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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이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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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이행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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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파70 10/15 463-468면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이행함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예레미야 7:23.

1. (ㄱ) 순종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오늘날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ㄴ)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 20세기 세계에서 순종을 찾아보기란 진귀한 보석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정부들은 백성들에게 이 바람직한 성품을 가져다 주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읍니다. 법 시행관들은 공포나 강제가 순종하는 시민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종교 조직도 그들의 신도들 가운데 만연하고 있는 불순종을 경험하고 있읍니다. 지리적, 재정적, 사회적 차이를 막론하고, 가정은 긴장이 압도하여 파탄 지경에까지 미친 곳, 젊은이들은 연로자들을 멸시하는 곳, 사랑은 점점 사라지는 곳이 되고 있읍니다. 이러한 위험한 지경에서 순종이라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남편에 대한 복종이라는 문제는 여자들을 불안하게 해 주었읍니다. 그것은 순종하는 아내들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문제는 인간 이론에 밀려 나가 버렸읍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게 할 정도로 매우 심각합니다.

2, 3. 시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불순종하는 인간들에게 무슨 결과가 왔으며, 현재 상태는 어떠합니까?

2 불순종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시초와 거의 동시에 이 땅에 존재해 왔읍니다. 우리는 로마 5:19에서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명백한 기록을 볼 수 있읍니다. ‘아담’이 불순종한 때부터 세월의 흐름을 따라 인류 사이에서 불순종이 어찌나 성장해 왔던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로서 나타나게 되었읍니다. 성서는 히브리 11장에서 이러한 사람들 중 얼마를 언급하고 있읍니다. 그중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으며 8절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였다고 말합니다. 순종적인 사람으로 탁월하였던 예수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때가 올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마태 24:12) 우리가 바로 그러한 때에 깊숙히 들어와 있음이 분명합니다.

3 근 6천년간 불순종이 증가해왔고 그것은 땅의 물과 공기가 오염된 것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왔읍니다. 조심성 없는 인간들은 계속 불순물들을 물과 공기에 퍼부으면서 그들은 또한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품들이 더러워지는 것을 불평하고 있읍니다. 일찌기 인간이 반항한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깨끗한 숭배를 소홀히 해 왔고 유전된 죄의 경향과 자기의 독립적인 길로 가려는 고의적 욕망으로 말미암아 불순종을 조장해 왔읍니다.

4. (ㄱ) 순종의 정의를 말씀하십시오. (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에 두려움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읍니까?

4 순종이라는 말을 사전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따르는 행위 혹은 사실, 혹은 따르고 있는 상태”, 따르다라는 말은 “다스림을 받다 혹은 지배받다, 지도, 운영 등을 따르다. 예를 들면 이성에 따르다; 중력의 법칙에 따르다.” 성서는 그 말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혹은,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 12:13)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서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생각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력의 법칙에 순종하며, 우리의 짧은 생애에 있어서 매일같이 이 힘에 대한 두려운 존경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아무에게서도 이 법칙에 대하여 불평하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법칙은 매우 강직하고 강제적입니다. 우리가 중력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바로 시편 112:1에 기록된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즉 두려워)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5. 사사 ‘사무엘’은 순종을 어떻게 강조하였읍니까?

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는 사사 ‘사무엘’로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무엘 상 15:22, 23)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순종이 요구되었읍니다. (신명 10:12, 13) 예수에게도 그것이 요구되었읍니다. (히브리 5:8) 사도들도 순종하였읍니다. (사도 5:29) 하나님의 수만명의 충성스러운 종들은 온갖 환경 아래서 하나님께 순종하였읍니다.

6. 순종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6 순종은 어디로부터 솟아납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윗 사람이 명령하기 때문에 그대로 하는 어린이의 경우와 같습니까? 순종이란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태도입니까? 모든 사람들은 죄 가운데 출생하였는데도 현 “불법”의 세대에서 실제로 순종할 수 있읍니까? (마태 24:12) 하나님의 말씀은 담대함을 갖게 하는 여러 가지 충고와 함께 우리에게 대답해 줍니다.

7. (ㄱ) ‘바울’이 로마 2:8-11에서 논한 문제를 설명하십시오. (ㄴ) 로마 6:17은 경건한 순종이 어디서 온다고 우리에게 말해 줍니까?

