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를 분별하는 유력한 증거
1.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된 즉시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소망을 마련하셨읍니까?
「에덴」에서 인간이 타락한 바로 직후 부터 하나님께서는 소망있는 예언을 하셨읍니다. 즉 장차 하나님의 원수의 머리를 상할 씨가 올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창세 3:15) 그 씨가 「히브리」어로 「메시야」라고 불리울 것을 알려 주심으로써 그의 약속을 넓히셨으며 고대 충성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나라들이 소망을 둘 분은 바로 이 「메시야」입니다. 이러한 옳은 분 즉 참된 「메시야」에 소망을 두고 그를 의지하는 것은 생사 문제였읍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망이 빗나가서 우리의 구원이 상실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이 참된 「메시야」를 올바로 분별하는 방법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거짓 「메시야」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ㄱ) 우리의 소망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마련을 하셨으며 그 마련은 얼마나 철저합니까? (ㄴ) 우리는 이 기사에서 특히 「메시야」를 분별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문제에 관하여 살펴 볼 것입니까?
2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메시야」를 분별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마련하셨읍니다. 그리스도 이전에 기록된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메시야」로서의 자격을 갖기 위하여 해야 할 일과 그가 성취시켜야 할 일을 수백 가지나 자세하게 기록하였읍니다. 이 사건들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어떠한 사깃군에게 이런 일이 발생된다는 것은 수십억번 중에서 한번도 힘든 일이며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유도하시기 때문에 「메시야」를 분별하는 데 틀림없게 하셨읍니다. 분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즉 족보, 장소, 사건, 사건의 성격, 시기 등이 있읍니다. 이 중에서 시기는 장소나 사건 같은 요소와 연결되어 있읍니다. 이 기사에서 그 문제에 대하여 살펴 보겠읍니다.
3. (ㄱ) 성경이 영감받은 것으로 믿지 않은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떠한 고려를 하게 됩니까? (ㄴ) 이것은 「유대」인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어떻게 하게 합니까?
3 이 문제를 성실히 고려한다면 성경이 영감받은 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 큰 존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살펴 보려고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유대」인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하나님의 예언이 거짓되지 않았고 또 거짓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메시야」의 초림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자기 종교의 입장을 다시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4. 이 예언을 우리에게 한 사람은 누구였읍니까?
4 지금 문제가 되어 있는 예언은 예언자 「다니엘」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훌륭한 입장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가 훌륭한 충성을 지킨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다니엘 9:24-27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5. 다니엘 9:24-27에 있는 예언은 「메시야」를 분별하는 데 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5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 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난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6. (ㄱ) 『70주』에 관하여 결정해야 할 것은 무엇 무엇입니까? (ㄴ) 『70주』의 1주일이 문자 그대로 7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6 이 예언을 읽고서 「메시야」를 분별하는 데 있어서 여기 참다운 보물이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또한 70주의 시작을 결정하는 일과 이 예언에서 말한 주일의 길이를 결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여기 말한 일 주일의 길이가 문자 그대로 7일이라면 「메시야」는 지금부터 24세기 이전인 「바사」 제국 당시에 왔어야 하였으며 따라서 분별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한 다른 수백개의 예언도 성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70주라고 한 것은 상징적이며 그보다 더 길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때는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났읍니까?
7. (ㄱ) 『70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알기 위하여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ㄴ) 이에 관하여 「느헤미야」는 어떠한 소식을 제공합니까?
7 먼저 인용한 「다니엘」 예언의 25절은 그 명령이 내릴 때부터 그 기간이 지나면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여자의 씨 즉 「메시야」가 지상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 명령이 언제 있었고 언제 시행되었는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이 명령을 내린 왕이 누구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명령을 내린 때가 그 왕 통치 20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 왕의 통치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헤미야」의 말은 이러합니다.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느헤미야 2:1) 이 때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슬픈 상태를 왕에게 알리고 그 성읍을 재건하기 위하여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읍니다. 다음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되는 바와 같이 이 담화가 있던 때는 기원전 455년이고 왕은 「바사」의 「아닥사스다」 (즉 「아르다 크세르크세스」)였읍니다.
