구원을 위한 이 마련이 너무나 광범위하므로 인류 가족 중에 아무도 빠지는 사람이 없음을 알려 줍니다. 그 구원이 자동적이거나 강요에 의하여 오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구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련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당신은 이 마련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도 이 마련에 관계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결코 떠내려가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겠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히브리 2:1; 3:12.
7. 우리는 히브리 2:10에 언급된 “많은 아들”이 누구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7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좋은 면 뿐이었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그와 같이 높은 지위로 올리우심을 받기에 합당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다음의 말은 어떠합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수석 대행자, 신세]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완전케, 신세]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브리 2:10) 이들 “많은 아들”이란 누구입니까? 그들은 특별한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천사들입니까? 그와는 반대로 이 대답의 실마리를 16절(난외주)에서 찾을 수 있읍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오 오직 ‘아브라함’의 씨를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네, 여기 대답이 있군요. 그들은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이 반열을 식별하기 위하여 우리는 갈라디아 3:16, 26, 29에 있는 사도의 설명을 참조하면 됩니다. 거기에는 약속된 씨가 많은 씨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 즉 “곧 그리스도”라고 말한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난외주) 그리하여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가 주로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확대적 성취에 있어서 하늘에 희망을 가진 “적은 무리”인 그리스도인 회중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가 12:32) 이들은 고난을 통하여 배운 순종으로 말미암은 약속된 특별한 축복들을 광범위하게 그들의 머리와 함께 누리게 됩니다. 당신은 아마 제한된 이 수에 들어 있지 않을지 모르지만 만일 당신이 양같은 사람이라면 당신도 관련되어 있읍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피겠지만 이 “마지막 때”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양들은 비슷한 동기를 가지고 비슷한 행로를 걸으며 모두 똑 같이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워야 하며, 특히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인 오늘날 그러합니다.—디모데 후 3:1, 신세.
고난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신 수석 대행자
8. (ㄱ) 예수께서는 첫째로 대제사장으로서 어떠한 마련을 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더 도움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어떻게 마련되었읍니까?
8 “주[수석 대행자]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완전케, 신세] 하심”이 왜 마땅하며, 또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를 인식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질문과 직접 관련된 이 편지의 전후 문맥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표현을 연관시켜 보기를 권합니다. 우선, 히브리 2:17, 18을 고려해 보기로 하지요.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읍니다. 이들 하나님의 “많은 아들” 즉 예수의 “형제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받아들이실 만하고 의로운 신분을 갖도록 만족할 만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선 이렇게 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양”과 같은 이들 모두는 인간 가족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로서 많은 불완전과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가 다음 귀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비로운 대제사장으로부터 더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그가 시험을 받으실 때 친히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는 시험을 받는 자들을 도우러 오실 수 있읍니다.” (신세) 이제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견디신 모든 고난의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읍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말하자면, 먼 곳에서 도움을 마련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가 필요할 때에 ‘우리를 도우러 오실 수 있읍니다.’ 그는 비록 하나님의 우편에 높이 올리움을 받으셨지만 결코 미칠 수 없는 너무나 먼 곳에 계시거나 비인격자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친밀감을 가질 수 있으며 얼마나 위안이 됩니까!
9. (ㄱ) 예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또 어떤 범위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읍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유익을 얻습니까?
9 다음에 우리는 히브리 4:15, 16을 고려해 봅시다. 거기에서 우리는 더 많은 위안과 격려를 발견할 수 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죄가 없으면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셨읍니다.” (새번역) 이 사실은 우리의 대제사장을 우리에게 얼마나 가깝게 해 줍니까? 그는 다만 우리의 제한된 것을 동정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점까지 동정하실 수 있읍니다. 그는 완전한 순종의 길에서 넘어지게 하거나 떠나가게 하는 많은 압력이 어떠한가를 잘 아십니다. 그러한 압력은 공포심을 갖게 하는 반대로 말미암아 오거나 악한 욕망을 일으키는 유혹으로 말미암아 옵니다. 그는 결코 넘어지거나 조금도 떠내려가지 않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셨읍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과 같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신 분이지만 그들과 같이 그도 “무지하고 유혹에 빠진 자들을 너그러히 대할 수 있”는 분이심을 알게 된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입니까! (히브리 5:2, 3, 새번역) 이 사실은 우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기록과 같이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비함을 받고 은혜를 얻어 때를 따라 주시는 도움을 받기 위하여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새번역) 히브리 2:18과 4:16에 있는 이 두 가지 말씀은 각각 그 관점에 따라 참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즉시 와서 도움을 베푸는 한편, 우리는 항상 때를 따라 친절하게 도와 주심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과분하신 친절의 하나님의 보좌에 자유로이 가까이 갈 것을 느낄 수 있읍니다.