7 로마서 5장 6절을 열어 보십시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순종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였읍니다. 순종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어져서 오랫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켰던 율법에 대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돕는 마련 즉 여호와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제정하신 대속 희생의 마련을 통하여 있게 된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에 대한 것입니까? 오늘날 각자는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현 사물의 제도의 불법의 무리들과 함께 불순종의 길을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옛 율법 언약과 그의 새 언약 중의 하나를 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문제입니다. 로마 2:8-11에 있는 이 명백한 기록을 살펴 보십시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은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면 여호와께 순종하는 동기, 그것도 기꺼이 그렇게 하게 하는 동기를 사람에게 갖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로마 6:17은 우리를 이해의 방향으로 인도해 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였느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순종

8.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왜 공포에 떠는 순종이 아닙니까?

8 그러므로 순종은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순종은 법칙이나 규칙을 지키는 강제성을 띈 것이 아닙니다. 시편 112:1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시편 119:33, 34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와 도를 네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있는 지혜로 마음을 채우고 그것을 양식과 같이 계속 취한다면 반드시 성장이 옵니다. 그러한 지식은 올바른 마음에 인식을 채워주고 결과적으로 기꺼이 순종하게 합니다.

9. (ㄱ) 우리가 지켜야 할 물리적 법칙에 대하여 설명하십시오. (ㄴ) 그러한 법칙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9 화학계에서 어떠한 법칙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균형잡히고도 불변한 방법으로 작용하며, 인류는 그 법칙을 인식합니다. 산소는 쇠에 녹이 슬게 하며 부러진 나무를 썩게 합니다. 산소는 또한 호흡하는데 중요합니다. 식물은 산소를 내뿜고 사람과 동물은 그것을 호흡합니다. 그들은 산소를 공기 중에서 얻고, 물고기들은 물이 공기 중에서 흡수한 산소나 물에서 자란 푸른 식물이 내뿜은 산소를 취합니다. 호흡을 통하여 인체에 들어온 산소는 피의 ‘헤모글로빈’에 의해서 전신으로 운반됩니다. 조직은 서서히 산화(酸化)시켜 열이 발생하게 하고 몸을 더웁게 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은 여호와께서 제정하신 이래 그대로 계속되어 왔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알아내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알아서 이 법칙에 협조하기 위하여 먼저 조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법칙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이러한 법칙은 사람에게 알맞도록 변경되지 않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너무 게으르거나 완고하기 때문에 순응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물의 고정된 운영법칙에 순응하기 위하여 변화합니다. 이러한 운영 법칙에 순종하는 것은 사실상 주는 자나 받는 자에게 똑같이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불리한 것이 아니라 그 운영 목적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리한 것입니다.

10.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무엇이 선행하는 것이 이치적이며, 어디에서 필요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읍니까?

10 이제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그분은 자기를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해 주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창조물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면 곧 그 사실이 입증됩니다. 여러 가지 성품과 특출한 지성을 가진 분만이 지상의 지식의 선반에 전시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읍니다. 미리 기록된 역사인 성서 예언도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줍니다. 창조물 어디를 보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이사야 45:18; 로마 1:20; 시 19:1-4; 이사야 40:26.

11. 각자는 성서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까?

11 성서는 여호와의 말씀임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정확한 통신임을 확인할 책임은 각자에게 있읍니다. 성서가 모순된다는 근거없는 헛소리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계속 일치 조화하고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고 있읍니다. 우리의 성서를 발견된 성서 사본들과 성서에 나오는 지역의 특징들, 고고학적 발견 및 고기물(古器物)들이 증명하는 것들과 비교해 보면 비교해 볼수록 그 모든 것은 성서 기록의 진실성을 더욱 증명해 줍니다. (「모든 성경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익하다」[영문] 331면 참조)

12, 13. ‘에스라’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어떻게 지적합니까? 그 결과를 설명하십시오.

12 성서에는 여호와의 원하시는 것에 순종한 본들이 있읍니다. 「에스라서」는 성전을 재건하고 성읍을 수리하기 위하여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북귀한 일에 대한 기록 가운데서 여러 번 순종을 강조하였읍니다. 에스라 7장 10절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그는 인간의 지혜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에 충실히 순종하고 그의 보호를 바란 사람이었읍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긴 여행을 출발할 때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에스라 8:22.

13 여호와께서는 과연 ‘에스라’와 ‘예루살렘’으로 보물을 운반하는 그의 적은 무리를 보호하셨읍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에스라 8:31)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에스라’는 금, 은과 성전 기물들을 제사장들에게 주고 왕의 법들을 그의 방백들에게 주었읍니다.