「아닥사스다」보다 앞선 네 왕들
8. (ㄱ) 「메대」사람 「다리오」와 「다리오」1세 사이에 통치한 두 왕은 누구였읍니까? (ㄴ) 「바사」가 「희랍」을 두번째 침입한 때는 언제였읍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8 「다니엘」은 11:1에서 「메대」사람 「다리오」를 말하고 2절에는 「바사」에 세 왕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네째 것은 다른 어떠한 자들보다 더 많은 재물을 쌓으리라고 하였으며 그는 또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을 칠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세째 왕은 「다리오」 1세며 그는 기원전 522년에 「바사」 제국을 다스리기 시작하였읍니다. 이 왕 앞에 「메대」 사람 「다리오」 이래로 두 왕이 있었으며 그들은 「바사」사람 「고레스」와 그의 아들 「캄뷔세스」였읍니다. 기원전 490년에 「다리오」왕은 「바사」가 두번째로 「희랍」을 침입하도록 명령하였읍니다. 「바사」의 군대는 「아덴」의 군대보다 훨씬 수효가 많았으나 「바사」군은 「희랍」의 「마라돈」에서 패배되었읍니다. 「다리오」왕은 세번째로 「희랍」을 침입하려고 하였는데 그가 준비를 마치지도 못하고 기원전 486년에 죽었읍니다.
9. (ㄱ) 『그가 격동시켜 「헬라」국을 칠 것이』라고 「다니엘」이 말한 네째 왕은 누구였읍니까? (ㄴ) 「크세르크세스」는 어떠한 일들을 하였읍니까? 70주에 관한 연구에서 왜 그를 고려하게 됩니까? 그는 언제까지 통치하게 되었읍니까?
9 「다니엘」이 말한 네째 왕은 또 한번 「희랍」을 정복하러 일어났읍니다. 어떤 현대 성서 번역은 그의 이름을 「크세르크세스」라고 하였읍니다. (에스더 1:1-3, 「아메리카」 역, 「모팻」역) 또 다른 번역에는 「히브리」 사람들처럼 「아하수에로」라고 하였읍니다. 「아하수에로」가 「크세르크세스」라면 그는 기원 전 486년 12월에 통치를 시작하였읍니다. 왕「크세르크세스」 1세를 「다니엘」 예언의 70주 연구에서 고려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바로 「예루살렘」을 재건하라고 조서를 내린 「아닥사스다」왕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1:1; 2:1, 7, 8)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원수에 의하여 학살되지 않고 자신들을 방어하도록 법령을 내린 통치자입니다. 「크세르크세스」의 「유대」인 아내의 사촌인 「모르드개」는 「크세르크세스」의 수상으로 일하고 있었읍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부림」이라는 명절을 만들었읍니다. 그 때는 「아달」월(2월-3월), 음력 12월 14일 내지 15일이 됩니다. (에스더 9:20, 21) 「크세르크세스」는 그때 통치한지 12년째 되었읍니다. (에스더 3:7) 그리고 그의 통치는 기원전 474년쯤 되는 13년까지 계속하였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에스더 9:32–10:3까지 기록된 바와 같이 「크세르크세스」의 법령 후에 다른 일들이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10. 에스더 9:32–10:3은 어떻게 「크세르크세스」가 13년까지 통치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소식을 제공합니까?
10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히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아하수에로」 (「크세르크세스」 「아메리카」역)왕이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 하였느냐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크세르크세스」—「아메리카」역)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11. (ㄱ) 「바사」가 세번째로 「희랍」을 침입한 때는 언제였읍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희랍」에 의하여 패배된 「바사」는 네째 세계 강국의 자리를 상실하였읍니까?