10. (ㄱ) 예수의 고난이 매우 사실이었음을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ㄴ) 그는 이 최고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어떠한 보상을 받으셨읍니까?
10 지금까지 ‘바울’의 논증의 골자를 살펴보았고 그 논증의 훌륭한 점들을 인식하였으므로 다시 한번 히브리 5:8-10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말을 찾아 보도록 합시다. 바로 앞에서 그는 예수의 고난이 매우 사실이었음을 즉 그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하나님]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초인간적인 시험이었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본론을 말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시[니라].” 계속해서 이러한 고통스러운 시련이 주어진 첫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는 이제 온전히 자격을 구비하게 되었읍니다.
11. 히브리 5:9에서 순종이 어떻게 강조되었으며, 또한 예수께서 사명을 그의 추종자들에게 주셨을 때 순종을 어떻게 강조하셨읍니까?
11 순종에 강조를 둔 것을 유의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자신의 순종을 배우고 그것을 증명해야 하셨을 뿐 아니라, 자기를 다만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만 구원의 책임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험 아래서 순종을 배운 사람들 즉 고난을 당한 사람들만이 순종으로 말미암은 축복인 영원한 구원을 얻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부활을 받으신 후에 온전히 자격을 구비하셨을 때에 어떻게 이 사실을 강력하게 지지하셨는가를 유의하십시오. 그의 추종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읍니다.” 그러므르 예수께서는 순종을 명령하실 권세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다음에 그는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순종하도록] 가르치십시오.” 그는 요청하거나 제안하신 것이 아니라 명령하셨읍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대제사장과 같이, 자비와 성령의 다른 열매들을 가지고 균형잡히게 이 일을 해야 하지만,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가르칠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나, 예수에 대한 순종을 옆으로 미루어 놓을 수 없읍니다. 이러한 명령은 우리를 무서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나큰 지원을 증명해 줍니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보십시오! 내가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까지 항상 [모든 권세로써 여러분을 후원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있겠읍니다”라고 덧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이상 더 무엇을 원하겠읍니까?—마태 28:18-20, 신세.
12. (ㄱ) 어떠한 기본적 원칙이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까? (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순종의 시험은 얼마나 철저합니까?
12 그러면 이제 다음과 같은 주된 질문을 고려하도록 합시다. 즉 예수께서 어떻게 순종함을 배우셨는가?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어떻게 완전하게 되셨는가? 순종이란 문제에는 다만 예수와 ‘아브라함’의 씨를 형성하는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모든 지성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적용되는 기본적 원칙 즉 진리가 관련됩니다. 이 위대한 진리는 그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여호와의 정당하고 의로운 우주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여호와께서 어떠한 시험을 마련하시거나 허락하시든지 그 시험 아래서 순종함을 증명함으로써 이 사실을 온전히 인정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첫 시험이 ‘에덴’에서 있었읍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후에 오게 됩니다. (계시 20:7-10)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성서는 이러한 시험을 가볍게 다룰 수 없음을 알려 줍니다. 즉 아무도 자기가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을 가질 수 없음을 알려 줍니다. 그 시험은 실제적이며 여호와의 발표하신 뜻에 순종하느냐 순종치 않느냐에 대한 마음의 태도를 들어 냅니다. 당신은 당신을 주관하실 즉 당신의 마음과 정신과 온 생명을 주관하실 여호와의 주권을 아무런 제한 없이 기꺼이 동의합니까?
13. 완전이란 말이 성서에서나 일상 용어에서 어떻게 두가지 의미로 사용됩니까?
13 순종에 관하여 더 토론하기 전에 먼저 완전이라는 문제를 고려해 봅시다. 이것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성서에서나 일상 용어에서 완전이라는 말이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 우리가 어떤 것이 완전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때때로 전혀 결함이 없는 것, 결코 잘못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발전된 것이며 완성된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 의미로서의 완전입니다. 주로 여호와의 경우에 있어서 이러합니다. 성서는 여호와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반석, 그의 활동은 완전하시다. 그의 모든 길은 공평하시기 때문이다. 충실하신 하나님, 그에게는 불공평이 없으시며 그는 의로우시고 곧으시다.” (신명 32:4, 신세) (2) 그러나 완전이란 말은 흔히 상대적 혹은 제한된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어떤 면까지 그리고 그 이상은 가지 않는 제한된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인공 ‘다이아몬드’는 전기 송곳으로 사용하기에는 완전하지만, 유의하십시오, 약혼 반지로 사용하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14. (ㄱ) ‘하와’는 어떻게 완전의 표지를 빗나갔으면, 어떠한 질문을 일으키게 하였읍니까? (ㄴ) 사람에게는 어떠한 특별한 성품과 능력이 주어져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더욱 분명하게 알려 줍니까?
