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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니아에 있는 믿음 안의 가족을 도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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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된 노력?
  • 트라브니크에 도착함
  • 계속해서 제니카로
  • 돌아오는 길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파94 11/1 23-27면

보스니아에 있는 믿음 안의 가족을 도움

여호와의 증인은 정치 분쟁에서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요한 17:16) 하지만 “특히 믿음 안의 가족에게” 선한 일을 하라는 바울의 교훈에 따라, 여호와의 증인은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기꺼이 돕고자 한다. (갈라디아 6:10, 「베크역」) 1993-94년 겨울이 다가오면서,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 출신의 증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보스니아에 있는 믿음 안의 가족을 도왔다. 다음은 그들의 보고 내용이다.

1993년 3월부터 10월까지 보스니아에 구호품을 보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10월 초에 당국은 구호품을 수송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알려 주었다. 보스니아의 모든 전선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므로 이 일은 여전히 위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93년 10월 26일 화요일에 보스니아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식품과 땔나무 16톤을 트럭에 싣고 빈을 출발하였다. 우리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 지역 대회 가슴표를 달았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국경에 도착한 다음에는, 호위를 받으면서 군 기지까지 갔는데, 거기서 그들은 우리의 트럭들을 샅샅이 조사하였다. 우리는 세르비아 영토를 가로질러서 여행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보스니아 중부를 경유하는 길로만 통행이 허락되었는데—이 곳은 바로 전투 지역인 것이다!

헛된 노력?

군 호송대가 한 검문소에서 다른 검문소로 우리를 인도하는 동안에 우리는 탱크와 대포에서 나는,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음을 들었다. 우리는 탱크 두 대와 지프 한 대의 호위를 받으며 밤새 숲 사이로 여행하였다. 우리의 트럭들은 최전선 지역을 아주 천천히 통과하였다! 모두 순조롭게 전진하다가 아침이 되자 우리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와 언덕 뒤로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얼마 후에 포성이 멎자 우리는 여행을 계속하였다.

우리가 어떤 군 야영지에 도착하였을 때 그 곳의 부대장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우리의 목적을 설명하자 그는 “당신들의 시도는 분명히 실패할거요” 하고 말하였다. “이 야영지를 벗어나서 단 몇 미터도 가지 못할 겁니다. 이 나라에 기근이 너무나 심해서 사람들은 당신들을 공격하고 그 구호품을 빼앗아 갈 겁니다.” 그는 다시 돌아가라고 재촉하였다.

우리의 노력은 “분명히 실패할” 것인가? 전쟁으로 파괴되고 기근이 닥친 지역을 통과하면서 구호품과 우리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부질없는 기대인가?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이미 대포 소리와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음을 들었다. 군인들과 함께 그 날 밤을 보내면서 군인들이 치열한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방탄 조끼를 입고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취사병도 기관총을 메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우리는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가슴표를 달고 있었다! 계속 전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가?

트라브니크에 도착함

이 전쟁에 가담한 제삼의 파벌과 협상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였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어떤 젊은 여자에게 그 파벌의 주둔 부대 본부가 있는 곳을 아는지 물었다. 그 여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서 멀지 않아요. 숲을 막 벗어나면 이전에 병원이었던 건물이 보일 거예요.” 우리는 빨리 가보고 싶었다. 군인들은 우리가 무장도 하지 않고 겁도 없이 야영지를 떠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전에 병원이었던 그 건물은 파괴되어 있었지만 장교 한 명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도와 주겠다고 동의하였고, 먼저 자기의 지휘관에게 이야기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는 찌그러진 자기 차에 우리를 태우고 최전선을 따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우리는 어떤 건물 앞에서 멈추었는데, 지휘관은 그 건물 안의 캄캄한 방에서 우리를 맞이하였다.

“어젯밤에 우리는 당신들에게 사격을 가하려고 했소” 하고 그가 말하였다. “원하는 게 뭐요?”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우리 형제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는데—또한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여러 주 동안 어떤 구호품 수송대도 감히 보스니아에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철저히 조사받은 다음에 확인서를 받았다. 전날 밤에는 여행을 계속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호송을 받지 않고도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검문소를 하나하나 통과하면서 숲 사이로 달렸고, 어떤 때는 최전선을 따라 달렸다. 우리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트라브니크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어떤 군인은 우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형제들이 모여 있는 집으로 달려가서 “당신네 사람들이 트럭을 몰고 여기에 왔소!” 하고 소리 쳤다. 형제들의 기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집 안으로 식품을 운반하고 대화를 좀 나누었지만, 곧 여행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앞에는 32킬로미터나 되는 위험한 여행길이 놓여 있었다.