14, 15.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문제를 처리한 것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14 그러자 ‘에스라’는 이전에 돌아온 인도자들을 포함해서 이제 ‘예루살렘’에서 산지 69년이나 된 포로들이 여호와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결혼 관계를 맺지 말라고 명령하신 일곱 나라들 중 다섯 나라 사람들과 결혼을 하였던 것입니다. (신명 7:1-4; 에스라 9:1, 2) ‘에스라’는 죄를 깊이 뉘우치는 정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에스라 9:6.

15 이 겸손한 사람은 이제 일이 잘 되어 감으로 여호와로부터 축복을 받을 것을 바랐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에스라 9:8, 10) ‘에스라’는 신속히 행동하여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이 이행될 때까지 그의 생애에서 그 일을 첫째로 두고 그 문제를 깨끗이 하였읍니다.

16. (ㄱ) 순종에 관한 예수의 견해를 설명해보십시오. (ㄴ) 사도들은 이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어떻게 순응하였읍니까?

16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었읍니다. (마태 11:29) 그는 끊임없이 순종적이 되도록 격려하셨읍니다. 그는 말과 행동으로 그렇게 하셨읍니다. 사실 성경은 히브리 5:8, 9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니라].” 몇해 후에 ‘바울’은 사도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순종을 가르쳤는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은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린도 후 10:5, 6.

17.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짐과 같이 느껴야 합니까?

17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읍니까?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느껴집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법칙과 규정으로 보아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하여 법칙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으며, 기록으로 분석하는 현대적 방법의 증가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은 명백하고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는 일을 떠났읍니다. (시 119:11, 12; 로마 6:17) 요한 1서 5:2-4은 그 길을 지적해 주며, 그러나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18, 19. 우리 생애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어떤 나쁜 견해를 가질 수 있읍니까?

18 그러므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데 있어서 우리 생활에서 큰 일은 이 사랑에 근거한 전념이며, 믿음을 영원히 세우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낡은 제도의 때가 매우 짧다거나 다른 불완전한 피조물이 우리를 살피고 있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디도 3:3-6)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순종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함께 일하는데서 기쁨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즐기게 될 것입니다.

19 잠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당신이 갑자기 시계를 쳐다보고 때가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에 조급하게 섬긴다면 이 낡은 제도가 지나가고 천년이 앞에 놓여 있을 때에 무엇을 할 것입니까?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이 항상 집회에 나가라고 하고, 연구하라고 하고, 말씀을 전파하라고 계속 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 사람이 권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마음으로부터 행동해야 할 때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히 시간을 바치고 계속 시간을 내는 것을 염려한다면 당신이 보고를 하지 않게 될 때에는 당신은 어떠할 것입니까? 많은 형제들은 보고가 아니라 믿음을 유지하는데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고 지하에서 일하면서도 여러 해의 박해를 견디어 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그들을 축복하셨읍니다. 당신의 숭배가 사랑에 근거한 전념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밀히 검사해 보도록 하십시오.

20. (ㄱ)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를 균형잡힌 방법으로 인도하는 본과 충고를 발견할 수 있읍니까? (ㄴ)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복잡합니까?

20 초기 그리스도인 시대, 사도 시대로 주의를 돌려봅시다. 이들 충실한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훈련을 받았읍니다. 그 당시에도 시간은 귀중하였읍니다. 그들의 사업이 긴급하였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고 그들은 매우 긴급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서로 사랑을 실천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지 않았읍니다. 그들의 숭배방법은 현대적인 교통, 통신 방법에 의한 매우 복잡한 것이 아니라 매우 단순한 방법이었읍니다. 오늘날의 광포한 제도로부터의 압력이 변경을 가져오게 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우리는 같은 성서를 사용하며, 같은 하나님을 숭배하고, 같은 인도자 그리스도 예수를 따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빠르고 능률적인 기계가 일반화되었고 가지 각색의 명세서에 의하여 지원되고 수백만으로부터 순종이 강요된다고 하여 우리가 사업적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완전한 본이시며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신 길을 세워 놓으셨읍니다.—마태 11:30.

21. 그러면 우리가 주로 염려해야 할 일은 무엇이어야 하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배양할 수 있읍니까?