11 「희랍」에 대한 세번째 침입은 「크세르크세스」 통치 12년 이전에 행하여졌읍니다. 기원전 480년에 「헬레스폰트」를 건넌 「크세르크세스」의 군대는 「희랍」 군대보다 그 수효가 훨씬 많았으나 「아덴」 사람 「데미스토클레스」 장군의 전법에 의하여 패배되었읍니다. 「데르모필레」에서 침입군을 막는 「희랍」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바사」군은 큰 손실을 입었으며 「크세르크세스」는 그의 함대의 반 이상을 상실하게 되었읍니다. 다음 해에 「희랍」군은 적군의 유능한 장군 밑에 남아 있는 「바사」군을 패배시켰읍니다. 같은 날 「바사」의 남은 함대는 소 「아세아」에 있는 「미게일」해안 가까이에서 대패 되었읍니다. 「바사」군은 「희랍」을 다시 침입치 않았읍니다. 네째 세계 강국이 깊이 구라파까지 침입하려는 노력은 기원전 479년에 꺾여졌읍니다. 그 때는 「크세르크세스」 통치 8년이었읍니다. 그러나 「바사」 제국은 세계 지배자로서 1세기 반 더 계속되었읍니다.
「아닥사스다」의 통치 시작
12. 「데미스토클레스」는 「바사」를 패배시킨 얼마 후에 그에게 어떠한 일이 발생되었읍니까?
12 「아닥사스다」왕 통치가 기원전 474년에 시작하였다는 역사적 증거가 있읍니다. 「데미스토클레스」가 그러한 승리를 거두고 「희랍」의 방비를 튼튼히 하였으나 후에 백성의 신임을 잃기 시작하였읍니다. 마침내 그는 「바사」와 타협하였다는 반역죄로 고발되었읍니다. 그는 소 「아시아」로 도망쳤읍니다. 그래서 그는 반역자로 규정되고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바사」 사람들에게 잘 대우받았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13. 「데미스토클레스」는 어느 법정에서 보호를 구하여 그것을 얻게 되었읍니까?
13 그는 . . . 결국 「바사」 법정에서 보호를 구하였다. 그는 거기서 그때 통치하던 군왕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의 높은 호의를 얻었다. 그는 「바사」인들이 「희랍」을 정복시키는 계획에 종사하였는데 그는 이 일을 관철시킬 것을 「아닥사스다」와 약속하였다. 그 때 어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음독하였다. . . .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1929년판 26권 507면.
14. 「데미스토클레스」는 언제 죽었읍니까? 그리고 이 사실은 그가 소「아시아」에 도착한 때를 계산하는 데 어떠한 도움을 줍니까?
14 추방된 「데미스토클레스」가 소「아시아」에서 죽은 것은 「아닥사스다」 통치 때였읍니다. 기원전 1세기 「희랍」의 역사가인 「시실리아」외 「디오도러스」의 연대기에 의하면 「데미스토클레스」가 죽은 날자는 기원전 471년입니다. 다음 소식에 의하면 그는 틀림없이 기원전 473년에 소 「아시아」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소 「아시아」에 이르자 「아닥사스다」 왕에게 서신을 보내어 면회를 청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바사」 말을 배우기 위하여 1년의 여유를 주실 것을 청하였읍니다. 그 후에 그는 「아닥사스다」 앞에 나아와 「희랍」을 정복할 계획에 참여하였을 것입니다. 「아닥사스다」왕은 이 요구를 들어주었고 「데미스토클레스」는 그해 끝에 그의 궁정에 나타났읍니다.
15. 「투키디데스」는 (「희랍」의 역사가) 「데미스토클레스」가 기원전 473년에 소「아시아」로 도망하였다는 생각을 어떻게 지지합니까?
15 「희랍」인 역사가로서 「아덴」 사람인 「투키디데스」는 「바사」인 「아닥사스다」 통치 때 살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데미스토클레스」 장군은 그의 고향으로부터 소 「아시아」(바사)로 도망쳤다고 했읍니다. 그때 「아닥사스다」는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읍니다.—참조, 「투키디데스」 1권 137장.