계속해서 제니카로

호송 차량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숲 사이를 달리며 우리를 안내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결코 제니카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우리는 도착하였다. 그 마을은 음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았다. 불빛도 전혀 없고 거리에는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제니카는 사방으로 포위되어 있어서 극심한 기근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거리를 달리다가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을 보았는데—두 그리스도인 자매가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양식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 전날 집회에서 형제들은 숲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적시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는 새벽 4시에 트럭에서 짐을 내렸는데 그 동안 거리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우리는 한 사령관과 만났는데, 그는 우리가 제니카에 도착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이제 다음 목적지인 사라예보로 가는 여정에 관해 물어 보았다.

“트럭으로 감히 그 곳에 가려고 한 사람은 여러 달 동안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고 사령관이 말하였다. 마침내 그는 산악 지대를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말해 두지만, 성공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고 그는 경고하였다. “그 곳에 갈 수 있을 만큼 당신들의 트럭이 튼튼한지 의문이군요.”

그 사령관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사라예보까지 40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숲 속으로 140킬로미터나 우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제니카에서 사라예보를 거쳐 야블라니카까지 사흘 낮과 이틀 밤 동안 겨우 시속 5킬로미터로 달린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길”은 장갑 차량이 지나다녀서 생긴 오솔길이었다. 바위와 구덩이 위를 지나갈 때는 겁이 났다. 종종 라이트를 끄고 주행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 트럭들은 두 번이나 하마터면 위태로운 비탈로 미끄러져 떨어질 뻔하였다. 우리 트럭들 뒤에 따라오던 군 트럭 한 대는 아주 잠깐 라이트를 켰다가 즉시 사격을 받았다. 때때로 우리는 부서진 다리를 복구하고 타이어를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사라예보 외곽에 도착하자마자, 관할 사령관과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거리에 있는 트럭 한 대에 열 구의 시체와, 머리들을 담은 자루 하나가 실려 있는 것을 보았다. 군인들은 시체를 넘겨 주는 일에 대해 협상하고 있었다. 정말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다시는 전쟁이 없을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이사야 2:4.

오전 10시에 마침내 우리 중 한 명이 촛불만 켜 있는 어두운 방에서 사령관 및 고위 장교들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하고 사령관이 물었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사라예보에 있는 동료 증인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라예보에 여호와의 증인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소?”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것이지요.”

그러자 사령관은 한 증인의 이름을 언급하였다. “그를 알고 있소?”

“예, 압니다. 우리의 친구지요.”

“내게도 친구입니다”라고 사령관이 말하였다. “우리는 같이 학교에 다녔지요. 그 친구가 증인이 된 이후로 그를 더 존중합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지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뒤에 십여 부의 잡지와 팜플렛을 전하였다. 두 번째 대화가 있은 후에, 사령관은 구호품을 사라예보의 형제들에게 보낼 수 있도록 특별한 마련을 해주기로 동의하였다.

이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증인이 아닌 몇 사람을 포함해서 약 30명이 무게가 27킬로그램 가량 나가는 꾸러미들을 힘겹게 날랐다. 그들은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틀 밤에 걸쳐서—모두 18시간 동안—열심히 일하였다. 한 장로의 말로는 이웃 사람들도 그 구호 노력에 너무나 감동되어서 형제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여호와께 감사 드렸다고 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얼마의 식량이 돌아갔다.

약 11톤의 구호품을 받고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해 보라! 그 곳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 곳에서 밀가루 1킬로그램의 값은 450 내지 1000마르크(한화 24만 원 내지 52만 8000원)나 된다. 땔나무는 한 자루에 400마르크(한화 20만 8000원)나 되고, 디젤 연료 1리터는 30마르크(한화 1만 6000원)나 된다.

오는 길에 겪은 온갖 위험에 대해 이제 보상받은 것 같았다. 우리 형제들이 이 구호품을 받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기뻐하였다. 그들—또한 우리—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에 따르는 도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

“어느 길로 돌아가야 하지요?” 하고 그 사령관에게 물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사령관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기진 맥진해 있었고, 연료도 많지 않았으며, 여분의 타이어도 없었다. 비도 내리기 시작해서 진창 속으로 여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사령관에게 남쪽으로 여행할 수 있을지 물어 보았다.