14 이와 관련해서 순종이라는 문제가 관련된 ‘아담’과 ‘하와’의 성서의 본을 고려해 봅시다. ‘아담’은 그 자신의 면으로 볼 때 상대적 의미로서 완전하였읍니다. 즉 이 땅과 그의 직계 가족에 대한 창조주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머리 직분을 행사하는데 완전히 합당하였읍니다. 또한 여자도 그의 면에 있어서 어머니로서 그의 남편의 이상적인 배우자로서 완전히 합당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너무나 빨리 잘못된 길로 갔읍니다. 그 여자는 범죄 즉 완전의 표지를 빗나갔읍니다. 어떻게? 그 여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임명을 넘어섰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남편에게 주신 일을 자기가 떠맡으려고 하였고 자기 스스로 머리인 체하였읍니다. 그 여자는 자기 남편과 자기 창조주에게 불순종하였읍니다. 그러나 아직도 오래 내려온 질문이 그대로 남아 있읍니다. 즉 그들이 참으로 완전하였다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빨리 죄를 범할 수 있읍니까? 그들이 각각 완전한 것을 즐긴 것 즉 완전한 자유 의사, 생각하고 추리할 수 있는 능력,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선택권,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결정할 수 있는 놀라운 성품을 즐기고 있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완전한 선택의 자유를 가졌던 것입니다. 사실상 만일 그들이 순종 혹은 불순종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불완전하였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만 순종하는 남녀로 이 땅을 채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당한 주권을 인정함으로써 그에게 자진적이고 깊이 뿌리 박고 있는 헌신과 충성을 보이는 시험을 통과한 남녀로 채우시는 것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우리에게서 자동적이고 기계적이고 어쩔 수 없는 강요적인 숭배와 봉사를 받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가 원하시는 것은 추리해서 자진적으로 사랑을 가진 마음으로부터 넘쳐 우러나오는 봉사입니다.
15. (ㄱ) 성서는 죄의 작용을 그 시초부터 어떻게 설명합니까? (ㄴ) 선택의 자유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15 그러므로 인간이 완전성으로부터 타락하게 된 것은 그의 정신에 악한 생각을 품은 결과입니다. 처음에 ‘하와’와 다음에 ‘아담’은 그들의 자유 선택권을 가지고 악한 것을 오랫 동안 생각하였으며 악한 것이 뿌리 박혀 그들로 악한 행동을 하도록 움직이게 하였읍니다. 이것은 바로 성서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즉 ‘하와’의 경우에서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은 아닐지 모르나 자기 자신의 욕심이 되도록 선택한 것]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 낳느니라.” (야고보 1:14, 15) 이 원칙은 완전한 사람이나 불완전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다 적용됩니다. 만일 우리가 완전한 사람은 잘못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또한 불완전한 사람은 올바른 길을 특히 압력 아래서는 계속 걸어갈 수 없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올바른 길을 고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읍니다. 심지어 그것이 고난을 의미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쁜 길을 추구하며 나쁜 길로 빠짐에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라 ··· 내가 생명과 사망[을] ··· 네 앞에 두었은즉 ··· 택하”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앞에 선택의 길이 놓여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명 30:15, 19) 불완전하다고 그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완전성과 순종에 관하여 명백한 이해를 갖는 것은 우리 모든 사람 앞에 놓여져 있는 책임과 특권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우리를 도와 주며 격려해 줍니다. 우리가 대단히 불완전하고 죄와 불완전이 6천년간 허락된 후에도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이 정신과 의지의 자유는 귀중한 선물이며 그것은 큰 책임을 수반합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하여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6. (ㄱ)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그리고 그 전에 어떻게 상대적 의미로서 완전하셨읍니까? (ㄴ) 그에게는 어떠한 높은 직책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으며, 어떠한 성품이 요구되었읍니까?
16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의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그에게 있어서도 완전성이 어떻게 상대적이고 제한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지상에서 출생하였을 때 그는 완전한 아기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아기에 불과하였읍니다. 그가 열두살 때 그는 성전에서 선생들에게 질문을 하였읍니다. 그때 그는 완전한 소년이었지만 역시 소년에 불과하였읍니다. (누가 2:41-52) 이와 비슷하게 그의 인간 전 존재에 있어서도 그는 하나님의 “우두머리 일군”으로서 완전하셨읍니다. (잠언 8:30, 신세)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훨씬 더 높은 지위를 주실 것을 생각하셨읍니다. 그 지위를 받으려면 증명된 완전성과 신뢰감 그리고 장성이 최상급으로 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왕과 대제사장이라는 이 높은 직책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은 이 높은 직책을 위하여 조그만 실패의 가능성도 없이 완전하도록 필요한 훈련과 교육, 필요한 징계와 시험의 단계를 밟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17.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그의 순종은 어떻게 잔인하게 시험을 받았읍니까?