16. 「역사가 「네포스」는 「투키디데스」의 진술을 어떻게 지지합니까? (난외주) 「희랍」의 전기가인 「플루타크」는 「투키디데스」와 일치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6 기원전 1세기의 「로마」 역사가 「네포스」는 「투키디데스」를 지지하여 이처럼 말합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말하기를 「데미스토클레스」가 「크세르크세스」 통치 때에 「아시아」로 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역사가들보다도 「투키디데스」를 더 신임하고 싶다. 왜냐 하면 그 당시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 가운데서 「데미스토클레스」의 시대에 가장 가깝고 같은 성읍에 살았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는 그가 「아닥사스다」에게 갔다고 말한다.』—「네포스」저 「데미스토클레스」, 9장a
17. (ㄱ) 「제로움」은 「데미스토클레스」가 언제 「아시아」에 도착하였다고 합니까? (ㄴ) 학자 「헹그쉬텐베르크」에 의하면 「아닥사스다」 통치는 언제 시작되었읍니까?
17 「제로움」의 「요세비우스」는 「데미스로클레스」가 「올림피아」 (기원전 776년에 시작하여 4년마다 있음) 76회의 4년째 되는 해에 「아시아」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바로 기원전 473년이 됩니다. 독일 학자 「에론스트 헹그쉬텐베르크」는 「아닥사스다」 통치가 기원전 474년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8. 앞서 있는 역사적 날자들을 근거로 어떠한 중요한 날자를 알아 낼 수 있읍니까?
18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날자인 「아닥사스다」 통치 원년을 알아 낼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데미스토클레스」가 기원전 473년에 「아시아」에 도착하였을 때 그가 『왕위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닥사스다」 통치가 기원전 474년이라는 다른 소식들을 지지해 줍니다.
70주가 시작한 때
19. 「느헤미야」의 계산에 따르면 일년의 시작과 끝은 어느 때 어느 때였읍니까?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어떠한 역세법과 일치합니까?
19 다니엘 9:24-27에 있는 예언에서 「다니엘」이 계수하기 시작한 때에 관하여 「느헤미야」가 알려 줍니다. 그의 역년은 「티쉬리」월 (오늘날 「유대」인 민간역으로 9/10월)에 시작하여 열 두째 달로서 「엘룰」월 (8/9월)에 끝났읍니다. 「예루살렘」에서 도피하여 온 「유대」인으로부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황폐된 상태를 들은 「기슬르」월은 「티쉬리」 월로부터 세째 달이며 11월과 12월에 걸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느헤미야 1:1, 2)
20.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상태에 관한 보고를 받은 때가 언제라고 합니까?
20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21. (ㄱ) 「에스더」서에 의하면 일년은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납니까? (ㄴ) 그러면 「크세르크세스」의 제1년과 제12년은 각각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납니까? (ㄷ) 「느헤미야」는 1년의 시작과 끝을 언제로 말합니까? (ㄹ) 「아닥사스다」의 통치 제1년과 제20년은 각각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납니까? (난외주) 「크세르크세스」 통치 말년과 「아닥사스다」 통치 원년이 왜 기원전 474년이 될 것인가를 설명하시오.
21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그레고리」역세에 의하면 어느 해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연대학적 증거를 살펴 보기로 하겠읍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기원전 486년 12월에 통치를 시작하였읍니다. 「에스더」서의 기록 일년의 시작이 봄 (「니산」월 즉 3/4월)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에 「크세르크세스」의 제1년은 그 역세에 의하여 기원전 485년 2/3월에 끝나게 됩니다. (에스더 9:1) 「크세르크세스」의 제12년은 475년 3/4월부터 474년 2/3월까지 이릅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제12년을 지나서 (즉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아달」월 [474년 2/3월]을 지나서 그의 제13년으로 들어가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읍니다. 같은 해인 474년에 「아닥사스다」가 그의 부친을 계승하였읍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역세는 그 해의 시작을 가을 (「티쉬리」월 즉 9/10월)로 잡읍니다. 그러므로 475년 「티쉬리」월부터 474년 「티쉬리」월까지가 「아닥사스다」왕의 통치 원년이 될 것입니다.b (느헤미야 1:1; 2:1) 그러므로 「아닥사스다」왕 제20년은 기원전 456년 9/10월부터 기원전 455년 8/9월까지 이르게 됩니다.