“그 곳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쥐 한 마리도 빠져 나갈 수 없을 겁니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다시 생각하더니 “한번 해 보시오. 아무튼, 당신들은 이 곳으로 오는 일도 성공했으니까요” 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트럭 한 대는 남겨 두고 그 트럭의 연료를 다른 세 트럭에 나누어 담았다. 우리는 한밤중에 출발해서 다시 숲 속으로 차를 몰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문제들이 있었다. 우리는 옆으로 쓰러져 있는 군 트럭 한 대와 마주쳤는데, 그 트럭은 우리가 건너야 할 다리를 약간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그 트럭에서 바퀴 하나만 빼면 지나갈 공간이 충분할 것 같았다.

우리는 한 무장한 군인에게 간청하였다. “저 바퀴를 뺐다가 다리를 건넌 다음에 다시 끼워드려도 될까요?”

그 군인은 총을 겨누면서, “그 바퀴에 손을 댄다면 내 총이 가만있지 않을거요”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그 군인에게 커피를 한 잔 대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자그레브에서 열린 대회와 같은 1991년 국제 대회들에 대해서 여러 시간 동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태도가 부드러워지더니 바퀴를 빼도록 허락하였다.

야블라니카에서 우리 중 한 사람이 지휘관에게 우리가 여행하려고 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자기가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네레트바 계곡을 통과하겠단 말이오?”

그 지휘관이 염려하는 것도 당연하였다. 네레트바 계곡의 양쪽 언덕은 대치 중인 군대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들은 늘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 그 길의 16킬로미터 정도는 위험 지대이다. “그런데도 그 길을 통과하겠단 말이오?” 하고 그 사령관이 말하였다.

사령관은 그 문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나서, 장교들을 동반하기만 한다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 장교들은 우리와 함께 가기를 꺼렸다! 결국 우리는 그들에게, 건너편과 교신해서 우리의 통행을 알리기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우리는 이튿날 아침에 호송을 받지 않고 건너갈 계획이었다.

우리는 큰 글씨로, 트럭에 인도주의적 원조 물자를 운반한다고 써 붙였다. 기도를 한 다음, 트럭을 몰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우리는 만일 사격을 받더라도 의심을 사지 않도록 속도를 높이지 말자고 합의하였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으로 가서 계속 다음 골짜기로 들어섰고, 동물들의 시체와 부서진 트럭과 탱크들을 지나쳤다. 갑자기, 길 위에 지뢰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길이 막힌 것이다. 우리가 트럭의 경적을 계속 울렸더니 마침내 바위 뒤에서 군인 두 명이 내다보았다. “당신들 누구요? 무슨 일이요?” 하고 그들이 물었다.

우리가 신분을 밝히고 나서, 길에서 지뢰를 치워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들은 동의하였다. 드디어 우리는 건너편에 도착하였다.

이 곳 군인들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숨어 있던 곳에서 천천히 나와서 우리에게 총을 바로 겨누고 트럭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전투 지역을 통과하는 동안 안전상의 이유로 떼어 둔 자동차 번호판과 허가증을 보여 주었다.

“아무도 당신들이 올 것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 지역을 통과했죠?” 하고 한 군인이 말하였다.

우리가 요청한 것과는 반대로, 이 전초 부대에서는 아무도 우리가 온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장교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총의 공이치기를 당기고 곧 사격을 개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사격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 군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도 모르겠소. 그것이 당신들의 운명이었던 것 같소. 하지만 쌍안경으로 당신들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인도주의적 원조’라는 표시를 보고 당신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던 거지요.” 나중에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 주신 데 대해 여호와께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보스니아 형제 자매들의 상황은 비록 험난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은 격려적이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나누어 쓸 뿐 아니라, 믿음을 세워 주고 격려적인 많은 대화도 함께 나눈다. 제니카에는 두 명의 특별 파이오니아, 11명의 보조 파이오니아, 14명의 새로 침례받은 사람을 포함해서 40명의 활동적인 증인이 있다. 사라예보 시에 아직 남아 있는 65명의 증인과 4명의 보조 파이오니아는 134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다. 그 증인들은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데 매달 평균 20시간씩 바치고 있다.

참으로 여호와의 증인은 믿음 안의 세계적인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믿음으로 친족이 된 사람들—심지어 이전에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 위해 기꺼이 생명의 위험도 무릅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 13:35) 보스니아에 있는 믿음 안의 가족과 관련해서 이 말씀은 확실히 참되다.

[24면 지도와 삽화]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아드리아 해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트라브니크

제니카

사라예보

세르비아

[삽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구호품을 수송함

[26면 삽화]

전복된 트럭 옆으로 조금씩조금씩 지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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