21 이제 우리의 염려가 사랑에 근거한 전념으로써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라면 우리는 영적 양식을 정규적으로 먹음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튼튼히 유지하고자 열망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우리는 모든 생각을 다해서 이들 새로운 사람들에게 성경적 증거를 알려 줄 것입니다. 발전하며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강해짐에 따라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순종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 4:11, 12) 사람이 사랑에 근거한 전념의 동기를 가져야할 필요성을 ‘바울’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로마 2:6-11) 기계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려면 인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기계를 종으로 볼 것이며, 기계에 필요한 것과 그것에 관련된 규칙들을 이행하기 위하여 잠을 못자면서 돌보아야 할 것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

22, 23. 순종을 위한 올바른 동기는 무엇입니까?

22 이렇게 예를 들어 봅시다. 마차는 교통 수단입니다. 그러나 마차가 자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마차로 어디를 가려면 반드시 말이나 소 기타 마차를 끌거나 밀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이는 마차는 아무런 가치없는 나무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여호와께 대한 사랑에 근거한 전념에 의하여 움직여야 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으로써 즉시 인정됩니다. 우리가 순종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에는 사랑으로써 우리를 끌어 주거나 밀어주는 도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 집회 때마다 혹은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 분야에 항상 어떤 그리스도인 전도인이 끌어주거나 밀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치적인 것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욕망에 의하여 움직여져야 합니다. 우리의 원하는 바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순종이 요구될 때 초조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도에 대한 인식이 우리를 천적 아버지께로 가까이 가게 할 것입니다.

23 시편 112:1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러한 사람은 무활동이나 무관심하게 되지 않고 어떤 환경 하에서나 영원히 여호와를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동기는 사람이 어떠한 압력이나 어떠한 권유를 제공하여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을 통하고 그의 영의 도움으로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24, 25.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인간의 법칙으로부터 자유함으로써 어떠한 유익이 있읍니까?

24 이렇게 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읍니다. 그러한 길은 동료의 근시안적 호불호에 따라 성경적으로 훈련받은 그들의 참다운 성품을 찌그러뜨리는 일이 없이 줏대를 가진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회중을 자연스러운 성품 그대로를 가진 사람들로 다채로움을 갖게 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과 그들의 성품을 좋아하셨읍니다. 마태 19:13, 14의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니라].”

25 오늘날 지구 전역에 걸쳐 살고 있는 각양 각색의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서로 다릅니다. 그들은 습관과 풍속에 있어서 다양하며 그들은 여러 가지 다른 방법과 다른 속도로 일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진리를 배우고 그를 섬길 수 있게 하셨읍니다. 인간이 만든 법칙으로 당신의 형제의 다양한 성품을 막을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인간에게 추종하는 또 다른 증거는 세계를 휩쓰는 일시적 유행을 따르는 일입니다. 이러한 유행은 서로 다른 개성을 없애버립니다. 이 제도의 상업 요소들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행동하게 하여 개성을 죽이게 할 수 있는 그들의 재능을 의지함으로써 재산을 모으고 있읍니다.

26, 27. (ㄱ)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숭배 방법에 있어서 일관성이 있읍니까? 그리고 순종은 하나님의 회중에서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용인합니까? (ㄴ) 이 제목에 대하여 더 고려해야 할 어떠한 점들이 있읍니까?

26 하나님께 순종하면 이러한 위험성이 없읍니다. 이들 전도인들이 사업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비슷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표현, 전념의 깊이, 장성으로 향하여 발전하는 속도, 각자의 재능, 그의 다채로운 배경 및 그가 일하는 배후에 있는 목적은 매우 다양함과 즐거운 교제를 만들어 줍니다.

27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되어 있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각자는 개성에 있어서나 생활에 있어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성서를 기록하는 데 사용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충성과 순종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러한 사람들이 자기를 섬기는 것을 허락하실 뿐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그들을 초대하신다면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로보트’로 만들려고 할 이유가 어디있읍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 전 2:16) 이제 이러한 진리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배우는 전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작용합니까? 그 진리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회중은 어떠한 입장에 있읍니까? 그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관계에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이 사물의 제도의 여러 가지 정부 아래에서 일하는데 차이가 있읍니까? 우리가 다음 기사인 “순종—바람직한 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질문들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464면 삽화]

사사 ‘사무엘’은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은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하였다

[467면 삽화]

참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의 봉사에 활동적이 되도록 끊임없이 권고를 받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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