22. 「느헤미야」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리고 「느헤미야」는 언제 그 소원을 성취시킬 기회를 가졌었읍니까?
22 여호와 하나님의 열성있는 종 「느헤미야」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지는 참된 숭배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예루살렘」에 관하여 흉한 소식을 듣자 그는 여호와께 기도하여 자기가 「예루살렘」을 복구시키는 데 사용될 것을 원하였읍니다. 같은 해인 「아닥사스다」 제20년에 즉 「느헤미야」의 계산에 의하면 기원전 455년 「니산」월 (3/4)에 술관원인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왕에게 제시하여 왕의 승인을 얻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 2:1, 6) 「느헤미야」는 신속히 행동하였읍니다.
23. 어떠한 다른 예언의 계산과 같이 「70주」의 기간도 언제부터 계산하였읍니까?
23 마치 「예루살렘」 황폐의 70년이 「유대」인들이 성전 토대를 놓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함으로 「고레스」의 조서가 발효되었을 때에 끝난 것같이 70주의 시작도 「아닥사스다」의 명령이 발효한 때부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유대」인들이 「느헤미야」와 같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 「느헤미야」가 성벽을 세우도록 명하였을 때입니다. 그러면 다음에서 성읍을 세우라는 명령이 실지 언제 발효하였는가를 살펴 봅시다.
24. 「아닥사스다」왕이 명령을 내려서 적어도 얼마나 있다가 그 영이 발효되었읍니까? 그리고 그때는 어느 해 어느 날이 됩니까? (난외주) (ㄱ) 학자 「헹그쉬텐베르크」는 「아닥사스다」왕 통치 원년과 20년을 언제로 봅니까? (ㄴ) 이 날자는 다른 역사가들에 의하여 어떻게 확증됩니까?
24 왕의 겨울 별장이 있는 「수산」궁에서 「예루살렘」까지 여행하려면 약 4개월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거기 도착한 것은 「아브」월인 11월 초가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쉬었다가 3일간 회합을 가졌고 밤에 성벽을 살펴 본 후에 성벽 건축을 명하였읍니다. 이것은 기원전 455년 「아브」월 3일이나 4일경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레고리」 역세로는 기원전 455년 7월 26-27일이나 혹은 27-28일 경이 됩니다. 그때는 아직 「아닥사스다」 제20년입니다.c (느헤미야 2:11-18) 이 때가 바로 「다니엘」의 중요한 예언에 의하여 주어진 때를 계산하는 기점이 됩니다. 이 때가 바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발효된 때가 됩니다.d
70주의 길이와 끝
25. (ㄱ) 성취에 있어서 70주와 69주의 길이는 각각 얼마입니까? (ㄴ) 이 주의 계산은 언제부터 시작하며 69주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계산합니까?
25 이 예언적 주일의 길이에 관하여 「아메리카」 번역판과 「제임스 모팻」 박사는 다니엘 9:24-27에서 『햇수로 된 70주』라고 번역하였읍니다. 그러므로 1주가 7년이 되므로 70 주는 490(7x70)년이 됩니다. 「메시야」가 나타나는 때는 69(7x62)주년 후가 됩니다. 기원전 455년부터 시작한다면 이 예언은 스승인 「메시야」가 나타날 날자를 어제로 알려 줍니까?
[도표]
기원전 455년부터 기원전 1년까지=454년
기원전 1년부터 기원 1년까지=1년
기원 1년부터 기원 29년까지=28년
햇수로 된 69주=483년
26. (ㄱ) 예언에 의하면 「메시야」가 언제 나타나게 되어 있읍니까? (ㄴ) 그 예언을 성취하도록 그 해에 누가 나타났읍니까? 그리고 왜 그때에 『메시야』 라고 부를 수 있었읍니까? (ㄷ) 그를 「메시야」로 인정할 수 있는 다른 증거가 있었읍니까? (ㄹ) 69주가 시작한 시기에 관하여 어떠한 재미있는 일이 있읍니까? (ㅁ) 성벽 건축은 언제 완성되었읍니까?