17 순종이란 문제가 또한 대두됩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에 항상 순종적이셨음은 사실이지만 그의 순종은 결코 엄격한 시험을 받은 일이 없었읍니다. 영물과 다투실 때 즉 ‘다니엘’ 시대에 ‘바사’의 군왕과 다투셨고, 일찌기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사단’ 자신과 다투실 때 그는 그러한 반대자들에게 복종하지 않으셨읍니다. (다니엘 10:13; 유다 9) 그는 순종적이 되기 위하여 비싼 값을 치룰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가 지상에 오셔서 그의 전도 봉사 즉 그의 야외 봉사를 시작하셨을 때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읍니다. 그렇지 않았읍니까? ‘요단’으로부터 ‘갈보리’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러 가지 고난이 관련된 연속적 시험을 당하셨읍니다. 광야에서 마귀와 직접 대결하신 후 마침내 그를 잡을 때까지 계속 그를 쫓던 적의를 가진 종교적 압력 단체가 있었읍니다. 그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맷돌짝을 통하는 것과 같은 쓰라린 경험을 하셨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엄한 시련이었읍니다. 마침내 그는 이들 압력 단체와 ‘로마’의 압력 단체를 비유할 수 있는 아래 위 맷돌짝을 통하여 부숴져 죽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는 영으로 부숴지거나 깨지지 않았으며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께 대한 충성과 완전한 순종에 있어서도 그러하였읍니다.—마태 4:1-11; 히브리 5:7.
18. 예수께서 당하시고 견디신 모든 고난으로부터 예수 자신은 어떠한 축복을 받으셨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유익이 되었읍니까?
18 예수는 항상 믿음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믿음은 단련된 것입니다. 그는 항상 충성과 일관성을 표시하는데 있어서 강철과 같이 참되셨읍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조절된, 불로써 조절된 강철이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엄격한 역경과 고난 밑에서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실제 체험을 통하여 배우시는 것이 왜 필요한가를 더 온전히 인식할 수 있읍니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될 독특한 지위가 그의 앞에 놓여져 있으며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게 될 것을 고려할 때 그러합니다. 부가적으로 우리는 또한 그러한 행로를 충실히 견딤으로써 그는 이전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더 깊은 의미로써 완전하게 되셨읍니다. 그는 이제 우리를 도우러 오시고 때를 따라 도움을 베푸실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온전히 가지게 되셨읍니다. 그리하여 먼저 그와 함께 하늘의 보좌에 참여하게 될 많은 순종하는 아들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가 위하여 죽음을 맛보신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근본적인 구원을 위한 책임을 가지시게 되셨읍니다. 이들도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충실한 아들에게 친절하게 주신 “높은 지위”로 말미암아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어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빌립보 2:5-11.
19. 이 시험이 예수에게 강제적으로 온 것이 아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읍니까?
19 예수에 관하여 고려할 가치가 있는 점이 또 한가지 있읍니다. 이 시험은 그에게 강제적으로 온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그 당시에 행해지는 모든 거짓 종교와 전통을 폭로하는 것이 적들의 불같은 진노를 살 것임을 잘 아시면서도 그러한 일을 행하는 것을 포함한 전도 봉사를 기꺼이 자의적으로 선택하셨읍니다. 그의 정신과 결의는 다음과 같이 예언된 바와 같았읍니다. “내가 믿는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난을 당하였도다.” 예수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고 그가 그 왕국의 왕으로서 취임될 분임을 알고 계셨읍니다. 이 믿음을 근거로 해서 그는 “말하”셨고 모든 경우에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셨읍니다. 그 결과로 그는 “큰 곤난을 당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스올, 신세]의 고통이 내게 미”쳤다고 말하셨으며, 동시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말할 수 있으셨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가장 충성스러운 자였으며 그의 충성은 “성도[충성스러운 자들, 신세]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기록된 것을 생각할 때 여호와께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시 116:3, 10-15; 2:6; 요한 18:37.
20.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예수께서 하신 일을 인식하는 외에, 어떠한 다른 관점으로 우리는 예수를 고려하고 예리한 관심을 기우려야 합니까?
20 이미 우리가 알게 된 바와 같이, 예수께서 체험을 통하여 순종하심을 배우신 경험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떤 면으로 따라야 할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다. 이것은 하늘 보좌에서 예수와 함께 앉을 희망을 가진 사람들 뿐 아니라 회복된 지상 낙원에서 살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당신과 함께 더 온전히 논의하기를 원하며 당신의 관심을 계속 집중하실 것을 권합니다. 당신도 틀림없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즉 예수에게 있어서는 그가 완전하셨으므로 그럴지 모른다. 나는 나의 불완전성을 너무나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대속의 희생의 가치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올바른 추리입니까? 그것은 올바른 생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