26 그러므로 기원 29년은 「메시야」가 나타날 때입니다. 역사는 예수께서 나타나신 때가 그 때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그 때 나타나셔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성령이 내려와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게 하였읍니다. 그것은 『기름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 전까지는 인간 예수였으며 성령으로 기름받을 때까지 기름받은 자라고 부를 수 없었읍니다. 「요한」은 그의 기름받는 데 대한 증인이 되었으며 여호와께서는 비둘기 형태와 하늘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로써 증거하셨읍니다. (누가 3:1, 2, 21-23) 이 때의 정확성과 더불어 재미있는 사실은 69 주가 시작된 것이 「니산」월이 아니라 「티쉬리」월인데, 에수께서 침례받고 기름받으신 달이 바로 「티쉬리」월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벽 건축 시작한 날자는 느헤미야 6:15에서 찾아 볼 수 있읍니다. 거기 기록은 『성 역사가 오십 이일 만에 「엘룰」월 [열두 번째 달] 이십 오일에 끝나매』라고 하였읍니다. 「엘룰」월 앞의 달은 「아브」월이며 30일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건축 역사는 틀림없이 기원전 455년 「아브」월 4일에 시작하였읍니다. 그때는 7월 27-28일이 되며 끝난 때는 기원전 455년 9월 16-17일이 됩니다. 그 해는 역시 「아닥사스다」 제20년이 됩니다.
27. 기원전 455년은 왜 「시온」에 대해 은혜를 베푸는 중요한 해입니까?
27 확실히 「다니엘」의 예언은 참되었읍니다. 「바사」왕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 통치 20년인 기원전 455년은 「시온」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중요한 해입니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날자의 하나입니다. 왜냐 하면 오래 전에 약속된 하나님의 여자의 씨인 「메시야」가 임할 69주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다니엘 9:25.
28. (ㄱ) 「다니엘」의 「70주」 예언은 「유대」 백성과 우리에게 어떠한 역할을 하여 왔읍니까? (ㄴ) 침례 「요한」이 나타났을 때 「유대」인들이 「다니엘」의 예언이 말한 때를 잘 알고 있었읍니까? (ㄷ) 70주의 중간과 끝에는 어떤 일이 있었읍니까?
28 다니엘의 이 놀라운 예언은 400년 이상 빛의 역할을 하여 왔읍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것은 「유대」 백성과 오늘날 우리가 「메시야」를 분별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련 중의 하나였읍니다. 483년이 차기 전에 「메시야」의 선구자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었읍니다. 「유대」인들은 침례 「요한」이 「메시야」의 출현에 관하여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읍니다. 사실상 「유대」인들은 「다니엘」이 말한 때의 예언과 침례 「요한」의 일을 생각하고 「메시야」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었읍니다. 누가 3:15은 이러합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다니엘」 예언에 있는 바와 같이 그는 한 이레의 절반에서 즉 예수께서 3년 반 전도하신 후에 끊어졌읍니다. 그는 「니산」월 14일에 형주에서 죽었읍니다. 그 때는 「티쉬리」월 즉 가을에 시작되는 음력 1년의 가운데가 됩니다. 그 때부터 3년 반 후에 처음으로 이방인이 기름받은 자들 가운데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도록 「고넬료」가 기름받음으로써 70주년이 끝났읍니다.—이사야 40:3; 마태 3:3; 다니엘 9:24.
29. 「다니엘」의 예언을 살필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읍니까? 우리는 이에 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하며 또 그 이유는?
29 이성있는 사람이 한낱 개인뿐 아니라 온 백성이 들어서 성취시키게 되는 선견과 굉장한 능력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볼 수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다 하여도 이 사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생명을 바라는 자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메시야」는 하나님의 여자의 씨이며, 「아브라함」의 씨로서 하나님의 모든 원수를 멸망시키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온 땅의 백성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아들이며 기름받은 왕이며 스승이신 이 분을 믿고 그의 명령을 따름으로써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창세22:17, 18.
[각주]
a 「데미스토클레스」라는 제목 밑에 기원 1세기에 있었던 「희랍」의 전기가 「플루타크」는 말하기를 『「투키디데스」와 「람프사구스」의 「가론」은 「크세르크세스」가 죽었고 「데미스토클레스」는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즉 「아르다 크세르크세스」)와 회견하였다고 말하고, 또 「에포로스」, 「디논」, 「싯다르쿠스」, 「헤라클리데스」와 기타 많은 사람들은 그가 「크세르크세스」 한테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연대표는 「투키디데스」의 기사에 더 일치된다.』—C27.
b 예를 들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1월부터 12월까지 이르는)「그레고리」 역세에 따라서 만일 한 통치자가 1965년 12월에 죽었고 같은 해에 계승자가 통치를 시작하였다면 계승자의 통치 원년과 전 통치자의 마지막 해는 같이 1964년이 됩니다. 하나는 거의 연말에 시작되고 하나는 그보다도 11개월 전인 1월에 시작하여도 그렇게 계산합니다.
c 그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유명한 독일 학자 「에른스트 Wm. 헹그쉬텐베르크」(1802-1869)는 「헨리 도드웰」 박사가 기원전 445년이라고 한 날자가 틀리다는 것을 증명한다. 『구약의 그리스도론』이라고 주제를 붙인 그의 저서 가운데서 제2권 394면(2)에서 「헹그쉬텐베르크」는 말하기를 『[의견]차이점은 「아닥사스다」왕이 통치를 시작한 해에 관한 것뿐이다. 우리 문제는 완전히 풀렸다. 즉 그 해가 바로 그리스도 전 474년이다. 그러므로 「아닥사스다」 제20년은 그리스도 전 455년이 된다. 이것은 보통 계산에 의한 것이다. . . . 』라고 하였다.
「아닥사스다」의 통치 시작이 기원전 474년이라고 증명한 후 그는 395면에다 말하기를 『「크뤼거」는 . . . 「크세로크세스」의 사망을 474년 혹은 473년으로 하고, 「데미스토클레스」의 도피를 1년후로 잡는다.』라고 하고, 399면에다 「헹그쉬텐베르크」는 말하기를 『「아닥사스다」의 통치가 51년』인데 「희랍」 역사가 「크데시아스」는 (기원전 5세기 사람) 「아닥사스다」가 42년만 통치하였다고 한다.—참조, 「류엘 케이스」가 독어를 영어로 번역하였음. 초판, 「뉴욕」(1836-1839) 3권으로 되다.
「헹그쉬텐베르크」는 「톨레미」의 착오에 대한 가능한 이유를 제공한다. 즉 「톨레미」가 고대 연대학자들의 기록으로부터 왕들을 나열할 때 「크세르크세스」의 통치를 21년으로 하였다. 그는 「희랍」어 「야」(ia)를 「가」(ka)로 잘못 생각하였다. 그것은 「희랍」어로 각각 11과 21을 표시한다.
연대기학자인 「아일랜드」의 대승정 「제임스 유숴」(1581-1656)는 (『「바사」 제국』이라는 주제 밑에 「신약의 연대」(1650년 발행) 131면에)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가 기원전 474년에 「바사」 왕위에 즉위한 것을 지지한다. 그런데 이 날자를 성경 참고서에다 넣지 않았다. 유명한 필자들인 「비트링가」(1659-1722)와 「크뤼거」(1838)는 「아닥사스다」가 「바사」왕위에 오른 해를 기원전 474년으로 정한 「유숴」와 일치한다.
d 「맥클린톡」과 「스트롱」씨 공저 「성서, 신학, 교회 문헌 사전」 제9권은 『다니엘의 예언의 70주』를 다루었는데 602면에서 『1, 조서의 일자』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일자를 「바벨론」에서 발표된 때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발효된 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차이는(다만 4개월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